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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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 3월 18일
런던
칼 마르크스
프랑스어판 후기
독자에게
로아(J. Roy)는 될수록 정확한, 심지어 직역하는 식의 번역을 시작해 아주 깨끗하게 완수했습니다. 바로 그의 정확성이 나로 하여금 독자들이 한층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문장을 수정하게 했습니다. 책이 시리즈로 발간됨에 따라 그때그때 수정했기 때문에 수정이 한결같이 면밀하지는 못했고, 따라서 문체가 균일하게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일단 교열작업에 착수했을 때, 나는 원본(독일어 제2판)도 개정해 어떤 논의는 간략하게 하고 어떤 논의는 보충하며 역사적 또는 통계적 자료를 추가하고 비판적 주석을 붙이는 것 등등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따라서 이 프랑스어판에 어떤 문장상의 결함이 있다하더라도, 프랑스어판은 원본과는 독립적인 과학적 가치를 가지므로 독일어판을 읽은 독자들도 이 프랑스어판을 참조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나는 [독일의 경제학 발전과 이 책에서 사용한 방법을 설명한] 독일어 제2판 후기의 발췌문을 아래에 첨부합니다. [여기에서는 생략했음]
1875년 4월 28일
런던
칼 마르크스
제3판 서 문
마르크스는 이 제3판의 출판을 몸소 준비 수가 없었다. 그의 위대함에 그의 적대자들까지도 지금은 머리를 숙이는 위력있는 사상가는 1883년 3월 14일에 죽었다.
40년간에 걸친 나의 가장 훌륭한 벗,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내가 은혜를 입은 벗 마르크스를 잃어버린 나에게 이제 이 제1권 제3판과 또 마르크스가 원고의 형태로 남긴 제2권의 발간을 준비할 의무가 부과되었다. 내가 이 의무의 첫 부분을 어떻게 수행했는가에 대해 여기서 독자에게 보고하고자 한다.
마르크스는 처음에는 제1권 본문의 대부분을 개작하고, 많은 이론적 명제들을 더 명확하게 정식화하고, 새로운 것을 삽입하며, 역사적 . 통계적 자료를 최신의 것으로 만들 것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병환과 제2권의 최종적 편집을 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이것을 단념했다. 가장 필요한 것만을 정정하고, 이 시기에 발간된 프랑스어판(“Le Capital”, par Karl Marx, Paris, Lachatre, 1872-1875)에 이미 실려 있는 보충만을 삽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르크스가 남긴 책들 가운데서 [마르크스 자신이 군데군데 정정했고 또 프랑스어판을 참조하라고 명시한] 독일어판 ?자본론? 한 권이 발견되었고, 또 [마르크스가 새로운 독일어판에 이용하려고 생각한 모든 단락이 정확하게 표시되어 있는] 프랑스어판 한 권이 발견되었다. 이 정정과 보충은 거의 예외없이 "자본의 축적과정"이라는 편?[영어판으로는 제7편과 제8편]에 국한되어 있다. 이 편의 본문은 최초의 초고를 거의 그대로 반영한 부분이었다[비록 다른 편들은 최초의 초고를 근본적으로 개작했지만]. 그러므로 여기에는 문체가 더 생기발랄하며 더 미끈하기는 하나, 다른 부분에 비해 보다 경솔했으며 영어식 어법이 혼용되었고, 군데군데 명확하지 못한 곳이 있었다. 논증의 제시에는 여기저기 들이 있었고 약간의 중요한 점들이 언급될 뿐이었다.
문체에 관해 말하면, 마르크스 자신이 여러 절을 근본적으로 수정했는데, 이 수정과 많은 대화로부터 내가 어느 정도로 영어식 용어와 영어식 어법을 제거해야 할 것인가를 알 수 있었다. 물론 마르크스가 살아 있다면 추가와 보충을 더욱 검토했을 것이며, 유창한 프랑스어를 자기의 간결한 독일어로 바꾸어 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들을 원래의 본문과 가장 적합하도록 번역하는 것에 만족해야만 했다.
이 제3판에서 나는, 저자 자신도 정정했으리라고 확신하지 않는 한, 일언반구도 정정하지 않았다. 나는 독일 경제학자들이 흔히 쓰는 통용어들-예컨대 현금을 주고 타인의 노동을 얻는 자를 노동[또는 일]공급자라고 부르며, 삯을 받고 자기 노동을 제공하는 자를 노동[또는 일]수취자라고 부르는 이 잠꼬대 같은 말-을 ?자본론?에 도입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프랑스어에서도 역시 일상생활에서 '일'이라는 의미로 '노동'이라는 말이 사용된다. 그러나 경제학자가 자본가를 노동
공급자, 노동자를 노동수취자라고 부른다면, 프랑스 사람들도 응당 그 경제학자를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나는 원문에서 계속 사용하고 있는 영국식 화폐와 도량형을 신독일의 그것들로 전환하지 않았다. ?자본론? 제1판이 나왔을 당시 독일에는 1년의 날짜 수만큼이나 많은 종류의 도량형이 있었다. 그 위에 또 두 종류의 마르크가 있었고(라이히스 마르크[Reichsmark]는 당시에는 30년대 말에 그것을 고안해 낸 죄트베르[Soetbeer]의 머리 속에서만 통용되고 있었다), 두 증류의 길더(Gulden)가 있었고, 적어도 세 종류의 탈러(taler)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노이에스 쯔바이드리텔(neues Zweidrittel)이었다. 자연과학은 미터제도가 지배하고 세계시장은 영국 도량형이 지배했다. 이러한 조건하에서 [그 사실적 예증들을 거의 전적으로 영국의 산업사정에서 취해 오지 않을 수 없었던] 이 책에서 영국의 도량형 단위를 이용한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세계시장의 사정들이 거의 변경되지 많았고, 특히 가장 중요한 공업부문, [즉, 철공업과 면공업]에서는 현재도 거의 전적으로 영국의 도량형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거의 이해되고 있지 않은 마르크스의 인용방식에 관해 약간 말하려 한다. 인용이 사실의 순수한 진술(예: 영국청서로부터의 인용)이라면 그 인용은 문헌상의 단순한 예증이다. 그러나 다른 경제학자들의 이론적 견해가 인용되는 경우에는 사정이 빠르다. 이 경우의 인용은, 자기의 이론적 전개과정에서 형성된 경제사상이 어디에서, 언제, 누구에 의해 처음으로 명백하게 표명되었는가를 지적하려 할뿐이다. 이때 고려되는 것은, 문제의 경제학적 견해가 학문의 역사에서 의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그 당시의 경제상태의 다소 적절한 이론적 표현이라는 것뿐이다. 그 견해가 마르크스의 입장에서 보아 아직도 절대적 또는 상대적 타당성을 가지고 있는가, 또는 이미 지나가 버린 것인가는 전혀 중요하지 많다. 그러므로 이러한 인용들은 오직 본문에 대한 부수적인 주석, 경제학의 역사에서 빌어온 주석에 불과하며, 경제이론 분야에서 달성한 몇 개의 중요한 진보의 연대와 창시자를 확정해 준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경제학과 같은 학문에서는 특히 필요했다. 왜냐하면, 이때까지 경제학의 역사가들은 출세주의자들의 특징인 편파적인 지식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독자들은 왜 마르크스가, 제2판 후기에서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독일 경제학자들을 매우 예외적으로만 인용하게 되었는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제2권은 1884년 중에 발간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제2권은 1885년에 발간되었다].
1883년 11월 7일
런던
프리드리히 엥겔스
영어판 서 문
?자본론?의 영어판 출판을 해명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반대로, 이 책에서 전개된 이론이 과거 수년간 영국과 미국의 정기간행물과 시사문제지에서 끊임없이 논의의 대상으로, 공격과 옹호, 해석과 곡해의 대상으로 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왜 영어판이 지금까지 지연되었는가를 설명해야 할 것이다.
1883년 ?자본론?의 저자가 죽은 뒤 얼마 되지 않아 이 책의 영어판이 실제로 필요하다는 것이 명백하게 되었을 때, [마르크스와 이 서문 필자의 옛 벗이며 아마 누구보다도 이 책의 내용에 정통하고 있는 사람인] 사뮤엘 무어(Samuel Moore)가 [마르크스가 남긴 저작의 관리인들이 그 발간을 열망하고 있던] 번역을 담당할 것을 승낙했다. 나는 그의 원고를 원본과 대조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정정을 가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무어는 자기의 전문사업 때문에 우리 전체가 요망하는 것처럼 빨리 그 번역을 완료할 수 없다는 것이 얼마 되지 않아 판명되었을 때, 우리는 이 번역의 일부를 담당하겠다는 애빌링(Aveling) [마르크스의 막내 사위]의 제의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동시에 마르크스의 막내딸인 애밀링 부인[엘리너]은 인용문들을 원문과 대조하며 또 [마르크스가 영어 저서들과 청서로부터 발췌해 독일어로 번역한] 무수한 인용문을 그 원문대로 회복시키는 일을 하겠다고 제의했다. 애빌링 부인은 이 작업을 몇 개의 불가피한 예외를 제외하고는 완수했다.
이 책의 다음 부분들은 애빌링이 번역했다. (1) 제10장(노동일)과 제11장(잉여가치율과 잉여가치량), (2) 제6편(제19장에서 제22장에 걸치는 임금), (3) 제24장 제4절(잉여가치가....사정들)로부터 제25장 및 제8편 전부(제26장-제33장)를 포함하는 이 책의 마지막까지, (4) 저자의 두 개의 서문* 그 외의 부분은 모두 무어가 번역했다. 이와 같이 각 번역자는 오직 자기 작업부분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며, 나는 작업 전체에 대해 공동책임을 진다.
우리 작업의 토대로 된 독일어 제3판은 1883년에 내가 준비했다. 그 준비에서 나는 [제2판의 어떤 부분을 1872-75년에 발간된 프랑스어판1) 의 것으로 바꾸라는] 저자의 비망록을 이용했다. 제2판 본문에 가한 변경은 [약 10년 전 미국에서 계획했다가 적당한 역자가 없었던 탓으로 포기한] 영어번역판에 대한 마르크스의 일련의 각서에서 지적한 변경과 대체로 일치했다. 이 각서를 뉴저지주 호브켄의 우리의 오랜 벗 조르게(F. A. Sorge)가 우리에게 넘겨주었다. 거기에는 프랑스어판으로부터의 약간의 추가적 삽입이 지적되어 있다. 그러나 이 각서는 독일어 제3판을 위한 최후의 지시보다 여러 해 전의 것이기 때문에 나는 오직 예외적으로만 [주로 그것이 우리들의 곤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경우에만] 이용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원문의 전체 의미 중 어떤 것을 번역에서 희생시켜야 했을 때, 저자 자신은 어떤 것을 희생시켰을까 알기 위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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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겔스는 영어판에서 마르크스의 편과 장의 구분을 다음과 같이 변경시켰다.
한국어 번역판에서는 영어판의 구분을 따랐다.
독일어판 영어판
장 1-3 1-3
4 4-6
5-23 7-25
24 26-32
25 33
편 1-6 1-6
7 7-8
1) ?Le Capital" , par Karl Marx. Traduction de M.J.Roy, entierement revisee par l`auteur, Paris, Lachatre. 이 번역 특히 후반 부분에는 독일어 제2판의 본문에 대한 상당한 정정과 추가가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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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으로, 프랑스어판도 대다수의 어려운 단락들에서 참조했다.
그렇지만 우리가 독자들의 어려움을 가볍게 해 줄 수 없었던 한가지 점이 있다. 그것은 마르크스가 약간의 용어를 일상생활에서 뿐만 아니라 보통 경제학에서 쓰는 것과도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피했다. 과학의 모든 새로운 진보는 그 과학의 용어 혁명을 수반한다. 이것은 화학에서 가장 잘 나타나고 있는데, 화학에서는 용어 전체가 약 20년에 한 번씩 근본적으로 변경되고 있으며, 일련의 서로 다른 명칭으로 부르지 않는 유기화합물은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경제학은 일반적으로 상공업계의 용어들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여 사용하는 것에 만족해 왔는데, 경제학은 그렇게 함으로써 그 용어들이 표현하는 관념들의 좁은 범위 안에 자신을 국한시키고 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예컨대 고전파 경제학은, 이윤과 지대는 생산물 중 노동자가 자기의 고용주에게 제공해야 하는 불불부분(不拂部分: 고용주는 이 부분의 최초의 취득자일 뿐이고 그 궁극의 배타적인 소유자는 아니다)의 분할부분 . 몫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이윤과 지대에 관한 통속적 관념의 한계를 넘지 못했고, 생산물의 불불부분(마르크스가 잉여생산물이라고 부른 부분)을 하나의 전체로서 연구한 적이 없었으며, 그리하여 이 불불부분의 기원과 성질에 관해, 또는 그 가치적 분배를 규제하는 법칙에 관해 명백하게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농업과 수공업을 제외하고는 모든 공업이 구별없이 매뉴팩쳐라는 용어에 포괄되어 왔다. 그리하여 경제사의 본질적으로 다른 두 개의 큰 시기-즉, 손 노동의 분업에 근거하고 있는 진정한 매뉴팩쳐의 시기와 기계의 사용에 근거하고 있는 근대적 공업의 시기-사이의 구별이 없어졌다. 그러므로 근대적 자본주의 생산을 인류 경제사의 과도적 단계로 보는 이론은 [이 생산형태를 영원하고 궁극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저술가들의 상용용어와는 다른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저자의 인용방법에 대해 한 마디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 아닐 것이다. 대다수의 경우 인용문은 본문의 주장을 옹호하는 문헌적 증거로 역할한다. 그렇지만 일정한 명제가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처음으로 명백하게 표명되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경제저술가로부터 구절들이 인용되는 경우도 많다. 인용되는 명제가 그 당시에 지배적이었던 사회적 생산 . 교환의 다소 적절한 표현으로서 중요성을 가지는 경우에는, 그것의 일반적 타당성을 마르크스가 인정하는가 않는가에 전혀 관계없이 인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인용문들은 경제학의 역사에서 취해온 부수적인 주석으로 본문을 보충하는 것이다.
