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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 지산겸(地山謙)
    『 진정한 겸손 』
     
     ●     겸손은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게끔 가슴을 열어
     ●     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이 비어있어 받아들
     ●     일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스
            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만물을  수용할 수 있
     ○       는 것입니다.
     ●     겸손은 항상 없다는 것을 느껴야 됩니다. 우리는
     ●     아무것도 가질 수가 없다는 것을 빨리 알아야 됩
            니다. 누릴 수는 있으되 가질 수는 없습니다. 지
            금 내가 볼펜을 가지고 있지만 이것이 내 것은 아
            닙니다. 내가 죽는다고 볼펜도 없어지는 것은 아
            닙니다. 나의 죽음과 볼펜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
            다. 이 볼펜의 주인은 그 누구도 아닙니다. 굳이
            주인을 얘기하라면  자연이 주인입니다.  그것을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
            다.
     
                         지산겸(地山謙)
     
        겸(謙)은 형통한다. 하늘의 도리는 높은 데서  그 작
        용이 아래로 내려와 땅 위의 만물을 건져줌으로 해서
        빛이 나고, 땅의 도리는 스스로 낮은  위치를 지킴으
        로 해서 그 작용이 위로 올라가 하늘의 하는 일을 도
        울 수 있다. 하늘의 법칙은 보름달이 기울듯이 찬 것
        은 덜고 차지 않은 것은 보탠다. 땅의 법칙은 웅덩이
        에 물이 가득차면 둑을 뚫고 나와 낮은데로 흐르듯이
        찬 것은 변경하여 차지 않은데로 흐른다.  귀신은 가
        득차 있는 자에게는 활을 주고, 겸손한  자에게는 복
        을 준다. 사람의 도리는 교만한 것을  미워하고 겸손
        한 것을 좋아한다. 겸손하면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
        은 빛이나고,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남이 업신여
        기지 못한다. 그러므로 시종일관 겸손의 도를 지키는
        군자는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다.
     
            謙, 亨. 君子有終.  象曰, 謙亨. 天道下濟
            而光明. 地道卑而上行.   天道虧盈以益謙,
            地道變盈而流謙, 鬼神害盈而福謙, 人道惡
            盈而好謙. 謙尊而光, 卑而不可踰. 君子之
            終也.
     
      백년전까지만 해도 지구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이 허공이 마냥
    끝없이 비어져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
    면서 과학자들은 이 공간에  대해서 수없이 연구를  하고 실험을
    해 본 결과 공간은 우리 눈에 이렇게 보이지는 않지만 그저 무조
    건 비어 있는 것이  아니고 휘어져도 있으며  또 울퉁불퉁하게도
    생겼다라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
    은 공간과 공간 사이에 어디쯤엔가 구멍이  나 있다는 사실을 알
    아 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구멍을 블랙홀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까지의 과학자들은  블랙홀 안에 무엇이  있는지,
    블랙홀이 무엇 때문에 필요한 것인지 알지를 못합니다. 그러면 블
    랙홀이란 무엇인가? 중요한 사실은 블랙홀이 필요가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지 필요가 없으면 만들어질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
    다. 왜냐하면 이 우주는 스스로를 지탱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만
    을 만들지 불필요한 것은 절대로 만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블랙홀도 어딘가 모르게 우주의 힘의 균형을 유지 시켜주기 위해
    서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손등에다가 물건을 올려놓고 손목을 꺽으면  물건이 전부다 떨
    어져 내려가 버립니다. 이것은 손쉽게 자기 손 두  개를 사용해서
    실험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물건을 손바닥에 놓고  손을 오무
    려 놓으면 물건이 안으로 모여지게 됩니다.  간단하지만 이것으로
    우리는 블랙홀이 존재 해야 하는 이유를 알 수가 있습니다.
      블랙홀이 존재하지 않으면 우리는 지금처럼  일정한 공간에 이
    렇게 존립하여 있을 수가 없습니다. 공간이  손바닥 오무려들듯이
    오무려들었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거기에 다닥다닥 달라 붙어 있
    는 것입니다. 안으로 오무려진 공간이 없으면 우리들은 덜커덕 하
    고 위로 올라가 버릴 것입니다. 그러면 지구는 어느 날 갑자기 튕
    겨 나가게 됩니다. 마치 당구공이 튕겨져 나가면 공과  공이 서로
    마주치듯이 블랙홀이 없으면 달, 금성, 수성,  목성 등등이 전부다
    당구공 부딪히듯이 부닺힐런지 모릅니다. 블랙홀이 존재하기 때문
    에 우주공간에서 이 지구가 편안하게 궤도상을 운행할 수 있습니
    다.
      블랙홀은 현재 이 공간이 유지될 수  있도록 조정해 주고 있습
    니다. 그것이 바로 블랙홀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그 안으로 들
    어가면 뭐가 있든지 말든지  그것은 알 필요가 없습니다.  우주는
    산 넘어 뭐가 있는지 이게 중요한게 아니고 왜 산이 존재해야 하
    는가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존재  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
    우주는 자기 스스로를 보존하기 위해서 입니다.
      "하늘의 도리는 높은 데서  그 작용이 아래로  내려와 땅 위의
    만물을 건져줌으로 해서 빛이 나고, 땅의 도리는  스스로 낮은 위
    치를 지킴으로 해서 그 작용이 위로 올라가 하늘의 하는 일을 도
    울 수 있다." [지산겸]은 블랙홀과 비슷한 괘입니다. 물리학자들이
    말하는 블랙홀을 방정식으로  표시하지 않고  기호로 표시한다면
    바로 이와같은 모습이 될 것입니다.  하괘는 산을 뜻합니다. 상괘
    는 땅을 뜻합니다. 땅아래 산이  치솟아 있다는 뜻입니다. 땅위에
    산이 치솟아 있는 것이 아니고, 땅밑에  산이 치솟아 있는 것, 이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 괘는 상괘가 땅이고,  하괘가 산으로서 서로 위치가  반대로
    되어 있어 순조롭게 역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역순하는 과정에
    서 주변이 모두 음효이기 때문에 주위의 것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현상을 일으킵니다. 그러면서도  유일한 세번째 양효는  제위치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주역이 역순하는 가운데 안으
    로 강하게 흡수하고 있으나, 양성기운은 빨려들어가지 않고 그 힘
    을 받으면서도 제위치를 유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 괘는 "균형과 유지"를 나타냅니다. 마치 블랙홀이 구
    멍이 생겼다고 해서 그 주변의 괘도상에  있는 것들이 그 안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그 구멍으로  인해서 괘도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유지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이것이 인간에게 주는 의미는 겸손입니다. 겸손이야 말로  균형
    과 유지를 이루어주는 덕입니다. 인간이 만약 조금 성공했다고 마
    음이 의기 양양해지면 그  사람은 곧 그것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어쩌다 땅값이 올라 졸부가 된 사람이  큰 소리 뻥뻥치고 다니면
    머지 않아 주르륵 흘러내린다는 사실을  예시하는 것이기도 합니
    다. 따라서 그 많은 것들을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블랙홀이 안으로
    흡수하고 있듯이 겸손을 가지지 않으면 안됩니다.
      마음에 기쁨이 차는 순간 그 다음 번에 반드시 좋지 않는 현상
    이 벌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마음과 마음 바깥 세
    상간에 벌어질 수 있는 메카니즘입니다. 마치  블랙홀의 메카니즘
    이 블랙홀 위에 있는 모든 혹성의  괘도를 지켜주는 작용을 하듯
    이 겸손을 갖지 않으면 모든 것을 몽땅 잃어버린다는 뜻입니다.
      겸손은 항상 없다는 것을  느껴야 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아무 것도 가질 수가 없습니다.  단지 이 세상의 것을 누릴  수는
    있습니다.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땅의 도리를 분명히 얻어야만 합
    니다. 그래야 하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땅이어야
    합니다. 단지 하늘을 향하고 있는  마음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하늘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욕심이 아닌  진정한
    욕심입니다. 그래야만 마음이 몸바깥으로 튀어 나가는  일이 없습
    니다.
      지금 내가 볼펜을 가지고 있지만 이것이 내 것은 아닙니다.  내
    가 죽는다고 볼펜도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나의 죽음과 볼펜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이 볼펜의 주인은 그 누구도 아닙니다. 굳
    이 주인을 얘기하라면  자연이 주인입니다. 그것을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
    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늘의 법칙은 보름달이 기울듯이 찬 것은 덜고 차지 않은 것
    은 보탠다. 땅의 법칙은 웅덩이에 물이 가득차면 둑을  뚫고 나와
    낮은데로 흐르듯이 찬 것은 변경하여 차지  않은데로 흐른다." 겸
    손은 우주의 법칙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작용을 합니다.  높은 곳
    은 무너뜨려서 밑으로 내려가게 하고, 움푹 패인  곳은 차게 합니
    다. 그 작용을 유지시켜 주는 유일한 길이 바로 '겸(謙)'입니다. 자
    연은 가득차 있는 것에서는  깎아서 차지 않은 것에  보태줍니다.
    그래서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국 나중에 가서는 자기 것을
    잃어버리고 남에게 보태어 주게 됩니다. 웅덩이에  물이 가득차면
    둑을 뚫고 나와 낮은데로 흐르듯이, 내가 가지고  있는 재산은 나
    에게 만족하지 않고 어떻게든 빠져 나가려고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귀신은 가득차 있는 자에게는 활을 주고, 겸손한 자에게는 복을
    준다. 이 우주에 존재하는  살아있는 생명의 기운은 가득차  있는
    자에게는 힘을 주고, 겸손한 자에게는  복을 줍니다. 겸손은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게끔 가슴을 열어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
    이 비어있어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만물을 수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깨
    끗해야지 괜히 욕심을 부리고 심술을 부리면 복이 화로 변해버리
    는 법입니다.
      블랙홀이 존재하듯이 지구 안에도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만일
    지구가 막혀 있다면 어느날 갑자기 금이가서 쪼개져 버릴 것입니
    다. 인간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창자속이 비어있기  때문입니
    다. 만일 그 안을 가득 메워버리면 그 순간 사람은 돌처럼 뻣뻣해
    져서 죽어버릴 것입니다.
      "나는 이해한다" 하고 자만에 차서 매사를  일정한 틀 속에 비
    추어 바라보며 고정화되어 있는 머리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만
    한 사고(思考)의 공간이 없으므로 자연의 법칙을 알 수 없습니다.
    '도(道)'는 머리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머리에 비어있
    는 공간이 있어야만 비로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음
    을 비워야만, 겸손을  얻어야만, 자연의 기운이  흘러가는 세계를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람의 도리는 교만한 것을  미워하고 겸손한 것을  좋아한다.
    겸손하면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빛이나고,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남이 업신여기지 못한다." 가진 것이 없어도, 남이 나를 갖
    지 못했다고 흉을 보더라도 그저 빙긋이  미소를 띄우고 있는 사
    람은 안이 그윽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언젠가 상대편을 넘어설
    수 있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비웃음을 당했다고 분해할 필요가 전
    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주인은 바로  하느님이기 때문입니
    다.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것을  주었기 때문에, 누구나 평
    등하게 존재할 수 있는 자연의 힘이 주어져 있습니다.
      겸손은 그저 남의 앞에 가서 네, 네 하면서  겸손하다고 생각하
    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겸손하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오만한 것
    도 없습니다. 진정한 겸손이 없으면 우리가 가진 것은 이제 곧 버
    려질 뿐입니다. 그러므로 겸손하면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빛이
    나고,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남이 업신여기지 못하는  것입니
    다.
      "시종일관 겸손의 도를 지키는 군자는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
    다." 유종의 미는 영원히 망하지 않는다라는 뜻입니다. 영원히 망
    하지 않는다라는 뜻은 영원히 자신이 가진  것을 꽉 쥐고 있다는
    것과는 전혀 별개입니다. 오히려 자신이 가진 것을 비우고 블랙홀
    과 같은 상태가 되면 존재하고 있는  그 자체를 영원히 유지시켜
    나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우주의 커다란 비밀입니다.
      
        대상. 높은 산이 낮은 땅 아래 있다.  이것이 [겸]의
        괘상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많은  것을 덜어서
        적은 것에 보탬으로써  사물의 균형을 살피고,  모든
        시책을 공평하게 한다. 그리함으로써  뺏어가지 아니
        하고 있는 것에 도리어 보태지는 현상을 일으킨다.
     
            象曰, 地中有山謙. 君子以□多益寡, 稱物
            平施.
     
      "많은 것을 덜어서 적은 것에  보탬으로써 사물의 균형을 살피
    고, 모든 시책을 공평하게 한다. 그리함으로써 뺏어가지 아니하고
    있는 것에 도리어 보태지는 현상을 일으킨다."  이 괘상을 유심히 
    보면 위로는 전부 음효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때문에 하늘이 가지
    고 있는 모든 것을 그대로 다 받아들여 아래로 내리 쏟고 있습니
    다. 동시에 하괘는 산으로서 아래로 땅에 있는 모든  것을 받아들
    이면서 세번째 양효가 이를 내어 써서  위로 작용을 하고 있습니
    다. 그러므로 땅의 기운도 위로  스며들어 갑니다. 양성인 내괘와
    음성인 외괘는 서로 자리가 바뀌어 있기  때문에 모든 작용은 반
    대적으로 되감아 들어오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지산겸은
    유지(維持)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번째 음효. 스스로 부족함을 생각하고 공경하는 마
        음으로 자신의 수양을 쌓으니 군자로구나. 대하를 건
        너는 것같은 위험하고 어려운 일을  수행하면서도 길
        하리라.
     
            初六, 謙謙, 君子. 用涉大川. 吉. 象曰, 謙
            謙, 君子, 卑以自牧也.
           
      "스스로 부족함을 생각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수양을
    쌓으니 군자로구나." 원래는 [양]의 자리인데 [음]이 있습니다. 때
    문에 잘난척 하지 아니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수양을 쌓
    으니 군자입니다. 집을 몇 채씩 가지고 있다고 뽐내는  사람은 집
    이 자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집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닙니다. 때문에 내가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내가 저 사
    람을 알고 있다와 같은 그림자적인 만족에 치우칠 필요가 없습니
    다.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계속 누릴 수 있는 힘을 잃지 않
    습니다.
      "대하를 건너는 것같은 위험하고 어려운 일을 수행하면서도 길
    하리라." 그렇게 겸허가 이루어지면  앞에 적이 없습니다. 겸허를
    얻게 되면 대하를 건너는 것같은 일을 수행하여도 땅으로부터 기
    운이 들어오고 뜻을 펼 수가 있기 때문에 해낼 수 있습니다. 아무
    리 위험하고 어려운 일을 수행하여도 형통하게 됩니다.
      
        두번째 음효. 명성이 이미 세상에 울리고  있건만 스
        스로 몸을 낮추어 겸손하다. 이러한 태도를 한결같이
        가지면 길하리라.
     
            六二, 鳴謙, 貞吉. 象曰, 鳴謙, 貞吉, 中心
            得也.
         
      "명성이 이미 세상에 울리고 있건만  스스로 몸을 낮추어 겸손
    하다." 원래 [음]의 자리에 [음]이 있습니다. 때문에 명성이 이미
    세상에 울리고 있지만 스스로  몸을 낮추어 겸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꾸 남들하고 비교를  합니다. 인간이 태어날 때  가지고
    나온 형태는 자연의 법칙상 필요하기 때문에 그렇게 만들어진 것
    입니다. 자기 균형상  그와같은 모습이 필요한  것입니다. 자연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습니다. 마치 실수같이 보이는  잡음들도 완전
    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파괴들입니다. 만일 자기 얼굴이 마음에 안
    든다고 성형수술을 하면 갑자기 위장이 망가질지도  모릅니다. 모
    든 것이 다 내몸에 필요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긴 것입니다.
     
        세번째 양효. 천하를  위하여 헌신한 공로가  있건만
        자랑하지 않고 겸손하다.  진정 군자로구나.  만민이
        심복한다. 유종의 미를 이루어 길하리라.
     
            九三, 勞謙, 君子. 有終吉. 象曰, 勞謙, 君
            子, 萬民服也.
           
      "천하를 위하여 헌신한  공로가 있건만 자랑하지  않고 겸손하
    다." 이 곳의 양성기운은 드디어 안으로 내포하고 있는 모든 음이
    나오는 것입니다. 잘난척하는 자기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겸손이
    바깥으로 나온다는 뜻입니다. "만민이  심복한다. 유종의 미를 이
    루어 길하리라." 그래서 자연의 법칙에 따라 필요한 곳에 힘을 쓰
    기 때문에 만민이 따르고, '유종의 미', 즉 영원히 망가지지 않습니
    다. 굳이 남한테 자기를 인식시키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
    하면 사람들이 전부다 바보가 아닌 이상 당장은 시기하기 때문에
    안알아주지만 언젠가는 알아줍니다.
      씨앗에게 소망이 있다면 하루 빨리 좋은 행복된 곳을 찾아가서
    그 행복한 곳에서 만발하게 꽃을 피우는 것입니다. 그러던 씨앗이
    어느날 갑자기 가장 행복되다고 생각되는 흙을 만나면 굉장한 반
    가움과 행복감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씨앗이  땅속에 자리잡게
    되면 땅은 씨앗에게 행복을 안겨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씨앗을
    목졸라 죽이는 그런 험악한 곳으로 변해버리게 됩니다. 땅을 만나
    기 위해서 날라온 씨앗에게 땅은 상당한  희망과 행복을 그 순간
    느끼게 하지만, 그 땅속에서 그 땅을 파헤치고  나와야 된다는 사
    실을 알면 흙은 행복이 아니고 불행이라고 느끼게 됩니다.
      씨앗이 흙을 만나는 것은 물론 행복입니다. 왜냐하면 싹을 틔우
    려면, 꽃을 피우려면, 흙이 없이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살
    아가는데 있어서 돈도 하나의 행복입니다. 돈없이  살려면 엄청나
    게 불편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돈이 반드시 행복은 아닙
    니다. 흙이 반드시 행복이  아닙니다. 씨앗에게 흙이고,  사람에게
    돈이지 염소에게는 아무리 비싼 수표라도  소용이 없는 물건입니
    다.
      나의 행복은 안에 있는데, 이것이 밖으로 나와서 나의  것이 되
    려면 겸손의 도를 얻지 않으면 안됩니다. 씨앗이 흙과 만나서, 씨
    앗 그 자체가 흙을 뚫고 나온다고  생각하면 엄청난 고통일 뿐만
    아니라, 전혀 불가능한 일입니다. 씨앗이  싹이 되서 땅위로 솟은
    것은 기적입니다. 인간의 상식으로 보면 기적입니다. 그러나 우주
    자체는 항상 기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왜 기적인가 하면 지극히
    어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알고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라면 기적이라고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기적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단지 인간이 "기적은 보통이하"라는  사실을 모르
    기 때문에 기적이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싹이 솟아나려면 흙을 거부해서는 안됩니다. 흙을 향해서  가슴
    을 열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려움에 봉착할수록 가슴을 열고 받아
    들여야 합니다. 씨앗은 흙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흙과 동화되어야
    지만, 흙안에 들어 있는 영양분을 통해 자랄 수 있습니다.
      일을 하다보면 매사에 반드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어 있습니
    다. 공부하는 학생이나, 사업하는 사람이나,  회사원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그러나 그 어려움을 걷어차  버리고, 씨앗이 흙이 어려워
    흙 바깥으로 나오면, 그 씨앗은 죽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나 어려움은 존재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어디를  갈때
    는 자기 마음이 좋아서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행복을  찾아서 가
    면 그 행복은 곧 불행이 되어서 나타납니다. 그 불행과 동화를 하
    고, 가슴을 열고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고, 혹은 가려가면서 때에
    따라서는 피해갈 수 있는, 그와같이  밑으로부터 스며드는 힘, 바
    로 그 힘이 없으면 형통할 수 없습니다.
      [지산겸]은 형통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려움이 있지
    만 하늘로부터 우리에게 형통할 수 있는  덕을 베풀어 준다는 것
    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위에 있는 괘는 땅을 뜻합니다. 밑의 괘는
    산입니다. 산은 위로 불쑥 오르는 것입니다. 산이 위로 불쑥 올라
    온다라는 것은, 산이 땅으로부터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땅이 위로
    밀려 올라오듯이 이렇게 올라오는 것입니다. 밑의  힘이다라는 뜻
    입니다.
      "위는 열어놓고 밑의 힘을 통해서 올라가면 위로부터 받아들여
    진다." 이것이 '겸'입니다. 그것이 곧 형통입니다.  모든 것을 수용
    할 수 있게끔 가슴을 열고, 뭐가 들어올 것인가를 바라지 말고 들
    어올 수 있는 것은 다 들어오고, 다시 가슴을 통해서 나아갔을 때
    는 상상하지 못했던, 마치 씨앗이 동그란  모양이었는데 동그랗게
    나오는 것이 아니고 생전 보도 듣도 못한 두 잎짜리 새싹이 나온
    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씨앗은 꽃을 피우려고  나왔지 싹이 되려고  나온 것은
    아닙니다. 싹이 나오면 그 싹에서 줄기, 이파리 이런 것들이 생기
    고 한참 뒤에 가서 꽃이 피는 법입니다. 또 꽃다음에 비로서 열매
    라는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땅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하늘 위
    에서 맺어질 수 있는 열매가 맺힌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가슴을 열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겸손을 지녀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만 바로 안에서 찾고 있는 행복이라는 것이 나의 세계로 변할 수
    있습니다.
      어려움들이 다 지나간 뒤에야 열매가 맺히는 법입니다.  바람이
    나 비, 이러한 모든 작용들은 나를 괴롭히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
    니라, 그 안에 바로  애절한 자연으로부터의 사랑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범부(凡夫)는 사랑을 사랑으로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통이 곧 사랑인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네번째 음효. 남을  높이고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니
        모든 일이 도리에 어긋남이 없다. 만사  순조롭지 않
        은 것이 있을 수가 없다.
     
            六四, 无不利□謙, 象曰, 无不利□謙,  不
            違則也.
         
      남을 높이고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니 모든 일이 도리에 어긋남
    이 없습니다. "그 다음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하고 묻는다면,
    그것은 저절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라디오를 보면 스테레오와 모노  두가지로 들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음의 분별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모노나 스테레오나
    그 소리가 그 소리 같습니다. 그러나 스테레오를 들어봐서  그 맛
    을 알면 모노가 왜 수준이 떨어지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 다음
    부터는 무엇을 듣든지 자유입니다. 다만 어떤 것을 듣든지 풍기는
    맛을 알고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사람은 평등합니다. 그러나 다 똑같지는 않습니다. 씨앗도 피지
    않을 씨앗은 소용이 없습니다. 잘 피는 씨앗과 못 피는 씨앗의 정
    도차가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다 정도차가 있습니다. 정도가 낮을
    수록 열매는 맺혀지지 않습니다.
      서울을 가지 않으면서 지도만 보고 앉아  있는 사람은 그 지도
    가 소용이 없습니다. 이 지도가 맞는지, 저 지도가 맞는지 모르지
    만 물어 물어서라도 서울로 가는 사람은  지도 없이도 찾아갈 수
    있습니다. 방향만 가지고도 길을 저절로 열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길이 열려야지, 흐르지 않는 물한테 지도는 종이에 불과하지 길이
    아닙니다.
     
        다섯번째 음효. 부귀한 신분이면서도  교만하지 않고
        유화한 태도로 남에게 겸손하니 많은  사람들이 심복
        하여 주변에 모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복하는 사
        람이 있으면 가차없이 정벌해라. 순조롭지 않은 것이
        없으리라.
     
            六五, 不當以其隣. 利用侵伐. 无不利.  象
            曰, 利用侵伐, 征不服也.
           
      "부귀한 신분이면서도 교만하지 않고 유화한 태도로 남에게 겸
    손하니 많은 사람들이 심복하여  주변에 모인다." 자신이  높다면
    그것은 자연의 힘에 의해서 높아진  것이기 때문에 "모든 영광은
    하늘로" 돌려야 옳습니다. 자기가 그 위에 서있으려  해서는 안됩
    니다. 그래서 부귀한 신분이면서도 높은 지위에 오를수록 진짜 높
    은 사람은 낮은 일과 같이 있는 사람입니다. 사장이라고 전기줄이
    끊어져도 어떻게 해보려고 하지 않고 남에게만 시키려 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그 사장 자리를 지탱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연은
    그런 사람을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반드시 끌어내립니다.
      따라서 덕을 베풀어야 됩니다. 내가 배고픔을 느끼면 남의 배고
    픔을 알고, 내 애처로움이  있으면 남의 애처로움도 느껴야  합니
    다. 남의 애처로움을 모르는 사람은 자기 애처로움을 모르는 사람
    입니다. 때문에 자기 애처로움을 해결하지 못합니다. 그것만큼 세
    상에 답답한 병은 사실 없습니다.
     
        여섯번째 음효. 이미 부귀한 지위를 물려주고  난 위
        치에 있으나 아직 그렇게  넓게 펼친 명성은  세상에
        울리고 있다. 그러나 본인 자신은  겸손하다. 군사를
        동원하면 작은 읍, 국 정도는 정복할 수 있다.
     
            上六, 鳴謙. 利用行師征邑國. 象曰, 鳴謙,
            志未得也. 可用師征邑國也.
           
      "이미 부귀한 지위를 물려주고 난  위치에 있으나 아직 그렇게
    넓게 펼친 명성은 세상에 울리고 있다." 이제 점점 늙어지면 기력
    이 떨어져서 다섯번째와 같은 지위를  유지할만한 힘은 약해지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지금 내가  기력이 딸리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백여명 정도는 능히 다스릴 수 있는 힘을 발휘할 수 있
    습니다. 옛날에 수 많은 선사들이 나이 90이 넘도록  위트를 벌일
    수 있었던 그 자랑스러운 덕의 힘은 남는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배가 있다 하더라도 물과 함께 있어야  배지, 물
    을 떠나버리면 배는 기능을 발휘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을 개방하여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그리하여 나와 자연이 하
    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크게 가진 것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게 하는 위대한 겸손입니다. 이 [겸]이  [대유] 전에 나오지
    않고, 뒤에 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의깊게 주목해야 합니다.
      겸손이 없이도 가질 수는 있습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
    이 어느날 때를 잘 만나서 자기  노력하고 아무 상관없이 벼락부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교만하기  일쑤입니
    다. 그런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겸손입니다. 그래서 [겸]은
    [대유]앞에 있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 뒤에  있슴으로서 [대유]를
    보존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주는 결코 매정하지 않아서 어느날  갑자기 천지개벽을 해서
    있는 것을 한꺼번에 뒤엎어 버리는 짓을 하지 않습니다.  아주 서
    서히 필요한 쪽으로 옮기는 작업을 할 망정 어느 가진 자를 갑자
    기 망하게 하지는 않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지금 현재  가지고 있
    는 위대한 생명력을 스스로 망하지 않도록  하는 그 위대한 가르
    침에서, 스스로가 깊이 자숙하여 겸손을 통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보물을 먼저 세상에 드러내고,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풍요를 충
    분히 누릴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유성..…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4507
  • 14. 화천대유(火天大有)
    『 커다란 풍요 』
     
     ○     일을 할 때 자기가 하는 것과 자기를 희생해서 하는
     ●     것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지금 하기 싫은데 내일
     ○     아침까지 꼭 해야할 일이 있다면 오늘밤을 새워서라
            도 해내는 것이 희생입니다. 내일을 알고 있기 때문
     ○     에, 내일에 맞추기 위해서 오늘을 새우는 것입니다.
     ○     내일까지 한 개만 잘  만들면 되는데, 엉성하게 열
     ○     개를 만들었다면 이것은 자기가 한 것이며,  소용없
            는 일입니다. 열 개씩이나 만들었으니까 나는  너보
            다 많이 만들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재료
            를 없애고 시간만 낭비한 것에 불과 합니다. 자기가
            열심히 하는 것은 모아낼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화천대유(火天大有)
     
        대유는 유화한 인격체가 군왕의 지위에 있어서 위대한
        지도력이 중용을 지키니 상하의 모든 현능한 인사들이
        흠모하여 호응하므로 성운을 보존해 가진다는 것을 상
        징하는 괘다. 그 정치의 교화는 건전하고도 지성에 차
        서 천명에 순종하고 어떤 시대라도 적응한다.  그러므
        로 크게 발전하고 번영한다.
      
            大有, 元亨. 象曰, 大有柔得尊位,  大中而
            上下應之, 曰大有. 其德剛健而文明, 應乎
            天而時行. 是以元亨.
         
      많은 사람들이 각자 나름대로 잘되기 위해서 모두들 열심히 살
    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잘되는 것은  아니고, 성공하는
    사람들은 대개 소수입니다. 자기 자신이 잘되기 위해서 많은 노력
    을 했는데, 잘되어지지 않는 결과가 나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 선택권은 자신이 갖고 있습니다.  지금
    연필을 깎고 있다가 갑자기 연필깎던 일을 그만두고 볼펜을 뜯어
    고치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연필을  깎든지 볼펜
    을 뜯어 고치든지 그 힘은 한가지라는 것입니다. 그  힘은 마음에
    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힘은 항상 존재하고 있습니다. 단지 나
    의 마음에 의해서 연필을 깎을 것이냐, 아니면  볼펜을 깎을 것이
    냐로 바뀔 뿐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연필을 깎다말고 볼펜을  고쳤다라는 세계는 자
    기 스스로가 납득을 하지만, 연필을 깎아낼 수도  있고 볼펜을 고
    쳐낼 수도 있는 그 힘을 자각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중요한 사실
    은 자기의 생명력이 어디로든지  끊임없이 흐를 수  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흐름을 멈추어 편안해지려고  하면 결국 생명력은  "쉰
    다"라는 일을 하게 되어 생명력의 낭비를 초래한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종종 넌센스를 일으킵니다. 정지해 있
    는 열차나 버스에서는 좌석에  앉아서 쉬려는 사람은  거의 없이
    모두가 밖에 나가 돌아다니거나, 서서 서성거리면서  휴식을 취하
    지만, 일단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모두가 자리에 앉아서 휴식을
    취합니다. 달리는 차에서는 앉아있는게  휴식이고, 휴식되어진 상
    태에서는 일어서서 돌아다니는게 휴식입니다.
      일의 완성을 위해 자신의 생명력을  끊임없이 사용하는 사람은
    달리는 기차와 같이 그 마음이 안에서 편히 쉴 수 있지만, 자신의
    편안함을 추구하며 움직이지 않고 한군데  머물려는 사람은 정지
    되어 있는 기차처럼 마음은 휴식을 위해 자꾸 밖으로 돌아다니게
    됩니다. 일을 하지 않고 빈둥거리며 노는 사람들은 평상시가 열심
    히 일하는 사람들의 휴식의  상태이기 때문에 마음은  자꾸 뭔가
    바쁘게 돌아다니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리 좋은 곳을 여
    행하더라도 진정한 휴식에서 오는 안식의 보금자리는 없습니다.
      본래 생명력은 끊임없이 작용하는 것으로서 한 시도 쉬는 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흐르려 하지 않는 자는 생명에너지를 '쉰다'라는
    작용에 일부러 소모하기 때문에 결국은  생명력을 낭비하는 결과
    가 됩니다. 일의 완성을 위해 하기 싫은 자신을  극복하고 끊임없
    이 움직이는 사람만이 실제로  편한한 휴식을 취할 수  있습니다.
    이때의 휴식은 단순히 쉬는 것이 아니라, 일의 연장입니다. 즉 일
    의 완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휴식"이라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
    니다.
      이것은 비단 인간뿐만 아니라 만물이 마찬가지 입니다.  지구가
    이렇게 평화로울 수 있는 것은 태양 주변을 열심히 돌고 있기 때
    문입니다. 만약에 지구가 태양 주변을 돌지 않는다면 지구는 부패
    되고 산산히 깨어져서 조각처럼 흩어지게 될 것입니다.
      [화천대유]는 상괘가 불을 뜻하고 하괘는  하늘을 뜻하여 태양
    이 하늘에 높이 떠서 빛나고 있는 형상입니다. 여기서  하괘는 모
    두 양효로 이루어져 어느 한군데 머무름이 없이 끊임없이 작용하
    는 강한 생명력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생명력은 단순히
    자기 이기심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넘어서서 전체의
    식으로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뻗어나오는 하늘의 에너지입니다.
      "대유는 유화한 인격체가 군왕의 지위에 있어서 위대한 지도력
    이 중용을 지키니 상하의 모든 현능한 인사들이 흠모하여 호응하
    므로 성운을 보존해 가진다는  것을 상징하는 괘다."  다섯번째는
    원래 양효의 자리입니다. 그런데 여기  음효가 있습니다. 이는 얼
    핏보면 나쁜 것같지만 하괘가 전부다 양효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
    에 다섯번째 음효는 양효를 전부다 받아들인 음효이므로 결국 하
    나고 뭉친다는 좋은 뜻입니다. 또 밑에 있는 양효들은  단순한 양
    효가 아니고 자신을 넘어선 양효입니다. 왜냐하면 하늘은 본래 위
    로 솟으려고 하기 때문에 밑에 머무르려고  하는 자신을 능히 뛰
    어 넘어왔다는 뜻입니다.
      상괘는 양효가 둘, 음효가  하나인 음괘로서 자신을 뛰어  넘어
    강하게 품어나오는 하괘의 에너지를 모두 수용하고  있습니다. 이
    는 마치 하늘에 높이 떠서 빛나는  태양을 만물이 흠모하여 따르
    는 형상입니다. 따라서 [화천대유]는 강한 생명력을  가진 군자가
    세상을 위해 크게 그  힘을 사용하니 세상이  모두 호응하여 [대
    유], 즉 큰 풍요를 가지게 된다는 괘입니다. 눈이 서로 뭉쳐 어느
    정도 크기의 단단한 눈송이가 되었을 때, 구르는데로 주변의 눈이
    달라붙어 금새 커다란 눈덩이가  되는 것처럼, 자기 본위로  살지
    않고 가정, 직장, 사회, 국가, 인류 등 전체를 포용하고 자신을 희
    생하여 사는 사람은 그  크기만큼 주변이 호응하여  결국 엄청난
    힘을 갖게 된다는 뜻입니다.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이 직장의 번영을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직장에서 돈을 더  받아내어 나의 편안함을  유지하는데 쓸
    것인가를 생각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인색한 사람입니다.  그 사
    람은 남에게 베풀수가 없습니다. 또 그런 사람이 항상  전체에 대
    한 불만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반경이 그  범주를 넘어
    설 수 없는 사람이므로 결국 [대유]를 얻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또 자신이 그 정도는  아닐지라도 그런 사람과  함께 동조하여
    불평불만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안에서는  위대한 사랑
    이 나올 수 없습니다. 만일 내가 한 집단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
    서 그 집단을 망가뜨리려고  음모하고 있는 사람이 있고,  그것을
    내가 알고 있다면, 나는 어떻하든지 그 일을 막아야 합니다. 그렇
    지 않고 방관한 다음, 같이 가담하지 않았다고 해서 자기는 그 사
    람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결국은 [대유]를 얻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 집안을 자기 가슴으로  포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넘어 가정을 품고,  가정의 행복을 위해 희생하는  자는
    한 가정을 행복하게 할 만큼의 풍요를 얻을  것이며, 직장을 위해
    희생하는 자는 사회적인 성공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국가와 민족을 품고 자신을 바치는 자는 영웅이  될 것이고, 세계
    와 인류를 품은 자는 성인이 되어 모든 사람이 호응하고, 이 세상
    을 풍성하게 할 만큼의 풍요를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대상. 태양이 하늘 높이 솟아있다.  이것이 [대유]의
        괘상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선과  악을 밝혀서
        악을 누르고 선을 드러내어 하늘의 거룩한 명령에 순
        응한다.
      
