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천지부(天地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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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지의 배반 』
○ [천지부]를 이겨 나갈 수 있는 힘, 그것은 지극한
○ 사랑입니다. 자기가 옳다고 고집을 내세울 때는 [천
○ 지부]의 현상이 일어나는 데, [천지부]는 결코 갈라
서는 것이 아니고, 조화(調和)를 이루어낼 수 없는
● 자신의 문제만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 조화(調和)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조
● 화를 외면할 수는 있지만, 이 세상이 이미 조화이기
때문에 결코 조화를 벗어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천지부(天地否)
마주 의지하여 일어서는 사람 인(人)자의 형상처럼
사람은 서로 도우며 사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부
(否)는 이러한 인간의 본성이 거부된 상태다. 사람들
사이가 마음이 통하지 않고 막혀버린 것이다. 그러므
로 군자가 바른 도리를 지켜 한결같이 가려하나 방해
되어 잘 되지 않는다. 양은 위로 올라가고 음은 아래
로 내려온다. 천지는 화합하지 아니하여 만물은 생육
되지 못한다. 인간도 상하의 마음이 화합되지 아니하
여 국가는 멸망한다. 내괘가 음이고 외괘가 양이다.
이것은 내심이 유약하면서도 외면은 강한 것처럼 꾸
미는 것이다. 핵심에는 소인이 버티고 군자는 변두리
로 밀려난다. 소인의 도가 횡행하고 군자의 도는 소
멸한다.
否之匪人. 不利君子貞. 大往小來. 象曰,
否之匪人, 不利君子貞, 大往小來, 則是天
地下交而萬物不通也. 上下不交, 而天下无
邦也. 內陰而外陽, 內柔而外剛, 內小人而
外君子, 小人道長, 君子道消也.
"내괘가 음이고 외괘가 양이다. 이것은 내심이 유약하면서도 외
면은 강한 것처럼 꾸미는 것이다." [천지부]는 [지천태]와는 반대
로 외괘는 모두 양효로 이루어져 있고, 내괘는 모두 음효로 이루
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내면은 유약한데 겉으로는 강한 것을 나타
냅니다. 안으로는 강한 것이 있으면서 유한 것이 바깥으로 있어야
지 바깥의 것을 끌어 당겨 오는 데, 안에서 자기 자신이 유한 상
태로 스스로 움직이게 되면 도리어 겉으로 강해져서 밖으로 강한
기운을 내보내게 되고, 저쪽도 역시 강한 에너지를 반발적으로 내
보내서 서로가 밀어내는 형상을 일으키게 됩니다.
안에 음에너지가 작용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 자신이 빠져 있
는 상태와 같은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번민속에 빠져 있게 되면
세상으로부터 유리되게 됩니다. '부(否)'는 헤어지다, 갈라지다, 섞
일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즉, 하늘과 땅이 갈라져 있는 상태란
뜻입니다.
[지천태]에서는 세 개의 양효가 밑에 있었고 위에 음효가 세
개 있어서 양효가 일을 벌려 놓으면은 그것을 음효가 거둬들였습
니다. 그런데 이 괘는 지금 위로는 양효가 작용하고 있지만 밑으
로 음효가 자릴 잡아, 그런 상태로 움직이면 융합되지 아니하여
형통하지 못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 때문에 하는 걱정, 자신으로 인해서 벌어지는 고민,
그런 따위가 전부다 [천지부] 입니다. 우리가 친구를 사귀면 처음
에는 굉장히 친해지게 됩니다. 맨 처음에 친해질 수 있는 것은
"나는 그와같은 사람이 좋다."라는 것을 안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겉으로 친화하는 현상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얼마 안있
어 두 사람과의 관계가 [천지부]와 같은 상태가 되면 서로 멀어
지게 됩니다.
그런데 멀어진다는 것에 대해 자기가 자기 마음 속안에 빠져들
게 되면 세상을 수용할 수가 없게 됩니다. 따라서 세상을 수용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의 사랑은 애정이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진정
한 사랑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여자가 내 생일날
도 기억해 주지 못한다고 "날 사랑하는게 아니야." 하고 자기 세
계에 빠져버리면 그로 인해 그 사람은 [천지부]와 같은 상태가
되어 상대방을 밀어내 버리는 현상을 일으키게 됩니다.
사람은 이상한 동물이어서 살 수 없는 데를 억지로 올라가려고
하다가 죽는 경우가 많습니다. 에베레스트 산. 그곳은 사람 살 곳
이 아닌데도 이상하게 사람은 꼭 거기를 올라가려고 합니다. 물론
인간이 어려운 점을 극복하고 해냈다라는 의미에서 세상은 칭송
을 하는 것이지만, 에베레스트 산은 대들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면
찾아오지 않습니다. 에베레스트 산에 찾아온 사람은 살기 좋아 간
것이 아니고 대들려고 간 것입니다. 대들려고 갖다가 중간에 얼어
죽거나, 눈에 파묻혀 죽거나 한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에베레스트가 아니고 그저 동네에 나지막히 있는 뒷동산에는
많은 사람들이 올라갑니다. 갑돌이나 갑순이도 만날데가 없으면
거기서 만나고, 아이들이 언덕에 가서 술래잡기도 하고, 제기차기
도 하고, 축구도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언덕을 정복했다는 느낌
을 전혀 갖지 않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사람이 언덕에 올랐더라도
언덕이 좋아서 갔다는 사실을 모르고 갔다는 것입니다. 단지 언덕
이 좋다라는 걸 느끼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진짜 높은 경지에 있는 사람은, 진짜 이 세상을 두루 살
펴서 완전히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은, 언덕도 아닌 맨땅과 같은 사
람들입니다. 그 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놀고 있습니다. 그것이
가장 높은 경지입니다. 남을 수용한다는 것은 안에 강한 기운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스스로 약하기때문에 자꾸 남과 타협하
려고 하고, 남과 거래를 하려고 합니다. 진정으로 자기 자신이 강
한 기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남과 타협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
사람이 남과 절충하는 것은 타협한다고 말하지 않고 수용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아니꼬운 것도 다 받아들입니다. 받아들여
서 좋게 화합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천지부]의 상태가 되어 일이 막히고 주변과
격리되어 잘 풀리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럴수록 수용
하는 자세로 꾸준히 해야할 일을 해나가면 제 3의 힘에 의하여
형통하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우주는 항상 경쾌하게
돌아가서 막힌 상태로 오래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주 의지하여 일어서는 사람 인(人)자의 형상처럼 사람은 서
로 도우며 사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부(否)는 이러한 인간의 본
성이 거부된 상태다." 사람 인(人)자는 두 사람이 마주 의지하며
일어서는 것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즉 사람은 서로 도우며 사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 사람을 인간(人間)이라고
하는 이유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 의지하여 화합하는 가운데에 우
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천지부]는 이러한 인간의 본성이 거부된 상태입니다. 서로가
마음이 통하지 않고 막혀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군자가 바른 도
리로 지켜 나가려 하나 방해되어 잘 되지 않고 있습니다. 내심으
로는 유약하면서 외면은 강한 것처럼 꾸미는 것으로, 핵심에는 소
인이 버티고 군자는 변두리로 밀려난 상태입니다.