우리의 번역은 이 책의 제1권만을 포괄한다. 그러나 이 제1권은 현저하게 그 자체가 하나의 전체를 이루고 있으며, 또 20년 동안 독립적인 저서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1885년에 내가 독일에서 편집 .출판한 제2권은 제3권 없이는 분명히 불완전하다. 제3권은 아마 1887년 말 이전에는 발간할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는 1894년에 발간되었다]. 제3권이 독일어 원문으로 출판되는 그때에 이 두 권의 영어판을 준비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유럽대륙에서는 ?자본론?을 가끔 '노동자계급의 성경'이라고 부른다. 노동운동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책에서 도달한 결론들이 나날이 더욱더 독일과 스위스뿐 아니라 프랑스 . 네덜란드 . 벨기에 미국 심지어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까지도 거대한 노동운동의 기본원리로 되고 있다는 것, 모든 곳에서 노동자계급은 이 결론들을 자기의 처지와 희망의 가장 정확한 표현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또 영국에서도 바로 지금 마르크스의 이론은 {노동
자계급의 대열 안에서와 마찬가지로 '교양있는' 사람들[페이비안협회원] 사이에도 보급되고 있는} 사회주의운동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영국의 경제사정을 철저하게 연구하는 것이 불가피하게 국민 전체의 과제로 등장할 시대가 급속히 다가오고 있다. 영국 산업체계의 운동은 생산과 시장의 계속적이고 급속한 확대없이는 불가능한데, 지금 완전한 정지상태에 빠지고 있다. 자유무역은 그 밑이 드러났고, 맨체스터까지도 자기가 주장해 온 이 경제적 복음에 의심을 품고 있다.2)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외국공업은 모든 곳에서 영국의 생산물과 경쟁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보호관세에 의해 보호되고 있는 시장에서뿐만 아니라 중립시장에서도, 심지어 영국에서까지도 그렇다. 생산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증대하고 있는데 시장은 기껏해야 산술급수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1825년부터 1867년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반복되어온 정체 . 번영 . 과잉생산 공황의 10년 주기의 순환은 사실상 끝난 것같이 보이고, 우리는 영속적이고 만성적인 불황이라는 절망의 진흙탕 속에 빠지고 말 것 같다. 그처럼 열렬히 기다리는 번영기는 즘처럼 오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번영기의 도래를 예고하는 듯한 징조가 감촉되자마자 곧 또다시 사라지곤 했기 때문이다. 겨울이 닥쳐올 때마다 "실업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중대한 문제가 또다시 제기된다. 실업자의 수는 해마다 증가하지만 누구도 이 문제에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실업자들이 참다 못해 자기의 운명을 자기의 수중에 틀어쥐게 될 순간이 오리라는 것을 확실히 예상할 수있다. 그와 같은 순간에는 마르크스의 목소리를 응당 들어야 할 것이다. 그는 전 생애에 걸쳐 영국의 경제사와 경제사정을 연구한 뒤 자기의 전체 이론을 수립했고, 이 연구에 의거해 적어도 유럽에서는 영국만이 전적으로 평화적 . 합법적 수단에 의해 필연적인 사회 [주의]혁명을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라는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영국의 지배계급들이 '노예제도를 옹호하는 반란' [자본주의 체제를 옹호하는 반란]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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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오늘 오후에 개최된 맨체스터 상공회의소 분기별 정기회의에서는 자유무역에 관해 열렬한 토론이 벌어졌다. 다음과 같은 결의문이 동의되었다. '다른 나라들이 영국 자유무역 모델을 뒤따르리라고 40년이나 기다렀으나 쓸모없이 되었으므로, 이 상공회의소는 이제 자기의 입장을 재검토할 시기가 도래했다고 생각한다.‘ 결의문은 단 1표의 다수로 부결되었다. 즉, 찬성 21표, 반대 22표"(?이브닝 스탠다드?, 1886년 11월 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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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평화적 . 합법적 혁명에 굴복하리라고는 거의 기대할 수 없다고 첨언하는 것을 결코 잊지 않았다.
1886년 11월 5일
프리드리히 엥겔스
제4판 서 문
제4판에서 나는 본문과 주를 최종적으로 완전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내가 이 과업을 수행했는가를 간단히 말하고자 한다.
나는 다시 한 번 프랑스어판과 마르크스의 친필 각서를 대조한 다음, 프랑스어판에서 약간의 부분을 취해 독일어판 본문에 새로 보충했다. 그것들은 [한글판에서] 149쪽, 660-662쪽, 795-800쪽, 855-858쪽 및 861쪽의 주 13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또 나는 프랑스어판과 영어판의 예에 따라 광산노동자에 관한 긴 주를 본문(663-675쪽)에 첨가했다. 기타의 사소한 변경들은 순전히 기술적 성격을 띤 것이다.
다음으로 나는 역사적 조건의 변화로 말미암아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곳에는 약간의 해설적인 주를 보충했다. 이러한 보충적 주는 모두 괄호 속에 넣고 나의 성명의 약자를 기입했다. [한글판에서는 {엥겔스: }로 표시했음] .
얼마 전에 영어판이 나왔기 때문에 수많은 인용문을 완전히 교열하는 것이 필요하게 되었다. 영어판을 위해 마르크스의 막내 딸 엘리너(Eleanor)가 인용 전체를 원전과 대조해 준 결과 [인용문의 압도적 다수를 이루는] 영어인용문이 영어판에서는 독일어판의 재번역이 아니고 영어 윈문 그대로다. 그러므로 나는 제4판에서는 이 영어판을 참고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여러 곳에서 사소한 부정확한 점이 발견되었다. 인용 쪽수의 잘못이 있었는데, 일부는 노트에서 옮겨 쓸 때 잘못 쓴 데서, 일부는 판을 세 번 거듭하는 동안 쌓인 오식에서 생긴 것이었다. 인용부호 또는 생략점의 위치가 잘못된 곳이 있었는데, 이것은 발췌장에서 대량으로 인용할 때 불가피하게 생긴 착오였다. 또한 그리 적절하지 못한 번역어가 여기저기 있었다. 특히 마르크스가 아직 영어를 몰라 영국경제학 서적들을 프랑스어 번역판으로 읽고 있었을 때인 1843-1845년 파리에서 작성한 낡은 노트로부터 인용되어 이중(二童)번역 때문에 인용문의 의미가 약간 달라진 곳 [예컨대 스튜어트, 유어등등의 경우]도 있었는데, 이 경우 나는 영어 원문을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밖에도 이와 비슷한 사소한 부정확성과 부주의는 있었다. 그러나 만약 독자들이 이 제4판을 이전 판들과 비교해 본다면, 이 모든 힘드는 교정과정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조금도 변경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오직 하나의 인용문만이 그 출처를 찾을 수 없었는데, 그것은 리처드 존스(Richard Jones)로부터 인용한 것(p.746, 주35)이었다. 아마도 마르크스가 책의 이름을 잘못 쓴 것 같다. [나중에 존스로부터의 인용임이 밝혀졌다] . 기타의 인용문은 모두 올바르게 인용
되었으며, 현재와 같은 정확한 형태를 갖춤으로써 인용의 정확성이 더욱 빛나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하나의 오래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알기로는 마르크스가 인용한 인용문의 정확성이 의심받았던 경우는 단 한 번밖에 없었다. 그런데 마르크스가 죽은 뒤에도 이것이 문제로 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여기에서 그것을 묵과할 수가 없다.
1872년 3월 7일 독일 공장주협회의 기관지인 베를린의 ?콘코르디아?(Concordia) [화합]에 "칼 마르크스는 어떻게 인용하는가"라는 하나의 익명 논문이 실렸다. 이 논문에서 필자는 도덕적으로 분개해 무례한 말들을 한껏 써가면서, 1863년 4월 16일의 글래드스톤의 예산연설로부터의 마르크스의 인용(1864년 국제노동자협회 창립선언에 인용되었고, ?자본론?, 제1권, p.890에 인용되었다)은 위조라고 주장했다. 즉, 마르크스가 인용한 "이 실신할 정도의 부와 권력의 증대는.....전적으로 유산계급에 국한되어 있다"라는 문구는 ?한사드?(Hansard) [의회 의사록]의 준관보적 속기록에는 한 마디도 실려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구는 글래드스톤의 연설에는 아무데도 없다. 그 연설에서는 정반대의 말을 하고 있다." (이 다음부터는 굵은 활자로) "마르크스는 이 문장을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위조 첨가했다"라고.
그 해 5월에 ?콘코르디아?의 이 호를 받은 마르크스는 이 익명의 필자에게 ?폴크스슈타트?(Volksstaat)[인민국가] 6월 1일호에서 답변했다. 그는 자기가 어떤 신문기사로부터 인용했던가를 기억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선 두 개의 영국 간행물에 있는 위와 같은 의미의 인용문을 지적한 다음, ?더 타임즈?의 보도를 인용하는 데 국한했다. ?더 타임즈?에 의하면, 글래드스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것이 이 나라의 부의 현상이다. 만약 실신할 정도의 부와 권력의 증대가 오직 부유한 계급에 국한되어 있다는 것이 확실하다면, 나는 그것을 거의 불안하고 비통한 마음으로 주시할 것이라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 현상은 노동자의 상태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정확하다고 생각되는 자료에 의하면, 내가 방금 진술한 부의 증대는 전적으로 유산계급에게만 국한되고 있다. "
여기서 글래드스톤은, 만약 그렇다면 유감천만한 일인데, 사실은 바로 그렇다고 말하고 있다. 즉, 이 실신할 정도의 부와 권력의 증대는 전적으로 유산계급에 국한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준관보적인 ?한사드?에 관해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글래드스톤은 나중에 그 연설문을 수정하여, 영국의 대장성 장관의 말로서는 확실히 말썽이 일어날 수 있는 그 단락을 삭제했다. 그렇지만 이것은 영국 의회의 전통적인 관례이지 결코 베벨(Bebel)을 반대하기 위해 꼬마 라스커(Lasker)가 만들어낸 발명 [독일의회에서 라스커가 데벨에게 행한 자기의 욕설을 속기록에서 때도록 한 사건]은 아니다. "
익명의 필자는 더욱 화를 냈다. 7월 4일 ?콘코르디아?의 자기의 답변에서, 그는 일체의 이차적인 자료는 젖혀놓은 채, 의회연설은 속기록으로부터 인용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계속해 ?더 타임즈?의 보도(이 속에는 '위조'된 문구가 들어 있다)와 ?한사드?의 보도(여기에는 이 문구가 없다)는 '실질적으로 완전히 일치'하며, 또 ?더 타임즈?의 보도는 '국제노동자협회 창립선언 중의 그 악명 높은 단락과는 정반대의 뜻'을 포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더 타임즈?의 보도에는 이 이른바 '정반대'의 것과 아울러 바로 그 '악명높은 단락‘도 분명히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애써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익명의 필자는 자기가 난처하게 되었다는 것과 오직 새로운 탈출구만이 자기를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하여 그는 '철면피한 거짓'으로 가득
찬 자기의 논문에서 '악의', '부정직', '허위주장', '이 허위인용', '철면피한 거짓', '완전히 위조된 인용', '이러한 위조', '단순히 수치스러운' 등등과 같은 극단적인 욕설을 퍼부으면서도, 동시에 논쟁점을 슬며시 다른 분야로 넘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우리가 글래드스톤의 말의 내용에 어떤 의의를 부여해야 하는가를 별개의 논문에서 설명"하겠다고 약속했다. 전혀 보잘것없는 그의 견해가 마치 조금이라도 그 문제[부(富)와 권력의 불균등분배]와 관계가 있는 듯이! 이 별개의 논문은 7월 11일의 ?콘코르디아?에 실렸다.
마르크스는 이에 대해 8월 7일의 ?폴크스슈타트?에서 다시 한 번 답변했는데, 이번에는 해당 단락을 1863년 4월 17일의 ?모닝 스타?(Morning Star) [샛별]와 ?모닝 애드버타이저? (Morning Advertiser) [조간광고]로부터도 인용했다. 이 두 신문에 의하면, 글래드스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 실신할 정도의 부와 권력의 증대가 실제로 '부유한 계급'에 국한되어 있다는 것이 확실하다면, 자기는 그것을 불안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사실상 이러한 증대는 '완전히 재산소유자계급에게만 국한되어 있다‘ 라고. 이와 같이 이 기사들에도 마르크스가 '위조첨가'했다는 문구가 문자 그대로 들어있다. 더 나아가 마르크스는 [그 다음 날 아침 서로 독립적으로 나온 세 개의 신문기사가 그 점에서 완전히 일치한다는 점에서 사실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 증명되는] 그 문장이 잘 알려진 '관례' [연설자가 검열하는 관례]에 따라 ?한사드?의 의사록에는 실려 있지 않다는 것과, 글래드스톤은 그것을, 마르크스의 말을 빌린다면, "그 뒤 슬쩍 삭제했다"는 것을 ?더 타임즈?와 ?한사드?의 원문들을 대비함으로써 다시 한 번 확증했다. 끝으로 마르크스는
익명의 필자를 때 이상 상대할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익명의 필자도 더 할 말이 없었던지 적어도 마르크스는 그 뒤 ?큰코르디아?를 받지 않았다.
이로써 사건은 종말을 짓고 망각된 것같이 보였다. 하기는 그 뒤 캠브리지대학과 관계를 가진 사람들로부터,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언어도단의 문필상 죄악을 법했다는 정체불명의 풍문이 한두 차례 전해온 적은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조사해도 확실한 것은 도무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1883년 11월 9일, 즉 마르크스가 죽은 뒤 8개월이 지나 ?더 타임즈?에 캠브러지 트리니티대학의 세들리 헤일러(Sedley Taylor)라는 사람의 편지가 실렸다. 매우 온건한 협동조합 활동을 하고 있는 이 소인은 그 편지에서 전혀 뜻밖에도 캠브리지의 풍문에 관해서뿐만 아니라 ?콘코르디아?의 익명 필자에 관해서도 말했다.
트리니티대학의 소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아주 기이하게 생각되는 것은, 글래드스톤의 연설로부터의 인용을 [국제노동자협회 창립]선언에 넣도록 했던 마르크스의 악의를 브렌타노(Lujo Brentano) 교수(당시에는 브레슬라우 대학에 있었고 현재는 슈트라스부르그대학에 있다)가 비로소 폭로....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인용문을 변호하려고 시도한....칼 마르크스는 브렌타노가 한 번 멋있게 치자 넘어졌으나, 그래도 뱃심좋게 주장하기를, 글래드스톤은 1863년 4월 17일의 ?더 타임즈?에 실린 자기의 연설 보도를 ?한사드?에 싣기 전에 뜯어고쳐 영국 대장성 장관의 말로서는 '확실히 말썽이 일어날 수 있는' 단락을 '삭제'했다는 것이다. 브렌타노가, 교활하게도 앞뒤를 끊어버리고 인용함으로써 글래드스톤
의 발이 가지게 된 그러한 의미를 절대로 포함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더 타임즈?와 ?한사드?의 보도가 일치한다는 것을 원문을 세밀히 대조해 증명했을 때, 마르크스는 '시간이 없다'는 구실로 퇴각해 버렸던 것이다. "
사건의 진상은 바로 이러했다! 그리고 ?콘코르디아?의 브렌타노의 익명 논쟁은 캠브리지의 생산협동조합원의 관념에 그처럼 휘황하게 반영되었던 것이다. 독일 공장주협회의 성 조지인 브렌타노가 칼을 휘둘러 '멋있게 한 번 치니', 저승의 용 마르크스는 그만 '넘어져' 그의 발 밑에서 '최후의 숨'을 거두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아리오스토(Ariosto)적 친기(戰記)는 우리의 성(聖) 조지의 탈출구를 은폐하려는 데 불과하다. 여기서 문제로 되고 있는 것은 이미 '위조 첨가된 것', '위조'가 아니라 오직 '교활하게도 앞뒤를 끊어버리고 인용한 것'이다. 문제 전체는 어느새 다른 분야로 옮겨졌는데, 성(聖) 조지와 캠브리지의 방패잡이는 왜 그렇게 하는 것이 필요한가를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엘리너 마르크스(Eleanor Marx)는 ?더 타임즈?가 자기의 편지를 게재하는 것을 거절했으므로, 월간잡지 ?투데이?(1884년 2월호)에서 레일러에게 답변했다. 이 답변에서 그녀는 논쟁을 일찍이 문제로 되었던 단 한 점, 즉 마르크스가 문제의 문장을 '위조 첨가'했는가 아니했는가에 집중시켰다. 데일러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응답했다. 그의 의견에 의하면, 마르크스와 브렌타노 사이의 논쟁에서는
"글래드스톤의 연설 가운데 어떤 한 문장이 있었느냐 없었느냐라는 문제는, 인용의 의도가 글래드스톤의 말의 진의를 그대로 전달하는 데 있었는가 그것을 왜곡하는 데 있었는가라는 문제에 비하면 매우 부차적인 의의밖에 가지지 못했다. "
그 다음 그는 ?더 타임즈?의 보도가 "실제로 모순되는 말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만약 문맥을 정당하게, 다시 말해, 자유주의적-글래드스톤적 의미로 해석한다면, 그 문맥은 글래드스톤이 말하기를 원했던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투데이? 1884년 3월호). 여기서 가장 우스운 것은, 캠브리지의 소인이 이제는 연설을 ?한사드?로부터 인용하지 않고-익명 필자 브렌타노의 의견에 의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관례'임에도 불구하고-[그 보도가 "조잡하지않을 수 없다"고 브렌타노가 특징지은] ?더 타임즈?로부터 열심히 인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사드?에는 이 시끄러운 문장이 들어 있지 않으니 그렇게 할 수밖에.
