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택수곤(澤水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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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곤란을 맞다 』
● 인생은 산 넘어 산, 강 건너 강처럼 수많은 고난이
○ 앞에 놓여 있는 것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파도타
○ 기에 나가면 파도 하나 넘어갈 때 다음 번 몰려오는
파도가 두렵겠지만, 한 파도 두 파도 넘기게 되면
● 왜 네 번째 파도는 빨리 안오나 기다려지게 되는 것
○ 처럼, 그 역경을 하나 하나 잘 극복하게 되면 드디
● 어 그 고난이 나를 완성시키기 위해 존재하였던 것
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택수곤(澤水困)
[곤(困)]은 곤란을 타개할 의지와 노력이 있는 자에
게는 발전의 길이 있다. 강효가 유효에 가리워 있다.
험난속에 있어서 오히려 즐겨할 줄 알고, 곤란하면서
도 형통하는 길을 잃지 않는 것은 군자만이 가능하
다. 변함이 없이 한결같이 바르게 있으라. 가슴속에
굳은 신념이 있는 큰 인물에게는 반드시 길하리라.
무엇을 말하여도 남에게 믿어지지 않는다. 말이 많으
면 궁지에 빠지리라.
공자의 제자 자로가 물었습니다. "군자도 이렇게 가난하게 살아
야 합니까? 그럼 군자와 거지가 무엇이 다릅니까?" 공자가 대답하
였습니다. 공자가 대답하였습니다. "거렁뱅이와 소인배들은 궁하
면 문란해지고, 도적질을 하거나 강도짓을 하는 따위의 비행을 저
지르지만, 군자에게는 절대로 그런 일은 없다. 이게 군자와 거렁
뱅이가 다른 점이다." 자로는 무언가 느껴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라고 하는 것이 뭔가 명료해지기 위해서는 공자
가 말했듯이, 겉의 모든 유혹이나 어려움 따위에 잃어버리지 않을
그 무엇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곧 군자의 길입니다. 사
람이 무언가 자기 뜻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과 타협해서 뜻을
저버리게 된다면, 그 뜻은 진정한 뜻이 아닙니다. 그 어떤 유혹에
도 변하지 않을 명료한 뜻, 그리고 그것을 지닌 명료한 영혼을 같
고 있어야만 '비행'과 '문란'이라고 하는 세계의 경계선을 분명하
게 볼 수 있습니다.
이 우주는 명료합니다. 이 우주는 부서지기도 하고 깨져 나가기
도 합니다. 그것은 명료한 우주가 명료한 조화를 꾸미기 위해서
무언가 균형에 맞지 않는 것을 깨뜨려 버리는 것입니다. 한 집의
가족은 모두가 편안한 사이입니다. 그런데 그 집안에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누군가 다른 사람이 들어온다면, 다시 말해서 도둑이
든다면, 그 도둑도 우리와 같이 하나의 삶을 영위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눈에 거슬리는 경계를 만들어 냅니다. 무언가 눈
에 보이지 않게 부조화를 일으키게 됩니다. 때문에 그 가족들은
그러한 부조화를 느끼는 순간 도둑을 잡든지 아니면 내쫓으려고
하게 됩니다.
우리가 "군자는 어떤 유혹을 받더라도 자기 자신을 지킬지언정
비행을 저지르지 않는다."라는 공자의 가르침을 얻지 못하면, 이
자연이 우리의 부조화된 마음을 파괴시켜 버릴 것입니다. 그대가
회사에 들어갔을 때도 먼저 회사가 원하는 직원이 되야지, 자기
욕심만을 위해서 직장을 나가게 되면, 언젠가 직장은 당신을 쫓아
내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강한 "나"라고 하는 것이 이미 조화
가 되어져 있는 세계에 불균형을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곤(困)]은 곤란을 타개할 의지와 노력이 있는 자에게는 발전
의 길이 있다." [곤(困)]은 "곤란하다."라는 뜻입니다. 한자의 "곤
(困)" 자는 나무가 상자안에 갇혀있는 모양입니다. 즉 "나무가 더
이상 뻗어나갈 수 없다." "사방을 완전히 틀어막아 놓았다." "장애
에 갖혀있다." 라는 뜻입니다.
이 괘를 가만히 살펴보면, 양표가 모두 음효에게 갇혀있습니다.
