7. 전쟁 - 지수사(地水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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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 』
● 군대의 기율(紀律)을 확립하고, 불패의 태세를
● 갖추며, 치밀한 계획과 작전으로 적을 스스로 굴
● 복하게 하는 것이 대장군이 할 일이라면, 올바른
전쟁의 명분을 세우고, 전쟁간 천하의 인심을 수
● 습하고, 전쟁후 정의가 이 땅에 실현되도록 하는
○ 것, 그것은 제왕이 할 일입니다. 따라서 전쟁을
● 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군주와 유능한 장군, 그리
고 정예 군사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준비되지 않으면 결코 나가 싸울 수 없습니다.
지수사(地水師)
사(師)는 군대를 의미한다. 군대를 움직이려면 훌륭한 통솔자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훌륭한 통솔자가 있어 확고하고 동요하지 않는 지휘로써 능히 다수를 이끌어 천하의 정의를 행할 수 있으면 그는 곧 천하의 왕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강한 신념을 갖고 있으면 서로 포용하여 일제히 협력한다. 위험한 전쟁을 수행하라. 정의의 길에 순응하는 것이다. 비록 한때 천하를 전쟁의 고통속에 몰아넣는 일이 있더라도 인민들은 그것을 이해하고 심복한다. 그러니 전쟁에 승리할 것이다. 무슨 허물이 있으랴.
師, 貞. 丈人吉无咎. 象曰, 師衆也. 貞正也. 能以衆正,
可以王矣. 剛中而應, 行險而順. 以此毒天下, 而民從
之. 吉又何咎矣.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은 퍽이나 긴 것같지만 사실은 아주 짧은 것입니다. 어제 기어다니던 애기가 어느날 보면 벌써 걸어다니고 있습니다. 그 아이가 곧 대학교 다닐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어린 아이가 그렇게 자라는 것은 자기 자신이 자라야겠다고 결심해서 자라는 것은 아닙니다. 순전히 자연적으로 자란 것입니다. 우리의 육체라는 것은 눈깜밖할 사이에 변합니다. 어느날 갑자기 흰머리가 나고 죽을 날이 멀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자연은 빠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영혼의 성장은 매우 느립니다. 젊었을때 그 사람의 영혼이 늙었을 때와 별 차이가 없습니다. 영혼은 자연적으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흔히 마음의 벽에 막혀 전전긍긍하는 사람은 영혼이 성장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한 때 기분으로 주먹을 불끈 쥐고 "열심히 해 나가야지." 하고 마음 먹은 사람은 얼마 안 있어 "다 그런 거지 뭐." 하며 자포자기할 사람입니다. 그런 마음은 힘없는 마음입니다. 마음의 힘은 힘을 쓰지 못합니다. 진짜 일하는 것은 마음의 즐거움이 사라진 뒤에 그 때 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즐거움, 괴로움, 이러한 것들은 자기 마음에 자기가 취해 있다는 뜻입니다. 세상에 기쁨과 괴로움이 함께 공존하는 이유는 그것이 곧 이 세상의 존재 원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역경과 곤란을 통해 나아가는 기쁨이 있다는 것은 바로 영혼의 성장을 의미하는 것이며 바로 이것이 우주의 생성 발전하는 창조적 자유의식의 생명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개개인은 자기의 생명력을 갖고 스스로 자랄 줄 알아야 됩니다. 영혼이 자라기 위해서는 자신을 숙일 수 있어야 합니다. 공부하기 싫고 귀찮아도 귀찮은 자기를 숙였을 때 비로서 조금씩 실력이라는 것이 쌓여지는 것입니다. 실력이 어느날 갑자기 올라가는 것은 다음날 덜그덕 내려갈 실력입니다.
서울대학교 출신들을 보면 머리가 별로 좋지 않습니다. 머리 좋은 천재는 기억하는 속도보다 잊어버리는 속도가 더 빠릅니다. 잊어버리는 것이 빨라야지 센스가 빠를 수 있습니다. 잊어 먹지 않고 머리 속에서 맴돌고 있으면 새로운 것이 눈에 잘 들어오지 못하는 법입니다. 그런데 서울대학교 학생들은 교과서를 달달 외우고, 그것을 잊어 먹지 않아서 서울대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서울대학교 출신들은 위대합니다. 그렇게 교과서와 씨름하며 한결같이 외워 나갈 수 있었던 것. 무언가 뜻한게 있으면 그것을 위해서 자기 어려운 여건을 극복하고, 하기 싫은 나에 빠지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었던 것. 그것이 위대한 것입니다. 이 세상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렵다고 해서 자기 마음의 벽을 넘지 못하고 머물러 있다면 어려운 것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어렵더라도 해결을 위해 하기 싫은 자기 마음을 넘어 꾸준히 해야만 어려운 것이 극복됩니다. 하늘은 그렇게 꾸준히 하는 사람을 돕는 법입니다. 노벨상을 창설한 노벨은 다이너마이트를 만들기 위해 무수한 실험을 했습니다. 실험을 위해 돈도 다 날리고 심지어 동생마저도 잃었습니다. 그러나 노벨은 "사람이 두 손으로 삽질을 하는데, 천명 만명이 삽질하는 것을 단 한 번에 해낼 수 없을까?" 하는 뜻으로, 그 어려운 역경이 그만두라고 노벨의 마음을 유혹했지만 거기에 빠지지 않고, 꾸준히 해 나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실험실에서 우연한 폭발이 있었고, 비록 노벨은 그 폭발로 다쳤지만, 이로써 다이너마이트는 발명되었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습니다. 하늘은 냉정하여 절대로 선뜻 주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뜻을 가지고 꾸준히 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길을 열어 줍니다. 노벨이 성공한 것도 결코 실험대 위에서 발견된 것이 아닙니다. 우연한 폭발로 노벨도 기절해서 나가 떨어졌을 때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성공할 수 있는 성공의 요소가 반드시 눈 앞에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옆으로부터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이는 하늘이 알려 주는 것입니다.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어려운 여건안에서 벌어지는 자기를 숙일줄 알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게 스스로 자신을 숙이고 인내하는 인내력, 이것을 갖추지 않으면 싸워서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수사는 자기 잘났다고 당당하게 나가기 보다는 항상 위험이 올 것을 미리 예측하면서 받아들일 자세를 가지고 나아갔을 때 이길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소인배들은 위험한 일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위험한 일들을 피하면서 좋은 일만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본인은 잘살기를 원하지만 항상 결과는 서로 시기하고 싸움질 하면서 피곤하게 살게 됩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 그 어려움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삼킬 수 있다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렇게 이 땅에 일어 나는 모든 것들을 다 받아들이고, 하늘의 세계도 다 받아들이면서, 꾸준히 해 나가는 의지를 확립하였을 때 하늘은 도와주며, 이 정도가 되어야지 비로서 나가서 싸울 수 있습니다.