            象曰, 火在天上大有. 君子以알惡揚善, 順
            天休命.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선과 악을 밝혀서  악을 누르고 선을
    드러내어 하늘의 거룩한 명령에  순응한다." 무엇을 가지고  선과
    악을 구별하느냐? 자기를 넘어서서 하는 행위는 전부다 선입니다.
    넘어서지 못하고 자기 마음대로 갈려는 행위는  전부다 악입니다.
    자기를 지금까지 밥먹여 주었던 곳에 불을 지르는  사람, 그런 행
    위는 자기 개인적인 것이기때문에 악입니다. 설사 불을 질러서 오
    히려 그 집이 잘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악입니다. 무엇이 선이
    고 무엇이 악인지는 능히 자기 자신을  넘어서지 않은 사람은 분
    별을 해낼 수 없습니다.
      
        첫번째 양효. 자신의 바른 마음을 해칠  우려가 있는
        자와 사귀지 아니하니 허물이 없다. 노고를 참으면서
        노력하면 허물이 없으리라.
     
            初九, 无交害. 匪咎.  艱則无咎. 象曰, 大
            有初九, 无交害也.
           
      "자신의 바른 마음을 해칠 우려가  있는 자와 사귀지 아니하니
    허물이 없다." 이 효는 씩씩한 양에너지이면서도  자신을 뛰어 넘
    어서 나오는 힘이기 때문에 전체를 음해(陰害)하려는 불평불만자
    들과는 가까이 하지 않는  효입니다. 오히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조직에 불만이 있는 사람과 맞장구를 치는 사람은 자
    신의 바른 마음을 스스로 해치고 있는 사람입니다.
      "노고를 참으면서 노력하면  허물이 없으리라." 그러나  아직은
    초양이기 때문에 그 힘은 미약하여 많은 노고가 따릅니다.  그 노
    고를 참으면서 계속 노력하면 결국은  허물이 없다는 이야기입니
    다. 그렇게 했을 때 실수는  실수가 아닙니다. 아직 미약하다고는
    하나 그것은 결코 실수가 아니라 장래가 보이기 시작한다는 뜻입
    니다.
     
        두번째 양효. 많은 짐을  실어도 견디어 낸다.  이제
        중견의 지위에 있고  실행력도 증가하였으니  대임을
        맡아 수행할 수  있다. 과감하게 전진하여도  허물이
        없으리라.
      
            九二, 大車以載. 有攸往无咎. 象曰,  大車
            以載, 積中不敗也.
           
      "많은 짐을 실어도 견디어  낸다." 어려움을 이미 하나  극복해
    넘어왔기 때문에 다른 힘든 일이 닥쳐도 능히 이를 견디어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뛰어넘기 전에는 조금만 어
    려움이 닥쳐도 그것이 머리속안의 고민으로 남는  법이지만, 이미
    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을 이긴자는 그 다음에 어떤 어려움이
    오더라도 충분히 이루어내는 법입니다.
      "이제 중견의 지위에 있고 실행력도 증가하였으니 대임을 맡아
    수행할 수 있다." 처음 아령을 할 때는  3파운드짜리가 어렵게 느
    껴지지만 3파운드가 아무렇지도 않은 정도로 훈련되면 5파운드는
    그리 어렵다고 느껴지지 않는 법입니다. 바로 그 힘을 냈을 때 큰
    허물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미 실행력이 한 번 증가 했기 때문에
    두번째 효는 능히 대임을 맡아서 수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번째 양효. 제후가 천자에게서 향연을  받는다. 소
        인은 이 영광스러운 예우에 교만한 마음이 생겨 도리
        어 유해하다
      
            九三, 公用亨于天子. 小人弗克. 象曰,  公
            用亨于天子, 小人害也.
           
      "제후가 천자에게서 향연을 받는다." 자신에게 닥친  고난을 모
    두 극복해 온 사람은 이 세상으로부터 칭송을 받게  됩니다. 그리
    고 어느 정도의 축복이 오게 됩니다. 이때 그 복을 겸허하게 받아
    들여야지 자신이 잘났다고 교만해져서는 안됩니다. 보통 사람들은
    일이 잘되어가면 그것이 자신이 뛰어나서  잘되는 것으로 생각합
    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사람이 똑똑해서  잘된 것이 아니라, 고난
    을 인내하며 극복했기 때문에 하늘이 도와주어 잘 된 것입니다.
      "소인은 이 영광스러운 예우에 교만한  마음이 생겨 도리어 유
    해하다." 어느 정도 잘되었을 때 그 영광은 모두 하늘로 올려야지
    자기 것으로 믿는 사람은 다음번에 모두 잃고 맙니다.  영광은 하
    늘로 돌리고 자신은 머무르지 말고 계속 가야합니다. 기차는 달리
    기 때문에 그 안에서 사람들이 앉아 쉬는 것입니다.  기차가 멈추
    면 사람들은 모두 기차밖으로 나올 것입니다.
     
        네번째 양효. 군주를 능가하는 권세를 가졌지만 강력
        히 자제한다. 이성과 판단력으로  겸허하게 행동하면
        허물은 없다.
     
            九四, 匪其彭. 无咎. 象曰, 匪其彭,  无咎,
            明辯晳也.
     
      "군주를 능가하는 권세를 가졌지만 강력히 자제한다."  이미 높
    은 지위와 강력한 권세를 가졌으나 어느 한계까지가 자기의 신분
    에 적당한 것이며, 또 어떻게 하는 것이 정도에 어긋나지 않는 것
    인가를 잘 분별하여, 지나치게 스스로 높이 생각하거나 권력을 남
    용하지 않으면 허물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 정도되면 대개 자만하
    기 쉽습니다.
      시골에서 살다가 서울에 올라와서 출세를 하기 위해 갖은 악전
    고투를 다 겪고, 남으로부터의 멸시를 모두 참아내면서 드디어 사
    장 정도되면 이제는 자아의식이 강해져서  "내가"하게 됩니다. 그
    래서 내가 30년동안 이 회사에서 일해왔기  때문에 누가 나를 멸
    시하겠는가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또 나 아니면 회사가 쓰러진다
    고 착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면서 회장에게  도전하면 나중
    에 가서는 회장과 사장 모두 망하게 됩니다. 회장을  쓰러뜨릴 수
    는 있어도 결코 그 사람이 회장이 될 수는 없습니다. 끝내 자신을
    버리지 못하고 고집하는 사람은 세상이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성과 판단력으로 겸허하게  행동하면 허물은 없다."  노자가
    말했듯이 겸허, 자기 없이 하는 것,  이런 사람이 되지 않으면 이
    제 대유의 문턱에서 대유를  얻을 수 없습니다. 인간은  평등합니
    다. 내 몸이 소중하듯이 남의 몸도 소중하다고 생각하고, 내가 급
    할 때는 남도 급하다고 생각하고, 항상 나와  남을 똑같이 생각하
    는 그런 연민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세상은 따르게 되어 있습
    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자기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은 바로 남이 나
    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기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데 남이 자기를 사랑할 리는 없습니다. 자기 사랑을
    위해서 남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 그런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틀림없습니다.
     
        다섯번째 음효. 신념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스런 마음
        과 겸허한 태도로 사람을 대하여 범할 수  없는 위엄
        을 가졌으나 자연스러울  뿐, 애써 조작하지  아니한
        다. 길하리라.
      
            六五, 厥孚交如. 威如.  吉. 象曰, 厥孚交
            如, 信以發志也. 威如之吉, 易而无備也.
           
      "신념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스런 마음과  겸허한 태도로 사람을
    대하여 범할 수 없는 위엄을 가졌으나 자연스러울  뿐, 애써 조작
    하지 아니한다." 지금 사회에는 '노조' 라는 것이 있어서 회사측과
    노조측이 누가 먼저 지치는가 팽팽히 경쟁하는 회사가 종종 있습
    니다. 누가 옳고 그른가를 따지기 전에 그러한 노사분규가 발생하
    지 않으려면 먼저 따뜻한 사랑이 있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와같은
    따뜻한 사랑이 있기 위해서는 바로 자기라는 것이 없어져 버려야
    됩니다. 자신이 없어진 그 위대한 힘, 확신에 찬 그 힘이 바로 진
    정한 신념입니다.
      신념이라는 것은 선택된 자기 마음에 의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즉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명에너지가 자기의 선택권에 의해서 이
    랬다 저랬다 하지 않고 직접 그 힘이 노골적으로 골몰할 수 있는
    집중력을 말합니다. 그렇게 신념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스런 마음과
    겸허한 태도는 매우 위대한 힘입니다. 그 힘 앞에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숙이고 경배하게 됩니다.
      다섯번째 음효는 양의 자리에  있으면서 에너지를 내어  쓸 수
    있는 힘은 갖추었으나 자기 자신을 숙이면서 모든 에너지를 한군
    데로 모으고 있습니다. 일을 할 때  자기가 하는 것과, 자기를 희
    생해서 하는 것과는 차이가  납니다. 자기를 희생해서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일을 할 때 '무엇을 위해서' 라는 것을 갖게 되면 희생
    이라는 것이 뒤따르게 됩니다.  지금 하기 싫은데 내일  아침까지
    어떻게 해서라도 이것을 완성하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하면 오늘
    밤을 새워서라도 하게 되는  것이 희생입니다. 내일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내일에 맞추기 위해  오늘을 새는 것입니다. 내일까지  한
    개만 잘 만들면 되는데 엉성하게 열  개를 만들었다면 본인은 열
    배나 더 했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그것은 재료  없애고 시간 낭비
    했다는 결과가 될 뿐입니다. 자기 열심이라는 것은 모아낼  수 있
    는 힘이 없습니다.
      닭이 알을 품는 것은 덮어놓고 품는 것이 아닙니다. 닭이  알을
    품을 때는 굉장한 정성을 쏟고 있습니다. 그 정성을  쏟기 위해서
    는 자기가 희생되어져야 합니다. 희생은 곧 정성입니다.
     
        여섯번째 양효. 하늘이 도우니 만사가 순조로와 길하
        지 아니한 것이 없다.
           
            上九, 自天祐之. 吉无不利. 象曰,  大有上
            吉. 自天祐也.
           
      생명에너지는 움직이면 모든 것을 끌어 올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성공은 그 힘을  내 의사에 의해서  썼느냐, 아니면 내
    의사에 맞춰서 사용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잘되려고
    하는 마음을 갖고 있으면 마음은 자꾸 선택을 합니다.  그러면 마
    음의 의사에 의해서 선택된 여기  저기에 생명에너지가 씌여지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몸은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몸과  마찬가지로
    마음도 몸이 없어지면 같이 사라집니다. 쓰고 쓰고 쓰면  닳아 없
    어지는 것이 몸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그 한계를 넘어올  수 있는
    생명에너지를 한계내에서 터득하느냐, 터득하지  못하느냐가 바로
    생명을 얻느냐 못 얻느냐의 문제이자 답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위대한 생명력은 한계 지워진 것이 없이 끊임없이 존재
    하는 것이며, 누구나  평등하게 똑같이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것이 아니고 자연의 것입니다. 이것에 의해서 인간도 존재
    하고 있는 것이며, 그 존재가 자신을 넘어서  흘러나올 때 자연으
    로부터 무수한 혜택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헤택을 받기 위해서 나는 이제부터 이렇게 해야 되겠다
    하고 먹는 마음은 또 하나의 선택이기  때문에 그로 인해 결국은
    또 에너지만 낭비하고 마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선택은 자기
    가 가지고 있는 시한부적 인생에 있어서 생명력을 낭비하고 있다
    는 사실을 빨리 자각해야 합니다. 행복을 찾아서 선택한다고 속고
    있겠지만, 결국은 행복을  얻지 못하고 갈등,  방황으로 헤메이는
    불상사만 날 것입니다.
      자기 행복을 찾아 선택하지 않고 사는  삶이란 곧 전체를 가슴
    에 품고 사는 것입니다. 내가 가정에 있든지 직장에 있든지, 어디
    에 있든지간에 그 세계를 품고 살아야 합니다. 집에 있을 때는 가
    정을 품어야 합니다. 그래야 지금 이 순간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는 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마하트마 간디의 무저항 에너지, 그것은 선택해서 하는 것이 아
    니라 자신을 뛰어 넘어 전체를 품고 행하는 위대한 희생정신이기
    때문에 당시 통신망도, 교통망도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은 넓은
    인도 땅덩어리에서 그렇게 많는 사람들이 동원될 수 있었습니다.
      가정, 직장, 사회, 국가, 인류 등 더  큰 전체를 품고 그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생명력을 가장 낭비없이 정성스럽
    게 쓰고 있는 사람이며, 힘이 힘을 부른다는  우주 자연의 법칙에
    의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변의 힘이 딸려오는 법입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주머니를 커다랗게 만든다고 부자가 되는 것
    은 아닙니다.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벌어서 은행에 예금한 다음 "내
    가 이 세상에서 제일 부자다." 하고 그냥 죽는다면 그 순간 그 돈
    은 자기 것이 아닙니다. 그 돈은 그냥 나 때문에  저 은행에 들어
    가 있다고 하는 슬픈 결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 되었
    을 뿐입니다.
     
     유성..…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4982
  • 13. 천화동인(天火同人)
    『 동지를 구한다 』
     
     ○     이 세상 모든 사업은 인간이 따르지 않는다면 할 수
     ○     가 없습니다. 돈이 엄청나게  많아서 성을 하나 사
     ○     고, 성 구석구석을 인테리어로 장식할 지라도, 자기
            혼자 성안에 살면 아무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처음
     ○     에는 "이것이 전부 내거다." 하면서 라스베가스처럼
     ●     휘황찬란하게 해놓고 하루, 이틀, 사흘은 만족해서
     ○     살지 몰라도, 한달 두달  지나가면 그걸 전부 자기
            혼자 닦아야 되고 나중에는 그 성의 종이  되어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천화동인(天火同人)
     
        공동의 광장에서 널리 동지를 천하에 구하니 크게 발
        전하리라. 유순하고 온화한 인격자가  중추적 위치에
        있어서 정당한 지위를 얻고 강한 힘을 가진  자와 호
        응하니 이것을 동지적 결합이라고 한다. 강대한 역량
        은 대하를 이루어 낸 것과 같은 큰  사업을 수행하여
        성취하리라. 문명함과  강건함이 중정하게  호응하니
        이것이 군자의 바른  모습이다. 오직 군자만이  천하
        사람들의 마음을 화통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同人于野. 亨. 利涉大川. 利君子貞. 象曰,
            同人柔得位, 得中, 而應乎乾, 曰同人,  同
            人于野, 亨, 利涉大川, 乾行也. 文明以健,
            中正而應, 君子正也. 唯君子爲能通天下之
            志.
     
      우리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
    니다. 한 집안이 잘 되기 위해서는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힘
    을 합해 움직여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말로 들을 때는 이
    해가 가지만, 막상 행하고자 할  때는 한 마음 한  뜻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대단히 어려운 문제에 부딛치게 됩니다.
      [한 마음]은 네 마음 내 마음이  하나로 합쳐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은 서로 하나로 합쳐질 수 없습니다. 보다 중
    요한 것은 [한 뜻]입니다. 뜻을 위해서 자기 마음을 양보하는 것,
    이것이 한 마음 입니다. 뜻이 없는 한 마음은 각자 다른 마음입니
    다.
      한 집안이 외식을 하러 갈 때도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모두
    각각 먹고 싶은 음식이 다를 수 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한식
    을 좋아하고, 자식들은 양식을 좋아합니다. 아버지는 여럿의 의견
    을 모두 고려하여 각자가 좋아하는 것을 모두 만족시켜주면 좋겠
    지만, 집안 사정이 그렇지 못하니까,  요번에는 한식을 먹고 다음
    에는 양식을 먹도록 하자  하고 모두를 이해시켜  외식을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아버지가 한식집을 가기로  방침을 정하면
    식구는 모두가 따라야 합니다.  자기 먹고 싶은 마음을  양보하고
    전체의 뜻에 따르는 것, 그것이 한 마음 한 뜻입니다.
      그러나 그 뜻은 정당해야 합니다. 만일 아버지가 모두를 생각하
    지 않고, 자기가 개고기를 좋아한다고 모두 보신탕 먹으러 가기로
    정하고, 반대하는 식구들을  억압으로 누르고 데려간다면  그것은
    독선입니다. 그러면 한 마음을 이루어 낼 수 없습니다. 뜻은 모두
    에게 이로움을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특히  리더는 이것을
    잘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멤버 모두의 기호를 다 충족시켜 줄
    수는 없더라도, 대부분이 인정하여 설사 자기 불만이 있더라도 그
    것을 버리고 쫓아 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리더의 가장 큰 할 일
    입니다.
      [동인]은 뜻을 같이하는  동지라는 뜻입니다. [천지부]와  같은
    어려운 상황이 지나가면 이제 따르는 자가  나타나고 그 뜻을 함
    께 이룰 자가 나타난다는  것이 [천화동인] 괘입니다. 마치  뜻을
    불같이 따르는 그와 같은  상태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천화동
    인]은 다섯개의 효가 전부 양효로  이루어져 있고 가운데 음효가
    하나 있습니다. 이 음효는 두번째에  중정의 위치를 지키고 있고,
    다섯번째 효와는 정응관계를 이루어 모든  어려움도 전부 수용하
    면서 뜻을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큰 일을 이루려면  모든 어려
    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물에 가면  빠져 죽을까봐 못가고, 산에
    가면 떨어져 죽을까봐 못가고, 넓은데 가면 길 잃어버릴까봐 못가
    는 사람은 아무 것도 못하는 사람입니다.
      주역 64괘가 모두 좋은 것들입니다. 그러나 각 괘마다 풀어나가
    려면 어려움 없는 괘가 없습니다. [천화동인]괘도  크게 발전하는
    괘이지만 효를 하나 하나 풀어보면 별로  좋다는 느낌이 들지 않
    습니다. 그것은 전부 다 어려움을 안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어렵고 애처롭고 허덕여서 앞이 안보이는 경
    우가 많습니다. 앞이 안보이는 이유는 일어나는 먼지에 자신이 빠
    져있기 때문입니다. 사막에  가면 모래바람이 불  때가 있습니다.
    사람이 그 모래바람 속에 들어가면 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 이렇
    듯 매사가 일을 하다 보면 그 안에 항상 먼지가 뒤섞여져서 일어
    나는 법입니다. 그럴 때는  오히려 일어나는 먼지바람은 내  몸이
    아니다 하고 가만히 내버려 두면 먼지는 저절로 가라앉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뛰어야 합니다. 먼지가 일어난다고 수심에 빠지면 사
    람이 수척해지고 근근히 살아가는 삶이 되고 맙니다.
      불이 훨훨 타는 것도 그냥 편하게 타는 것이 아닙니다. 불의 열
    량이 나가기 위해서는 물질과 산소가 치지직 거리면서 굉장히 바
    쁘게 작용하고 있어야 합니다. 불이 타는 그 안에도  그만한 어려
    움이 있는 것입니다. 비록 [천화동인]이 하늘을  향해서 솟구치려
    고 하는 불의 성질을 가지고 있어  뜻이 이루어진다고 할 지라도
    각 효마다는 자기 어려움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자기 어려움에
    빠져서 한 마음을 이루지 못하면 결국 크게 발전할 수 없는 것입
    니다.
      일을 잘하는 사람은 자기 걱정이 없습니다. 일을 모르는 사람이
    자기 걱정이 많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떨어지면 어쩌나 하
    는 걱정이 없습니다. 만일 개인적인 자기 문제에 자신이  자꾸 빠
    지는 사람이 있다면 일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틀림없습
    니다.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오면서 자기 고민만  하다보면 인생은 어
    디로 가는지 모르는 법입니다. 먼 미래를 향해서 오늘  뛰는 사람
    은 이 순간 움직이는 것외에 자기  걱정이라는게 있을 수 없습니
    다. 물론 세상 모든 움직이는 것들은 그 안에  고민거리와 걱정거
    리를 수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수반된 것들에 장애받지 않고
    나아가야지만 천화동인이 이루어지고 크게 발전할  수 있는 것입
    니다.
      바람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바람이 한 번 지나가면  흙
    먼지가 일어납니다. 흙먼지가  더럽다고 바람이 움직이지  않으면
    그 바람은 죽은 바람입니다. 바람은 흙먼지에 크게 관여하지 않습
    니다.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움직이는 동안은  내면에 흙먼지
    가 반드시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 흙먼지에 스스로  빠져 있
    게 되면 흙먼지가 가라앉는 것이 아니고, 흙속에 묻히게 됩니다.
      만약 내가 지금 가슴안에 번민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살아있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살아있다는 유일한  증거입니
    다. 시체는 상담실을  노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번민에
    빠져 들어갈 필요는 전혀없습니다. 자기 번민과 갈등에 자꾸 빠져
    들어가는 것은 생명력을 포기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아무리 [천화동인]이라도 하더라도 각각의 효가 자기 번민속에
    서 자기 나름대로 움직이면 함께 모여서 큰 힘을 이루어 낼 수가
    없습니다. 만약에 내가 리더가 된다면 리더가 가질 수  있는 고충
    이 바로 [천화동인] 내에 들어 있습니다. 이와같은 문제에 봉착했
    을 때 "어떻게 이겨나가야 하는가?"를 바로 이 괘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공동의 광장에서 널리 동지를 천하에 구하니 크게 발전하리라.
    유순하고 온화한 인격자가 중추적 위치에  있어서 정당한 지위를
    얻고 강한 힘을 가진  자와 호응하니 이것을  동지적 결합이라고
    한다." 사람세계에서는 사람이 따라야  합니다. 사람이 따르지 않
    는 위대함, 장엄함은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그래서 군자는 넓디
    넓은 세상에서 뜻을 따를 자, 동지를 널리 구하는 것입니다. 그리
    고 누구라도 다 동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넓은 포용력이 있습니
    다. 동지라고 해서 입맛에 맞는  동지는 없습니다. 세상에는 도둑
    놈도 많고, 강도도  많습니다. 그러나 군자는  도둑놈이라고 해서
    배격하지 않고, 일단은 모두  수용한 상태에서 뜻의 완성을  향해
    꾸준히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도둑놈은  스스로 떨어져
    나갈 뿐입니다.
      "강대한 역량은 대하를 이루어 낸 것과 같은 큰 사업을 수행하
    여 성취하리라." 산이면 산,  물이면 물, 다  받아들이면서 우리는
    건너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모든 것을 평등하고 위대하게 만들
    어 낼 수 있는 위대한 자연의 뜻입니다. 강대한 역량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그 받아들인  것에 아파하며 머무르지  않고, 그것을
    일구어 나갈 수 있는 힘, 자기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힘,
    극기할 수 있는 힘입니다.
      "문명함과 강건함이 중정하게 호응하니 이것이 군자의 바른 모
    습이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조화를  이루어내는 음성에너지의
    수용력을 갖춘 문명함, 자기 스스로에게 빠지지  않고 뛰쳐나가서
    움직일 수 있는 그 위대한 강건함, 그것이  진정으로 바르게 갖추
    어져 있기 때문에 서로 호응하니 군자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대상. 항상 높은 곳에  있는 하늘과 항상 높은  곳을
        지향하는 불이 서로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것
        이 [동인]의 괘상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족속
        을 유별하여 사물을 구별한다.
     
            象曰, 天與火同人, 君子以類族辨物.
           
      "항상 높은 곳에 있는  하늘과 항상 높은  곳을 지향하는 불이
    서로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동인]의 괘상이다." [천화
    동인]은 위에 하늘이 있고 밑에 불이 있습니다. 불은 활활 불붙어
    위로 올라가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천화동인]은
    위에 있는 하늘을 향하여 불붙어 올라가는 형상, 즉 같은 뜻을 따
    르는 동지가 많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동인]이라는 이
    름이 붙여졌습니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족속을 유별하여 사물을 구별한다." 인
    간은 뜻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세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뜻을
    통해서 우리는 자연과 만날 수 있고 자연의 힘을 구사할 수 있습
    니다. 자기 심정에 매여져 있으면 자연과 만날 수 없습니다. 심정
    은 자기 몸이면서 자기 것입니다. 그 안에 자꾸 빠져 들어갈 필요
    가 없습니다. 인생을  자기 심정에 묻어버리면  안됩니다. 우리의
    인생을 밝혀 줄 수 있는 위대한 힘은 우리의 뜻입니다. 뜻 이전에
    심정이 개입되면 자기 몸둘 바에 소속되어 버립니다. 그런 사람은
    멀리 갈 수가 없습니다.
      사업하는 사람들을 보면 흥할  자인지 망할 자인지  사람 쓰는
    것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확실한 뜻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찾아야 되는데,  뜻을 같이할 사
    람보다 친인척에 치우쳐서 인사(人事)를 하는  사람은 흥할 사람
    이 못됩니다. 친인척은 그 사람의 일을 같이 해주지 못합니다. 일
    은 뜻이 같은 자끼리 모여서 처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첫번째 양효. 문을 나서면서 동지를 구한다. 누가 탓
        할 것인가. 허물은 없다.
      
            初九, 同人于門.  无咎.  象曰, 出門同人,
            又誰咎也.
     
      이 세상 모든 사업은 인간이 따르지  않는다면 할 수가 없습니
    다. 돈이 엄청나게 많아서 성을 하나 사고, 성 구석구석을 인테리
    어로 장식할 지라도, 자기 혼자 성안에 살면 아무 쓸모가 없는 것
    입니다. 처음에는 "이것이 전부  내거다." 하면서 라스베가스처럼
    휘황찬란하게 해놓고 하루, 이틀,  사흘은 만족해서 살지  몰라도,
    한달 두달 지나가면 그걸 전부 자기  혼자 닦아야 되고 나중에는
    그 성의 종이 되어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두번째 음효. 자기의 종중에서 동지를 구하니 혈연에
        치우쳐 공정하지 못하다. 세론의 비난을 면치 못하리
        라
      
            六二, 同人于宗. 吝.  象曰, 同人于宗, 吝
            道地.
          
      "자기의 종중에서 동지를 구하니 혈연에 치우쳐 공정하지 못하
    다." 음효는 모든 것을 끌어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가까운 곳에
    너무 치우치지 말 것을  경고하는 것이 두번째 효입니다.  여자는
    자기 가까운 곳을 우선합니다. 먼데 있는 위대한 사람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큰 일을 하려면 뜻이 맞는 사람과 해야되는데  자기 친
    인척과 도모하면 안된다는 뜻입니다. "세론의 비난을 면치 못하리
    라." 그러므로 뜻으로 뭉쳐야 합니다. 뜻으로 화합해야 하고, 뜻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군자의 도리라는  사실을 천화동인을 통해
    서 깊이 알아야 합니다.
     
        세번째 양효. 자신의 역량이 부족하면서 자신보다 강
        력한 자를 공격하려는 야심을 품고 군사를 우거진 풀
        속에 복병시켜 놓고 높은  언덕에 올라 적정을  살핀
        다. 그러나 적의 세력이 강성하기에  3년이라는 세월
        이 지났건만 공격의 기회는 오지 않는다.  어찌 성취
        할 수 있으랴.
      
            九三, 伏戎于莽, 升其高陵. 三歲不興.  象
            曰, 伏戎于莽, 敵剛也. 三歲不興, 安行也.
           
      "자신의 역량이 부족하면서 자신보다  강력한 자를 공격하려는
    야심을 품고 군사를 우거진  풀속에 복병시켜 놓고  높은 언덕에
    올라 적정을 살핀다." 이 위로  양효가 많습니다. 이 양효를 모두
    제치고 나아가려 한다면 안된다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회사에
    다니다보면 자기 나름대로 실력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력
    이 좀 붙었다고, 불은 하늘을 따르고 뜻을  따라서 같이 나아가야
    하는데, 주위 동료들을 누르고 올라가면,  높아야 역시 사장 아래
    입니다. 즉 별볼일 없는 자리입니다. 자기 혼자 자기 방안에서 가
    장 잘하는 것, 그것은 아무 쓸모없는 실력입니다.
      만일 내가 회사에서 나 스스로의 힘으로 회사를 적자에서 흑자
    로 만들었다면, 나는 지금 회사를 나와도 내  사업을 하여 적자를
    흑자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회사
    에다 대고 내가 이만큼  도와줬는데 임금을 왜  안올려 주느냐며
    몇 푼 더 받아봐야 그 사람은 그  정도밖에는 살 수 없는 자입니
    다. 그런데 치우치지 말고  묵묵히 일하는 사람이 나중에  회사를
    떠날때 "그동안 신세 많이 졌습니다.  고맙습니다." 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며, 크게 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인간은 어느 조직에 속하든지  어려움이 있고, 또 그것을  겪는
    자신을 보고 고생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것은 고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곳은 자기의 역량을 개발해 낼  수 있는
    자기 그릇이요, 자기의 몸의 때를 벗겨내는 욕실입니다. 그안에서
    자기 때를 벗겨내고 자기  몸을 빛나게 함으로써  충분한 역량이
    갖추어지는 것이며, 그것이 최선 최대의 성공의 지름길입니다. 지
    금 내가 딛고 있는  세계에서 꽃을 피울 수  있는 사람이야 말로
    어디에 가든지 꽃밭을 일궈낼 수 있는 사람입니다.
      자기의 역량이 부족하면서 위에 있는  것들을 쳐없애고 이룰려
    고 하는 것, 잘난 놈이 없어진다고 못난 놈이 잘난  놈이 되는 것
    은 아닙니다. 못난 놈은 못난 놈대로 그대로 남을 뿐입니다. 이것
    이 자연의 메카니즘입니다. 따라서 위를 밀어 내려 하지  말고 같
    이 동승하라는 것, 잘난 사람 밑에 같이 있으면서 못난 자기를 스
    스로 정벌하고 잘난 사람사람으로부터 잘난  것을 배우면 자신도
    잘난 사람이 된다는 것, 이것이 세번째 효의 교훈입니다.
     
        네번째 양효. 성벽에까지  올라갔으나 잘 공격할  수
        없다. 승리할 가망은 없다. 아직 자기의 힘이 약하니
        당연한 결론이다. 괴로운 노릇이지만 어쩔 수 없다고
        반성하고 합리적인 생각으로 돌아오면 길하리라.
      
            九四, 乘其墉, 義弗克也. 其吉.  則困而反
            則也.
           
      네번째 효는 최고의 지위에 오른 자가  아니기 때문에 자기 마
    음대로 행동해서는 안됩니다. 회사에서도 최고의 결정권은 사장이
    가지고 있는데 상무나 전무가 자기 힘이 강하다고 회사를 팔아넘
    기는 따위의 결정을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네번째는 받
    쳐주는 힘이 있더라도 자기 식대로 독단적으로 하지 말라는 것입
    니다.
      "성벽에까지 올라갔으나 잘 공격할 수 없다. 승리할  가망은 없
    다. 아직 자기의 힘이 약하니 당연한 결론이다." 자기 생각에는 마
    치 성벽이라도 뚫을 것같은 힘이 있어서 앞으로 나아가지만 그러
    나 그것은 전체적인 힘이 못되기 때문에 결국은 되지 않는다라는
    뜻입니다. 개개인이 움직이려고 하는 힘은 아무리  강하더라도 약
    한 힘입니다. 동시에 지금 이 힘은 양효와 양효 사이에 서있는 양
    성기운입니다. 돌아올 것을 생각하지 않고 무턱대고  튀어 나갈려
    는 힘은 결국 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성은 깨뜨려 없앨 것이 아니고 함락을 시켜야 합니다. 원래  수
    영을 잘하는 사람은 물결을 타는 법입니다. 스키를 잘타는 사람은
    지형을 타는 법입니다. 지형을  타지 않고 무조건 힘껏  앞으로만
    내딛는 사람은 지형에 넘어져 버립니다. 물결을 타지 않고  물 자
    체에다가 충격으로 던진 사람이 수압에 부딛쳐 몸을 상하는 것처
    럼, 돌아올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나가는 힘은  그 힘이 아무리
    의기양양 해도 반드시 망한다는 것을 이 효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다섯번째 양효.  동지를 구한다. 그러나 방해하는 자
        가 많아서 처음은 고독에 울며 슬퍼한다.  그러나 뒤
        에는 웃는다. 바른 마음으로 하기  때문이다. 반항하
        는 자에게는 대병력을 동원하여 쳐서  승리하고 동지
        와 서로 만난다.
      
            九五, 同人,   先號□而後笑. 大師克相遇.
            象曰, 同人之仙, 以中直也. 大師相遇,  言
            相克也.
           