음성에너지는 무조건 자기 쪽안으로 끌어당기는 성질을 갖고 있
기 때문에, 그것이 앞, 뒤, 가운데에서 작용을 하면 양성에너지가
펼져 나가려 하자 마자 즉시 그 힘이 음성에너지에 빨려들어가서
효력을 상실하고 맙니다. 곤은 위의 괘가 연못을 뜻하는 택(澤)이
고 아래 괘가 물을 뜻하는 수(水)로서 "연못 밑에 물이 있음"을 나
타냅니다. 물이 연못 밑에 있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연못에는 물
이 없다는 뜻입니다. 연못 바닥이 웅덩이가 되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밑에 있는 물은 조금만 솟구쳐 올라오면 연못을 다시 만
들 수 있습니다. 동시에 수(水) 괘는 험난을 뜻하는 괘입니다. 또
택은 기쁨을 뜻하기도 합니다. 때문에 이 곤란이라고 하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면 반드시 길이 열린다라는 것을 이 곤(困)은 효
시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일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그것은 보통 사람은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괘는 군자 이상이 되어야지만 곤란
을 통해서 기쁨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괘
는 이것을 타개할 의지와 노력이 있는 자에게는 발전의 길이 있
다." "험난 속에 있어서 오히려 즐겨할 줄 알고, 곤란하면서도 형
통하는 길을 잃지 않는 것은 군자만이 가능하다." 음효에 둘러싸
여 갇혀 있다고 하더라도 그 뜻이 변함이 없고 의지가 분명하면
마치 매미가 허물을 벗고 날 수 있듯이 도리어 '곤(困)'이 크게
길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어려운 일이 눈앞에 벌어졌을 때 "이
걸 어떻게 헤쳐나아갈까?" 하고 묻는 사람은 벌써 마음 안에 밀치
고 나아가겠다는 의지가 분명하게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자에게
는 반드시 방법이 있으며, 나는 힘 안들이고 가볍게 헤쳐나가는
길잡와 동반자가 되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이 일을
감당하나? 아이고 내 팔자야." 하는 사람은 내가 더 이상 어떻게
도와줄 수가 없습니다. 아무 일도 없는 것이 행복인줄 아는 사람
은 그렇게 한 달이 지나면 곧 그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지옥
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택수곤]을 통해서,
허물안에서 영양분을 빨어먹고 사느니보다는 허물을 벗어나서 만
물에 두루 날아다니며 그 만물과 함께 누릴 수 있는 행복을 가질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대상. 연못에 물이 없는 것이 [곤(困)]의 괘상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목숨을 걸고 초지(初志)를 관
철한다.
목숨을 걸고 초지를 관철한다고 해서 오기를 부리면서 살피지
않고 자기 욕심만 부리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는 양효가 결국
음효의 울타리를 뚫고 나간다는 뜻인데, 음효는 원래 "여자가 한
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찬서리가 내린다."고 양효를 자기에게 묶어
두려 합니다. 그러나 음효가 양효를 잡아 먹어서 양효가 고갈되어
져 버리면 음효 자신도 존재 자체가 스스로 부서져 버립니다. 때
문에 여자들은 찬서리를 내 품을 정도로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아
야 됩니다. 기분 나쁘다고 반찬에다 양념을 덜 넣어서 남편을 골
탕먹이는 여자, 그런 여자의 남편은 맛있는 것 먹으러 갈 때는 틀
림없이 다른 여자를 데리고 갈 것입니다.
첫 번째 음효. 나무 뿌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으니
거북하고 괴롭다. 깊고 어두운 산 속에 들어가 삼년
동안 아무 것도 만나지 못한다. 혼미한채 현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무 뿌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으니 거북하고 괴롭다. 깊고
어두운 산 속에 들어가 삼년동안 아무 것도 만나지 못한다." 만물
은 항상 우리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고 있습니다. 비록 난처한 지
경을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반드시 그 역경을 지나갈 수 있는 힘
과 묘안을 동시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스스로 "난 몰
라." 하고 눈을 감아 버리면 나무뿌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것
처럼 거북하고 괴로우며, 깊고 어두운 산 속에 들어가 앉은 것처
럼 삼년동안 이로운 것을 발견해 낼 수가 없습니다.
두 번째 양효. 일상 식생활에서도 곤란할 정도. 그러
나 마음 속에 신념이 있어서 즐거움이 있다. 붉은 인
끈을 찬 천자의 사자가 맞으러 오리라. 나라의 큰 제
사일에 참여하는 기쁨이 있으리라. 그러나 스스로 구
하고 나서면 흉하리라.
"그러나 마음 속에 신념이 있어서 즐거움이 있다. 붉은 인끈을
찬 천자의 사자가 맞으러 오리라." 두 번째와 다섯 번째가 모두
양효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신념이 있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러
면 붉은 인끈을 찬, 즉 중국에서는 붉은 색깔이 높은 사람을 나타
내므로, 높은 계급의 사신이 맞이하러 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천자의 사신은 다섯 번째 효를 말합니다. 그래서 큰 제사일에 참
여하는 기쁨이 있는데, 좋은 일이 왔다고 벼슬을 스스로 구하고
나서면 곧 낭패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뜻이 깊으면 깊을수록 가벼운 기쁨에 만족하지 않는 법입니다.