[지수사]는 땅을 나타내는 외괘가 모든 것을 받아들일 태세가 되어 있고, 물을 나타내는 내괘가 위아래로 받아들임으로써 대지가 물을 가득 품고 있는 형상입니다. 즉 어떠한 어려움이라도 받아들이고 극복할 수 있는 힘이 갖추어져 있다는 뜻입니다. 이제 이 힘을 어떻게 잘 쓰느냐가 남아 있습니다. "사(師)는 군대를 의미한다." 여기서 '사(師)'는 고대 군대의 숫자를 나타내는 말로서, 지원부대 없이 단독으로 나가서 싸울만한 군대의 크기를 말합니다. 오늘날 개념으로 하면 사단급 정도의 부대 규모입니다. [지수사]는 이 정도의 세력이 있어야만 나가서 싸울만 하다고 말합니다. 조무래기 몇 명 정도만 가지고 나가서 싸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법입니다. [지수사]는 전쟁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그 전쟁은 남을 수탈하기 위한 전쟁이 아니고, 하늘의 뜻에 위배됨이 없이 만물을 위해서 하는 전쟁을 말합니다. 하늘의 뜻이 이 세상에 펼쳐지려면 전쟁이 불가피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연에는 창조와 파괴가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 전쟁이 반드시 총칼로 하는 전쟁이 아닐 지라도 어떤 형태로든 창조와 파괴를 위한 전쟁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최소한 [지수사]가 나타내는 그 정도는 되어야만 하늘의 도움을 통해 이길 수 있습니다.
"군대를 움직이려면 훌륭한 통솔자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훌륭한 통솔자가 있어 확고하고 동요하지 않는 지휘로써 능히 다수를 이끌어 천하의 정의를 행할 수 있으면 그는 곧 천하의 왕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마음의 벽에 막혀 전전 긍긍하는 사람. 그러한 사람이 군의 통솔자가 되어서는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확고하고 동요하지 않는 분명한 뜻을 세우고 명확한 지시로 능히 다수를 이끌어 갈 수 있는 통솔자가 사단급 규모의 군대를 거느렸을 때 비로서 전쟁을 할 수 있으며, 이긴다는 보장이 있는 것입니다.
"강한 신념을 갖고 있으면 서로 포용하여 일제히 협력한다." 마음 속에 스스로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이 저절로 밖으로 드러나게 되며 결국 외부에서 일제히 호응하는 현상이 벌어지게 됩니다. 안에 분명한 신념이 있으면 반드시 승리할 것이나 그렇지 못하면 패배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단 열 두명의 제자를 이끌고 다녔을 때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얕잡아 봐서 예수와 그의 열 두 제자들을 모두 죽여버렸습니다. 예수와 그 제자들의 몸은 죽어서 없어졌지만 그 안에 있는 것은 아직까지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안에 어느 누구도 꺾을 수 없는 강한 신념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현실과 싸우는 것이 보통 우리의 전쟁입니다. 그 전쟁에 이기느냐 지느냐는 외부의 호응에 있는 것이나 그 호응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고 먼저 내부로부터 나 자신과의 전쟁에 달려 있습니다. 자기 전쟁에서 지는 사람은 한 때 외부와 싸워 이겼다 하더라도 그것은 죽어 없어져 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영혼이 나의 마음을 뚫고 나왔다면 그것은 아무도 막을 수 없는 금강의 힘이 될 것입니다.
"위험한 전쟁을 수행하라. 정의의 길에 순응하는 것이다. 비록 한때 천하를 전쟁의 고통속에 몰아넣는 일이 있더라도 인민들은 그것을 이해하고 심복한다." 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전쟁의 명분(뜻)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전쟁은 군대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군대가 전쟁을 하려면 국민의 지지가 있어야 합니다. 한 번 군대가 출동하기 위해서는 수 만의 무기와 수 억의 군수 물자가 조달되어야 합니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곧 전쟁을 치룸으로써 발생하는 모든 고통을 국민이 흔쾌히 감수하는 국민의 지지도입니다. 전쟁의 명분이 천하의 정의에 부합되면 비록 한 때 국민을 전쟁의 고통속에 몰아 넣는 일이 있어도 국민은 그것을 이해하고 심복하는 법입니다. 상하가 단결하고 국민과 군대가 힘을 합쳐 협력하면 아무리 강대한 적이라도 능히 대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쟁의 명분이 바르지 못하여 국민이 분열하면 아무리 강대한 나라라도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대상. 대지가 풍부하게 물을 저장하고 있다. 이것이
[사]의 괘상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대지처럼
백성을 포용하고 양육한다.
象曰, 地中有水師. 君子以容民畜衆.
"대지가 풍부하게 물을 저장하고 있다." 대지를 양육할 수 있는 힘, 그것이 곧 대지에 숨겨져 있는 안의 물입니다. 이것이 있는가 없는가? 남을 구제하려면 먼저 자기 구제가 되어져야만 가능합니다. 안에 물이 들어가 있지 않은 사람이 남의 목을 어떻게 적실 수 있겠습니까? 땅을 파면 물이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만 목이 마른 사람들을 동원해서 땅을 팔 수 있는 것이지, 땅에 물이 있는지 없는지 분명하지 않은 사람이 사람들을 동원해서 땅을 파면, 만약 몇 번 파다가 물이 나오지 않으면 먼저 그 사람을 죽여버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안에 먼저 분명한 신념을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스스로 싸워 이긴 자가 만물과 싸워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지수사는 말하고 있습니다.
첫번째 음효. 군을 움직이는 데는 먼저 기율(紀律)을
엄정하게 하라. 기율이 문란해지면 일시적인 승리를
얻었다 해도 결국은 흉한 것이다.
初六, 師出以律. 否臧凶. 象曰, 師出以律, 失律凶也.
"군대를 움직이려면 먼저 기율(紀律)을 엄정하게 하라." 기율이란 군기(軍紀)과 규율(規律)입니다. 군기는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에 부딛치더라도 자신의 마음을 숙이고 의연히 대처해 나가는 군의 기강입니다. 규율은 이러한 기강을 확립하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질서와 법도입니다. 따라서 기율은 전쟁에서 적과 부딛쳐 깨어지지 않는 강인한 힘이 되는 근간입니다. 그 기율을 군 내부에 확립하는 것. 그것이 불패(不敗)의 태세를 갖추기 위해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기율이 없으면 일시적으로 승리하더라도 결국 기강이 문란하여져서 곧 패배하게 됩니다. 눈앞의 승리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승리를 위하여 그 바탕부터 확고히 다지지 않으면 안됩니다. 엄정한 기율이 곧 나중에 가면 부닥쳐서 깨어지지 않는 힘이 될 것입니다. 그 기율은 스스로 안에서 세워야 합니다. 사사로움에 치우치지않고, 마음의 장애를 벗어나 모든 마음을 수용하고 모든 마음 위에 우뚝 설 수 있는 기운, 그것이 바로 긍지이며,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하는 위대한 자연력 바로 그 자체인 것입니
다.