왜 인간의 본성이 깨뜨려 지는가? 그것은 자기 자신의 옳은 것
만을 고집하여 남을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세상에는 옳다고
인정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로 옳은 것인지
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처음에 미니스커트를 입은 젊은 여인들
이 나타났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퇴폐라고 우려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미니스커트가 상식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부부는 죽을 때까지 헤어지지 않고 살아야 하는
것을 철칙으로 생각하고 있으나, 실제로 주위에는 이혼하는 부부
가 상당히 많습니다. 그리고 헤어진 부부들은 각자가 헤어지지 않
으면 안되는 타당한 이유들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것이
옳으냐, 그르냐가 아니고, "이것이 옳다"라고 스스로 규정짖고, 그
규정을 통해서 세상을 조명해 보려는 마음이 잘못된 것이라는 사
실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믿음에 스스로가 구속되어서 겉으로만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
고 그렇게 겉으로 강해진 것은 세상과 유리되어 지며, 결국 세상
이 그것을 멸망시켜 버리고 맙니다.
"양은 위로 올라가고 음은 아래로 내려온다. 천지는 화합하지
아니하여 만물은 생육되지 못한다. 인간도 상하의 마음이 화합되
지 아니하여 국가는 멸망한다." [천지부]는 하늘이 하늘에 있고,
땅이 땅에 있으므로 우리가 생각하기에 바른 것인데, 그러나 이것
을 옳다고 고집해 버리면 결국 세상은 화합하지 않고 분리되어
버린다는 뜻입니다. 즉 하늘이 위에 있고 땅이 밑에 있으니까 맞
는 얘기다 하고 주장하면 세상으로부터 거부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세상이 어떻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그 강한 것은 안으로 약한
기운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눈에 힘을 주고 어금니를 물고 있는 사람은 의지가 강한 사람
같지만, 안이 풍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풍성하지 못한 사람이
자기 안에 빠지게 되면 그렇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 사이는 마음
이 서로 통하지 않고 막혀버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음에너지 속안
에 자기가 빠져있기 때문에 겉으로 강해지고, 그러므로 외부와 단
절되어 흐르는 흐름을 볼 수 없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만물을 수
용하고 용서하는 것을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흐르는 흐름속에서 움직이게 되면 [천지부]라는 현상은 일어나
지 않습니다. 흐름 속안에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면에 충만된 에너지가 있지 않은 사람은 세상을 수
용할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이 이미 충만된 상태에 있지 않는 사
람은 [천지부]의 현상을 일으킬 뿐 이 세상과 화합이라는 것을
일으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천지부]는 "자기 생각에 치우치지
말고, 자기로 인해서 판단하지 말고, 흐르는 흐름을 잘 관찰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화합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
니다.
회사의 흐름을 아는 사장은 흐름이 막히면 자기 이익이 손해가
나고, 그 손해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도 손해가 난다는 사실을 알
고 있습니다. 그러나 흐름을 알지 못하고 부분적인 자기 이익에만
집착하는 노동자 및 근로자들은 자신의 태업이 전체의 손해를 일
으키고 결국 그것은 자기 손해가 된다는 것을 모릅니다. 이득만
바라보다가 스스로 손해를 입고, 그 손해가 점차적으로 또 손해를
미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현상도 지킬 수 없습니다. 진정으
로 자기 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사람은 손해를 아는 사람입니다.
대상. 천지가 서로 배반하는 것이 부(否)의 괘상이
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자신의 유덕함을 숨기고
물러나와 난을 피한다. 관록을 영화로 생각하여 뜻이
동요되어서는 안된다.
象曰, 天地不交否. 君子以儉德避難. 不可
榮以祿.
동의보감에 보면, 스스로 건강을 지키려면 100%로 채우지 말고
80%에서 멈추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을때 100
숟가락을 먹으면 꽉찰 경우, 80 숟가락 정도 먹고 멈추어야 합니
다. 그래야만 위장이 원활히 움직여서 소화를 시키는데, 꽉차게
먹으면 위장이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 위장은 망가져 버
리게 됩니다.
"자신의 유덕함을 숨기고 물러나와 난을 피한다." 무슨 일이든
지 100%를 바라보아서는 안됩니다. 80%만 바라보고 나머지 20%
는 뜸들이는 기간으로 놔두어야 합니다. 20%의 여유를 두었을 때,
바로 자신이 섭취한 것을 영양으로 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즉 한
번에 완전하게 하지 말고, 80%만 이루고 20%는 완전에 다가오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괘는 자기 자신이 지금 최고의
영화에 사로잡혀 있더라도 20%의 간격을 갖고 물러서야 할 때 물
러서서 채우지 않아야만 비로서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다고 말
하였습니다.
"관록을 영화로 생각하여 뜻이 동요되어서는 안된다." [천지부]
는 상괘와 하괘가 모두 정응관계에 있습니다. 이는 잘만 처신하면
좋게 풀려나갈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마치 자석이
같은 극끼기 서로 밀어내고 있듯이 비록 서로가 자기 고집을 세
워서 팽팽히 대립하고 있지만, 자석은 다시 합칠 수도 있는 것처
럼, 나중에 서로 양보하면 곧 화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의 욕심으로 영화를 생각해서 뜻이 동요되어서는 안된다. 물러
설 때는 물러설 줄 알아야 한다. 자기 고민에 빠졌을 때는 빨리
자기로부터 물러나와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을 건져낼 수 있다."
따라서 군자는 20% 뒤로 물러서서 자기 목전의 이익을 바라지 말
고 자기의 상태를 지켜볼 줄 알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첫번째 음효. 띠풀 한포기를 뽑으면 뿌리가 한데 얽
힌 여러포기가 한꺼번에 뽑힌다. 여러동지들과 함께
하는 상징이다. 일관된 마음으로 임금에게 충성하면
길하다. 발전하고 번영하리라.