워낙 깊은 물은 함부로 촐랑거리지 않으며, 원래 안이 단단하게
들어있는 깡통은 소리가 크지 않습니다. 우리는 잘 되었다고 생각
되는 순간, 이 잘 된 것이 다시 망가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항
상 해야 됩니다. 그것을 우리는 "그림자를 항상 살펴라."라고 말하
고 있습니다.
세 번째 음효. 돌보지 않고 함부로 나가다가 돌뿌리
에 부딪쳐 고난을 당하고 다시 가시덤불에 걸려든다.
집에 돌아오면 아내까지 도망쳐 버린다. 흉하다.
"돌보지 않고 함부로 나가다가 돌뿌리에 부딪쳐 고난을 당하고
다시 가시덤불에 걸려든다." 두 번째에서 힘든 것 가운데 마음의
뜻을 펼쳐서 난관을 뚫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뚫고 나온 힘으
로 함부로 나아가다가는 다시 고난을 당합니다. 길이 막혔을 때
어떻게 빠져나갈 길이 없을 까 살펴서 다른 길로 접어들었을 때,
길이 좀 뚫렸다고 "하하하" 웃으며 달리다가는 순간 다시 가시덤
불같은 장애가 앞에 온다는 뜻입니다. 이 과정을 다시 슬기롭게
넘어가야 나무가 막혀있는 땅을 뚫고 나온 것처럼 비로서 잎과
꽃, 열매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넓고 광대한 세계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대의 영혼이 싱싱하다면 그대는 굴하지 않고 스스로 자랄 것
입니다. 그러나 굴복하는 정신을 가지고 있다면, 그대의 발전은
그저 거기서 맴돌다 갈 것입니다. 맨 처음에는 일상 생활에 밥먹
기조차 곤란한 정도로 어찌해야할지 혼미한채 정신을 못차리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가슴속 안에 진정으로 이루어내고 말겠다
하는 신념이 분명하게 있으면 쓰러지거나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
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도 행하다 보면 실마리가 풀리게 됩니
다. 이 실마리가 풀릴 때 실마리를 해결하려는 마음을 갖고 자기
자신을 돌보아야 합니다.
얼어 있는 땅을 파헤치라고 삽을 주면 세가지 부류의 사람이
나타납니다. 몇 번 땅을 치다가 "땅이 너무 얼었습니다. 파는 것이
불가능 합니다." 하는 사람은 이미 신조가 날라가 버린 사람입니
다. 또 어떤 사람은 잘 안파진다고 무리하게 삽질을 하다가 삽자
루를 부러뜨립니다. 자기 힘을 돌보지 않고 함부로 나아가다 돌부
리에 부딪쳐 고난을 당하고, 다시 가시덤불에 걸려드는 것처럼 그
나마 한 자루 남았던 삽마저 깨뜨려 버리면 뜻을 실현하기가 더
욱 난감해 집니다. 그리하여 간신히 빠져나와서 "자기 집에 들어
가니 아내는 도망가고 없다." 즉, 삽자루를 부러뜨리고 "이제 더
이상 할 수 없습니다." 하고 돌아오면 고통이 나를 감쌀 것입니다.
그러므로 삽자루를 부러뜨리지 않으면서 조금씩 조심스럽게 파야
합니다.
네 번째 양효. 나를 맞으러 오는 자가 있건만, 그 금
색찬란한 마차는 너무나 더디고 더뎌서 나를 괴롭게
하는구나. 난경에 빠져 있긴 하지만 마침내는 좋은
성과가 있으리라. 뜻이 서로 호응하는 협력자가 있다.
"나를 맞이하러 오는 자 있건만 그 금색 찬란한 마차는 너무나
더디고 더디어서 나를 괴롭게 하는구나." 삽을 아끼면서 계속해서
땅을 파려고 하면 이제 나를 맞으로 오는 금색 찬란한 웅덩이가
있건만, 너무나 더디고 더뎌서 나를 괴롭게 하는구나. 실패하는
사람과 성공하는 삶의 가장 분명한 경계선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
다. 옛날 미국 서부 개척사를 보면 금광을 캐러 다니던 수 많은
사람들이 한 평생 단 한 번도 노다지를 못캐고 결국 남의 광산에
서 종으로 일하다가 죽어갔습니다. 그들은 결코 재수가 없어서 그
런 것이 아니고, 이제 노다지가 나오기 3피드 전에 그만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진짜 금광을 캤던 삶을 살아간 사람들은 대부분 남
이 파다가 만 데를 계속해서 파보니까 노다지를 얻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영광은 더디고 더디게 오는 법입니다. 봄이면 피는 수많은 꽃들
. 가을이면 열리는 수많은 열매들이 어느날 갑자기 불쑥 태어난
것은 아닙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하는 시 구절이 있듯이 영광은 가능한한 완
전하고 온전하게 만들기 위해 더디게 더디게 오는 것입니다. 오늘
날 우리 한국 기업들은 다른 나라 제품을 보고 엇비슷하게 만들
어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선진국 제품보다 뒤지는 이유는
얼른 비슷하게 만들어 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더디고 더디면서
괴로움을 인내하는 과정을 밟지 않아서 어딘가 엉성해 진 것입니
다.