뜻이 이 세상에 펼쳐지려면 전쟁을 반드시 치루어야 합니다. 그것은 자연의 창조와 파괴가 동시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또한 그 전쟁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기강이라는 순수한 힘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제 그 힘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것이 없으면 조그만 승리는 있게 되더라도 그 승리는 곧 깨어져 버릴 것입니다.
두번째 양효. 군대 안에 있어서 천자(天子)의 깊은
신임을 얻어 길하다. 만국(萬國)을 굴복시켜 여러차
례 상을 받는다. 무슨 허물이 있으랴.
九二, 在師中. 吉无咎. 王三錫命. 象曰, 在師中,
吉. 承天寵也. 王三錫命, 懷萬邦也.
"군대 안에 있어서 천자(天子)의 깊은 신임을 얻어 길하다." 두번째 양효입니다. 양효가 내괘의 세계에서 우뚝 서있습니다. 군의 기율을 확립하니 상하의 신임을 얻어 높이 올랐습니다. 그리고 외괘의 세계에 대한 깊은 신임을 얻었습니다. 천자란 하늘을 뜻합니다. 모두 음효로 이루어진 외괘가 하늘의 뜻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두번째 효가 다섯번째 음효와 정응(正應)관계를 이루어 깊이 화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늘의 도움을 받기에 충분하다는 말입니다. 원래 [사] 괘는 완전한 괘가 아니라 미숙한 괘입니다. 첫번째 양의 자리에 음효가 있고 두번째 음효의 자리에 양효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체적으로 볼 때 아직 미숙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미숙하지만 이 정도가 되어야만 시작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아직 만물을 자유 자재하게 움직일 수 있는 실력이 갖추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실력은 흙속에 숨겨져 있습니다. 이 정도가 되어
야만 일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정도가 되면 하늘은 도와줍니다. 그래서 군대안에서 천자의 깊은 신임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늘의 깊은 신임을 얻게되는가? 먼저 자신이 자기한테 질 수 없는 확고한 기강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자기 심정때문에 이랬다 저랬다 하는 사람은 하늘이 도와줄 수 없습니다. 아니꼬움, 분함, 슬픔, 즐거움 등 심정에 장애받고 있지 않다면 하늘은 항상 충만과 영광과 박수갈채를 잊지않고 보내주고 있습니다.
세번째 음효. 적지(敵地)에 출진하면 크게 패하여 시체를
마차에 가득 싣고 돌아오리라. 흉하다.
六三, 師或與戶. 凶. 象曰, 師或與戶, 大无功也.
"적지(敵地)에 출진하면 크게 패하여 시체를 마차에 가득 싣고 돌아오리라." 나 자신이 쓰러지지 않을 기강을 자신만만하게 가지고 있다고 했을 때, 그때 사람은 조심을 해야됩니다. 물속에 들어가기 전에는 모르지만 물속에 들어가면 수압을 느끼게 됩니다. 수압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이 물속에 들어가면 물에 빠져 죽기 십상입니다. 수압을 느끼는 사람은 물에서 물을 피할 수도 있고, 물을 갖고 놀 수도 있고, 물에서 자기 자신을 보존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준비를 철저히 하였더라도 살피지 않으면 안됩니다. 살피지 않고 나아가면 아무리 하늘이 도와준다고 하더라도 언젠가 위의 네번째가 음효인 이 상황에 반드시 부딪치게 됩니다. 음과 음이 맞부닥치면 서로 당겨서 설 자리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세번째에서는 "뛰어나가지 말아라" "발을 조심하고 천천히 걸어가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두번째에서 공을 세우고 천자의 깊은 신임을 얻었다 하더라도 출전(出戰)하여 반드시 이기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전쟁은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준비가 다 갖추어져 있더라도 적에게 허점이 없으면 적을 쳐서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병법에, "패배의 요인은 나에게 있으나, 승리의 요인은 적에게 있다."고 했습니다.
나의 준비가 갖추어졌다고 해서 적의 능력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강함만 믿고 전쟁을 일으키면 전쟁에 이길 확률은 반밖에 되지 못합니다. 적이 나보다 준비가 없고 약하면 이길 것이고 적이 나보다 준비가 많고 강하면 질 것이 뻔합니다. 그것은 진정한 승리가 아닙니다. 진정한 승리는 백 퍼센트 완전한 것이어야 합니다. 세번째 음효는 양의 자리에 음효가 있으면서 대응하는 여섯번째도 음효입니다. 또 바로 위 네번째 효도 음효로서 음성기운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혀 양성기운을 받지 못하는 음입니다. 그런데 세번째가 싸우겠다고 나간다면 어떻게 되느냐? 결국 전쟁에 크게 패하여 시체를 마차에 가득 싣고 돌아오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관망을 해야 합니다. 진격을 할 때는 숨어있는 양성에너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세번째는 안타깝게도 양성에너지가 없기 때문에 자기 자신만 믿고 나아가 싸우면 지게 되는 것입니다.
네번째 음효. 앞으로 진격하기 어려운 것을 알고 물러난다.
이 병법의 상도(常道)를 지킨다면 허물은 면하리라.
六四, 師在次. 无咎. 象曰, 在次, 无咎, 未失常也.
"앞으로 진격하기 어려운 것을 알고 물러난다." 네번째 음효는 위아래 모두가 음효로 둘러싸여 있고, 대응관계인 첫번째 효도 음효로서 나아가기가 곤란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다행이 음의 자리에 음효가 있어 나아가기 곤란한 것을 알고 물러서기 때문에 허물을 면할 수 있습니다. 사실 네번째 음효는 상하 관계 및 대응관계가 전부 음 대 음으로서 좋지 못합니다. 그러나 음의 자리에서 제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에 흉칙한 짓은 안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럴 때는 오히려 한 걸음 물러서라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진하기 어려울 때 물러서는 것. 그것은 병법의 상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진격을 고집하는 것. 그것은 어리석음입니다. 어려울 때 물러서면, 비록 그 순간에 이기지는 못하였으나 최소한 앞으로 이길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줄 알면서도 무리하게 싸워 패배한다면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적을 알기 위해서는 진격에 앞서 먼저 적을 살펴야 합니다. 충분한 정보를 획득해야 합니다. 만일 적의 보안태세가 굳건하여 알 수 없다고 하면 나아가선 안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갔다면 불리할 때 즉시 후퇴할 수 있는 융통성을 가져야 합니다. 승리란 반드시 적을 물리적으로 파괴하여야만 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적의 예봉을 피해 후퇴하지만 적으로 하여금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인식시켜 스스로 전투를 포기하게 한다면 그것도 이기는 것입니다. 오히려 적을 물리적으로 파괴해서 얻은 승리는 그만큼 나의 피해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그리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
다섯번째 음효. 사냥에서 포획물을 얻었다. 이제야
말로 대의명분을 분명히 내걸고 왕명을 받들어 불의
한 무리를 토벌함이 좋다. 불의의 전쟁이 아니기 때
문에 허물이 있을 리 없다. 다만 장수에는 뛰어난 인
물을 임명해야 한다. 실력이 없는 자를 장수에 임명
하면 시체를 마차에 싣고 패주하는 참패를 당한다.