엘리너 마르크스가 ?투데이?의 같은 호에서 이 논의를 분쇄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둘 증에 하나일 것이다. 테일러가 1872년의 논쟁을 읽었다면 그는 지금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없던 것을 '위조 첨가'할 뿐 아니라 있던 것을 '삭제'하고 있는 것이다. 또는 그가 이 논쟁을 읽지 않았다면 발언할 권리가 없는 것이다. 아무튼 그는 마르크스가 '위조 첨가'했다는 자기 벗 브렌타노의 고발을 감히 지지하지 못한 것만은 확실하다. 반대로 이제는 마르크스가 위조 첨가한 것이 아니고 하나의 중요한 문장을 삭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문장은 창립선언 제5쪽에 이른바 '위조 첨가'되었다는 문장보다 몇 줄 앞에 인용되어 있다. 글래드스톤의 연설 가운데 있는 '모순'에 관해 말한다면,'1863년과 1864년의 글래드스톤의 예산안 제안연설에 나타난 끊임없는
놀라운 모순들'을 ?자본론? [한글판 p.891, 주40]에서 지적한 사람이 바로 마르크스가 아니고 누구인가? 그는 다만 이 모순들을 테일러식으로 자유주의적 자기만족감 속에 해소시키려고 시도하지 않았을 뿐이다. 엘리너 마르크스는 답변의 결론에서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인용할 가치 있는 것을 삭제하지도 않았고 아무것도 '위조 첨가'하지 않았다. 그는 글래드스톤의 연설에서는 확실히 말했으나 어떻게 되어 ?한사드?의 기록에는 탈락된 한 문장을 부활시켜 망각으로부터 구해냈던 것이다. "
이것으로 세들리 테일러도 진정했다. 20년 동안 두 큰 나라에 걸쳐 진행된 교수들의 공모 전체를 부수어버린 결과 누구도 마르크스의 문필적 양심을 비방하지 못하게 되었다. 또 금후 브렌타노는 ?한사드?에는 절대로 과오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믿지 않을 것이며, 마찬가지로 세들리 테일러는 브렌타노의 문헌적 전투보고를 믿지 않게 될 것이다.
1890년 6월 25일
런던
프리드리히 엥겔스
제 1 편
상품괴 화폐
제 1 장 상 품
제 2 장 교환과정
제 3 장 화페 또는 상품유통
제1장 상 품
제 1 절 상품의 두 요소: 사용가치와 가치
(가치의 실체, 가치의 크기)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지배하는 사회의 부(富)는 '상품의 방대한 집적(集積)(주석1: 마르크스,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베를린, 1859년, p. 3.) 으로 나타나며, 개개의 상품은 이러한 부의 기본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우리의 연구는 상품의 분석으로부터 시작한다.
상품(商品)은 우선 우리의 외부에 있는 하나의 대상이며, 그 속성들에 의해 인간의 온갖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물건이다. 이 욕망의 성질이 어떠한가, 예컨대 욕망이 위로부터 나오는가 또는 환상으로부터 생기는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주석 2: "욕망은 결핍을 전제로 한다. 욕망은 마음의 식욕(食欲)으로서, 육체의 배고픔처럼 자연스럽다. 대다수의 물건은 마음의 결핍을 충족시켜 주기 때문에 가치를 갖는다"(바본[N. Barbon], ?더욱 가벼운 신화폐의 주조에 관한 논술: 로크의 고찰들에 대한 대답?, 런던, 1696년, pp. 2-3). 또한 물건이 인간의 욕망을 어떻게 만족시키는가, 즉 생활수단(소비재)으로서 직접적으로 만족시키는가, 아니면 생산수단으로서 간접적으로 만족시키는가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철 ?종이 등과 같은 유용한 물건은 질(質)과 양(量)의 두 측면에서 고찰할 수 있다. 유용한 물건은 수많은 속성들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다양하게 유용할 수 있다. 물건들의 다양한 용도를 발견해 내는 것은 역사의 과업이다.(주석 3: "물건은 어디에서도 변하지 않는 내재적 속성"(이것은 사용가치를 나타내는 바본의 독특한 용어이다)"을 가진다. 예컨대 철을 끌어당기는 자석의 능력과 같은 것이 그것이다"(바본, 같은 책, p. 6). 철을 끌어당기는 자석의 속성은, 자극이 발견되고 나서야 비로소 유용하게 되었다.
유용한 물건의 양을 측정하는 사회적 척도[예:kg, m]를 찾아내는 것도 또한 그렇다. 상품의 척도들이 다양하게 된 이유는 부분적으로는 측정되는 대상의 성질이 다양하기 때문이고, 또 부분적으로는 사회적 관습 때문이다.
한 물건의 유용성은 그 물건으로 하여금 사용가치(使用價値: use-value)가 되게 한다. (주석 4: "물건의 자연적 가치(natural worth)는 그것이 인간생활의 필요를 충족시키거나 편의에 이바지하는 데 적합하다는 점에 있다. "(로크[J. Locke], ?이자인하의 결과들에 관한 몇 가지 고찰?, 1691년, ?저작집?, 런던, 1777년, 제2권, p. 28). 우리는 17세기의 영국 저술가들이 'worth'를 사용가치의 의미로, 'value'를 교환가치의 의미로 사용한 것을 자주 발견하는데, 이것은 현실적 사물은 게르만계통의 언어로, 사물의 반영은 라틴 계통의 언어로 표현하기를 좋아하는 영어의 정신에 아주 잘 부합된다.) 그러나 이 유용성은 공중에 떠있는 것이 아니라 상품의 물리적 속성에 의해 주어지고 있으며, 그 상품체( physical body of the commodity)와 별도로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철 . 밀 .금강석 등과 같은 상품체 자체가 사용가치 또는 유용한 물건인 것이다. 상품의 이러한 속성은, 그 유용성을 취득하는 데 인간 노동이 많이 소요되는가 적게 소요되는가와는 관계가 없다. 사용가치를 고찰할 때 우리는 항상 일정한 양(예: 몇 개의 시계, 몇 톤의 철, 몇 미터의 아마포)을 다루고 있다. 상품의 사용가치는 상품학(商品學)이라는 특수 분야의 연구대상이다.(주석 5: 부르주아 사회에서는 누구나 상품구매자로서 상품에 관한 백과사전식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법적 가설이 지배하고 있다.) 사용가치는 오직 사용 또는 소비에서만 실현된다. 사용가치는 부의 사회적 형태가 어떠하건 부의 소재적 내용(material content)을 형성한다. 우리가 고찰하는 사회형태에서 사용가치는 동시에 교환가치(交換價値: exchange value)의 물적 담지자다.
교환가치는 우선 양적 관계, 즉 어떤 종류의 사용가치가 다른 종류의 사용가치와 교환되는 비율(주석 6: "가치란 어떤 물건과 다른 물건, 어떤 생산물의 일정한 양과 다른 생산물의 일정한 양이 교환되는 비율이다"(르 트로느(Le Trosne), ?사회적 이익에 대해?, ?중농주의자?, 데르[Daire]편. 파리, 1846년, p. 889).)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 비율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끊임없이 변동하므로, 교환가치는 어떤 우연적이며 순전히 상대적인 것처럼 보이고, 따라서 상품 자체에 고유한 내재적 교환가치라는 것은 일종의 형용모순인 것처럼 보인다.(주석 7: "어떤 물건도 내재적 가치를 가질 수 없다"(바본, 앞의 책, p. 6). 또는 버틀러(Butler)가 말한 바와 같이, "물건의 가치는 그 물건이 가져오는 것과 똑같은 크기다. ") 이 문제를 좀더 자세히 고찰해 보자.
일정한 상품(예컨대 1쿼터의 밀)은 X량의 구두약, Y량의 명주, Z량의 금 등등, 요컨대 상이한 상품과 다양한 비율로 교환된다. 따라서 밀은 단 하나의 교환가치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교환가치를 가진다. X량의 구두약, Y량의 명주, Z량의 금 등은 모두 밀 1쿼터의 교환가치를 표현한다. 따라서 X량의 구두약, Y량의 명주, Z량의 금 등은 교환가치로서는 서로 대체할 수 있는 동일한 크기임에 틀림없다. 이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첫째 특정한 상품의 서로 다른 교환가치들은 동일한 그 무엇을 표현하고 있으며, 둘째 교환가치는 교환가치와는 구별되는 그 어떤 내용의 표현양식 또는 '현상형태'(現像形態: form of Apearance)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두 개의 상품, 밀과 철을 예로 들어 보자. 그들이 교환되는 비율은 [그 비율이 어떻든] 밀의 주어진 양이 철의 일정한 양과 등치되는 하나의 등식, 예컨대 1쿼터의 밀= X킬로그램의 철로 표시할 수 있다. 이 등식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두 개의 서로 다른 물건-즉 1쿼터의 밀과 X킬로그램의 철-에는 양자에 공통된 것의 동일양이 들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양자는 (둘 중의 어느 하나가 아닌) 제3자와 동등하며, 각각은 (교환가치인 한) 이 제3자로 환원될 수 있어야 한다.
간단한 기하학의 실례를 가지고 이것을 설명해 보자. 다수의 다각형의 면적을 결정하고 비교하기 위해 우리는 그것을 삼각형으로 분해한다. 또 그 삼각형 자체를 그 외견상의 형상과는 전혀 다른 표현[즉, 밑변과 높이의 곱의 1/2]으로 환원시킨다. 이와 마찬가지로, 상품의 교환가치들도 하나의 공통적인 것-교환가치는 그것의 어떤 양을 표시한다-으로 환원되어야 한다.
이 공통적인 그 무엇은 상품의 기하학적 물리학적 . 화학적 또는 기타의 자연적 속성일 수 없다. 그러한 속성들은 그 상품들의 유용성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그것들을 사용가치로 만드는 한에서만 우리의 관심 대상이 된다. 그러나 상품들의 교환비율은 분명히 상품의 사용가치를 사상(捨象)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즉, 상품의 교환 관계에서는 어떤 하나의 사용가치는, 그것이 적절히 존재하기만 한다면, 다른 어떤 사용가치와 마찬가지로 유용하다. 또는 노련한 바본(Barbon)이 말하는 바와 같이,
"어떤 한 종류의 상품과 다른 종류의 상품은, 만일 그 교환가치가 같다면, 다를 것이 없다. 같은 크기의 교환가치를 가지는 물건들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도 구별도 없다....100원의 가치를 가지는 납이나 철은 100원의 가치를 갖는 금이나 은과 똑같은 크기의 교환가치를 가진다. " (주석 8: 바본, 앞의 책, pp. 53, 57)
사용가치(使用價値)로서의 상품은 무엇보다도 질적(質的)으로 구별되지만, 교환가치로서의 상품은 오직 양적(量的) 차이를 가질 뿐이고, 따라서 거기에는 사용가치가 조금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만약 상품의 사용가치를 무시한다면, 거기에는 오직 하나의 속성, 즉 그것이 노동생산물(勞動生産物)이라는 속성만 남는다. 그러나 그 노동생산물 자체도 전혀 새로운 의미를 가진다. 만약 우리가 노동생산물의 사용가치를 무시한다면, 우리는 동시에 [그 노동생산물을 사용가치로 되게 하는] 물적 구성요소 . 형태들까지도 무시하게 된다. 이제 이 노동생산물은 책상 . 집 . 면사 또는 기타의 어떤 유용한 물건도 아니다. 감각적으로 포착할 수 있는 그것의 모든 속성들은 사라져 버린다. 그것은 더 이상 가구공 . 벽돌공 . 방적공의 노동생산물이 아니며, 기타 어떤 특정한 생산적 노동의 생산물도 아니다. 노동생산물의 유용성이 사라짐과 동시에 노동생산물에 투하되어 있는 노동의 유용한 성질도 사라지고, 따라서 노동의 상이한 구체적 형태도 사라진다. 이들 노동은 더 이상 서로 구별되지 않고 모두 동일한 종류의 노동, 즉 추상적 인간노동(abstract human labour)으로 환원된다.
이제 노동생산물들은 유령 같은 형상[즉, 동질적인 인간노동이 응
고되어 있는 형상]을 띠게 된다. 다시 말해, 노동생산물들은 인간노동력이 그 지출형태와는 관계없이 지출되어 응고된 것에 불과하다.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은, 그들의 생산에 인간의 노동력이 지출되었다는 것, 인간노동이 그들 속에 체현되어 있다는 것이다. 모든 노동생산물은 그들에게 공통적인 이러한 사회적 실체의 결정체(結晶體: crystal)로서 가치(價値), 상품가치이다.
우리는 이미 상품들이 교환될 때 그들의 교환가치는 사용가치와는 전혀 관계없다는 것을 보았다. 만약 우리가 상품의 사용가치를 무시해 버린다면, 남는 것은 위에서 규정한 바와 같은 상품의 가치(價値)뿐이다. 따라서 상품의 교환관계 또는 교환가치에서 나타나는 공통인자는 바로 상품의 가치이다. 우리는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교환가치야말로 가치의 필연적인 표현양식 또는 현상형태임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당분간 가치의 성질을 그 현상형태와는 관계 없이 고찰해야 한다.
사용가치 또는 유용한 물건이 가치를 가지는 것은 다만 거기에 추상적 인간노동(人間勞動)이 체현되어 있거나 대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역자 주: 상품은 사용가치와 가치라는 모순적인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다고 마르크스는 말하고 있으므로, "사용가치가 가치를 가진다"는 표현은 "유용한 물건 또는 상품이 가치를 가진다"고 고쳐 쓰는 것이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 그러면 그 가치의 크기는 어떻게 측정하는가? 그 물건에 들어 있는 '가치를 형성하는 실체'인 노동의 양에 의해 측정한다. 노동의 양은 노동의 계속시간으로 측정하고, 노동시간은 시간 . 일 . 주 등을 기준으로 측정한다.
