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3
페이지 정보
본문
이 경우 두 가지 서로 다른 노동방식은 동일한 개인의 노동의 변종에 지나지 않으며, 서로 다른 개인들의 고정된 기능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재봉사가 오늘은 저고리를 만들고 내일은 바지를 만들기 위해 자기 자신의 개인노동을 변경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다. 더욱이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노동에 대한 수요의 방향이 변함에 따라 사회적 노동의 일정한 부분이 번갈아 가면서 재봉의 형태로 또는 직포의 형태로 공급되고 있다는 것을 곧 알 수 있다. 노동형태의 이와 같은 변화가 마찰 없이 일어난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어쨌든 일어날 수밖에 없다.
만약 생산활동의 규정적인 성격, 따라서 노동의 유용한 성격을 무시한다면, 생산활동은 다만 인간노동력(人間勞動力)의 지출에 지나지 않는다. 재봉과 직포는, 비록 질적으로 다른 생산활동이기는 하나, 모두 인간의 두뇌 근육 . 신경 . 손등의 생산적 소비이고, 이 의미에서 모두 인간노동이다. 재봉과 직포는 인간노동력 지출의 두 가지 서로 다른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인간의 노동력이 다양한 형태로 지출되기 위해서는 노동력 그 자체가 어느 정도의 발전단계에 도달해야
한다. 그러나 상품의 가치는 순전한 인간노동(Human labour pure and simple)[즉, 인간노동력 일반의 지출]을 표현하고 있다. 부르주아사회에서는 장군이나 은행가는 거대한 역할을 하지만 보통의 인간은 매우 보잘것 없는 역할밖에 하지 못하는데(주석 14: 헤겔(G. W. F Hegel), ?법철학“ 베를린, 1840년, p. 250, 제190단락을 보라)., 인간노동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인간노동은 특수한 방향으로 발달하지 않은 보통의 인간이 자기의 육체 속에 평균적으로 가지고 있는 단순한 노동력을 지출하는 것이다. 물론 단순한 평균적 노동(simple average labour) 자체도 나라가 다르고 문화의 발전단계가 다르면 그 성격도 달라지지만, 일정한 사회에서는 이미 알려져 있다. 더 복잡한 노동은 강화된 또는 몇 배로 된 단순노동(intensifed or rather multiplied simple labour)으로 간주될 뿐이며, 따라서 적은 양의 복잡노동(複雜勞動)은 더 많은 양의 단순노동(單純勞動)과 동등하게 간주된다. 이와 같은 환산이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경험으로 안다. 어떤 상품이 복잡한 노동의 생산물이라 하더라도 자기의 가치를 통해 단순노동의 생산물과 동등하게 되고 일정한 양의 단순노동을 대표할 뿐이다.( 주석 15: 여기서 문제로 되는 것은 [노동자가 예컨대 하루의 노동의 대가로 받는] 임금 또는 가치가 아니라 [그의 하루의 노동이 대상화되어 있는]상품의 가치다. 임금이라는 범주는 우리 발표[서술]의 이 단계에서는 아직 나타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종류의 노동이 그 측정단위로서의 단순노동으로 환원되는 비율은 [생산자들의 배후에서 진행되는] 하나의 사회적 과정에 의해 결정되며, 따라서 생산자들에게는 관습에 의해 전해 내려온 것처럼 보인다. 단순화를 위해 이하에서는 각종 노동력을 단순노동력으로 간주할 것인데, 이것은 오직 환산의 수고를 덜기 위해서 이다.
가치로서 저고리와 아마포를 고찰할 때 우리가 사용가치의 차이를 무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들의 가치로 표시되는 노동에서 우리는 재봉과 직포라는 노동의 유용형태상의 차이를 무시한다. 사용가치로서의 저고리와 아마포는 특정 목적의 생산활동이 천이나 실과 결합된 것이지만, 가치로서의 저고리와 아마포는 동질노동의 응고물(congealed quantities of homogeneous labour)일 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것들의 가치에 들어 있는 노동도 천이나 실에 대한 생산적 작용에 의해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인간노동력의 지출로서만 의미를 가진다. 재봉과 직포는 질적으로 상이하기 때문에 사용가치로서의 저고리와 아마포의 형성요소로 된다. 그러나 재봉과 직포의 특수한 질이 무시되고 양자가 인간노동이라는 동일한 질을 가지는 한, 제봉과 직포는 저고리와 아마포의 가치의 실체를 형성한다.
그러나 저고리와 아마포는 가치일반(價値一般)일 뿐 아니라 일정한 크기의 가치이며, 우리의 가정에 의하면, 1개의 저고리는 10미터 아마포의 두 배의 가치를 가진다. 가치량價値量)의 이와 같은 차이는 무엇에 기인하는가? 아마포는 저고리에 들어 있는 노동의 절반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리하여 저고리의 생산에는 아마포의 생산에 걸리는 시간보다 두 배나 길게 노동력이 지출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품에 투하되어 있는 노동은 사용가치와의 관련에서는 질적으로만 고려되고, 가치와의 관련에서는 [노동이 벌써 순전한 인간 노동으로 환원되어 있으므로] 양적으로만 고려된다. 전자의 경우에는 노동이 '어떻게' 수행되며, 또 '무엇을' 생산하는가가 문제로 되며, 후자의 경우에는 노동력이 '얼마나' 지출되는가, 즉 노동의 계속시간이 문제로 된다. 상품 가치의 크기는 그 상품에 들어 있는 노동량만을 표시하기 때문에, 상품들은 어떤 일정한 비율을 취하면 그 가치가 등일하게 된다.
만약 저고리의 생산에 필요한 일체의 유용노동의 생산성이 변하지 않는다면, 생산된 저고리의 가치량은 저고리의 양에 비례해 증가할 것이다. 만약 1개의 저고리가 X일(日)의 노동을 대표한다면, 2개의 저고리는 2X일의 노동을 대표하게 된다. 그런데 저고리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이 두 배로 증가하거나 절반으로 감소한다고 가정하면, 전자의 경우에는 1개의 저고리가 미전의 2개의 저고리의 가치를 가지게 될 것이며, 후자의 경우에는 2개의 저고리가 이전의 1개의 저고리의 가치밖에 가지지 못할 것이다. 비록 두 경우에 1개의 저고리가 변함없이 동일한 편의를 제공하고, 저고리에 들어 있는 유용노동이 변함없이 유용하더라도, 그렇다. 어쨌든 저고리의 생산에 지출된 노동량(勞動量)이 변한 것이다.
상품의 양적 증가는 그 자체로 물적 부(富)의 증가이다. 2개의 저고리는 1개의 저고리보다 더 많은 물적 부다. 왜냐하면 2개의 저고리는 두 사람을 입힐 수 있지만 1개의 저고리는 오직 한 사람을 입힐 수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구 물적 부의 양적 증대가 그 가치량의 감소를 동반할 수 있다. 이러한 모순되는 운동은 노동의 이중성에서 발생한다. '생산성'(productivity)은 물론 언제나 구체적 유용노동(concrete useful labour)의 생산성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어떤 특수한 생산활동이 주어진 시간에 주어진 목표를 얼마나 잘 달성하는가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용노동은 그 생산성의 상승 또는 저하에 비례해서 생산물을 많게나 적게 생산한다. 이와는 반대로, 생산성의 변동은 [가치로 표현되는] 노동 그것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생산성은 구체적 유용형태의 노동의 속성이므로, 노동의 구체적 유용형태가 무시되어 버린다면 생산성은 [가치로 표현되는] 노동과 아무런 관련도 있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동일한 시간에 수행되는 노동은 생산성의 변동과는 관계없이 항상 동일한 가치량을 창조한다. 그러나 생산성이 변동할 때 노동은 동일한 길이의 시간에 상이한 양의 상품을 생산한다. 즉, 생산성이 상승하면 더 많은 상품을, 생산성이 감소하면 더 적은 상품을 생산한다. 그러므로 노동의 성과[따라서 노동에
의해 생산되는 상품량]를 증대시키는 생산성의 상승이, 이 증대된 상품 총량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 총계를 단축시킨다면, 상품 총량의 가치량을 감소시키게 된다. 반대의 경우에는 반대로 된다.
한편으로, 모든 노동은 생리학적 의미에서 인간노동력의 지출이며, 이 동등한 또는 추상적인 인간노동이라는 속성에서 상품의 가치(價値)를 형성한다. 다른 한편으로, 모든 노동은 특수한 합목적적 형태로 인간노동력을 지출하는 것이며, 이러한 구체적 유용노동이라는 속성에서 사용가치(使用價値)를 생산한다.(주석 16: "노동은 가치의 유일하고 정확한 보편적인 척도이며, 모든 시기와 장소에서 상이한 상품들의 가치를 비교할 수 있는 유일한 표준"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애덤 스미스(Adam Smith)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동일한 노동량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노동자에게는 동일한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는 건강 . 체력 . 혈기의 보통 상태에서는, 그리고 숙련 . 기교의 보통 정도에서는, 동일한 노동량에 대해 동일한 분량의 안락 . 자유 . 행복을 희생해야만 한다 (“국부론”, 동아출판사, 상, 43쪽, 39쪽). 한편, 스미스는 여기에서(그러나 모든 곳에서 그런 것은 아니다) 상품의 생산에 지출된 노동량에 의한 가치 결정을 노동의 가치 [임금]에 의한 상품가치의 결정과 혼동하고 있으며, 따라서 동량의 노동은 항상 동일한 가치 [임금]를 가진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동이 상품가치로 표현되는 한, 노동은 노동력의 지출을 의미할 뿐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으나, 이 지출을 그는 다시 안락 . 자유 . 행복의 희생으로만 생각하며 인간의 정상적인 생명활동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 물론 그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근대적 임금노동자다. 주 9)에 인용한 익명의 필자인 스미스의 선행자가 훨씬 더 적절하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이 생활 필수품을 제조하는 데 1주일이 걸렀다....그리고 그것과 교환으로 어떤 다른 물건이 제공된다면, 그는 그 물건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동일한 노동과 시간을 들이게 했는가를 계산함으로써, 그 물건이 자기 물건의 적당한 등가(물)인가를 가장 잘 평가할 수 있다. 여기서 사실상 일어나는 일은, 어떤 사람이 일정한 시간에 어떤 물건을 생산하는 데 지출한 노동이 그와 동일한 시간에 다른 사람이 다른 물건을 생산하는 데 지출한 노동과 교환되는 것이다“(?금리 일반 및 특히 공채이자에 관한 고찰”, p. 39). {엥겔스: 영어에는 노동의 이 두 측면을 표현하는 두 개의 다른 단어가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사용가치를 창조하는, 질적으로 규정된 노동은 work라고 부르며, 가치를 창조하는, 오직 양적으로만 측정되는 노동은 labour라고 부른다.})
제 3 절 가치형태 또는 교환가치
상품은 철. 아마포. 밀 등과 같은 사용가치 또는 상품체의 형태로 세상에 나타난다. 이것이 상품의 평범한 현물형태(現物形態)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상품인 것은 그것들의 이중적인 성격, 즉 사용의 대상임과 동시에 가치의 담지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오직 이중적 형태(현물형태와 가치형태)를 가지는 경우에만 상품으로 나타난다. 다시 말해 상품이라는 형태를 가지게 된다.
상품의 가치로서의 객관적 실재는 우리가 "그것을 붙잡을 수 없다"는 점에서 과부 퀵클리(Dame Quicly)와는 구별된다.(역자 주: 세익스피어, ?헨리 4세?, 제1부, 제3막, 제3장.) 가치로서의 상품의 객관적 실재에는 [상품체의 감각적이고 거친 객관적 실제와는 정반대로] 단 한 분자의 물질도 들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어떤 하나의 상품을 아무리 돌려가며 만지면서 조사해 보더라도 그것이 가치를 가진 물건이라는 것을 알 수 없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모든 상품은 인간노동이라는 동일한 사회적 실체의 표현일 경우에만 가치로서의 객관적 성격을 가지게 된다는 것, 따라서 가치로서의 상품의 객관적 성격은 순수히 사회적인 것이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가치는 오직 상품과 상품 사이의 사회적 관계에서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사실 우리는 상품들의 교환가치 또는 교환관계로부터 출발해 상품 속에 숨어 있는 가치를 찾아냈다. 이제 우리는 다시 가치의 이 현상형태로 되돌아가야 하겠다.
상품들은 그 사용가치의 잡다한 현물형태와 뚜렷이 구별되는 하나의 공통적인 가치형태[즉, 화폐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모른다 하더라도]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부르주아 경제학이 일찍이 시도조차 하지 못했던 것을 수행해야 한다. 즉, 이 화폐형태의 발생기원을 밝혀야 한다. 다시 말해, 상품들의 가치관계에 포함되어 있는 가치표현의 발전을 그 가장 단순한, 거의 눈에 띄지 않는 형태로부터 휘황찬란한 화폐형태에 이르기까지 추적해야 한다. 이것이 달성될 때 화폐의 신비는 곧 사라질 것이다.
가장 단순한 가치관계는 두말할 것도 없이 어떤 상품과 다른 종류[그것이 어떤 것이든]의 한 상품과의 가치관계이다. 그러므로 두 상품의 가치들 사이의 관계는 한 상품의 가치의 가장 단순한 표현을 제공한다.
A. 단순한, 개별적인 또는 우연적인 가치형태
X량의 상품 A=Y량의 상품 B
또는, X량의 상품 A는 Y량의 상품 B와 가치가 같다.
(20미터의 아마포=1개의 저고리
또는, 20미터의 아마포는 1개의 저고리와 가치가 같다. )
1. 가치표현의 두 극(極: pole): 상대적 가치형태와 등가형태
모든 가치형태의 비밀은 이 단순한 가치형태 속에 숨어 있다. 그러므로 이 가치형태의 분석이 우리의 중요한 난관이다.
종류가 다른 두 상품 A와 B(우리의 예에서는 아마포와 저고리)는 여기서 분명히 두 개의 서로 다른 역할을 한다. 아마포는 자기의 가치를 저고리로 표현하며, 저고리는 이러한 가치표현의 재료가 된다. 제1상품은 능동적 역할을 하며, 제2상품은 수동적 역할을 한다.(역자 주: 20미터의 아마포를 가진 사람이 시장에서 1개의 저고리를 주면 자기의 아마포를 팔겠다고 외치는 상황을 상상하면 이해하기 쉽다. 이 경우 저고리를 가진 사람은 틀림없이 아마포를 가질 수 있다.) 제1상품은 자기의 가치를 상대적 가치로 표현한다. 바꾸어 말해, 그 상품은 상대적 가치형태로 있다. 제2상품은 등가(물)(等價: equivalent)로서 기능한다. 다시 말해, 그 상품은 등가형태로 있다.