비록 정의의 싸움이라도 결과는 흉하리라.
六五, 田有禽. 利執言, 无咎. 長子師師, 弟子輿戶,
貞凶. 象曰, 長子師師, 以中行也. 弟子輿戶, 使不當也.
다섯번째 효는 두번째효와 음효 대 양효로 정응관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이길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양효의 자리에 음효가 있기 때문에 이기는 방식이 틀립니다. 양성에너지는 악의 세계를 쳐부수어서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음성에너지는 나아가서 취하는 것이 아니라 적으로 하여금 스스로 망하게 하는 방식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토끼를 잡는데 양성에너지는 돌을 던져 토끼을 맞추어 잡는 것이고, 음성에너지는 덫을 놓어 토끼가 걸려들게 하여 잡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사냥에서 포획물을 얻었다."라고 비유해 놓았습니다. "불의의 전쟁이 아니기 때문에 허물이 있을 리 없다." 정의의 전쟁은 평화스러운 나라에 침략을 하여 자기 욕심을 채우는 침략전쟁이 아닙니다. 자기 욕심에 사로잡혀 무분별한 침략을 일삼는 무리들을 토벌하여 평화를 지키는 방어전쟁입니다. 그래서 정의의 전쟁은 먼저 적을 공격하지 않고 적을 유인하여 격멸하는 방식을 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승리는 사전 매우 치밀한 계획과 대담성, 철저한 준비가 갖추어져야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요, 훌륭한 지략과 덕성을 갖춘 대장군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두번째 효에서 말한 그런 사람
만이 적격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전쟁에서 이기려면 훌륭한 적임자를 장군으로 임명하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실력이 없는 자를 장수에 임명하면 시체를 마차에 싣고 패주하는 참패를 당한다." 다섯번째가 음이기 때문에 전쟁에 나아가려면 양의 기운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대응관계에 있는 두번째 효의 기운과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토끼를 잡으로면 덫을 쳐놓고 기다리되 토끼 몰이하는 사람을 잘 써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정의로운 큰 일을 하겠다고 뜻을 세웠으면 그 밑에 있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을 써야 합니다. 어떠한 위험이 있더라도 그것을 무릅쓰고 할 수 있는 사람, 어려움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을 장군으로 삼아야 합니다.
여섯번째 음효. 전쟁이 끝난 후 천자는 공신을 제후로 봉하고
경(卿), 대부(大夫)에 임명한다. 그러나 아무리 전쟁에 공적이
있다해도 소인(小人)을 이런 지위에 앉히면 안된다. 장차 반란
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上六, 大君有命. 開國承家. 小人勿用. 象曰,
大君有命, 以正功也. 小人勿用, 必亂 邦也.
"아무리 전쟁에 공적이 있다해도 소인(小人)을 이런 지위에 앉히면 안된다." 보통 우리 주위에는 자기가 똑똑하다고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절대로 출세할 수 없습니다. 성공할 수 없습니다. 자기 혼자 아무리 똑똑해 봐야 세상의 입장에서 볼 때는 지극히 미미한 존재에 불과할 뿐입니다. 진정으로 똑똑한 사람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이루어지게끔 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똑똑한데 왜 세상이 알아주지 않느냐? 그런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게 필요한 것은 똑똑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반드시 해낸다라고 하는 뜻을 향한 희생의 자세입니다. 그것이 그 사람을 구할 것이며, 성공을 하게 할 것입니다. 회사에서도 스스로 똑똑하다고 믿는 사원은 상사에게 불만하고 대들기 때문에 회사를 어지럽히게 됩니다. 결국 똑똑한 사람들은 어디가서 발 붙일 곳이 없게 됩니다. 항상 자신의 똑똑한 것을 스스로 무서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노자는 "우주를 얻으려면 겸허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큰 일을 이루어 낸 다음에는 포상을 하는데 그 포상은 겸허한 사람에게 하게 됩니다. 또 사람을 선발해 쓸 때도 똑똑한 사람을 쓰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겸허한 사람을 써야 합니다. 왜냐면 똑똑해 보일려고 하는 사람은 진정으로 똑똑한 것이 아니고 언젠가는 반란을 일으킬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끝나면 정의가 천하에 두루 퍼질 수 있도록 덕 있는 자를 중용(重用)하고, 제도를 정비해야 합니다. 단순히 전쟁 그 자체로 모든 것이 종료된다면 전쟁의 의미를 찾을 수 없습니다. 처음에 전쟁을 시작할 때 세운 대의명분, 그것이 이 세상에 펼쳐지도록 하는 것이 바로 전쟁을 한 목적이었습니다. 그 뜻은 절대 망각되어져서는 아니 되며 항상 가슴속에 살아있어야 합니다. 전쟁간에 한 때 어려운 역경이 닥치고, 전쟁의 희생자가 많이 났다고 해서, 본래의 명분을 망각한 채 무분별하게 적에 대한 살상을 자행하는 것, 이것은 하늘의 뜻을 대신하는 정의의 전쟁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이 하는 전쟁입니다. 그 전쟁을 통해서는 결코 창조가 이루어질 수 없으며, 오로지 살륙과 파괴만 있을 뿐입니다. 군대의 기율을 확립하고, 불패의 태세를 갖추며, 치밀한 계획과 작전으로 적을 스스로 굴복하게 하는 것이 대장군이 할 일이라면, 올바른 전쟁의 명분을 세우고, 전쟁간 천하의 인심을 수습하고, 전쟁후 정의가 이 땅에 실현되도록 하는 것, 그것은 제왕이 할 일입니다. 따라서 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군주와 유능한 장군, 그리고 정예 군사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준비되지 않으면 결코 나가 싸울 수 없다는 것이 바로 [지수사]가 주는 교훈입니다.