만약 상품의 가치가 그것을 생산하기 위해 지출된 노동량(勞動量)에 의해 결정된다면,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자가 나태하거나 미숙련이면 일수록 [그 상품을 생산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요구되므로)]그 상품의 가치는 그만큼 더 클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치의 실체를 이루는 노동은 동등한 인간노동이며, 동일한 인간노동력의 지출이다. 상품세계의 가치로 자기를 표현하는 사회의 총노동력(總勞動力)은, 비록 무수한 개인 단위의 노동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여기에서는 거대한 하나의 동질의 인간노동력으로 간주된다. 각 단위의 노동력은 [노동력의 사회적 평균단위라는 성격을 가지고 또 그와 같이 작용하는 한, 다시 말해 한 상품의 생산에 평균적으로 필요한 (즉,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만 걸리는 한] 서로 다름이 없는 동일한 인간 노동력이다.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socially necessary labour-time)이란 주어진 사회의 정상적인 생산조건과 그 사회에서 지배적인 평균적 노동숙련도와 노동강도 하에서 어떤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데 걸리는 노동시간이다. 예컨대 영국에서는 증기직기의 도입으로 일정량의 실을 직물로 전환시키는 데 걸리는 노동을 반감시켰다. 증기직기가 도입된 뒤에도 영국의 수직공들은 이러한 전환에 종전과 같은 노동시간을 소비했지만, 이제는 그의 개별노동 1시간의 생산물은 1/2 시간의 사회적 노동밖에 대표하지 못하고, 따라서 그 생산물의 가치는 이전 가치의 절반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이와 같이 어떤 물건의 가치량을 결정하는 것은 오직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량, 즉 그것의 생산에 사회적으로 걸리는 노동시간이다.(주석 9: "그것들(소비품들)이 서로 교환될 때, 그것들의 가치는 그것들의 생산에 필연적으로 요구되며, 또 일반적으로 소요되는 노동량에 의해 규정된다"(?금리 일반 및 특히 공채이자에 관한 고찰?, 런던, pp. 36-37. 18세기의 이 주목할 만한 익명의 저서는 발행연도가 표시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그 내용으로 보아 조지 2세 시대인 1739년 또는 1740년에 발간된 것이 분명하다.) 이 경우 개개의 상품은 그것이 속한 종류의 평균적 표본으로 간주될 뿐이다.(주석 10: "동일한 종류의 생산물 전체는 본래 하나의 집단을 형성하며, 그것의 가격은 개별적인 조건과는 관계없이 전체적으로 결정된다"(르 트로느, 앞의 책, p.893).) 따라서 동일한 노동량이 들어 있는 상품들[즉, 동일한 노동시간에 생산할 수 있는 상품들]은 동일한 가치량(價値量)을 가진다. 한 상품의 가치와 다른 상품의 가치 사이의 비율은 전자의 생산에 걸리는 노동시간과 후자의 생산에 걸리는 노동시간 사이의 비율과 같다.
"가치로서는, 모든 상품은 일정한 크기의 응고된 노동시간(勞動時間)에 불과하다. " (주석 11: 마 르크스, 앞의 책, p. 6.)
그러므로 만약 상품의 생산에 걸리는 노동시간이 불변(不變)이라면, 그 상품의 가치도 불변일 것이다. 그러나 노동시간은 노동생산성(勞動生産性)이 변할 때마다 변한다. 노동생산싱은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해 결정되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노동자들의 평균적 숙련도(熟練度), 과학과 그 기술적 응용의 발전 정도, 생산과정의 사회적 조직, 생산수단의 규모와 능률, 그리고 자연적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 동일한 양의 노동이라도 예컨대 풍년에는 8부셸의 밀을 생산하고 흉년에는 겨우 4부셸의 밀을 생산한다. 동일한 양의 노동이라도 풍부한 광산에서는 빈약한 광산에서보다 더 많은 금속을 생산해 낸다. 금강석은 지표에 나와 있는 경우가 없으므로 그것을 발견하는 데는 평균적으로 더 많은 노동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금강석은 적은 양으로 많은 노동을 대표한다. 제이콥(Jacob)은 금에 대해 그 완전한 가치가 지불된 적이 있었는지를 의심하고 있다.(역자 주: 제이콥(W. Jacob), ?귀금속의 생산 및 소비의 역사적 연구?, 런던, 1831년, 제2권, p. 101.) 이것은 금강석에 더욱 적합한 말이다. 에슈베게(Eschwege)에 의하면, 1823년까지의 80년간 브라질 금강석 광산의 총산출액은 브라질의 사탕 또는 커피농장의 1년 반 분의 평균생산물의 가격에도 미달했다[비록 금강석이 훨씬 더 많은 노동을, 따라서 더 많은 가치를 대표하고 있었지만]. 만약 광산이 더 풍부하다면 동일한 양의 노동은 그만큼 더 많은 양의 금강석으로 대상화될 것이며, 따라서 금강석의 가치는 그만큼 떨어질 것이다. 만약 아주 적은 노동으로 석탄을 금강석으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한다면, 금강석의 가치는 벽돌의 가치보다 낮아질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노동생산성이 높으면 높을수록 한 물품의 생산에 걸리는 노동시간은 그만큼 작아지며, 그 물품에 응고되는 노동양도 그만큼 적어지고, 따라서 그 물품의 가치도 그만큼 작아진다. 반대로 노동생산성이 낮으면 낮을수록 물품의 생산에 걸리는 노동시간은 그만큼 커지며, 그 물품의 가치도 그만큼 커진다. 이와 같이, 상품의 가치는 그 상품에 체현되어 있는 노동량(勞動量)에 정비례하고 노동생산성(勞動生産性)에 반비례한다. (역자 주: 초판에는 이후 다음과 같은 단락이 계속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가치의 실체를 알았다. 그것은 노동이다. 우리는 가치의 크기의 척도를 알았다. 그것은 노동시간이다. 가치에 교환가치라는 도장을 찍는 가치의 형태는 아직 분석되어야 한가. 그러나 그 전에 이미 찾아낸 규정들을 좀더 상세히 전개해야 되겠다.“)
어떤 물건은 가치가 아니면서도 사용가치일 수 있다. [가치를 가지지 않으면서도 사용가치를 가질 수 있다]. 인간에 대한 그 물건의 유용성이 노동에 의해 매개되지 않는 경우에 그러하다. 예를 들면 공기 . 처녀지 . 자연의 초원 . 야생의 수목 등이 그러하다. 어떤 물건 그리고 인간노동의 어떤 생산물은 상품이 아니면서 유용할 수 있다. 자기 노동의 생산물로써 자기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사람은 사용가치를 만들기는 하지만 상품을 만들지는 않는다.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그는 사용가치를 생산할 뿐 아니라 타인을 위한 사용가치, 즉 사회적 사용가치를 생산해야 한다. {엥겔스; 또 단순히 타인을 위한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중세의 농민은 봉건영주를 위해 공납으로 바칠 곡물을 생산했고, 승려를 위해 10 . 1조(1/10세)로 바칠 곡물을 생산했다. 그러나 공납으로 바친 곡물이나 10 . 1조로 바친 곡물은, 타인을 위해 생산되었다는 이유만으로는 아직 상품이 되지 않았다. 그 생산물이 상품이 되기 위해서는 그 생산물을 사용가치로 쓰는 사람에게 교환을 통해 이전되어야 한다.}(주석 11: {엥겔스; 이 괄호 속에 들어 있는 말이 없었던 탓으로 마치 마르크스가 생산자 이외의 사람들이 소비하는 생산물은 무엇이든 상품으로 간주했다는 오해가 아주 빈번히 발생했기 때문에, 나는 이것을 삽입하기로 했다.}) 끝으로, 어떤 물건도 사용 대상이 아니고서는 가치일 수 없다. 만약 어떤 물건이 소용없는 것이라면, 거기에 들어 있는 노동은 소용없는 것이고, 노동으로 계산되지 않으며, 따라서 아무런 가치도 형성하지 못한다.
제 2 절 상품에 투하되어 있는 노동의 이중성
처음 상품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라는 이중성(二重性)을 가진 물건으로 나타났다. 그 뒤 노동도 또한 이중성을 가지고 나타났다. 즉, 노동이 가치로 표현되는 경우에는 더 이상 사용가치의 창조자의 성격을 가지지 않는다. 상품에 투하되어 있는 노동의 이중성은 내가 처음으로 지적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했다.(주석 12: 마르크스, 앞의 책, pp. 12-13을 참조하라.) 노동의 이중성은 경제학의 이해에 결정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두 상품, 즉 1개의 저고리와 10미터의 아마포를 예로 들어 보자. 전자의 가치는 후자의 가치의 두 배라고 하고, 10미터의 아마포=W라면, 1개의 저고리=2W다.
저고리는 특정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사용가치이다. 그것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특수한 종류의 생산활동이 필요하다. 이 생산활동은 그 목적 . 작업방식 . 수단 . 결과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노동-즉 그것의 유용성이 그 생산물의 사용가치로 표현되는 노동, 또는 그것의 생산물을 사용가치로 만들어 스스로를 표하는 노동-을 간단히 '유용노등'(有用勞動: useful labour)이라고 부른다. 이 경우 우리는 노동의 유용효과만 고려한다.
저고리와 아마포가 질적으로 다른 사용가치인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들을 만들어 낸 노동도 질적으로 서로 다른 것(즉, 재봉노동과 직포노동이다. 만약 이 두 물건이 질적으로 다른 사용가치가 아니라면, 따라서 질적으로 다른 유용노동의 생산물이 아니라면, 그것들은 결코 상품으로 서로 대면할 수 없을 것이다. 저고리는 저고리와는 교환되지 않으며, 어떤 사용가치가 동일한 사용가치와 교환되는 일은 없다.
다양한 사용가치들[또는 상품체들]의 총체는 다양한 유용노동들[유(類). 속(屬). 변종(變種)으로 분류된다]의 총체, 즉 사회적 분업을 반영한다. 이 사회적 분업은 상품생산의 필요조건이다. 그러나 반대로 상품생산이 사회적 분업의 필요조건은 아니다. 고대 인도의 공동체에서 노동은 사회적으로 분할되어 있었지만 그 생산물은 상품이 아니었다. 더 가까운 예를 든다면, 어떤 공장에도 노동은 체계적으로 분할되어 있으나, 노동자들이 자기의 개별 생산물을 교환하는 것에 의해 이 분업이 매개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독립적으로 행해지고 상호 의존하지 않는 사적 노동의 생산물만이 서로 상품으로 대면한다.
이제 이상에서 말한 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각 상품의 사용가치에는 유용노동 [즉, 일정한 종류의 합목적적인 생산활동]이 들어 있다. 여러 가지 사용가치는, 만약 거기에 질적으로 다른 유용노동이 들어 있지 않다면, 상품으로 서로 대면할 수 없다. 생산물이 일반적으로 상품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사회[즉, 상품생산자 사회]에서는, [개별 생산자들이 상호 독립적으로 사적으로 수행하는] 여러 가지 형태의 유용 노동 사이의 질적 차이는 하나의 복잡한 체계[즉, 사회적 분업(social division of labour)]로 발전한다.
재봉사 자신이 저고리를 입든 그의 고객이 저고리를 입든, 저고리는 사용가치로 기능한다. 마찬가지로 저고리와 그것을 생산하는 노동사이의 관계도 재봉일이 특수한 직업[즉, 사회적 분업의 독립적인 일환]으로 된다고 해서 달라지지는 않는다. 인간은 옷을 입어야만 했기 때문에 전문적인 재봉사가 나타나기 몇 천년 전부터 재봉일을 했다. 물적 부(material wealth) 중 자연이 미리 제공하지 않는 모든 요소[예:저고리, 아마포]는 언제나 [특정의 자연소재를 특정의 인간욕망에 적응시키는] 특수한 합목적적 생산활동을 거쳐 창조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사용가치의 창조자로서의 노동, 유용노동으로서의 노동은 사회 형태와 무관한 인간생존의 조건이며, [인간과 자연 사이의 물질대사, 따라서 인간생활 자체를 매개하는] 영원한 자연적 필연성이다.
저고리 ? 아마포 등등의 사용가치, 한 마디로 말해 상품체(商品體)는 자연소재와 노동이라는 두 요소의 결합이다. 저고리 ? 아마포 등등에 들어 있는 여러 가지 유용노동의 총량을 제거한다면, 남는 것은 언제나 [인간의 어떤 개입 없이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일정한 물질적 바탕뿐이다. 인간은 생산과정에서 오직 자연 자체가 운동하는 것처럼 운동할 수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오직 소재의 형태를 변경할 수 있을 뿐이다.( 주석 13: "우주의 모든 현상은 인간의 손에 의해 야기되든 물리학의 일반법칙에 의해 야기되든, 창조가 아니고 오직 물질의 재배치에 지나지 않는다. 결합과 분리는 인간의 정신이 재생산이라는 관념을 분석할 때마다 발견하는 유일한 요소이다. 이것은 가치"(사용가치를 말한다. 비록 베리 자신은 중농주의자와의 논쟁에서 자기가 어떤 종류의 가치를 말하고 있는가를 똑똑히 알지는 못했지만)"와 부의 재생산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토지 . 공기 . 물이 들에서 밀로 전환되든, 곤충의 분비물이 인간의 손에 의해 명주로 전환되든, 몇 개의 금속조각이 결합되어 시계가 만들어지든, 그러하다"(베리[P. Verri], ?경제학에 관한 고찰?(1771년, 초판), 쿠스토디[Custodi] 편, ?이탈리아 경제학고전집“, 근세편, 제15권, pp. 21-22).) 더구나 이러한 형태를 변경하는 노동에서까지 인간은 끊임없이 자연력의 도움을 받는다. 따라서 노동은 그것에 의해 생산되는 사용가치[즉, 물적 부]의 유일한 원천은 아니다. 월리엄 페티가 말한 바와 같이, 노동은 물적 부의 아버지고, 토지는 그 어머니다. (역자 주: 페티(W.Petty), ?조세공납론?, 런던, 1667년, p. 47.)
이제 사용대상으로서의 상품에서 상품의 가치(價値)로 넘어가자.