初六, 拔茅茹. 以其彙. 貞吉亨. 象曰, 拔
茅, 貞吉, 志在君也
"띠풀 한포기를 뽑으면 뿌리가 한데 얽힌 여러포기가 한꺼번에
뽑힌다." 첫번째 음효입니다. 이 음효는 우선 세상에 확고한 자기
주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받아들일 수는 있습니다. 위로
양효의 것을 받아들여 일관된 마음으로 뜻을 위해 충성하면 주변
의 이음(二陰), 삼음(三陰) 등 동지들이 함께하여 길하지만, 이
세상과 유리되어져 있는 상태에서 주관도 없는 음효가 멋대로 행
동하면 남은 두 세계도 동시에 뽑혀 나간다는 뜻입니다.
"일관된 마음으로 임금에게 충성하면 길하다." 자기가 기분나쁘
다고 이곳 저곳 화를 내고 다니면 이쪽 저쪽 모두가 피해를 입습
니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화난다고 핸들을 확 꺽으면, 자
기 차만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 이쪽 저쪽의 모든 차가 다 망가지
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양의 자리에 있어 함부로 행동하고
싶은 충동이 있으나, 음효의 덕으로 자신을 양보하면서 주변을 받
아들이고 화합하려 하면 길하다는 것입니다.
두번째 음효. 임금의 말이면 덮어놓고 순종하니 소인
들은 임금을 숭상하여 길하다. 그러나 군자는 신념을
굽혀서까지 타협하지 않는다.
六二, 包承. 小人吉. 大人否亨. 象曰, 大
人否亨, 不亂群也.
"임금의 말이면 덮어놓고 순종하니 소인들은 임금을 숭상하여
길하다." 두번째 음효는 마땅히 음의 자리에 음효가 위치하고, 대
응하는 다섯번째 양효와 정응관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
변으로는 자기 세계가 분명하지 않은 소인들이 군주를 따르는 형
상입니다. 비록 소인들이 군주를 따르는 것은 좋은 일이나 그렇다
고 그들을 믿지는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군자는 신념을 굽혀서까지 타협하지 않는다." 군자가
소인과 다른 점은 갖은 압박과 핍박이 온다 하더라도 자기 심정
에 빠져 할 일을 하지 않는 경우는 결코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확신하는 세계가 투철하고 명료하게 내면에 있기 때문입니다. 소
인은 자기한테 빠지지만 군자는 자기한테 빠지는 법이 없습니다.
이것이 소인과 군자의 차이인데, 그게 굉장히 큰 차이입니다. 그
래서 군자는 이러한 소인의 무리속에서 신념을 굽혀서까지 타협
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세번째 음효. 재덕을 갖추지 못한 자가 분수에 지나치는
부귀에 눈이 어두워 부끄러움도 모른다.
六三, 包羞. 象曰, 包羞, 位不當也.
"재덕을 갖추지 못한 자가 분수에 지나치는 부귀에 눈이 어두
워 부끄러움도 모른다." 세번째 음효입니다. 양효가 와야할 자리
에 음효가 있습니다. 음의 상태에서 누구를 좋아한다는 것은 진정
한 사랑이 아니라, 자기 마음 상태에 스스로 빠져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에 도취되어 사랑하는 그 사랑은 어느 순간에 서로
밀어낼 수도 있습니다. 흔히 부부싸움을 하는 것은 바로 자기한테
사로잡혀서 거부가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천지부]를 이겨 나갈 수 있는 힘, 그것은 지극한 사랑입니다.
자기가 옳다고 고집을 내세울 때는 [천지부]의 현상이 일어나는
데, [천지부]는 결코 갈라서는 것이 아니고, 조화(調和)를 이루어
낼 수 없는 자신의 문제만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조
화(調和)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조화를 외면할 수는
있지만, 이 세상이 이미 조화이기 때문에 결코 조화를 벗어날 수
는 없는 것입니다.
고집을 내세우는 나 자신, 그것을 자연은 나름대로 조화시켜 버
립니다. 중요한 사실은 스스로 조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문제가 있을 때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단순하게 처리해야 합니다. 세상의 이치는 단순하기 때문입
니다. 단지 단순하게 처리할 수 없는 사람이 복잡한 자기 세계에
빠져 복잡한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네번째 양효. 위에 훌륭한 군주가 있어서 명령을 내
리니 오직 왕명에 쫓으면 허물이 없으리라. 막힌 것
을 타파하려는 뜻이 이루어진다. 동지와 같이 지극한
복을 받는다.
九四, 有命无咎. □離祉. 象曰, 有命无咎,
志行也.
[천지부]는 일단 음양이 전부 정응관계에 있기때문에, 비록 지
금 내외가 뒤바뀌어 형통치 못하고 있지만, 막힌 상태를 타개하려
는 분명한 뜻을 가지면 능히 뚫고 나아갈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
습니다. "위에 훌륭한 군주가 있어서 명령을 내리니 오직 왕명에
쫓으면 허물이 없으리라." 오양(五陽)이 정당한 위치를 지키고 있
으므로 네번째 효는 다섯번째 양효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비록
자기 자신의 입장을 내세우고 싶으나, 이를 숙이고 그 뜻을 쫓아
야 합니다. 다섯번째는 의당히 양효가 있어야 할 자리에 양효가
존재하고 있고, 또 모든 것이 대응관계로 있기 때문에 자기가 따
르면 그 밑에 있는 것들이 함께 따라준다라는 이야기입니다. "동
지와 같이 지극한 복을 받는다." 여기서 말하는 '왕명'은 절대적인
명령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자기 입장을 이야기하지 말고 그 뜻을
쫓으면 허물이 없으리라. 뜻을 따라 형통되려고 하는 무리들과 함
께 복을 누린다라는 뜻입니다.
근심걱정, 혹은 하기 싫어하는 마음이 있더라도 해야할 일을 꾸
준히 하다보면 근심걱정과 하기 싫어 하는 것이 없어지고, 하는
힘에 의해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것은 단순한 조건 반사가 아닌
제 3의 힘입니다. 그 힘이 근심걱정을 흡수해 버립니다. 근심걱정
이 있는 사람이 신나게 춤을 추면 그것을 잊어버린다고 흔히 말
하고 있습니다. 또 친구지간에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기분
전환하러 가자고 하여 여행이라도 하면 근심걱정이 풀립니다.