상대적 가치형태와 등가형태는 상호 의존하고 상호 제약하는 불가분의 계기들이지만, 그와 동시에 상호 배제하는 또는 상호 대립하는 극단들[즉, 가치표현의 두 극]이다. 이 두 극은 가치표현에 의해 상호관련 맺는 상이한 상품들이 맡는다. 예를 들어 아마포의 가치를 아마포로 표현할 수는 없다. 20미터의 아마포=20미터의 아마포는 결코 가치표현이 아니다. 이 등식이 의미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그 반대의 것이다. 즉,20미터의 아마포는 20미터의 아마포[즉, 사용대상으로 고찰한 아마포의 일정량]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마포의 가치는 상대적으로만 [다시 말해 다른 상품으로만] 표현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아마포의 상대적 가치형태는 어떤 다른 상품이 등가형태로 아마포와 대면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다른 한편, 등가(물)의 역할을 하는 다른 상품은 동시에 상대적 가치형태로 있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다른 상품은 자신의 가치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제1상품의 가치를 표현하는 재료를 제공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20미터의 아마포=1개의 저고리, 즉 20미터의 아마포는 1개의 저고리와 가치가 같다는 표현은, 1개의 저고리=20미터의 아마포, 즉 1개의 저고리는 20미터의 아마포와 가치가 같다는 역의 관계를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저고리의 가치를 상대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등식을 거꾸로 놓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저고리 대신 아마포가 등가(물)로 된다. 따라서 동일한 상품은 동일한 가치표현에서는 동시에 두 형태를 취할 수 없다. 두 형태는 정반대의 것으로 서로 배제한다.
어떤 상품이 상대적 가치형태로 있는가 아니면 반대로 등가형태로 있는가는 오로지 가치표현에서 그 상품이 차지하는 현실적인 위치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해, 그 상품이 자기의 가치를 표현하는 상품인가 또는 남의 가치를 표현해 주는 상품인가에 달려 있다.
2. 상대적 가치형태
(a) 상대적 가치형태의 내용
한 상품의 가치의 단순한 표현이 어떻게 두 상품의 가치관계 속에 숨어 있는가를 해명하기 위해서는 이 가치관계를 우선 그 양적 측면으로부터 완전히 떠나 고찰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보통 이와 정반대의 연구방법을 취해, 가치관계에서 두 가지 상품의 일정한 양이 서로 등치되는 비율만을 본다. 그들은 이때 상이한 물건들의 크기는 동일한 단위로 환원된 뒤에야 비로소 양적으로 비교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동일한 단위로 표현했을 때에만 그 물건들의 크기는 공통분모를 가지며 따라서 서로 비교할 수 있는 것이다.(역자 주: 베일리(S. Baily)와 같이 가치형태의 분석에 전념해온 소수의 경제학자들이 아무런 성과도 거둘 수 없었던 것은, 첫째 들이 가치형태를 가치 자체와 혼동했기 때문이고, 둘째 그들이 실무적 부르주아의 조잡한 영향하에서 처음부터 오로지 가치형태의 양적 측면에만 주의를 돌렸기 때문이다. “양(量)에 대한 지배가....가치를 형성한다"(베일리, ?화폐와 그 가치변동?, 런던, 1837년, p. 11).)
20미터의 아마포=1개의 저고리든, 20미터의 아마포=20개의 저고리든, 또는 20미터의 아마포=X개의 저고리든, 다시 말해, 일정한 양의 아마포가 다수의 저고리와 가치가 같든 소수의 저고리와 가치가 같든, 그러한 비율의 존재 자체는 가치량(價値量)으로서는 아마포와 저고리가 동일한 단위의 표현들이며 동일한 성질을 가진 물건들이라는 것을 항상 전제하고 있다. 아마포=저고리라는 것이 이 등식의 기초이다.
그러나 질적으로 등치되는 이 두 상품이 동일한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 등식에서는 아마포의 가치만이 표현될 뿐이다. 어떻게 표현되는가? 아마포가 자신의 '등가(물)', 또는 자신과 '교환될 수 있는 물건'인 저고리와의 관계를 통해 자기의 가치를 표현한다. 이 관계에서 저고리는 가치의 존재형태(즉, 가치의 물적 형상)로 간주된다. 왜냐하면, 저고리는 오직 그러한 것으로서만 아마포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 관계에서 아마포 자신의 가치로서의 존재가 독립적인 표현을 얻는다. 왜냐하면, 오직 가치초서만 아마포는 저고리[등가이자 자기와 교환될 수 있는 물건]와 관계를 몇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화학으로부터 예를 빌린다면, 부티르산과 포름산 프로필은 서로 다른 물질이다. 그러나 이 둘은 모두 동일한 화학적 실체인 탄소(C)와 수소(H)와 산소(0)로, 그것도 동일한 비율[즉, C4H8O2)로 구성되어 있다. 이제 만약 부리르산이 포름산 프로필과 등치된다면, 이 관계에서는 첫째로 포름산 프로필은 C2의 존제형태에 지나지 않으며, 둘째로 부티르산도 역시 C4H8O2 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이와 같이 부티르산을 포름산 프로필과 등치시킴으로써 우리는 그것들의 물적 형태와는 다른 화학적 구성을 표현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가치로서의 상품은 인간노동의 단순한 응고물이라고 말할때, 우리의 분석은 상품을 추상적 가치의 차원으로 환원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 현물형태와는 다른 가치형태를 상품에게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제1상품의 제2상품에 대한 가치관계에서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여기에서는 제1상품의 가치성격이 제2상품에 대한 자기 자신의 관계를 통해 표면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예컨대 우리는 가치물(價値物: a thing of value)로서의 저고리를 아마포와 등치시킴으로써 저고리에 들어 있는 노동을 아마포에 들어 있는 노동과 등치시킨다. 저고리를 만드는 재봉과 아마포를 만드는 직포는 그 종류가 다른 구체적 노동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재봉을 직포에 등치시키는 것은 사실상 재봉을 두 가지 노동에서 진실로 똑같은 것 [즉, 인간노동이라는 양쪽에 공통된 성격]으로 환원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직포도 또한 [가치를 짜는 한] 재봉과 구별되지 않으며 따라서 추상적 인간노동일 뿐이라는 것을 말하는 우회적 방식이다. 상이한 상품들 사이의 등가의 표현이 상이한 상품들에 들어 있는 각종 노동을 그것들에 공통된 것[즉, 인간노동 일반]으로 실제로 환원하고 있기 때문에 가치형성 노동의 독자적인 성격이 드러나게 된다.(주석 18: 페티에 이어 가치의 성질을 파악한 최초의 경제학자 중 한 사람이었던 유명한 프랭클린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상업이란 일반적으로 한 노동을 다른 노동과 교환하는 행위에 불과하므로 모든 물건의 가치는....노동에 의해 가장 정당하게 측정된다"(?프랭클린 저작집?, 스팍스 편, 보스턴, 1836년, 제2권, p. 267). 프렝클린은 모든 물건의 가치를 '노동'으로 측정함으로써 교환되는 노동 종류들 사이의 차이를 사상(捨象)하며 그것들을 동일한 인간노동으로 환원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의식하지 않은채 그것을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처음에는 어떤 ‘한 노동’에 관해 말하고, 다음에는 ‘다른 노동’에 관해 말하고, 끝으로 모든 물건의 가치와 실체로서는 아무런 수식어 없는 ‘노동’에 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마포의 가치를 형성하는 노동의 독특한 성격을 표현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인간노동력이 유동상태에 있는 것[즉, 인간노동]은 가치를 창조하지만 그 자체가 가치는 아니다. 인간노동은 어떤 대상의 형태로 응고된 상태에서만 가치로 된다. 인간노동의 응고물인 아마포 가치는 [아마포 그 자체와는 물적으로 구별되며 또 동시에 아마포와 기타 모든 상품에 공통된] 하나의 '객관적 실체'로서 표현될 수 있을 뿐이다. 이 문제는 벌써 해결되었다.
저고리에 대한 아마포의 가치관계에서 저고리는 질적으로 아마포와 같은 것(같은 종류의 것)으로 간주되는데, 그것은 저고리가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저고리는 가치가 표현되는 물건[즉, 가치를 감촉할 수 있는 현물형태로 표현하는 물건]이다. 그러나 저고리 그 자[상품인 저고리의 물체]는 순수히 사용가치다. 저고리 그 자체가 가치를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임의의 아마포 한 조각이 가치를 표현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왜나하면, 상품은 자기의 가치를 가치 관계 속에서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이 사실은 저고리가 아마포와의 가치관계 안에 있을 때에는 그 외부에 있을 때보다 큰 의의를 가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마치 약간의 사람들이 금으로 장식된 제복을 입을 때에는 그것을 입지 않을 때보다 큰 중요성을 지니게 되는 것과 같다.
저고리의 생산에는 실제로 재봉이라는 형태로 인간의 노동력이 지출되었다. 따라서 저고리에는 인간노동이 쌓여 있다. 이 측면에서 본다면, 저고리는 '가치의 담지자(擔持者)'이다. 물론 이러한 저고리의 속성은 저고리가 아무리 닳아 얇아져도 들여다보이는 것은 아니다. 아마포와의 가치관계에서 저고리는 이러한 자격[즉, 구체적 형상을 띠고 있는 가치 또는 가치체(價値體: body of value)]으로 역할한다. 저고리가 단추를 채우고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마포는 그 속에 있는 아름다운 동류의식[가치라는 동류의식]을 느낀다. 그러나 아마포에 대해 저고리가 가치를 대표하려면 아마포에게 있어 가치가 저고리의 형태를 취해야만 한다. 그것은 마치 개인 A가 개인 B로부터 '국왕(國王)'으로 숭배를 받으려면, B의 눈에 국왕이 A의 육신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더욱이 '국왕'이 교체될 때마다 국왕의 용모와 머리털과 기타 여러 가지가 변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파라서 저고리가 아마포의 등가(물)로 되는 가치관계에서 저고리의 형태는 가치형태로 간주된다. 그러므로 상품 아마포 가치는 상품 저고리의 물체로 표현된다. 즉, 한 상품의 가치는 다른 상품의 사용가치로 표현된다. 사용가치로서 아마포는 저고리와 분명히 구별되는 물건이지만, 가치로서 아마포는 저고리와 같은 것이며, 따라서 저고리처럼 보인다. 이와 같이 아마포는 자기의 현물형태와는 다른 가치형태를 얻는다. 아마포의 가치로서의 존재는 아마포와 저고리와의 동등성으로 나타나는데, 이것은 마치 기독교도의 양(羊)과 같은 성질을 기독교도=신의 새끼양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상품가치의 분석이 이전에 우리에게 말해준 모든 것을, 아마포 자신이 저고리와 교제하게 되자마자 우리에게 또다시 이야기해 주고 있다. 다만 아마포는 자기만 아는 언어, 즉 상품어(商品語)로 자기의 생각을 표현한다. 노동은 인간노동이라는 추상적 속성에서 아마포 자신의 가치를 창조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아마포는 저고리가 자기와 동등하다고 간주되는 경우에만 [즉, 가치일 경우에만] 자기와 동일한 노동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가치로서의 .자기의 고상한 객관적 실재는 자기의 거친 육체와는 다르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아마포는 저고리의 형태로 자기의 가치를 표현하며, 따라서 그 자신도 가치물인 한, 저고리와 추호도 다름이 있다고 말한다. 덧붙여 말해, 상품어도 히브리어 이외에[다소 정확한] 많은 방언들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상품 B를 상품A에 등치하는 것이 상품A의 가치를 표현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나타냄에 있어 독일어의 'Wertsein'[가치가 있다]은 라틴어 계통의 동사 'Vllere','Valer','Valoir'보다 적절하지 못하다. 파리는 확실히 미사를 받을 만하다!
이와 같이 가치관계를 매개로 상품 B의 현물형태는 상품 의 가치형태로 된다. 다시 말해, 상품 B의 물체는 상품 A의 가치의 거울로 된다.(주석 19: 어떤 의미에서 인간도 상품과 같은 상황에 있다. 인간은 손에 거울을 들고 탄생하는 것도 아니며, "나는 나빠"라고 주장하는 피히테(Fichte)류의 철학자로 탄생하는 것도 아니므로, 인간은 우선 다른 사람을 통해서 자신을 보게 된다. 인간 베드로는 [자기와 닮았다고 생각되는] 다른 인간 바울과 관계함으로써 비로소 인간으로서의 자기 자신과 관계하게 된다. 그러나 그렇게 됨으로써 바울은 [바울이라는 온전한 육체를 가진 그대로] 베드로에 대해 인간이라는 종족의 현상형태로 되는 것이다.) 상품 A는 [가치체이자 인간노동의 체현물인] 상품 B와 관계를 맺음으로써, 사용가치 B를 자기 자신의 가치의 표현재료로 삼는다. 상품 A의 가치는 이와 같이 상품 B의 사용가치로 표현되어 상대적 가치 형태를 얻게 된다.
(b) 상대적 가치형태의 양적 규정성
자기의 가치를 표현해야 하는 각 상품은, 예컨대 15부셸의 밀, 100그램의 커피 등등과 같이, 일정한 양의 유용한 물건이다. 이 주어진 상품량에는 인간노동의 일정한 양이 들어 있다. 따라서 가치형태는 가치일반뿐 아니라 양적으로 규정된 가치[즉, 가치량]도 표현해야 한다. 그러므로 상품 A의 상품 B에 대한 가치관계, 아마포의 저고리에 대한 가치관계에서는 저고리라는 상품 종류가 가치체 일반으로 아마포에 질적으로 등치될 뿐 아니라, 일정한 양의 가치체 또는 등가(물)[예컨대 1개의 저고리]이 일정한 양의 아마포[예컨대 20미터의 아마포]에 등치된다.
"20미터의 아마포=1개의 저고리, 즉 20미터의 아마포는 1개의 저고리와 가치가 같다"라는 등식은, 1개의 저고리에는 20미터의 아마포에 들어 있는 것과 똑같은 양의 가치 실체가 들어 있다는 것, 따라서 양쪽의 상품량은 등량의 노동 또는 동일한 노동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20미터의 아마포나 1개의 저고리의 생산에 걸리는 노등시간은 재봉
또는 직포의 생산성이 변동할 때마다 변동한다. 이제 이러한 변동이 가치량의 상대적 표현에 미치는 영향을 한층 더 상세하게 연구해야 한다.
i.아마포의 가치는 변동하는데(주석 20: 여기에서는 '가치'라는 표현을 이미 앞의 몇 곳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양적으로 규정된 가치, 즉 가치량(價値量)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저고리의 가치는 불변인 경우
만약 아마포의 생산에 걸리는 노동시간이 예컨대 아마를 재배하는 토지의 비옥도가 떨어졌기 때문에 두 배로 된다면, 아마포의 가치도 두 배로 될 것이다 20미터의 아마포=1개의 저고리 대신 20미터의 아마포=2개의 저고리로 될 것이다. 왜냐하면, 1개의 저고리는 이제 20미터의 아마포에 드는 노동시간의 반밖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만약 아마포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이 예컨대 토지개량에 의해 반으로 감소한다면, 아마포의 가치도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이에 따라 이제 20미터의 아마포=1/2개의 저고리로 된다.