      "동지를 구한다." 다섯번째 양효는 중정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
    니다. 모든 효를 총 대표하여 이끌어 갈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
    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떠받쳐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하
    괘에 있는 모든 효가 자신을 받쳐줄 수 있는 사람들이나 그 중에
    서도 정응관계에 있는 두번째 음효만이  자기가 나아갈려는 뜻을
    충분히 이해하고 받들어 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즉  진정한 동지
    입니다.
      "방해하는 자가 많아서 처음은  고독에 울며 슬퍼한다.  그러나
    뒤에는 웃는다. 바른 마음으로 하기 때문이다." 두번째 음효는 주
    위에 양효로 둘러싸여져 있습니다. 즉 주위로부터 많은 유혹을 받
    고 있습니다. 회사라 하면 소수분파가  많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
    러나 다섯번째 효가 정당한 자리에서 정당하게 하고 있으므로 끝
    내가서는 두번째 효가 따라오게 되며, 소수분파는  사라지게 된다
    는 뜻입니다. 정당한 자리에서 정당하게 매사를  처리하면 아무리
    인위적으로 조직을 분열시키려 해도 결국은  모든 구성원이 지도
    자를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커다란 조직체안 객체들이 각각 움직
    인다 하더라도 지도자가 사심이 없이 뜻을 바르게 하고 정당하게
    이끌어 가면 결국 그 뜻의 정당함이  이끌게 되기 때문에 끝내는
    모든 객체들이 따라온다는 말입니다.
      
        여섯번째 양효. 동지를 먼 시골에서 구한다. 아직 뜻
        을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당한  일을
        위한 노력이니 후회하지 않는다.
      
            上九, 同人于郊.  无悔.  象曰, 同人于郊,
            志未得也.
           
      "동지를 먼 시골에서 구한다." 여섯번째 양효는  [음]의 자리에
    [양]이 있고, 대응관계의 효도 양효로서 서로  밀어내버리는 현상
    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오지 않을 음효를 바라고 있기  대문에 동
    지를 먼데서 구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정당한 일을 위한 노력이니 후회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섯번째 정도가 되면 이제 전체적으로 움직이는 경지에 있기 때
    문에 큰 허물은 없다고 했습니다. 한 집안에 장남이 집안을 잘 다
    스려 나아가고 있다면 이미 결정권을 상실하고  퇴역한 할아버지,
    할머니의 실수는 큰 허물이 되지 않는 법입니다. 전체가 움직이는
    데 있어서 어느 한 사람이 실수를  한다 하더라도 전체가 올바로
    나아가고 있다면 그 실수는 만회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움직여 나아가는 모든 힘은 그안에 반드시  난제(難題)라고 생
    각되는 것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난제가 있다고 해서 거기
    에 빠질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힘껏 몰고 나가면 됩니다. 오히려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움직이는 힘이 더 필요합니다. 일 못하
    는 사람은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앉아서
    고민이 많은 법이나, 일 잘하는 사람은  더 빨리, 더 정확하게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눈이 틔이는 법입니다. 자신이 아직  이러한 눈
    을 가지지 않았다면 일이 되어지는 흐름쪽으로 자신이 아직 움직
    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움직이는 길이 보이는 사람은 못 가진 것, 없는 것에 대한 걱정
    을 하지 않습니다. 나사가 빠졌을 때 드라이버가 없는 것이 큰 문
    제는 아닙니다. 드라이버가 없으면 칼로, 동전으로,  기타 그 대용
    물을 찾으면 할 수 있는 방도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할 줄 모르는 사람한테 일을  시키면 "드라이버가 없어서 못하겠
    다" "드라이버도 없는데 왜 이런걸 시켜?"하고 고민하고 앉아  있
    습니다.
      지금 당장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고민에 스스로  빠질 필요는
    없습니다. 드라이버가 좋을까,  뭐가 좋을까 하고  고민하는 것은
    괜찮지만, 자기 고민에 빠져 있는 고민은 인생 80년을 살아가면서
    제일 쓸데없는 짓입니다. 그것을 빨리 벗어나야 하늘의 기류에 같
    이 상승할 수 있습니다. 그랬을 때 비로서 하늘의 뜻과 함께 움직
    여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변에 나와 관계하는 모든 것들이 어떠한 문제를 일으
    키는지 유심히 관찰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집안에서건, 친구지간
    이건 사람 사는 세상은 서로 파가 갈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더 친
    한 사람이 있고, 보다 또 친한 사람이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키 큰 사람과 키 작은 사람이 같이 걸으면 서로가 불편한 법입
    니다. 이때 자기 마음대로라면  키 작은 사람은 "왜  이렇게 빨리
    가는거야?" 하고 키 큰 사람을 원망하고, 키  큰 사람은 "빨리 오
    지 않고 뭐해?"하면서 키 작은 사람을 힐책할  것이지만, 길을 가
    고 있는 전체적인 뜻을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은 먼저 자기 어려
    움도 희생하여 보행에 자신을 맞추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먼저 자신의 생명에너지가 움직이는  힘을 느껴야 합니
    다. 이 세상은 어려움도 많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일을 결코 어려
    운 일이라고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바르게 움직여 나갈려
    고 하는 힘만 갖추고 있으면, 그래서 자기  번민에 스스로 빠지지
    만 않는다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
    다. 우리는 그렇게 움직이며 사는 사람들을  보고 '칠전팔기(七顚
    八起)', '백전불굴'이라고 말합니다.
      뜻이 분명하게 서있으면 여건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또 상대
    방의 여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충분히 일하려고 하는  힘만
    가지고 있으면, 이제 일이  스며들어가야 할 장소를 발견하게  될
    것이고, 그때 우리는 아주 조그맣게 별 것도  아닌 것같은 행복이
    남이 볼 때는 매우 아름다와 보이는 행복이 될 것입니다.
     
     
    유성..…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5556
  • 12. 천지부(天地否)
    『 천지의 배반 』
     
    ○     [천지부]를 이겨 나갈 수  있는 힘, 그것은 지극한
    ○     사랑입니다. 자기가 옳다고 고집을 내세울 때는 [천
    ○     지부]의 현상이 일어나는 데, [천지부]는 결코 갈라
            서는 것이 아니고, 조화(調和)를 이루어낼 수 없는
    ●     자신의 문제만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     조화(調和)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조
    ●     화를 외면할 수는 있지만, 이 세상이 이미 조화이기
            때문에 결코 조화를 벗어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천지부(天地否)
     
        마주 의지하여 일어서는  사람 인(人)자의  형상처럼
        사람은 서로 도우며  사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부
        (否)는 이러한 인간의 본성이 거부된 상태다. 사람들
        사이가 마음이 통하지 않고 막혀버린 것이다. 그러므
        로 군자가 바른 도리를 지켜 한결같이 가려하나 방해
        되어 잘 되지 않는다. 양은 위로 올라가고 음은 아래
        로 내려온다. 천지는 화합하지 아니하여 만물은 생육
        되지 못한다. 인간도 상하의 마음이 화합되지 아니하
        여 국가는 멸망한다. 내괘가 음이고  외괘가 양이다.
        이것은 내심이 유약하면서도 외면은 강한  것처럼 꾸
        미는 것이다. 핵심에는 소인이 버티고 군자는 변두리
        로 밀려난다. 소인의 도가 횡행하고 군자의  도는 소
        멸한다.
              
            否之匪人. 不利君子貞.   大往小來. 象曰,
            否之匪人, 不利君子貞, 大往小來, 則是天
            地下交而萬物不通也. 上下不交, 而天下无
            邦也. 內陰而外陽, 內柔而外剛, 內小人而
            外君子, 小人道長, 君子道消也.
      "내괘가 음이고 외괘가 양이다. 이것은 내심이 유약하면서도 외
    면은 강한 것처럼 꾸미는 것이다." [천지부]는 [지천태]와는 반대
    로 외괘는 모두 양효로 이루어져 있고, 내괘는  모두 음효로 이루
    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내면은 유약한데 겉으로는 강한 것을 나타
    냅니다. 안으로는 강한 것이 있으면서 유한 것이 바깥으로 있어야
    지 바깥의 것을 끌어 당겨 오는 데, 안에서 자기  자신이 유한 상
    태로 스스로 움직이게 되면 도리어 겉으로 강해져서 밖으로 강한
    기운을 내보내게 되고, 저쪽도 역시 강한 에너지를 반발적으로 내
    보내서 서로가 밀어내는 형상을 일으키게 됩니다.
      안에 음에너지가 작용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 자신이 빠져 있
    는 상태와 같은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번민속에 빠져  있게 되면
    세상으로부터 유리되게 됩니다. '부(否)'는 헤어지다, 갈라지다, 섞
    일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즉, 하늘과 땅이  갈라져 있는 상태란
    뜻입니다.
      [지천태]에서는 세 개의 양효가  밑에 있었고 위에  음효가 세
    개 있어서 양효가 일을 벌려 놓으면은 그것을 음효가 거둬들였습
    니다. 그런데 이 괘는 지금 위로는 양효가 작용하고  있지만 밑으
    로 음효가 자릴 잡아,  그런 상태로 움직이면 융합되지  아니하여
    형통하지 못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 때문에 하는 걱정,  자신으로 인해서 벌어지는 고민,
    그런 따위가 전부다 [천지부] 입니다. 우리가 친구를 사귀면 처음
    에는 굉장히 친해지게  됩니다. 맨 처음에  친해질 수 있는  것은
    "나는 그와같은 사람이 좋다."라는 것을 안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겉으로 친화하는 현상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얼마 안있
    어 두 사람과의 관계가 [천지부]와 같은  상태가 되면 서로 멀어
    지게 됩니다.
      그런데 멀어진다는 것에 대해 자기가 자기 마음 속안에 빠져들
    게 되면 세상을 수용할 수가 없게 됩니다. 따라서  세상을 수용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의 사랑은 애정이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진정
    한 사랑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여자가  내 생일날
    도 기억해 주지 못한다고 "날 사랑하는게 아니야." 하고  자기 세
    계에 빠져버리면 그로 인해  그 사람은 [천지부]와  같은 상태가
    되어 상대방을 밀어내 버리는 현상을 일으키게 됩니다.
      사람은 이상한 동물이어서 살 수 없는 데를 억지로 올라가려고
    하다가 죽는 경우가 많습니다. 에베레스트 산. 그곳은 사람 살 곳
    이 아닌데도 이상하게 사람은 꼭 거기를 올라가려고 합니다. 물론
    인간이 어려운 점을 극복하고 해냈다라는  의미에서 세상은 칭송
    을 하는 것이지만, 에베레스트 산은 대들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면
    찾아오지 않습니다. 에베레스트 산에 찾아온 사람은 살기 좋아 간
    것이 아니고 대들려고 간 것입니다. 대들려고 갖다가 중간에 얼어
    죽거나, 눈에 파묻혀 죽거나 한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에베레스트가 아니고 그저  동네에 나지막히  있는 뒷동산에는
    많은 사람들이 올라갑니다.  갑돌이나 갑순이도 만날데가  없으면
    거기서 만나고, 아이들이 언덕에 가서 술래잡기도 하고, 제기차기
    도 하고, 축구도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언덕을 정복했다는 느낌
    을 전혀 갖지 않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사람이 언덕에 올랐더라도
    언덕이 좋아서 갔다는 사실을 모르고 갔다는 것입니다. 단지 언덕
    이 좋다라는 걸 느끼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진짜 높은 경지에 있는 사람은, 진짜 이 세상을 두루 살
    펴서 완전히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은, 언덕도 아닌 맨땅과 같은 사
    람들입니다. 그 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놀고  있습니다. 그것이
    가장 높은 경지입니다. 남을  수용한다는 것은 안에 강한  기운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스스로 약하기때문에 자꾸  남과 타협하
    려고 하고, 남과 거래를 하려고 합니다. 진정으로 자기 자신이 강
    한 기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남과 타협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
    사람이 남과 절충하는 것은 타협한다고  말하지 않고 수용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아니꼬운 것도 다 받아들입니다. 받아들여
    서 좋게 화합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천지부]의 상태가 되어  일이 막히고 주변과
    격리되어 잘 풀리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럴수록 수용
    하는 자세로 꾸준히 해야할  일을 해나가면 제  3의 힘에 의하여
    형통하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우주는 항상 경쾌하게
    돌아가서 막힌 상태로 오래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주 의지하여 일어서는 사람 인(人)자의 형상처럼 사람은 서
    로 도우며 사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부(否)는  이러한 인간의 본
    성이 거부된 상태다." 사람 인(人)자는 두  사람이 마주 의지하며
    일어서는 것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즉 사람은 서로 도우며  사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 사람을 인간(人間)이라고
    하는 이유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 의지하여 화합하는 가운데에 우
    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천지부]는 이러한 인간의  본성이 거부된 상태입니다.  서로가
    마음이 통하지 않고 막혀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군자가 바른 도
    리로 지켜 나가려 하나 방해되어 잘 되지 않고  있습니다. 내심으
    로는 유약하면서 외면은 강한 것처럼 꾸미는 것으로, 핵심에는 소
    인이 버티고 군자는 변두리로 밀려난 상태입니다.
      왜 인간의 본성이 깨뜨려 지는가? 그것은 자기 자신의 옳은 것
    만을 고집하여 남을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세상에는 옳다고
    인정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로 옳은 것인지
    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처음에 미니스커트를 입은  젊은 여인들
    이 나타났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퇴폐라고 우려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미니스커트가 상식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부부는 죽을  때까지 헤어지지 않고  살아야 하는
    것을 철칙으로 생각하고 있으나, 실제로 주위에는  이혼하는 부부
    가 상당히 많습니다. 그리고 헤어진 부부들은 각자가 헤어지지 않
    으면 안되는 타당한 이유들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것이
    옳으냐, 그르냐가 아니고, "이것이 옳다"라고 스스로 규정짖고, 그
    규정을 통해서 세상을 조명해 보려는 마음이 잘못된 것이라는 사
    실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믿음에 스스로가 구속되어서 겉으로만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
    고 그렇게 겉으로 강해진 것은 세상과 유리되어  지며, 결국 세상
    이 그것을 멸망시켜 버리고 맙니다.
      "양은 위로 올라가고 음은  아래로 내려온다. 천지는  화합하지
    아니하여 만물은 생육되지 못한다. 인간도 상하의  마음이 화합되
    지 아니하여 국가는 멸망한다."  [천지부]는 하늘이 하늘에 있고,
    땅이 땅에 있으므로 우리가 생각하기에 바른 것인데, 그러나 이것
    을 옳다고 고집해 버리면  결국 세상은 화합하지  않고 분리되어
    버린다는 뜻입니다. 즉 하늘이 위에 있고 땅이 밑에  있으니까 맞
    는 얘기다 하고 주장하면 세상으로부터 거부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세상이 어떻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그 강한 것은  안으로 약한
    기운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눈에 힘을 주고 어금니를 물고 있는  사람은 의지가 강한 사람
    같지만, 안이 풍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풍성하지  못한 사람이
    자기 안에 빠지게 되면 그렇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  사이는 마음
    이 서로 통하지 않고 막혀버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음에너지 속안
    에 자기가 빠져있기 때문에 겉으로 강해지고, 그러므로 외부와 단
    절되어 흐르는 흐름을 볼 수 없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만물을 수
    용하고 용서하는 것을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흐르는 흐름속에서 움직이게 되면 [천지부]라는 현상은 일어나
    지 않습니다. 흐름 속안에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면에 충만된 에너지가 있지 않은 사람은 세상을 수
    용할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이 이미 충만된 상태에 있지 않는 사
    람은 [천지부]의 현상을 일으킬  뿐 이 세상과  화합이라는 것을
    일으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천지부]는 "자기 생각에  치우치지
    말고, 자기로 인해서 판단하지 말고,  흐르는 흐름을 잘 관찰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화합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
    니다.
      회사의 흐름을 아는 사장은 흐름이 막히면 자기 이익이 손해가
    나고, 그 손해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도 손해가  난다는 사실을 알
    고 있습니다. 그러나 흐름을 알지 못하고 부분적인 자기 이익에만
    집착하는 노동자 및 근로자들은 자신의 태업이 전체의 손해를 일
    으키고 결국 그것은 자기  손해가 된다는 것을 모릅니다.  이득만
    바라보다가 스스로 손해를 입고, 그 손해가 점차적으로 또 손해를
    미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현상도 지킬 수 없습니다. 진정으
    로 자기 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사람은 손해를 아는 사람입니다.
      
        대상. 천지가 서로  배반하는 것이 부(否)의  괘상이
        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자신의  유덕함을 숨기고
        물러나와 난을 피한다. 관록을 영화로 생각하여 뜻이
        동요되어서는 안된다.
     
            象曰, 天地不交否. 君子以儉德避難. 不可
            榮以祿.
     
      동의보감에 보면, 스스로 건강을 지키려면 100%로 채우지 말고
    80%에서 멈추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을때 100
    숟가락을 먹으면 꽉찰 경우, 80 숟가락 정도  먹고 멈추어야 합니
    다. 그래야만 위장이  원활히 움직여서 소화를  시키는데, 꽉차게
    먹으면 위장이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 위장은  망가져 버
    리게 됩니다.
      "자신의 유덕함을 숨기고 물러나와 난을 피한다."  무슨 일이든
    지 100%를 바라보아서는 안됩니다. 80%만 바라보고 나머지 20%
    는 뜸들이는 기간으로 놔두어야 합니다. 20%의 여유를 두었을 때,
    바로 자신이 섭취한 것을 영양으로 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즉 한
    번에 완전하게 하지 말고, 80%만 이루고 20%는 완전에 다가오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괘는 자기 자신이  지금 최고의
    영화에 사로잡혀 있더라도 20%의 간격을 갖고 물러서야 할 때 물
    러서서 채우지 않아야만 비로서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다고 말
    하였습니다.
      "관록을 영화로 생각하여 뜻이 동요되어서는 안된다." [천지부]
    는 상괘와 하괘가 모두 정응관계에 있습니다. 이는 잘만 처신하면
    좋게 풀려나갈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마치 자석이
    같은 극끼기 서로 밀어내고 있듯이 비록  서로가 자기 고집을 세
    워서 팽팽히 대립하고 있지만, 자석은 다시 합칠  수도 있는 것처
    럼, 나중에 서로 양보하면 곧 화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의 욕심으로 영화를 생각해서 뜻이 동요되어서는 안된다. 물러
    설 때는 물러설 줄 알아야  한다. 자기 고민에 빠졌을 때는  빨리
    자기로부터 물러나와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을 건져낼 수 있다."
    따라서 군자는 20% 뒤로 물러서서 자기 목전의 이익을 바라지 말
    고 자기의 상태를 지켜볼 줄 알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첫번째 음효. 띠풀 한포기를 뽑으면 뿌리가  한데 얽
        힌 여러포기가 한꺼번에 뽑힌다.  여러동지들과 함께
        하는 상징이다. 일관된 마음으로  임금에게 충성하면
        길하다. 발전하고 번영하리라.
      
            初六, 拔茅茹. 以其彙.  貞吉亨. 象曰, 拔
            茅, 貞吉, 志在君也
           
      "띠풀 한포기를 뽑으면 뿌리가 한데 얽힌 여러포기가 한꺼번에
    뽑힌다." 첫번째 음효입니다. 이 음효는 우선 세상에 확고한 자기
    주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받아들일 수는  있습니다. 위로
    양효의 것을 받아들여 일관된 마음으로 뜻을 위해 충성하면 주변
    의 이음(二陰), 삼음(三陰) 등  동지들이 함께하여 길하지만,  이
    세상과 유리되어져 있는 상태에서 주관도 없는 음효가 멋대로 행
    동하면 남은 두 세계도 동시에 뽑혀 나간다는 뜻입니다.
      "일관된 마음으로 임금에게 충성하면 길하다." 자기가 기분나쁘
    다고 이곳 저곳 화를 내고 다니면 이쪽 저쪽 모두가 피해를 입습
    니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화난다고  핸들을 확 꺽으면, 자
    기 차만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 이쪽 저쪽의 모든 차가 다 망가지
    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양의 자리에 있어 함부로  행동하고
    싶은 충동이 있으나, 음효의 덕으로 자신을 양보하면서 주변을 받
    아들이고 화합하려 하면 길하다는 것입니다.
     
        두번째 음효. 임금의 말이면 덮어놓고 순종하니 소인
        들은 임금을 숭상하여 길하다. 그러나 군자는 신념을
        굽혀서까지 타협하지 않는다.
      
            六二, 包承. 小人吉.  大人否亨. 象曰, 大
            人否亨, 不亂群也.
           
      "임금의 말이면 덮어놓고 순종하니  소인들은 임금을 숭상하여
    길하다." 두번째 음효는 마땅히 음의 자리에 음효가 위치하고, 대
    응하는 다섯번째 양효와 정응관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
    변으로는 자기 세계가 분명하지 않은 소인들이 군주를 따르는 형
    상입니다. 비록 소인들이 군주를 따르는 것은 좋은 일이나 그렇다
    고 그들을 믿지는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군자는 신념을  굽혀서까지 타협하지 않는다."  군자가
    소인과 다른 점은 갖은 압박과 핍박이  온다 하더라도 자기 심정
    에 빠져 할 일을 하지 않는 경우는 결코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확신하는 세계가 투철하고 명료하게 내면에 있기  때문입니다. 소
    인은 자기한테 빠지지만 군자는 자기한테 빠지는  법이 없습니다.
    이것이 소인과 군자의 차이인데, 그게  굉장히 큰 차이입니다. 그
    래서 군자는 이러한 소인의 무리속에서  신념을 굽혀서까지 타협
    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세번째 음효. 재덕을 갖추지 못한 자가  분수에 지나치는
      부귀에 눈이 어두워 부끄러움도 모른다.
     
            六三, 包羞. 象曰, 包羞, 位不當也.
           
      "재덕을 갖추지 못한 자가 분수에  지나치는 부귀에 눈이 어두
    워 부끄러움도 모른다." 세번째  음효입니다. 양효가 와야할 자리
    에 음효가 있습니다. 음의 상태에서 누구를 좋아한다는 것은 진정
    한 사랑이 아니라, 자기 마음 상태에 스스로 빠져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에 도취되어 사랑하는  그 사랑은 어느  순간에 서로
    밀어낼 수도 있습니다. 흔히 부부싸움을 하는 것은 바로 자기한테
    사로잡혀서 거부가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천지부]를 이겨 나갈 수 있는  힘, 그것은 지극한 사랑입니다.
    자기가 옳다고 고집을 내세울 때는  [천지부]의 현상이 일어나는
    데, [천지부]는 결코 갈라서는 것이 아니고, 조화(調和)를 이루어
    낼 수 없는 자신의 문제만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조
    화(調和)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조화를 외면할  수는
    있지만, 이 세상이 이미 조화이기 때문에 결코  조화를 벗어날 수
    는 없는 것입니다.
      고집을 내세우는 나 자신, 그것을 자연은 나름대로 조화시켜 버
    립니다. 중요한 사실은 스스로 조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문제가 있을 때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단순하게 처리해야 합니다. 세상의 이치는 단순하기 때문입
    니다. 단지 단순하게 처리할 수 없는 사람이 복잡한  자기 세계에
    빠져 복잡한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네번째 양효. 위에 훌륭한 군주가 있어서  명령을 내
        리니 오직 왕명에 쫓으면 허물이 없으리라.  막힌 것
        을 타파하려는 뜻이 이루어진다. 동지와 같이 지극한
        복을 받는다.
     
            九四, 有命无咎. □離祉. 象曰, 有命无咎,
            志行也.
           
      [천지부]는 일단 음양이 전부 정응관계에 있기때문에, 비록  지
    금 내외가 뒤바뀌어 형통치 못하고 있지만, 막힌 상태를 타개하려
    는 분명한 뜻을 가지면 능히 뚫고 나아갈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
    습니다. "위에 훌륭한 군주가 있어서 명령을  내리니 오직 왕명에
    쫓으면 허물이 없으리라." 오양(五陽)이 정당한 위치를 지키고 있
    으므로 네번째 효는 다섯번째  양효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비록
    자기 자신의 입장을 내세우고 싶으나, 이를 숙이고  그 뜻을 쫓아
    야 합니다. 다섯번째는 의당히  양효가 있어야 할 자리에  양효가
    존재하고 있고, 또 모든 것이 대응관계로 있기  때문에 자기가 따
    르면 그 밑에 있는 것들이 함께  따라준다라는 이야기입니다. "동
    지와 같이 지극한 복을 받는다." 여기서 말하는 '왕명'은 절대적인
    명령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자기 입장을 이야기하지 말고 그 뜻을
    쫓으면 허물이 없으리라. 뜻을 따라 형통되려고 하는 무리들과 함
    께 복을 누린다라는 뜻입니다.
      근심걱정, 혹은 하기 싫어하는 마음이 있더라도 해야할 일을 꾸
    준히 하다보면 근심걱정과 하기  싫어 하는 것이 없어지고,  하는
    힘에 의해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것은 단순한 조건 반사가 아닌
    제 3의 힘입니다. 그 힘이 근심걱정을 흡수해 버립니다. 근심걱정
    이 있는 사람이 신나게 춤을 추면  그것을 잊어버린다고 흔히 말
    하고 있습니다. 또 친구지간에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기분
    전환하러 가자고 하여 여행이라도 하면 근심걱정이 풀립니다.
      왜 근심걱정이 풀리는가? 움직이는 힘에 의하다 보면 근심걱정
    에너지가 그리로 흡수됩니다.  우리는 표현상 잊어버렸다고  하는
    데, 이것은 근심걱정을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힘에 흡수
    되어져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풀릴 근심걱
    정이라면 실은 근심걱정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다만  자기 걱정일
    뿐이었습니다.
      사람이 근심걱정이 커지면 커질수록 뛸  힘이 안생기는 법입니
    다. 그러나 뛸 힘만 있으면  근심걱정은 없어지게 됩니다. 양성에
    너지가 강하면 음성은 그곳에 흡수되어 버립니다.  남자가 강하면
    여자는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부(否)]의 상태로 가느냐, 아니
    면 [부(否)]의 상태를 타개하느냐에  따라서 음성에너지는 그 쪽
    을 따라갑니다. 그래야만 창조가 이루어집니다. 세상은 그렇게 창
    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뜻으로 분명하게 하는 것은 모든 근심걱
    정을 흡수해 버립니다. 그것이  가장 최선의 해결책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옛날에 예수도 "죽은 자는 죽은  자로 하여금 장사지내
    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라고 했습니다. 그때 따라갔으면 죽은
    아버지에 대한 근심은 없어지게 됩니다. 아버지  근심을 벗어나게
    되면 이미 죽은 자에  대한 자기 근심은  쓸데없는 근심이었다는
    것을 본인이 느끼게 됩니다.
      
        다섯번째 양효. 막힌 상태가 그친다.  재덕을 구비한
        훌륭한 군자가 왕위에 있으니 길하다. 멸망하지 않을
        까 하는 조심하는 마음으로 튼튼한  뽕나무의 뿌리에
        매어두듯 항상 스스로를 경계하라
      
            九五, 休否. 大人吉.  其亡, 繫于苞桑. 象
            曰, 大人之吉, 位正當也.
           
      "막힌 상태가 그친다."  근심걱정은 움직이면 움직이는  힘속에
    흡수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듣고  무턱대고 해버리면
    일단 하나는 해결되지만 해결된 상태가 도리어 막혀버릴 수 있습
    니다. 사소한 것 하나  떨쳐버리고 갑자기 즐거워하다가 보면  또
    다시 자기한테 빠져버리게 됩니다. 근심걱정이 있을때는  춤을 춰
    라고 하니까 한 달 내내 디스코장 가서  춤을 추면 그것이 또 근
    심걱정입니다. 아직까지 형통을 터득하지 못한 사람이 한 번 움직
    여서 형통했다고 해서 계속  그 상태를 밀고나가면  오히려 해가
    된다라는 이야기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살펴가면서 해나가야지,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도리어  뜻밖의 화를 초래하는 수
    도 있습니다.
      "재덕을 구비한 훌륭한 군자가 왕위에 있으니 길하다." 재덕(才
    德)은 "재치있는 덕"입니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수없는 속임수, 임
    기응변, 이 모든 것이 재덕입니다. 이 재덕을 구비한 군주가 항상
    염려하는 마음을 갖고 움직이면  뜻밖의 화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으므로 길하다는 것입니다. 근심걱정은 움직이면 움직이는 힘속
    에 말려 들어간다는 것이 재덕입니다.
      "멸망하지 않을까 하는 조심하는 마음으로 튼튼한 뽕나무의 뿌
    리에 매어두듯 항상 스스로를 경계하라." 잘  될 것이다라고 생각
    하는 것이 혹시나 잘 안될  수도 있습니다. 잘 하려고 하는  것이
    도리어 뜻밖에 화를 초래하는 수도 있습니다. 나는 이  학생을 잘
    되게 하기 위해서 때렸는데  학생은 그러한 선생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도리어 선생님에게 대들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항상 살펴
    야 합니다. 즐거울 때 즐거운 자기 마음을 붙들어  매고 "혹시 잘
    못되지는 않을까?" 항상 염려하는  마음으로 움직이게 되면 길하
    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수없이 번창하는 뽕나무  잎파리같이 많은
    장애가 온다 할지라도 뿌리가 튼튼하기 때문에 결코 멸망하지 않
    는다라는 뜻입니다.
     
        여섯번째 양효. 막혀서  잘뚫린 상태가 무너지고  있
        다. 어찌 오래갈 것인가. 처음은 막혀있는 듯하나 다
        시 뒤에는 기쁨이 있다.
      
            上九, 傾否.  先否後喜.  象曰, 否終則傾,
            何可長也.
           
      "막혀서 잘뚫린 상태가 무너지고 있다. 어찌 오래갈 것인가. 처
    음은 막혀있는 듯하나 다시 뒤에는 기쁨이  있다." 아무리 재덕을
    겸비하였다 하더라도 끝내가서는  재덕을 겸비한  군주는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막힐 것이나 그 형통할 수  있었던 능력은
    계속 남아서 형통하게 할 것입니다. 옛날 석가나 예수 그리스도는
    형통했던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었습니다. 석가도 죽었
    습니다. 그러나 "죽었다"라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객체는  무너
    지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기강과 석가의 제 3의 힘은 지금도 흐르
    고 있습니다. 즉 죽은 뒤에도 계속 형통하고 있습니다.
      [천지부]는 개인으로서 개인 상태에 머무르게  되면 일체가 막
    혀버리지만, 그러나 이 우주는 결코 막힌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
    무리 막혀있다고 하더라도  우주는 인정사정 없이  쓸어버립니다.
    쓸어가는 우주의 강한 에너지의 상태로 살게되면  형통하게 되고,
    끝내가서 몸은 낡아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그렇게 뚫린 그 기운은
    바로 우주 그 자체이기 때문에 영원히  형통할 수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
      세상일은 맨 처음부터 덮어 놓고 되지는 않습니다. 한 번  어려
    운 고비가 오고 이제 절망의  벼랑에 섰을 때, 그때  개의치 않고
    뚫고 나가는 저력이 있다면 바로 그 일은 형통할 수 있다고 천지
    부는 이야기합니다. "머무르지 말아라.  머무른 상태에서 너를 잃
    어버리지 말아라. 계속해라. 계속해서  뚫고 나가라. 나가다  보면
    막혔다고 생각했던 모든 부분들은 허물어져 버릴 것이다." 우주는
    그렇게 우리들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조각가 로뎅의 작품 "생각하는  사람"의 얼굴에는 수심이 없습
    니다. 수심에 쌓여 있는 로뎅은  가치가 없습니다. 모나리자의 미
    소. 그것은 모든 아픔을 뚫고 넓게 퍼져나간 형통한  모습이 담겨
    져 있기 때문에 오늘날 명작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지
    부]의 괘를 통해 막힌 상태의 [부]를 형통하게 하여 항상 충만된
    상태를 영원한 화합을 이루어내는 지혜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유성..…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2534
  • 11. 지천태(地天泰)
    『  천지의 화합 』
            
     ●    기운이 가지고 있는 성질안에  자신이 들어가 있
     ●    는 사람은 중생입니다. 그러나 기(氣)가  가지고
     ●    있는 성질을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갖
            추고 있으면 성현입니다. 옛날부터 성인은 3가지
     ○    능력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외부의 것을 끌어 올
     ○    수 있는 능력, 둘째는 자기  안에 응고되려는 기
     ○    운에 자신이 빠지지 않을 수  있는 능력, 셋째는
            자신의 기운을 외부로 내보낼  수 있는 능력입니
            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들  앞에 나서서 3년밖
            에 일하지 않았지만 오늘날까지 예수 그리스도가
            일하던 능력은 흘러내려 오고  있습니다. 석가모
            니가 하던 것도 아직도 흘러내려 오고 있습니다.
            중간에 누가 막는다고 막아져지지  않습니다. 이
            것이 바로 성현의 위대한 힘입니다.
                          지천태(地天泰)
     
        태(泰)의 괘는 땅의 기운이 내려오고  하늘의 기운이
        상승하는 형상이다. 이것은 천지가  화합하여 만물을
        낳아 기르는 것이요, 상하가 화합하여 마음이 하나로
        모이는 것이다. 태괘는 길한 것이니 성장하고 번영한
        다. 내괘가 양, 외괘가 음이다. 이것은 속의 뜻은 강
        건하고 외면의 태도는 유순한 모습이며, 또 핵심에는
        군자를, 변두리에는 소인을 배치한 것과  같다. 그리
        하여 군자의 도는 발전하고 소인의 도는 소멸하는 것
        이다.
     
            泰, 小往大來.  吉亨.  象曰, 泰小往大來,
            吉亨, 則是天地交而萬物通也. 上下交而其
            志同也. 內陽而外陰, 內健而外順, 內君子
            而外小人, 君子道長, 小人道消也.
     