왜 근심걱정이 풀리는가? 움직이는 힘에 의하다 보면 근심걱정
에너지가 그리로 흡수됩니다. 우리는 표현상 잊어버렸다고 하는
데, 이것은 근심걱정을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힘에 흡수
되어져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풀릴 근심걱
정이라면 실은 근심걱정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다만 자기 걱정일
뿐이었습니다.
사람이 근심걱정이 커지면 커질수록 뛸 힘이 안생기는 법입니
다. 그러나 뛸 힘만 있으면 근심걱정은 없어지게 됩니다. 양성에
너지가 강하면 음성은 그곳에 흡수되어 버립니다. 남자가 강하면
여자는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부(否)]의 상태로 가느냐, 아니
면 [부(否)]의 상태를 타개하느냐에 따라서 음성에너지는 그 쪽
을 따라갑니다. 그래야만 창조가 이루어집니다. 세상은 그렇게 창
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뜻으로 분명하게 하는 것은 모든 근심걱
정을 흡수해 버립니다. 그것이 가장 최선의 해결책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옛날에 예수도 "죽은 자는 죽은 자로 하여금 장사지내
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라고 했습니다. 그때 따라갔으면 죽은
아버지에 대한 근심은 없어지게 됩니다. 아버지 근심을 벗어나게
되면 이미 죽은 자에 대한 자기 근심은 쓸데없는 근심이었다는
것을 본인이 느끼게 됩니다.
다섯번째 양효. 막힌 상태가 그친다. 재덕을 구비한
훌륭한 군자가 왕위에 있으니 길하다. 멸망하지 않을
까 하는 조심하는 마음으로 튼튼한 뽕나무의 뿌리에
매어두듯 항상 스스로를 경계하라
九五, 休否. 大人吉. 其亡, 繫于苞桑. 象
曰, 大人之吉, 位正當也.
"막힌 상태가 그친다." 근심걱정은 움직이면 움직이는 힘속에
흡수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듣고 무턱대고 해버리면
일단 하나는 해결되지만 해결된 상태가 도리어 막혀버릴 수 있습
니다. 사소한 것 하나 떨쳐버리고 갑자기 즐거워하다가 보면 또
다시 자기한테 빠져버리게 됩니다. 근심걱정이 있을때는 춤을 춰
라고 하니까 한 달 내내 디스코장 가서 춤을 추면 그것이 또 근
심걱정입니다. 아직까지 형통을 터득하지 못한 사람이 한 번 움직
여서 형통했다고 해서 계속 그 상태를 밀고나가면 오히려 해가
된다라는 이야기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살펴가면서 해나가야지,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도리어 뜻밖의 화를 초래하는 수
도 있습니다.
"재덕을 구비한 훌륭한 군자가 왕위에 있으니 길하다." 재덕(才
德)은 "재치있는 덕"입니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수없는 속임수, 임
기응변, 이 모든 것이 재덕입니다. 이 재덕을 구비한 군주가 항상
염려하는 마음을 갖고 움직이면 뜻밖의 화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으므로 길하다는 것입니다. 근심걱정은 움직이면 움직이는 힘속
에 말려 들어간다는 것이 재덕입니다.
"멸망하지 않을까 하는 조심하는 마음으로 튼튼한 뽕나무의 뿌
리에 매어두듯 항상 스스로를 경계하라." 잘 될 것이다라고 생각
하는 것이 혹시나 잘 안될 수도 있습니다. 잘 하려고 하는 것이
도리어 뜻밖에 화를 초래하는 수도 있습니다. 나는 이 학생을 잘
되게 하기 위해서 때렸는데 학생은 그러한 선생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도리어 선생님에게 대들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항상 살펴
야 합니다. 즐거울 때 즐거운 자기 마음을 붙들어 매고 "혹시 잘
못되지는 않을까?" 항상 염려하는 마음으로 움직이게 되면 길하
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수없이 번창하는 뽕나무 잎파리같이 많은
장애가 온다 할지라도 뿌리가 튼튼하기 때문에 결코 멸망하지 않
는다라는 뜻입니다.
여섯번째 양효. 막혀서 잘뚫린 상태가 무너지고 있
다. 어찌 오래갈 것인가. 처음은 막혀있는 듯하나 다
시 뒤에는 기쁨이 있다.
上九, 傾否. 先否後喜. 象曰, 否終則傾,
何可長也.
"막혀서 잘뚫린 상태가 무너지고 있다. 어찌 오래갈 것인가. 처
음은 막혀있는 듯하나 다시 뒤에는 기쁨이 있다." 아무리 재덕을
겸비하였다 하더라도 끝내가서는 재덕을 겸비한 군주는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막힐 것이나 그 형통할 수 있었던 능력은
계속 남아서 형통하게 할 것입니다. 옛날 석가나 예수 그리스도는
형통했던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었습니다. 석가도 죽었
습니다. 그러나 "죽었다"라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객체는 무너
지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기강과 석가의 제 3의 힘은 지금도 흐르
고 있습니다. 즉 죽은 뒤에도 계속 형통하고 있습니다.
[천지부]는 개인으로서 개인 상태에 머무르게 되면 일체가 막
혀버리지만, 그러나 이 우주는 결코 막힌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
무리 막혀있다고 하더라도 우주는 인정사정 없이 쓸어버립니다.
쓸어가는 우주의 강한 에너지의 상태로 살게되면 형통하게 되고,
끝내가서 몸은 낡아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그렇게 뚫린 그 기운은
바로 우주 그 자체이기 때문에 영원히 형통할 수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
세상일은 맨 처음부터 덮어 놓고 되지는 않습니다. 한 번 어려
운 고비가 오고 이제 절망의 벼랑에 섰을 때, 그때 개의치 않고
뚫고 나가는 저력이 있다면 바로 그 일은 형통할 수 있다고 천지
부는 이야기합니다. "머무르지 말아라. 머무른 상태에서 너를 잃
어버리지 말아라. 계속해라. 계속해서 뚫고 나가라. 나가다 보면
막혔다고 생각했던 모든 부분들은 허물어져 버릴 것이다." 우주는
그렇게 우리들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조각가 로뎅의 작품 "생각하는 사람"의 얼굴에는 수심이 없습
니다. 수심에 쌓여 있는 로뎅은 가치가 없습니다. 모나리자의 미
소. 그것은 모든 아픔을 뚫고 넓게 퍼져나간 형통한 모습이 담겨
져 있기 때문에 오늘날 명작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지
부]의 괘를 통해 막힌 상태의 [부]를 형통하게 하여 항상 충만된
상태를 영원한 화합을 이루어내는 지혜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유성..