네 번째는 음의 자리에 양이 있으므로 난경입니다. 그러나 대응
하고 있는 첫째 효가 음효이므로 음양이 맞아서 결국 좋게 된다
는 미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난경에 빠져 있긴 하지만 마
침내는 좋은 성과가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신조를 가
지고 있다면 아픔과 실패는 곧 성공의 어머니라고 마침내 좋은
성과를 만들어 줄 것입니다. 그러나 가슴속 깊은 곳에 신조가 없
다면 실패는 곧 우리 인생 자체의 소멸로 이어질 것입니다. 힘들
고 힘들지만 뜻이 서로 호응하는 협력자가 나타나서 도와주게 됩
니다. 이것을 신의 가호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음효. 코 베이고 발꿈치 베이니 박해가 겹
쳐온다. 아직 뜻을 펴지 못하니 군왕의 붉은 인끈이
괴롭구나. 마음을 바르게 가지니 천천히 즐거움이 있
다. 조상과 신에게 감사히 제사를 올린다.
봄부터 소쩍새 울음소리 들어가며 꽃을 피웠더니 아주 갖은 모
멸을 다 당하게 됩니다. 벌들이 날라와서 꿀을 훔쳐가더니 그래도
얼굴을 감싸주는 사람이 있구나 싶어서 마음놓고 있다 보니 나비
란 놈이 날개로 토닥거려 주는 듯 하다가 뭘 하나 훔쳐가지고 갑
니다. 또 인간들이 와서 이쁘다 하고 꽃을 꺾어갑니다. 그러나 코
베이고 발꿈치 베일지언정 스스로 자멸하지 않고 꿋꿋이 있다 보
면 드디어 천지 창조주의 홍복으로 열매가 열리게 됩니다. 그동안
이 결실을 위해 마음을 바르고 곧게 가져 왔습니다. 드디어 복을
받으며 조상과 신에게 감사하는 제사를 올리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자결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
을 죽게 밖에 할 수 없었던 사정이 이 다섯 번째 효의 단계에 이
르면 그게 바로 살아가는 낙이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
습니다. 인생 60이 짧다는 것은 살아오는 동안에 고난이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직장
에서 쫓겨나서 3개월만 집에서 빈둥 빈둥 놀면 가슴이 터질 것같
고, 뼈가 오무라드는 것같아서 더 이상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따
라서 아무 걱정없이 60년을 산다는 것은 결국 미칠 것같은 따분
함과 무료함속에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고난의 삶을 통해
결실을 맺게 되면 그대는 지금까지 그대에게 주어졌던 모든 어려
움은 곧 복이었다는 것을 알고 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됩
니다. 복중에 가장 큰 복은 바로 이것을 느끼는 복입니다.
여섯 번째 음효. 칡덩굴에 걸려 흔들리고 불안하여
고민한다. 무리하게 빠져나가려고 움직이면 후회하게
되는 난경에 빠질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반성하여
나가면 길하리라.
여섯 번째도 음효고 대응관계인 세 번째도 음효입니다. 비로서
하나 완성을 했다고 하더라도 이미 기존 세계가 존재하고 있습니
다. 이것이 마지막 하나의 고비입니다. 그러나 여섯 번째 수준정
도까지 오면 이미 그것을 살필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진 상태입
니다. 국화꽃이 피었다 하더라도 기존의 꽃의 세계에는 그 국화꽃
을 환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헤치려고 하는 세계가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기가 막히게 훌륭한 제품을 하나 만들어 냈
다고 해서 이제 나는 완성했다 하고 끝내서는 안됩니다. 나의 제
품과 비슷한 유사품이 다시 곧 나와서 나의 명예를 훼손하려고
합니다. 이때 무리하게 유사품과 싸우려고 하지 말고 굳굳하게 나
를 지켜 나간다면 길하리라 하고 여섯 번째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인생은 산 넘어 산, 강 건너 강처럼 수많은 고난이 앞에 놓여
있는 것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파도타기에 나가면 파도 하나 넘
어갈 때 다음 번 몰려오는 파도가 두렵겠지만, 한 파도 두 파도
넘기게 되면 왜 네 번째 파도는 빨리 안오나 기다려지게 되는 것
처럼, 그 역경을 하나 하나 잘 극복하게 되면 드디어 그 고난이
나를 완성시키기 위해 존재하였던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때
그 세계는 바로 우리의 세계이며, 내가 곧 주인임을 느끼게 될 것
입니다.