유성..
● 군대의 기율(紀律)을 확립하고, 불패의 태세를
● 갖추며, 치밀한 계획과 작전으로 적을 스스로 굴
● 복하게 하는 것이 대장군이 할 일이라면, 올바른
전쟁의 명분을 세우고, 전쟁간 천하의 인심을 수
● 습하고, 전쟁후 정의가 이 땅에 실현되도록 하는
○ 것, 그것은 제왕이 할 일입니다. 따라서 전쟁을
● 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군주와 유능한 장군, 그리
고 정예 군사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준비되지 않으면 결코 나가 싸울 수 없습니다.
지수사(地水師)
사(師)는 군대를 의미한다. 군대를 움직이려면 훌륭한 통솔자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훌륭한 통솔자가 있어 확고하고 동요하지 않는 지휘로써 능히 다수를 이끌어 천하의 정의를 행할 수 있으면 그는 곧 천하의 왕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강한 신념을 갖고 있으면 서로 포용하여 일제히 협력한다. 위험한 전쟁을 수행하라. 정의의 길에 순응하는 것이다. 비록 한때 천하를 전쟁의 고통속에 몰아넣는 일이 있더라도 인민들은 그것을 이해하고 심복한다. 그러니 전쟁에 승리할 것이다. 무슨 허물이 있으랴.
師, 貞. 丈人吉无咎. 象曰, 師衆也. 貞正也. 能以衆正,
可以王矣. 剛中而應, 行險而順. 以此毒天下, 而民從
之. 吉又何咎矣.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은 퍽이나 긴 것같지만 사실은 아주 짧은 것입니다. 어제 기어다니던 애기가 어느날 보면 벌써 걸어다니고 있습니다. 그 아이가 곧 대학교 다닐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어린 아이가 그렇게 자라는 것은 자기 자신이 자라야겠다고 결심해서 자라는 것은 아닙니다. 순전히 자연적으로 자란 것입니다. 우리의 육체라는 것은 눈깜밖할 사이에 변합니다. 어느날 갑자기 흰머리가 나고 죽을 날이 멀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자연은 빠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영혼의 성장은 매우 느립니다. 젊었을때 그 사람의 영혼이 늙었을 때와 별 차이가 없습니다. 영혼은 자연적으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흔히 마음의 벽에 막혀 전전긍긍하는 사람은 영혼이 성장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한 때 기분으로 주먹을 불끈 쥐고 "열심히 해 나가야지." 하고 마음 먹은 사람은 얼마 안 있어 "다 그런 거지 뭐." 하며 자포자기할 사람입니다. 그런 마음은 힘없는 마음입니다. 마음의 힘은 힘을 쓰지 못합니다. 진짜 일하는 것은 마음의 즐거움이 사라진 뒤에 그 때 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즐거움, 괴로움, 이러한 것들은 자기 마음에 자기가 취해 있다는 뜻입니다. 세상에 기쁨과 괴로움이 함께 공존하는 이유는 그것이 곧 이 세상의 존재 원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역경과 곤란을 통해 나아가는 기쁨이 있다는 것은 바로 영혼의 성장을 의미하는 것이며 바로 이것이 우주의 생성 발전하는 창조적 자유의식의 생명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개개인은 자기의 생명력을 갖고 스스로 자랄 줄 알아야 됩니다. 영혼이 자라기 위해서는 자신을 숙일 수 있어야 합니다. 공부하기 싫고 귀찮아도 귀찮은 자기를 숙였을 때 비로서 조금씩 실력이라는 것이 쌓여지는 것입니다. 실력이 어느날 갑자기 올라가는 것은 다음날 덜그덕 내려갈 실력입니다.
서울대학교 출신들을 보면 머리가 별로 좋지 않습니다. 머리 좋은 천재는 기억하는 속도보다 잊어버리는 속도가 더 빠릅니다. 잊어버리는 것이 빨라야지 센스가 빠를 수 있습니다. 잊어 먹지 않고 머리 속에서 맴돌고 있으면 새로운 것이 눈에 잘 들어오지 못하는 법입니다. 그런데 서울대학교 학생들은 교과서를 달달 외우고, 그것을 잊어 먹지 않아서 서울대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서울대학교 출신들은 위대합니다. 그렇게 교과서와 씨름하며 한결같이 외워 나갈 수 있었던 것. 무언가 뜻한게 있으면 그것을 위해서 자기 어려운 여건을 극복하고, 하기 싫은 나에 빠지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었던 것. 그것이 위대한 것입니다. 이 세상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렵다고 해서 자기 마음의 벽을 넘지 못하고 머물러 있다면 어려운 것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어렵더라도 해결을 위해 하기 싫은 자기 마음을 넘어 꾸준히 해야만 어려운 것이 극복됩니다. 하늘은 그렇게 꾸준히 하는 사람을 돕는 법입니다. 노벨상을 창설한 노벨은 다이너마이트를 만들기 위해 무수한 실험을 했습니다. 실험을 위해 돈도 다 날리고 심지어 동생마저도 잃었습니다. 그러나 노벨은 "사람이 두 손으로 삽질을 하는데, 천명 만명이 삽질하는 것을 단 한 번에 해낼 수 없을까?" 하는 뜻으로, 그 어려운 역경이 그만두라고 노벨의 마음을 유혹했지만 거기에 빠지지 않고, 꾸준히 해 나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실험실에서 우연한 폭발이 있었고, 비록 노벨은 그 폭발로 다쳤지만, 이로써 다이너마이트는 발명되었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습니다. 하늘은 냉정하여 절대로 선뜻 주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뜻을 가지고 꾸준히 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길을 열어 줍니다. 노벨이 성공한 것도 결코 실험대 위에서 발견된 것이 아닙니다. 우연한 폭발로 노벨도 기절해서 나가 떨어졌을 때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성공할 수 있는 성공의 요소가 반드시 눈 앞에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옆으로부터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이는 하늘이 알려 주는 것입니다.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어려운 여건안에서 벌어지는 자기를 숙일줄 알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게 스스로 자신을 숙이고 인내하는 인내력, 이것을 갖추지 않으면 싸워서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수사는 자기 잘났다고 당당하게 나가기 보다는 항상 위험이 올 것을 미리 예측하면서 받아들일 자세를 가지고 나아갔을 때 이길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소인배들은 위험한 일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위험한 일들을 피하면서 좋은 일만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본인은 잘살기를 원하지만 항상 결과는 서로 시기하고 싸움질 하면서 피곤하게 살게 됩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 그 어려움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삼킬 수 있다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렇게 이 땅에 일어 나는 모든 것들을 다 받아들이고, 하늘의 세계도 다 받아들이면서, 꾸준히 해 나가는 의지를 확립하였을 때 하늘은 도와주며, 이 정도가 되어야지 비로서 나가서 싸울 수 있습니다.