      자연의 법칙을 터득한 사람은 성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게
    터득된 상태를 불가에서는 해탈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교에서는 그와 같은 상태를 하늘의 뜻에 의해서  움직이는 자, 즉
    하늘의 아들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특히 중
    국에서는 그와같은 성현의 상태를 '중용'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 무엇이 중용인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우리의 에너지는
    스스로 자기 자신을 보호.유지하기 위해서 안으로  오므라들어 응
    고하려고 하는 기능과, 에너지가 움직여서 쓰여지게끔  밖을 향해
    서 나갈려고 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 것을  아낄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남의 것은  잘 안아낀다고 하더라도 자기  것은
    잘 아끼려는 마음이 누구나 있습니다. 남의 비싼 것  하나 망가지
    는 것은 그려려니 하지만 자기 조그마한  것 하나 망가지는 것은
    굉장히 아프게 느껴지게 됩니다. 그것은 나의 에너지가 나에게 고
    착되어 안으로 응축하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마음을 자칫
    잘못쓰면 진짜 아까운 자기 것을 망가트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중용은 안으로 당기는 기운과 밖으로  사용하려는 기운이 균형
    을 이룬 상태입니다. 기운이 가지고 있는 성질안에 자신이 들어가
    있는 사람은 중생입니다. 그러나 기가 가지고 있는 성질을 마음대
    로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 성현입니다.  옛날부터
    성인은 3가지 능력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외부의 것을 끌어 올 수
    있는 능력, 둘째는 자기  안에 응고되려는 기운에 자신이  빠지지
    않을 수 있는 능력, 셋째는 자신의 기운을 외부로 내보낼 수 있는
    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들 앞에 나서서 3년밖에 일하지 않았지만
    오늘날까지 예수 그리스도가 일하던 능력은  흘러내려 오고 있습
    니다. 석가모니가 하던 것도 아직도  흘러내려 오고 있습니다. 중
    간에 누가 막는다고 막아져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현의 위
    대한 힘입니다.
      물고기는 물속에 살면서 물이 짜증나면 펄쩍펄쩍 뛸 수 있습니
    다. 물고기가 물속에서 펄쩍 펄쩍 뛰면 물결을 치게 만들고, 파도
    가 일게 만들고 그래서  잔잔한 물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합니다. 인간 세상에서 누군가  짜증이 난다고 우리 삶의  바탕을
    혼탁하게 만들면 사람들은 그 사람을 쫓아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바다는 바닷물안에 있는 수없이 많은 것들이 물결을 만들어 내지
    만 그렇다고 "에이 바다 노릇 못해먹겠다." 하고  그만 두는 법이
    없습니다. 바다는 일어나는 물결을 잔잔하게 다시  자기 품안으로
    받아들입니다. 바다와 함께 하지 못하는 사람은 물이 아니꼬와 바
    다로부터 도망쳐 나가겠지만 그래도 바다는 그 물방울을 다시 받
    아들입니다. 그것이 성현의 커다란 마음입니다.
      "태(泰)의 괘는 땅의 기운이 내려오고 하늘의 기운이 상승하는
    형상이다. 이것은 천지가  화합하여 만물을 낳아  기르는 것이요,
    상하가 화합하여 마음이 하나로 모이는 것이다." [지천태]는 전부
    양효로 이루어진 하늘을 뜻하는 천(天)괘가 아래에 있고 전부 음
    효로 이루어진 땅을 뜻하는 지(地)괘가 위에 있습니다. 하늘이 있
    어야 할 자리에 땅이 있고, 땅이 있어야 할 자리에 하늘이 있습니
    다. 그러나 주역은 역순하기 때문에 결국은 하늘은 위로 올라가고
    땅은 아래로 내려와서 제위치를 바로잡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안
    에 응고되어 있던 내괘의 양성기운은 바깥으로 흘러나가고 또 바
    깥의 음성기운은 안으로 흘러들어와서 가장  이상적인 화합을 이
    루게 됩니다.
      동시에 이 괘는 천지가 자리바꿈을 하는  큰 변혁을 일으켜 세
    상을 발칵 뒤집어 놓는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은 세상을 뒤집어 놓는 것이 아니라, 지금  세상에서 잘못 생각하
    고 있는 사람들의 인식을 다시 바로하여 올바르게 인식하도록 제
    자리를 찾아주는 것입니다.
      지금 인간의 마음은 자아 관념에 의하여 오히려 자연의 순리와
    는 다르게 일탈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생명력은  하나의 에너지체
    로서 자연의 법칙에 의해 순리대로 흘러야 하는데, 강력한 자아의
    식으로부터 비롯된 고정관념으로  생명력의 흐름을  자기 마음을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몰고가면, 객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
    고 자기 중심적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마음에
    생명력이 응축되어 있으면, 그것은 자연의 흐름에  위배되어 결국
    자연은 스스로를 보존하기 위해서 그  사람의 생명력을 파괴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것이 이 자연이 가지고 있는 위대한 창조력이라는 사
    실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창조력을 터득해서 창조의 주
    재자가 되어야지, 창조를 위해 소모되는 불쌍한  인생을 살아서는
    안되겠습니다. [지천태]가 이루어 내는 세상의 대변혁은  결국 인
    간이 자연의 순리를 따라 영원한 생명력의 흐름으로 세상에 풍요
    를 창출해 내는, 조화와  균형의 안정된 세계를 구축하는  것입니
    다.
      "내괘가 양, 외괘가 음이다. 이것은 속의 뜻은 강건하고 외면의
    태도는 유순한 모습이며, 또 핵심에는 군자를, 변두리에는 소인을
    배치한 것과 같다." 외괘는  모두 부드럽고 유순한  음성기운으로
    이루어져 있고, 내괘는 강한 양성기운으로 이루어져  있어 외유내
    강(外柔內剛)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갸냘프고 부드러워
    보이지만, 내면으로는 아주 강한 기강이 확고히 자리잡고 있는 것
    입니다. 확고부동한 자기 세계가 내면에 당당하게  내포되어 있으
    면서, 그 내포된 세계를 끝까지 세상에 펼친다고  하는 강한 의지
    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  식으로 펼치지 아니하고, 오
    히려 자기 마음을 내세우지 않고 낮추면서, 외부의 세계를 받아들
    이고 수용하여 자연의 뜻에 따라 펼쳐내는 겸양의 의미를 포함하
    고 있습니다. 동시에 6개의 효가 모두 정응관계에  있어 무턱대고
    자기 주관대로 해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매우  공명정대하게 일을
    추진해 나아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대상. 천지가 화합한다. 이것이 [태]의 괘상이다. 왕
        자는 이 괘상을 보고 천지의 작용에 사람의  힘을 보
        태어 천지의 원만함을  도와 대성하게 하고,  인민을
        태평성세로 인도한다.
     
            象曰, 天地交泰. 后以財成天地道, 輔相天
            地之道, 以左右民.
           
      자연의 이치는 인간의 입장이 아닙니다. 반드시 인간을 위한 것
    만도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을 죽게 할 수도 있습니다. 천지 만물
    의 이치 그 자체를 인간은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한 인간의 생
    각속에서 나온 것을 인간에게 전파하여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인간 이성의 작용이 아니라 그것을 초월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
    입니다. 인간은 다만 이성을  넘어선 혜안을 통하여 그것을  느낄
    수 있을 뿐입니다.
      "왕자는 이 괘상을 보고 천지의 작용에 사람의 힘을 보태어 천
    지의 원만함을 도와 대성하게 하고, 인민을 태평성세로 인도한다."
    자연의 이치를 뜻으로 삼은  군자는 인간의 입장을  도와 자연의
    힘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운행에 인간의  힘을 보태어 자연
    의 이치를 완성시키는 것입니다. 최근 인간은 인간의 입장을 만족
    시키기 위해 자연을 파괴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인간
    의 생존을 위협하는 중대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결국 그것은 인간
    을 편안하게 하지 못했고, 오히려  불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
    것은 불완전한 인간의 이성을 너무 신뢰한 나머지 자연의 도리를
    무시한데서 온 어리석음의 결과입니다.
      진정으로 인간을 편안한 곳으로  인도할 수 있는  왕은 자연의
    순리에 인간의 힘을 보태어  자연의 운행질서를 대성(大成)시켜,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을 인간이 누리게 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천태]가 지향하는 변혁의 세계입니다.
      
        첫번째 양효. 띠풀 한 포기를 뽑으면 뿌리가 서로 얽
        힌 여러뿌리가 함께 뽑힌다. 밖으로 향하여  호응 발
        전하는 상징이다. 많은 동지와 함께 적극적으로 활동
        하는 것이 좋다. 길하다.
     
            初九, 拔茅茹. 以其彙.  征吉. 象曰, 拔茅
            征吉, 志在外也.
     
      "띠풀 한 포기를 뽑으면 뿌리가 서로 얽힌 여러뿌리가 함께 뽑
    힌다." 하괘는 모두 양효로서 이 세상에 강한 자기 자신이 확립되
    어 있습니다. 자연의 이치에 따라 세상과 조화될 수  있는 건실한
    뜻을 세운 사람이, 그 확고한 주관으로 이 세상을 위한 일을 하면
    세상 사람이 모두 호응하여 주게 되어 있습니다. 뿌리가  얽힌 여
    러뿌리가 함께 뽑힌다는 것은 위로 이양(二陽), 삼양(三陽)이 호
    응하여 같이 활동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치에 따르지 않아 세상과 조화될  수 없는 사람이 자
    기의 욕심으로 행동하면, 비록 남달리 비상하게 강한 의지와 신념
    으로 자신의 목표는 달성할 지라도, 영광을 같이 누려야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슬픈 결과가 되어 버립니다. 우리는 흔히 큰 일을 성
    사시키고 나서 갑자기 병에 걸려 죽었다  혹은 사고를 당하여 죽
    었다라는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나 듣습니다. 흔히 "끝까지
    살아봐야지." 하고 악착같이 살아서  집 장만하고 좀  살만하니까
    죽었더라 하는 것이 그런 경우입니다.
      "내가 악착같이 돈을 벌어서  우리 전 식구가  먹고 살아야지"
    하고 돈을 벌면, 돈은 모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같이 먹고 살
    아야 하는 식구가 죽어버리는 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교통사고
    난 사람들도 대개 이런  경우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한가지  일에
    너무 전념하다 보니까 피로가 누적되어 있었는데도, 일할 때는 그
    것을 모르고 있다가 일이  성사되자 긴장이 풀어져  병이 생겼다
    혹은 사고를 당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왜  일하면서 긴장속에
    서 자기 스스로를 매우 위험한 상태로 만들었는가?
      그것은 두려움 없는 마음으로 위험을 타고 들어가지 못하고, 근
    심과 불안을 안고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두려워 하는 마음이 없이
    하면, 불안한게 안따르는 법이지만, 근심을  갖고 일을 하면 근심
    이 떠나지 않는 법입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근심은  일을 이루
    기 위한 최소한도의 조바심 혹은  경계심이 아닌 "잘못되면 나는
    죽는다."라고 하는 강박관념적인 근심입니다.
      "밖으로 향하여 호응 발전하는 상징이다. 많은 동지와  함께 적
    극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좋다. 길하다." 죽으면 어쩌나 하는 우환
    을 갖고 열심히 하면 성공은 할 수 있으나, 그  뒤에는 반드시 우
    환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근심과 걱정이라는 것은 자연의 생명
    력이 아니고, 그 사람의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입장에 매
    여 있는 사람은 자연이 파괴시켜 버립니다.  "뭣 때문에", "뭣 때
    문에", "뭣 때문에" 하는 사람은 그 '때문에'가  바로 자기 자신임
    을 알아야 합니다. 죽는 한이  있어도 갈 수 있는 가벼운  마음은
    위험한 부분을 어떻게 극복하는 가를 먼저 생각하지만, 죽으면 어
    떻하나 하는 무거운 마음은  위험을 변명의 구실로 삼게  됩니다.
    따라서 죽음도 두려워 하지  않는 기강을 확립한  사람은 주변이
    승복하여 많은 동지를 얻어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습니다만 그
    렇지 못한 사람은 아무도 도와주는 이가 없습니다.
      자기만을 위해 이룩한 사회적 지위와 재산은 세상과 조화를 이
    루어낸 성공이 아닙니다. 그것은 또하나의 불균형이기  때문에 자
    연은 이를 파괴시켜 버립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주위 사람들의
    손가락질이나 받을 뿐 호응을 얻을 수 없습니다. 비록  자신의 강
    한 의지의 힘으로 작은 지위 정도는 얻을 수 있으나 결코 오래갈
    수 없습니다.
     
        두번째 양효. 오염과 혼탁을 포용하는 도량, 대하(大
        河)를 맨 발로 건너뛰는 과단,  원근(遠近)을 버리지
        않는 박애, 정실(情實)을 끊어 버리는 공정, 이런 큰
        덕을 갖춘다면 태평성세로 발전하여 크게 빛나리라.
     
            九二, 包荒, 用憑河,  不遐遺, 朋亡, 得尙
            于中行. 象曰, 包荒, 得尙于中行,  以光大
            也.
           
      "오염과 혼탁을 포용하는 도량, 대하(大河)를 맨 발로 건너뛰는
    과단, 원근(遠近)을 버리지 않는 박애, 정실(情實)을 끊어 버리는
    공정" 자연의 이치로 사는  사람은 낮은 곳으로  스스로 임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뛰어나다고 높고 화려한  세계에 안주하
    지 않고, 세상의 더럽고 혼탁된 곳에 스스로  임하여 이를 제도하
    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비록 고난과 위험이 있을  지라도 이를
    회피하지 않고, 죽음도 두려워 하지 않는 기강으로 태연히 받아들
    이는 과단성이 있습니다. 또 자신의 측근에서  아첨한다고 전적으
    로 신임하거나 혹은 배척하는 일도 없고, 멀리 있어 눈에 띄지 않
    는다고 관심이 소홀해 지는  일이 없이, 항상 공명정대하게  모든
    사람을 대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는  태평성세를 이
    루는 것입니다.
      
        세번째 양효. 평평한 것도 가운데가 있고, 가는 것은
        반드시 돌아오는 법.  태평한 세상이라고 하나  모든
        일이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불안하고 어려
        운 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렵고  곤란한 가운데
        마음을 동요하지 않고  한결같이 결심하고  노력하면
        허물이 없으리라. 성실을 근심할 것이 없다. 먹을 때
        유복하리라.
     
            九三, 无平不陂, 无往不復. 艱貞无咎.  勿
            恤其孚. 于食有福. 象曰, 无往不復,  天地
            際也.
           
      "평평한 것도 가운데가 있고,  가는 것은 반드시  돌아오는 법.
    태평한 세상이라고 하나 모든 일이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다. 때로
    는 불안하고 어려운 일도 있을 것이다."  지천태는 지금까지의 괘
    에서 볼 수 없었던 강한  양의 기운을 가지고 있지만,  그 기운이
    나아가는 데에는 항상 조심성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평
    평한 것일 지라도 가까이서 보면 울퉁불퉁한 것이 있기 마련입니
    다. 위로는 전부다 음에너지가 막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래의 양
    에너지와 반대되는 것이 없이 대응관계에 있기 때문에 이 세번째
    효의 가르침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받아들인  상태에서 자신의
    세계를 펼쳐라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은 좋은 것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괴롭히는  것
    들이 무수히 많이 있습니다.  도둑놈도 많고 강도도 많고  악인도
    많습니다. 비록 세상이 아무리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세상을 증오
    하고 욕하지 말고 겸손한 가운데 세상을 받아들이고 성실하게 자
    기 세계를 펼쳐라라는 뜻입니다. 그런 가운데 향기있는 꽃이 피는
    것이지 어려움도 없이 그냥 무럭무럭 자란 꽃은 냄새가 없습니다.
      "어렵고 곤란한 가운데 마음을 동요하지 않고 한결같이 결심하
    고 노력하면 허물이 없으리라." 중요한 것은  마음의 동요없이 처
    음의 뜻으로 꾸준히 실천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자연의  이치로
    사는 사람은 곧 대운하와 큰 강도 맨발로  건너 뛸 수 있는 과단
    성이 있기 때문에 동요하는 마음이 없이 한결같이 노력하는 사람
    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양의 기운으로 꾸준히  해왔던 마음가짐
    과 자세를 흐트리지 않는다면 성실을 근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먹을 때 유복하리라." 있을 때는 가졌다라고 하는 행복감에 젖
    어 있지 않으며, 곤란한 일이 닥칠 때는 결코 뒤로 물러서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에게  자연이 행복을 베푼다는  뜻입니다.
    일을 마친 후 복을 받는 것이 아닌, 매사에 성실을  잃지 않고 쉬
    지않고 노력하는 가운데 이미 행복을  느끼는 위대한 양성에너지
    의 모습입니다.
      
        네번째 음효. 새들이 떼를 지어 훨훨  하늘을 날듯이
        여러사람이 마음을 모아 전진하고 있다. 자신의 우월
        함을 내세우지 아니하고 남과 더불어 이를 삼아 사귀
        니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이기에 새삼스럽게 애
        쓰지 않아도 성심은 절로 일어난다.
     
            六四, 翩翩. 不當以其隣. 不戒以孚. 象曰,
            翩翩不當, 皆失實也. 不戒以孚, 中心願也.
           
      "새들이 떼를 지어 훨훨 하늘을  날듯이 여러사람이 마음을 모
    아 전진하고 있다." [음]의 자리에 음효가 있어 모든 것을 받아들
    이는 입장에 있다 하더라도  이 음효는 대응하는  첫번째 양효의
    강한 에너지를 구하여 결국은 일을 이루나갑니다. 이 괘의 위대성
    은 대화합입니다. 화합이기 때문에 네번째가 음의  자리에 있지만
    자신을 공정하게하여 세상에  빠지지 아니하고  올바른 판단으로
    밀고 나가는 것입니다.
      "자신의 우월함을 내세우지  아니하고 남과 더불어  이를 삼아
    사귀니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이기에 새삼스럽게 애쓰지 않
    아도 성심은 절로 일어난다." 그렇게 조심하는  자세로 꾸준히 해
    나가면, 주역은 역순하기 때문에, 이제 세상에 강한 나의 뜻이 서
    서히 굳혀지며 많은 사람들이 이에 호응하고 따르게 됩니다. 그러
    면서도 이 네번째 효는 음효이기 때문에 자신의 우월감에 빠지지
    않고 겸손한 태도로 남과 화합하려고 하니 더더욱 모든 사람들이
    호응하게 됩니다.
      
        다섯번째 음효 은나라 임금 제을(帝乙)은  어진 신하
        를 존경하여 누이를  그의 아내로 시집보냈다.  이런
        겸허한 마음으로 일을 처리하니 경사스러운  복이 저
        절로 이루어져 크게 길하다.
     
            六五, 帝乙歸妹, 以祉元吉. 象曰,  以祉元
            吉, 中以行願也.
      "겸허한 마음으로 일을 처리하니 경사스러운 복이 저절로 이루
    어져 크게 길하다." 다섯번째 음효입니다. 이 곳은 본래 양효가 있
    어야 할 자리인데 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음효는 이미 밑의 괘
    의 [양]의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외부를  향하여 에너지를
    펼쳐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음]이라서 자신이  나서서 펼
    치지 아니하고 세상에 대해 최대의  겸손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
    다. 여기서 겸손은 안은 꼿꼿한데  겉으로 숙이는 겸손이 아니라,
    자신이 없어지는 겸손입니다. 최대의 겸손이라는 것은  자신의 뜻
    은 자연의 순리대로 흘러가게 하고 자기 자신은 스스로 사라져서,
    자기 중심적인 사고방식에서  인위적으로 무엇을  만들어 내려는
    것이 아닌, 순리에 순화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곧 중용을 의미
    합니다.
      옛날에 예수는 세상이 죽이겠다고 하니까  최대의 겸손으로 받
    아들였습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희생정신입니다.
    뜻은 이제 눈에 보이게 일부러 펼칠 필요가 없습니다.  자연의 순
    리대로 저절로 나타나게 할 뿐입니다.
     
        여섯번째 음효. 성은 무너져서 성 밖의  도랑을 메운
        다. 태평성세도 이제  다해서 동란의 징조가  나타난
        다. 함부로 군을  동원해서 힘으로 누르려고  해서는
        안된다. 나라안이 분열하여 왕명이 시행되지 않는다.
        바른 일이라도 비난을 받아 궁지에 빠진다.
     
            上六, 城復于隍. 勿用師. 自邑告命. 貞吝.
            象曰, 城復于隍, 其命亂也.
     
      "성은 무너져서 성 밖의  도랑을 메운다." 큰 것은  끝내가서는
    허물어져 밑에 뚫린 구멍을 막는 법입니다. 자연은 에너지가 크게
    있게끔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인간의 힘이 너무 커지면  세상은
    그를 멸망시켜 버립니다. 그러므로 내가 사라지는  것은 기정사실
    입니다. 인간의 몸뚱아리는 유한합니다. 중요한 것은 나는 멸망된
    다 하더라도 내가 세운  올바른 뜻이 사라지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역사상 훌륭한 인물들은 오래 살아봐아 100년
    을 못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없어져도 그 사람의  업적은
    역사속에서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우주가 지금까지 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깨질 수 없는 시스
    템을 구축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시스템
    은 자연입니다. 그래서 자연은 만물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따라
    서 사람도 그 사람이 이룬 업적이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는 자연
    의 시스템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여섯번째 효는 [음]의 자리에 [음]이 있어 안에서 솟구쳐 나갈
    려고 하는 양성기운만 끝까지 안으로 함축하여 잘 지키고, 오히려
    세상을 모두 받아들인다면 나는 사라지지만  뜻은 영원히 멸망하
    지 않고 뿜어져 나갈  수 있음을 역설적으로 말해줍니다.  수많은
    성현들은 갔지만 그들의 가르침은 아직도  도도히 흐르고 있습니
    다. 그것은 그들의 뜻이 세상으로부터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거
    기에 순응하였기 때문입니다.
      벌되, 벌어들이되, 벌어들인  그것은 내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알고 해야 합니다. 물건은 아끼되, 그  물건이 반드시 내 것이 아
    니다라는 것을 알고 아껴야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만물의  종이
    되어야만 만물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유성..…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5683
  • 10. 천택리(天澤履)
    『 강자를 따르다 』
      
     ○    세상은 위험한 것입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죽겠지
     ○    만, 그러나 죽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 죽는 수도  있
     ○    습니다. 하루에도 교통사고 사망자가 수십명씩 나옵
            니다. 거기에 내가 끼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    그렇지만 위험의 이치를 알면, 비록 범의 꼬리를 밟
     ○    는 것과 같은 위험에 처하더라도, 범에 물려 죽임을 
     ○    당하는 일은 피할 수가 있습니다.
      
                            천택리(天澤履)
     
        이(履)의 괘는 유순함이 굳센 것을 따르는 형상이다.
        충심으로 기꺼이 선인들을  따른다면 호랑이  꼬리를
        밟는 위험을 범하더라도 물려 죽지는 않고 뜻을 이룰
        수가 있다. 오양(五陽)은 중정(中正)의  위치에 있어
        서 강건, 중정의 덕을 나타내며 천자의  자리에 올라
        도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다. 그 빛은 널리 천하에 빛
        나리라.
      
            履虎尾不□人. 亨. 象曰, 履柔履剛也.  說
            而應乎乾. 是以履虎尾不□人, 亨. 剛中正,
            履常位而不구, 光明也.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를 위험하게 하는 것들은 도
    처에 있습니다. 가만히 서있을 때는 공기가 우리를 괴롭힌다는 것
    을 전혀 느끼지 못하지만, 오토바이를 타고 속력을 내서 질주하면
    공기가 얼굴에 맞부딪쳐 피부가 따갑고 눈을 뜨기가 곤란해 집니
    다. 또 수영을 배우기 위해서 수영장에서 한 일년 연습을 하여 어
    느 정도 실력을 갖추었을지라도,  막상 바다에 가서 헤엄을  치면
    파도와 수압에 의해 자신이 의도했던  목적지까지 가기가 의외로
    매우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자신이 명확한 뜻을 세우고 그것을  세상에 펼쳐야겠다는 신념
    을 확고히 구축하였을 지라도, 막상 세상과  부딛치면 세상으로부
    터 오는 압력을 받게 됩니다.  이때 자기 옳은 것만 믿고  세상의
    압력을 무시하고 저돌적으로 나가면 끝내는 그 압력에 자신이 다
    쳐서 쓰러지게 됩니다. 따라서 오토바이를 타기 전에 달리는 오토
    바이가 공기의 저항을 받는 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화이바를 구
    해서 착용해야 하는 것처럼, 바다에서 수영을 하려면 파도가 치므
    로 그 파도를 극복하기 위해 오리발, 물안경  등의 장구를 갖추고
    바다에 뛰어드는 것처럼, 세상에 나아갈 때는 세상의 법칙를 먼저
    이해하고 느낀 다음 안전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입니다.
      64괘중 [풍천소축]까지는 외부로 나아가기 전 내부를 정비하는
    단계였습니다. 그래서 뜻을 세우고,  지혜를 기르고, 실력을  갖추
    어, 나가면서 자기 기반을 하나씩 하나씩 다져서  드디어 [풍천소
    축]에 이르러 작은 기반이 구축되었습니다. 이제 그  기반을 바탕
    으로 세상을 향해 뻗어 나아가는 시점에 온 것입니다.  그러나 아
    무리 자신이 옳다고 하더라도 세상은 세상 나름대로의 법도와 작
    용이 있습니다. 따라서 그 법도와 작용을 먼저 이해하고 나아가야
    지 그렇지 않으면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하는  것이 바로
    [천택리]입니다.
      우리의 생활반경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들은 자신에게는 대
    단히 중요한 일이지만 남들이 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대
    학 입학 시험에 떨어지는 것은 자신에게는  큰 일인 것같지만 통
    계적으로 보아서 큰 일도 아닙니다. 대학 입학 시험에  80만이 보
    아서 30만이 붙고 50만이 떨어져 나갑니다. 자신이  그 50만 가운
    데 한 사람이라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자신이 그것
    을 무슨 대단한 충격으로  생각해서 그로 인해  마음이 이렇게도
    혹은 저렇게도 움직이는 사람은 정말 별볼일 없는 사람입니다.
      주변상황에 이렇게도 혹은 저렇게도 변하는  자신의 심정에 자
    기 영혼을 빼앗기지 않는다면  스스로 자신을 건질 수  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해괴망측하다고 하더라도 하늘은 한가지 메카니즘
    으로 움직일 뿐이지 수많은 법칙으로 운행되는 것은 아닙니다. 때
    문에 많은 것 안에 파묻혀서 하늘의  장난에 자기 자신이 희생되
    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 자신을 구해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구했을 때 주역이  말하고 있는 하늘의 세계
    를 분명히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늘의 운행은  하나의 메카니
    즘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으니까 그  메카니즘을 분명히 알아라
    라는 것이 천택리입니다.
      "이(履)의 괘는 유순함이 굳센 것을  따르는 형상이다." 천(天)
    은 하늘이고 택(澤)은 물입니다. 하늘 밑에 물이 있습니다. 이 물
    은 하늘을 떠나야만 합니다. 천은 모두 다 양효로  이루어진 양성
    괘이고, 택은 양효 두 개에 음효 하나로 이루어진 음성 괘입니다.
    따라서 천택이는 아래의 연못이 여성의  유순함을 가지고 하늘을
    따르는 형상입니다. 그러나 하늘을 따른다는 것이  단순히 무턱대
    고 따르라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법칙을  따르라는 이야기입니다.
    하늘의 법칙을 잘 알아야만 따를 수 있습니다. 즉  이치를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지만이 하늘로 오를 수 있다는 이야
    기입니다.
      물은 하늘로 오릅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는, 물은
    아래로 흐르기 때문에, 물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되어 있습
    니다. 그러나 비가 오는 것은 반드시 그 이면에 비가 전부다 위로
    올라갔기 때문에 내려오는 것입니다. 즉 비가 내리는 데는 반드시
    물을 올려놓은 법칙이 있는 것입니다. 물이 하늘로 올라간다는 것
    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있을 수 없는 이야기지만 분명
    히 물은 하늘로 올라갑니다. 물을 하늘로 올려낸 법칙, 그 법칙을
    파악하고 따라야만 물이 하늘로 오를 수 있습니다.
      "충심으로 기꺼이 선인들을 따른다면 호랑이 꼬리를 밟는 위험
    을 범하더라도 물려 죽지는  않고 뜻을 이룰 수가  있다." 세상은
    내가 하겠다고 해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되어지게
    끔 하는 법칙이 반드시 존재합니다. 그 메카니즘을 찾는다면 아무
    리 위험한 일이 있더라도 위험에 빠지지 않고 능히 그 위험을 극
    복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위험한 것입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죽겠지만, 그러나 죽
    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  죽는 수도 있습니다. 하루에도  교통사고
    사망자가 수십명씩 나옵니다. 거기에 내가 끼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위험의 이치를 알면,  비록 범의 꼬리를 밟는
    것과 같은 위험에 처하더라도, 범에 물려 죽임을  당하는 일은 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대상. 하늘은 위로,  연못은 아래로, 이것이  [이]의
        괘상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상하  귀천의 신분
        제도를 밝히고, 예의를 정해서 백성에게 질서의 관념
        을 심어준다.
     
            象曰, 上天下澤履. 君子以辨上下. 定民志.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상하 귀천의 신분제도를 밝히고, 예의
    를 정해서 백성에게 질서의 관념을 심어준다." 군자가 이 괘를 보
    고 상하 귀천의 신분제도를 밝히는 것은 바로 천리(天理)에 의해
    서 나타나는 그 이치를 밝힌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  이치에 인
    간이 유순하게 따를 수  있도록 행동의 법도를  정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입니다.
      도덕, 윤리, 법질서 이와같은 것들은  사실 자연의 이치에 인간
    이 쉽게 순응하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법도입니다. 그것은 천리
    를 바탕으로 인간을 보다 풍요롭게 하기 위해 나온  것입니다. 그
    래서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우주의 법칙을 알고, 그 법칙에 의해
    예의를 정하고 질서 관념을 심어, 인민의 마음을 안정시켜 세상을
    풍요롭게 가꾸어 나간다고 했습니다.
     
        첫번째 양효. 순수한 마음으로 홀로 바른  길을 걸어
        간다. 전진하여 허물이 없다.
     
            初九, 素履. 往无咎.  象曰, 素履之往, 獨
            行願也.
         
      첫번째 양효입니다. [양]의 자리에 양효가 있어 이 땅에 자기의
    뜻이 확실함을 나타냅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홀로  바른 길을 걸
    어간다." 그래서 뜻이 확실한 자기를 믿고  홀로 걸어가도 조금도
    거칠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뜻이 의당 있어야할  곳에 있는
    옳은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 옳은 뜻을 세상이 아무리 헐뜯는다고
    하더라도 당당히 걸어가라는 말입니다.
      
        두번째 양효. 겸손한 태도로 홀로 큰  길을 성의있게
        걸어간다. 가슴속의 바른 마음이  흔들리지 아니하여
        변함이 없으면 길하리라.
     
            九二, 履道坦坦. 幽人貞吉. 象曰,  幽人貞
            吉, 中不自亂也.
           
      두번째 양효입니다. 여기는 원래 음의 자리입니다. 음의 자리에
    양이 가므로 사실은 주저해야할 때에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음의
    세계에서 수많은 비난이 오게 됩니다. 그러나 이 비난이나 유혹에
    넘어가지 말고 그 뜻을 잃지 않고  나아가면 허물이 없다는 것입
    니다.
      "겸손한 태도로 홀로 큰 길을 성의있게 걸어간다." 여기서는 겸
    손해야 합니다. 음의 자리에 양이 있기 때문에 원래  제자리가 아
    니어서 스스로를 잘 살펴야 됩니다. 그리고  "가슴속의 바른 마음
    이" 유혹이나 소란함에 흔들리지  아니하여 "변함이 없으면 길하
    다." 라는 것입니다.
     
        세번째 음효. 애꾸눈과  절름발이 이면서 남보다  더
        잘 보며, 더 잘  걷는다고 뽐낸다. 이런자와  행동을
        같이 할 수 없다. 자기의 비재(非才)를  돌보지 않고
        함부로 나간다면 호랑이 꼬리를 밟아 물려 죽을 것이
        다. 흉하다. 무인(武人)이  군주가 된 것같다.  너무
        강한 것만을 내세워서는 영속될 수가 없다.
           
            六三, 묘能視,  跛能履.  履虎尾□人. 凶.
            武人爲于大君. 象曰, 묘能視, 不足以有明
            也. 跛能履, 不足以與行也. □人之凶,  位
            不當也. 武人爲于大君, 志剛也.
     
      [양]의 자리에 [음]이 왔습니다. [양]의 자리에 [음]이 오면 나
    갈 것이 나가지 않고  쓸데없는게 나가기 쉽습니다. 여기는  양의
    자리이기 때문에 뭔가 내보내야 합니다. 옳바르게 되려면 뜻이 나
    와야 되는데, 음이기 때문에 음으로부터 들어 오는 자기가 나가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이 잘났다고 나가게  되며, 이렇게 되면 주위
    로부터 핍박을 받아 매우 위험하다는 뜻입니다.
      "애꾸눈과 절름발이 이면서 남보다 더 잘 보며, 더 잘 걷는다고
    뽐낸다. 이런자와 행동을 같이 할 수  없다. 자기의 비재(非才)를
    돌보지 않고 함부로 나간다면 호랑이 꼬리를  밟아 물려 죽을 것
    이다." 애꾸눈, 절름발이 이면서 남보다 더 잘 보며, 더 잘 걷는다
    고 자만한다면, 즉 자기의 재능을 돌아볼 줄  모르고 부족한 점을
    살펴서 보완하지 않는 사람은 함부로 행동하다가 범의 꼬리를 밟
    고 교살될 것입니다.
      자만하면 그 생각이 너무 강하기만 하여 위험합니다. 잘 된다고
    언덕에서 내리막길로 있는 힘껏 뛰면 도리어 자신을 못이겨 넘어
    지게 되어 있습니다. 스스로 반성하며 세상에 맞추어 갈  수 있어
    야 자신을 보존할 수 있는 법입니다.
      "무인(武人)이 군주가 된 것같다. 너무 강한 것만을 내세워서는
    영속될 수가 없다." 아무리 자기의 가는  힘이 강하더라도 스스로
    를 돌이켜 볼 수 있는 조심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세번째 효
    는 스스로 자기 자신을 일단 다시 점검하고,  자기 자신이 어떤점
    이 부족한가, 잘 될 때는 뭔가 위험한  상태가 아닌가를 점검하라
    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을 때가 가까와지면 죽기 하루나 이틀전에 갑자기 생
    기가 나기 시작합니다. 촛불도 다타서 꺼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확
    달아 오릅니다. 그것은 우리 몸에 있는 에너지가 몸을  빠져 나갈
    때쯤 되면 몸에서 떨어져 나가기 위해  힘을 써야 하기 때문입니
    다. 내보내는 힘이 있기 위해서 잠시 생기가 도는 것입니다. 따라
    서 이 때를 가장 조심해야 합니다. 늙은이가 갑자기 힘이 펄펄 난
    다면 곧 꺼져 버리기 직전의 상태입니다.
      우리는 갑자기 기분좋을 때  조심해야 합니다. 또 너무  침울할
    때도 조심해야 합니다. 모든지 음양이 적당히 조화를 맞추어야지,
    양성 기운쪽으로만 나가면 몸이 망가지고, 음성  기운쪽으로만 나
    아가면 존재가 녹슬어 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적당히 그  상태를
    맞추어 나가야 되며, 상황에 의해서 벌어지는 세계를 면밀히 관찰
    하라는 것이 바로 [천택리]입니다.
     