유성..
● 인생은 산 넘어 산, 강 건너 강처럼 수많은 고난이
○ 앞에 놓여 있는 것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파도타
○ 기에 나가면 파도 하나 넘어갈 때 다음 번 몰려오는
파도가 두렵겠지만, 한 파도 두 파도 넘기게 되면
● 왜 네 번째 파도는 빨리 안오나 기다려지게 되는 것
○ 처럼, 그 역경을 하나 하나 잘 극복하게 되면 드디
● 어 그 고난이 나를 완성시키기 위해 존재하였던 것
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택수곤(澤水困)
[곤(困)]은 곤란을 타개할 의지와 노력이 있는 자에
게는 발전의 길이 있다. 강효가 유효에 가리워 있다.
험난속에 있어서 오히려 즐겨할 줄 알고, 곤란하면서
도 형통하는 길을 잃지 않는 것은 군자만이 가능하
다. 변함이 없이 한결같이 바르게 있으라. 가슴속에
굳은 신념이 있는 큰 인물에게는 반드시 길하리라.
무엇을 말하여도 남에게 믿어지지 않는다. 말이 많으
면 궁지에 빠지리라.
공자의 제자 자로가 물었습니다. "군자도 이렇게 가난하게 살아
야 합니까? 그럼 군자와 거지가 무엇이 다릅니까?" 공자가 대답하
였습니다. 공자가 대답하였습니다. "거렁뱅이와 소인배들은 궁하
면 문란해지고, 도적질을 하거나 강도짓을 하는 따위의 비행을 저
지르지만, 군자에게는 절대로 그런 일은 없다. 이게 군자와 거렁
뱅이가 다른 점이다." 자로는 무언가 느껴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라고 하는 것이 뭔가 명료해지기 위해서는 공자
가 말했듯이, 겉의 모든 유혹이나 어려움 따위에 잃어버리지 않을
그 무엇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곧 군자의 길입니다. 사
람이 무언가 자기 뜻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과 타협해서 뜻을
저버리게 된다면, 그 뜻은 진정한 뜻이 아닙니다. 그 어떤 유혹에
도 변하지 않을 명료한 뜻, 그리고 그것을 지닌 명료한 영혼을 같
고 있어야만 '비행'과 '문란'이라고 하는 세계의 경계선을 분명하
게 볼 수 있습니다.
이 우주는 명료합니다. 이 우주는 부서지기도 하고 깨져 나가기
도 합니다. 그것은 명료한 우주가 명료한 조화를 꾸미기 위해서
무언가 균형에 맞지 않는 것을 깨뜨려 버리는 것입니다. 한 집의
가족은 모두가 편안한 사이입니다. 그런데 그 집안에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누군가 다른 사람이 들어온다면, 다시 말해서 도둑이
든다면, 그 도둑도 우리와 같이 하나의 삶을 영위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눈에 거슬리는 경계를 만들어 냅니다. 무언가 눈
에 보이지 않게 부조화를 일으키게 됩니다. 때문에 그 가족들은
그러한 부조화를 느끼는 순간 도둑을 잡든지 아니면 내쫓으려고
하게 됩니다.
우리가 "군자는 어떤 유혹을 받더라도 자기 자신을 지킬지언정
비행을 저지르지 않는다."라는 공자의 가르침을 얻지 못하면, 이
자연이 우리의 부조화된 마음을 파괴시켜 버릴 것입니다. 그대가
회사에 들어갔을 때도 먼저 회사가 원하는 직원이 되야지, 자기
욕심만을 위해서 직장을 나가게 되면, 언젠가 직장은 당신을 쫓아
내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강한 "나"라고 하는 것이 이미 조화
가 되어져 있는 세계에 불균형을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곤(困)]은 곤란을 타개할 의지와 노력이 있는 자에게는 발전
의 길이 있다." [곤(困)]은 "곤란하다."라는 뜻입니다. 한자의 "곤
(困)" 자는 나무가 상자안에 갇혀있는 모양입니다. 즉 "나무가 더
이상 뻗어나갈 수 없다." "사방을 완전히 틀어막아 놓았다." "장애
에 갖혀있다." 라는 뜻입니다.
이 괘를 가만히 살펴보면, 양표가 모두 음효에게 갇혀있습니다.