이와 같이 상품 B의 가치는 불변이라도 상품 A의 상대적 가치[즉, 상품 B로 표현하는 상품 A의 가치]는 상품 A의 가치에 정비례해 상승 또는 하락한다.
ii. 아마포의 가치는 불변인데 저고리의 가치가 변동하는 경우
저고리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이 예컨대 양털의 흉작 때문에두 배로 된다면, 20미터의 아마포=1개의 저고리가 아니라 이제는 20미터의 아마포=1/2개의 저고리로 될 것이다. 반대로 저고리의 가치가 절반으로 떨어진다면 20미터의 아마포=2개의 저고리로 될 것이다. 그러므로 상품 A의 가치는 불변이라도 상품 B로 표현하는 상품 A의 상대적 가치는 상품 B의 가치변동에 반비례해 하락 또는 상승한다.
i과 ii의 여러 가지 경우를 비교해 보면, 상대적 가치의 동일한 양적 변동이 정반대의 원인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컨대 20미터의 아마포=1개의 저고리라는 등식이 20미터의 아마포=2개의 저고리로 되는 것은, 어떤 때는 아마포의 가치가 두 배로 되기 때문이고, 또 어떤 때는 저고리의 가치가 절반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등식이 20미터의 아마포=1/2개의 저고리로 되는 것은, 어떤 때는 아마포의 가치가 절반으로 떨어지기 때문이고, 또 어떤 때는 저고리의 가치가 두 배로 등귀하기 때문이다.
iii. 아마포와 저고리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량이 동시에 동일한 방향으로 그리고 동일한 비율로 변동하는 경우
이 경우 이 상품들의 가치가 아무리 변동하더라도 여전히 20미터의 아마포=1개의 저고리다. 이 상품들의 가치변동은 이 상품들을 [가치가 변하지 않은] 제3의 상품과 비교할 때에만 드러난다. 만약 모든 상품의 가치가 동시에 동일한 비율로 상승하거나 하락한다면, 그 상품
들의 상대적 가치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 경우 상품가치의 현실적인 변동은 동일한 노동시간에 생산되는 상품량이 이전에 비해 더 많은가 더 적은가로 드러날 것이다.
iv. 아마포와 저고리 각각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즉, 그것들의 가치]이 동시에 동일한 방향이면서 서로 상이한 정도로, 또는 반대방향으로 변동하는 경우
이와 같은 각종 조합이 한 상품의 상대적 가치에 주는 영향은 i, ii, iii의 경우를 적용해 간단히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가치량의 현실적 변동은 가치량의 상대적 표현[즉, 상대적 가치의 크기]에 명확하고 완전하게 반영되지는 않는다. 한 상품의 상대적 가치는 자기의 가치가 불변이라도 변동할 수 있으며, 또한 자기의 가치가 변동하더라도 여전히 불변일 수도 있다. 끝으로, 그 상품의 가치량과 이 가치량의 상대적 표현이 동시에 변동하더라도 그 변동
이 반드시 일치하지도 않는다.(주석 21: 가치량과 그 상대적 표현 사이의 이와 같은 불일치를 속류경제학은 [늘 그랬던 것처럼 교묘하게 이용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A와 교환되는 B가 등귀하기 때문에, A에 지출되는 노동이 이전에 비해 감소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A가 하락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만 한다면, 당신들의 일반적 가치이론은 붕괴할 것이다....만약 A의 가치가 B에 대해 상대적으로 상승하는 결과 B의 가치가 A에 대해 상대적으로 하락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한 상품의 가치는 언제나 거기에 체화된 노동량에 의해 규정된다는 리카도의 대명제의 토대는 무너지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A의 생산비 변동이 [A와 교환되는 B에 대한] 자기 자신의 가치를 변경시킬 뿐 아니라, [B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량에는 아무런 변동도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A에 대한 B의 가치까지도 변경시킨다면, 어떤 상품에 지출된 노동량이 그 상품의 가치를 규제한다는 학설뿐 아니라 상품의 생산비가 그것의 가치를 규제한다는 학설도 무너지기 때문이다"(브로드허스트[J. Broadhurst], ?정치경제학?, 런던, pp. 11, 14). 브로드허스트는 마찬가지로 다음과 같은 엉터리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10/20나 10/50이나 10/100 등의 분수를 보라. 10이라는 수는 언제나 불변이지만, 20, 50, 100에 대한 10의 상대적 크기는 끊임없이 감소한다. 따라서 어떤 정수(整數)[예를 들어 10]의 크기는 거기에 포함되어 있는 1이라는 단위 수에 의해 '규제'된다는 대원칙은 무너지게 된다고.)
3. 등가형태
이미 본 바와 같이, 상품 A(아마포)는 자기의 가치를 자기와는 다른 종류의 상품 B(저고리)의 사용가치로 표현함으로써, 상품 B에 하나의 독특한 가치형태[즉, 등가(물)이라는 가치형태]를 부여한다. 상품 아마포는, 저고리가 자기의 현물형태와는 구별되는 가치형태를 취하지 않으면서도 아마포와 등치될 수 있다는 사실을 통해, 가치로서의 자기자신의 존재를 외부에 드러낸다. 저고리는 직접 아마포와 교환될 수 있는데, 이러한 형식을 통해 아마포는 사실상 가치로서의 자기 자신의 존재를 표현한다 따라서 어떤 상품이 등가형태(等價形態)로 있다면, 등가형태의 상품은 다른 상품들과 직접 교환될 수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어떤 하나의 상품종류[예컨대 저고리]가 다른 상품종류[예컨대 아마포]를 위해 등가(물)로 역할하며, 그리하여 아마포와 직접 교환될 수 있는 독특한 속성을 획득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의해 저고리와 아마포가 서로 교환되는 비율이 주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 비율은 아마포의 가치량이 주어진 것이라면 저고리의 가치량에 의해 결정된다. 저고리가 등가(물)로 표현되고 아마포가 상대적 가치로 표현되든, 또는 반대로 아마포가 등가(물)로 표현되고 저고리가 상대적 가치로 표현되든, 저고리의 가치량은 여전히 저고리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 [저고리의 가치형태와는 관계없이] 규정된다. 그러나 저고리가 가치표현에서 등가(물)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면, 저고리의 가치는 양적으로 표현될 수 없으며, 저고리는 가치등식에서 사용가치의 일정량으로 나타날 뿐이다.
예컨대, 40미터의 아마포는 얼마의 가치가 있는가? 2개의 저고리와 같다. 상품종류인 저고리가 여기에서는 등가(물)의 역할을 하며, 사용가치인 저고리가 아마포에 대해 가치체로서 인정되고 있으므로, 일정량의 저고리는 아마포의 가치량을 표현하는 데 충분하다. 그러므로 2개의 저고리는 40미터 아마포의 가치량을 표현할 수 있지만 결코 자기 자신의 가치량을 표현할 수는 없다. 가치등식에서 등가(물)는 항상 어떤 물건[어떤 사용가치]의 양의 형태만을 취한다는 사실을 피상적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베일리(S. Bailey)나 그의 선행자 . 후계자의 다수는 가치표현에서 오직 양적 관계만을 보는 오류를 범했다. 그런데 사실 어떤 상품이 등가(물)로 역할할 때, 그 상품가치의 양적 크기는 표현되고 있지 않다.
등가형태를 고찰할 때 눈에 띄는 첫째 특징은 사용가치가 자기의 대립물인 가치의 현상형태로 된다는 점이다.
상품의 현물형태가 가치형태로 되는 것이다. 그러나 주의하라. 이러한 전환을 상품 B(저고리나 밀 또는 철)가 겪는 것은, 임의의 다른 상품 A(아마포 등)가 상품 B와 가치관계를 맺기 때문이며 그리고 오직 이 가치관계 만에서의 일이다. 어떤 상품도 자기 자신에 대해 등가(물)로 관계를 맺을 수 없으며, 따라서 자기 자신의 현물형태를 자기 자신의 가치의 표현으로 삼을 수는 있기 때문에, 상품은 반드시 다른 상품을 등가(물)로 삼아 그것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 즉, 다른 상품의 현물형태를 자기 자신의 가치형태로 삼아야 한다.
이것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상품체로서의 싱품[즉, 사용가치로서의 상품]을 측정하는 데 사용되는 척도를 예로 들어보자. 덩어리 사탕은 물체인 까닭에 무겁고 따라서 일정한 무게를 가지고 있으나, 사람들은 그 무게를 직접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손으로 감지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무게가 미리 확정되어 있는 각종의 쇠조각[저울 추]을 가져온다. 추(錘)의 물체형태는 그 자체로 보면 덩어리 사탕과 마찬가지로 무게의 현상형태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덩어리 사탕을 무게로 표현하기 위해 우리는 사탕을 추와의 중량관계에 놓는다. 이 관계에서 추는 무게 이외에는 아무 것도 표시하지 않는 하나의 물체로 기능한다. 그러므로 추의 크기는 사탕의 무게를 측정하는 데 역할하며, 덩어리 사탕에 대해 오직 무게의 화신(化身) 또는 무게의 현상형태를 대표한다. 추가 이러한 역할을 하는 것은 [그 무게가 측정되어야 할] 사탕 또는 어떤 물체가 추와 맺는 관계의 내부에서뿐이다. 만약 이 두 물체가 모두 무게를 가지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이러한 관계를 맺을 수 없을 것이며, 따라서 그것들 중의 한 쪽이 다른 쪽의 무게를 표현할 수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이 두 물체를 저을 위에 놓을 때, 우리는 그들이 무게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며, 따라서 일정한 비율을 취하면 동일한 무게를 가진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추라는 물체가 무게의 척도로서 덩어리 사탕과의 관계에서 오직 무게만을 대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가치표현에서는 저고리라는 물체가 아마포와의 관계에서 오직 가치만을 대표한다.
그러나 유사성은 여기에서 끝난다. 덩어리 사탕의 무게표현에서 추는 두 물체에 공통된 자연적 속성, 즉 그 무게를 대표하고 있지만, 아마포의 가치표현에서 저고리는 두 물건의 그 어떤 초자연적 [순수히 사회적인] 속성, 즉 그들의 가치를 대표한다.
어떤 한 상품[예컨대 아마포]의 상대적 가치형태(相對的 價値形態)는 아마포의 가치존재를 아마포의 물체나 그 속성들과는 전혀 다른것으로 [예컨대 저고리와 공통점이 있는 그 무엇으로] 표현하고 있으므로 이 표현 자체가 벌써 그 배후에 어떤 사회적 관계가 숨어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등가형태(等價形態)는 이것과는 반대이다. 등가형태에서는 어떤 상품체(예컨대 저고리)가 있는 모습 그대로 가치를 표현하며, 따라서 처음부터 가치형태이다. 물론 이것은 상품인 저고리가 상품인 아마포에 대해 등가(물)로 되어 있는 가치관계 안에서만 그러하다.(주석 22: 이와 같이 상호관계에 의거한 규정은 일반적으로 기묘하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왕인 것은 오직 다른 사람들이 그를 받들어 신하로서 복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반대로 그가 왕이기 때문에 자기들은 신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물건의 속성은 그 물건과 다른 물건과의 관계로부터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러한 관계 속에서 실증되는 데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저고리가 무게가 있다든가 체온을 보존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등가형태[즉, 다른 상품과의 직접적 교환가능성이라는 속성]를 처음부터 가지고 있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 등가형태의 신비성이 이로부터 발생하는데, 경제학자의 조잡한 부르주아적 안목은 이 등가형태가 완성되어 화폐로 자기 앞에 나타날 때 비로소 이 신비성에 주목하게 된다. 그때에 경제학자는 금과 은의 신비성을 타파하기 위해 금과 은을 그보다 털 찬란한 상품들로 대체하며 일찍이 상품의 등가(물)로 역할한 바 있는 일체의 보통 상품들의 목록을 항상 새로운 만족감으로 암송하곤 한다. 그는 20미터의 아마포=1개의 저고리라는 가장 단순한 가치표현이 벌써 우리가 풀어야 할 등가형태의 수수께끼를 제기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등가(물)의 역할을 하는 상품체는 항상 추상적인 인간노동의 체현물로 나타나고, 항상 특정의 유용한 구체적 노동의 생산물이다. 그리하여 구체적 노동이 추상적 인간노동을 표현하게 된다. 예컨대 저고리가 단순히 추상적 인간노동의 실현이라면, 저고리에 실제로 실현되어 있는 재봉은 단순히 추상적 인간노동의 실현형태다. 아마포의 가치표현에서, 재봉의 유용성은 의복 [그리하여 인품(人品)]을 만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가치[즉, 아마포의 가치에 대상화되어 있는 노동과 조금도 구별되지 않는 노동의 응고물]로 안정하는 물체를 만드는데 있다. 가치의 거울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재봉 그 자체는 인간노동이라는 그 추상적 속성 이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반영해서는 안 된다.
인간의 노동력은 재봉의 형태로도 직포의 형태로도 지출된다. 그러므로 두 형태는 인간노동이라는 일반적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어떤 경우[예컨대 가치의 생산]에는 오직 이 관점에서만 고찰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조금도 신비로운 것이 없다. 그러나 상품의 가치표현에서는 사정이 완전히 달라진다. 예를 들어, 직포는 직포라는 구체적 노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노동이라는 일반적 속성에 의해 아마포의 가치를 형성한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우리는 아마포의 등가(물)을 생산하는 구체적 노동(즉, 재봉]을 직포와 대비시키고 있다. 지금 재봉은 추상적 인간노동의 눈에 보이는 실현형태로 나타난다.
등가형태의 제2의 특징은 이와 같이 구체적 노동이 그 대립물인 추상적 인간노동의 현상형태로 된다는 것이다.
이 구체적 노동(즉, 재봉)이 무차별적인 인간노동의 표현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이 노동은 다른 노동[즉, 아마포에 들어 있는 노동]과 동일하다는 성질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이 노동은 다른 모든 상품생산 노동처럼 사적 노동이지만 또한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형태의 노동인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노동은 [다른 상품들과 직접 교환될 수 있는] 생산물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적 노동이 그 대립물의 형태[즉,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형태의 노동]로 된다는 것이 등가형태의 제3의 특징이다.
등가형태의 마지막 두 특징은 [사고(恩考)형태 .사회형태 . 자연형태와 함께 가치형태를 처음으로 분석한] 저 위대한 연구자에게 거슬러 올라가면 한층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 사람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선 상품의 화폐형태는 단순한 가치형태[즉, 어떤 상품의 가치를 임의의 다른 한 상품으로 표현한 것]가 한층 발전한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명백히 지적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5개의 침대=한 채의 가옥"
이라고 말하는 것은
"5개의 침대=얼마의 화폐"
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
그는 더 나아가 [이러한 가치표현 그 자체를 제공하는] 가치관계는 가옥이 침대와 질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을 조건으로 한다는 것, 그리고 이 감각적으로 다른 물건들은 이와 같은 본질상의 동일성 없이는 [같은 단위로 잴 수 있는 크기로] 서로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통찰하고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교환은 동일성(同一性) 없이는 있을 수 없고, 동일성은 측량(測量)의 공통성 없이는 있을 수 없다. " 그러나 여기에서 그는 난관에 봉착해 가치형태의 더 이상의 분석을 포기하고 있다. "그러나 종류가 서로 다른 물건들이 같은 단위로 측정된다는 것은", 즉 질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은, "실제로는 불가능하다. " 그와 같은 등식은 물건들의 진정한 성질과는 다른 것일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오직 '실제상의 필요를 위한 임시변통'일 따름이다.(역자 주: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니코마쿠스윤리학?, 제5편, 제5장.)