○ [천지부]를 이겨 나갈 수 있는 힘, 그것은 지극한
○ 사랑입니다. 자기가 옳다고 고집을 내세울 때는 [천
○ 지부]의 현상이 일어나는 데, [천지부]는 결코 갈라
서는 것이 아니고, 조화(調和)를 이루어낼 수 없는
● 자신의 문제만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 조화(調和)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조
● 화를 외면할 수는 있지만, 이 세상이 이미 조화이기
때문에 결코 조화를 벗어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천지부(天地否)
마주 의지하여 일어서는 사람 인(人)자의 형상처럼
사람은 서로 도우며 사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부
(否)는 이러한 인간의 본성이 거부된 상태다. 사람들
사이가 마음이 통하지 않고 막혀버린 것이다. 그러므
로 군자가 바른 도리를 지켜 한결같이 가려하나 방해
되어 잘 되지 않는다. 양은 위로 올라가고 음은 아래
로 내려온다. 천지는 화합하지 아니하여 만물은 생육
되지 못한다. 인간도 상하의 마음이 화합되지 아니하
여 국가는 멸망한다. 내괘가 음이고 외괘가 양이다.
이것은 내심이 유약하면서도 외면은 강한 것처럼 꾸
미는 것이다. 핵심에는 소인이 버티고 군자는 변두리
로 밀려난다. 소인의 도가 횡행하고 군자의 도는 소
멸한다.
否之匪人. 不利君子貞. 大往小來. 象曰,
否之匪人, 不利君子貞, 大往小來, 則是天
地下交而萬物不通也. 上下不交, 而天下无
邦也. 內陰而外陽, 內柔而外剛, 內小人而
外君子, 小人道長, 君子道消也.
"내괘가 음이고 외괘가 양이다. 이것은 내심이 유약하면서도 외
면은 강한 것처럼 꾸미는 것이다." [천지부]는 [지천태]와는 반대
로 외괘는 모두 양효로 이루어져 있고, 내괘는 모두 음효로 이루
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내면은 유약한데 겉으로는 강한 것을 나타
냅니다. 안으로는 강한 것이 있으면서 유한 것이 바깥으로 있어야
지 바깥의 것을 끌어 당겨 오는 데, 안에서 자기 자신이 유한 상
태로 스스로 움직이게 되면 도리어 겉으로 강해져서 밖으로 강한
기운을 내보내게 되고, 저쪽도 역시 강한 에너지를 반발적으로 내
보내서 서로가 밀어내는 형상을 일으키게 됩니다.
안에 음에너지가 작용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 자신이 빠져 있
는 상태와 같은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번민속에 빠져 있게 되면
세상으로부터 유리되게 됩니다. '부(否)'는 헤어지다, 갈라지다, 섞
일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즉, 하늘과 땅이 갈라져 있는 상태란
뜻입니다.
[지천태]에서는 세 개의 양효가 밑에 있었고 위에 음효가 세
개 있어서 양효가 일을 벌려 놓으면은 그것을 음효가 거둬들였습
니다. 그런데 이 괘는 지금 위로는 양효가 작용하고 있지만 밑으
로 음효가 자릴 잡아, 그런 상태로 움직이면 융합되지 아니하여
형통하지 못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 때문에 하는 걱정, 자신으로 인해서 벌어지는 고민,
그런 따위가 전부다 [천지부] 입니다. 우리가 친구를 사귀면 처음
에는 굉장히 친해지게 됩니다. 맨 처음에 친해질 수 있는 것은
"나는 그와같은 사람이 좋다."라는 것을 안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겉으로 친화하는 현상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얼마 안있
어 두 사람과의 관계가 [천지부]와 같은 상태가 되면 서로 멀어
지게 됩니다.
그런데 멀어진다는 것에 대해 자기가 자기 마음 속안에 빠져들
게 되면 세상을 수용할 수가 없게 됩니다. 따라서 세상을 수용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의 사랑은 애정이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진정
한 사랑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여자가 내 생일날
도 기억해 주지 못한다고 "날 사랑하는게 아니야." 하고 자기 세
계에 빠져버리면 그로 인해 그 사람은 [천지부]와 같은 상태가
되어 상대방을 밀어내 버리는 현상을 일으키게 됩니다.
사람은 이상한 동물이어서 살 수 없는 데를 억지로 올라가려고
하다가 죽는 경우가 많습니다. 에베레스트 산. 그곳은 사람 살 곳
이 아닌데도 이상하게 사람은 꼭 거기를 올라가려고 합니다. 물론
인간이 어려운 점을 극복하고 해냈다라는 의미에서 세상은 칭송
을 하는 것이지만, 에베레스트 산은 대들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면
찾아오지 않습니다. 에베레스트 산에 찾아온 사람은 살기 좋아 간
것이 아니고 대들려고 간 것입니다. 대들려고 갖다가 중간에 얼어
죽거나, 눈에 파묻혀 죽거나 한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에베레스트가 아니고 그저 동네에 나지막히 있는 뒷동산에는
많은 사람들이 올라갑니다. 갑돌이나 갑순이도 만날데가 없으면
거기서 만나고, 아이들이 언덕에 가서 술래잡기도 하고, 제기차기
도 하고, 축구도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언덕을 정복했다는 느낌
을 전혀 갖지 않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사람이 언덕에 올랐더라도
언덕이 좋아서 갔다는 사실을 모르고 갔다는 것입니다. 단지 언덕
이 좋다라는 걸 느끼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진짜 높은 경지에 있는 사람은, 진짜 이 세상을 두루 살
펴서 완전히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은, 언덕도 아닌 맨땅과 같은 사
람들입니다. 그 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놀고 있습니다. 그것이
가장 높은 경지입니다. 남을 수용한다는 것은 안에 강한 기운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스스로 약하기때문에 자꾸 남과 타협하
려고 하고, 남과 거래를 하려고 합니다. 진정으로 자기 자신이 강
한 기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남과 타협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
사람이 남과 절충하는 것은 타협한다고 말하지 않고 수용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아니꼬운 것도 다 받아들입니다. 받아들여
서 좋게 화합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천지부]의 상태가 되어 일이 막히고 주변과
격리되어 잘 풀리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럴수록 수용
하는 자세로 꾸준히 해야할 일을 해나가면 제 3의 힘에 의하여
형통하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우주는 항상 경쾌하게
돌아가서 막힌 상태로 오래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주 의지하여 일어서는 사람 인(人)자의 형상처럼 사람은 서
로 도우며 사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부(否)는 이러한 인간의 본
성이 거부된 상태다." 사람 인(人)자는 두 사람이 마주 의지하며
일어서는 것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즉 사람은 서로 도우며 사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 사람을 인간(人間)이라고
하는 이유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 의지하여 화합하는 가운데에 우
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천지부]는 이러한 인간의 본성이 거부된 상태입니다. 서로가
마음이 통하지 않고 막혀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군자가 바른 도
리로 지켜 나가려 하나 방해되어 잘 되지 않고 있습니다. 내심으
로는 유약하면서 외면은 강한 것처럼 꾸미는 것으로, 핵심에는 소
인이 버티고 군자는 변두리로 밀려난 상태입니다.