[지수사]는 땅을 나타내는 외괘가 모든 것을 받아들일 태세가 되어 있고, 물을 나타내는 내괘가 위아래로 받아들임으로써 대지가 물을 가득 품고 있는 형상입니다. 즉 어떠한 어려움이라도 받아들이고 극복할 수 있는 힘이 갖추어져 있다는 뜻입니다. 이제 이 힘을 어떻게 잘 쓰느냐가 남아 있습니다. "사(師)는 군대를 의미한다." 여기서 '사(師)'는 고대 군대의 숫자를 나타내는 말로서, 지원부대 없이 단독으로 나가서 싸울만한 군대의 크기를 말합니다. 오늘날 개념으로 하면 사단급 정도의 부대 규모입니다. [지수사]는 이 정도의 세력이 있어야만 나가서 싸울만 하다고 말합니다. 조무래기 몇 명 정도만 가지고 나가서 싸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법입니다. [지수사]는 전쟁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그 전쟁은 남을 수탈하기 위한 전쟁이 아니고, 하늘의 뜻에 위배됨이 없이 만물을 위해서 하는 전쟁을 말합니다. 하늘의 뜻이 이 세상에 펼쳐지려면 전쟁이 불가피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연에는 창조와 파괴가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 전쟁이 반드시 총칼로 하는 전쟁이 아닐 지라도 어떤 형태로든 창조와 파괴를 위한 전쟁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최소한 [지수사]가 나타내는 그 정도는 되어야만 하늘의 도움을 통해 이길 수 있습니다.
"군대를 움직이려면 훌륭한 통솔자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훌륭한 통솔자가 있어 확고하고 동요하지 않는 지휘로써 능히 다수를 이끌어 천하의 정의를 행할 수 있으면 그는 곧 천하의 왕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마음의 벽에 막혀 전전 긍긍하는 사람. 그러한 사람이 군의 통솔자가 되어서는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확고하고 동요하지 않는 분명한 뜻을 세우고 명확한 지시로 능히 다수를 이끌어 갈 수 있는 통솔자가 사단급 규모의 군대를 거느렸을 때 비로서 전쟁을 할 수 있으며, 이긴다는 보장이 있는 것입니다.
"강한 신념을 갖고 있으면 서로 포용하여 일제히 협력한다." 마음 속에 스스로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이 저절로 밖으로 드러나게 되며 결국 외부에서 일제히 호응하는 현상이 벌어지게 됩니다. 안에 분명한 신념이 있으면 반드시 승리할 것이나 그렇지 못하면 패배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단 열 두명의 제자를 이끌고 다녔을 때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얕잡아 봐서 예수와 그의 열 두 제자들을 모두 죽여버렸습니다. 예수와 그 제자들의 몸은 죽어서 없어졌지만 그 안에 있는 것은 아직까지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안에 어느 누구도 꺾을 수 없는 강한 신념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현실과 싸우는 것이 보통 우리의 전쟁입니다. 그 전쟁에 이기느냐 지느냐는 외부의 호응에 있는 것이나 그 호응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고 먼저 내부로부터 나 자신과의 전쟁에 달려 있습니다. 자기 전쟁에서 지는 사람은 한 때 외부와 싸워 이겼다 하더라도 그것은 죽어 없어져 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영혼이 나의 마음을 뚫고 나왔다면 그것은 아무도 막을 수 없는 금강의 힘이 될 것입니다.
"위험한 전쟁을 수행하라. 정의의 길에 순응하는 것이다. 비록 한때 천하를 전쟁의 고통속에 몰아넣는 일이 있더라도 인민들은 그것을 이해하고 심복한다." 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전쟁의 명분(뜻)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전쟁은 군대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군대가 전쟁을 하려면 국민의 지지가 있어야 합니다. 한 번 군대가 출동하기 위해서는 수 만의 무기와 수 억의 군수 물자가 조달되어야 합니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곧 전쟁을 치룸으로써 발생하는 모든 고통을 국민이 흔쾌히 감수하는 국민의 지지도입니다. 전쟁의 명분이 천하의 정의에 부합되면 비록 한 때 국민을 전쟁의 고통속에 몰아 넣는 일이 있어도 국민은 그것을 이해하고 심복하는 법입니다. 상하가 단결하고 국민과 군대가 힘을 합쳐 협력하면 아무리 강대한 적이라도 능히 대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쟁의 명분이 바르지 못하여 국민이 분열하면 아무리 강대한 나라라도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대상. 대지가 풍부하게 물을 저장하고 있다. 이것이
[사]의 괘상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대지처럼
백성을 포용하고 양육한다.
象曰, 地中有水師. 君子以容民畜衆.
"대지가 풍부하게 물을 저장하고 있다." 대지를 양육할 수 있는 힘, 그것이 곧 대지에 숨겨져 있는 안의 물입니다. 이것이 있는가 없는가? 남을 구제하려면 먼저 자기 구제가 되어져야만 가능합니다. 안에 물이 들어가 있지 않은 사람이 남의 목을 어떻게 적실 수 있겠습니까? 땅을 파면 물이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만 목이 마른 사람들을 동원해서 땅을 팔 수 있는 것이지, 땅에 물이 있는지 없는지 분명하지 않은 사람이 사람들을 동원해서 땅을 파면, 만약 몇 번 파다가 물이 나오지 않으면 먼저 그 사람을 죽여버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안에 먼저 분명한 신념을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스스로 싸워 이긴 자가 만물과 싸워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지수사는 말하고 있습니다.
첫번째 음효. 군을 움직이는 데는 먼저 기율(紀律)을
엄정하게 하라. 기율이 문란해지면 일시적인 승리를
얻었다 해도 결국은 흉한 것이다.
初六, 師出以律. 否臧凶. 象曰, 師出以律, 失律凶也.
"군대를 움직이려면 먼저 기율(紀律)을 엄정하게 하라." 기율이란 군기(軍紀)과 규율(規律)입니다. 군기는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에 부딛치더라도 자신의 마음을 숙이고 의연히 대처해 나가는 군의 기강입니다. 규율은 이러한 기강을 확립하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질서와 법도입니다. 따라서 기율은 전쟁에서 적과 부딛쳐 깨어지지 않는 강인한 힘이 되는 근간입니다. 그 기율을 군 내부에 확립하는 것. 그것이 불패(不敗)의 태세를 갖추기 위해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기율이 없으면 일시적으로 승리하더라도 결국 기강이 문란하여져서 곧 패배하게 됩니다. 눈앞의 승리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승리를 위하여 그 바탕부터 확고히 다지지 않으면 안됩니다. 엄정한 기율이 곧 나중에 가면 부닥쳐서 깨어지지 않는 힘이 될 것입니다. 그 기율은 스스로 안에서 세워야 합니다. 사사로움에 치우치지않고, 마음의 장애를 벗어나 모든 마음을 수용하고 모든 마음 위에 우뚝 설 수 있는 기운, 그것이 바로 긍지이며,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하는 위대한 자연력 바로 그 자체인 것입니
다.