이와 같이 아리스토텔레스는 더 이상 분석할 수 없게 된 것이 무엇인가를 몸소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가치개념의 결여이다. 이 동일한 것[즉, 침대의 가치표현에서 가옥이 침대를 위해 표현하는 그 공통적 실체]은 무엇인가? 그러한 것은 "실제로는 존재할 수 없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없기는 왜 없어? 가옥이 침대와 가옥 모두에서 진실로 똑같은 것을 대표하는 한, 가옥은 침대에 대해 어떤 동일한 것을 표현하게 된다. 바로 그것이 인간노동이다.
상품가치의 형태에서는 일체의 노동은 동등한 인간노동, 따라서 동등한 질의 노동으로 표현된다는 사실을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치형태의 분석으로부터 끌어내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리스사회는 노예노동에 의거하고 있었고, 따라서 인간과 인간노동력의 부등성(不等性: inequality)을 사회의 자연적 토대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체의 노동은 인간노동 일반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경우에만, 동등하며 동일하다는 가치표현의 비밀은, 인간의 동등성(同等性)이라는 개념이 대중의 선입관으로 확립되었을 때 비로소 해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상품형태가 노동생산물의 일반적 형태며, 따라서 상품소유자로서의 인간관계가 지배적인 사회관계로 되는 사회에서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천재는 바로 그가 상품의 가치표현에서 하나의 동등관계를 발견한 데서 훌륭하게 나타나고 있다. 다만, 그가 살고 있던 사회의 역사적 한계 때문에 바로 이 동등관계가 '실제로' 무엇인가를 해명할 수 없었던 것이다.
4. 단순한 가치형태의 총체
어떤 한 상품의 단순한 가치형태는 종류가 다른 한 상품에 대한 가치관계 속에 (즉, 종류가 다른 어떤 상품과의 교환관계 속에) 포함되어 있다. 상품 A의 가치는, 질적으로는, 상품 B가 상품 A와 직접 교환될 수 있다는 사실에 의해 표현되고 있으며, 양적으로는, 일정한 양의 상품 B가 주어진 양의 상품 A와 교환될 수 있다는 사실에 의해 표현되고 있다. 바꾸어 말해, 한 상품의 가치는 자신의 '교환가치'(交換價値)가 주어져야만 독립적인 표현을 얻게 된다. 이 장의 첫 부분에서 우리는 보통 말하는 방식에 따라 상품은 사용가치임과 동시에 교환가치(交換價値)라고 말했지만, 이것은 엄밀히 말하면 옮지 않다. 상품은 사용가치(즉, 유용한 물체)임과 동시에 가치(價値)인 것이다. 상품은, 자기의 가치가 자기의 현물형태와는 구별되는 하나의 독특한 표현형태[즉, 교환가치]를 가지게 될 때, 그 이중성을 드러낸다. 상품은 고립적으로 고찰할 때에는 교환가치라는 형태를 취하는 일이 있고, 그와 종류가 다른 한 상품에 대한 가치관계 또는 교환관계에서만 이 형태를 취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것을 이해하고 있기만 한다면, 앞에서 말한 부정확한 표현방식 [상품은 사용가치임과 동시에 교환가치다]도 유해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간편한 것으로 된다.
우리의 분석에서 증명한 바와 같이, 상품의 가치형태 또는 가치표현은 상품가치의 본성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가치와 가치량이 상품의 교환가치의 표현방식으로부터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이 후자의 사고방식은 중상주의자들(과 그들의 근대적 추종자인 페리에, 가닐 등(주석 23: 페리에(F. L. A. Ferrier: 세관부검사관), ?상업과의 관계에서 고찰한 정부?, 파리, 1805년; 가닐(C. Ganil), ?정치경제학의 체계?, 제2판, 파리, 1821년)이 지니고 있던 망상이었으며, 또한 그들과는 정반대의 입장에 있던 근대의 자유무역론자인 바스티아(Bastiat)나 그의 동료들이 지니고 있던 망상이었다. 중상주의자들은 가치표현의 질적인 측면, 따라서 [화폐를 그 완성형태로 하는] 상품의 등가형태에 중점을 두지만, 이와는 반대로 어떤 가격에서든 자기의 상품을 팔아치우지 않으면 안 되는] 근대의 자유무역 행상인들은 상대적 가치형태의 양적인 측면에 중점을 둔다. 그 결과 그들에게는 상품의 가치 . 가치량은 교환관계의 표현에만 존재하며, 따라서 매일의 상품시세표에만 존재할 뿐이다. 롬바르드가(Lombard Street) [런던의 금융중심지]의 매우 혼란된 관념들을 매우 그럴 듯하게 정리하는 것을 자기의 직책으로 삼고 있는 스코틀랜드사람 매클라우드(Macleod)는 미신적인 중상주의와 개화된 자유무역 행상인 사이의 훌륭한 혼혈아다.
상품 A와 B의 가치관계에 포함되어 있는 상품 A의 가치표현을 더욱 상세하게 고찰하면, 이 관계 안에서는 상품 A의 현물형태는 오직 사용가치의 모습으로, 상품 B의 현물형태는 오직 가치형태[또는 가치의 모습]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상품 안에 숨어 있는 사용가치와 가치 사이의 내적 대립은 하나의 외적 대립을 통해, 즉 두 상품 사이의 관계-자기의 가치를 표현해야 할 한 쪽 상품은 직접적으로는 사용가치로서만 간주되고, 반면에 전자의 가치를 표현해야 할
다른 쪽 상품은 직접 교환가치로서만 간주된다-를 통해 밖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한 상품의 단순한 가치형태는 그 상품 안에 있는 사용가치와 가치 사이의 대립의 단순한 현상형태다.
노동생산물은 어떤 사회제도에서도 유용한 대상이지만, 그것의 생산에 지출된 노동이 그 물건의 '객관적' 속성, 즉 가치로 나타나는 것은 오직 역사적으로 특수한 발전단계에 속하는 일이다. 바로 그러한 발전 단계에서 노동생산물이 상품으로 전환된다. 그러므로 상품의 단순한 가치형태는 동시에 노동생산물의 단순한 상품형태이며, 상품형태의 발전은 가치형태의 발전과 일치하게 된다.
단순한 가치형태가 불충분한 것임은 첫눈에도 명백하다. 그것은 가격형태[상품의 가치를 화폐량으로 표현하는 것]로 성숙하기 전에 일련의 형태변화를 거쳐야 하는 맹아(萌芽)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상품A의 가치를 다른 어떤 상품 B로 표현하는 것은 상품 A의 가치를 자기 자신의 사용가치와 구별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이 표현은 상품 A를 다른 어떤 하나의 상품종류와 교환관계에 놓을 뿐이고, 다른 모든 상품들과 상품 A사이의 질적인 동등성과 양적인 비율을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한 상품의 단순한 상대적 가치형태에는 다른 한 상품의 개별적인 등가형태가 대응한다. 그리하여 아마포의 상대적 가치표현에서 저고리는 이 하나의 상품종류 아마포에 대해서만 등가형태[직접적 교환가능성의 형태]를 취한다.
그러나 단순한 가치형태는 스스로 더 완전한 형태로 이행한다. 물론 단순한 가치형태는 한 상품 의 가치를 하나의 다른 종류의 상품으로 표현할 뿐이다. 그러나 이 제2의 상품이 어떤 종류의 것이든 [즉, 저고리나 쇠나 밀이나 기타 그 무엇이든] 전혀 관계가 없다. 그러므로 상품 A가 다른 어떤 상품종류와 가치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상품 A의 단순한 가치표현들이 여러 가지로 나타나게 된다.(주석 24: 예를 들어 호머(Homer)의 ?일리아드?에는 한 물건의 가치가 일련의 다른 물건들로 표현되고 있다.) 이러한 가치표현의 수는 상품 A와는 다른 상품의 종류 수에 의해서만 제한될 뿐이다. 그러므로 상품 A의 개별적인 가치표현은 무한한 시리즈의 각종의 단순한 가치표현들로 전환된다.
B. 전체적 또는 전개된 가치형태
z량의 상품 A = u량의 상품 B 20미터의 아마포 = 1개의 저고리
또는 = v량의 상품 C 또는 = 10그램의 차
또는 = w량의 상품 D 또는 = 40그램의 커피
또는 = x량의 상품 E 또는 = 1쿼터의 밀
또는 = 기타 등등. 또는 = 2온스의 금
또는 = 1/2톤의 철
또는 = 기타 등등.
1. 전개된 상대적 가치형태
어떤 하나의 상품[예컨대 아마포] 의 가치는 이제 상품세계의 무수한 다른 상품들로 표현된다. 다른 상품체는 어느 것이나 아마포의 가치의 거울로 된다.(주석 25: 그러므로 사람들은 아마포의 가치를 저고리로 표현하는 경우에는 아마포의 저고리가치라고 말하고, 아마포의 가치를 밀로 표현하는 경우에는 아마포의 밀가치라고 말한다. 그와 같은 표현은, 아마포의 가치가 저고리 . 밀 등등의 사용가치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각 상품의 가치는 그것의 교환관계를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각 상품의 가치를.... 그 상품과 비교되는 상대방의 상품이 무엇인가에 따라 그 상품의 밀가치 . 직물가치 등으로 말할 수 있다. 그리하여 상품 종류와 동일한 수의 각종 가치가 있고, 그것들은 모두 동일하게 실질적이며, 또 동일하게 명목적이다"(?가치의 성질, 척도 및 원인에 관한 비판적 논문, 주로 리카도와 그 추종자들의 저작들에 관련해. 의견의 형성과 공표에 관한 시론의 저자의 저?, 런던, 1825년, p. 39). 그 당시 영국에서 큰 소동을 일으킨 이 익명 저서의 저자인 베일리는 동일한 상품가치의 이러한 잡다한 상대적 표현을 제시함으로써 가치에 관한 모든 개념규정의 가능성을 분쇄했다고 망상하고 있었다. 그의 식견의 편협함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그가 리카도이론의 큰 약점을 찔렀다는 사실은 리카도추종자들이 예컨대 ?웨스트민스터 리뷰?에서 그를 공격하면서 나타낸 격분에 의해 증명되고 있다.) 그리하여 이제야 비로소 이 가치 자체가 참으로 무차별적인 인간노동의 응고물로 나타난다. 왜냐하면 이 아마포의 가치를 형성하는 노동은 이제야 다른 어떤 인간노동[그것이 어떤 현물형태를 취하든, 따라서 저고리 . 밀 . 쇠 . 금 어느 것에 대상화되어 있든] 과도 동일한 노동으로 아주 뚜렷하게 표현되기 때문이다. 아마포는 자기의 가치형태를 통해 이제는 단 하나의 다른 상품종류와 사회적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상품세계 전체와 사회적 관계를 맺는다. 상품으로서의 아마포는 상품세계의 한 시민이다. 그와 동시에 아마포의 가치의 무한한 표현시리즈로부터 우리는 아마의 가치는 그것을 나타내는 사용가치의 특수한 형태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1형태(20미터의 아마포=1개의 저고리)에서는 이 두 상품이 일정한 양적 비율로 교환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우연적 사건일 수도 있었다. 이것과는 반대로, 제2형태에서는 이 우연적 현상의 배경[우연적 현상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며 그것을 규정하는 배경]이 곧 드러난다. 아마포의 가치는, 수많은 서로 다른 소유자들에게 속하는 서로 다른 상품들인 저고리. 커피. 철 등 어느 것으로 표현되든, 그 크기가 언제나 같다. 두 개인적 상품소유자 사이의 우연적 관계는 소멸된다. 상품의 교환이 상품의 가치량을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상품의 가치량이 상품의 교환비율(交換比率)을 규제한다는 것이 명백해진다.
2. 특수한 등가형태
저고리 . 차 . 밀 . 철 등의 상품은 어느 것이나 아마포의 가치표현에서는 등가(물), 따라서 가치체(價値體)로 역할한다. 이 상품들 각각의 특정한 현물형태는 이제는 다른 많은 상품과 나란히 하나의 특수한 등가형태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상품체에 들어 있는 각종의 구체적인 유용노동은 이제는 인간노동 일반의 특수한 실현형태 또는 현상형태로 간주된다.
3. 전체적 또는 전개된 가치형태의 결함
첫째, 상품의 상대적 가치표현은 미완성이다. 왜냐하면 상품의 가치를 표시하는 시리즈가 끝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각각의 가치등식이 고리를 이루고 있는 이 사슬은 [새로운 가치표현의 재료를 제공하는] 새로운 상품종류가 등장할 때마다 연장된다. 둘째, 이 사슬은 조각조각 끊어진 잡다한 가치표현의 다채로운 모자이크를 이룬다. 끝으로, 당연히 그렇게 될 수밖에 없지만, 만약 각 상품의 상대적 가치가 이 전개된 형태로 표현된다면, 상품들의 상대적 가치형태는 서로 상이한 무한의 가치표현 시리즈로 된다. 전개된 상대적 가치형태의 결함은 이번에는 거기에 대응하는 등가형태에도 반영된다. 각각의 상품종류의 현물형태가 무수히 많은 등가형태들 중 하나의 특수한 등가형태로 되어 각각의 등가형태가 서로를 배제하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오직 제한적인 등가형태가 있을 뿐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각각의 특수한 등가(물)상품에 들어 있는 특정의 구체적인 유용노동도 인간노동의 특수한 종류일 뿐이며, 따라서 인간노동 일반의 유일한 현상형태는 아니다. 물론
인간노동의 완전한 또는 전체적인 현상형태는 그 특수한 현상형태들의 총체로 구성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고 경우에는 인간노동은 한 개의 통일적인 현상형태를 가지지 못한다.
전개된 상대적 가치형태는 단순한 상대적 가치표현들의 총계, 즉 제1형태에 속하는 여러 등식들의 총계에 지나지 않는다. 예를 들면,
20미터의 아마포 = 1개의 저고리
20미터의 아마포 = 10그램의 차 등등.
그러나 이 등식들은 각각 왼쪽과 오른쪽을 바꾸어 놓은 다음과 같은 등식도 암시하고 있다. 즉
1개의 저고리 = 20미터의 아마포
10그램의 차 = 20미터의 아마포 등등.