        네번째 양효. 호랑이  꼬리를 밟는 것같은  마음으로
        잘못을 범하지나 않을까  하고 스스로를  두려워하면
        마침내는 길하여 뜻이 행하여질 것이다.
     
            九四, 履虎尾. 소소終吉. 象曰, 소소終吉,
            志行也.
           
      "호랑이 꼬리를 밟는 것같은 마음으로 잘못을 범하지나 않을까
    하고 스스로를 두려워하면 마침내는 길하여  뜻이 행하여질 것이
    다." 이 곳은 음의 자리인데 양이 있습니다. 그래서 비록 양이 있
    으나 음의 세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음의 자리에서 양이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나갈때 음의 상태에서 범의 꼬리를 밟지나 않을까
    하고 조심을 하면 마침내 양은 무난히  넘어갈 수 있다는 뜻입니
    다.
      효를 올바로 이해하려면 여섯개의 자리를 잘 보아야 합니다. 각
    각의 효가 단편적으로 하나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
    니다. 하괘에도 천.지.인, 상괘에도 천.지.인이 있어 효가 두 번 겹
    쳐서 있습니다. 왜냐면 현상은 나에 의해서 벌어질 수도  있고 세
    상에 의해서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불쾌지수에 의해서 내
    가 기분이 나빠질 수도 있고,  또 내 기분이 원래  나쁘기 때문에
    주변의 사람들을 기분나쁘게 만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 두가지
    세계는 겹쳐질 수 있는  것이기에 주역은 두가지  세계를 동시에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상태를 잘 견뎌나가게 되면 바깥
    세계가 안의 세계로 변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역은  역순한다."라
    도 말하고 있습니다.
      주역은 역순하기 때문에 지금 상태는 하나의 비젼을 일으킬 수
    있는 단계에 와있는 것입니다. 자기 세계와 주변의 세계를  잘 살
    펴서 조화를 이루어내면 주변의 세계가  자기 세계로 만들어지게
    됩니다. 고로 자연은 불평불만을 말한  적이 없습니다. 자연의 불
    평불만을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또한  자연이 행복하다고
    말한 적도 없습니다. 그걸 들은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자연은
    행복합니다. 자연의 행복이 나한테 오기 위해서는 결국은 누가 하
    느냐? 내가 해야 됩니다. 세번째의 효에서는 자기 세계를 잘 다스
    리지 못하면 범의 꼬리를 밟아 목숨을 잃게 된다고  했습니다. 네
    번째 효에서는 범의 꼬리를 밟더라도 신중함을 잃지 않으면 위험
    하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세번째  효는 위험의 요소가 내게  있었
    고, 네번째 효는 위험의 요소가 주변에 있기 때문입니다.
     
        다섯번째 양효. 주저없이  결단하여 이행하려  한다.
        바른 일일지라도 위험은 있는 것이다. 강한  자가 군
        주의 지위에 있으니 그 지위는 정당하다.  그러나 강
        한 처사에는 위험이 있기 마련이다.
     
            九五, 決履. 貞려. 象曰, 決履, 貞려, 位正
            當也.
         
      "강한 자가 군주의 지위에 있으니 그 지위는  정당하다. 그러나
    강한 처사에는 위험이 있기  마련이다." 다섯번째 양효입니다. 마
    땅히 [양]이 있을 자리에 [양]이 있으며  제일 높은 자리에 있습
    니다. 그러나 대응관계에 있는  두번째 자리에 같은 양효가  있어
    밀어내고 있습니다. 아무리 제자리에 왕이 앉았다  하더라도 왕밑
    에 장수가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섯번째 양효는, 강한 자
    가 군주의 지위에 있어 정당하므로 주저없이 결단하여 행하려 하
    나, 도전하는 신하가 있어 위험한  상태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
    른 것은 강하게 갖더라도  그것을 밀어내려는 세계도  항상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법칙을 알지  못하면 쫓겨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왕이라고 해서 왕의 자리가 반드시 자기 자리라고 생각
    해서는 안됩니다. 언젠가 반란이 일어나서 쫓겨날 수도 있습니다.
    그 자리에 올만한 사람이 오기 위해서  왕을 제거했다는 것은 말
    이 되지만, 왕만 제거하면 내가 왕이 된다는 것은 절대 보장이 없
    습니다. 반란을 일으켜 왕을 쫓아내면  자신이 왕이될 것 같은데,
    실제로 왕을 쫓아내면 자신도 얼마 안있다가 쫓겨나게 됩니다. 자
    연의 방정식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 법칙을  알고 이
    러한 우(愚)를 범하지 말아야 됩니다.
      천택리는 그런 법칙을 모르고 마냥  내자리라고 생각하고 앉아
    있으면 언젠가 밀려날 가능성도 있다, 단 너를 밀어낸 자가 네 자
    리에 앉을 가능성도 거의 없다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
    리는 포용력을 갖고 세상일을 자기 일처럼 아끼듯이 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어디에 가든지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말에 자기 사랑은 자기가 받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
    자가 시집을 가서 시부모 및 시댁과 반목을 해서는  안됩니다. 거
    기서 수용하고 인내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자가 이러한 덕을 갖추
    지 못하면 아무리 여자가  학벌이 좋고 미모가  뛰어나고 집안에
    돈이 많아도 결국 시집에서 밀려나 외롭게 되어 버립니다.  또 요
    즈음 들어 부잣집 딸 좋아하는 시댁이 많은데, 그런 것 바라는 남
    자치고 제대로 될 수 없다는 것도 이 괘는 지금 증명해주고 있습
    니다. 그런 사람은 얼마후 여자가 암에 걸려 죽든가  하여 홀아비
    가 되는 것으로 인생을 끝내게 됩니다. 신은 그런 걸 아주 교묘하
    게 만들어 놓고 황당히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신
    은 인간이 뭐가 옳고 뭐가 그르다 하고 경우 따지는 것에 꿈적도
    안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의 세계를 잘
    관찰해서 신의 편에 서서 인간사를 모면해 가야지,  인간 편에 서
    서 세상은 불공평하다느니 하는 얘기를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
    니다.
      "강한 처사에는 위험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음성기운을 포
    용하고 있어야 하는데 음을 포용하고  있지 못하다라는 이야기입
    니다. 신은 장난하지만 그것은 공평한 장난이지 결코 어설픈 장난
    이 아닙니다.
     
        여섯번째 양효. 행동을 반성하여  길흉화복의 증상을
        상고한다. 그리하여 잘못된 것을 고친다.  크게 길하
        다. 큰 경사가 있으리라.
           
            上九, 視履考祥. 其旅元吉  象曰, 元吉在
            上, 大有□也.
           
      "행동을 반성하여 길흉화복의 증상을 상고한다." 우리가 주역을
    읽는 이유도 결국 자연의 이치를, 신의 세계의  성리를 알기 위해
    서입니다. 이곳은 음의 자리인데 양이  있습니다. 이 세계에 뜻을
    계속 펼친다는 뜻입니다. 펼칠 뿐만 아니라 음의 자리이기 때문에
    스스로가 심사숙고합니다. 특히 상응하는 관계에 있는  세번째 효
    가 음효이기 때문에 심사숙고하는 비중이 매우 큽니다. 따라서 자
    신의 기분은 마음대로 나가려 하는데 상황을 잘 살펴보고 스스로
    반성하여 상황에 맞추어 나간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
    로 크게 길하고 마지막에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천택리]는 이치를 따름으로써 세상으로부터 오는 위험과 불안,
    근심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천택리]의
    미래상은 하늘이 밑으로 내려오고, 물이 위로 올라가는 것이기 때
    문에 결국 내가 뜻하였던 것이 세상에 충분히 빛을 발할 수 있음
    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뜻을 꿋꿋이 밀고  나가면서도 세
    상으로부터의 유혹과 비난을 견디고, 또 자기 잘난 마음에 빠지지
    말며, 겸허한 자세로 자연의 법칙을 배우고 따라야만  이룰 수 있
    을 것입니다.
      
     유성..…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4788
  • 9. 풍천소축(風天小畜)
    『 가로막는 아내 』
          
    ●     조강지처를 버리는  사람은 덕이  없는 사람입니
    ○     다. 출세를 위해 어려울 때  도와주던 애인을 멀
    ○     리하고 재벌의 딸과 결혼하는  사람은 집안이 평
            안하지 못합니다. 사람이 앞만 보고 가면 바탕이
    ○     망가지게 되어 있습니다. 눈앞의  성공은 못하더
    ○     라도 바탕은 건드리지 말아야 합니다. 바탕이 그
    ○     사람을 잘 받쳐주는 것, 그것이  더 훌륭한 것입
            니다. 그래야만 그안에서  평안히 숨쉬며  살 수
            있습니다.
            
                        풍천소축(風天小畜)
     
        소축(小畜)의 괘는 그 뜻이 크게 이루어지는 것을 나
        타낸다. 유일한 유효(柔爻)가 바른 자리에 있고 상하
        의 강효(剛爻)가 전부 그것에 호응하고 있다. 안으로
        는 굳센 힘을 갖고 밖으로는 어디까지나 순종을 잃지
        않는다. 다만 지금은 서쪽 하늘에서 뭉게  구름이 일
        어날 뿐 아직 비가 되어 만물을 적시지 않는 때이다.
        큰 뜻이 방해를 받아 침체되어 있는  것이다. 노력해
        서 전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小畜, 亨. 密雲不雨,  自我西郊. 象曰, 小
            畜柔得位而上下應之, 曰小畜. 健而選, 剛
            中而志行, 乃亨. 密雲不雨, 尙往也.  自我
            西郊, 施未行也.
           
      보통 인간이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은 반드시 자신에게 어떤 결
    과가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여자가 남자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우는 것은  무엇인가를 원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며, 마찬가지로 남자가 여자에게 버럭 화를 낼  때도 뭔가 자
    신에게 돌아올 것이 돌아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만물의 움직
    이는 힘은 항상 무엇인가 되돌아 오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
    니다.
      우주에는 수많은 작용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것은 항상  안으
    로 되돌아 오는 기운을 통해서 어느  한 지점에 모아지고 있습니
    다. 그런데 보통 인간이 우주와 다른 점은 그 구심점이 바로 자기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만이 강한  자아의식을 가지고
    있어서 자기를 중심으로 세계를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중용의 도를 갖춘 사람이 보통 인간과  다른 점은 구심점이 자
    신에게 고착되어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중용의 도를 갖춘 사람도
    자신의 움직임의 힘이 반드시 어딘가에는 되돌아 오게 하고 있습
    니다. 그러나 그는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하여 어느  곳에라도 모을
    수가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에게 되돌아오게  하려는 것을
    가지고 있어서 흔히 '불화(不和)'를 일으키는 반면에, 중용의 도를
    갖춘 사람은 필요한 곳에 결과를 나타내기 때문에 불화를 만들지
    않습니다.
      우주에는 구심점이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우주는 틀림없이  구
    심점이 있지만 또 구심점  아닌 곳도 없습니다. 지구의  구심점은
    지구의 중심축입니다. 달의 구심점은 달의 중심축입니다. 또 태양
    계의 중심점은 태양에  있습니다. 은하계의 중심축은  블랙홀입니
    다. 이렇듯 우주에는 중심축들이 어디라고 말할 수없을 만큼 무수
    히 산재되어 있습니다. 그곳은 어느 한 곳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
    습니다.
      [수지비]에서는 자신의 뜻이 세상에 하나의 자리로 구축되었습
    니다. 그러나 그렇게 구축되었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자
    연은, 한편으로는 단편적으로 보일지도  모르나, 상당히 미묘하게
    복합적으로 이루어져 있어, 자연과의 상관관계속에서 또  다른 현
    상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회사를 하나 건립하였다고 해서 그 회사가 잘된다는 보장은 없
    습니다. 만들어 놓고 운영을 하다 보면 어려운 점은 또 생기기 마
    련입니다. [풍천소축]은 바로 이와같이  [수지비]에서 확고부동하
    게 구축된 세계가 이제 다시 외부와 입체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8번째까지 단편적으로 쌓아왔다면  그 쌓아온
    것이 이 세상안에서 어떠한  현상을 나타내며, 또 세상의  현상을
    어떻게 하면 무난히 이겨나갈  수 있는가 라는  점을 풍천소축은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이 주역  64괘는
    우주에 존재하고 있는 괘도상의 어느 현상을 나타낸 것이기 때문
    에 설사 좋지 않은  괘라고 하더라도 그 이면에는  반드시 잘 될
    수 있는 원인이 감춰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인간도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그  자체로서 이미 좋은 것
    입니다. 우리는 좋은 것의 전부 다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렇게 만들어져서 세상에 태어났을 때는  완전무결한 상태로 나온
    것입니다. 자연은 미완성이라든가 불량품과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런 제품은 아예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는 이미 완성된  제품으로서 견고한 어느  한 차원의
    세계를 간직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이 가지고  있는
    행복이 곧 우리의 것이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나는 왜 수많은
    사람들 가운에 이렇게 못생겼을까?' '나는  왜 남들처럼 볼 수 없
    고 들을 수 없고 말할 수 없는가?' 하고  자신을 학대하거나 고민
    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풍천소축]은 위의 괘가 바람을 뜻하는 풍괘이고, 아래 괘가 하
    늘을 뜻하는 천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하늘에 바람이 부
    는 현상을 나타내며 머지않아 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하고 있
    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비와같이 만물을 적셔주고  영양분을 줄만
    한 단계는 아닙니다. 더불어서  바람이 잘못 불면 있는  것마저도
    떨어뜨려 버릴 가능성이 있으므로 그 점을 조심하라는 뜻도 내포
    되어 있습니다.
      [풍천소축]의 효를 분석해보면, 아래 내괘가 모두 양효로서  강
    한 양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뜻이 이미 하나로  구축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위의 외괘는, 우리가 알고 있듯이, 양효가 둘이고 음
    효가 하나로서 전체적으로  음성입니다. 그래서 양괘가  기세좋게
    나가려 하나 음성에너지에 그 힘을 흡수당하여 결국 미약한 상태,
    즉 약한 바람이 되었습니다.
      여자를 사귀어 보면 알겠지만 아무리 남자가 기분이 좋다고 하
    더래도 여자가 중간에 한 번 토라지면 문제가 커지게  됩니다. 고
    기압과 저기압이 있는데 고기압이 아무리 기분좋다가도 저기압을
    만나면 끝내가서는 저기압권으로 흡수되어 버리게 됩니다. 남자들
    이 결혼을 해보면 알겠지만 부인이 토라져 있을 때, 그걸 발로 짓
    밟고 강압적으로 끌고 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장래
    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걸  어떻게 잘 다독거리면서 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지만 남자 안에는 여자가  둘이
    들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자가 좀 삐쭉거릴 때  남자가 더
    삐쭉거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앞이 전혀 없는 사람입
    니다. 정말 깡통차고 쌀독을 옆에 놓고 굶어죽기 딱  알맞는 사람
    입니다.
      여자가 조금 삐쭉거릴 때 화가 난다고  해서 절대로 화나는 자
    신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그런 인내력이 없고서는  여자를 리드할
    수 없습니다. 천하를 제패할 사람은  여자에 넘어가지 말 것이며,
    여자를 잘 다스려 나가야  할 것입니다. 여자가 삐쭉거리는  것은
    자연의 법칙상 그런 것이니까, 그것을 가지고 인간성이 어떻다 저
    떻다 따질 것이 아니라 냉철하게 '이걸 어떻하면 내 쪽으로 잘 이
    끌어 갈 수 있는가?' 하고 고민해야  합니다. 이것은 아주 막강한
    인내력이 아니면 넘어가기 힘듭니다. 그 넘어가기 힘든 것을 무사
    히 해냈을때 그 때 비로소 풍전소축이  비를 뿌리는 그런 경지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여자가 한번 삐죽거리고서  1정도 토라져 버리면  남자는 그걸
    다독거리는데 적어도 3정도 아니면 7, 8내지 10까지 힘이 듭니다.
    남자 생각에 1분이면 될일도 여자한테는 10분동안 달래고 달래봐
    야 들을까 말까 합니다.  아무리 하늘의 기운을 가지고  남성적인
    힘으로 강하게 밀어붙이려고 해도 이 여성적인 기운을 뚫고 지나
    가려고 하면 무한이 많은 기운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된다는 이야
    기 입니다.
      풍천소축은 양괘가 위로 기세 등등하게  나아가려고 하는데 위
    에 여자가 있어서 7이라는 에너지가 나가다가 3-4는 빼앗겨 버렸
    습니다. 그래서 소축이 되어버렸습니다. 즉, 여자로 인해서 남자가
    기량을 발휘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 세상 남자가 저마다 기량
    을 발휘하면 이세계는 폭발해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걸  막고 있
    는게 여자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여자가 반드시 있어야  됩니
    다. 그런데 여자들이 잘  몰라서 자기 남편보고 "왜  너는 나가서
    칠칠맞게 돈도 못벌어 오냐?" 하고 바가지를 긁는 여자들이 있습
    니다. 그런 여자들일수록 그 원인이 자기한테 있다고 생각하면 틀
    림없습니다.
      풍천소축이 비록 양의 기운이 나아가려고 하다가 음성기운에게
    그 힘을 빼앗겨 소축이 되어 버렸으나, 중요한  것은 그러나 결국
    끝에 가서는 양성기운이 이긴다는 사실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싸
    우면 결국 남자가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여자는 뜻이라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풀어지기만 하면 됩니다. 남자가 잘 다독거려서
    일단 토라진 것이 풀어지면 여자는 어머니와 같은 마음으로 되돌
    아와서 다시 남성을 감싸며 잘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주역은 역순하기 때문에 외괘가 아래로 내려오고, 내괘가  위로
    올라가면, 풍천소축은 위가 하늘이 되고 아래가 바람이 되어 세상
    을 받아들이고, 받아들인 자신을 분명히 드러내어 이 세상을 풍요
    롭게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은 잘 될  수 있음을 암시하
    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미약하니까 무리하지  말고, 중용의
    도를 지키며 많은 덕을 베풀어 세상을 풍요롭게 하라는 것이 [풍
    천소축]의 교훈입니다.
      "유일한 유효(柔爻)가 바른 자리에 있고  상하의 강효(剛爻)가
    전부 그것에 호응하고 있다." 4번째 음효가 음의 자리에 정당하게
    위치하고 있고 첫번째와 다섯번째의 양효가  음효와 서로 호응하
    고 있으니 바람과 하늘이  이질감을 느끼지 않고  서로 호응하는
    것입니다.
      "안으로는 굳센 힘을  갖고 밖으로는 어디까지나  순종을 잃지
    않는다." 내괘는 모두 양효로서  강한 양성기운을 나타냅니다. 만
    일 위의 괘가 양성  괘라면 양성기운을 배가하여 내품을  것이며,
    모두 음효이면 아래의  양성기운을 모두 흡수해버리는데,  그렇지
    못하고 음이 하나 양이 둘인 음성괘이기  때문에 어느 한 부분만
    을 흡수해서 미약한 힘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아래는 강하
    고 위는 유순하기 때문에 강한 힘이 유순한 것을 통하여 그 뜻이
    진행됩니다. 그러므로 형통하는 것입니다.
     
        대상. 바람이 하늘 위로 분다. 이것이 소축의 괘상이
        다. 바람만으로는 만물을 윤택하게  적셔주지는 못한
        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자신의  문덕(文德)을 닦
        는다.
     
            象曰, 風行天上小畜. 君子以懿文德.
     
      빨리 일어나는 것이 빨리 식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젊으
    면 매사를 의기양양해서 하는데, 아무리 옳은  일이라도 의기양양
    해서 하면 반드시 깨지게 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도 젊은 사
    람 몇몇이 모여 회사를 만들고  5년만에 그룹이 되었으나 십년을
    넘기지 못하고 깨어져 나간 일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물론 옳
    은 일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머리가 좋아서  일도 잘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왜 깨어지지 않으면 안되었는가?
      세상은 매정합니다. 잘한다고 해서 결코 잘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에는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두 개가
    아닙니다. 결국은 하나입니다.  자기가 옳다고 해서  마음껏 자기
    세계를 이 세상에 들쳐내면은 결국 세상에 의해 자신이 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어쨋거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서 세상
    에 강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첫번째 양효. 자신의 정당한 길로  돌아가려고 한다.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길하리라.
     
            初九, 復自道. 何其咎. 吉. 象曰,  復自道,
            其義吉也.
           
      "자신의 정당한 길로 돌아가려고 한다.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자신의 정당한 길이란, [수지비]에서 이야기 했지만, 자신의 뜻을
    구축한 것입니다. 그 구축된 뜻이 정당할 수 있는 것은 [양]의 자
    리에 [양]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 견고하게  자기
    세계를 구축하였고, 그 구축한 자기가  분명하게 있는 것이고, 분
    명한 자기 자신을 이제 이 세상에 펼친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
    문에 길하다라고 했습니다.
      
        두번째 양효. 지도자와 손을 잡고 바른  길로 돌아간
        다. 길하다. 중용의 도를 지켜 스스로 잘못을 저지르
        지 않는다.
           
            九二, 牽復. 吉.  象曰, 牽復在中, 亦不自
            失也.
     
      "지도자와 손을 잡고 바른 길로 돌아간다."  지도자란 다섯번째
    [양]의 자리에 있는 양효입니다. 올바른 자리를 잡고 있으므로 그
    지도자는 바르고 훌륭한 지도자입니다. "중용의 도를 지켜 스스로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 그런데  두번째 양효는 [음]의  자리에
    [양]이 있으므로 자칫 잘못하면 [음]의  형태를 잃어버리기 쉽습
    니다. 때문에 중용의 도를 지켜 강한 양의 기운만  믿고 나아가지
    말고 지도자와 손을 잡고 바른 길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다
    섯번째 훌륭한 지도자에 의해 내가 구축해  놓은 그 뜻은 분명히
    세상에 펼쳐질 것입니다.
      만물이 이쪽을 괴롭힌다 하더라도, 또 만물에게 영향을 주지 못
    한다 하더라도, 아직 바람과 같은 상태이긴 하지만 다섯번째의 훌
    륭한 지도자가 견제하고 있기 때문에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중용
    의 도리를 지킨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자신이 옳다고 하더라도 냅
    다 뛰면 옳은 그것이 허물어져 버리게 됩니다. 달릴수록  안에 중
    심을 항상 간직하고 뛰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중용을 얻을  수 있
    습니다. 중용은 갈 때 올 것을 생각하고, 올 때 갈 것을 생각하며
    행하는 것입니다. 그저 가기만 하거나 오기만  해서는 안된다라는
    것입니다.
      
        세번째 양효. 상행을 강행하려고 수레에 발동을 시작
        한다. 그러나 사음(四陰)이 곁에서 가로막고 상양(上
        陽)이 위에서 받아들이지 않는다. 내닫는  남편과 억
        제하는 아내가 반목한다. 남편이  가정을 다스릴만한
        덕이 없기 때문이다.
     
            九三, 輿說輻. 夫妻反目. 象曰. 夫妻反目,
            不能正室也.
           
      "상행을 강행하려고 수레에  발동을 시작한다. 그러나  사음(四
    陰)이 곁에서 가로막고 상양(上陽)이 위에서 받아들이지 않는다.
    내닫는 남편과 억제하는 아내가 반목한다." 이제 첫번째 두번째에
    서 구축한 자기 자신을 가지고  '한 번 해봐야지.' 하고선  굉장한
    추진력으로 움직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사음이 곁에서  가로 막고
    오양, 육양이 위에서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세번째 양효가
    나아가려고 하는데, 네번째 음효는 단순히 한 개의 음효로 막아서
    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강한 양성 기운 두 개를 등에 엎고 전체
    적인 음성의 힘으로 막아서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번째 양효는 기
    를 펼칠 수 없게 되어있습니다.
      자연이 중용을 준 것은 만물을 스스로 안정되게 유지하려 함입
    니다. 이 세상에 남자들만 있다면 남자들의 양성에너지가 서로 충
    돌하여 세상은 풍지박산나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여자들만 있어
    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아내의 바가지가 없었다면 그 집안은 거
    덜나기 십상입니다. 또 남편도  밖에 나가서 자기 기분대로  마구
    행동하면 아내의 여성에너지가 그리워지게 되는 법입니다. 처음에
    는 아내의 음성에너지가  은근하고 감미롭다가  자기 양에너지가
    막 움직이려고 하면 그것이 그렇게 구속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
    러나 구속을 뿌리치고 나가다 보면 결국 박살나게 됩니다. 그러면
    또 그리운 것이 음에너지입니다.
      중용을 이룬 사람은 자유자재로  남성에너지를 쓸 수  있고 또
    여성에너지를 쓸 수도 있기  때문에 결혼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중용을 얻지 못한  사람은 남자는 여자가, 여자는  남자가
    필요합니다. 남자가 한 집안을 일구어 나가기 위해서는 여자가 있
    어야 됩니다. 두 사람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바탕이 존재하기 위
    해서는 두 사람의 에너지가 균등하게 필요합니다.  만물은 그렇게
    짜여져 있습니다. 남녀가 결혼을 하는 것은 서로 좋아하는 이유보
    다도 그 이전에 자연이 양에너지와 음에너지가 서로 결합되어 있
    어야 안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이미 바탕을 마련해놓았기 때문입
    니다.
      세번째 효에서 양성에너지가 기세 좋게  나아갈려고 하는데 음
    에너지가 한 번 막아섰습니다. 게다가 그 뒤에 두  개의 양성에너
    지가 강하게 눌러버렸습니다. 그래서  세번째는 기를 펼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이 말은  다시 말하면, 기가  드센 여자와 같이
    살면 남자는 기를 못편다는  뜻입니다. 남자가 기가 세고  여자가
    기가 약하면, 남자는 활동하고 여자는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남
    자, 여자 공히 기가 강하면 서로는 매우 짜릿한 사랑을  할 수 있
    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흔히 "우리는 너무나  사랑해서 헤
    어졌다."는 말을 하면서 서로 헤어지게 됩니다.  만일 둘 다 기가
    약하면 그 둘은 서로  만나지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여자가  기가
    너무 세면 남자가 결국은 기를 펴지 못하게 됩니다.  이런 경우는
    통상 여자가 사회적으로 저명한 활동을 하고, 남자는 허드레 일을
    하는 정도에 불과하게 됩니다.
      "남편이 가정을 다스릴만한 덕이 없기 때문이다."  남자가 강한
    여성기운을 누르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덕
    (德)'입니다. 덕이란 자신에게 돌아올 손해를 생각하지 않고 남에
    게 진실한 것을 끊임없이  베풀 수 있는 마음입니다.  인위적으로
    베푸는 덕은 덕이 아닙니다.
      흔히 조강지처(糟糠之妻)를 버리는 사람은  덕이 없는 사람입
    니다. 출세를 위해 어려울  때 도와주던 애인을 멀리하고  재벌의
    딸과 결혼하는 사람은 집안이 평안하지 못합니다. 사람이 앞만 보
    고 가면 바탕이 망가지게 되어 있습니다. 눈앞의 성공은 못하더라
    도 바탕은 건드리지 말아야 합니다. 바탕이 그 사람을  잘 받쳐주
    는 것, 그것이 더 훌륭한 것입니다. 그래야만 그안에서 평안히 숨
    쉬며 살 수 있습니다.
      앞에서 누르는 한이 있더라도 꾸준히 덕을 베풀면, 덕을 통해서
    결국은 자기의 뜻이 펼쳐질 수 있습니다. 뜻은 인위적으로 펼치려
    해서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있는 뜻에 주변이  모여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모여드는 모든  것에 대해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덕입니다.
     
        네번째 음효. 성의를  가지고 일에 대처하면  유혈의
        참사도 없어지고 두려움도 사라진다.  윗사람과 마음
        을 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허물이 없다.
     
            六四, 有孚. 血去척出. 无咎. 象曰,  有孚,
            척出, 上合志也.
           
      "성의를 가지고 일에 대처하면 유혈의 참사도 없어지고 두려움
    도 사라진다." 음효가 있어야 할 자리에 마땅히 제자리를 잡고 있
    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무턱대고 자기 기분에  나갈려고 하지말고
    살펴서 성의를 갖고 대하면 무난히 넘어갈 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보통 무슨 일을 할 때면 통상 1,  2, 3단계까지는 잘 되어 나가다
    가 네번째 단계에 가서 장벽에 부딛칩니다. 이때 과감히  뚫고 나
    가는 마음으로 돌진하게 되면 많은 손상을 입게 됩니다. 이제부터
    는 냉정하게, 기운으로 나갈 것이 아니고 남을  감동시킬 수 있는
    정성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윗사람과 마음을 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음효는 다시 한 번 재정비를 하여  성의를 가지고 일에 대처하라
    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고 그대로 튀어 나가버리면 유혈의 참사를
    당한다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음 다음에 양이  받아들이고 있어
    서 정성을 다하면 윗사람과 마음을 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기예보를 보면 저기압과  고기압이 있습니다. 날씨가  맑은게
    고기압입니다. 구름이  모여있는게 저기압입니다.  일기예보가 왜
    자꾸 틀리냐 하면 고기압의 이동속도를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입
    니다. 저기압이 어느 정도 자리잡는가를 알아야만  고기압이 얼마
    만큼의 속도로 갈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아주 미약한 저기압
    이 자리잡는다 하더래도 고기압이 이것을  지나가려면 오던 속도
    의 3배를 소모해야만 통과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3일  정도는
    더 저기압상태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고기압이 자리잡
    고 있다 하더라도 비록  별볼일 없는 힘이  약한 저기압일지라도
    이 저기압이 한 번 들어오면 한 며칠 동안 날씨는 우중충한 상태
    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기압을 잘 알아야만 고기압을 정
    확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한 집이 잘되는 집인가 못되는 집인가는  그 집 안주인을 보고
    서 그 집 남편을 읽으면 알 수가 있습니다. 남편은 괜찮은데 별볼
    일 없는 사람일 경우는 여자에게 문제가 있는 집입니다. 왜냐하면
    여자의 힘이 더 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남자가 밖에서는  큰 소
    리치지만 집에 들어가면 별볼일 없는게 또 남자입니다. 여자가 한
    번 심지를 틀면 괜히 큰소리를 뻥뻥치면서도 끝내가서는 여보 내
    가 잘못했소 이러고 들어가는게 남자입니다. 남자는  빨리 저기압
    세계를 읽을 줄 알아야 되고 여자는  빨리 고기압권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남자가 집안을 잘 꾸려나갈려면 여자를 잘 움직여
    나갈줄 알아야 합니다. 남자가 여자를 움직이지 못하여 결국 여자
    의 치마품속 안에서 녹아나게 되면 그 남성에너지는 아까운 에너
    지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양에너지가 와서 여기서 딱 막히게 되면,  "그냥 무턱대
    고 더 나갈려고 하지 말아라. 자제하고 살펴라. 성실해라. 있는 그
    대로로 되돌아가서 거기에서  그것이 드러나게끔 하라.  기운으로
    가지 말아라. 가속도로 가지  말아라. 원래 네가  가지고 있는 너
    정도를 가지고 가라."라는 이야기입니다. 즉 "양성과 양성이  붙어
    서 탄력으로 가지 말아라. 탄력을 제어시켜 제어된 상태에서 자기
    바퀴의 알맞는 역량만 발휘해라."라는 말입니다.
     
        다섯번째 양효. 성의를 가지고 남과 손을  잡고 나아
        간다. 부(富)를 독점하지  않고 이웃과 함께  행복을
        나눈다.
     
            九五, 有爭□如, 富以其隣. 象曰,  有爭□
            如, 不獨富也.
           
      "성의를 가지고 남과 손을  잡고 나아간다. 부(富)를  독점하지
    않고 이웃과  함께 행복을  나눈다." 다섯번째  양효입니다. 역시
    [양]의 자리에 [양]이 있고, 가장 높은 지위에  있기 때문에 여기
    에서는 모든 부(富)를 이룰 수 있는 단계에  와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밑의 네번째 효는  음효이고, 위의 여섯번째 효는  양효로서
    음, 양이 고루 갖추어져 있는 중간에 다섯번째  양효가 있기 때문
    에 성의를 가지고 남들을 움직여 나아가고 있으며, 부를 독점하지
    않고 이웃 사람들과 행복을 나누는 상태임을 뜻하고 있습니다. 즉
    음효에게 베풀줄 알고, 또 받아서 쓸  줄도 알기 때문에, 있는 것
    을 더 번창시키기도 하고 나누어 주기도 하면서 위, 아래 음양 모
    두와 손잡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풍
    족하게 된 상태다라는 이야기입니다.
     