왜 인간의 본성이 깨뜨려 지는가? 그것은 자기 자신의 옳은 것
만을 고집하여 남을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세상에는 옳다고
인정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로 옳은 것인지
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처음에 미니스커트를 입은 젊은 여인들
이 나타났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퇴폐라고 우려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미니스커트가 상식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부부는 죽을 때까지 헤어지지 않고 살아야 하는
것을 철칙으로 생각하고 있으나, 실제로 주위에는 이혼하는 부부
가 상당히 많습니다. 그리고 헤어진 부부들은 각자가 헤어지지 않
으면 안되는 타당한 이유들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것이
옳으냐, 그르냐가 아니고, "이것이 옳다"라고 스스로 규정짖고, 그
규정을 통해서 세상을 조명해 보려는 마음이 잘못된 것이라는 사
실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믿음에 스스로가 구속되어서 겉으로만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
고 그렇게 겉으로 강해진 것은 세상과 유리되어 지며, 결국 세상
이 그것을 멸망시켜 버리고 맙니다.
"양은 위로 올라가고 음은 아래로 내려온다. 천지는 화합하지
아니하여 만물은 생육되지 못한다. 인간도 상하의 마음이 화합되
지 아니하여 국가는 멸망한다." [천지부]는 하늘이 하늘에 있고,
땅이 땅에 있으므로 우리가 생각하기에 바른 것인데, 그러나 이것
을 옳다고 고집해 버리면 결국 세상은 화합하지 않고 분리되어
버린다는 뜻입니다. 즉 하늘이 위에 있고 땅이 밑에 있으니까 맞
는 얘기다 하고 주장하면 세상으로부터 거부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세상이 어떻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그 강한 것은 안으로 약한
기운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눈에 힘을 주고 어금니를 물고 있는 사람은 의지가 강한 사람
같지만, 안이 풍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풍성하지 못한 사람이
자기 안에 빠지게 되면 그렇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 사이는 마음
이 서로 통하지 않고 막혀버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음에너지 속안
에 자기가 빠져있기 때문에 겉으로 강해지고, 그러므로 외부와 단
절되어 흐르는 흐름을 볼 수 없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만물을 수
용하고 용서하는 것을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흐르는 흐름속에서 움직이게 되면 [천지부]라는 현상은 일어나
지 않습니다. 흐름 속안에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면에 충만된 에너지가 있지 않은 사람은 세상을 수
용할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이 이미 충만된 상태에 있지 않는 사
람은 [천지부]의 현상을 일으킬 뿐 이 세상과 화합이라는 것을
일으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천지부]는 "자기 생각에 치우치지
말고, 자기로 인해서 판단하지 말고, 흐르는 흐름을 잘 관찰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화합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
니다.
회사의 흐름을 아는 사장은 흐름이 막히면 자기 이익이 손해가
나고, 그 손해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도 손해가 난다는 사실을 알
고 있습니다. 그러나 흐름을 알지 못하고 부분적인 자기 이익에만
집착하는 노동자 및 근로자들은 자신의 태업이 전체의 손해를 일
으키고 결국 그것은 자기 손해가 된다는 것을 모릅니다. 이득만
바라보다가 스스로 손해를 입고, 그 손해가 점차적으로 또 손해를
미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현상도 지킬 수 없습니다. 진정으
로 자기 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사람은 손해를 아는 사람입니다.
대상. 천지가 서로 배반하는 것이 부(否)의 괘상이
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자신의 유덕함을 숨기고
물러나와 난을 피한다. 관록을 영화로 생각하여 뜻이
동요되어서는 안된다.
象曰, 天地不交否. 君子以儉德避難. 不可
榮以祿.
동의보감에 보면, 스스로 건강을 지키려면 100%로 채우지 말고
80%에서 멈추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을때 100
숟가락을 먹으면 꽉찰 경우, 80 숟가락 정도 먹고 멈추어야 합니
다. 그래야만 위장이 원활히 움직여서 소화를 시키는데, 꽉차게
먹으면 위장이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 위장은 망가져 버
리게 됩니다.
"자신의 유덕함을 숨기고 물러나와 난을 피한다." 무슨 일이든
지 100%를 바라보아서는 안됩니다. 80%만 바라보고 나머지 20%
는 뜸들이는 기간으로 놔두어야 합니다. 20%의 여유를 두었을 때,
바로 자신이 섭취한 것을 영양으로 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즉 한
번에 완전하게 하지 말고, 80%만 이루고 20%는 완전에 다가오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괘는 자기 자신이 지금 최고의
영화에 사로잡혀 있더라도 20%의 간격을 갖고 물러서야 할 때 물
러서서 채우지 않아야만 비로서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다고 말
하였습니다.
"관록을 영화로 생각하여 뜻이 동요되어서는 안된다." [천지부]
는 상괘와 하괘가 모두 정응관계에 있습니다. 이는 잘만 처신하면
좋게 풀려나갈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마치 자석이
같은 극끼기 서로 밀어내고 있듯이 비록 서로가 자기 고집을 세
워서 팽팽히 대립하고 있지만, 자석은 다시 합칠 수도 있는 것처
럼, 나중에 서로 양보하면 곧 화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의 욕심으로 영화를 생각해서 뜻이 동요되어서는 안된다. 물러
설 때는 물러설 줄 알아야 한다. 자기 고민에 빠졌을 때는 빨리
자기로부터 물러나와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을 건져낼 수 있다."
따라서 군자는 20% 뒤로 물러서서 자기 목전의 이익을 바라지 말
고 자기의 상태를 지켜볼 줄 알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첫번째 음효. 띠풀 한포기를 뽑으면 뿌리가 한데 얽
힌 여러포기가 한꺼번에 뽑힌다. 여러동지들과 함께
하는 상징이다. 일관된 마음으로 임금에게 충성하면
길하다. 발전하고 번영하리라.