사실 어떤 사람이 자기의 아마포를 다른 많은 상품들과 교환하고, 따라서 아마포의 가치를 일련의 다른 상품들로 표현한다면, 필연적으로 다른 상품의 소유자들도 자기들의 상품을 아마포와 교환하고, 따라서 자기들의 여러 가지 상품의 가치를 동일한 제3의 상품, 즉 아마포로 표현하게 된다. 여기서 20미터의 아마포=1
만약 생산활동의 규정적인 성격, 따라서 노동의 유용한 성격을 무시한다면, 생산활동은 다만 인간노동력(人間勞動力)의 지출에 지나지 않는다. 재봉과 직포는, 비록 질적으로 다른 생산활동이기는 하나, 모두 인간의 두뇌 근육 . 신경 . 손등의 생산적 소비이고, 이 의미에서 모두 인간노동이다. 재봉과 직포는 인간노동력 지출의 두 가지 서로 다른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인간의 노동력이 다양한 형태로 지출되기 위해서는 노동력 그 자체가 어느 정도의 발전단계에 도달해야
한다. 그러나 상품의 가치는 순전한 인간노동(Human labour pure and simple)[즉, 인간노동력 일반의 지출]을 표현하고 있다. 부르주아사회에서는 장군이나 은행가는 거대한 역할을 하지만 보통의 인간은 매우 보잘것 없는 역할밖에 하지 못하는데(주석 14: 헤겔(G. W. F Hegel), ?법철학“ 베를린, 1840년, p. 250, 제190단락을 보라)., 인간노동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인간노동은 특수한 방향으로 발달하지 않은 보통의 인간이 자기의 육체 속에 평균적으로 가지고 있는 단순한 노동력을 지출하는 것이다. 물론 단순한 평균적 노동(simple average labour) 자체도 나라가 다르고 문화의 발전단계가 다르면 그 성격도 달라지지만, 일정한 사회에서는 이미 알려져 있다. 더 복잡한 노동은 강화된 또는 몇 배로 된 단순노동(intensifed or rather multiplied simple labour)으로 간주될 뿐이며, 따라서 적은 양의 복잡노동(複雜勞動)은 더 많은 양의 단순노동(單純勞動)과 동등하게 간주된다. 이와 같은 환산이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경험으로 안다. 어떤 상품이 복잡한 노동의 생산물이라 하더라도 자기의 가치를 통해 단순노동의 생산물과 동등하게 되고 일정한 양의 단순노동을 대표할 뿐이다.( 주석 15: 여기서 문제로 되는 것은 [노동자가 예컨대 하루의 노동의 대가로 받는] 임금 또는 가치가 아니라 [그의 하루의 노동이 대상화되어 있는]상품의 가치다. 임금이라는 범주는 우리 발표[서술]의 이 단계에서는 아직 나타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종류의 노동이 그 측정단위로서의 단순노동으로 환원되는 비율은 [생산자들의 배후에서 진행되는] 하나의 사회적 과정에 의해 결정되며, 따라서 생산자들에게는 관습에 의해 전해 내려온 것처럼 보인다. 단순화를 위해 이하에서는 각종 노동력을 단순노동력으로 간주할 것인데, 이것은 오직 환산의 수고를 덜기 위해서 이다.
가치로서 저고리와 아마포를 고찰할 때 우리가 사용가치의 차이를 무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들의 가치로 표시되는 노동에서 우리는 재봉과 직포라는 노동의 유용형태상의 차이를 무시한다. 사용가치로서의 저고리와 아마포는 특정 목적의 생산활동이 천이나 실과 결합된 것이지만, 가치로서의 저고리와 아마포는 동질노동의 응고물(congealed quantities of homogeneous labour)일 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것들의 가치에 들어 있는 노동도 천이나 실에 대한 생산적 작용에 의해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인간노동력의 지출로서만 의미를 가진다. 재봉과 직포는 질적으로 상이하기 때문에 사용가치로서의 저고리와 아마포의 형성요소로 된다. 그러나 재봉과 직포의 특수한 질이 무시되고 양자가 인간노동이라는 동일한 질을 가지는 한, 제봉과 직포는 저고리와 아마포의 가치의 실체를 형성한다.
그러나 저고리와 아마포는 가치일반(價値一般)일 뿐 아니라 일정한 크기의 가치이며, 우리의 가정에 의하면, 1개의 저고리는 10미터 아마포의 두 배의 가치를 가진다. 가치량價値量)의 이와 같은 차이는 무엇에 기인하는가? 아마포는 저고리에 들어 있는 노동의 절반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리하여 저고리의 생산에는 아마포의 생산에 걸리는 시간보다 두 배나 길게 노동력이 지출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품에 투하되어 있는 노동은 사용가치와의 관련에서는 질적으로만 고려되고, 가치와의 관련에서는 [노동이 벌써 순전한 인간 노동으로 환원되어 있으므로] 양적으로만 고려된다. 전자의 경우에는 노동이 '어떻게' 수행되며, 또 '무엇을' 생산하는가가 문제로 되며, 후자의 경우에는 노동력이 '얼마나' 지출되는가, 즉 노동의 계속시간이 문제로 된다. 상품 가치의 크기는 그 상품에 들어 있는 노동량만을 표시하기 때문에, 상품들은 어떤 일정한 비율을 취하면 그 가치가 등일하게 된다.
만약 저고리의 생산에 필요한 일체의 유용노동의 생산성이 변하지 않는다면, 생산된 저고리의 가치량은 저고리의 양에 비례해 증가할 것이다. 만약 1개의 저고리가 X일(日)의 노동을 대표한다면, 2개의 저고리는 2X일의 노동을 대표하게 된다. 그런데 저고리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이 두 배로 증가하거나 절반으로 감소한다고 가정하면, 전자의 경우에는 1개의 저고리가 미전의 2개의 저고리의 가치를 가지게 될 것이며, 후자의 경우에는 2개의 저고리가 이전의 1개의 저고리의 가치밖에 가지지 못할 것이다. 비록 두 경우에 1개의 저고리가 변함없이 동일한 편의를 제공하고, 저고리에 들어 있는 유용노동이 변함없이 유용하더라도, 그렇다. 어쨌든 저고리의 생산에 지출된 노동량(勞動量)이 변한 것이다.
상품의 양적 증가는 그 자체로 물적 부(富)의 증가이다. 2개의 저고리는 1개의 저고리보다 더 많은 물적 부다. 왜냐하면 2개의 저고리는 두 사람을 입힐 수 있지만 1개의 저고리는 오직 한 사람을 입힐 수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구 물적 부의 양적 증대가 그 가치량의 감소를 동반할 수 있다. 이러한 모순되는 운동은 노동의 이중성에서 발생한다. '생산성'(productivity)은 물론 언제나 구체적 유용노동(concrete useful labour)의 생산성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어떤 특수한 생산활동이 주어진 시간에 주어진 목표를 얼마나 잘 달성하는가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용노동은 그 생산성의 상승 또는 저하에 비례해서 생산물을 많게나 적게 생산한다. 이와는 반대로, 생산성의 변동은 [가치로 표현되는] 노동 그것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생산성은 구체적 유용형태의 노동의 속성이므로, 노동의 구체적 유용형태가 무시되어 버린다면 생산성은 [가치로 표현되는] 노동과 아무런 관련도 있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동일한 시간에 수행되는 노동은 생산성의 변동과는 관계없이 항상 동일한 가치량을 창조한다. 그러나 생산성이 변동할 때 노동은 동일한 길이의 시간에 상이한 양의 상품을 생산한다. 즉, 생산성이 상승하면 더 많은 상품을, 생산성이 감소하면 더 적은 상품을 생산한다. 그러므로 노동의 성과[따라서 노동에
의해 생산되는 상품량]를 증대시키는 생산성의 상승이, 이 증대된 상품 총량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 총계를 단축시킨다면, 상품 총량의 가치량을 감소시키게 된다. 반대의 경우에는 반대로 된다.
한편으로, 모든 노동은 생리학적 의미에서 인간노동력의 지출이며, 이 동등한 또는 추상적인 인간노동이라는 속성에서 상품의 가치(價値)를 형성한다. 다른 한편으로, 모든 노동은 특수한 합목적적 형태로 인간노동력을 지출하는 것이며, 이러한 구체적 유용노동이라는 속성에서 사용가치(使用價値)를 생산한다.(주석 16: "노동은 가치의 유일하고 정확한 보편적인 척도이며, 모든 시기와 장소에서 상이한 상품들의 가치를 비교할 수 있는 유일한 표준"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애덤 스미스(Adam Smith)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동일한 노동량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노동자에게는 동일한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는 건강 . 체력 . 혈기의 보통 상태에서는, 그리고 숙련 . 기교의 보통 정도에서는, 동일한 노동량에 대해 동일한 분량의 안락 . 자유 . 행복을 희생해야만 한다 (“국부론”, 동아출판사, 상, 43쪽, 39쪽). 한편, 스미스는 여기에서(그러나 모든 곳에서 그런 것은 아니다) 상품의 생산에 지출된 노동량에 의한 가치 결정을 노동의 가치 [임금]에 의한 상품가치의 결정과 혼동하고 있으며, 따라서 동량의 노동은 항상 동일한 가치 [임금]를 가진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동이 상품가치로 표현되는 한, 노동은 노동력의 지출을 의미할 뿐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으나, 이 지출을 그는 다시 안락 . 자유 . 행복의 희생으로만 생각하며 인간의 정상적인 생명활동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 물론 그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근대적 임금노동자다. 주 9)에 인용한 익명의 필자인 스미스의 선행자가 훨씬 더 적절하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이 생활 필수품을 제조하는 데 1주일이 걸렀다....그리고 그것과 교환으로 어떤 다른 물건이 제공된다면, 그는 그 물건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동일한 노동과 시간을 들이게 했는가를 계산함으로써, 그 물건이 자기 물건의 적당한 등가(물)인가를 가장 잘 평가할 수 있다. 여기서 사실상 일어나는 일은, 어떤 사람이 일정한 시간에 어떤 물건을 생산하는 데 지출한 노동이 그와 동일한 시간에 다른 사람이 다른 물건을 생산하는 데 지출한 노동과 교환되는 것이다“(?금리 일반 및 특히 공채이자에 관한 고찰”, p. 39). {엥겔스: 영어에는 노동의 이 두 측면을 표현하는 두 개의 다른 단어가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사용가치를 창조하는, 질적으로 규정된 노동은 work라고 부르며, 가치를 창조하는, 오직 양적으로만 측정되는 노동은 labour라고 부른다.})
제 3 절 가치형태 또는 교환가치
상품은 철. 아마포. 밀 등과 같은 사용가치 또는 상품체의 형태로 세상에 나타난다. 이것이 상품의 평범한 현물형태(現物形態)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상품인 것은 그것들의 이중적인 성격, 즉 사용의 대상임과 동시에 가치의 담지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오직 이중적 형태(현물형태와 가치형태)를 가지는 경우에만 상품으로 나타난다. 다시 말해 상품이라는 형태를 가지게 된다.
상품의 가치로서의 객관적 실재는 우리가 "그것을 붙잡을 수 없다"는 점에서 과부 퀵클리(Dame Quicly)와는 구별된다.(역자 주: 세익스피어, ?헨리 4세?, 제1부, 제3막, 제3장.) 가치로서의 상품의 객관적 실재에는 [상품체의 감각적이고 거친 객관적 실제와는 정반대로] 단 한 분자의 물질도 들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어떤 하나의 상품을 아무리 돌려가며 만지면서 조사해 보더라도 그것이 가치를 가진 물건이라는 것을 알 수 없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모든 상품은 인간노동이라는 동일한 사회적 실체의 표현일 경우에만 가치로서의 객관적 성격을 가지게 된다는 것, 따라서 가치로서의 상품의 객관적 성격은 순수히 사회적인 것이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가치는 오직 상품과 상품 사이의 사회적 관계에서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사실 우리는 상품들의 교환가치 또는 교환관계로부터 출발해 상품 속에 숨어 있는 가치를 찾아냈다. 이제 우리는 다시 가치의 이 현상형태로 되돌아가야 하겠다.
상품들은 그 사용가치의 잡다한 현물형태와 뚜렷이 구별되는 하나의 공통적인 가치형태[즉, 화폐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모른다 하더라도]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부르주아 경제학이 일찍이 시도조차 하지 못했던 것을 수행해야 한다. 즉, 이 화폐형태의 발생기원을 밝혀야 한다. 다시 말해, 상품들의 가치관계에 포함되어 있는 가치표현의 발전을 그 가장 단순한, 거의 눈에 띄지 않는 형태로부터 휘황찬란한 화폐형태에 이르기까지 추적해야 한다. 이것이 달성될 때 화폐의 신비는 곧 사라질 것이다.
가장 단순한 가치관계는 두말할 것도 없이 어떤 상품과 다른 종류[그것이 어떤 것이든]의 한 상품과의 가치관계이다. 그러므로 두 상품의 가치들 사이의 관계는 한 상품의 가치의 가장 단순한 표현을 제공한다.
A. 단순한, 개별적인 또는 우연적인 가치형태
X량의 상품 A=Y량의 상품 B
또는, X량의 상품 A는 Y량의 상품 B와 가치가 같다.
(20미터의 아마포=1개의 저고리
또는, 20미터의 아마포는 1개의 저고리와 가치가 같다. )
1. 가치표현의 두 극(極: pole): 상대적 가치형태와 등가형태
모든 가치형태의 비밀은 이 단순한 가치형태 속에 숨어 있다. 그러므로 이 가치형태의 분석이 우리의 중요한 난관이다.
종류가 다른 두 상품 A와 B(우리의 예에서는 아마포와 저고리)는 여기서 분명히 두 개의 서로 다른 역할을 한다. 아마포는 자기의 가치를 저고리로 표현하며, 저고리는 이러한 가치표현의 재료가 된다. 제1상품은 능동적 역할을 하며, 제2상품은 수동적 역할을 한다.(역자 주: 20미터의 아마포를 가진 사람이 시장에서 1개의 저고리를 주면 자기의 아마포를 팔겠다고 외치는 상황을 상상하면 이해하기 쉽다. 이 경우 저고리를 가진 사람은 틀림없이 아마포를 가질 수 있다.) 제1상품은 자기의 가치를 상대적 가치로 표현한다. 바꾸어 말해, 그 상품은 상대적 가치형태로 있다. 제2상품은 등가(물)(等價: equivalent)로서 기능한다. 다시 말해, 그 상품은 등가형태로 있다.