뜻이 이 세상에 펼쳐지려면 전쟁을 반드시 치루어야 합니다. 그것은 자연의 창조와 파괴가 동시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또한 그 전쟁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기강이라는 순수한 힘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제 그 힘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것이 없으면 조그만 승리는 있게 되더라도 그 승리는 곧 깨어져 버릴 것입니다.
두번째 양효. 군대 안에 있어서 천자(天子)의 깊은
신임을 얻어 길하다. 만국(萬國)을 굴복시켜 여러차
례 상을 받는다. 무슨 허물이 있으랴.
九二, 在師中. 吉无咎. 王三錫命. 象曰, 在師中,
吉. 承天寵也. 王三錫命, 懷萬邦也.
"군대 안에 있어서 천자(天子)의 깊은 신임을 얻어 길하다." 두번째 양효입니다. 양효가 내괘의 세계에서 우뚝 서있습니다. 군의 기율을 확립하니 상하의 신임을 얻어 높이 올랐습니다. 그리고 외괘의 세계에 대한 깊은 신임을 얻었습니다. 천자란 하늘을 뜻합니다. 모두 음효로 이루어진 외괘가 하늘의 뜻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두번째 효가 다섯번째 음효와 정응(正應)관계를 이루어 깊이 화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늘의 도움을 받기에 충분하다는 말입니다. 원래 [사] 괘는 완전한 괘가 아니라 미숙한 괘입니다. 첫번째 양의 자리에 음효가 있고 두번째 음효의 자리에 양효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체적으로 볼 때 아직 미숙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미숙하지만 이 정도가 되어야만 시작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아직 만물을 자유 자재하게 움직일 수 있는 실력이 갖추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실력은 흙속에 숨겨져 있습니다. 이 정도가 되어
야만 일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정도가 되면 하늘은 도와줍니다. 그래서 군대안에서 천자의 깊은 신임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늘의 깊은 신임을 얻게되는가? 먼저 자신이 자기한테 질 수 없는 확고한 기강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자기 심정때문에 이랬다 저랬다 하는 사람은 하늘이 도와줄 수 없습니다. 아니꼬움, 분함, 슬픔, 즐거움 등 심정에 장애받고 있지 않다면 하늘은 항상 충만과 영광과 박수갈채를 잊지않고 보내주고 있습니다.
세번째 음효. 적지(敵地)에 출진하면 크게 패하여 시체를
마차에 가득 싣고 돌아오리라. 흉하다.
六三, 師或與戶. 凶. 象曰, 師或與戶, 大无功也.
"적지(敵地)에 출진하면 크게 패하여 시체를 마차에 가득 싣고 돌아오리라." 나 자신이 쓰러지지 않을 기강을 자신만만하게 가지고 있다고 했을 때, 그때 사람은 조심을 해야됩니다. 물속에 들어가기 전에는 모르지만 물속에 들어가면 수압을 느끼게 됩니다. 수압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이 물속에 들어가면 물에 빠져 죽기 십상입니다. 수압을 느끼는 사람은 물에서 물을 피할 수도 있고, 물을 갖고 놀 수도 있고, 물에서 자기 자신을 보존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준비를 철저히 하였더라도 살피지 않으면 안됩니다. 살피지 않고 나아가면 아무리 하늘이 도와준다고 하더라도 언젠가 위의 네번째가 음효인 이 상황에 반드시 부딪치게 됩니다. 음과 음이 맞부닥치면 서로 당겨서 설 자리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세번째에서는 "뛰어나가지 말아라" "발을 조심하고 천천히 걸어가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두번째에서 공을 세우고 천자의 깊은 신임을 얻었다 하더라도 출전(出戰)하여 반드시 이기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전쟁은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준비가 다 갖추어져 있더라도 적에게 허점이 없으면 적을 쳐서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병법에, "패배의 요인은 나에게 있으나, 승리의 요인은 적에게 있다."고 했습니다.
나의 준비가 갖추어졌다고 해서 적의 능력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강함만 믿고 전쟁을 일으키면 전쟁에 이길 확률은 반밖에 되지 못합니다. 적이 나보다 준비가 없고 약하면 이길 것이고 적이 나보다 준비가 많고 강하면 질 것이 뻔합니다. 그것은 진정한 승리가 아닙니다. 진정한 승리는 백 퍼센트 완전한 것이어야 합니다. 세번째 음효는 양의 자리에 음효가 있으면서 대응하는 여섯번째도 음효입니다. 또 바로 위 네번째 효도 음효로서 음성기운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혀 양성기운을 받지 못하는 음입니다. 그런데 세번째가 싸우겠다고 나간다면 어떻게 되느냐? 결국 전쟁에 크게 패하여 시체를 마차에 가득 싣고 돌아오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관망을 해야 합니다. 진격을 할 때는 숨어있는 양성에너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세번째는 안타깝게도 양성에너지가 없기 때문에 자기 자신만 믿고 나아가 싸우면 지게 되는 것입니다.
네번째 음효. 앞으로 진격하기 어려운 것을 알고 물러난다.
이 병법의 상도(常道)를 지킨다면 허물은 면하리라.
六四, 師在次. 无咎. 象曰, 在次, 无咎, 未失常也.
"앞으로 진격하기 어려운 것을 알고 물러난다." 네번째 음효는 위아래 모두가 음효로 둘러싸여 있고, 대응관계인 첫번째 효도 음효로서 나아가기가 곤란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다행이 음의 자리에 음효가 있어 나아가기 곤란한 것을 알고 물러서기 때문에 허물을 면할 수 있습니다. 사실 네번째 음효는 상하 관계 및 대응관계가 전부 음 대 음으로서 좋지 못합니다. 그러나 음의 자리에서 제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에 흉칙한 짓은 안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럴 때는 오히려 한 걸음 물러서라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진하기 어려울 때 물러서는 것. 그것은 병법의 상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진격을 고집하는 것. 그것은 어리석음입니다. 어려울 때 물러서면, 비록 그 순간에 이기지는 못하였으나 최소한 앞으로 이길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줄 알면서도 무리하게 싸워 패배한다면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적을 알기 위해서는 진격에 앞서 먼저 적을 살펴야 합니다. 충분한 정보를 획득해야 합니다. 만일 적의 보안태세가 굳건하여 알 수 없다고 하면 나아가선 안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갔다면 불리할 때 즉시 후퇴할 수 있는 융통성을 가져야 합니다. 승리란 반드시 적을 물리적으로 파괴하여야만 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적의 예봉을 피해 후퇴하지만 적으로 하여금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인식시켜 스스로 전투를 포기하게 한다면 그것도 이기는 것입니다. 오히려 적을 물리적으로 파괴해서 얻은 승리는 그만큼 나의 피해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그리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
다섯번째 음효. 사냥에서 포획물을 얻었다. 이제야
말로 대의명분을 분명히 내걸고 왕명을 받들어 불의
한 무리를 토벌함이 좋다. 불의의 전쟁이 아니기 때
문에 허물이 있을 리 없다. 다만 장수에는 뛰어난 인
물을 임명해야 한다. 실력이 없는 자를 장수에 임명
하면 시체를 마차에 싣고 패주하는 참패를 당한다.