        여섯번째 양효. 기다리던 비는 내려 만물을 적셔주며
        천하가 그의 덕을 숭상하고 흠모한다. 그러나 부녀자
        의 상도는 유순함에 있다. 아무리 옳은  일이라도 여
        자가 남자를 억제하는  것은 부도(婦道)에  위태로운
        것이다. 달도 보름이 되면 장차 기울게 되는  법. 이
        것은 흉조다. 군자가 이 이상 더 나아가서는 남의 표
        적을 받으리라.
           
            上九, 旣雨旣處, 尙德載. 婦貞려. 月幾望,
            君子征凶. 象曰, 旣雨旣處, 德積載也.  君
            子征凶, 有所疑也.
     
      "달도 보름이 되면 장차 기울게 되는  법. 이것은 흉조다. 군자
    가 이 이상 더 나아가서는 남의 표적을 받으리라." 우리가 잘된다
    는 것은 어느 한계점이 있습니다. 한계점에서는  한동안 머물러야
    합니다. 군대 계급으로 볼 때, 이등병부터  시작해서 하사관, 위관
    장교, 영관장교 그리고 장군에서  마지막 대장까지 가면 더  이상
    갈 데가 없는 것입니다. 갈 데가 없는 데서 더  가려고 하면 결국
    그 동안의 명예가 손상되고 맙니다. 갈 데가 없는 데서 더 가려고
    하는 것, 그것은 흉한 것입니다.
      원래 주역은 최고로 좋은 것을 가장 걱정하고 있습니다. 최저의
    상태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최고의 상태에 왔을 때는 스스로 내려
    가야 합니다. 더 가려고 하면 차원을 달리해서 가야지 그 상태 그
    대로 가면 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커
    진 것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빨리 지어진 다리는 쉽게  무너집니
    다. 그래서 어느 정도 상태까지 간 다음에는 그 상태를 계속 유지
    해 나가야 됩니다. 왜냐하면 연산력의 장애가 있어서 내가 간다고
    해도 연산력이 따라와주지를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 혼자 막 달려
    간다고 해서 세상이 다 딸려가지를 않습니다. 어느 선까지는 딸려
    오거 그 다음부터는 안딸려오는 것입니다.
      길바닥에 바람이 확 불면 먼지가 딸려옵니다. 먼지가  딸려온다
    고 해서 흙덩어리 전체가 딸려오는 것은 아닙니다. 즉  어느 선까
    지는 딸려오지만 그 이상은 딸려오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바람이
    불 때 먼지가 많이 온다고 해서 이 세상이 딸려오는 것같이 생각
    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그 바람이 가지고 있는 한계가  있기 때
    문입니다. 만일 흙덩이를 딸려오게 하고 싶다면 바람의 폭을 넓혀
    야 합니다. 그 폭을 넓히지 않고 그대로 계속해서  나가면 흉하다
    는 뜻입니다.
      그래서 풍천소축은, "자기가 뜻한 바를 밀고 나가되, 거듭 거듭
    힘차게 해나가면 '음'의 괘가 있어서 딱 한 번  막히게 된다. 세상
    이 음의 괘 상태로 있어 한 번 막히면 거기서 너무 큰 것을 바라
    지 말고 성실하게 있는  자리를 구축해서 지켜라. 그래서  그나마
    있는 자리를 구축시키고 유지하라. 그러다 보면  언젠가 천상천하
    가 바뀔 단계가 온다.  그때까지는 자기의 있는 역량에서  더이상
    망하지 않도록 계속해서 유지할 정도만 이끌어 가도록 하라. 그것
    만으로도 이미 성공한 것이다. 남 앞에 성공을 보일려고 더 큰 것
    을 바라다가는 망하기 쉽다." 라는 뜻입니다.
      풍천소축의 단계를 넘어서 세상을 움직이려면  기량의 폭을 넓
    혀 나아가야 합니다. 기량의 폭을 넓혔을 때 언젠가  세상의 장애
    를 뛰어 넘을 때가 반드시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때 세상은 다시
    바뀌는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일단 자제해야 합니다. 주역은 이와
    같이 여러가지의 곡선을 복합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양성기운이 수없이  많이 작용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아서는 하나의 음성세계입니다. 그래서 위대한 음성세계를 거슬
    림이 없이 그것을 이겨  나가기 위해서는 세상을  다룰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을 다룰려면 먼저 스스로를 다루어야 합니다. 스스로
    를 다룬 자는 냉철한  자입니다. 냉철한 가운데서 세상을  다루어
    나갈 수 있도록 끊임없는 노력을 계속하지  않으면 결코 비는 오
    지 않습니다. 비가 올 수 있도록 우리는 스스로를 항상 눈을 뜨고
    냉철하게 바라보면서 나아가려고 하는 끊임없는  마음을 결코 잊
    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유성..…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4468
  • 8. 수지비(水地比)
    『 공존과 화합 』
           
      ●   인생이 흘러간다는 그 자체,  흐름, 바로 그것은
      ○   이미 길입니다. '어떤 길을 찾아가야 하나?'라고
      ●   생각하는 사람은  길위에서 밤낮  방황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틀림없습니다. 물이 흐르는
      ●   것을 보면, 비록 커다란 돌맹이가 물을 가로막는
      ●   다고 해도, 계속해서 뚫고 지나가면 결국은 돌에
      ●   길이 만들어 집니다. 낙수물에  서까래가 구멍이
            나는 법입니다. 돌이라서 안주할  곳이 못된다고
            '아, 이건 길이 아니다.'하고  튕겨져 나가는 사
            람은 결국 길이 있을 수 없습니다.
     
                              수지비(水地比)
     
        비(比)는 길한 괘다. 비는 서로 친애하고  돕는 것을
        의미한다. 덕망 높은 인자한 군주가 위에  있고 어진
        신하들이 이를 보필하여 상하 마음으로  협력하면 모
        든 인민들도 흠모하고 모여와 순종한다. 이와같이 하
        여 크게 발전하면서 길을 바르게 하여 변함이 없으면
        허물이 있을 수 없다. 중정의 도를 행함으로 상하 모
        두 호응하는 것이다. 천하의 모든 불안정한 무리들이
        찾아와 순종한다. 이러한 귀순의 대열에 늦어지는 자
        는 마침내 나가지도 물러서지도 못하게 되어 화를 받
        게 되리라.
       
            比, 吉. 原筮, 元永貞, 无咎. 不寧方來. 後
            夫凶. 象曰,  比吉也,  比輔也. 下順從也.
            原筮, 元永貞, 无咎, 以剛中也. 不寧方來,
            上下應也. 後夫凶, 其道窮也.
     
      10살때까지만 해도 몰랐는데,  우리가 20세가 되면  세상사는게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어리다보니까 점점 자기 자
    신을 보호하려는 생각이 강해지고,  잘 되어지는 일도 없고  하면
    나이 30에서 40세쯤 되서는 "인생이란  지겨운 것이다."라는 생각
    이 서서히 들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나이가 한 50이  넘어가고
    60이 넘어가면 지겹다고 그랬으면서도 빨리 죽지는 않고, 또 앞으
    로 "죽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라는 생각이 들면, "지겨워도 좋
    다. 오래만 살아다오." 이러면서 이제 죽는 날이  겁나게 되는, 그
    런 불쌍한 인생을 사는게 우리 사람들입니다.
      또 살아가는 동안에도 남 못지 않게  살려고 남과 항상 비교하
    여 더 잘되기 위해 싸우다 보니까, 별로 잘 되는  것도 없이 기껏
    해야 밤낮 거기가 거기인 채로 사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부
    지기수로 사는 사람들  가운데는 포기하고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다."하면서 평범인지 무능인지 분명하지 않은
    채로 그저 무능하게 살아가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인생입니다.
      인간에게는 본능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인간은 몸이 아프면  어
    떻게든지 살려고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큰 수술도  서슴없이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생의  본능(Libido)'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런데 생의 본능 이면에는 반드시 '죽음의 본능(Thanatos)'이 동시
    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바로 음이 있으면 양이 있는 이치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행동하는 것은 살기 위해서 한다고 생각하기 쉬
    운데, 사실은 죽음으로 이끌어 가고 있는 행위입니다. 살기위해서
    음식물을 먹지만 음식물을 씹는 것은 파괴의 행위를 통해 죽음을
    가까이 느끼려는 것입니다. 잠을 자는 것은 죽음을 연습하는 것입
    니다. 아주 어렵고 힘든 상황이 닥치면 삶의 본능에  의해 악착같
    이 살아보려고 하지만 동시에 죽음으로써  모든 고난으로부터 벗
    어나고 싶은 충동도 들기 마련입니다.
      만물은 에너지만 빼놓고는 있는 형태를 바꾸려고 합니다.  사람
    들은 장벽에 부딛쳤을 때 자신을 먼저  걱정하고 살기 위해서 생
    각을 합니다. 그러면 그  중간에는 죽음의 본능이 존재하게  되어
    죽음에 이르는 길을 가게 됩니다.
     
      생명력으로 흐르는 사람은 죽음의 본능을  넘어서게 되어 있습
    니다. 장벽에 부딛쳤을 때 내 걱정이 아니고, "어떻게 하면 갈 수
    있을까?"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나아갈 길이 보이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의식적으로 생각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고 저절로 느껴지
    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어디나 길이고, 길 아닌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가면 길이 안나타나고 무덤이 보이는 사람, 눈앞이 깜깜한
    사람, 이런 사람은 生의 본능에 대한 지나친  애착을 갖다 보니까
    死의 본능이 끌어 당기고 있다고 생각하면 틀림없습니다.
      세상 모든 일을 보면 대소사를 막론하고  처음 시작할 때는 으
    례 어려움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자기 욕심으로, 자기가 뭔
    가 잘되려고 하는 사람은 어려움에 부딛치면 길을 잃어버리기 일
    쑤입니다.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사람은 자신의 욕심을 채워줄  수
    있는 길만을 선택해서 가려하고,  일단 선택해서 뭔가 좋은  것이
    있다고 판단하면 자꾸만 그곳에 안주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뜻을 가지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 생명의  기운으로
    흐르는 사람은 반드시 길을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하늘이
    돕고, 둘째는 땅이 호응하기 때문입니다. "내게 좋은 것이 이것이
    다."라고 생각하여 하는 것이 아니라, "뜻을 이루기 위해 현상황에
    서 중요한 것이 이것이니까, 이것을 지금 나로 인하여 이루어지도
    록 해야되겠다."하고 흐르는 사람은  눈앞에 아무리 어려운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능히 그것을 뚫고 길을  만들어 낼 수가 있습니
    다. 왜냐하면 흐를려고 하는 자는 흐름 그 자체가  이미 길이라는
    것을 가지고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길이 없이 그냥  자기 욕
    심으로 가는 자는 어느 길로 가든지간에 길에 들어서면 전부다 어
    지러울 뿐입니다.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이  부모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졌지만,
    그것은 결코 누가 준 것이 아니고, 자연이 만들어 놓은 자연의 메
    카니즘에서,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이러해
    야 된다." 혹은 "저러해야 된다."하면서 우환을 떨고 있는 것을 우
    리는 '인생'인가보다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생은 '흐른다.'라
    는 것이 가장  진리이며, 그 흐름위에 기쁨이 떠있든지, 슬픔이 떠
    있든지, 떠있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 사정일 뿐 인생 그 자체는 아
    닙니다. 인생이 흘러간다는 그 자체, 흐름, 바로 그것은 이미 길입
    니다. "어떤 길을 찾아가야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길위에서
    밤낮 방황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틀림없습니다.
     
      물이 흐르는 것을 보면, 비록 커다란 돌맹이가 물을 가로막는다
    고 해도, 계속해서 뚫고 지나가면 결국은 돌에  길이 만들어 집니
    다. 낙수물에 서까래가  구멍이 나는 법입니다.  돌이라서 안주할
    곳이 못된다고 "아, 이건 길이 아니다."하고 튕겨져 나가는 사람은
    결국 길이 있을 수 없습니다.  "어느 길을 찾아갈까?" 하고 방황하
    는 사람은 이미 길을 만들어 낼 수 없는  사람입니다. 권능을 찾을
    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단지 흐르는 속안에서 "어떤 길을 만들어
    낼 것인가?"가 우리에게 달려있을 뿐입니다.
     
      흐르다 보면 별의별 것들이 다 끼어들어올 수가 있습니다. 들어
    오는 것 가운데서 나쁜 것은 흘려보내고, 필요한  것은 취하여 쓰
    면 됩니다. 필요없는 것이 들어왔다고 해서 길을 바꿀  필요는 없
    습니다. 우리가 심정으로 움직이지 않는 한은  어디에든지 동화되
    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흘려보낼 수 있습니다. 흘려보낼 것
    은 흘려보내고, 자신은 계속해서 흐르다보면 어느 때인가 이미 넓
    은 강에 도달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날이 오게 됩니다.
      흐르는 가운데 돌덩어리가 들어와서 "나는 흐르지 않고 안주하
    겠다."고 하면 그냥 내버려 두면 됩니다. 돌은 끝끝내 안가겠다고
    하지만, 흐르는 흐름에 의해 자꾸 자꾸 쓸려 나가게 됩니다. 그러
    다 보면 돌은 깨어져 나가고, 닳고 닳아서 반질 반질해지고, 그래
    도 "휴! 살았다."하고 뭉쳐있는 것은 결국 바다에 이르지 못할 것
    입니다.
     
      나쁜 것이 온다고 해서  갈길을 중단하지 말며, 갈길은  가면서
    나쁘고 좋은 것을 가려서  갈 줄 아는 사람이  튼튼한 강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렇게 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인생을  개척해 나
    가는 것, 그런 사람에게 결국 하늘은 길을 터주고 땅이 화합을 해
    준다라는 괘가 바로 [수지비]입니다.
      [수지비]는 물이 땅위에 있어, 물과 땅이 공존하여  화합한다는
    뜻입니다. [지수사]에서는 "뜻이 있으면 하늘이 도와주니 싸워 이
    겨라."하였고, [수지비]는 "이제 세상이 올바른 뜻 하나에 화합한
    다."는 것으로, [지수사]의 과정이 지나면 반드시 이 과정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대상. 대지가 물을 담고 있다. 이것이 [비]의 괘상이
        다. 성왕(聖王)은 이 괘상을 보고 제후를  만국에 봉
        하여 대지가 물을 포용하여 물이 대지에 스며드는 것
        처럼 서로 친애하고 화합하였다.
     
            象曰, 地上有水比. 先王以建萬國, 親諸侯.
     
      우리 인간의 정(精)이라는 것은 화합이 되지를 않게 되어 있습
    니다. 정은 뭉치면 반드시 깨지게  되어 있습니다. 낱개와 낱개는
    뭉쳐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뜻으로 살려면 착한  마음으로 해서는
    안됩니다. 뜻이 있기 위해서는 착한 것도 넘어 설 수 있어야 합니
    다. 뜻을 위해서는 먼저  착한 자기를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노벨이 다이나마이트를 발명하기 위해서 설사 온 재산이 다 날라
    가더라도, 또 자기 동생이 죽어버릴 지라도 계속  노력할 수 있었
    던 그 뜻. 노벨이 다이나마이트를 발명해서 돈이나 벌려고 시작했
    더라면 재산 날리고 동생 죽은 다음에 노벨까지도 자살했어야 합
    니다. 또 노벨이 다이나마이트로 전쟁을 일으켜서 자신이 이 세상
    을 지배하려 하였다면 다이나마이트가 터졌을 때 자신이 먼저 죽
    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벨 자신은 결코 그것을 전쟁에 목적하지
    아니하고 "우리 인간 세상에 얼마만한 편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가?" 라는 차원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또 흐르는 자는 반드시  길을 얻는다고, 노벨이 실험대
    위에서 지쳐서 쓰러졌을 때 땅바닥에  똑똑 떨어지는 다이나마이
    트를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발견은 결코 실험대 위에서 이
    루어진게 아닙니다.
      인간이 성공할 수 있는 요소도 반드시 눈 앞에 있는 것이 아닙
    니다. 옆으로부터 들어 오는 것입니다. 하늘이 알려주는 것입니다.
    스스로 지쳤다고 생각하여 주저 앉는  사람한테는 길이 나타나지
    않는 법입니다. 노벨은 아무리 지친 것같지만 틀림없이 다시 벌떡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성공이 발견된 것입니다. 흐르는 자는 아무
    도 막지 못합니다. 신은 그냥 덥썩  안겨 주는 법이 없습니다. 그
    것을 받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굽이쳐야 됩니다.  흘러야 합니다.
    그렇게 흘렀을 때 만물이  화친하며 뒤따르는 날이  틀림없이 올
    것입니다.
     
        첫번째 음효. 성실한  마음으로 남과 서로  친화하고
        협조하면 허물이 없으리라. 마음에  가득차서 넘칠만
        한 성의가 있으면 생각지 않던 뜻밖의 길한  일이 있
        을 것이다.
     
            初六, 有孚比之, 无咎. 有孚盈缶,  終來有
            □吉. 象曰, 比之初六, 有□吉也.
           
      "성실한 마음으로 남과 서로 친화하고 협조하면 허물이 없으리
    라." 첫번째 음효는 성실한 효입니다. 왜냐면 땅으로서 하늘과 세
    상 모두를 다 수용하면서 분명한 세계를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뜻을 세운다고 땅위에 서서 하늘을 망각한채 자기 고집에
    빠지면 화친이라는  현상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첫번째  음효는
    [양]의 자리에 [음]이 있습니다. [양]의 자리는  남에게 협조하지
    않고, 잘못하면  잘난척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낮춰서
    [음]의 덕을 키워야 합니다. 스스로 자신을 숙여서 그  뜻이 이루
    어질 때까지 세상과 화합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마음에 가득차서 넘칠만한 성의가 있으면 생각지 않던 뜻밖의
    길한 일이 있을 것이다." 순수한 마음으로 모든 불화를 이겨낸 채,
    모든 것을 받아들이면서, "죽는다 하더라도, 몸이 갈라진다 하더라
    도, 나는 가리라. 침묵을 지키면서 나는 가리라."  하고 꾸준히 흐
    르면 뜻밖의 길운이 있다는 말입니다.
       
        두번째 음효. 충심으로 군주에게 친화하고 보살피니,
        길이 그 마음을 지키면 길하리라.
     
            六二, 比之自內.  貞吉.  象曰, 比之自內,
            不自失也.
           
      [음]의 자리에 [음]이 있고, 다섯번째 양효와  정응관계를 이루
    어, 위의 뜻만 거역하지 않으면 크게 길합니다. 그러나 유의할 것
    은 세상사람들과 화친하여 꾸준히 나아가 잘되고 있을때, 까닭 잘
    못하면 뜻이 자기 본위로 변해버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흔히 정치하는 사람들 중에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국민을
    위해서", "민주주의를 위해서" 일한다고 하는데 사실은 자기를 위
    해서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큰 정치인이 될 수 없습
    니다. 땅이 조금 따랐다고 해서 결코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생
    명을 오랫동안 유지하려면  진정으로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야합니다. 국민은 두 번 속지 않습니다. 그
    래서 뜻을 져버리지 말고, 주관적인 자기가  개입되어지지 않는다
    면 대길하다는 것입니다.
       
        세번째 음효. 친화하고 협조하려는  마음을 가졌건만
        주변 이웃에 그럴만한 사람이 없다. 가엾은 일이다.
     
            六三, 比之匪人. 象曰, 比之匪人,  不亦傷
            乎.
           
      "친화하고 협조하려는 마음을 가졌건만  주변 이웃에 그럴만한
    사람이 없다." 이제 내괘에서 외괘로 비약을 할 때입니다. 그런데
    네번째 효가 음효이고, 밑의 효도  음효이고, 대응관계에 있는 효
    도 음효입니다. 그리고  세번째 효의 자리는  [양]의 자리입니다.
    [양]의 자리에 있기때문에 무엇인가 하려고  하는 마음은 있는데
    [양]을 만날데가 없습니다. 그래서 상당히 외로운  처지라고 하였
    습니다.
      그러나 외롭다고 해서 노력하는 것을 잃어서는 안됩니다.  사람
    은 정상의 자리에 오를 수록 외로운 법입니다. 세번째  효는 내괘
    중에서 가장 정상입니다. 첫번째, 두번째에서 대길하여 위에 오르
    게 되면 이제 그것은 남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외롭다고  해서 외
    로움에 빠지면 그 자리는 허물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어느 순간마다 최대의 비약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정상에  오른
    사람은 정상의 외로움과 함께 그 외로움  속에서 빙긋이 웃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의 모든  정을 넘어서서 하늘의 기운과  함께
    빙긋이 웃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곧 인간 세상에 아름다운
    미소의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사람입니다. 때문에 높은  지위에 올
    랐을 때 친화할 데가 없다고 해서  자기 자신을 스스로 침울하고
    우울하게 하지 말고,  여기가 양효의 자리이니까,  행하려는 것을
    잃지 말고 계속 나아가라라고 이 효는 경고하고 있습니다.
       
        네번째 음효. 현명한  군주를 가까이 모시어  보필한
        다. 친화하고 정성껏 도와 신하의 도리를  지켜 변함
        이 없으면 길하리라.
     
            六四, 外比之. 貞吉.  象曰, 外比於賢, 以
            從上也.
           
      "현명한 군주를 가까이 모시어 보필한다." 다섯번째  양효의 뜻
    을 받들어 신하의 도리를 지켜 계속 흐르면 강을 이룰 수 있습니
    다. 강은 물이 흘러가기 때문에  그 역할을 다할 수 있는  것입니
    다. 물이 없는 강은  대접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괄세받지
    않기 위해서는 '흐른다'고 하는 강의 뜻을 잘 받들어야 합니다.
     
        다섯번째 양효. 훌륭한  임금이 왕에 있으니  친화와
        협조의 덕이 뚜렷이 드러나 천하가 우러러  본다. 제
        왕은 사냥을 할 때 몰이꾼을 전면에 배치하고 짐승을
        쫓다가 거꾸로 자기 앞을 향하여 달려오는 짐승은 쏘
        지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는 법. 자기를 향한 자를 보
        호하고 자기를 등진 자를 잡는 것이다.  왕이 이와같
        은 마음으로 자기에게 순종하여 오는 자를 해치지 않
        으니 나라의 인민들이 경계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는
        다. 중용의 도를 지켰기 때문이다.
     
            九五, 顯比.   王用三驅失前禽. 邑人不誠.
            吉. 象曰, 顯比之吉, 位正中也. 舍逆取順,
            失前禽也. 邑人不誠, 上使中也.
           
      "제왕은 사냥을 할 때 몰이꾼을  전면에 배치하고 짐승을 쫓다
    가 거꾸로 자기 앞을  향하여 달려오는 짐승은  쏘지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는 법." 강물은 맑습니다.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흐르
    는 강물에게는 더러운 것도 많이 들어 옵니다. 그러나  강물이 멈
    추지 않고 흐르고 있기 때문에 더러운  것은 더러운 것대로 머물
    르고 흐르는 물은 맑을 수 있습니다. 더럽다고 못해먹는 사람, 어
    렵다고 못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흐르지 않고 안주하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흐르는 사람은 더러운 것이 들어오더라도  일단은 내버려 둡니
    다. 그러면 더러운 것은 더러운 데로 따로 어디서  안주하려고 합
    니다. 물에 똥덩어리가 들어왔을 때 강물은 그것을 거부하지 않습
    니다. 그리고 그것을 억지로 데려가지도 않습니다. 똥덩어리가 못
    가겠다고 바닥에 들러붙어 있으면 내버려 두고  갑니다. 똥덩어리
    는 결국 흐르는 물한테 조금씩 조금씩  깍여 가지고 없어져 버립
    니다.
      "왕이 이와같은 마음으로 자기에게 순종하여 오는 자를 해치지
    않으니 나라의 인민들이 경계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는다." 생명력
    의 흐름은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 흐르는  데에는 반드시
    딸려오는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들어오는 것을 막지 않고  모두
    받아들이면서 생명력은 흐르고 있습니다. 훌륭한 뜻은  바로 그와
    같은 것입니다. 자기를 따르겠다고 오는  사람은 다 받아주는 것,
    따르지 않겠다는 자는 그대로 두는 것, 그렇기  때문에 나라의 백
    성들은 안심하고 따를 수 있습니다.
      어떠한 시비와 어떠한 어려움이 들어온다  하더라도 우리는 다
    받아주고 가야 합니다. 받아주고 가되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됩니
    다. 그러다 보면 떨어져 나갈 것은 자연히 떨어져 나가게 됩니다.
    훌륭한 군주는 그와같은 것이다라고 다섯번째  효는 말하고 있습
    니다.
      흐르는 데는 뭔가 자꾸 딸려옵니다. 집에서 부채를 들고 흔들어
    보면 별의 것들이 다 딸려옵니다. 먼지가 딸려온다고 해서 훌륭한
    뜻은 그걸 막지 않습니다. 내버려 두는 법, 쏘지 않고 두는 법, 그
    러므로 짐승이 제멋대로 달아나는 것은 쏘고 거꾸로 이쪽에 오는
    것, 즉 여기에 합류하려고 하는 것은 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흐
    르는 물에 돌맹이가 들어와서 나는 흐르지 않고 안주하겠다고 하
    면 그냥 내버려 둡니다. 돌은  끝끝내 안가겠다고 하는데, 흐르는
    것한테 자꾸자꾸 쓸려나가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돌은 깨져 나가
    고 닳고 닳아져 맨질맨질해지고, 그래도 "휴,  살았다."고 해서 뭉
    쳐 있는 것, 그것은 바다로 가지 못합니다.
      "나쁜 것이 온다고 해서 갈길을 중단하지 말아라.  갈길을 가면
    서 나쁘고 좋은 것을 가려서 갈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이 튼튼
    한 강을 이룬다." 그렇게 튼튼한 강을 이룰 수 있는 것이 바로 수
    지비의 괘입니다. 그 도중에 들어오는 것들, 좋은 것이든 나쁜 것
    이든, 좋은 일은 받아서 함께 흐르고 나쁜 일은 함께 흐르되 항상
    경계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 흐르면 반드시  이 괘 다음에는 크게
    성공한다는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여섯번째 음효. 친화의  길에 자신만이 뒤떨어져  있
        다. 이미 남의 손뒤에서서 친화할 것이 없다. 처음에
        남과 사귀지 못하였으니 누구와 더불어  마지막을 함
        께 할 수 있겠는가. 흉하다.
     
            上六, 比之无首. 凶.  象曰, 比之无首, 无
            所終也.
           
      "친화의 길에 자신만이 뒤떨어져 있다." 회사원중에  눈앞의 이
    익을 따라 직장을 옮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  100만원을 받고
    있는데 A회사에서 110만원을 준다고 하면 그리로 가고, 또 B회사
    에서 120만원을 둔다고 하면  다시 B회사로 가는 그런  사람입니
    다. 그 사람은 당장은  10만원이나 20만원을 더  벌 수 있습니다.
    그러나 10억이나 20억은 결코 얻을 수가 없습니다.
      눈앞의 가벼운 이득을 보고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이는 사람
    은 결국은 조그만 것마저도 잃어버리게 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결코 외적으로 주어지는 조그마한 이득에  눈이 멀어서는 안됩니
    다. 그런 사람은 이미 크게 뿌리를 깊이 내려 클  수 있는 나무를
    등져버린 것입니다. 훌륭한  뜻을 갖고 뜻을  보필해야지, 이익에
    눈이 어두워 움직이는 사람은 이미 뜻을 잃어버린 사람이기 때문
    에 영원히 훌륭한 자리를 구축할 수 없습니다.
      물이 흘러갈 때는 구축되는  것이 반드시 있어야 됩니다.  물은
    흐르다보니까 강이 되었습니다.  또 흐르다보니까 바다가  됐습니
    다. 아주 커다란 세계를 구축한  것입니다. 우리들의 흐르는 생명
    력은 지구의 3/4이나 차지하고 있는 물과 다름없는 권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알고 뜻으로 흐르는 자가 되어  이 세상
    에 풍요를 구축해내야 하겠습니다.
     
     유성 記..…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3656
  • 7. 전쟁 - 지수사(地水師)
    『  전쟁  』
           
     ●    군대의 기율(紀律)을 확립하고,  불패의 태세를
     ●    갖추며, 치밀한 계획과 작전으로 적을 스스로 굴
     ●    복하게 하는 것이 대장군이 할 일이라면, 올바른
            전쟁의 명분을 세우고, 전쟁간 천하의 인심을 수
     ●    습하고, 전쟁후 정의가 이 땅에 실현되도록 하는
     ○    것, 그것은 제왕이 할  일입니다. 따라서 전쟁을
     ●    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군주와 유능한 장군, 그리
            고 정예 군사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준비되지 않으면 결코 나가 싸울 수 없습니다.
                     지수사(地水師)
        사(師)는 군대를 의미한다. 군대를  움직이려면 훌륭한 통솔자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훌륭한 통솔자가 있어 확고하고  동요하지 않는 지휘로써 능히 다수를 이끌어 천하의 정의를 행할 수 있으면 그는 곧 천하의 왕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강한 신념을 갖고 있으면 서로 포용하여 일제히 협력한다. 위험한 전쟁을 수행하라. 정의의 길에 순응하는 것이다. 비록 한때 천하를 전쟁의 고통속에 몰아넣는 일이 있더라도 인민들은 그것을  이해하고 심복한다. 그러니 전쟁에 승리할 것이다. 무슨 허물이 있으랴.
       
            師, 貞. 丈人吉无咎.  象曰, 師衆也. 貞正也. 能以衆正,
            可以王矣. 剛中而應,  行險而順. 以此毒天下, 而民從
            之. 吉又何咎矣.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은 퍽이나 긴 것같지만 사실은 아주 짧은 것입니다. 어제 기어다니던 애기가 어느날 보면 벌써 걸어다니고 있습니다. 그 아이가 곧 대학교 다닐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어린 아이가 그렇게 자라는 것은 자기  자신이 자라야겠다고 결심해서 자라는 것은 아닙니다. 순전히 자연적으로 자란 것입니다. 우리의 육체라는 것은 눈깜밖할 사이에 변합니다. 어느날  갑자기 흰머리가 나고 죽을 날이 멀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자연은 빠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영혼의  성장은 매우 느립니다. 젊었을때 그 사람의 영혼이 늙었을 때와 별 차이가 없습니다. 영혼은 자연적으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흔히 마음의 벽에 막혀 전전긍긍하는 사람은 영혼이 성장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한 때 기분으로 주먹을 불끈 쥐고 "열심히 해 나가야지." 하고 마음 먹은 사람은  얼마 안 있어 "다 그런 거지 뭐." 하며 자포자기할 사람입니다. 그런 마음은 힘없는 마음입니다. 마음의 힘은 힘을 쓰지 못합니다. 진짜 일하는 것은 마음의 즐거움이 사라진 뒤에 그 때 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즐거움, 괴로움, 이러한 것들은 자기 마음에 자기가 취해 있다는 뜻입니다. 세상에 기쁨과 괴로움이 함께 공존하는 이유는 그것이 곧 이 세상의 존재 원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역경과 곤란을 통해 나아가는 기쁨이 있다는 것은 바로 영혼의 성장을 의미하는 것이며 바로 이것이 우주의 생성 발전하는 창조적 자유의식의 생명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개개인은 자기의 생명력을 갖고 스스로 자랄 줄 알아야 됩니다. 영혼이 자라기 위해서는 자신을 숙일 수 있어야 합니다. 공부하기 싫고 귀찮아도 귀찮은 자기를 숙였을 때 비로서 조금씩 실력이라는 것이 쌓여지는 것입니다. 실력이 어느날 갑자기 올라가는 것은 다음날 덜그덕 내려갈 실력입니다.
     
      서울대학교 출신들을 보면 머리가 별로 좋지 않습니다. 머리 좋은 천재는 기억하는 속도보다 잊어버리는 속도가 더 빠릅니다. 잊어버리는 것이 빨라야지 센스가 빠를 수 있습니다. 잊어 먹지 않고 머리 속에서 맴돌고 있으면 새로운 것이 눈에 잘 들어오지 못하는 법입니다. 그런데 서울대학교 학생들은 교과서를  달달 외우고, 그것을 잊어 먹지 않아서 서울대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서울대학교 출신들은 위대합니다. 그렇게 교과서와 씨름하며 한결같이 외워 나갈 수 있었던 것. 무언가 뜻한게 있으면 그것을 위해서 자기 어려운 여건을 극복하고, 하기  싫은 나에 빠지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었던 것. 그것이 위대한 것입니다. 이 세상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렵다고 해서 자기 마음의 벽을 넘지 못하고 머물러 있다면 어려운 것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어렵더라도 해결을 위해 하기 싫은 자기  마음을 넘어 꾸준히 해야만 어려운 것이 극복됩니다. 하늘은 그렇게 꾸준히 하는 사람을 돕는 법입니다. 노벨상을 창설한 노벨은 다이너마이트를 만들기 위해 무수한 실험을 했습니다. 실험을 위해 돈도 다 날리고 심지어 동생마저도 잃었습니다. 그러나 노벨은 "사람이 두 손으로 삽질을 하는데, 천명 만명이 삽질하는 것을 단 한 번에 해낼 수 없을까?" 하는 뜻으로, 그 어려운 역경이 그만두라고 노벨의 마음을 유혹했지만 거기에 빠지지 않고, 꾸준히 해  나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실험실에서 우연한 폭발이 있었고, 비록 노벨은 그 폭발로 다쳤지만, 이로써 다이너마이트는 발명되었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습니다. 하늘은 냉정하여 절대로 선뜻 주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뜻을 가지고 꾸준히  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길을 열어 줍니다. 노벨이 성공한 것도 결코 실험대 위에서 발견된 것이 아닙니다. 우연한 폭발로 노벨도 기절해서 나가 떨어졌을 때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성공할 수 있는  성공의 요소가 반드시 눈 앞에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옆으로부터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이는 하늘이 알려 주는 것입니다.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어려운  여건안에서 벌어지는 자기를 숙일줄 알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게 스스로 자신을 숙이고 인내하는 인내력, 이것을 갖추지 않으면 싸워서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수사는 자기 잘났다고 당당하게  나가기 보다는 항상 위험이 올 것을  미리 예측하면서 받아들일 자세를 가지고 나아갔을 때 이길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소인배들은 위험한 일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위험한 일들을 피하면서 좋은 일만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본인은 잘살기를 원하지만 항상 결과는 서로 시기하고 싸움질 하면서 피곤하게 살게 됩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 그 어려움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삼킬 수 있다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렇게 이 땅에 일어 나는 모든 것들을 다 받아들이고, 하늘의 세계도 다 받아들이면서, 꾸준히 해 나가는 의지를 확립하였을 때 하늘은 도와주며, 이 정도가 되어야지 비로서 나가서 싸울 수 있습니다.
     