음성에너지는 무조건 자기 쪽안으로 끌어당기는 성질을 갖고 있
기 때문에, 그것이 앞, 뒤, 가운데에서 작용을 하면 양성에너지가
펼져 나가려 하자 마자 즉시 그 힘이 음성에너지에 빨려들어가서
효력을 상실하고 맙니다. 곤은 위의 괘가 연못을 뜻하는 택(澤)이
고 아래 괘가 물을 뜻하는 수(水)로서 "연못 밑에 물이 있음"을 나
타냅니다. 물이 연못 밑에 있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연못에는 물
이 없다는 뜻입니다. 연못 바닥이 웅덩이가 되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밑에 있는 물은 조금만 솟구쳐 올라오면 연못을 다시 만
들 수 있습니다. 동시에 수(水) 괘는 험난을 뜻하는 괘입니다. 또
택은 기쁨을 뜻하기도 합니다. 때문에 이 곤란이라고 하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면 반드시 길이 열린다라는 것을 이 곤(困)은 효
시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일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그것은 보통 사람은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괘는 군자 이상이 되어야지만 곤란
을 통해서 기쁨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괘
는 이것을 타개할 의지와 노력이 있는 자에게는 발전의 길이 있
다." "험난 속에 있어서 오히려 즐겨할 줄 알고, 곤란하면서도 형
통하는 길을 잃지 않는 것은 군자만이 가능하다." 음효에 둘러싸
여 갇혀 있다고 하더라도 그 뜻이 변함이 없고 의지가 분명하면
마치 매미가 허물을 벗고 날 수 있듯이 도리어 '곤(困)'이 크게
길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어려운 일이 눈앞에 벌어졌을 때 "이
걸 어떻게 헤쳐나아갈까?" 하고 묻는 사람은 벌써 마음 안에 밀치
고 나아가겠다는 의지가 분명하게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자에게
는 반드시 방법이 있으며, 나는 힘 안들이고 가볍게 헤쳐나가는
길잡와 동반자가 되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이 일을
감당하나? 아이고 내 팔자야." 하는 사람은 내가 더 이상 어떻게
도와줄 수가 없습니다. 아무 일도 없는 것이 행복인줄 아는 사람
은 그렇게 한 달이 지나면 곧 그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지옥
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택수곤]을 통해서,
허물안에서 영양분을 빨어먹고 사느니보다는 허물을 벗어나서 만
물에 두루 날아다니며 그 만물과 함께 누릴 수 있는 행복을 가질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대상. 연못에 물이 없는 것이 [곤(困)]의 괘상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목숨을 걸고 초지(初志)를 관
철한다.
목숨을 걸고 초지를 관철한다고 해서 오기를 부리면서 살피지
않고 자기 욕심만 부리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는 양효가 결국
음효의 울타리를 뚫고 나간다는 뜻인데, 음효는 원래 "여자가 한
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찬서리가 내린다."고 양효를 자기에게 묶어
두려 합니다. 그러나 음효가 양효를 잡아 먹어서 양효가 고갈되어
져 버리면 음효 자신도 존재 자체가 스스로 부서져 버립니다. 때
문에 여자들은 찬서리를 내 품을 정도로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아
야 됩니다. 기분 나쁘다고 반찬에다 양념을 덜 넣어서 남편을 골
탕먹이는 여자, 그런 여자의 남편은 맛있는 것 먹으러 갈 때는 틀
림없이 다른 여자를 데리고 갈 것입니다.
첫 번째 음효. 나무 뿌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으니
거북하고 괴롭다. 깊고 어두운 산 속에 들어가 삼년
동안 아무 것도 만나지 못한다. 혼미한채 현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무 뿌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으니 거북하고 괴롭다. 깊고
어두운 산 속에 들어가 삼년동안 아무 것도 만나지 못한다." 만물
은 항상 우리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고 있습니다. 비록 난처한 지
경을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반드시 그 역경을 지나갈 수 있는 힘
과 묘안을 동시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스스로 "난 몰
라." 하고 눈을 감아 버리면 나무뿌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것
처럼 거북하고 괴로우며, 깊고 어두운 산 속에 들어가 앉은 것처
럼 삼년동안 이로운 것을 발견해 낼 수가 없습니다.
두 번째 양효. 일상 식생활에서도 곤란할 정도. 그러
나 마음 속에 신념이 있어서 즐거움이 있다. 붉은 인
끈을 찬 천자의 사자가 맞으러 오리라. 나라의 큰 제
사일에 참여하는 기쁨이 있으리라. 그러나 스스로 구
하고 나서면 흉하리라.
"그러나 마음 속에 신념이 있어서 즐거움이 있다. 붉은 인끈을
찬 천자의 사자가 맞으러 오리라." 두 번째와 다섯 번째가 모두
양효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신념이 있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러
면 붉은 인끈을 찬, 즉 중국에서는 붉은 색깔이 높은 사람을 나타
내므로, 높은 계급의 사신이 맞이하러 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천자의 사신은 다섯 번째 효를 말합니다. 그래서 큰 제사일에 참
여하는 기쁨이 있는데, 좋은 일이 왔다고 벼슬을 스스로 구하고
나서면 곧 낭패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뜻이 깊으면 깊을수록 가벼운 기쁨에 만족하지 않는 법입니다.