우리의 가정에 의하면, 저고리는 아마포보다 두 배의 가치를 가진다. 그러나 이것은 양적 차이에 지나지 않으며, 이 양적 차이는 지금 당장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우리는, 만약 1개의 저고리의 가치가 10미터의 아마포의 가치의 두 배라면, 20미터의 아마포는 1개의 저고리와 동일한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하면 된다. 가치(價値)로서 저고리와 아마포는 동일한 실체를 가진 물건이며, 동질의 노동의 물체적 표현이다. 그러나 재봉과 직포는 질적으로 다른 노동형태다. 그렇지만 동일한 인간이 번갈아 가면서 재봉도 하고 직포도 하는 사회상태도 있다. 이 경우 두 가지 서로 다른 노동방식은 동일한 개인의 노동의
런던
칼 마르크스
프랑스어판 후기
독자에게
로아(J. Roy)는 될수록 정확한, 심지어 직역하는 식의 번역을 시작해 아주 깨끗하게 완수했습니다. 바로 그의 정확성이 나로 하여금 독자들이 한층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문장을 수정하게 했습니다. 책이 시리즈로 발간됨에 따라 그때그때 수정했기 때문에 수정이 한결같이 면밀하지는 못했고, 따라서 문체가 균일하게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일단 교열작업에 착수했을 때, 나는 원본(독일어 제2판)도 개정해 어떤 논의는 간략하게 하고 어떤 논의는 보충하며 역사적 또는 통계적 자료를 추가하고 비판적 주석을 붙이는 것 등등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따라서 이 프랑스어판에 어떤 문장상의 결함이 있다하더라도, 프랑스어판은 원본과는 독립적인 과학적 가치를 가지므로 독일어판을 읽은 독자들도 이 프랑스어판을 참조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나는 [독일의 경제학 발전과 이 책에서 사용한 방법을 설명한] 독일어 제2판 후기의 발췌문을 아래에 첨부합니다. [여기에서는 생략했음]
1875년 4월 28일
런던
칼 마르크스
제3판 서 문
마르크스는 이 제3판의 출판을 몸소 준비 수가 없었다. 그의 위대함에 그의 적대자들까지도 지금은 머리를 숙이는 위력있는 사상가는 1883년 3월 14일에 죽었다.
40년간에 걸친 나의 가장 훌륭한 벗,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내가 은혜를 입은 벗 마르크스를 잃어버린 나에게 이제 이 제1권 제3판과 또 마르크스가 원고의 형태로 남긴 제2권의 발간을 준비할 의무가 부과되었다. 내가 이 의무의 첫 부분을 어떻게 수행했는가에 대해 여기서 독자에게 보고하고자 한다.
마르크스는 처음에는 제1권 본문의 대부분을 개작하고, 많은 이론적 명제들을 더 명확하게 정식화하고, 새로운 것을 삽입하며, 역사적 . 통계적 자료를 최신의 것으로 만들 것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병환과 제2권의 최종적 편집을 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이것을 단념했다. 가장 필요한 것만을 정정하고, 이 시기에 발간된 프랑스어판(“Le Capital”, par Karl Marx, Paris, Lachatre, 1872-1875)에 이미 실려 있는 보충만을 삽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르크스가 남긴 책들 가운데서 [마르크스 자신이 군데군데 정정했고 또 프랑스어판을 참조하라고 명시한] 독일어판 ?자본론? 한 권이 발견되었고, 또 [마르크스가 새로운 독일어판에 이용하려고 생각한 모든 단락이 정확하게 표시되어 있는] 프랑스어판 한 권이 발견되었다. 이 정정과 보충은 거의 예외없이 "자본의 축적과정"이라는 편?[영어판으로는 제7편과 제8편]에 국한되어 있다. 이 편의 본문은 최초의 초고를 거의 그대로 반영한 부분이었다[비록 다른 편들은 최초의 초고를 근본적으로 개작했지만]. 그러므로 여기에는 문체가 더 생기발랄하며 더 미끈하기는 하나, 다른 부분에 비해 보다 경솔했으며 영어식 어법이 혼용되었고, 군데군데 명확하지 못한 곳이 있었다. 논증의 제시에는 여기저기 들이 있었고 약간의 중요한 점들이 언급될 뿐이었다.
문체에 관해 말하면, 마르크스 자신이 여러 절을 근본적으로 수정했는데, 이 수정과 많은 대화로부터 내가 어느 정도로 영어식 용어와 영어식 어법을 제거해야 할 것인가를 알 수 있었다. 물론 마르크스가 살아 있다면 추가와 보충을 더욱 검토했을 것이며, 유창한 프랑스어를 자기의 간결한 독일어로 바꾸어 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들을 원래의 본문과 가장 적합하도록 번역하는 것에 만족해야만 했다.
이 제3판에서 나는, 저자 자신도 정정했으리라고 확신하지 않는 한, 일언반구도 정정하지 않았다. 나는 독일 경제학자들이 흔히 쓰는 통용어들-예컨대 현금을 주고 타인의 노동을 얻는 자를 노동[또는 일]공급자라고 부르며, 삯을 받고 자기 노동을 제공하는 자를 노동[또는 일]수취자라고 부르는 이 잠꼬대 같은 말-을 ?자본론?에 도입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프랑스어에서도 역시 일상생활에서 '일'이라는 의미로 '노동'이라는 말이 사용된다. 그러나 경제학자가 자본가를 노동
공급자, 노동자를 노동수취자라고 부른다면, 프랑스 사람들도 응당 그 경제학자를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나는 원문에서 계속 사용하고 있는 영국식 화폐와 도량형을 신독일의 그것들로 전환하지 않았다. ?자본론? 제1판이 나왔을 당시 독일에는 1년의 날짜 수만큼이나 많은 종류의 도량형이 있었다. 그 위에 또 두 종류의 마르크가 있었고(라이히스 마르크[Reichsmark]는 당시에는 30년대 말에 그것을 고안해 낸 죄트베르[Soetbeer]의 머리 속에서만 통용되고 있었다), 두 증류의 길더(Gulden)가 있었고, 적어도 세 종류의 탈러(taler)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노이에스 쯔바이드리텔(neues Zweidrittel)이었다. 자연과학은 미터제도가 지배하고 세계시장은 영국 도량형이 지배했다. 이러한 조건하에서 [그 사실적 예증들을 거의 전적으로 영국의 산업사정에서 취해 오지 않을 수 없었던] 이 책에서 영국의 도량형 단위를 이용한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세계시장의 사정들이 거의 변경되지 많았고, 특히 가장 중요한 공업부문, [즉, 철공업과 면공업]에서는 현재도 거의 전적으로 영국의 도량형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거의 이해되고 있지 않은 마르크스의 인용방식에 관해 약간 말하려 한다. 인용이 사실의 순수한 진술(예: 영국청서로부터의 인용)이라면 그 인용은 문헌상의 단순한 예증이다. 그러나 다른 경제학자들의 이론적 견해가 인용되는 경우에는 사정이 빠르다. 이 경우의 인용은, 자기의 이론적 전개과정에서 형성된 경제사상이 어디에서, 언제, 누구에 의해 처음으로 명백하게 표명되었는가를 지적하려 할뿐이다. 이때 고려되는 것은, 문제의 경제학적 견해가 학문의 역사에서 의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그 당시의 경제상태의 다소 적절한 이론적 표현이라는 것뿐이다. 그 견해가 마르크스의 입장에서 보아 아직도 절대적 또는 상대적 타당성을 가지고 있는가, 또는 이미 지나가 버린 것인가는 전혀 중요하지 많다. 그러므로 이러한 인용들은 오직 본문에 대한 부수적인 주석, 경제학의 역사에서 빌어온 주석에 불과하며, 경제이론 분야에서 달성한 몇 개의 중요한 진보의 연대와 창시자를 확정해 준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경제학과 같은 학문에서는 특히 필요했다. 왜냐하면, 이때까지 경제학의 역사가들은 출세주의자들의 특징인 편파적인 지식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독자들은 왜 마르크스가, 제2판 후기에서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독일 경제학자들을 매우 예외적으로만 인용하게 되었는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제2권은 1884년 중에 발간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제2권은 1885년에 발간되었다].
1883년 11월 7일
런던
프리드리히 엥겔스
영어판 서 문
?자본론?의 영어판 출판을 해명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반대로, 이 책에서 전개된 이론이 과거 수년간 영국과 미국의 정기간행물과 시사문제지에서 끊임없이 논의의 대상으로, 공격과 옹호, 해석과 곡해의 대상으로 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왜 영어판이 지금까지 지연되었는가를 설명해야 할 것이다.
1883년 ?자본론?의 저자가 죽은 뒤 얼마 되지 않아 이 책의 영어판이 실제로 필요하다는 것이 명백하게 되었을 때, [마르크스와 이 서문 필자의 옛 벗이며 아마 누구보다도 이 책의 내용에 정통하고 있는 사람인] 사뮤엘 무어(Samuel Moore)가 [마르크스가 남긴 저작의 관리인들이 그 발간을 열망하고 있던] 번역을 담당할 것을 승낙했다. 나는 그의 원고를 원본과 대조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정정을 가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무어는 자기의 전문사업 때문에 우리 전체가 요망하는 것처럼 빨리 그 번역을 완료할 수 없다는 것이 얼마 되지 않아 판명되었을 때, 우리는 이 번역의 일부를 담당하겠다는 애빌링(Aveling) [마르크스의 막내 사위]의 제의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동시에 마르크스의 막내딸인 애밀링 부인[엘리너]은 인용문들을 원문과 대조하며 또 [마르크스가 영어 저서들과 청서로부터 발췌해 독일어로 번역한] 무수한 인용문을 그 원문대로 회복시키는 일을 하겠다고 제의했다. 애빌링 부인은 이 작업을 몇 개의 불가피한 예외를 제외하고는 완수했다.
이 책의 다음 부분들은 애빌링이 번역했다. (1) 제10장(노동일)과 제11장(잉여가치율과 잉여가치량), (2) 제6편(제19장에서 제22장에 걸치는 임금), (3) 제24장 제4절(잉여가치가....사정들)로부터 제25장 및 제8편 전부(제26장-제33장)를 포함하는 이 책의 마지막까지, (4) 저자의 두 개의 서문* 그 외의 부분은 모두 무어가 번역했다. 이와 같이 각 번역자는 오직 자기 작업부분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며, 나는 작업 전체에 대해 공동책임을 진다.
우리 작업의 토대로 된 독일어 제3판은 1883년에 내가 준비했다. 그 준비에서 나는 [제2판의 어떤 부분을 1872-75년에 발간된 프랑스어판1) 의 것으로 바꾸라는] 저자의 비망록을 이용했다. 제2판 본문에 가한 변경은 [약 10년 전 미국에서 계획했다가 적당한 역자가 없었던 탓으로 포기한] 영어번역판에 대한 마르크스의 일련의 각서에서 지적한 변경과 대체로 일치했다. 이 각서를 뉴저지주 호브켄의 우리의 오랜 벗 조르게(F. A. Sorge)가 우리에게 넘겨주었다. 거기에는 프랑스어판으로부터의 약간의 추가적 삽입이 지적되어 있다. 그러나 이 각서는 독일어 제3판을 위한 최후의 지시보다 여러 해 전의 것이기 때문에 나는 오직 예외적으로만 [주로 그것이 우리들의 곤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경우에만] 이용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원문의 전체 의미 중 어떤 것을 번역에서 희생시켜야 했을 때, 저자 자신은 어떤 것을 희생시켰을까 알기 위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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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겔스는 영어판에서 마르크스의 편과 장의 구분을 다음과 같이 변경시켰다.
한국어 번역판에서는 영어판의 구분을 따랐다.
독일어판 영어판
장 1-3 1-3
4 4-6
5-23 7-25
24 26-32
25 33
편 1-6 1-6
7 7-8
1) ?Le Capital" , par Karl Marx. Traduction de M.J.Roy, entierement revisee par l`auteur, Paris, Lachatre. 이 번역 특히 후반 부분에는 독일어 제2판의 본문에 대한 상당한 정정과 추가가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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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으로, 프랑스어판도 대다수의 어려운 단락들에서 참조했다.
그렇지만 우리가 독자들의 어려움을 가볍게 해 줄 수 없었던 한가지 점이 있다. 그것은 마르크스가 약간의 용어를 일상생활에서 뿐만 아니라 보통 경제학에서 쓰는 것과도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피했다. 과학의 모든 새로운 진보는 그 과학의 용어 혁명을 수반한다. 이것은 화학에서 가장 잘 나타나고 있는데, 화학에서는 용어 전체가 약 20년에 한 번씩 근본적으로 변경되고 있으며, 일련의 서로 다른 명칭으로 부르지 않는 유기화합물은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경제학은 일반적으로 상공업계의 용어들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여 사용하는 것에 만족해 왔는데, 경제학은 그렇게 함으로써 그 용어들이 표현하는 관념들의 좁은 범위 안에 자신을 국한시키고 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예컨대 고전파 경제학은, 이윤과 지대는 생산물 중 노동자가 자기의 고용주에게 제공해야 하는 불불부분(不拂部分: 고용주는 이 부분의 최초의 취득자일 뿐이고 그 궁극의 배타적인 소유자는 아니다)의 분할부분 . 몫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이윤과 지대에 관한 통속적 관념의 한계를 넘지 못했고, 생산물의 불불부분(마르크스가 잉여생산물이라고 부른 부분)을 하나의 전체로서 연구한 적이 없었으며, 그리하여 이 불불부분의 기원과 성질에 관해, 또는 그 가치적 분배를 규제하는 법칙에 관해 명백하게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농업과 수공업을 제외하고는 모든 공업이 구별없이 매뉴팩쳐라는 용어에 포괄되어 왔다. 그리하여 경제사의 본질적으로 다른 두 개의 큰 시기-즉, 손 노동의 분업에 근거하고 있는 진정한 매뉴팩쳐의 시기와 기계의 사용에 근거하고 있는 근대적 공업의 시기-사이의 구별이 없어졌다. 그러므로 근대적 자본주의 생산을 인류 경제사의 과도적 단계로 보는 이론은 [이 생산형태를 영원하고 궁극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저술가들의 상용용어와는 다른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저자의 인용방법에 대해 한 마디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 아닐 것이다. 대다수의 경우 인용문은 본문의 주장을 옹호하는 문헌적 증거로 역할한다. 그렇지만 일정한 명제가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처음으로 명백하게 표명되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경제저술가로부터 구절들이 인용되는 경우도 많다. 인용되는 명제가 그 당시에 지배적이었던 사회적 생산 . 교환의 다소 적절한 표현으로서 중요성을 가지는 경우에는, 그것의 일반적 타당성을 마르크스가 인정하는가 않는가에 전혀 관계없이 인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인용문들은 경제학의 역사에서 취해온 부수적인 주석으로 본문을 보충하는 것이다.