      [지수사]는 땅을 나타내는 외괘가 모든 것을 받아들일 태세가 되어 있고, 물을 나타내는 내괘가 위아래로 받아들임으로써 대지가 물을 가득 품고 있는 형상입니다. 즉 어떠한  어려움이라도 받아들이고 극복할 수 있는  힘이 갖추어져 있다는 뜻입니다. 이제 이 힘을 어떻게 잘 쓰느냐가 남아 있습니다.  "사(師)는 군대를 의미한다." 여기서 '사(師)'는 고대 군대의 숫자를 나타내는 말로서, 지원부대 없이 단독으로  나가서 싸울만한 군대의 크기를 말합니다. 오늘날 개념으로 하면 사단급 정도의 부대 규모입니다. [지수사]는 이 정도의 세력이 있어야만 나가서 싸울만 하다고 말합니다. 조무래기 몇 명 정도만 가지고  나가서 싸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법입니다.  [지수사]는 전쟁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그 전쟁은 남을  수탈하기 위한 전쟁이 아니고, 하늘의 뜻에 위배됨이 없이 만물을 위해서 하는 전쟁을 말합니다. 하늘의 뜻이 이 세상에  펼쳐지려면 전쟁이 불가피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연에는  창조와 파괴가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 전쟁이 반드시 총칼로 하는 전쟁이 아닐 지라도 어떤 형태로든 창조와 파괴를  위한 전쟁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최소한 [지수사]가 나타내는 그 정도는 되어야만 하늘의 도움을  통해 이길 수 있습니다.
     
      "군대를 움직이려면 훌륭한 통솔자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훌륭한 통솔자가 있어 확고하고 동요하지 않는 지휘로써 능히 다수를 이끌어 천하의 정의를 행할 수 있으면 그는 곧 천하의 왕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마음의 벽에 막혀 전전 긍긍하는 사람. 그러한 사람이 군의 통솔자가 되어서는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확고하고  동요하지 않는 분명한 뜻을  세우고 명확한 지시로 능히 다수를 이끌어 갈  수 있는 통솔자가 사단급 규모의 군대를 거느렸을 때 비로서 전쟁을 할  수 있으며, 이긴다는 보장이 있는 것입니다.
     
      "강한 신념을 갖고 있으면 서로 포용하여 일제히 협력한다." 마음 속에 스스로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이 저절로 밖으로 드러나게 되며 결국 외부에서 일제히 호응하는 현상이 벌어지게 됩니다. 안에 분명한 신념이 있으면 반드시 승리할 것이나 그렇지 못하면 패배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단  열 두명의 제자를 이끌고 다녔을 때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얕잡아 봐서 예수와 그의 열 두 제자들을 모두 죽여버렸습니다. 예수와 그 제자들의 몸은 죽어서 없어졌지만 그 안에 있는 것은 아직까지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안에 어느 누구도 꺾을 수 없는 강한 신념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현실과 싸우는 것이 보통 우리의 전쟁입니다. 그 전쟁에 이기느냐 지느냐는  외부의 호응에 있는 것이나 그 호응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고 먼저 내부로부터 나 자신과의 전쟁에 달려 있습니다. 자기 전쟁에서 지는 사람은 한 때 외부와 싸워 이겼다 하더라도 그것은 죽어 없어져 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영혼이 나의 마음을 뚫고 나왔다면 그것은 아무도 막을 수 없는 금강의 힘이 될 것입니다.
     
      "위험한 전쟁을 수행하라. 정의의 길에  순응하는 것이다. 비록 한때 천하를 전쟁의 고통속에 몰아넣는 일이 있더라도 인민들은 그것을 이해하고 심복한다." 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전쟁의 명분(뜻)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전쟁은 군대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군대가 전쟁을 하려면 국민의 지지가 있어야 합니다. 한 번 군대가 출동하기 위해서는 수 만의 무기와 수 억의 군수 물자가 조달되어야 합니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곧 전쟁을  치룸으로써 발생하는 모든 고통을 국민이 흔쾌히  감수하는 국민의 지지도입니다. 전쟁의 명분이 천하의 정의에 부합되면 비록  한 때 국민을 전쟁의 고통속에 몰아 넣는 일이 있어도 국민은 그것을 이해하고 심복하는 법입니다. 상하가 단결하고 국민과 군대가 힘을 합쳐 협력하면 아무리 강대한 적이라도 능히 대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쟁의 명분이 바르지 못하여 국민이 분열하면 아무리 강대한 나라라도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대상. 대지가 풍부하게 물을 저장하고  있다. 이것이
        [사]의 괘상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대지처럼
        백성을 포용하고 양육한다.
     
            象曰, 地中有水師. 君子以容民畜衆.
     
      "대지가 풍부하게 물을 저장하고 있다." 대지를 양육할 수 있는 힘, 그것이 곧 대지에 숨겨져 있는 안의 물입니다. 이것이 있는가 없는가? 남을 구제하려면 먼저 자기 구제가 되어져야만 가능합니다. 안에 물이 들어가 있지 않은 사람이 남의 목을 어떻게 적실 수 있겠습니까? 땅을 파면 물이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만 목이 마른 사람들을 동원해서 땅을  팔 수 있는 것이지,  땅에 물이 있는지 없는지 분명하지 않은 사람이 사람들을 동원해서 땅을 파면, 만약 몇 번 파다가 물이 나오지 않으면 먼저 그 사람을 죽여버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안에 먼저 분명한 신념을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스스로 싸워 이긴 자가 만물과 싸워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지수사는 말하고 있습니다.
       
        첫번째 음효. 군을 움직이는 데는 먼저 기율(紀律)을
        엄정하게 하라. 기율이 문란해지면 일시적인 승리를
        얻었다 해도 결국은 흉한 것이다.
     
          初六, 師出以律. 否臧凶. 象曰, 師出以律, 失律凶也.
     
      "군대를 움직이려면 먼저 기율(紀律)을 엄정하게 하라." 기율이란 군기(軍紀)과 규율(規律)입니다. 군기는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에 부딛치더라도 자신의 마음을 숙이고  의연히 대처해 나가는 군의 기강입니다. 규율은 이러한 기강을 확립하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질서와 법도입니다. 따라서 기율은 전쟁에서 적과 부딛쳐 깨어지지 않는 강인한 힘이 되는 근간입니다. 그 기율을 군 내부에 확립하는 것. 그것이 불패(不敗)의 태세를 갖추기 위해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기율이 없으면 일시적으로 승리하더라도 결국 기강이 문란하여져서 곧 패배하게 됩니다. 눈앞의  승리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승리를 위하여 그 바탕부터 확고히 다지지 않으면 안됩니다. 엄정한 기율이 곧 나중에 가면 부닥쳐서 깨어지지 않는 힘이 될 것입니다. 그 기율은 스스로  안에서 세워야 합니다. 사사로움에 치우치지않고, 마음의 장애를 벗어나 모든 마음을 수용하고 모든 마음 위에 우뚝 설 수 있는 기운, 그것이 바로 긍지이며,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하는 위대한 자연력 바로 그 자체인 것입니
    다.
     
      뜻이 이 세상에 펼쳐지려면 전쟁을 반드시 치루어야 합니다. 그것은 자연의 창조와 파괴가 동시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또한 그 전쟁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기강이라는  순수한 힘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제 그 힘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것이 없으면 조그만 승리는 있게 되더라도 그 승리는 곧 깨어져 버릴 것입니다.
     
        두번째 양효. 군대  안에 있어서 천자(天子)의  깊은
        신임을 얻어 길하다. 만국(萬國)을  굴복시켜 여러차
        례 상을 받는다. 무슨 허물이 있으랴.
     
            九二, 在師中.  吉无咎.  王三錫命. 象曰, 在師中,
            吉. 承天寵也. 王三錫命,  懷萬邦也.
     
      "군대 안에 있어서 천자(天子)의 깊은 신임을 얻어 길하다." 두번째 양효입니다. 양효가 내괘의 세계에서 우뚝 서있습니다. 군의 기율을 확립하니 상하의 신임을 얻어 높이 올랐습니다. 그리고 외괘의 세계에 대한 깊은 신임을 얻었습니다. 천자란 하늘을 뜻합니다. 모두 음효로 이루어진 외괘가 하늘의 뜻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두번째 효가 다섯번째 음효와 정응(正應)관계를 이루어  깊이 화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늘의 도움을 받기에  충분하다는 말입니다. 원래 [사] 괘는 완전한 괘가 아니라 미숙한 괘입니다.  첫번째 양의 자리에 음효가 있고 두번째 음효의 자리에 양효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체적으로 볼 때 아직 미숙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미숙하지만 이 정도가 되어야만 시작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아직 만물을 자유 자재하게 움직일 수 있는 실력이 갖추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실력은 흙속에 숨겨져 있습니다. 이 정도가 되어
    야만 일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정도가 되면 하늘은 도와줍니다. 그래서 군대안에서 천자의 깊은 신임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늘의 깊은 신임을 얻게되는가?  먼저 자신이 자기한테 질 수 없는 확고한 기강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자기 심정때문에 이랬다 저랬다 하는 사람은 하늘이 도와줄 수 없습니다. 아니꼬움, 분함, 슬픔, 즐거움 등 심정에 장애받고 있지 않다면 하늘은 항상 충만과 영광과 박수갈채를  잊지않고 보내주고 있습니다.
       
        세번째 음효. 적지(敵地)에 출진하면 크게 패하여 시체를
        마차에 가득 싣고 돌아오리라. 흉하다.
     
            六三, 師或與戶. 凶.  象曰, 師或與戶, 大无功也.
     
      "적지(敵地)에 출진하면 크게 패하여 시체를 마차에 가득 싣고 돌아오리라." 나 자신이 쓰러지지 않을 기강을 자신만만하게 가지고 있다고 했을 때, 그때 사람은 조심을 해야됩니다. 물속에 들어가기 전에는 모르지만 물속에 들어가면 수압을 느끼게 됩니다. 수압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이 물속에 들어가면 물에 빠져 죽기 십상입니다. 수압을 느끼는 사람은 물에서 물을 피할 수도 있고, 물을 갖고 놀 수도 있고, 물에서 자기 자신을 보존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준비를 철저히 하였더라도 살피지 않으면 안됩니다. 살피지 않고 나아가면 아무리 하늘이  도와준다고 하더라도 언젠가 위의 네번째가 음효인 이  상황에 반드시 부딪치게 됩니다. 음과 음이 맞부닥치면 서로 당겨서 설 자리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세번째에서는 "뛰어나가지  말아라" "발을 조심하고  천천히 걸어가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두번째에서 공을 세우고 천자의 깊은  신임을 얻었다 하더라도 출전(出戰)하여 반드시 이기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전쟁은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준비가 다 갖추어져 있더라도 적에게 허점이  없으면 적을 쳐서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병법에, "패배의 요인은 나에게  있으나, 승리의 요인은 적에게 있다."고 했습니다.
     
      나의 준비가 갖추어졌다고 해서 적의 능력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강함만 믿고 전쟁을 일으키면 전쟁에 이길 확률은 반밖에 되지 못합니다. 적이 나보다 준비가 없고 약하면 이길 것이고 적이 나보다 준비가 많고 강하면 질 것이 뻔합니다. 그것은 진정한 승리가 아닙니다. 진정한 승리는 백 퍼센트 완전한 것이어야 합니다. 세번째 음효는 양의 자리에 음효가 있으면서 대응하는 여섯번째도 음효입니다. 또 바로 위 네번째 효도 음효로서 음성기운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혀 양성기운을 받지 못하는 음입니다. 그런데 세번째가 싸우겠다고 나간다면 어떻게 되느냐? 결국 전쟁에 크게 패하여 시체를 마차에 가득 싣고 돌아오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관망을 해야 합니다. 진격을 할 때는 숨어있는 양성에너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세번째는  안타깝게도 양성에너지가 없기 때문에 자기 자신만 믿고 나아가 싸우면 지게 되는 것입니다.
     
        네번째 음효. 앞으로 진격하기 어려운 것을  알고 물러난다.
        이 병법의 상도(常道)를 지킨다면 허물은 면하리라.
     
            六四, 師在次. 无咎. 象曰, 在次, 无咎, 未失常也.
           
      "앞으로 진격하기 어려운 것을 알고 물러난다."  네번째 음효는 위아래 모두가 음효로 둘러싸여 있고, 대응관계인 첫번째 효도 음효로서 나아가기가 곤란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다행이 음의 자리에 음효가 있어 나아가기 곤란한 것을 알고 물러서기 때문에 허물을 면할 수 있습니다. 사실 네번째 음효는 상하 관계 및 대응관계가 전부 음 대 음으로서 좋지 못합니다. 그러나  음의 자리에서 제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에 흉칙한 짓은 안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럴 때는 오히려 한 걸음 물러서라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진하기 어려울 때  물러서는 것. 그것은  병법의 상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진격을 고집하는 것.  그것은 어리석음입니다. 어려울 때 물러서면, 비록 그 순간에 이기지는 못하였으나 최소한 앞으로 이길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줄 알면서도 무리하게 싸워 패배한다면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적을 알기 위해서는 진격에 앞서 먼저 적을 살펴야 합니다. 충분한 정보를 획득해야 합니다. 만일 적의 보안태세가 굳건하여 알 수 없다고 하면 나아가선 안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갔다면 불리할 때 즉시 후퇴할 수 있는 융통성을 가져야 합니다. 승리란 반드시 적을  물리적으로 파괴하여야만 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적의 예봉을 피해 후퇴하지만 적으로 하여금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인식시켜 스스로 전투를 포기하게 한다면 그것도 이기는 것입니다. 오히려 적을 물리적으로 파괴해서  얻은 승리는 그만큼 나의 피해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그리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
     
        다섯번째 음효. 사냥에서  포획물을 얻었다.  이제야
        말로 대의명분을 분명히 내걸고 왕명을  받들어 불의
        한 무리를 토벌함이 좋다. 불의의 전쟁이  아니기 때
        문에 허물이 있을 리 없다. 다만 장수에는 뛰어난 인
        물을 임명해야 한다. 실력이 없는 자를  장수에 임명
        하면 시체를 마차에  싣고 패주하는 참패를  당한다.
        비록 정의의 싸움이라도 결과는 흉하리라.
     
           六五, 田有禽. 利執言, 无咎. 長子師師, 弟子輿戶,
           貞凶. 象曰, 長子師師,  以中行也. 弟子輿戶, 使不當也.
           
      다섯번째 효는 두번째효와 음효 대 양효로 정응관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이길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양효의 자리에 음효가 있기 때문에 이기는 방식이 틀립니다. 양성에너지는 악의 세계를 쳐부수어서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음성에너지는 나아가서 취하는  것이 아니라 적으로 하여금 스스로 망하게 하는 방식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토끼를 잡는데 양성에너지는 돌을 던져 토끼을 맞추어 잡는 것이고, 음성에너지는  덫을 놓어 토끼가 걸려들게 하여 잡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사냥에서 포획물을 얻었다."라고 비유해 놓았습니다.  "불의의 전쟁이 아니기 때문에 허물이 있을 리 없다."  정의의 전쟁은 평화스러운 나라에 침략을 하여 자기 욕심을 채우는 침략전쟁이 아닙니다. 자기 욕심에 사로잡혀 무분별한  침략을 일삼는 무리들을 토벌하여 평화를 지키는 방어전쟁입니다. 그래서 정의의 전쟁은 먼저 적을 공격하지 않고 적을 유인하여 격멸하는 방식을 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승리는 사전 매우 치밀한 계획과 대담성, 철저한 준비가 갖추어져야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요, 훌륭한 지략과 덕성을 갖춘 대장군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두번째 효에서 말한 그런 사람
    만이 적격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전쟁에서 이기려면 훌륭한 적임자를 장군으로 임명하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실력이 없는 자를 장수에 임명하면  시체를 마차에 싣고 패주하는 참패를 당한다." 다섯번째가 음이기 때문에 전쟁에 나아가려면 양의 기운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대응관계에 있는 두번째 효의 기운과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토끼를 잡으로면 덫을 쳐놓고 기다리되 토끼 몰이하는 사람을 잘 써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정의로운 큰 일을 하겠다고 뜻을 세웠으면 그 밑에 있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을 써야 합니다. 어떠한 위험이 있더라도 그것을 무릅쓰고 할 수 있는 사람, 어려움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을 장군으로 삼아야 합니다.
       
        여섯번째 음효. 전쟁이 끝난 후 천자는  공신을 제후로 봉하고
        경(卿),  대부(大夫)에 임명한다. 그러나 아무리 전쟁에 공적이
        있다해도 소인(小人)을 이런 지위에 앉히면 안된다. 장차 반란
        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上六, 大君有命. 開國承家. 小人勿用.  象曰,
            大君有命, 以正功也. 小人勿用,  必亂 邦也.
     
      "아무리 전쟁에 공적이 있다해도 소인(小人)을 이런 지위에 앉히면 안된다." 보통 우리 주위에는 자기가 똑똑하다고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절대로 출세할 수 없습니다. 성공할 수 없습니다. 자기 혼자 아무리 똑똑해 봐야 세상의 입장에서 볼 때는 지극히 미미한 존재에 불과할 뿐입니다. 진정으로 똑똑한 사람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이루어지게끔 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똑똑한데 왜 세상이 알아주지 않느냐? 그런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게 필요한 것은 똑똑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반드시  해낸다라고 하는 뜻을 향한 희생의 자세입니다. 그것이 그 사람을 구할 것이며, 성공을 하게 할 것입니다. 회사에서도 스스로 똑똑하다고 믿는 사원은 상사에게 불만하고 대들기 때문에 회사를  어지럽히게 됩니다. 결국 똑똑한 사람들은 어디가서 발 붙일 곳이 없게 됩니다. 항상 자신의 똑똑한 것을 스스로 무서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노자는 "우주를 얻으려면 겸허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큰 일을 이루어 낸 다음에는 포상을 하는데  그 포상은 겸허한 사람에게 하게 됩니다. 또 사람을 선발해 쓸 때도 똑똑한 사람을 쓰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겸허한 사람을 써야 합니다.  왜냐면 똑똑해 보일려고 하는 사람은 진정으로 똑똑한 것이 아니고 언젠가는 반란을 일으킬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끝나면 정의가 천하에 두루 퍼질 수 있도록 덕 있는 자를 중용(重用)하고, 제도를 정비해야 합니다. 단순히 전쟁 그 자체로 모든 것이 종료된다면 전쟁의 의미를 찾을 수  없습니다. 처음에 전쟁을 시작할 때 세운 대의명분, 그것이 이 세상에 펼쳐지도록 하는 것이 바로 전쟁을 한 목적이었습니다. 그 뜻은 절대 망각되어져서는 아니 되며 항상 가슴속에 살아있어야  합니다. 전쟁간에 한 때 어려운 역경이 닥치고, 전쟁의  희생자가 많이 났다고 해서, 본래의 명분을 망각한 채 무분별하게 적에  대한 살상을 자행하는 것, 이것은 하늘의  뜻을 대신하는 정의의 전쟁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이 하는  전쟁입니다. 그 전쟁을 통해서는 결코 창조가 이루어질 수 없으며, 오로지 살륙과  파괴만 있을 뿐입니다. 군대의 기율을 확립하고, 불패의 태세를 갖추며, 치밀한 계획과 작전으로 적을 스스로 굴복하게 하는 것이 대장군이 할 일이라면, 올바른 전쟁의 명분을  세우고, 전쟁간 천하의  인심을 수습하고, 전쟁후 정의가 이 땅에 실현되도록 하는 것, 그것은 제왕이 할 일입니다. 따라서 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군주와 유능한 장군, 그리고 정예 군사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준비되지 않으면 결코 나가 싸울 수 없다는 것이 바로 [지수사]가 주는 교훈입니다.
     
     유성..…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3881
  • 6. 천수송(天水訟)
    『  송사와 판결 』
     
            가장 어려운 것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고도의 인내와 지혜와  용기로써 먼저 나
            를 이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써 패배할
            수 없는 나가 먼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어떠한 적이 나타나도 결코 패배하지 않으며, 이
            기되 무리하게 싸움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자
            연적으로 승리가 되어지게 할  뿐입니다. 그것이
            야 말로 진정한 승리입니다.
                    
                       천수송(天水訟)
     
        송(訟)괘는 위로 하늘을 상징하고 아래로  물을 의미
        하는 괘이다. 위는 건괘로서 강하고 강한  것을 나타
        내며, 아래는 음효가 많아서 물의  위엄을 상징하는,
        즉 음험함을 나타내는 괘다. 위에 강강한  자가 있어
        아래사람을 학대하고, 아래는 음험한 자가 있어 윗사
        람과 투쟁하려고 하는 상태다. 송은 재판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남과의 투쟁을 말한다. 송은 자신의 성실성
        이 남에게 통하지 않고 방해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다. 그러나 싸움(소송)은 결코 좋은 일이 못된다. 잘
        반성하여 잘못을 범하지 않는, 스스로 두려워하는 마
        음으로 남에 대한 적의를 버리면 길할  것이다. 그러
        나 끝까지 싸움을 고집하면 흉하다. 중정(中正)을 존
        중하고 현자의 중재를 받는 것이 좋다. 큰 강을 건너
        가는 듯한 그런 위험을 범하면서까지  기어이 다투어
        보려고 한다면 마침내 심연에 빠져 들어 비참한 결과
        로 끝날 것이다.
       
            訟, 有孚窒. 척中吉.  終凶. 利見大人. 不
            利涉大川. 象曰,   訟上剛下險. 險而健訟.
            訟有孚窒, 척中吉,   剛來而得中也. 終凶,
            訟不可成也. 利見大人, 尙中正也, 不利涉
            大川, 入于淵也.
     
      참을 인(忍). 칼 밑의 마음. 칼로  에이는 듯한 것을 스스로 묵
    묵히 지나가는 마음. 그것이 곧  인내입니다. 인내는 단순히 주어
    진 상황속에서 오는 어려움을 참고 견뎌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10
    년 동안 취직을 못한 사람이 취직을  못해서 굶어 죽어야 되는데
    죽지 않고 사는 사람, 그러한 사람을 인내하는 자라고 말하기에는
    객관적으로 내키지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평생  가난하게 살면
    서 가난을 견녀나갔다고 해서 그것을 인내라 하지 않습니다. 인내
    는 뜻이 분명한 사람이 아직 때와 상황이  여의치 않았을때, 하고
    자 하는 의지를 간직한 채 모든  역경을 묵묵히 견디면서 끝내가
    서는 그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는 것입니다.
      온 세상 자연 가운데 인내없이 성장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인내속안에서 반드시 싹이 나고  꽃이 피는 것이지  인내 없이는
    싹, 꽃이라는게 필 수 없습니다. 봄이  되어 우리가 밖에 나가 흙
    이 있는 곳에 가면 아주 여린 싹들이  돋아나는 것을 볼 수 있습
    니다. 어느날 갑자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질 때, 사람도 참고 견디
    기 힘든 그 빗줄기를 싹은 묵묵히 받아내고 있습니다.  뜨거운 햇
    빛이 내리쪼여도 묵묵히 받아들이며 참고 견딥니다.  어린 아이가
    밟아도 다시 지긋이 일어나며 꽃을 피우는 것을 향하여 끊임없이
    자랍니다. 그래서 맨드라미, 채송화,  오랑캐꽃, 이런 것들이 꽃을
    피우는 것입니다.
      그 싹에 비하면 우리 인간들은 너무나 나약하고, 말도 많고, 불
    만도 많습니다. 하물며 싹도 모든 자연 여건 안에서  굳세게 자라
    는데 왜 우리 인간이, 싹보다 강한  인간이, 해내지 못하는가? 이
    것을 경고하는 것이 바로 [천수송]입니다.
      여름에 수영을 할 때, 물에 들어가기 전에 물은 아무 것도 아닙
    니다. 손으로 치면 그냥 갈라지고, 발로 밟으면 첨벙 첨벙 튀기며
    흩어지는게 물입니다. 그러나 막상 물속에 들어가면  물은 커다란
    압력으로 우리를 압박합니다. 우리는 물의 힘에 눌려 몸을 마음대
    로 놀리지 못합니다.
      이 사회도 물과 마찬가지로 뛰어들기 전에는  모든 것이 잘 될
    것 같지만, 막상 사회 속에 뛰어 들면, 물이  압력을 갖고 있듯이,
    눈에 보이지 않는 압력이 밀려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
    은 힘들다고 느껴지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될 것은,
    자연이 꽃을 만든 이유는 꽃을 피우라고 만든  것이지, 꽃이 죽으
    라고 만든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싹이 자라서 꽃이  필 때까
    지의 인내. 그러한 인내를 통해서  꽃은 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
    로 우리 인간도 풍요의  그 날까지, 싹이  굳굳히 자라듯이, 세상
    속에서 굳굳히 서서 풍요를 창조해 내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가 뜻을 세우고 분명한  세계를 얻은 다음  나만이 옳다고
    하는 그 세계를 막상 이 세상에 펼치려고 할 때,  이 세상은 들어
    가기 전까지는 맹물같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실제로 그 안
    에 들어가면 엄청나게 큰 힘에 의해서 압력을 받게  됩니다. 이때
    나의 세계를 지켜 나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인내입니다.  물 속에
    들어가서 물이 확 온다 그래서 바둥거리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차라리 죽은 듯이 숨을 쉬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오히려 몸이 물
    에 떠서 살 것입니다.
      그렇게 참고 가만히 있을 수 있는 것이 인내입니다. 설사  자기
    자신이 옳아서 눈에 보이는 세상과 싸워서 이겼다 하더라도, 그것
    은 일시적인 승리일 뿐, 크게 승리한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승리
    는 인내가 없으면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천수송]이 주
    는 교훈입니다.
      "송(訟)괘는 위로 하늘을 상징하고 아래로 물을 의미하는 괘이
    다. 위는 건괘로서 강하고 강한 것을 나타내며, 아래는 음효가 많
    아서 물의 위엄을 상징하는, 즉 음험함을 나타내는 괘다. 위에 강
    강한 자가 있어 아래사람을  학대하고, 아래는 음험한 자가  있어
    윗사람과 투쟁하려고 하는 상태다." [천수송]은 외괘가 모두 양성
    기운으로 이루어진 엄청나게 강한 양성입니다. 내괘도 음효 두 개
    에 양효 하나로 양성입니다. 주역은 역순하므로 내괘가 위로 상승
    하고 외괘가 아래로 내려오는데, 모두 양성이어서  서로 밀어내려
    는 작용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두 양성기운간의 충돌은 불가피
    한 것으로 상호 알력이 생기고 싸움이  벌어지게 됩니다. '송(訟)'
    은 "시비할 송"입니다.
      [천수송]은 위에 하늘이 있고, 밑에  물이 있습니다. 하늘은 위
    로 오르려 하고, 물은 아래로 흐르려 하기  때문에 서로 조화되지
    못하고 반발하게 됩니다. 즉 나의 옳은 것만 믿고  세상일을 하면
    협동이 안되고 서로 반발이 생겨서 부딛치게  되어 결국 송사(訟
    事)가 벌어지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싸움(소송)은 결코 좋은 일이 못된다.  잘 반성하여 잘
    못을 범하지 않는, 스스로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남에 대한 적의를
    버리면 길할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외괘가 내괘보다  매우
    강하다는 사실입니다. 다섯번째  괘 [수천수]에서는 때가  오기를
    기다리며 착실히 준비하여 드디어 세상에 떳떳히 나의 위치를 세
    웠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매우 강합니다. 세상과  송사를 벌려서
    혹시 내가 이긴다고 하더라도  금방 다시 세상에  의해 파멸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싸움을 고집하면 흉하다. 중정(中正)을 존중하
    고 현자의 중재를 받는 것이 좋다." 이 괘를 슬기롭게 풀어  나가
    는 핵심을 주는 것이 바로 첫번째와 세번째의 음효입니다. 세상을
    받아들이고 인내를 하라는 의미입니다. 내괘와 외괘가  자리 바꿈
    을 하여도 역시 그 세계를 받아들이고 참고 기다리라는 뜻입니다.
    결국 상황은 변하니까, 내가 일부러  변화를 일으키려 하지 말고,
    그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큰 강을 건너가는 듯한 그런 위험을  범하면서까지 기어이 다
    투어 보려고 한다면 마침내 심연에 빠져  들어 비참한 결과로 끝
    날 것이다." 우주는 지금  변하고 있습니다. 그  변화가 안정권을
    찾는 어느 포인트를 만나는 순간까지는 참고 기다리는 것, 이것이
    바로 이 괘가 풀려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렇지  않고
    위의 괘와 부딛치면 자기가 아무리 정당하더라도 역시 송사 많은
    집안이 잘될 것이 없으며,  설사 송사에서 이길지라도 위의  괘가
    강하기 때문에 결국 손해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만일  싸움이
    벌어질 지라도 곧 해결하는 것을 원칙으로, 다소  손해를 본다 하
    더라도 그 손해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이전에 가능하
    면 싸우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대상. 하늘은 위를 향하고 물은 아래로 흐른다. 이같
        이 서로 배반되는 것이 [송]의 괘상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어떤 일이나 그 출발점에서 깊이 생각하
        여 후일에 분쟁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다.
     
            象曰, 天與水違行訟. 君子以作事謨始.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어떤 일이나 그 출발점에서 깊이 생각
    하여 후일에 분쟁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다." 서로  화합
    하기 어려우면 강한 자신으로 인하여 분쟁이 벌어지지 않도록 잘
    받아들이고 스스로 심사숙고 하는 자세를 간직하여야  합니다. 만
    약에 눈 앞에 강한  것이 있다고 강한 것과  싸우려고 하면 비록
    싸움에 이길 지라도 자신도 다치는 법입니다. 또 세상에는 나보다
    강한 것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일단은 나보다 강한 적이  반드시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가운데 심사숙고 하여 그것을 이길 수있
    는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손자의 위대한  병법에 이르기를 "싸우
    기 전에 이미 이겨놓고, 싸움을 통해 승리가 나타나게 할 뿐"이라
    고 했습니다. 
       
        첫번째 음효. 싸움을 오래 끌어서는  안된다. 적당한
        시기에 그쳐라. 다소의 말썽은 있으나 결국은 사리가
        분명하게 증명되어 길하리라.
     
            初六, 不永所事, 小有言,  終吉. 象曰, 不
            永所事, 訟不可長也. 雖小有言. 其辯明也.
           
      "싸움을 오래 끌어서는 안된다." 싸움이라는 것은 적당히 필요
    합니다. 인간 세상은 아주 묘해서 똑같은 행동을 해도  어떤 사람
    은 정이 가는데, 어떤 사람은 기분이 나쁜 사람이 있습니다. 회사
    를 설립하고 직원을 모집해  보면, 열심히 장사해서 회사를  크게
    발전시킬 직원인데도 기분나쁜 직원이 있고, 그리 능력이 있지 않
    아서 큰 공은 없으나 애정이 가는 직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운과 기운의 관계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양성이 강
    한데 양성이 강한 직원이  있으면 서로 반발하여  기분이 나쁘게
    됩니다. 반면에 음성인 직원은 서로 끌려 호감이 가게 됩니다. 이
    것을 본인은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은 자연이 벌려놓은  것이지 인
    간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기운과 기운이 반발하면 싸움이
    라는 것이 반드시 생기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싸움 그 자체를 없
    애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싸움을 잘 다
    스리고 관리하는 일입니다.
      "적당한 시기에 그쳐라." 싸움이 발생하게 되면 적당한 시기에
    그칠줄 알아야 합니다. 싸움이 길어지면 내가 입는 피해도 그만큼
    커지게 됩니다. 만약 내가 약한 상태에서 강한 적과 싸울 때면 다
    소 손해보는 한이 있더라도 혈전을 회피하고 적당한 시기에 그치
    는 것이 현명한 처사입니다.
      "다소의 말썽은 있으나 결국은 사리가 분명하게 증명되어 길하
    리라." 그러나 적당히 싸울 때까지는 싸워야 합니다. 손해를 감수
    한다고 해서 처음부터 상대의 요구를 들어주며  싸움을 회피하면,
    그것은 이미 패배한 것이기 때문에, 상대는 더  많은 것을 요구하
    게 되고 나는 설 땅이 없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적당히 싸워서 저
    쪽도 어느 정도 지치고 최초의 자만이  누그러질 때 양보를 해서
    싸움을 그치도록 해야 합니다. 만일 저쪽의 기운이 흐려지지도 않
    았는데 항복을 해 버리면  적은 더더욱 강해지게 됩니다.  그래서
    싸움은 길게 끌지는 않으나 적으로 하여금 어느 정도 움찔하게끔
    하고 조속히 싸움을 마무리 짓는 것, 그것이  나의 옮음과 분명함
    으로 최후의 승리를 이루기 위해 먼저 싸움을 다스리는 묘미입니
    다.
     
        두번째 양효. 패소(敗訴)하게 된다. 아래  사람이 도
        리에 어긋나게 윗 사람과 항쟁하니 화를 초래하는 것
        은 당연지사다. 싸움을 피하고 적으나마 자기의 분수
        를 지켜 근신하고 있으면 화는 면할 것이다.
     
            九二, 不克訟. 歸而逋. 其邑人三百戶,  无
            □. 象曰,  不克訟,  歸逋竄也. 自下訟上,
            患至철也.
           