상대적 가치형태와 등가형태는 상호 의존하고 상호 제약하는 불가분의 계기들이지만, 그와 동시에 상호 배제하는 또는 상호 대립하는 극단들[즉, 가치표현의 두 극]이다. 이 두 극은 가치표현에 의해 상호관련 맺는 상이한 상품들이 맡는다. 예를 들어 아마포의 가치를 아마포로 표현할 수는 없다. 20미터의 아마포=20미터의 아마포는 결코 가치표현이 아니다. 이 등식이 의미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그 반대의 것이다. 즉,20미터의 아마포는 20미터의 아마포[즉, 사용대상으로 고찰한 아마포의 일정량]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마포의 가치는 상대적으로만 [다시 말해 다른 상품으로만] 표현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아마포의 상대적 가치형태는 어떤 다른 상품이 등가형태로 아마포와 대면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다른 한편, 등가(물)의 역할을 하는 다른 상품은 동시에 상대적 가치형태로 있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다른 상품은 자신의 가치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제1상품의 가치를 표현하는 재료를 제공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20미터의 아마포=1개의 저고리, 즉 20미터의 아마포는 1개의 저고리와 가치가 같다는 표현은, 1개의 저고리=20미터의 아마포, 즉 1개의 저고리는 20미터의 아마포와 가치가 같다는 역의 관계를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저고리의 가치를 상대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등식을 거꾸로 놓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저고리 대신 아마포가 등가(물)로 된다. 따라서 동일한 상품은 동일한 가치표현에서는 동시에 두 형태를 취할 수 없다. 두 형태는 정반대의 것으로 서로 배제한다.
어떤 상품이 상대적 가치형태로 있는가 아니면 반대로 등가형태로 있는가는 오로지 가치표현에서 그 상품이 차지하는 현실적인 위치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해, 그 상품이 자기의 가치를 표현하는 상품인가 또는 남의 가치를 표현해 주는 상품인가에 달려 있다.
2. 상대적 가치형태
(a) 상대적 가치형태의 내용
한 상품의 가치의 단순한 표현이 어떻게 두 상품의 가치관계 속에 숨어 있는가를 해명하기 위해서는 이 가치관계를 우선 그 양적 측면으로부터 완전히 떠나 고찰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보통 이와 정반대의 연구방법을 취해, 가치관계에서 두 가지 상품의 일정한 양이 서로 등치되는 비율만을 본다. 그들은 이때 상이한 물건들의 크기는 동일한 단위로 환원된 뒤에야 비로소 양적으로 비교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동일한 단위로 표현했을 때에만 그 물건들의 크기는 공통분모를 가지며 따라서 서로 비교할 수 있는 것이다.(역자 주: 베일리(S. Baily)와 같이 가치형태의 분석에 전념해온 소수의 경제학자들이 아무런 성과도 거둘 수 없었던 것은, 첫째 들이 가치형태를 가치 자체와 혼동했기 때문이고, 둘째 그들이 실무적 부르주아의 조잡한 영향하에서 처음부터 오로지 가치형태의 양적 측면에만 주의를 돌렸기 때문이다. “양(量)에 대한 지배가....가치를 형성한다"(베일리, ?화폐와 그 가치변동?, 런던, 1837년, p. 11).)
20미터의 아마포=1개의 저고리든, 20미터의 아마포=20개의 저고리든, 또는 20미터의 아마포=X개의 저고리든, 다시 말해, 일정한 양의 아마포가 다수의 저고리와 가치가 같든 소수의 저고리와 가치가 같든, 그러한 비율의 존재 자체는 가치량(價値量)으로서는 아마포와 저고리가 동일한 단위의 표현들이며 동일한 성질을 가진 물건들이라는 것을 항상 전제하고 있다. 아마포=저고리라는 것이 이 등식의 기초이다.
그러나 질적으로 등치되는 이 두 상품이 동일한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 등식에서는 아마포의 가치만이 표현될 뿐이다. 어떻게 표현되는가? 아마포가 자신의 '등가(물)', 또는 자신과 '교환될 수 있는 물건'인 저고리와의 관계를 통해 자기의 가치를 표현한다. 이 관계에서 저고리는 가치의 존재형태(즉, 가치의 물적 형상)로 간주된다. 왜냐하면, 저고리는 오직 그러한 것으로서만 아마포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 관계에서 아마포 자신의 가치로서의 존재가 독립적인 표현을 얻는다. 왜냐하면, 오직 가치초서만 아마포는 저고리[등가이자 자기와 교환될 수 있는 물건]와 관계를 몇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화학으로부터 예를 빌린다면, 부티르산과 포름산 프로필은 서로 다른 물질이다. 그러나 이 둘은 모두 동일한 화학적 실체인 탄소(C)와 수소(H)와 산소(0)로, 그것도 동일한 비율[즉, C4H8O2)로 구성되어 있다. 이제 만약 부리르산이 포름산 프로필과 등치된다면, 이 관계에서는 첫째로 포름산 프로필은 C2의 존제형태에 지나지 않으며, 둘째로 부티르산도 역시 C4H8O2 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이와 같이 부티르산을 포름산 프로필과 등치시킴으로써 우리는 그것들의 물적 형태와는 다른 화학적 구성을 표현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가치로서의 상품은 인간노동의 단순한 응고물이라고 말할때, 우리의 분석은 상품을 추상적 가치의 차원으로 환원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 현물형태와는 다른 가치형태를 상품에게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제1상품의 제2상품에 대한 가치관계에서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여기에서는 제1상품의 가치성격이 제2상품에 대한 자기 자신의 관계를 통해 표면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예컨대 우리는 가치물(價値物: a thing of value)로서의 저고리를 아마포와 등치시킴으로써 저고리에 들어 있는 노동을 아마포에 들어 있는 노동과 등치시킨다. 저고리를 만드는 재봉과 아마포를 만드는 직포는 그 종류가 다른 구체적 노동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재봉을 직포에 등치시키는 것은 사실상 재봉을 두 가지 노동에서 진실로 똑같은 것 [즉, 인간노동이라는 양쪽에 공통된 성격]으로 환원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직포도 또한 [가치를 짜는 한] 재봉과 구별되지 않으며 따라서 추상적 인간노동일 뿐이라는 것을 말하는 우회적 방식이다. 상이한 상품들 사이의 등가의 표현이 상이한 상품들에 들어 있는 각종 노동을 그것들에 공통된 것[즉, 인간노동 일반]으로 실제로 환원하고 있기 때문에 가치형성 노동의 독자적인 성격이 드러나게 된다.(주석 18: 페티에 이어 가치의 성질을 파악한 최초의 경제학자 중 한 사람이었던 유명한 프랭클린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상업이란 일반적으로 한 노동을 다른 노동과 교환하는 행위에 불과하므로 모든 물건의 가치는....노동에 의해 가장 정당하게 측정된다"(?프랭클린 저작집?, 스팍스 편, 보스턴, 1836년, 제2권, p. 267). 프렝클린은 모든 물건의 가치를 '노동'으로 측정함으로써 교환되는 노동 종류들 사이의 차이를 사상(捨象)하며 그것들을 동일한 인간노동으로 환원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의식하지 않은채 그것을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처음에는 어떤 ‘한 노동’에 관해 말하고, 다음에는 ‘다른 노동’에 관해 말하고, 끝으로 모든 물건의 가치와 실체로서는 아무런 수식어 없는 ‘노동’에 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마포의 가치를 형성하는 노동의 독특한 성격을 표현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인간노동력이 유동상태에 있는 것[즉, 인간노동]은 가치를 창조하지만 그 자체가 가치는 아니다. 인간노동은 어떤 대상의 형태로 응고된 상태에서만 가치로 된다. 인간노동의 응고물인 아마포 가치는 [아마포 그 자체와는 물적으로 구별되며 또 동시에 아마포와 기타 모든 상품에 공통된] 하나의 '객관적 실체'로서 표현될 수 있을 뿐이다. 이 문제는 벌써 해결되었다.
저고리에 대한 아마포의 가치관계에서 저고리는 질적으로 아마포와 같은 것(같은 종류의 것)으로 간주되는데, 그것은 저고리가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저고리는 가치가 표현되는 물건[즉, 가치를 감촉할 수 있는 현물형태로 표현하는 물건]이다. 그러나 저고리 그 자[상품인 저고리의 물체]는 순수히 사용가치다. 저고리 그 자체가 가치를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임의의 아마포 한 조각이 가치를 표현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왜나하면, 상품은 자기의 가치를 가치 관계 속에서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이 사실은 저고리가 아마포와의 가치관계 안에 있을 때에는 그 외부에 있을 때보다 큰 의의를 가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마치 약간의 사람들이 금으로 장식된 제복을 입을 때에는 그것을 입지 않을 때보다 큰 중요성을 지니게 되는 것과 같다.
저고리의 생산에는 실제로 재봉이라는 형태로 인간의 노동력이 지출되었다. 따라서 저고리에는 인간노동이 쌓여 있다. 이 측면에서 본다면, 저고리는 '가치의 담지자(擔持者)'이다. 물론 이러한 저고리의 속성은 저고리가 아무리 닳아 얇아져도 들여다보이는 것은 아니다. 아마포와의 가치관계에서 저고리는 이러한 자격[즉, 구체적 형상을 띠고 있는 가치 또는 가치체(價値體: body of value)]으로 역할한다. 저고리가 단추를 채우고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마포는 그 속에 있는 아름다운 동류의식[가치라는 동류의식]을 느낀다. 그러나 아마포에 대해 저고리가 가치를 대표하려면 아마포에게 있어 가치가 저고리의 형태를 취해야만 한다. 그것은 마치 개인 A가 개인 B로부터 '국왕(國王)'으로 숭배를 받으려면, B의 눈에 국왕이 A의 육신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더욱이 '국왕'이 교체될 때마다 국왕의 용모와 머리털과 기타 여러 가지가 변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파라서 저고리가 아마포의 등가(물)로 되는 가치관계에서 저고리의 형태는 가치형태로 간주된다. 그러므로 상품 아마포 가치는 상품 저고리의 물체로 표현된다. 즉, 한 상품의 가치는 다른 상품의 사용가치로 표현된다. 사용가치로서 아마포는 저고리와 분명히 구별되는 물건이지만, 가치로서 아마포는 저고리와 같은 것이며, 따라서 저고리처럼 보인다. 이와 같이 아마포는 자기의 현물형태와는 다른 가치형태를 얻는다. 아마포의 가치로서의 존재는 아마포와 저고리와의 동등성으로 나타나는데, 이것은 마치 기독교도의 양(羊)과 같은 성질을 기독교도=신의 새끼양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상품가치의 분석이 이전에 우리에게 말해준 모든 것을, 아마포 자신이 저고리와 교제하게 되자마자 우리에게 또다시 이야기해 주고 있다. 다만 아마포는 자기만 아는 언어, 즉 상품어(商品語)로 자기의 생각을 표현한다. 노동은 인간노동이라는 추상적 속성에서 아마포 자신의 가치를 창조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아마포는 저고리가 자기와 동등하다고 간주되는 경우에만 [즉, 가치일 경우에만] 자기와 동일한 노동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가치로서의 .자기의 고상한 객관적 실재는 자기의 거친 육체와는 다르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아마포는 저고리의 형태로 자기의 가치를 표현하며, 따라서 그 자신도 가치물인 한, 저고리와 추호도 다름이 있다고 말한다. 덧붙여 말해, 상품어도 히브리어 이외에[다소 정확한] 많은 방언들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상품 B를 상품A에 등치하는 것이 상품A의 가치를 표현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나타냄에 있어 독일어의 'Wertsein'[가치가 있다]은 라틴어 계통의 동사 'Vllere','Valer','Valoir'보다 적절하지 못하다. 파리는 확실히 미사를 받을 만하다!
이와 같이 가치관계를 매개로 상품 B의 현물형태는 상품 의 가치형태로 된다. 다시 말해, 상품 B의 물체는 상품 A의 가치의 거울로 된다.(주석 19: 어떤 의미에서 인간도 상품과 같은 상황에 있다. 인간은 손에 거울을 들고 탄생하는 것도 아니며, "나는 나빠"라고 주장하는 피히테(Fichte)류의 철학자로 탄생하는 것도 아니므로, 인간은 우선 다른 사람을 통해서 자신을 보게 된다. 인간 베드로는 [자기와 닮았다고 생각되는] 다른 인간 바울과 관계함으로써 비로소 인간으로서의 자기 자신과 관계하게 된다. 그러나 그렇게 됨으로써 바울은 [바울이라는 온전한 육체를 가진 그대로] 베드로에 대해 인간이라는 종족의 현상형태로 되는 것이다.) 상품 A는 [가치체이자 인간노동의 체현물인] 상품 B와 관계를 맺음으로써, 사용가치 B를 자기 자신의 가치의 표현재료로 삼는다. 상품 A의 가치는 이와 같이 상품 B의 사용가치로 표현되어 상대적 가치 형태를 얻게 된다.
(b) 상대적 가치형태의 양적 규정성
자기의 가치를 표현해야 하는 각 상품은, 예컨대 15부셸의 밀, 100그램의 커피 등등과 같이, 일정한 양의 유용한 물건이다. 이 주어진 상품량에는 인간노동의 일정한 양이 들어 있다. 따라서 가치형태는 가치일반뿐 아니라 양적으로 규정된 가치[즉, 가치량]도 표현해야 한다. 그러므로 상품 A의 상품 B에 대한 가치관계, 아마포의 저고리에 대한 가치관계에서는 저고리라는 상품 종류가 가치체 일반으로 아마포에 질적으로 등치될 뿐 아니라, 일정한 양의 가치체 또는 등가(물)[예컨대 1개의 저고리]이 일정한 양의 아마포[예컨대 20미터의 아마포]에 등치된다.
"20미터의 아마포=1개의 저고리, 즉 20미터의 아마포는 1개의 저고리와 가치가 같다"라는 등식은, 1개의 저고리에는 20미터의 아마포에 들어 있는 것과 똑같은 양의 가치 실체가 들어 있다는 것, 따라서 양쪽의 상품량은 등량의 노동 또는 동일한 노동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20미터의 아마포나 1개의 저고리의 생산에 걸리는 노등시간은 재봉
또는 직포의 생산성이 변동할 때마다 변동한다. 이제 이러한 변동이 가치량의 상대적 표현에 미치는 영향을 한층 더 상세하게 연구해야 한다.
i.아마포의 가치는 변동하는데(주석 20: 여기에서는 '가치'라는 표현을 이미 앞의 몇 곳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양적으로 규정된 가치, 즉 가치량(價値量)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저고리의 가치는 불변인 경우
만약 아마포의 생산에 걸리는 노동시간이 예컨대 아마를 재배하는 토지의 비옥도가 떨어졌기 때문에 두 배로 된다면, 아마포의 가치도 두 배로 될 것이다 20미터의 아마포=1개의 저고리 대신 20미터의 아마포=2개의 저고리로 될 것이다. 왜냐하면, 1개의 저고리는 이제 20미터의 아마포에 드는 노동시간의 반밖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만약 아마포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이 예컨대 토지개량에 의해 반으로 감소한다면, 아마포의 가치도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이에 따라 이제 20미터의 아마포=1/2개의 저고리로 된다.