우리의 번역은 이 책의 제1권만을 포괄한다. 그러나 이 제1권은 현저하게 그 자체가 하나의 전체를 이루고 있으며, 또 20년 동안 독립적인 저서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1885년에 내가 독일에서 편집 .출판한 제2권은 제3권 없이는 분명히 불완전하다. 제3권은 아마 1887년 말 이전에는 발간할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는 1894년에 발간되었다]. 제3권이 독일어 원문으로 출판되는 그때에 이 두 권의 영어판을 준비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유럽대륙에서는 ?자본론?을 가끔 '노동자계급의 성경'이라고 부른다. 노동운동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책에서 도달한 결론들이 나날이 더욱더 독일과 스위스뿐 아니라 프랑스 . 네덜란드 . 벨기에 미국 심지어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까지도 거대한 노동운동의 기본원리로 되고 있다는 것, 모든 곳에서 노동자계급은 이 결론들을 자기의 처지와 희망의 가장 정확한 표현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또 영국에서도 바로 지금 마르크스의 이론은 {노동
자계급의 대열 안에서와 마찬가지로 '교양있는' 사람들[페이비안협회원] 사이에도 보급되고 있는} 사회주의운동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영국의 경제사정을 철저하게 연구하는 것이 불가피하게 국민 전체의 과제로 등장할 시대가 급속히 다가오고 있다. 영국 산업체계의 운동은 생산과 시장의 계속적이고 급속한 확대없이는 불가능한데, 지금 완전한 정지상태에 빠지고 있다. 자유무역은 그 밑이 드러났고, 맨체스터까지도 자기가 주장해 온 이 경제적 복음에 의심을 품고 있다.2)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외국공업은 모든 곳에서 영국의 생산물과 경쟁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보호관세에 의해 보호되고 있는 시장에서뿐만 아니라 중립시장에서도, 심지어 영국에서까지도 그렇다. 생산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증대하고 있는데 시장은 기껏해야 산술급수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1825년부터 1867년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반복되어온 정체 . 번영 . 과잉생산 공황의 10년 주기의 순환은 사실상 끝난 것같이 보이고, 우리는 영속적이고 만성적인 불황이라는 절망의 진흙탕 속에 빠지고 말 것 같다. 그처럼 열렬히 기다리는 번영기는 즘처럼 오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번영기의 도래를 예고하는 듯한 징조가 감촉되자마자 곧 또다시 사라지곤 했기 때문이다. 겨울이 닥쳐올 때마다 "실업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중대한 문제가 또다시 제기된다. 실업자의 수는 해마다 증가하지만 누구도 이 문제에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실업자들이 참다 못해 자기의 운명을 자기의 수중에 틀어쥐게 될 순간이 오리라는 것을 확실히 예상할 수있다. 그와 같은 순간에는 마르크스의 목소리를 응당 들어야 할 것이다. 그는 전 생애에 걸쳐 영국의 경제사와 경제사정을 연구한 뒤 자기의 전체 이론을 수립했고, 이 연구에 의거해 적어도 유럽에서는 영국만이 전적으로 평화적 . 합법적 수단에 의해 필연적인 사회 [주의]혁명을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라는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영국의 지배계급들이 '노예제도를 옹호하는 반란' [자본주의 체제를 옹호하는 반란]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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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오늘 오후에 개최된 맨체스터 상공회의소 분기별 정기회의에서는 자유무역에 관해 열렬한 토론이 벌어졌다. 다음과 같은 결의문이 동의되었다. '다른 나라들이 영국 자유무역 모델을 뒤따르리라고 40년이나 기다렀으나 쓸모없이 되었으므로, 이 상공회의소는 이제 자기의 입장을 재검토할 시기가 도래했다고 생각한다.‘ 결의문은 단 1표의 다수로 부결되었다. 즉, 찬성 21표, 반대 22표"(?이브닝 스탠다드?, 1886년 11월 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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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평화적 . 합법적 혁명에 굴복하리라고는 거의 기대할 수 없다고 첨언하는 것을 결코 잊지 않았다.
1886년 11월 5일
프리드리히 엥겔스
제4판 서 문
제4판에서 나는 본문과 주를 최종적으로 완전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내가 이 과업을 수행했는가를 간단히 말하고자 한다.
나는 다시 한 번 프랑스어판과 마르크스의 친필 각서를 대조한 다음, 프랑스어판에서 약간의 부분을 취해 독일어판 본문에 새로 보충했다. 그것들은 [한글판에서] 149쪽, 660-662쪽, 795-800쪽, 855-858쪽 및 861쪽의 주 13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또 나는 프랑스어판과 영어판의 예에 따라 광산노동자에 관한 긴 주를 본문(663-675쪽)에 첨가했다. 기타의 사소한 변경들은 순전히 기술적 성격을 띤 것이다.
다음으로 나는 역사적 조건의 변화로 말미암아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곳에는 약간의 해설적인 주를 보충했다. 이러한 보충적 주는 모두 괄호 속에 넣고 나의 성명의 약자를 기입했다. [한글판에서는 {엥겔스: }로 표시했음] .
얼마 전에 영어판이 나왔기 때문에 수많은 인용문을 완전히 교열하는 것이 필요하게 되었다. 영어판을 위해 마르크스의 막내 딸 엘리너(Eleanor)가 인용 전체를 원전과 대조해 준 결과 [인용문의 압도적 다수를 이루는] 영어인용문이 영어판에서는 독일어판의 재번역이 아니고 영어 윈문 그대로다. 그러므로 나는 제4판에서는 이 영어판을 참고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여러 곳에서 사소한 부정확한 점이 발견되었다. 인용 쪽수의 잘못이 있었는데, 일부는 노트에서 옮겨 쓸 때 잘못 쓴 데서, 일부는 판을 세 번 거듭하는 동안 쌓인 오식에서 생긴 것이었다. 인용부호 또는 생략점의 위치가 잘못된 곳이 있었는데, 이것은 발췌장에서 대량으로 인용할 때 불가피하게 생긴 착오였다. 또한 그리 적절하지 못한 번역어가 여기저기 있었다. 특히 마르크스가 아직 영어를 몰라 영국경제학 서적들을 프랑스어 번역판으로 읽고 있었을 때인 1843-1845년 파리에서 작성한 낡은 노트로부터 인용되어 이중(二童)번역 때문에 인용문의 의미가 약간 달라진 곳 [예컨대 스튜어트, 유어등등의 경우]도 있었는데, 이 경우 나는 영어 원문을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밖에도 이와 비슷한 사소한 부정확성과 부주의는 있었다. 그러나 만약 독자들이 이 제4판을 이전 판들과 비교해 본다면, 이 모든 힘드는 교정과정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조금도 변경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오직 하나의 인용문만이 그 출처를 찾을 수 없었는데, 그것은 리처드 존스(Richard Jones)로부터 인용한 것(p.746, 주35)이었다. 아마도 마르크스가 책의 이름을 잘못 쓴 것 같다. [나중에 존스로부터의 인용임이 밝혀졌다] . 기타의 인용문은 모두 올바르게 인용
되었으며, 현재와 같은 정확한 형태를 갖춤으로써 인용의 정확성이 더욱 빛나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하나의 오래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알기로는 마르크스가 인용한 인용문의 정확성이 의심받았던 경우는 단 한 번밖에 없었다. 그런데 마르크스가 죽은 뒤에도 이것이 문제로 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여기에서 그것을 묵과할 수가 없다.
1872년 3월 7일 독일 공장주협회의 기관지인 베를린의 ?콘코르디아?(Concordia) [화합]에 "칼 마르크스는 어떻게 인용하는가"라는 하나의 익명 논문이 실렸다. 이 논문에서 필자는 도덕적으로 분개해 무례한 말들을 한껏 써가면서, 1863년 4월 16일의 글래드스톤의 예산연설로부터의 마르크스의 인용(1864년 국제노동자협회 창립선언에 인용되었고, ?자본론?, 제1권, p.890에 인용되었다)은 위조라고 주장했다. 즉, 마르크스가 인용한 "이 실신할 정도의 부와 권력의 증대는.....전적으로 유산계급에 국한되어 있다"라는 문구는 ?한사드?(Hansard) [의회 의사록]의 준관보적 속기록에는 한 마디도 실려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구는 글래드스톤의 연설에는 아무데도 없다. 그 연설에서는 정반대의 말을 하고 있다." (이 다음부터는 굵은 활자로) "마르크스는 이 문장을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위조 첨가했다"라고.
그 해 5월에 ?콘코르디아?의 이 호를 받은 마르크스는 이 익명의 필자에게 ?폴크스슈타트?(Volksstaat)[인민국가] 6월 1일호에서 답변했다. 그는 자기가 어떤 신문기사로부터 인용했던가를 기억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선 두 개의 영국 간행물에 있는 위와 같은 의미의 인용문을 지적한 다음, ?더 타임즈?의 보도를 인용하는 데 국한했다. ?더 타임즈?에 의하면, 글래드스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것이 이 나라의 부의 현상이다. 만약 실신할 정도의 부와 권력의 증대가 오직 부유한 계급에 국한되어 있다는 것이 확실하다면, 나는 그것을 거의 불안하고 비통한 마음으로 주시할 것이라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 현상은 노동자의 상태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정확하다고 생각되는 자료에 의하면, 내가 방금 진술한 부의 증대는 전적으로 유산계급에게만 국한되고 있다. "
여기서 글래드스톤은, 만약 그렇다면 유감천만한 일인데, 사실은 바로 그렇다고 말하고 있다. 즉, 이 실신할 정도의 부와 권력의 증대는 전적으로 유산계급에 국한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준관보적인 ?한사드?에 관해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글래드스톤은 나중에 그 연설문을 수정하여, 영국의 대장성 장관의 말로서는 확실히 말썽이 일어날 수 있는 그 단락을 삭제했다. 그렇지만 이것은 영국 의회의 전통적인 관례이지 결코 베벨(Bebel)을 반대하기 위해 꼬마 라스커(Lasker)가 만들어낸 발명 [독일의회에서 라스커가 데벨에게 행한 자기의 욕설을 속기록에서 때도록 한 사건]은 아니다. "
익명의 필자는 더욱 화를 냈다. 7월 4일 ?콘코르디아?의 자기의 답변에서, 그는 일체의 이차적인 자료는 젖혀놓은 채, 의회연설은 속기록으로부터 인용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계속해 ?더 타임즈?의 보도(이 속에는 '위조'된 문구가 들어 있다)와 ?한사드?의 보도(여기에는 이 문구가 없다)는 '실질적으로 완전히 일치'하며, 또 ?더 타임즈?의 보도는 '국제노동자협회 창립선언 중의 그 악명 높은 단락과는 정반대의 뜻'을 포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더 타임즈?의 보도에는 이 이른바 '정반대'의 것과 아울러 바로 그 '악명높은 단락‘도 분명히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애써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익명의 필자는 자기가 난처하게 되었다는 것과 오직 새로운 탈출구만이 자기를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하여 그는 '철면피한 거짓'으로 가득
찬 자기의 논문에서 '악의', '부정직', '허위주장', '이 허위인용', '철면피한 거짓', '완전히 위조된 인용', '이러한 위조', '단순히 수치스러운' 등등과 같은 극단적인 욕설을 퍼부으면서도, 동시에 논쟁점을 슬며시 다른 분야로 넘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우리가 글래드스톤의 말의 내용에 어떤 의의를 부여해야 하는가를 별개의 논문에서 설명"하겠다고 약속했다. 전혀 보잘것없는 그의 견해가 마치 조금이라도 그 문제[부(富)와 권력의 불균등분배]와 관계가 있는 듯이! 이 별개의 논문은 7월 11일의 ?콘코르디아?에 실렸다.
마르크스는 이에 대해 8월 7일의 ?폴크스슈타트?에서 다시 한 번 답변했는데, 이번에는 해당 단락을 1863년 4월 17일의 ?모닝 스타?(Morning Star) [샛별]와 ?모닝 애드버타이저? (Morning Advertiser) [조간광고]로부터도 인용했다. 이 두 신문에 의하면, 글래드스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 실신할 정도의 부와 권력의 증대가 실제로 '부유한 계급'에 국한되어 있다는 것이 확실하다면, 자기는 그것을 불안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사실상 이러한 증대는 '완전히 재산소유자계급에게만 국한되어 있다‘ 라고. 이와 같이 이 기사들에도 마르크스가 '위조첨가'했다는 문구가 문자 그대로 들어있다. 더 나아가 마르크스는 [그 다음 날 아침 서로 독립적으로 나온 세 개의 신문기사가 그 점에서 완전히 일치한다는 점에서 사실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 증명되는] 그 문장이 잘 알려진 '관례' [연설자가 검열하는 관례]에 따라 ?한사드?의 의사록에는 실려 있지 않다는 것과, 글래드스톤은 그것을, 마르크스의 말을 빌린다면, "그 뒤 슬쩍 삭제했다"는 것을 ?더 타임즈?와 ?한사드?의 원문들을 대비함으로써 다시 한 번 확증했다. 끝으로 마르크스는
익명의 필자를 때 이상 상대할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익명의 필자도 더 할 말이 없었던지 적어도 마르크스는 그 뒤 ?큰코르디아?를 받지 않았다.
이로써 사건은 종말을 짓고 망각된 것같이 보였다. 하기는 그 뒤 캠브리지대학과 관계를 가진 사람들로부터,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언어도단의 문필상 죄악을 법했다는 정체불명의 풍문이 한두 차례 전해온 적은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조사해도 확실한 것은 도무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1883년 11월 9일, 즉 마르크스가 죽은 뒤 8개월이 지나 ?더 타임즈?에 캠브러지 트리니티대학의 세들리 헤일러(Sedley Taylor)라는 사람의 편지가 실렸다. 매우 온건한 협동조합 활동을 하고 있는 이 소인은 그 편지에서 전혀 뜻밖에도 캠브리지의 풍문에 관해서뿐만 아니라 ?콘코르디아?의 익명 필자에 관해서도 말했다.
트리니티대학의 소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아주 기이하게 생각되는 것은, 글래드스톤의 연설로부터의 인용을 [국제노동자협회 창립]선언에 넣도록 했던 마르크스의 악의를 브렌타노(Lujo Brentano) 교수(당시에는 브레슬라우 대학에 있었고 현재는 슈트라스부르그대학에 있다)가 비로소 폭로....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인용문을 변호하려고 시도한....칼 마르크스는 브렌타노가 한 번 멋있게 치자 넘어졌으나, 그래도 뱃심좋게 주장하기를, 글래드스톤은 1863년 4월 17일의 ?더 타임즈?에 실린 자기의 연설 보도를 ?한사드?에 싣기 전에 뜯어고쳐 영국 대장성 장관의 말로서는 '확실히 말썽이 일어날 수 있는' 단락을 '삭제'했다는 것이다. 브렌타노가, 교활하게도 앞뒤를 끊어버리고 인용함으로써 글래드스톤
의 발이 가지게 된 그러한 의미를 절대로 포함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더 타임즈?와 ?한사드?의 보도가 일치한다는 것을 원문을 세밀히 대조해 증명했을 때, 마르크스는 '시간이 없다'는 구실로 퇴각해 버렸던 것이다. "
사건의 진상은 바로 이러했다! 그리고 ?콘코르디아?의 브렌타노의 익명 논쟁은 캠브리지의 생산협동조합원의 관념에 그처럼 휘황하게 반영되었던 것이다. 독일 공장주협회의 성 조지인 브렌타노가 칼을 휘둘러 '멋있게 한 번 치니', 저승의 용 마르크스는 그만 '넘어져' 그의 발 밑에서 '최후의 숨'을 거두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아리오스토(Ariosto)적 친기(戰記)는 우리의 성(聖) 조지의 탈출구를 은폐하려는 데 불과하다. 여기서 문제로 되고 있는 것은 이미 '위조 첨가된 것', '위조'가 아니라 오직 '교활하게도 앞뒤를 끊어버리고 인용한 것'이다. 문제 전체는 어느새 다른 분야로 옮겨졌는데, 성(聖) 조지와 캠브리지의 방패잡이는 왜 그렇게 하는 것이 필요한가를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엘리너 마르크스(Eleanor Marx)는 ?더 타임즈?가 자기의 편지를 게재하는 것을 거절했으므로, 월간잡지 ?투데이?(1884년 2월호)에서 레일러에게 답변했다. 이 답변에서 그녀는 논쟁을 일찍이 문제로 되었던 단 한 점, 즉 마르크스가 문제의 문장을 '위조 첨가'했는가 아니했는가에 집중시켰다. 데일러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응답했다. 그의 의견에 의하면, 마르크스와 브렌타노 사이의 논쟁에서는
"글래드스톤의 연설 가운데 어떤 한 문장이 있었느냐 없었느냐라는 문제는, 인용의 의도가 글래드스톤의 말의 진의를 그대로 전달하는 데 있었는가 그것을 왜곡하는 데 있었는가라는 문제에 비하면 매우 부차적인 의의밖에 가지지 못했다. "
그 다음 그는 ?더 타임즈?의 보도가 "실제로 모순되는 말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만약 문맥을 정당하게, 다시 말해, 자유주의적-글래드스톤적 의미로 해석한다면, 그 문맥은 글래드스톤이 말하기를 원했던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투데이? 1884년 3월호). 여기서 가장 우스운 것은, 캠브리지의 소인이 이제는 연설을 ?한사드?로부터 인용하지 않고-익명 필자 브렌타노의 의견에 의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관례'임에도 불구하고-[그 보도가 "조잡하지않을 수 없다"고 브렌타노가 특징지은] ?더 타임즈?로부터 열심히 인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사드?에는 이 시끄러운 문장이 들어 있지 않으니 그렇게 할 수밖에.