워낙 깊은 물은 함부로 촐랑거리지 않으며, 원래 안이 단단하게
들어있는 깡통은 소리가 크지 않습니다. 우리는 잘 되었다고 생각
되는 순간, 이 잘 된 것이 다시 망가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항
상 해야 됩니다. 그것을 우리는 "그림자를 항상 살펴라."라고 말하
고 있습니다.
세 번째 음효. 돌보지 않고 함부로 나가다가 돌뿌리
에 부딪쳐 고난을 당하고 다시 가시덤불에 걸려든다.
집에 돌아오면 아내까지 도망쳐 버린다. 흉하다.
"돌보지 않고 함부로 나가다가 돌뿌리에 부딪쳐 고난을 당하고
다시 가시덤불에 걸려든다." 두 번째에서 힘든 것 가운데 마음의
뜻을 펼쳐서 난관을 뚫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뚫고 나온 힘으
로 함부로 나아가다가는 다시 고난을 당합니다. 길이 막혔을 때
어떻게 빠져나갈 길이 없을 까 살펴서 다른 길로 접어들었을 때,
길이 좀 뚫렸다고 "하하하" 웃으며 달리다가는 순간 다시 가시덤
불같은 장애가 앞에 온다는 뜻입니다. 이 과정을 다시 슬기롭게
넘어가야 나무가 막혀있는 땅을 뚫고 나온 것처럼 비로서 잎과
꽃, 열매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넓고 광대한 세계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대의 영혼이 싱싱하다면 그대는 굴하지 않고 스스로 자랄 것
입니다. 그러나 굴복하는 정신을 가지고 있다면, 그대의 발전은
그저 거기서 맴돌다 갈 것입니다. 맨 처음에는 일상 생활에 밥먹
기조차 곤란한 정도로 어찌해야할지 혼미한채 정신을 못차리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가슴속 안에 진정으로 이루어내고 말겠다
하는 신념이 분명하게 있으면 쓰러지거나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
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도 행하다 보면 실마리가 풀리게 됩니
다. 이 실마리가 풀릴 때 실마리를 해결하려는 마음을 갖고 자기
자신을 돌보아야 합니다.
얼어 있는 땅을 파헤치라고 삽을 주면 세가지 부류의 사람이
나타납니다. 몇 번 땅을 치다가 "땅이 너무 얼었습니다. 파는 것이
불가능 합니다." 하는 사람은 이미 신조가 날라가 버린 사람입니
다. 또 어떤 사람은 잘 안파진다고 무리하게 삽질을 하다가 삽자
루를 부러뜨립니다. 자기 힘을 돌보지 않고 함부로 나아가다 돌부
리에 부딪쳐 고난을 당하고, 다시 가시덤불에 걸려드는 것처럼 그
나마 한 자루 남았던 삽마저 깨뜨려 버리면 뜻을 실현하기가 더
욱 난감해 집니다. 그리하여 간신히 빠져나와서 "자기 집에 들어
가니 아내는 도망가고 없다." 즉, 삽자루를 부러뜨리고 "이제 더
이상 할 수 없습니다." 하고 돌아오면 고통이 나를 감쌀 것입니다.
그러므로 삽자루를 부러뜨리지 않으면서 조금씩 조심스럽게 파야
합니다.
네 번째 양효. 나를 맞으러 오는 자가 있건만, 그 금
색찬란한 마차는 너무나 더디고 더뎌서 나를 괴롭게
하는구나. 난경에 빠져 있긴 하지만 마침내는 좋은
성과가 있으리라. 뜻이 서로 호응하는 협력자가 있다.
"나를 맞이하러 오는 자 있건만 그 금색 찬란한 마차는 너무나
더디고 더디어서 나를 괴롭게 하는구나." 삽을 아끼면서 계속해서
땅을 파려고 하면 이제 나를 맞으로 오는 금색 찬란한 웅덩이가
있건만, 너무나 더디고 더뎌서 나를 괴롭게 하는구나. 실패하는
사람과 성공하는 삶의 가장 분명한 경계선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
다. 옛날 미국 서부 개척사를 보면 금광을 캐러 다니던 수 많은
사람들이 한 평생 단 한 번도 노다지를 못캐고 결국 남의 광산에
서 종으로 일하다가 죽어갔습니다. 그들은 결코 재수가 없어서 그
런 것이 아니고, 이제 노다지가 나오기 3피드 전에 그만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진짜 금광을 캤던 삶을 살아간 사람들은 대부분 남
이 파다가 만 데를 계속해서 파보니까 노다지를 얻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영광은 더디고 더디게 오는 법입니다. 봄이면 피는 수많은 꽃들
. 가을이면 열리는 수많은 열매들이 어느날 갑자기 불쑥 태어난
것은 아닙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하는 시 구절이 있듯이 영광은 가능한한 완
전하고 온전하게 만들기 위해 더디게 더디게 오는 것입니다. 오늘
날 우리 한국 기업들은 다른 나라 제품을 보고 엇비슷하게 만들
어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선진국 제품보다 뒤지는 이유는
얼른 비슷하게 만들어 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더디고 더디면서
괴로움을 인내하는 과정을 밟지 않아서 어딘가 엉성해 진 것입니
다.