初六, 拔茅茹. 以其彙. 貞吉亨. 象曰, 拔
茅, 貞吉, 志在君也
"띠풀 한포기를 뽑으면 뿌리가 한데 얽힌 여러포기가 한꺼번에
뽑힌다." 첫번째 음효입니다. 이 음효는 우선 세상에 확고한 자기
주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받아들일 수는 있습니다. 위로
양효의 것을 받아들여 일관된 마음으로 뜻을 위해 충성하면 주변
의 이음(二陰), 삼음(三陰) 등 동지들이 함께하여 길하지만, 이
세상과 유리되어져 있는 상태에서 주관도 없는 음효가 멋대로 행
동하면 남은 두 세계도 동시에 뽑혀 나간다는 뜻입니다.
"일관된 마음으로 임금에게 충성하면 길하다." 자기가 기분나쁘
다고 이곳 저곳 화를 내고 다니면 이쪽 저쪽 모두가 피해를 입습
니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화난다고 핸들을 확 꺽으면, 자
기 차만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 이쪽 저쪽의 모든 차가 다 망가지
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양의 자리에 있어 함부로 행동하고
싶은 충동이 있으나, 음효의 덕으로 자신을 양보하면서 주변을 받
아들이고 화합하려 하면 길하다는 것입니다.
두번째 음효. 임금의 말이면 덮어놓고 순종하니 소인
들은 임금을 숭상하여 길하다. 그러나 군자는 신념을
굽혀서까지 타협하지 않는다.
六二, 包承. 小人吉. 大人否亨. 象曰, 大
人否亨, 不亂群也.
"임금의 말이면 덮어놓고 순종하니 소인들은 임금을 숭상하여
길하다." 두번째 음효는 마땅히 음의 자리에 음효가 위치하고, 대
응하는 다섯번째 양효와 정응관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
변으로는 자기 세계가 분명하지 않은 소인들이 군주를 따르는 형
상입니다. 비록 소인들이 군주를 따르는 것은 좋은 일이나 그렇다
고 그들을 믿지는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군자는 신념을 굽혀서까지 타협하지 않는다." 군자가
소인과 다른 점은 갖은 압박과 핍박이 온다 하더라도 자기 심정
에 빠져 할 일을 하지 않는 경우는 결코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확신하는 세계가 투철하고 명료하게 내면에 있기 때문입니다. 소
인은 자기한테 빠지지만 군자는 자기한테 빠지는 법이 없습니다.
이것이 소인과 군자의 차이인데, 그게 굉장히 큰 차이입니다. 그
래서 군자는 이러한 소인의 무리속에서 신념을 굽혀서까지 타협
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세번째 음효. 재덕을 갖추지 못한 자가 분수에 지나치는
부귀에 눈이 어두워 부끄러움도 모른다.
六三, 包羞. 象曰, 包羞, 位不當也.
"재덕을 갖추지 못한 자가 분수에 지나치는 부귀에 눈이 어두
워 부끄러움도 모른다." 세번째 음효입니다. 양효가 와야할 자리
에 음효가 있습니다. 음의 상태에서 누구를 좋아한다는 것은 진정
한 사랑이 아니라, 자기 마음 상태에 스스로 빠져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에 도취되어 사랑하는 그 사랑은 어느 순간에 서로
밀어낼 수도 있습니다. 흔히 부부싸움을 하는 것은 바로 자기한테
사로잡혀서 거부가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천지부]를 이겨 나갈 수 있는 힘, 그것은 지극한 사랑입니다.
자기가 옳다고 고집을 내세울 때는 [천지부]의 현상이 일어나는
데, [천지부]는 결코 갈라서는 것이 아니고, 조화(調和)를 이루어
낼 수 없는 자신의 문제만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조
화(調和)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조화를 외면할 수는
있지만, 이 세상이 이미 조화이기 때문에 결코 조화를 벗어날 수
는 없는 것입니다.
고집을 내세우는 나 자신, 그것을 자연은 나름대로 조화시켜 버
립니다. 중요한 사실은 스스로 조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문제가 있을 때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단순하게 처리해야 합니다. 세상의 이치는 단순하기 때문입
니다. 단지 단순하게 처리할 수 없는 사람이 복잡한 자기 세계에
빠져 복잡한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네번째 양효. 위에 훌륭한 군주가 있어서 명령을 내
리니 오직 왕명에 쫓으면 허물이 없으리라. 막힌 것
을 타파하려는 뜻이 이루어진다. 동지와 같이 지극한
복을 받는다.
九四, 有命无咎. □離祉. 象曰, 有命无咎,
志行也.
[천지부]는 일단 음양이 전부 정응관계에 있기때문에, 비록 지
금 내외가 뒤바뀌어 형통치 못하고 있지만, 막힌 상태를 타개하려
는 분명한 뜻을 가지면 능히 뚫고 나아갈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
습니다. "위에 훌륭한 군주가 있어서 명령을 내리니 오직 왕명에
쫓으면 허물이 없으리라." 오양(五陽)이 정당한 위치를 지키고 있
으므로 네번째 효는 다섯번째 양효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비록
자기 자신의 입장을 내세우고 싶으나, 이를 숙이고 그 뜻을 쫓아
야 합니다. 다섯번째는 의당히 양효가 있어야 할 자리에 양효가
존재하고 있고, 또 모든 것이 대응관계로 있기 때문에 자기가 따
르면 그 밑에 있는 것들이 함께 따라준다라는 이야기입니다. "동
지와 같이 지극한 복을 받는다." 여기서 말하는 '왕명'은 절대적인
명령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자기 입장을 이야기하지 말고 그 뜻을
쫓으면 허물이 없으리라. 뜻을 따라 형통되려고 하는 무리들과 함
께 복을 누린다라는 뜻입니다.
근심걱정, 혹은 하기 싫어하는 마음이 있더라도 해야할 일을 꾸
준히 하다보면 근심걱정과 하기 싫어 하는 것이 없어지고, 하는
힘에 의해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것은 단순한 조건 반사가 아닌
제 3의 힘입니다. 그 힘이 근심걱정을 흡수해 버립니다. 근심걱정
이 있는 사람이 신나게 춤을 추면 그것을 잊어버린다고 흔히 말
하고 있습니다. 또 친구지간에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기분
전환하러 가자고 하여 여행이라도 하면 근심걱정이 풀립니다.