엘리너 마르크스가 ?투데이?의 같은 호에서 이 논의를 분쇄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둘 증에 하나일 것이다. 테일러가 1872년의 논쟁을 읽었다면 그는 지금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없던 것을 '위조 첨가'할 뿐 아니라 있던 것을 '삭제'하고 있는 것이다. 또는 그가 이 논쟁을 읽지 않았다면 발언할 권리가 없는 것이다. 아무튼 그는 마르크스가 '위조 첨가'했다는 자기 벗 브렌타노의 고발을 감히 지지하지 못한 것만은 확실하다. 반대로 이제는 마르크스가 위조 첨가한 것이 아니고 하나의 중요한 문장을 삭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문장은 창립선언 제5쪽에 이른바 '위조 첨가'되었다는 문장보다 몇 줄 앞에 인용되어 있다. 글래드스톤의 연설 가운데 있는 '모순'에 관해 말한다면,'1863년과 1864년의 글래드스톤의 예산안 제안연설에 나타난 끊임없는
놀라운 모순들'을 ?자본론? [한글판 p.891, 주40]에서 지적한 사람이 바로 마르크스가 아니고 누구인가? 그는 다만 이 모순들을 테일러식으로 자유주의적 자기만족감 속에 해소시키려고 시도하지 않았을 뿐이다. 엘리너 마르크스는 답변의 결론에서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인용할 가치 있는 것을 삭제하지도 않았고 아무것도 '위조 첨가'하지 않았다. 그는 글래드스톤의 연설에서는 확실히 말했으나 어떻게 되어 ?한사드?의 기록에는 탈락된 한 문장을 부활시켜 망각으로부터 구해냈던 것이다. "
이것으로 세들리 테일러도 진정했다. 20년 동안 두 큰 나라에 걸쳐 진행된 교수들의 공모 전체를 부수어버린 결과 누구도 마르크스의 문필적 양심을 비방하지 못하게 되었다. 또 금후 브렌타노는 ?한사드?에는 절대로 과오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믿지 않을 것이며, 마찬가지로 세들리 테일러는 브렌타노의 문헌적 전투보고를 믿지 않게 될 것이다.
1890년 6월 25일
런던
프리드리히 엥겔스
제 1 편
상품괴 화폐
제 1 장 상 품
제 2 장 교환과정
제 3 장 화페 또는 상품유통
제1장 상 품
제 1 절 상품의 두 요소: 사용가치와 가치
(가치의 실체, 가치의 크기)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지배하는 사회의 부(富)는 '상품의 방대한 집적(集積)(주석1: 마르크스,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베를린, 1859년, p. 3.) 으로 나타나며, 개개의 상품은 이러한 부의 기본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우리의 연구는 상품의 분석으로부터 시작한다.
상품(商品)은 우선 우리의 외부에 있는 하나의 대상이며, 그 속성들에 의해 인간의 온갖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물건이다. 이 욕망의 성질이 어떠한가, 예컨대 욕망이 위로부터 나오는가 또는 환상으로부터 생기는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주석 2: "욕망은 결핍을 전제로 한다. 욕망은 마음의 식욕(食欲)으로서, 육체의 배고픔처럼 자연스럽다. 대다수의 물건은 마음의 결핍을 충족시켜 주기 때문에 가치를 갖는다"(바본[N. Barbon], ?더욱 가벼운 신화폐의 주조에 관한 논술: 로크의 고찰들에 대한 대답?, 런던, 1696년, pp. 2-3). 또한 물건이 인간의 욕망을 어떻게 만족시키는가, 즉 생활수단(소비재)으로서 직접적으로 만족시키는가, 아니면 생산수단으로서 간접적으로 만족시키는가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철 ?종이 등과 같은 유용한 물건은 질(質)과 양(量)의 두 측면에서 고찰할 수 있다. 유용한 물건은 수많은 속성들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다양하게 유용할 수 있다. 물건들의 다양한 용도를 발견해 내는 것은 역사의 과업이다.(주석 3: "물건은 어디에서도 변하지 않는 내재적 속성"(이것은 사용가치를 나타내는 바본의 독특한 용어이다)"을 가진다. 예컨대 철을 끌어당기는 자석의 능력과 같은 것이 그것이다"(바본, 같은 책, p. 6). 철을 끌어당기는 자석의 속성은, 자극이 발견되고 나서야 비로소 유용하게 되었다.
유용한 물건의 양을 측정하는 사회적 척도[예:kg, m]를 찾아내는 것도 또한 그렇다. 상품의 척도들이 다양하게 된 이유는 부분적으로는 측정되는 대상의 성질이 다양하기 때문이고, 또 부분적으로는 사회적 관습 때문이다.
한 물건의 유용성은 그 물건으로 하여금 사용가치(使用價値: use-value)가 되게 한다. (주석 4: "물건의 자연적 가치(natural worth)는 그것이 인간생활의 필요를 충족시키거나 편의에 이바지하는 데 적합하다는 점에 있다. "(로크[J. Locke], ?이자인하의 결과들에 관한 몇 가지 고찰?, 1691년, ?저작집?, 런던, 1777년, 제2권, p. 28). 우리는 17세기의 영국 저술가들이 'worth'를 사용가치의 의미로, 'value'를 교환가치의 의미로 사용한 것을 자주 발견하는데, 이것은 현실적 사물은 게르만계통의 언어로, 사물의 반영은 라틴 계통의 언어로 표현하기를 좋아하는 영어의 정신에 아주 잘 부합된다.) 그러나 이 유용성은 공중에 떠있는 것이 아니라 상품의 물리적 속성에 의해 주어지고 있으며, 그 상품체( physical body of the commodity)와 별도로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철 . 밀 .금강석 등과 같은 상품체 자체가 사용가치 또는 유용한 물건인 것이다. 상품의 이러한 속성은, 그 유용성을 취득하는 데 인간 노동이 많이 소요되는가 적게 소요되는가와는 관계가 없다. 사용가치를 고찰할 때 우리는 항상 일정한 양(예: 몇 개의 시계, 몇 톤의 철, 몇 미터의 아마포)을 다루고 있다. 상품의 사용가치는 상품학(商品學)이라는 특수 분야의 연구대상이다.(주석 5: 부르주아 사회에서는 누구나 상품구매자로서 상품에 관한 백과사전식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법적 가설이 지배하고 있다.) 사용가치는 오직 사용 또는 소비에서만 실현된다. 사용가치는 부의 사회적 형태가 어떠하건 부의 소재적 내용(material content)을 형성한다. 우리가 고찰하는 사회형태에서 사용가치는 동시에 교환가치(交換價値: exchange value)의 물적 담지자다.
교환가치는 우선 양적 관계, 즉 어떤 종류의 사용가치가 다른 종류의 사용가치와 교환되는 비율(주석 6: "가치란 어떤 물건과 다른 물건, 어떤 생산물의 일정한 양과 다른 생산물의 일정한 양이 교환되는 비율이다"(르 트로느(Le Trosne), ?사회적 이익에 대해?, ?중농주의자?, 데르[Daire]편. 파리, 1846년, p. 889).)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 비율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끊임없이 변동하므로, 교환가치는 어떤 우연적이며 순전히 상대적인 것처럼 보이고, 따라서 상품 자체에 고유한 내재적 교환가치라는 것은 일종의 형용모순인 것처럼 보인다.(주석 7: "어떤 물건도 내재적 가치를 가질 수 없다"(바본, 앞의 책, p. 6). 또는 버틀러(Butler)가 말한 바와 같이, "물건의 가치는 그 물건이 가져오는 것과 똑같은 크기다. ") 이 문제를 좀더 자세히 고찰해 보자.
일정한 상품(예컨대 1쿼터의 밀)은 X량의 구두약, Y량의 명주, Z량의 금 등등, 요컨대 상이한 상품과 다양한 비율로 교환된다. 따라서 밀은 단 하나의 교환가치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교환가치를 가진다. X량의 구두약, Y량의 명주, Z량의 금 등은 모두 밀 1쿼터의 교환가치를 표현한다. 따라서 X량의 구두약, Y량의 명주, Z량의 금 등은 교환가치로서는 서로 대체할 수 있는 동일한 크기임에 틀림없다. 이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첫째 특정한 상품의 서로 다른 교환가치들은 동일한 그 무엇을 표현하고 있으며, 둘째 교환가치는 교환가치와는 구별되는 그 어떤 내용의 표현양식 또는 '현상형태'(現像形態: form of Apearance)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두 개의 상품, 밀과 철을 예로 들어 보자. 그들이 교환되는 비율은 [그 비율이 어떻든] 밀의 주어진 양이 철의 일정한 양과 등치되는 하나의 등식, 예컨대 1쿼터의 밀= X킬로그램의 철로 표시할 수 있다. 이 등식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두 개의 서로 다른 물건-즉 1쿼터의 밀과 X킬로그램의 철-에는 양자에 공통된 것의 동일양이 들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양자는 (둘 중의 어느 하나가 아닌) 제3자와 동등하며, 각각은 (교환가치인 한) 이 제3자로 환원될 수 있어야 한다.
간단한 기하학의 실례를 가지고 이것을 설명해 보자. 다수의 다각형의 면적을 결정하고 비교하기 위해 우리는 그것을 삼각형으로 분해한다. 또 그 삼각형 자체를 그 외견상의 형상과는 전혀 다른 표현[즉, 밑변과 높이의 곱의 1/2]으로 환원시킨다. 이와 마찬가지로, 상품의 교환가치들도 하나의 공통적인 것-교환가치는 그것의 어떤 양을 표시한다-으로 환원되어야 한다.
이 공통적인 그 무엇은 상품의 기하학적 물리학적 . 화학적 또는 기타의 자연적 속성일 수 없다. 그러한 속성들은 그 상품들의 유용성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그것들을 사용가치로 만드는 한에서만 우리의 관심 대상이 된다. 그러나 상품들의 교환비율은 분명히 상품의 사용가치를 사상(捨象)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즉, 상품의 교환 관계에서는 어떤 하나의 사용가치는, 그것이 적절히 존재하기만 한다면, 다른 어떤 사용가치와 마찬가지로 유용하다. 또는 노련한 바본(Barbon)이 말하는 바와 같이,
"어떤 한 종류의 상품과 다른 종류의 상품은, 만일 그 교환가치가 같다면, 다를 것이 없다. 같은 크기의 교환가치를 가지는 물건들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도 구별도 없다....100원의 가치를 가지는 납이나 철은 100원의 가치를 갖는 금이나 은과 똑같은 크기의 교환가치를 가진다. " (주석 8: 바본, 앞의 책, pp. 53, 57)
사용가치(使用價値)로서의 상품은 무엇보다도 질적(質的)으로 구별되지만, 교환가치로서의 상품은 오직 양적(量的) 차이를 가질 뿐이고, 따라서 거기에는 사용가치가 조금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만약 상품의 사용가치를 무시한다면, 거기에는 오직 하나의 속성, 즉 그것이 노동생산물(勞動生産物)이라는 속성만 남는다. 그러나 그 노동생산물 자체도 전혀 새로운 의미를 가진다. 만약 우리가 노동생산물의 사용가치를 무시한다면, 우리는 동시에 [그 노동생산물을 사용가치로 되게 하는] 물적 구성요소 . 형태들까지도 무시하게 된다. 이제 이 노동생산물은 책상 . 집 . 면사 또는 기타의 어떤 유용한 물건도 아니다. 감각적으로 포착할 수 있는 그것의 모든 속성들은 사라져 버린다. 그것은 더 이상 가구공 . 벽돌공 . 방적공의 노동생산물이 아니며, 기타 어떤 특정한 생산적 노동의 생산물도 아니다. 노동생산물의 유용성이 사라짐과 동시에 노동생산물에 투하되어 있는 노동의 유용한 성질도 사라지고, 따라서 노동의 상이한 구체적 형태도 사라진다. 이들 노동은 더 이상 서로 구별되지 않고 모두 동일한 종류의 노동, 즉 추상적 인간노동(abstract human labour)으로 환원된다.
이제 노동생산물들은 유령 같은 형상[즉, 동질적인 인간노동이 응
고되어 있는 형상]을 띠게 된다. 다시 말해, 노동생산물들은 인간노동력이 그 지출형태와는 관계없이 지출되어 응고된 것에 불과하다.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은, 그들의 생산에 인간의 노동력이 지출되었다는 것, 인간노동이 그들 속에 체현되어 있다는 것이다. 모든 노동생산물은 그들에게 공통적인 이러한 사회적 실체의 결정체(結晶體: crystal)로서 가치(價値), 상품가치이다.
우리는 이미 상품들이 교환될 때 그들의 교환가치는 사용가치와는 전혀 관계없다는 것을 보았다. 만약 우리가 상품의 사용가치를 무시해 버린다면, 남는 것은 위에서 규정한 바와 같은 상품의 가치(價値)뿐이다. 따라서 상품의 교환관계 또는 교환가치에서 나타나는 공통인자는 바로 상품의 가치이다. 우리는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교환가치야말로 가치의 필연적인 표현양식 또는 현상형태임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당분간 가치의 성질을 그 현상형태와는 관계 없이 고찰해야 한다.
사용가치 또는 유용한 물건이 가치를 가지는 것은 다만 거기에 추상적 인간노동(人間勞動)이 체현되어 있거나 대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역자 주: 상품은 사용가치와 가치라는 모순적인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다고 마르크스는 말하고 있으므로, "사용가치가 가치를 가진다"는 표현은 "유용한 물건 또는 상품이 가치를 가진다"고 고쳐 쓰는 것이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 그러면 그 가치의 크기는 어떻게 측정하는가? 그 물건에 들어 있는 '가치를 형성하는 실체'인 노동의 양에 의해 측정한다. 노동의 양은 노동의 계속시간으로 측정하고, 노동시간은 시간 . 일 . 주 등을 기준으로 측정한다.