비록 정의의 싸움이라도 결과는 흉하리라.
六五, 田有禽. 利執言, 无咎. 長子師師, 弟子輿戶,
貞凶. 象曰, 長子師師, 以中行也. 弟子輿戶, 使不當也.
다섯번째 효는 두번째효와 음효 대 양효로 정응관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이길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양효의 자리에 음효가 있기 때문에 이기는 방식이 틀립니다. 양성에너지는 악의 세계를 쳐부수어서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음성에너지는 나아가서 취하는 것이 아니라 적으로 하여금 스스로 망하게 하는 방식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토끼를 잡는데 양성에너지는 돌을 던져 토끼을 맞추어 잡는 것이고, 음성에너지는 덫을 놓어 토끼가 걸려들게 하여 잡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사냥에서 포획물을 얻었다."라고 비유해 놓았습니다. "불의의 전쟁이 아니기 때문에 허물이 있을 리 없다." 정의의 전쟁은 평화스러운 나라에 침략을 하여 자기 욕심을 채우는 침략전쟁이 아닙니다. 자기 욕심에 사로잡혀 무분별한 침략을 일삼는 무리들을 토벌하여 평화를 지키는 방어전쟁입니다. 그래서 정의의 전쟁은 먼저 적을 공격하지 않고 적을 유인하여 격멸하는 방식을 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승리는 사전 매우 치밀한 계획과 대담성, 철저한 준비가 갖추어져야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요, 훌륭한 지략과 덕성을 갖춘 대장군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두번째 효에서 말한 그런 사람
만이 적격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전쟁에서 이기려면 훌륭한 적임자를 장군으로 임명하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실력이 없는 자를 장수에 임명하면 시체를 마차에 싣고 패주하는 참패를 당한다." 다섯번째가 음이기 때문에 전쟁에 나아가려면 양의 기운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대응관계에 있는 두번째 효의 기운과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토끼를 잡으로면 덫을 쳐놓고 기다리되 토끼 몰이하는 사람을 잘 써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정의로운 큰 일을 하겠다고 뜻을 세웠으면 그 밑에 있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을 써야 합니다. 어떠한 위험이 있더라도 그것을 무릅쓰고 할 수 있는 사람, 어려움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을 장군으로 삼아야 합니다.
여섯번째 음효. 전쟁이 끝난 후 천자는 공신을 제후로 봉하고
경(卿), 대부(大夫)에 임명한다. 그러나 아무리 전쟁에 공적이
있다해도 소인(小人)을 이런 지위에 앉히면 안된다. 장차 반란
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上六, 大君有命. 開國承家. 小人勿用. 象曰,
大君有命, 以正功也. 小人勿用, 必亂 邦也.
"아무리 전쟁에 공적이 있다해도 소인(小人)을 이런 지위에 앉히면 안된다." 보통 우리 주위에는 자기가 똑똑하다고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절대로 출세할 수 없습니다. 성공할 수 없습니다. 자기 혼자 아무리 똑똑해 봐야 세상의 입장에서 볼 때는 지극히 미미한 존재에 불과할 뿐입니다. 진정으로 똑똑한 사람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이루어지게끔 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똑똑한데 왜 세상이 알아주지 않느냐? 그런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게 필요한 것은 똑똑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반드시 해낸다라고 하는 뜻을 향한 희생의 자세입니다. 그것이 그 사람을 구할 것이며, 성공을 하게 할 것입니다. 회사에서도 스스로 똑똑하다고 믿는 사원은 상사에게 불만하고 대들기 때문에 회사를 어지럽히게 됩니다. 결국 똑똑한 사람들은 어디가서 발 붙일 곳이 없게 됩니다. 항상 자신의 똑똑한 것을 스스로 무서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노자는 "우주를 얻으려면 겸허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큰 일을 이루어 낸 다음에는 포상을 하는데 그 포상은 겸허한 사람에게 하게 됩니다. 또 사람을 선발해 쓸 때도 똑똑한 사람을 쓰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겸허한 사람을 써야 합니다. 왜냐면 똑똑해 보일려고 하는 사람은 진정으로 똑똑한 것이 아니고 언젠가는 반란을 일으킬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끝나면 정의가 천하에 두루 퍼질 수 있도록 덕 있는 자를 중용(重用)하고, 제도를 정비해야 합니다. 단순히 전쟁 그 자체로 모든 것이 종료된다면 전쟁의 의미를 찾을 수 없습니다. 처음에 전쟁을 시작할 때 세운 대의명분, 그것이 이 세상에 펼쳐지도록 하는 것이 바로 전쟁을 한 목적이었습니다. 그 뜻은 절대 망각되어져서는 아니 되며 항상 가슴속에 살아있어야 합니다. 전쟁간에 한 때 어려운 역경이 닥치고, 전쟁의 희생자가 많이 났다고 해서, 본래의 명분을 망각한 채 무분별하게 적에 대한 살상을 자행하는 것, 이것은 하늘의 뜻을 대신하는 정의의 전쟁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이 하는 전쟁입니다. 그 전쟁을 통해서는 결코 창조가 이루어질 수 없으며, 오로지 살륙과 파괴만 있을 뿐입니다. 군대의 기율을 확립하고, 불패의 태세를 갖추며, 치밀한 계획과 작전으로 적을 스스로 굴복하게 하는 것이 대장군이 할 일이라면, 올바른 전쟁의 명분을 세우고, 전쟁간 천하의 인심을 수습하고, 전쟁후 정의가 이 땅에 실현되도록 하는 것, 그것은 제왕이 할 일입니다. 따라서 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군주와 유능한 장군, 그리고 정예 군사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준비되지 않으면 결코 나가 싸울 수 없다는 것이 바로 [지수사]가 주는 교훈입니다.
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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