이와 같이 상품 B의 가치는 불변이라도 상품 A의 상대적 가치[즉, 상품 B로 표현하는 상품 A의 가치]는 상품 A의 가치에 정비례해 상승 또는 하락한다.
ii. 아마포의 가치는 불변인데 저고리의 가치가 변동하는 경우
저고리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이 예컨대 양털의 흉작 때문에두 배로 된다면, 20미터의 아마포=1개의 저고리가 아니라 이제는 20미터의 아마포=1/2개의 저고리로 될 것이다. 반대로 저고리의 가치가 절반으로 떨어진다면 20미터의 아마포=2개의 저고리로 될 것이다. 그러므로 상품 A의 가치는 불변이라도 상품 B로 표현하는 상품 A의 상대적 가치는 상품 B의 가치변동에 반비례해 하락 또는 상승한다.
i과 ii의 여러 가지 경우를 비교해 보면, 상대적 가치의 동일한 양적 변동이 정반대의 원인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컨대 20미터의 아마포=1개의 저고리라는 등식이 20미터의 아마포=2개의 저고리로 되는 것은, 어떤 때는 아마포의 가치가 두 배로 되기 때문이고, 또 어떤 때는 저고리의 가치가 절반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등식이 20미터의 아마포=1/2개의 저고리로 되는 것은, 어떤 때는 아마포의 가치가 절반으로 떨어지기 때문이고, 또 어떤 때는 저고리의 가치가 두 배로 등귀하기 때문이다.
iii. 아마포와 저고리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량이 동시에 동일한 방향으로 그리고 동일한 비율로 변동하는 경우
이 경우 이 상품들의 가치가 아무리 변동하더라도 여전히 20미터의 아마포=1개의 저고리다. 이 상품들의 가치변동은 이 상품들을 [가치가 변하지 않은] 제3의 상품과 비교할 때에만 드러난다. 만약 모든 상품의 가치가 동시에 동일한 비율로 상승하거나 하락한다면, 그 상품
들의 상대적 가치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 경우 상품가치의 현실적인 변동은 동일한 노동시간에 생산되는 상품량이 이전에 비해 더 많은가 더 적은가로 드러날 것이다.
iv. 아마포와 저고리 각각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즉, 그것들의 가치]이 동시에 동일한 방향이면서 서로 상이한 정도로, 또는 반대방향으로 변동하는 경우
이와 같은 각종 조합이 한 상품의 상대적 가치에 주는 영향은 i, ii, iii의 경우를 적용해 간단히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가치량의 현실적 변동은 가치량의 상대적 표현[즉, 상대적 가치의 크기]에 명확하고 완전하게 반영되지는 않는다. 한 상품의 상대적 가치는 자기의 가치가 불변이라도 변동할 수 있으며, 또한 자기의 가치가 변동하더라도 여전히 불변일 수도 있다. 끝으로, 그 상품의 가치량과 이 가치량의 상대적 표현이 동시에 변동하더라도 그 변동
이 반드시 일치하지도 않는다.(주석 21: 가치량과 그 상대적 표현 사이의 이와 같은 불일치를 속류경제학은 [늘 그랬던 것처럼 교묘하게 이용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A와 교환되는 B가 등귀하기 때문에, A에 지출되는 노동이 이전에 비해 감소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A가 하락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만 한다면, 당신들의 일반적 가치이론은 붕괴할 것이다....만약 A의 가치가 B에 대해 상대적으로 상승하는 결과 B의 가치가 A에 대해 상대적으로 하락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한 상품의 가치는 언제나 거기에 체화된 노동량에 의해 규정된다는 리카도의 대명제의 토대는 무너지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A의 생산비 변동이 [A와 교환되는 B에 대한] 자기 자신의 가치를 변경시킬 뿐 아니라, [B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량에는 아무런 변동도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A에 대한 B의 가치까지도 변경시킨다면, 어떤 상품에 지출된 노동량이 그 상품의 가치를 규제한다는 학설뿐 아니라 상품의 생산비가 그것의 가치를 규제한다는 학설도 무너지기 때문이다"(브로드허스트[J. Broadhurst], ?정치경제학?, 런던, pp. 11, 14). 브로드허스트는 마찬가지로 다음과 같은 엉터리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10/20나 10/50이나 10/100 등의 분수를 보라. 10이라는 수는 언제나 불변이지만, 20, 50, 100에 대한 10의 상대적 크기는 끊임없이 감소한다. 따라서 어떤 정수(整數)[예를 들어 10]의 크기는 거기에 포함되어 있는 1이라는 단위 수에 의해 '규제'된다는 대원칙은 무너지게 된다고.)
3. 등가형태
이미 본 바와 같이, 상품 A(아마포)는 자기의 가치를 자기와는 다른 종류의 상품 B(저고리)의 사용가치로 표현함으로써, 상품 B에 하나의 독특한 가치형태[즉, 등가(물)이라는 가치형태]를 부여한다. 상품 아마포는, 저고리가 자기의 현물형태와는 구별되는 가치형태를 취하지 않으면서도 아마포와 등치될 수 있다는 사실을 통해, 가치로서의 자기자신의 존재를 외부에 드러낸다. 저고리는 직접 아마포와 교환될 수 있는데, 이러한 형식을 통해 아마포는 사실상 가치로서의 자기 자신의 존재를 표현한다 따라서 어떤 상품이 등가형태(等價形態)로 있다면, 등가형태의 상품은 다른 상품들과 직접 교환될 수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어떤 하나의 상품종류[예컨대 저고리]가 다른 상품종류[예컨대 아마포]를 위해 등가(물)로 역할하며, 그리하여 아마포와 직접 교환될 수 있는 독특한 속성을 획득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의해 저고리와 아마포가 서로 교환되는 비율이 주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 비율은 아마포의 가치량이 주어진 것이라면 저고리의 가치량에 의해 결정된다. 저고리가 등가(물)로 표현되고 아마포가 상대적 가치로 표현되든, 또는 반대로 아마포가 등가(물)로 표현되고 저고리가 상대적 가치로 표현되든, 저고리의 가치량은 여전히 저고리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 [저고리의 가치형태와는 관계없이] 규정된다. 그러나 저고리가 가치표현에서 등가(물)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면, 저고리의 가치는 양적으로 표현될 수 없으며, 저고리는 가치등식에서 사용가치의 일정량으로 나타날 뿐이다.
예컨대, 40미터의 아마포는 얼마의 가치가 있는가? 2개의 저고리와 같다. 상품종류인 저고리가 여기에서는 등가(물)의 역할을 하며, 사용가치인 저고리가 아마포에 대해 가치체로서 인정되고 있으므로, 일정량의 저고리는 아마포의 가치량을 표현하는 데 충분하다. 그러므로 2개의 저고리는 40미터 아마포의 가치량을 표현할 수 있지만 결코 자기 자신의 가치량을 표현할 수는 없다. 가치등식에서 등가(물)는 항상 어떤 물건[어떤 사용가치]의 양의 형태만을 취한다는 사실을 피상적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베일리(S. Bailey)나 그의 선행자 . 후계자의 다수는 가치표현에서 오직 양적 관계만을 보는 오류를 범했다. 그런데 사실 어떤 상품이 등가(물)로 역할할 때, 그 상품가치의 양적 크기는 표현되고 있지 않다.
등가형태를 고찰할 때 눈에 띄는 첫째 특징은 사용가치가 자기의 대립물인 가치의 현상형태로 된다는 점이다.
상품의 현물형태가 가치형태로 되는 것이다. 그러나 주의하라. 이러한 전환을 상품 B(저고리나 밀 또는 철)가 겪는 것은, 임의의 다른 상품 A(아마포 등)가 상품 B와 가치관계를 맺기 때문이며 그리고 오직 이 가치관계 만에서의 일이다. 어떤 상품도 자기 자신에 대해 등가(물)로 관계를 맺을 수 없으며, 따라서 자기 자신의 현물형태를 자기 자신의 가치의 표현으로 삼을 수는 있기 때문에, 상품은 반드시 다른 상품을 등가(물)로 삼아 그것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 즉, 다른 상품의 현물형태를 자기 자신의 가치형태로 삼아야 한다.
이것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상품체로서의 싱품[즉, 사용가치로서의 상품]을 측정하는 데 사용되는 척도를 예로 들어보자. 덩어리 사탕은 물체인 까닭에 무겁고 따라서 일정한 무게를 가지고 있으나, 사람들은 그 무게를 직접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손으로 감지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무게가 미리 확정되어 있는 각종의 쇠조각[저울 추]을 가져온다. 추(錘)의 물체형태는 그 자체로 보면 덩어리 사탕과 마찬가지로 무게의 현상형태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덩어리 사탕을 무게로 표현하기 위해 우리는 사탕을 추와의 중량관계에 놓는다. 이 관계에서 추는 무게 이외에는 아무 것도 표시하지 않는 하나의 물체로 기능한다. 그러므로 추의 크기는 사탕의 무게를 측정하는 데 역할하며, 덩어리 사탕에 대해 오직 무게의 화신(化身) 또는 무게의 현상형태를 대표한다. 추가 이러한 역할을 하는 것은 [그 무게가 측정되어야 할] 사탕 또는 어떤 물체가 추와 맺는 관계의 내부에서뿐이다. 만약 이 두 물체가 모두 무게를 가지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이러한 관계를 맺을 수 없을 것이며, 따라서 그것들 중의 한 쪽이 다른 쪽의 무게를 표현할 수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이 두 물체를 저을 위에 놓을 때, 우리는 그들이 무게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며, 따라서 일정한 비율을 취하면 동일한 무게를 가진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추라는 물체가 무게의 척도로서 덩어리 사탕과의 관계에서 오직 무게만을 대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가치표현에서는 저고리라는 물체가 아마포와의 관계에서 오직 가치만을 대표한다.
그러나 유사성은 여기에서 끝난다. 덩어리 사탕의 무게표현에서 추는 두 물체에 공통된 자연적 속성, 즉 그 무게를 대표하고 있지만, 아마포의 가치표현에서 저고리는 두 물건의 그 어떤 초자연적 [순수히 사회적인] 속성, 즉 그들의 가치를 대표한다.
어떤 한 상품[예컨대 아마포]의 상대적 가치형태(相對的 價値形態)는 아마포의 가치존재를 아마포의 물체나 그 속성들과는 전혀 다른것으로 [예컨대 저고리와 공통점이 있는 그 무엇으로] 표현하고 있으므로 이 표현 자체가 벌써 그 배후에 어떤 사회적 관계가 숨어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등가형태(等價形態)는 이것과는 반대이다. 등가형태에서는 어떤 상품체(예컨대 저고리)가 있는 모습 그대로 가치를 표현하며, 따라서 처음부터 가치형태이다. 물론 이것은 상품인 저고리가 상품인 아마포에 대해 등가(물)로 되어 있는 가치관계 안에서만 그러하다.(주석 22: 이와 같이 상호관계에 의거한 규정은 일반적으로 기묘하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왕인 것은 오직 다른 사람들이 그를 받들어 신하로서 복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반대로 그가 왕이기 때문에 자기들은 신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물건의 속성은 그 물건과 다른 물건과의 관계로부터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러한 관계 속에서 실증되는 데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저고리가 무게가 있다든가 체온을 보존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등가형태[즉, 다른 상품과의 직접적 교환가능성이라는 속성]를 처음부터 가지고 있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 등가형태의 신비성이 이로부터 발생하는데, 경제학자의 조잡한 부르주아적 안목은 이 등가형태가 완성되어 화폐로 자기 앞에 나타날 때 비로소 이 신비성에 주목하게 된다. 그때에 경제학자는 금과 은의 신비성을 타파하기 위해 금과 은을 그보다 털 찬란한 상품들로 대체하며 일찍이 상품의 등가(물)로 역할한 바 있는 일체의 보통 상품들의 목록을 항상 새로운 만족감으로 암송하곤 한다. 그는 20미터의 아마포=1개의 저고리라는 가장 단순한 가치표현이 벌써 우리가 풀어야 할 등가형태의 수수께끼를 제기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등가(물)의 역할을 하는 상품체는 항상 추상적인 인간노동의 체현물로 나타나고, 항상 특정의 유용한 구체적 노동의 생산물이다. 그리하여 구체적 노동이 추상적 인간노동을 표현하게 된다. 예컨대 저고리가 단순히 추상적 인간노동의 실현이라면, 저고리에 실제로 실현되어 있는 재봉은 단순히 추상적 인간노동의 실현형태다. 아마포의 가치표현에서, 재봉의 유용성은 의복 [그리하여 인품(人品)]을 만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가치[즉, 아마포의 가치에 대상화되어 있는 노동과 조금도 구별되지 않는 노동의 응고물]로 안정하는 물체를 만드는데 있다. 가치의 거울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재봉 그 자체는 인간노동이라는 그 추상적 속성 이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반영해서는 안 된다.
인간의 노동력은 재봉의 형태로도 직포의 형태로도 지출된다. 그러므로 두 형태는 인간노동이라는 일반적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어떤 경우[예컨대 가치의 생산]에는 오직 이 관점에서만 고찰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조금도 신비로운 것이 없다. 그러나 상품의 가치표현에서는 사정이 완전히 달라진다. 예를 들어, 직포는 직포라는 구체적 노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노동이라는 일반적 속성에 의해 아마포의 가치를 형성한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우리는 아마포의 등가(물)을 생산하는 구체적 노동(즉, 재봉]을 직포와 대비시키고 있다. 지금 재봉은 추상적 인간노동의 눈에 보이는 실현형태로 나타난다.
등가형태의 제2의 특징은 이와 같이 구체적 노동이 그 대립물인 추상적 인간노동의 현상형태로 된다는 것이다.
이 구체적 노동(즉, 재봉)이 무차별적인 인간노동의 표현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이 노동은 다른 노동[즉, 아마포에 들어 있는 노동]과 동일하다는 성질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이 노동은 다른 모든 상품생산 노동처럼 사적 노동이지만 또한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형태의 노동인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노동은 [다른 상품들과 직접 교환될 수 있는] 생산물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적 노동이 그 대립물의 형태[즉,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형태의 노동]로 된다는 것이 등가형태의 제3의 특징이다.
등가형태의 마지막 두 특징은 [사고(恩考)형태 .사회형태 . 자연형태와 함께 가치형태를 처음으로 분석한] 저 위대한 연구자에게 거슬러 올라가면 한층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 사람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선 상품의 화폐형태는 단순한 가치형태[즉, 어떤 상품의 가치를 임의의 다른 한 상품으로 표현한 것]가 한층 발전한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명백히 지적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5개의 침대=한 채의 가옥"
이라고 말하는 것은
"5개의 침대=얼마의 화폐"
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
그는 더 나아가 [이러한 가치표현 그 자체를 제공하는] 가치관계는 가옥이 침대와 질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을 조건으로 한다는 것, 그리고 이 감각적으로 다른 물건들은 이와 같은 본질상의 동일성 없이는 [같은 단위로 잴 수 있는 크기로] 서로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통찰하고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교환은 동일성(同一性) 없이는 있을 수 없고, 동일성은 측량(測量)의 공통성 없이는 있을 수 없다. " 그러나 여기에서 그는 난관에 봉착해 가치형태의 더 이상의 분석을 포기하고 있다. "그러나 종류가 서로 다른 물건들이 같은 단위로 측정된다는 것은", 즉 질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은, "실제로는 불가능하다. " 그와 같은 등식은 물건들의 진정한 성질과는 다른 것일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오직 '실제상의 필요를 위한 임시변통'일 따름이다.(역자 주: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니코마쿠스윤리학?, 제5편, 제5장.)