만약 상품의 가치가 그것을 생산하기 위해 지출된 노동량(勞動量)에 의해 결정된다면,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자가 나태하거나 미숙련이면 일수록 [그 상품을 생산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요구되므로)]그 상품의 가치는 그만큼 더 클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치의 실체를 이루는 노동은 동등한 인간노동이며, 동일한 인간노동력의 지출이다. 상품세계의 가치로 자기를 표현하는 사회의 총노동력(總勞動力)은, 비록 무수한 개인 단위의 노동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여기에서는 거대한 하나의 동질의 인간노동력으로 간주된다. 각 단위의 노동력은 [노동력의 사회적 평균단위라는 성격을 가지고 또 그와 같이 작용하는 한, 다시 말해 한 상품의 생산에 평균적으로 필요한 (즉,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만 걸리는 한] 서로 다름이 없는 동일한 인간 노동력이다.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socially necessary labour-time)이란 주어진 사회의 정상적인 생산조건과 그 사회에서 지배적인 평균적 노동숙련도와 노동강도 하에서 어떤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데 걸리는 노동시간이다. 예컨대 영국에서는 증기직기의 도입으로 일정량의 실을 직물로 전환시키는 데 걸리는 노동을 반감시켰다. 증기직기가 도입된 뒤에도 영국의 수직공들은 이러한 전환에 종전과 같은 노동시간을 소비했지만, 이제는 그의 개별노동 1시간의 생산물은 1/2 시간의 사회적 노동밖에 대표하지 못하고, 따라서 그 생산물의 가치는 이전 가치의 절반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이와 같이 어떤 물건의 가치량을 결정하는 것은 오직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량, 즉 그것의 생산에 사회적으로 걸리는 노동시간이다.(주석 9: "그것들(소비품들)이 서로 교환될 때, 그것들의 가치는 그것들의 생산에 필연적으로 요구되며, 또 일반적으로 소요되는 노동량에 의해 규정된다"(?금리 일반 및 특히 공채이자에 관한 고찰?, 런던, pp. 36-37. 18세기의 이 주목할 만한 익명의 저서는 발행연도가 표시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그 내용으로 보아 조지 2세 시대인 1739년 또는 1740년에 발간된 것이 분명하다.) 이 경우 개개의 상품은 그것이 속한 종류의 평균적 표본으로 간주될 뿐이다.(주석 10: "동일한 종류의 생산물 전체는 본래 하나의 집단을 형성하며, 그것의 가격은 개별적인 조건과는 관계없이 전체적으로 결정된다"(르 트로느, 앞의 책, p.893).) 따라서 동일한 노동량이 들어 있는 상품들[즉, 동일한 노동시간에 생산할 수 있는 상품들]은 동일한 가치량(價値量)을 가진다. 한 상품의 가치와 다른 상품의 가치 사이의 비율은 전자의 생산에 걸리는 노동시간과 후자의 생산에 걸리는 노동시간 사이의 비율과 같다.
"가치로서는, 모든 상품은 일정한 크기의 응고된 노동시간(勞動時間)에 불과하다. " (주석 11: 마 르크스, 앞의 책, p. 6.)
그러므로 만약 상품의 생산에 걸리는 노동시간이 불변(不變)이라면, 그 상품의 가치도 불변일 것이다. 그러나 노동시간은 노동생산성(勞動生産性)이 변할 때마다 변한다. 노동생산싱은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해 결정되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노동자들의 평균적 숙련도(熟練度), 과학과 그 기술적 응용의 발전 정도, 생산과정의 사회적 조직, 생산수단의 규모와 능률, 그리고 자연적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 동일한 양의 노동이라도 예컨대 풍년에는 8부셸의 밀을 생산하고 흉년에는 겨우 4부셸의 밀을 생산한다. 동일한 양의 노동이라도 풍부한 광산에서는 빈약한 광산에서보다 더 많은 금속을 생산해 낸다. 금강석은 지표에 나와 있는 경우가 없으므로 그것을 발견하는 데는 평균적으로 더 많은 노동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금강석은 적은 양으로 많은 노동을 대표한다. 제이콥(Jacob)은 금에 대해 그 완전한 가치가 지불된 적이 있었는지를 의심하고 있다.(역자 주: 제이콥(W. Jacob), ?귀금속의 생산 및 소비의 역사적 연구?, 런던, 1831년, 제2권, p. 101.) 이것은 금강석에 더욱 적합한 말이다. 에슈베게(Eschwege)에 의하면, 1823년까지의 80년간 브라질 금강석 광산의 총산출액은 브라질의 사탕 또는 커피농장의 1년 반 분의 평균생산물의 가격에도 미달했다[비록 금강석이 훨씬 더 많은 노동을, 따라서 더 많은 가치를 대표하고 있었지만]. 만약 광산이 더 풍부하다면 동일한 양의 노동은 그만큼 더 많은 양의 금강석으로 대상화될 것이며, 따라서 금강석의 가치는 그만큼 떨어질 것이다. 만약 아주 적은 노동으로 석탄을 금강석으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한다면, 금강석의 가치는 벽돌의 가치보다 낮아질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노동생산성이 높으면 높을수록 한 물품의 생산에 걸리는 노동시간은 그만큼 작아지며, 그 물품에 응고되는 노동양도 그만큼 적어지고, 따라서 그 물품의 가치도 그만큼 작아진다. 반대로 노동생산성이 낮으면 낮을수록 물품의 생산에 걸리는 노동시간은 그만큼 커지며, 그 물품의 가치도 그만큼 커진다. 이와 같이, 상품의 가치는 그 상품에 체현되어 있는 노동량(勞動量)에 정비례하고 노동생산성(勞動生産性)에 반비례한다. (역자 주: 초판에는 이후 다음과 같은 단락이 계속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가치의 실체를 알았다. 그것은 노동이다. 우리는 가치의 크기의 척도를 알았다. 그것은 노동시간이다. 가치에 교환가치라는 도장을 찍는 가치의 형태는 아직 분석되어야 한가. 그러나 그 전에 이미 찾아낸 규정들을 좀더 상세히 전개해야 되겠다.“)
어떤 물건은 가치가 아니면서도 사용가치일 수 있다. [가치를 가지지 않으면서도 사용가치를 가질 수 있다]. 인간에 대한 그 물건의 유용성이 노동에 의해 매개되지 않는 경우에 그러하다. 예를 들면 공기 . 처녀지 . 자연의 초원 . 야생의 수목 등이 그러하다. 어떤 물건 그리고 인간노동의 어떤 생산물은 상품이 아니면서 유용할 수 있다. 자기 노동의 생산물로써 자기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사람은 사용가치를 만들기는 하지만 상품을 만들지는 않는다.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그는 사용가치를 생산할 뿐 아니라 타인을 위한 사용가치, 즉 사회적 사용가치를 생산해야 한다. {엥겔스; 또 단순히 타인을 위한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중세의 농민은 봉건영주를 위해 공납으로 바칠 곡물을 생산했고, 승려를 위해 10 . 1조(1/10세)로 바칠 곡물을 생산했다. 그러나 공납으로 바친 곡물이나 10 . 1조로 바친 곡물은, 타인을 위해 생산되었다는 이유만으로는 아직 상품이 되지 않았다. 그 생산물이 상품이 되기 위해서는 그 생산물을 사용가치로 쓰는 사람에게 교환을 통해 이전되어야 한다.}(주석 11: {엥겔스; 이 괄호 속에 들어 있는 말이 없었던 탓으로 마치 마르크스가 생산자 이외의 사람들이 소비하는 생산물은 무엇이든 상품으로 간주했다는 오해가 아주 빈번히 발생했기 때문에, 나는 이것을 삽입하기로 했다.}) 끝으로, 어떤 물건도 사용 대상이 아니고서는 가치일 수 없다. 만약 어떤 물건이 소용없는 것이라면, 거기에 들어 있는 노동은 소용없는 것이고, 노동으로 계산되지 않으며, 따라서 아무런 가치도 형성하지 못한다.
제 2 절 상품에 투하되어 있는 노동의 이중성
처음 상품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라는 이중성(二重性)을 가진 물건으로 나타났다. 그 뒤 노동도 또한 이중성을 가지고 나타났다. 즉, 노동이 가치로 표현되는 경우에는 더 이상 사용가치의 창조자의 성격을 가지지 않는다. 상품에 투하되어 있는 노동의 이중성은 내가 처음으로 지적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했다.(주석 12: 마르크스, 앞의 책, pp. 12-13을 참조하라.) 노동의 이중성은 경제학의 이해에 결정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두 상품, 즉 1개의 저고리와 10미터의 아마포를 예로 들어 보자. 전자의 가치는 후자의 가치의 두 배라고 하고, 10미터의 아마포=W라면, 1개의 저고리=2W다.
저고리는 특정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사용가치이다. 그것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특수한 종류의 생산활동이 필요하다. 이 생산활동은 그 목적 . 작업방식 . 수단 . 결과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노동-즉 그것의 유용성이 그 생산물의 사용가치로 표현되는 노동, 또는 그것의 생산물을 사용가치로 만들어 스스로를 표하는 노동-을 간단히 '유용노등'(有用勞動: useful labour)이라고 부른다. 이 경우 우리는 노동의 유용효과만 고려한다.
저고리와 아마포가 질적으로 다른 사용가치인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들을 만들어 낸 노동도 질적으로 서로 다른 것(즉, 재봉노동과 직포노동이다. 만약 이 두 물건이 질적으로 다른 사용가치가 아니라면, 따라서 질적으로 다른 유용노동의 생산물이 아니라면, 그것들은 결코 상품으로 서로 대면할 수 없을 것이다. 저고리는 저고리와는 교환되지 않으며, 어떤 사용가치가 동일한 사용가치와 교환되는 일은 없다.
다양한 사용가치들[또는 상품체들]의 총체는 다양한 유용노동들[유(類). 속(屬). 변종(變種)으로 분류된다]의 총체, 즉 사회적 분업을 반영한다. 이 사회적 분업은 상품생산의 필요조건이다. 그러나 반대로 상품생산이 사회적 분업의 필요조건은 아니다. 고대 인도의 공동체에서 노동은 사회적으로 분할되어 있었지만 그 생산물은 상품이 아니었다. 더 가까운 예를 든다면, 어떤 공장에도 노동은 체계적으로 분할되어 있으나, 노동자들이 자기의 개별 생산물을 교환하는 것에 의해 이 분업이 매개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독립적으로 행해지고 상호 의존하지 않는 사적 노동의 생산물만이 서로 상품으로 대면한다.
이제 이상에서 말한 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각 상품의 사용가치에는 유용노동 [즉, 일정한 종류의 합목적적인 생산활동]이 들어 있다. 여러 가지 사용가치는, 만약 거기에 질적으로 다른 유용노동이 들어 있지 않다면, 상품으로 서로 대면할 수 없다. 생산물이 일반적으로 상품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사회[즉, 상품생산자 사회]에서는, [개별 생산자들이 상호 독립적으로 사적으로 수행하는] 여러 가지 형태의 유용 노동 사이의 질적 차이는 하나의 복잡한 체계[즉, 사회적 분업(social division of labour)]로 발전한다.
재봉사 자신이 저고리를 입든 그의 고객이 저고리를 입든, 저고리는 사용가치로 기능한다. 마찬가지로 저고리와 그것을 생산하는 노동사이의 관계도 재봉일이 특수한 직업[즉, 사회적 분업의 독립적인 일환]으로 된다고 해서 달라지지는 않는다. 인간은 옷을 입어야만 했기 때문에 전문적인 재봉사가 나타나기 몇 천년 전부터 재봉일을 했다. 물적 부(material wealth) 중 자연이 미리 제공하지 않는 모든 요소[예:저고리, 아마포]는 언제나 [특정의 자연소재를 특정의 인간욕망에 적응시키는] 특수한 합목적적 생산활동을 거쳐 창조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사용가치의 창조자로서의 노동, 유용노동으로서의 노동은 사회 형태와 무관한 인간생존의 조건이며, [인간과 자연 사이의 물질대사, 따라서 인간생활 자체를 매개하는] 영원한 자연적 필연성이다.
저고리 ? 아마포 등등의 사용가치, 한 마디로 말해 상품체(商品體)는 자연소재와 노동이라는 두 요소의 결합이다. 저고리 ? 아마포 등등에 들어 있는 여러 가지 유용노동의 총량을 제거한다면, 남는 것은 언제나 [인간의 어떤 개입 없이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일정한 물질적 바탕뿐이다. 인간은 생산과정에서 오직 자연 자체가 운동하는 것처럼 운동할 수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오직 소재의 형태를 변경할 수 있을 뿐이다.( 주석 13: "우주의 모든 현상은 인간의 손에 의해 야기되든 물리학의 일반법칙에 의해 야기되든, 창조가 아니고 오직 물질의 재배치에 지나지 않는다. 결합과 분리는 인간의 정신이 재생산이라는 관념을 분석할 때마다 발견하는 유일한 요소이다. 이것은 가치"(사용가치를 말한다. 비록 베리 자신은 중농주의자와의 논쟁에서 자기가 어떤 종류의 가치를 말하고 있는가를 똑똑히 알지는 못했지만)"와 부의 재생산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토지 . 공기 . 물이 들에서 밀로 전환되든, 곤충의 분비물이 인간의 손에 의해 명주로 전환되든, 몇 개의 금속조각이 결합되어 시계가 만들어지든, 그러하다"(베리[P. Verri], ?경제학에 관한 고찰?(1771년, 초판), 쿠스토디[Custodi] 편, ?이탈리아 경제학고전집“, 근세편, 제15권, pp. 21-22).) 더구나 이러한 형태를 변경하는 노동에서까지 인간은 끊임없이 자연력의 도움을 받는다. 따라서 노동은 그것에 의해 생산되는 사용가치[즉, 물적 부]의 유일한 원천은 아니다. 월리엄 페티가 말한 바와 같이, 노동은 물적 부의 아버지고, 토지는 그 어머니다. (역자 주: 페티(W.Petty), ?조세공납론?, 런던, 1667년, p. 47.)
이제 사용대상으로서의 상품에서 상품의 가치(價値)로 넘어가자.
우리의 가정에 의하면, 저고리는 아마포보다 두 배의 가치를 가진다. 그러나 이것은 양적 차이에 지나지 않으며, 이 양적 차이는 지금 당장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우리는, 만약 1개의 저고리의 가치가 10미터의 아마포의 가치의 두 배라면, 20미터의 아마포는 1개의 저고리와 동일한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하면 된다. 가치(價値)로서 저고리와 아마포는 동일한 실체를 가진 물건이며, 동질의 노동의 물체적 표현이다. 그러나 재봉과 직포는 질적으로 다른 노동형태다. 그렇지만 동일한 인간이 번갈아 가면서 재봉도 하고 직포도 하는 사회상태도 있다. 이 경우 두 가지 서로 다른 노동방식은 동일한 개인의 노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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