네 번째는 음의 자리에 양이 있으므로 난경입니다. 그러나 대응
하고 있는 첫째 효가 음효이므로 음양이 맞아서 결국 좋게 된다
는 미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난경에 빠져 있긴 하지만 마
침내는 좋은 성과가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신조를 가
지고 있다면 아픔과 실패는 곧 성공의 어머니라고 마침내 좋은
성과를 만들어 줄 것입니다. 그러나 가슴속 깊은 곳에 신조가 없
다면 실패는 곧 우리 인생 자체의 소멸로 이어질 것입니다. 힘들
고 힘들지만 뜻이 서로 호응하는 협력자가 나타나서 도와주게 됩
니다. 이것을 신의 가호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음효. 코 베이고 발꿈치 베이니 박해가 겹
쳐온다. 아직 뜻을 펴지 못하니 군왕의 붉은 인끈이
괴롭구나. 마음을 바르게 가지니 천천히 즐거움이 있
다. 조상과 신에게 감사히 제사를 올린다.
봄부터 소쩍새 울음소리 들어가며 꽃을 피웠더니 아주 갖은 모
멸을 다 당하게 됩니다. 벌들이 날라와서 꿀을 훔쳐가더니 그래도
얼굴을 감싸주는 사람이 있구나 싶어서 마음놓고 있다 보니 나비
란 놈이 날개로 토닥거려 주는 듯 하다가 뭘 하나 훔쳐가지고 갑
니다. 또 인간들이 와서 이쁘다 하고 꽃을 꺾어갑니다. 그러나 코
베이고 발꿈치 베일지언정 스스로 자멸하지 않고 꿋꿋이 있다 보
면 드디어 천지 창조주의 홍복으로 열매가 열리게 됩니다. 그동안
이 결실을 위해 마음을 바르고 곧게 가져 왔습니다. 드디어 복을
받으며 조상과 신에게 감사하는 제사를 올리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자결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
을 죽게 밖에 할 수 없었던 사정이 이 다섯 번째 효의 단계에 이
르면 그게 바로 살아가는 낙이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
습니다. 인생 60이 짧다는 것은 살아오는 동안에 고난이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직장
에서 쫓겨나서 3개월만 집에서 빈둥 빈둥 놀면 가슴이 터질 것같
고, 뼈가 오무라드는 것같아서 더 이상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따
라서 아무 걱정없이 60년을 산다는 것은 결국 미칠 것같은 따분
함과 무료함속에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고난의 삶을 통해
결실을 맺게 되면 그대는 지금까지 그대에게 주어졌던 모든 어려
움은 곧 복이었다는 것을 알고 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됩
니다. 복중에 가장 큰 복은 바로 이것을 느끼는 복입니다.
여섯 번째 음효. 칡덩굴에 걸려 흔들리고 불안하여
고민한다. 무리하게 빠져나가려고 움직이면 후회하게
되는 난경에 빠질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반성하여
나가면 길하리라.
여섯 번째도 음효고 대응관계인 세 번째도 음효입니다. 비로서
하나 완성을 했다고 하더라도 이미 기존 세계가 존재하고 있습니
다. 이것이 마지막 하나의 고비입니다. 그러나 여섯 번째 수준정
도까지 오면 이미 그것을 살필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진 상태입
니다. 국화꽃이 피었다 하더라도 기존의 꽃의 세계에는 그 국화꽃
을 환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헤치려고 하는 세계가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기가 막히게 훌륭한 제품을 하나 만들어 냈
다고 해서 이제 나는 완성했다 하고 끝내서는 안됩니다. 나의 제
품과 비슷한 유사품이 다시 곧 나와서 나의 명예를 훼손하려고
합니다. 이때 무리하게 유사품과 싸우려고 하지 말고 굳굳하게 나
를 지켜 나간다면 길하리라 하고 여섯 번째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인생은 산 넘어 산, 강 건너 강처럼 수많은 고난이 앞에 놓여
있는 것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파도타기에 나가면 파도 하나 넘
어갈 때 다음 번 몰려오는 파도가 두렵겠지만, 한 파도 두 파도
넘기게 되면 왜 네 번째 파도는 빨리 안오나 기다려지게 되는 것
처럼, 그 역경을 하나 하나 잘 극복하게 되면 드디어 그 고난이
나를 완성시키기 위해 존재하였던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때
그 세계는 바로 우리의 세계이며, 내가 곧 주인임을 느끼게 될 것
입니다.
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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