이와 같이 아리스토텔레스는 더 이상 분석할 수 없게 된 것이 무엇인가를 몸소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가치개념의 결여이다. 이 동일한 것[즉, 침대의 가치표현에서 가옥이 침대를 위해 표현하는 그 공통적 실체]은 무엇인가? 그러한 것은 "실제로는 존재할 수 없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없기는 왜 없어? 가옥이 침대와 가옥 모두에서 진실로 똑같은 것을 대표하는 한, 가옥은 침대에 대해 어떤 동일한 것을 표현하게 된다. 바로 그것이 인간노동이다.
상품가치의 형태에서는 일체의 노동은 동등한 인간노동, 따라서 동등한 질의 노동으로 표현된다는 사실을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치형태의 분석으로부터 끌어내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리스사회는 노예노동에 의거하고 있었고, 따라서 인간과 인간노동력의 부등성(不等性: inequality)을 사회의 자연적 토대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체의 노동은 인간노동 일반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경우에만, 동등하며 동일하다는 가치표현의 비밀은, 인간의 동등성(同等性)이라는 개념이 대중의 선입관으로 확립되었을 때 비로소 해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상품형태가 노동생산물의 일반적 형태며, 따라서 상품소유자로서의 인간관계가 지배적인 사회관계로 되는 사회에서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천재는 바로 그가 상품의 가치표현에서 하나의 동등관계를 발견한 데서 훌륭하게 나타나고 있다. 다만, 그가 살고 있던 사회의 역사적 한계 때문에 바로 이 동등관계가 '실제로' 무엇인가를 해명할 수 없었던 것이다.
4. 단순한 가치형태의 총체
어떤 한 상품의 단순한 가치형태는 종류가 다른 한 상품에 대한 가치관계 속에 (즉, 종류가 다른 어떤 상품과의 교환관계 속에) 포함되어 있다. 상품 A의 가치는, 질적으로는, 상품 B가 상품 A와 직접 교환될 수 있다는 사실에 의해 표현되고 있으며, 양적으로는, 일정한 양의 상품 B가 주어진 양의 상품 A와 교환될 수 있다는 사실에 의해 표현되고 있다. 바꾸어 말해, 한 상품의 가치는 자신의 '교환가치'(交換價値)가 주어져야만 독립적인 표현을 얻게 된다. 이 장의 첫 부분에서 우리는 보통 말하는 방식에 따라 상품은 사용가치임과 동시에 교환가치(交換價値)라고 말했지만, 이것은 엄밀히 말하면 옮지 않다. 상품은 사용가치(즉, 유용한 물체)임과 동시에 가치(價値)인 것이다. 상품은, 자기의 가치가 자기의 현물형태와는 구별되는 하나의 독특한 표현형태[즉, 교환가치]를 가지게 될 때, 그 이중성을 드러낸다. 상품은 고립적으로 고찰할 때에는 교환가치라는 형태를 취하는 일이 있고, 그와 종류가 다른 한 상품에 대한 가치관계 또는 교환관계에서만 이 형태를 취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것을 이해하고 있기만 한다면, 앞에서 말한 부정확한 표현방식 [상품은 사용가치임과 동시에 교환가치다]도 유해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간편한 것으로 된다.
우리의 분석에서 증명한 바와 같이, 상품의 가치형태 또는 가치표현은 상품가치의 본성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가치와 가치량이 상품의 교환가치의 표현방식으로부터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이 후자의 사고방식은 중상주의자들(과 그들의 근대적 추종자인 페리에, 가닐 등(주석 23: 페리에(F. L. A. Ferrier: 세관부검사관), ?상업과의 관계에서 고찰한 정부?, 파리, 1805년; 가닐(C. Ganil), ?정치경제학의 체계?, 제2판, 파리, 1821년)이 지니고 있던 망상이었으며, 또한 그들과는 정반대의 입장에 있던 근대의 자유무역론자인 바스티아(Bastiat)나 그의 동료들이 지니고 있던 망상이었다. 중상주의자들은 가치표현의 질적인 측면, 따라서 [화폐를 그 완성형태로 하는] 상품의 등가형태에 중점을 두지만, 이와는 반대로 어떤 가격에서든 자기의 상품을 팔아치우지 않으면 안 되는] 근대의 자유무역 행상인들은 상대적 가치형태의 양적인 측면에 중점을 둔다. 그 결과 그들에게는 상품의 가치 . 가치량은 교환관계의 표현에만 존재하며, 따라서 매일의 상품시세표에만 존재할 뿐이다. 롬바르드가(Lombard Street) [런던의 금융중심지]의 매우 혼란된 관념들을 매우 그럴 듯하게 정리하는 것을 자기의 직책으로 삼고 있는 스코틀랜드사람 매클라우드(Macleod)는 미신적인 중상주의와 개화된 자유무역 행상인 사이의 훌륭한 혼혈아다.
상품 A와 B의 가치관계에 포함되어 있는 상품 A의 가치표현을 더욱 상세하게 고찰하면, 이 관계 안에서는 상품 A의 현물형태는 오직 사용가치의 모습으로, 상품 B의 현물형태는 오직 가치형태[또는 가치의 모습]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상품 안에 숨어 있는 사용가치와 가치 사이의 내적 대립은 하나의 외적 대립을 통해, 즉 두 상품 사이의 관계-자기의 가치를 표현해야 할 한 쪽 상품은 직접적으로는 사용가치로서만 간주되고, 반면에 전자의 가치를 표현해야 할
다른 쪽 상품은 직접 교환가치로서만 간주된다-를 통해 밖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한 상품의 단순한 가치형태는 그 상품 안에 있는 사용가치와 가치 사이의 대립의 단순한 현상형태다.
노동생산물은 어떤 사회제도에서도 유용한 대상이지만, 그것의 생산에 지출된 노동이 그 물건의 '객관적' 속성, 즉 가치로 나타나는 것은 오직 역사적으로 특수한 발전단계에 속하는 일이다. 바로 그러한 발전 단계에서 노동생산물이 상품으로 전환된다. 그러므로 상품의 단순한 가치형태는 동시에 노동생산물의 단순한 상품형태이며, 상품형태의 발전은 가치형태의 발전과 일치하게 된다.
단순한 가치형태가 불충분한 것임은 첫눈에도 명백하다. 그것은 가격형태[상품의 가치를 화폐량으로 표현하는 것]로 성숙하기 전에 일련의 형태변화를 거쳐야 하는 맹아(萌芽)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상품A의 가치를 다른 어떤 상품 B로 표현하는 것은 상품 A의 가치를 자기 자신의 사용가치와 구별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이 표현은 상품 A를 다른 어떤 하나의 상품종류와 교환관계에 놓을 뿐이고, 다른 모든 상품들과 상품 A사이의 질적인 동등성과 양적인 비율을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한 상품의 단순한 상대적 가치형태에는 다른 한 상품의 개별적인 등가형태가 대응한다. 그리하여 아마포의 상대적 가치표현에서 저고리는 이 하나의 상품종류 아마포에 대해서만 등가형태[직접적 교환가능성의 형태]를 취한다.
그러나 단순한 가치형태는 스스로 더 완전한 형태로 이행한다. 물론 단순한 가치형태는 한 상품 의 가치를 하나의 다른 종류의 상품으로 표현할 뿐이다. 그러나 이 제2의 상품이 어떤 종류의 것이든 [즉, 저고리나 쇠나 밀이나 기타 그 무엇이든] 전혀 관계가 없다. 그러므로 상품 A가 다른 어떤 상품종류와 가치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상품 A의 단순한 가치표현들이 여러 가지로 나타나게 된다.(주석 24: 예를 들어 호머(Homer)의 ?일리아드?에는 한 물건의 가치가 일련의 다른 물건들로 표현되고 있다.) 이러한 가치표현의 수는 상품 A와는 다른 상품의 종류 수에 의해서만 제한될 뿐이다. 그러므로 상품 A의 개별적인 가치표현은 무한한 시리즈의 각종의 단순한 가치표현들로 전환된다.
B. 전체적 또는 전개된 가치형태
z량의 상품 A = u량의 상품 B 20미터의 아마포 = 1개의 저고리
또는 = v량의 상품 C 또는 = 10그램의 차
또는 = w량의 상품 D 또는 = 40그램의 커피
또는 = x량의 상품 E 또는 = 1쿼터의 밀
또는 = 기타 등등. 또는 = 2온스의 금
또는 = 1/2톤의 철
또는 = 기타 등등.
1. 전개된 상대적 가치형태
어떤 하나의 상품[예컨대 아마포] 의 가치는 이제 상품세계의 무수한 다른 상품들로 표현된다. 다른 상품체는 어느 것이나 아마포의 가치의 거울로 된다.(주석 25: 그러므로 사람들은 아마포의 가치를 저고리로 표현하는 경우에는 아마포의 저고리가치라고 말하고, 아마포의 가치를 밀로 표현하는 경우에는 아마포의 밀가치라고 말한다. 그와 같은 표현은, 아마포의 가치가 저고리 . 밀 등등의 사용가치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각 상품의 가치는 그것의 교환관계를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각 상품의 가치를.... 그 상품과 비교되는 상대방의 상품이 무엇인가에 따라 그 상품의 밀가치 . 직물가치 등으로 말할 수 있다. 그리하여 상품 종류와 동일한 수의 각종 가치가 있고, 그것들은 모두 동일하게 실질적이며, 또 동일하게 명목적이다"(?가치의 성질, 척도 및 원인에 관한 비판적 논문, 주로 리카도와 그 추종자들의 저작들에 관련해. 의견의 형성과 공표에 관한 시론의 저자의 저?, 런던, 1825년, p. 39). 그 당시 영국에서 큰 소동을 일으킨 이 익명 저서의 저자인 베일리는 동일한 상품가치의 이러한 잡다한 상대적 표현을 제시함으로써 가치에 관한 모든 개념규정의 가능성을 분쇄했다고 망상하고 있었다. 그의 식견의 편협함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그가 리카도이론의 큰 약점을 찔렀다는 사실은 리카도추종자들이 예컨대 ?웨스트민스터 리뷰?에서 그를 공격하면서 나타낸 격분에 의해 증명되고 있다.) 그리하여 이제야 비로소 이 가치 자체가 참으로 무차별적인 인간노동의 응고물로 나타난다. 왜냐하면 이 아마포의 가치를 형성하는 노동은 이제야 다른 어떤 인간노동[그것이 어떤 현물형태를 취하든, 따라서 저고리 . 밀 . 쇠 . 금 어느 것에 대상화되어 있든] 과도 동일한 노동으로 아주 뚜렷하게 표현되기 때문이다. 아마포는 자기의 가치형태를 통해 이제는 단 하나의 다른 상품종류와 사회적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상품세계 전체와 사회적 관계를 맺는다. 상품으로서의 아마포는 상품세계의 한 시민이다. 그와 동시에 아마포의 가치의 무한한 표현시리즈로부터 우리는 아마의 가치는 그것을 나타내는 사용가치의 특수한 형태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1형태(20미터의 아마포=1개의 저고리)에서는 이 두 상품이 일정한 양적 비율로 교환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우연적 사건일 수도 있었다. 이것과는 반대로, 제2형태에서는 이 우연적 현상의 배경[우연적 현상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며 그것을 규정하는 배경]이 곧 드러난다. 아마포의 가치는, 수많은 서로 다른 소유자들에게 속하는 서로 다른 상품들인 저고리. 커피. 철 등 어느 것으로 표현되든, 그 크기가 언제나 같다. 두 개인적 상품소유자 사이의 우연적 관계는 소멸된다. 상품의 교환이 상품의 가치량을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상품의 가치량이 상품의 교환비율(交換比率)을 규제한다는 것이 명백해진다.
2. 특수한 등가형태
저고리 . 차 . 밀 . 철 등의 상품은 어느 것이나 아마포의 가치표현에서는 등가(물), 따라서 가치체(價値體)로 역할한다. 이 상품들 각각의 특정한 현물형태는 이제는 다른 많은 상품과 나란히 하나의 특수한 등가형태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상품체에 들어 있는 각종의 구체적인 유용노동은 이제는 인간노동 일반의 특수한 실현형태 또는 현상형태로 간주된다.
3. 전체적 또는 전개된 가치형태의 결함
첫째, 상품의 상대적 가치표현은 미완성이다. 왜냐하면 상품의 가치를 표시하는 시리즈가 끝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각각의 가치등식이 고리를 이루고 있는 이 사슬은 [새로운 가치표현의 재료를 제공하는] 새로운 상품종류가 등장할 때마다 연장된다. 둘째, 이 사슬은 조각조각 끊어진 잡다한 가치표현의 다채로운 모자이크를 이룬다. 끝으로, 당연히 그렇게 될 수밖에 없지만, 만약 각 상품의 상대적 가치가 이 전개된 형태로 표현된다면, 상품들의 상대적 가치형태는 서로 상이한 무한의 가치표현 시리즈로 된다. 전개된 상대적 가치형태의 결함은 이번에는 거기에 대응하는 등가형태에도 반영된다. 각각의 상품종류의 현물형태가 무수히 많은 등가형태들 중 하나의 특수한 등가형태로 되어 각각의 등가형태가 서로를 배제하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오직 제한적인 등가형태가 있을 뿐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각각의 특수한 등가(물)상품에 들어 있는 특정의 구체적인 유용노동도 인간노동의 특수한 종류일 뿐이며, 따라서 인간노동 일반의 유일한 현상형태는 아니다. 물론
인간노동의 완전한 또는 전체적인 현상형태는 그 특수한 현상형태들의 총체로 구성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고 경우에는 인간노동은 한 개의 통일적인 현상형태를 가지지 못한다.
전개된 상대적 가치형태는 단순한 상대적 가치표현들의 총계, 즉 제1형태에 속하는 여러 등식들의 총계에 지나지 않는다. 예를 들면,
20미터의 아마포 = 1개의 저고리
20미터의 아마포 = 10그램의 차 등등.
그러나 이 등식들은 각각 왼쪽과 오른쪽을 바꾸어 놓은 다음과 같은 등식도 암시하고 있다. 즉
1개의 저고리 = 20미터의 아마포
10그램의 차 = 20미터의 아마포 등등.
사실 어떤 사람이 자기의 아마포를 다른 많은 상품들과 교환하고, 따라서 아마포의 가치를 일련의 다른 상품들로 표현한다면, 필연적으로 다른 상품의 소유자들도 자기들의 상품을 아마포와 교환하고, 따라서 자기들의 여러 가지 상품의 가치를 동일한 제3의 상품, 즉 아마포로 표현하게 된다. 여기서 20미터의 아마포=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