왜 근심걱정이 풀리는가? 움직이는 힘에 의하다 보면 근심걱정
에너지가 그리로 흡수됩니다. 우리는 표현상 잊어버렸다고 하는
데, 이것은 근심걱정을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힘에 흡수
되어져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풀릴 근심걱
정이라면 실은 근심걱정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다만 자기 걱정일
뿐이었습니다.
사람이 근심걱정이 커지면 커질수록 뛸 힘이 안생기는 법입니
다. 그러나 뛸 힘만 있으면 근심걱정은 없어지게 됩니다. 양성에
너지가 강하면 음성은 그곳에 흡수되어 버립니다. 남자가 강하면
여자는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부(否)]의 상태로 가느냐, 아니
면 [부(否)]의 상태를 타개하느냐에 따라서 음성에너지는 그 쪽
을 따라갑니다. 그래야만 창조가 이루어집니다. 세상은 그렇게 창
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뜻으로 분명하게 하는 것은 모든 근심걱
정을 흡수해 버립니다. 그것이 가장 최선의 해결책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옛날에 예수도 "죽은 자는 죽은 자로 하여금 장사지내
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라고 했습니다. 그때 따라갔으면 죽은
아버지에 대한 근심은 없어지게 됩니다. 아버지 근심을 벗어나게
되면 이미 죽은 자에 대한 자기 근심은 쓸데없는 근심이었다는
것을 본인이 느끼게 됩니다.
다섯번째 양효. 막힌 상태가 그친다. 재덕을 구비한
훌륭한 군자가 왕위에 있으니 길하다. 멸망하지 않을
까 하는 조심하는 마음으로 튼튼한 뽕나무의 뿌리에
매어두듯 항상 스스로를 경계하라
九五, 休否. 大人吉. 其亡, 繫于苞桑. 象
曰, 大人之吉, 位正當也.
"막힌 상태가 그친다." 근심걱정은 움직이면 움직이는 힘속에
흡수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듣고 무턱대고 해버리면
일단 하나는 해결되지만 해결된 상태가 도리어 막혀버릴 수 있습
니다. 사소한 것 하나 떨쳐버리고 갑자기 즐거워하다가 보면 또
다시 자기한테 빠져버리게 됩니다. 근심걱정이 있을때는 춤을 춰
라고 하니까 한 달 내내 디스코장 가서 춤을 추면 그것이 또 근
심걱정입니다. 아직까지 형통을 터득하지 못한 사람이 한 번 움직
여서 형통했다고 해서 계속 그 상태를 밀고나가면 오히려 해가
된다라는 이야기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살펴가면서 해나가야지,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도리어 뜻밖의 화를 초래하는 수
도 있습니다.
"재덕을 구비한 훌륭한 군자가 왕위에 있으니 길하다." 재덕(才
德)은 "재치있는 덕"입니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수없는 속임수, 임
기응변, 이 모든 것이 재덕입니다. 이 재덕을 구비한 군주가 항상
염려하는 마음을 갖고 움직이면 뜻밖의 화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으므로 길하다는 것입니다. 근심걱정은 움직이면 움직이는 힘속
에 말려 들어간다는 것이 재덕입니다.
"멸망하지 않을까 하는 조심하는 마음으로 튼튼한 뽕나무의 뿌
리에 매어두듯 항상 스스로를 경계하라." 잘 될 것이다라고 생각
하는 것이 혹시나 잘 안될 수도 있습니다. 잘 하려고 하는 것이
도리어 뜻밖에 화를 초래하는 수도 있습니다. 나는 이 학생을 잘
되게 하기 위해서 때렸는데 학생은 그러한 선생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도리어 선생님에게 대들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항상 살펴
야 합니다. 즐거울 때 즐거운 자기 마음을 붙들어 매고 "혹시 잘
못되지는 않을까?" 항상 염려하는 마음으로 움직이게 되면 길하
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수없이 번창하는 뽕나무 잎파리같이 많은
장애가 온다 할지라도 뿌리가 튼튼하기 때문에 결코 멸망하지 않
는다라는 뜻입니다.
여섯번째 양효. 막혀서 잘뚫린 상태가 무너지고 있
다. 어찌 오래갈 것인가. 처음은 막혀있는 듯하나 다
시 뒤에는 기쁨이 있다.
上九, 傾否. 先否後喜. 象曰, 否終則傾,
何可長也.
"막혀서 잘뚫린 상태가 무너지고 있다. 어찌 오래갈 것인가. 처
음은 막혀있는 듯하나 다시 뒤에는 기쁨이 있다." 아무리 재덕을
겸비하였다 하더라도 끝내가서는 재덕을 겸비한 군주는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막힐 것이나 그 형통할 수 있었던 능력은
계속 남아서 형통하게 할 것입니다. 옛날 석가나 예수 그리스도는
형통했던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었습니다. 석가도 죽었
습니다. 그러나 "죽었다"라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객체는 무너
지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기강과 석가의 제 3의 힘은 지금도 흐르
고 있습니다. 즉 죽은 뒤에도 계속 형통하고 있습니다.
[천지부]는 개인으로서 개인 상태에 머무르게 되면 일체가 막
혀버리지만, 그러나 이 우주는 결코 막힌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
무리 막혀있다고 하더라도 우주는 인정사정 없이 쓸어버립니다.
쓸어가는 우주의 강한 에너지의 상태로 살게되면 형통하게 되고,
끝내가서 몸은 낡아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그렇게 뚫린 그 기운은
바로 우주 그 자체이기 때문에 영원히 형통할 수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
세상일은 맨 처음부터 덮어 놓고 되지는 않습니다. 한 번 어려
운 고비가 오고 이제 절망의 벼랑에 섰을 때, 그때 개의치 않고
뚫고 나가는 저력이 있다면 바로 그 일은 형통할 수 있다고 천지
부는 이야기합니다. "머무르지 말아라. 머무른 상태에서 너를 잃
어버리지 말아라. 계속해라. 계속해서 뚫고 나가라. 나가다 보면
막혔다고 생각했던 모든 부분들은 허물어져 버릴 것이다." 우주는
그렇게 우리들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조각가 로뎅의 작품 "생각하는 사람"의 얼굴에는 수심이 없습
니다. 수심에 쌓여 있는 로뎅은 가치가 없습니다. 모나리자의 미
소. 그것은 모든 아픔을 뚫고 넓게 퍼져나간 형통한 모습이 담겨
져 있기 때문에 오늘날 명작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지
부]의 괘를 통해 막힌 상태의 [부]를 형통하게 하여 항상 충만된
상태를 영원한 화합을 이루어내는 지혜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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