      "패소(敗訴)하게 된다. 아래 사람이 도리에  어긋나게 윗 사람
    과 항쟁하니 화를 초래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이곳은 [음]이  있
    어야 할 자리에 [양]이 있습니다. 대응하는 다섯번째 효는 양효로
    서 주위에 강한 양의  기운을 대동하고 맞서고 있습니다.  그런데
    두번째 효는 위치도 안정되지 못하고 불안한 상태에서 음효를 대
    동하고 나아가니 패소하여 화를 초래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따라서 싸움을 회피하고 분수를 지키면서 근신하면 화는 면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싸움은 피할 수 없는 것. 부딪쳐서 패배하게 되면  패배
    의 원인을 잘 분석하여 대책을 세워야지, 패배의식에 빠져 있거나
    복수를 다짐하며 증오심에 차  있는 따위의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갖은 굴욕과  패배를 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분노를 간직할 필요는 없습니다. 승패
    는 기(氣)와 기(氣)의 관계에서 상황적으로  발생하는 것이지, 마
    음과 마음 간의 문제가 아닙니다.
      증오, 좌절 등 마음속에 일어나는 모든 것들, 그것은 이미 자기
    마음의 매카니즘이 잘못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설사  그러한 것들
    이 있다 해도 모두 다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란 나에게 굴욕을 준
    상대를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굴욕을 당한 나를 용서하는 것입니
    다. "아픈 가슴은 내가 아니며,  아픈 상처는 내 몸이 아닌  것"처
    럼, 마음에 받은 모든 상처와 손해, 그로 인한 손익계산서를 말끔
    히 없애버리는 것, 그것이 용서입니다.
      "싸움을 피하고 적으나마 자기의 분수를 지켜 근신하고 있으면
    화는 면할 것이다." 분수를 지키며 근신한다는 것은 단순히  반성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기와 기끼리 부딪쳐서 발생한 현실에 영향
    받아 자신의 마음에 일으키는  각종 상처들을 없는  것으로 하는
    것이 근신입니다. 사실 인간의 마음은 자연의  움직임에 좌지우지
    되고 있습니다. 아무리 마음이 평온하다고 하더라도  자연이 강하
    게 부딪쳐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면 마음은 상처를 받는  것이고,
    상황이 좋아지면 마음도 즐거워지는 법입니다.
      그것을 알고 움직이는 사람은 상황에 의해 마음이 동요되지 않
    으며, 모르고 움직이는 사람은 상황에 의해 발생한 마음의 작용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근신이란 마음의 작용에  따라 움직이
    지 않도록 마음의 평온을 되찾아 동요됨이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
     
        세번째 음효. 현재의 지위에  만족하면서 윗사람에게
        순종하여 굳게 공손한 태도를 지켜  나간다면 위태롭
        기는 하나 길하리라. 한 때는 영예스러운  일에 종사
        하는 일이 있겠으나 화려한 성공을 바래서 지나친 일
        을 해서는 안된다.
     
            六三, 食舊德, 貞려終吉. 或從王事, 无成.
            象曰, 食舊德, 從上吉也.
     
      이 효는 밑의 강한  기운을 스스로가 완충작용을  하면서 위의
    것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천수송]이 살 수 있는 길은  바로 이
    세번째 효 때문이며, 주역 64괘의 대부분이  세번째에서 네번째로
    비약할 때 상황이 좋지 않지만, 특별하게 좋은 것이  바로 이 [천
    수송]입니다.
      "현재의 지위에 만족하면서 윗사람에게 순종하여  굳게 공손한
    태도를 지켜 나간다면 위태롭기는  하나 길하리라." 세번째 효는
    위태로움을 안고 있으면서도 위를 받아들여 순종하고,  아래를 받
    아들여 공손한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사실 모든 일은  다 위험
    합니다. 우리가 차를 타는 것도 항상 교통사고의 위험을 감수하며
    타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용기있는 자는 그러한 위험을 안고 들어
    갈 수 있는 자입니다. 물 속에 들어갈 때도 물의  위험을 안고 들
    어가고, 불 속에 들어갈 때도 불의 위험을  안고 들어가는 것입니
    다. 물과 불이 위험하다고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물과 불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위험을 안고 들어가는 자는 위험속에서 스스로를 건질 수 있지
    만, 위험을 회피하는 자는 그 위험이 닥쳤을 때 스스로를 지킬 수
    없습니다. 오히려 위험을 회피하면서 자신만 옳다고  주장하는 자
    는 반드시 위험한 처지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운동경기에서도
    승리하려면 위험을 감수하고 참가해야지, 위험을 거부하고 참가하
    는 선수는 단순히 참가에 의의를 두게 될 뿐입니다.  그래서 패자
    는 할 말이 없다고 했습니다.
      세번째 효는 위에 양효 세개가 있는 강한 양성기운과 부딪치려
    하지 않고 공손히 받아들이면서 인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도 아래 자신의 강한 기운을 받아들여서 당당히 나가고 있습니다.
    즉 기운은 모든 위험을 감수한 채 당당히  나아가지만, 마음과 태
    도는 항상 유순하고 공손하게 하기  때문에 위태로움을 극복하고
    길하다는 것입니다.
      "한 때는 영예스러운 일에 종사하는 일이  있겠으나 화려한 성
    공을 바래서 지나친 일을 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태도가  인정받
    아 한 때 영광스러운 일에 종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겉으로
    나타나는 성공과 만족에 이끌리어 자신이 원래 품었던 뜻을 저버
    리고 화려한 성공을 바란다면 발전은 이미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필요한 것이 또 인내입니다. 만일 내가  3년간 인내했는데
    더이상 할 수 없다고 말한다면 그  3년간 인내한 것은 인내가 아
    닙니다. 3년간 하고 4년째 하지 못하는 인내는 인내가  아닌 것입
    니다.
      인내는 순수하고 소박하며, 누구에 의해서 혹은 자기 자신에 의
    해서 없어지거나 파괴되지 않는 영원한 것입니다. 내가 연약한 힘
    으로 큰 세계를 끝내 이겨 나갈  수 있는 지구력, 추진력, 저력은
    인내를 통해 생활속에서 몸에 배는 것입니다. 일시적인 만족과 화
    려한 것을 바라는 마음에 치우치지 말고, 화려한 세계가 나로부터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공손하게 받아들이면서  인내하면 승리로 가
    는 길이 보이게 됩니다. 그렇지 않고 갑자기 마음에 힘이 생겨 양
    성에너지를 사용해 나아가면 콱 막혀서 끝내는 패소하게 될 뿐입
    니다.
     
        네번째 양효. 패소한다. 물러나와 제  분수를 지키면
        서 천명을 쫓아 지금까지의 태도를  고치고 바른길에
        안정하고 있으면 길하리라.
     
            九四, 不克訟.  復卽命,  □安貞吉. 象曰,
            復卽命, □安貞, 不失也.
           
      "패소한다." 양의 기운만  믿고 마음의 힘으로  나가면 막혀서
    패소하게 됩니다. 그러나 주역은 사람이 잘되기 위해서 씌여진 것
    이지, 잘못되라고 써놓지는 않았습니다.  패소하게 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슬기롭게 이를 극복하는가가 중요한 것이며, 이 길을
    지적해 주는 것이 주역의 역할입니다.
      "물러나와 제 분수를 지키면서 천명을 쫓아 지금까지의 태도를
    고치고 바른길에 안정하고 있으면  길하리라." 자기 기운만 믿고
    나가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다시 한 번  스스로를 낮추어 재검
    토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라는 말은
    바로 이러한 경우에 쓰는 말입니다. 물러나와 천명을 따르며 자연
    에 의해서 되어질 수 있을 때까지 분수를 지켜야  합니다. 자신에
    게 좋으면 하고, 득이  되지 않으면 안하는  그런 태도를 버리고,
    싹이면 언젠가 꽃이 피듯이, 꾸준히 해나가는 태도로 지나치는 일
    을 하지 않으면 길할 것입니다.
      사람이 말하고 있는 단어 가운데 운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운이
    라는 것은 반드시 있습니다. 더운 여름날 목이 말라  죽겠는데 갑
    자기 소낙비가 쏟아져서 갈증을 모면했다면 운이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소낙비를 계속해서  너무 많이 맞으면  감기에 걸리게
    됩니다. 이것은 운이 나쁜 경우에 들 것입니다. 결국 같은 소낙비
    라도 그것을 받아들여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운이  좋은 경우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운은 자기 자신과  자연의 관계
    에 의해서 이렇게도 혹은 저렇게도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운을 기다리면서  살면 절대로  안됩니다. 왜냐면
    최대의 운은 생명력에 의한 저력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고  자기 자신을
    낮춰서 항상 살펴야 됩니다. 그러면 이제 운을 자기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그런 역량을 갖추게 됩니다. 그런 역량을 갖추게 된 사람
    은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누구한테도  가난하지도 않고, 또
    부자라고 나타내지도 않으면서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최
    상의 복입니다. 그리고 그 복은 세상 사람의 눈으로는  절대로 측
    정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런 길을 버리고 싹이면 언제든지 꽃이 피듯이 꾸준히 나가는
    그런 바른 마음에 지나치는  일을 하지않고 바른  길에 안정하고
    있으면 길하리라라고 말을 했습니다.
     
        다섯번째 양효. 소송에는 크게 길하다. 중정(中正)을
        지키기 때문이다.
     
            九五, 訟, 吉元.  象曰, 訟, 吉元,  以中正
            也.
           
      다섯번째 양효입니다. 양효가 앉아야 할 자리에 양효가 앉아 있
    고, 최고의 지위에 있습니다. 그래서  강자가 정당한 위치에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소송에는 크게  길하다. 중정을 지키기 때문이
    다." 다섯번째 효는 맨 밑의 음효와  대응관계를 이루면서 중정을
    지킵니다. 물론 상호 대응관계를  이룰 수 있는 자리는  틀리지만
    밑의 음효가 다섯번째 효에게 영향을 미쳐서 자숙하도록 했기 때
    문에 중정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중정(中正)은 인내를 의미합니다. 꾸준히 하는 것을 지키는 것
    입니다. 그런 사람은 이제 힘이 생기게 됩니다. 힘이 생기면 어지
    간히 약한 것은 쳐서 이겨버릴려고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꺽
    어 버릴려고 합니다. 원칙은 이루어  낼려고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자꾸 꺾어 버릴려고 하게 되니  영예가 오래가지 못할 것
    입니다. 여섯번째는 이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여섯번째 양효. 소송에 이기고 큰 띠를  하사받는 영
        예를 얻는 수도 있지만 그 영예는 오래  계속되지 못
        한다. 단 시일 내에 빼앗기는 결과가 온다.  본시 소
        송으로 얻은 영예는 존경할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
        다.
     
            上九, 或錫之□帶, 終朝三遞之. 象曰,  以
            訟受服, 亦不足敬也.
           
      "소송에 이기고 큰 띠를 하사받는 영예를 얻는 수도 있지만 그
    영예는 오래 계속되지 못한다."  여섯번째에서 가르쳐 주는 것은
    "이겼다고 이긴 것이 아니다. 오래 가지 못한다." 결국  "싸움없이
    이겨라.' 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승리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승리입니다. 흔히 우리는 동일한 상품을 파는 가게
    가 나란히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기존의
    가게가 있는데 그것과 똑같은 물건을 파는 가게를 옆에 개설해서,
    먼저 있던 가게보다 물건 값을 싸게 팔아 끝내 먼저 가게를 문닫
    게 만들었다면, 그 사람은 크게  잘살게는 되지 못할 사람입니다.
    기분은 천하를 얻은 기분이겠지만, 그래봐야 구멍가게  하나 얻은
    것일 뿐입니다. 그렇게 본래  존재하던 상대와 싸워 이기는  것은
    오래갈 승리가 아닙니다. "나는 이겼다."라는 마음에 도취되어  발
    전도 못합니다.
      대기만성(大器晩成). 져도 진  것이 아니고,  이겨도 이겼다고
    들뜨지 않는 사람이 결국  대기만성하는 자이며, 큰 것을  이루어
    낼 수 있는 자입니다. 싸워서 이기는 승리는 진정한  승리가 아닙
    니다. 옆의 가게 하나 문닫게 하였다고 해서 그 사람이 재벌이 된
    것은 아닙니다. 단지 구멍가게 주인일  뿐입니다. 오히려 그 다음
    번에는 자신이 망할 차례입니다. 남 망하게 하는 자는  곧 자신도
    망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강한 세상과의 투쟁에서 자신을 지키며  승리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인내입니다. 인내란 내일의 승리를 위해 오늘의 패배
    에서 오는 쓰라림과 고통을 감수해 낼 수 있는  마음입니다. 그러
    나 진정한 인내란 증오심을  갖고 참는 것이 아닙니다.  증오심을
    갖고 참는 것은 한 때 반격으로 승리할 수는 있으나,  곧 다시 증
    오심을 갖는 적에 의해  패배하게 되는 일시적인  승리에 불과할
    뿐입니다.
      무사가 고수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적에 대한 증오심을 버
    리는 것입니다. 적에 대한 증오심으로 덤비는 자는 증오심에 빠져
    싸움 자체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합니다. 적에 대한 사랑  혹은 증
    오심 등과 같은 감정의 차원에서 벗어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자가 승리의 방도를 발견해 내는 자입니다.
      흔히 전쟁 영화를 보면 적의 총알이  무서워서 총도 제대로 못
    쏘던 자가, 인접 전우가 죽으면 갑자기 적에  대한 적개심으로 용
    기 백배하게 돌격하여 적을 죽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로 그러한 상황이 벌어지면 대개 돌격하던  그 병사들은 적 앞에
    도달하기 전에 적의 총탄에  먼저 죽어 버립니다. 그러한  용기는
    진정한 용기가 아닙니다.
      진정으로 용감한 병사는 우군이 많든지, 아니면 모두  전사하고
    자기 혼자 남든지, 아랑곳 하지 않고 승리를 위해 자신이 해야 할
    바를 두려움없이 할 수 있는 자입니다. 그 사람은 한 때 이겼다고
    기뻐하지 않고, 한 때 패배하였다고  좌절하지 않으며, 감정에 치
    우침이 없이 승리를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항상 살피고
    발견해 내는 자며,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어떠한 위험도  감수할
    수 있는 자입니다.
      적과 싸워 이기는 것은  오히려 쉬운 일입니다. 그것은  적보다
    강한 마음과 지혜와 능력과 용기만 있으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
    나 그러한 승리는 나보다  강한 적이 나타나면  반드시 패배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일시적인 승리에 불과할 뿐입니다.
      가장 어려운 것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고도의
    인내와 지혜와 용기로써 먼저 나를 이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으로써 패배할 수 없는 나가 먼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어
    떠한 적이 나타나도 결코 패배하지 않으며, 이기되 무리하게 싸움
    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승리가 되어지게 할 뿐입니
    다.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승리입니다.
      세상 모든 일이 자기 의도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투쟁과  갈
    등이 있을 수 있고, 승리와 패배가 있으며, 도처에 위험도 있습니
    다. 그러나 힘이 강하다고 반드시 이기는 것이 아니며, 또 약하다
    고 반드시 지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힘이 강하면 이길 확률이 그
    만큼 높다는 것일 뿐입니다. 싸워 이기려 하지 않고, 심정의 애증
    (愛憎)에서 벗어나 인내와 용기로써 승리가  되어지게 하는 자는
    지금 내가 약한 상태에 있어 상황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이를 슬
    기롭게 극복하여 결국은 승리하는 자입니다. 승부(勝負)는 인간의
    것이 아니라, 자연의 것입니다. 
      
     유성..…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5872
  • 5. 수천수(水天需)
    『  때를 기다려라  』
     
     ●    기회는 자연속안에서 언제나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    그 기회를 결실로 이루어 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    사람은 기회가 주어져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
            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회가 오기를 기다린다고 해서 
     ○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막연히 앉아 있는 사람은 기회가 와
     ○    도 그 기회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기회가 언제 오더라도
     ○    그 기회를 즉시 결실로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평상시에 준
            비를 갖추고 있는  자라야만 기회를 기회로 만들 수 있습
            니다. 흔히 "운이 좋다."라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준비를
            갖춘 사람에게 그 준비를 사용할 수  있도록 기회가 닿은
            것을 말합니다. 준비가 없는 자에게 "운  좋은 날"은 결실
            이 없으므로 그저 평범한 날이 될 뿐입니다.
     
                               수천수(水天需)
     
        수(需)는 기다린다는 뜻이다. 위험이 앞에 가로 놓일 때 훌륭한
        사람은 이것을 극복할만한 여건이 완성되기까지 때를 기다리며
        결코 무모한 저돌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위험에 빠지
        지 않고 물가운데서 오도 가도 못하는 곤란에 몸을 던지는 일이
        없는 것이다. 수의 괘는 단순히 기다리고만 있는다는 뜻은 아니
        다.  충분한 영양이 갖추어져 있으면서도 시기의 완전한 성숙을
        기다리는 성실을 내포하고 있는 모습이다. 장차 크게 발전할 모
        습이다. 동요하지 않는 한결같은 의지를 지키며 기다려라. 크게
        준비를 갖추어 일에 대처하며 흘러가는 흐름속안에서 순간을 잘
        포작할 수 있으면  큰 강물을 건너도 순조롭게 피안에 닿을 것이
        다.  오양(五陽)이 천자의 자리에 있어서 중용을 지키고 바른 위
        치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需, 有孚. 光亨. 貞吉. 利涉大川. 象曰, 需須也. 險在前也,
            剛健而不陷, 其義不困躬矣. 需有孚, 光亨,  貞吉. 位乎天
            位, 以正中也. 利涉大川, 往有功也.
           
      주역은 우리가 음양의 기운에 관한 분명한 사실을 피부로 느낄 수 없으면 한편 재미
    없고 무뚝뚝한 것으로 느껴질지 모르지만 사실 주역은 아주 재미있는 철학입니다. 사
    업이나 장사를 해보면 어떤 날은 손님이 하나도 없어 파리만 날리는 날이 있고, 어떤
    날은 느닷없이 손님이 많이 몰아닥치는  날이 있습니다. 또 어떤  때는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봐도 성과가 나지  않지만 어떤 날은 별로 노력은 하지 않아도  아주 쉽게 일
    이 척척  잘 되어가는 날이 틀림없이 있습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좋은 날
    은 일진이 좋은 날 또는 운이 매우 좋은 날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군자는 자고로
    그런 얘기를 하는 법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미 그 기운이 흐르고 있는 흐름의 세계를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결코 하지 않으며, 운이 좋았다 해서  기뻐하지도 않
    고 운이 나빴다 해서 실의에 빠지는 법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걸 모르는 사람은 어쩌
    다 재수가 좋아지면 "이게 웬 떡이냐!" "쥐구멍에도 해뜰날이 있다." 하고 촐랑대다가,
    조금 잘안되면  "나는 역시 안돼."하고 실의에 빠지곤 합니다. 주역의 세계에 대해서 유
    심히 잘 관찰을 하면 우리는 그 세계를 느낄 수 있습니다. 외부세계의 변화는 그 변화
    를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의 기운을 스스로 느낄 때 외부를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데 그저 자기 식으로만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사람은 기운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기운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은 직관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주역이 좋은
    것을 가르쳐줘도 자기 것이 되어질 수 없습니다.
     
      "수(需)는 기다린다는 뜻이다. 위험이 앞에 가로  놓일 때 훌륭한 사람은 이것을 극복
    할만한 여건이 완성되기까지 때를 기다리며 결코 무모한 저돌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
    " 수(需)는  '기다린다.'라는 뜻입니다. 기다린다고 해서 무조건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역량을 충전시키면서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잘하려고 하는 마음은 좋지만 그
    마음만 가지고 잘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잘하려는 마음만 앞서서 행동하면 반드시 앞에 장
    애가 걸리기 마련입니다. 자기 혼자 아무리 잘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상황을 잘
    살펴서 나의 잘하는 것이 상황을 통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 진정으로 잘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장애는  뚫고 지나간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기다려서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
    다. 급하게 어디 갈 일이 있어 가다보니까 앞에 홍수가 나서 물이 콸콸 넘치고 있습니다.
    가야 되겠다는 강한 마음에 그냥 물 속에 뛰어 들면 급류에 휘말려 목숨을 잃게 됩니다.
    이 때는 물살이 약해지든지, 아니면 건널 수 있는 배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며 잘 살펴
    야 됩니다. 즉 "건널 수 있는 방도가 생길 때까지 기다리며 잘 살펴라. 길이 생기는 순간
    그 길을 통해서 가도록 하라."는 것이 수천수가 주는 교훈입니다. 우리가 가장 조심해야
    하는 때가  자신만만하게 무엇인가를 잘 하려고 마음먹을 때입니다. 잘하려고 하는 마음
    만  믿고 나아가면 반드시 매사가 장애에 걸리게  됩니다. 그때 장애를 어떻게  하면 슬기
    롭게 극복해 내는가는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잘 살펴서 얻어야 할 부분입니다.
     
      기회라는 것은 잘 살필 수 있는 사람이 기다려서 얻어내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
    에게는 기회가 주어져도 기회인 지를 알지 못합니다.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주위에 건널
    수  있는 배라도 있는가 살펴야 되는데, "난 빨리 가야 되는데..." 그러면서 홍수앞에서 발
    만 동동 구르고 있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기회는 자연속안에서 언제나 주어지고 있습
    니다. 그런데 그 기회를 결실로 이루어 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기회가 주
    어져도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회가 오기를 기다린다
    고 해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막연히 앉아 있는 사람은 기회가 와도 그 기회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기회가 언제 오더라도 그 기회를 즉시 결실로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평상시에 준
    비를 갖추고  있는 자라야만 기회를 기회로 만들 수 있습니다. 흔히 "운이 좋다."라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준비를 갖춘 사람에게 그 준비를 사용할 수 있도록 기회가 닿은 것을 말합
    니다. 준비가 없는 자에게 "운 좋은 날"은 결실이  없으므로 그저 평범한 날이 될 뿐입니다.
     
      우리는 왜 노력을 해야 하는가? 그것은  기회가 많이 주어지게 하기 위함입니다. 평소에
    100으로 노력하는 사람은 100의 결과를 다 만들어 낼 수는 없지만 한 번 기회가 주어지면
    최소한 10의 결실을 이루어 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운 좋은 날만 믿고 평소에 둘 밖에
    노력을 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기회가 많이 주어져도 둘밖에 이룰 것이 없습니다. 하고
    자 하는 마음만 앞서면 미처 준비가 갖추어지지 않았고 또 할 때가 되지도 않았는데 무리
    하게 나아가게 됩니다. 하려고 하는 마음, 그것을 먼저 스스로 자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제가 되어지지 않으면 살필 수 없습니다. 자신의 잘 될 수  없는 부분을 모르는 채로 나
    가면 결정적인 순간에 가서  큰 실수를 저지르게 됩니다. 흔히 실수를 저지르는 것은 자기
    관찰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잘났다는 것만 알고 있지 자기 못난 부분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자기 부족한 부분을 분명히 알아야지 일을 이루기 위해 준비해야할 사항이
    무엇인가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장.단점을 모두 파악함으로써 비로서 객관적인 안목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충분한 영양이 갖추어져 있으면서도 시기의 완전한 성숙을 기다리는 성실을 내포하고
    있는 모습이다." [수천수]는 단순히 기다리고만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충분한 영양이 갖
    추어져 있으면서도 완전한 성숙을 기다리는 성실을 내포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즉 장차
    크게 발전할 직전에 있는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한결같은 의지를 지키며 기다리는 것.
    크게 준비를 갖추어 일에 대처하며, 흘러가는 흐름 속안에서 순간을 잘 포착할 수 있으면
    큰 강물을 건너 피안에 닿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수천수]는 대기만성(大器晩成)
    을 뜻합니다. 이미 잘 될 수 있는  요소를 운명적으로 타고난 사람이 갑자기 이루려 하지
    말고 성실히 노력하면서 때를 기다리는 상태입니다.
     
        대상. 구름은 아직 비가 되어  대지를 적셔주기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수의 괘상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성숙의 시기를
        기다리며 여유있는 모습으로 몸과 마음을 기른다.
     
            象曰, 雲上於天需. 君子而飮食宴樂
     
      수천수의 내괘는 양효가  세개로 하늘을 나타내는  양괘입니다. 그래서 안으로 매우 자신
    만만한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외괘 또한 음효가 둘,  양효가 하나로 양괘입
    니다. 내외괘가 모두 양괘이므로 자신만만하다고 무턱대고 나가다가는 큰 실수를 저지를
    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수천수는 물의 괘 밑에 하늘의 괘가 있습니다. "하늘에
    물이 떠있다." 즉 구름이 껴있는 형상입니다. 그런데 그 구름은 아직 대지를 적실만큼 발전
    한 상태는 아닙니다. 그래서 지금 기다리고 있는 중인 것입니다. 자신이 자신만만한 강한
    의지를  가지고 해나가려고 하는데 구름이 끼듯 앞에 장애가 가로막고 있으므로 무턱대고
    나아가면 큰 실수를 저지를  수 있습니다. 때문에 행동에  앞서서 잘 살펴라 라고 하는 것이
    이 양괘가 주는 의미입니다.
      
        첫번째 양효. 초야(草野)에  묻혀 때를  기다린다. 위험을 멀리
        피하고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다. 헛된 일에 마음을 쓰지 않고,
        지조(志操)를 지켜간다면 허물을 면할 수 있는 것이다.
     
            初九, 需于郊. 利用恒,  无咎. 象曰, 需于
            郊, 不犯難行也. 利用恒, 无咎, 未失常也.
     
      첫번째 양효입니다. 이미 나는 무엇인가를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입니다. 이제
    기회를 찾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 기회는 일부러 만들려 하지 말고 잘  살피며 기다
    리면 주어져 오게 되어 있습니다. 기회를 만든다고 그냥 뚫고 들어가면 매우 위험합니다.
    따라서 아직 세상에 드러내지 말고 세상을 관망하면서, 세상을 공부할 때입니다. 만일 내
    가 독립투사로서 거사(巨事)를 앞두고 있다면 독립투사가 아닌 것처럼 구두닦이, 식당종
    업원 등 비천한 사람으로 행세하며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거사하는 것에 마음만 들떠서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때가 이르지도 않았는데 섣불리 행
    동으로 옮기면 실패하게 될 것입니다.
      
        두번째 양효. 물가에 이르렀으나 아직  물에 들어간 것은 아니다.
        물가의 모래둑에서 기다리고 있다. 장차 위험한 강을 건너갈 직전
        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곤란을 내포한 큰 일을 앞두면 여러가지
        서로 다른 이견이 일어나기 쉽고 말썽이 생기기 마련이다. 다소의
        비난을 받을  지라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중용의 도를 지킨다면
        결국은 길할 것이다.
     
            九二, 需于沙. 小有言,  終吉. 象曰, 需于沙, 衍在中也.
            雖小有言, 以終吉也.
     
      장차 위험한 강을 건널  직전에 있습니다. 곤란을 극복해야  할 시기가 목전에 닿은 것입
    니다. 두번째 양효가 다섯번째 양효와 불응(不應)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섯번째 효
    가 위에 있어 더 기운이 강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심을 받을 수 있
    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더욱 자신을 숨기고 주의  깊게 살펴야 합니다. 인내를 갖고 아직
    도 때를 기다려야 할 때입니다. 독립투사로서 비천한 신분으로 위장하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으나 거사가 진행되면서 서서히 주변으로부터 의심을 받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런
    때 일수록 더욱 경거망동을 삼가고 독립투사가 아닌 것처럼 철저히 위장을 해야합니다. 섣
    불리 "이제는 틀렸다."며 자신을 노출시켜야 죽음밖에 갈 곳이 없습니다. 인내심을 갖고 수
    사망이 좁혀들어오면  더욱더 잠복하면서 때를 기다리면 반드시 기회는 오게 되어있습니
    다. 그러므로 인내를  갖고 아직도 때를 더 기다려야 합니다.
     
        세번째 양효. 물가의  진흙속에서 물건널 것을 기다린다. 이제 위험과
        직면한 것이며, 곧 도강을 결행해야할 마지막  순간에 다가선  것이다.
        신중한 태도와 준비와 굳은 결의로 대결하면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九三, 需于泥. 致寇至.  象曰, 需于泥, 災在外也.
            自我致寇. 敬愼不敗也.
     
      이제야 말로 위험과 직면하여 곧 도강(渡江)을 결행해야 할 마지막 순간에 다가섰습니
    다. 이것은 위험이 저편에서  덤벼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적에게 도전하고  있는 상황입
    니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신중한 태도와 철저한 준비로 대결하면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
    다.  주역은 역순하므로 밑의 괘가 위로 올라가고 위의 괘가 아래로 내려오게 됩니다. 그
    러면 밑의 괘는 땅으로부터 모든 것을 받아들이면서 위로 하늘의 기운을 받아들여서 결
    국은 안정한 지위를 얻을 수 있게 됩니다. 결국  자기가 뜻한 바는 바깥 세상에 그대로 나
    타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이 괘는 상당히 좋은 괘입니다. 좋은 괘이지만 아직까지 미
    숙하므로 자기 스스로를 함부로 급하게 나타내려 하지 말고 인내를 갖고 때를 기다리면
    결국 이룰 수 있다라는 이야기입니다. 세번째 정도에 이르면 벌써 상황을 살필 수 있고
    강을 건너기 위해 오는 배를 잡을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얼마 안있다가 곧 기회가 주어지면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세번째 효는
    위에 음의 기운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빨려들어갈 가망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빨려들
    어가지 않도록 조심하며 건널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물위에 서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뜻
    을 펼치려고 할 때 혹시 위험한 상황이 오게되면 얼른 일보 후퇴하여 그 자리를 구축시키
    면서 위험한 상황이 변화되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네번째 음효. 약한 자가 강한 자와 겨루니 타격을 받고 피를 흘리며
        반성하고 있다. 자기의 힘이 약한 것을 깨닫고 솔직한 마음으로 주
        위의 가르침에 따른다면 궁지에서 벗어날 수 있다.
     
            六四, 需于血. 出自穴.  象曰, 需于血, 順以聽也.
     
      네번째는 음효인데 위아래로 모두 양효가 있어 자기 기운은 약한데 앞뒤로 강한 기운
    이 버티고 있어서 아직 뜻을 펼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약한 자가  강한 자와 겨루니
    타격을 받고 피를 흘리며 반성하고 있다." 우리 인간은 나약한 존재입니다. 나약한 사람
    이 험난한 자연의 기류를 뚫고 나아갈려면 우리는 타격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 앞에 겸손한 자세로  자연의 가르침에 주의를 집중하면 길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
    니다.  자연은 "이만큼 참았으면 됐겠지."하는 마음이 들 때 한번 더 강한 강도로 시련을
    부여합니다. "이정도면 되겠지." 하는  마음은 건방진 마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됐다
    안됐다 하고 분별을 일으키는 마음조차도 일어나지 않고, 오로지 해야 되겠다라는 마음
    으로 꾸준히 해나갈 때 시련은 끝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뭔가 풀리는 듯 싶었을 때 격
    는 어려움은 오히려 지금까지 겪었던 어려움보다 더 큰 어려움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잘  견뎌내야만 결실을 이룰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에서 그만두게 됩니다.
    이 시련을 뚫고 나가느냐, 못 나가느냐 하는 것은 처음에 가졌던 네 뜻이 얼마만큼 확고
    부동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시련을 극복하는 것, 그것은 뜻이 뚫고 나가는 것이지 내가
    뚫고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갖은 피박이 다 온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굴하지 말고
    뜻을 펴기 위해서 안으로 실력을 간직한 채 새상 속안에 그저 존재하고만 있다가 이제 그
    뜻을 펼치려고 할 때 험악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여기서 "이 세상에 이 뜻을 분명하게
    뿌리를 내리겠다."고 굳은 신념을 가진 사람은 그 역경을 극복해 낼 수가 있습니다. 하늘
    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반드시 도와주게 되어 있습니다.
     
        다섯번째 양효. 유유자적하게 몸과 마음을 기르면서 때를 기다린다.
        충분한 영양과 덕이 있는 자가 가장 중요한  지위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길하리라.
     
            九五, 需于酒食.  貞吉.  象曰, 酒食貞吉, 以中正也.
           
      다섯번째 양효입니다. 이 시점까지 오는 동안은 그렇게 길게 느껴졌는데 이제 부터는
    한 순간입니다. 뜻이 펼쳐지는 것은 순간적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만인위에 최고로 존
    재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에 옛날의 그 뜻을  잊어버리면 안됩
    니다. 고생했을 때의 고생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여섯번째 음효. 덕이 부족한 자가  최고의 지위에 있는 것과 같다.
        궁지에  빠지게 된다. 부르지 아니한 세명의 손님으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이들을 존경하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들이면 비록 자신에
        게는 과분한 지위이기는 하나 큰 실수는 없을 것이니 결국은 길할
        것이다.
     
            上六, 入于穴. 有不速之客三人來. 敬之終吉.
             象曰, 不速之客來, 敬之終吉,  雖不當位.
     
      음효이면서 최상의 지위에 있는 것은 마치 능력이 부족한 자가 최고의 지위에 있는 것
    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초양(初陽), 이양(二陽), 삼양(三陽) 시절에 세웠던 그  뜻을 저
    버리지 말고 그 도움을 받아들이면, 비록 자신에게는 과분한 지위이기는  하나 큰 실수는
    없을 것이니 결국은 길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제 뜻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뜻을 지키기 위해서는 스스로 낮은데로 내려가야 합니다. 자기 자만에 빠져서  "나는 이
    만큼 훌륭한 일을 해야 할 사람이다."라고 생각하고, 화려하고 금방 인정받을 수 있는 일
    만 찾아다니면  결코 결실로 되어지지 않습니다. 남들이 하려고 하지 않는 것, 천한 것, 어
    려운 것들을 묵묵히 성실하게 하는 것이 낮은 곳으로 임하는  것이며, 뜻으로 하는 것입
    니다. 모든 공덕은  하늘로 돌리고 다시 연약한  인간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우리는 주역이 역순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수천수는 밑의 괘가 물이 되
    어 땅으로부터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위의 괘는 하늘이 되어 결국 안정된 지위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미숙하다는 점을  동시에 말하고 있습
    니다. 미숙하므로 함부로 급하게 행동하지  말고 스스로 인내하면서 착실히 때를 기다리면
    결국에 가서는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나는 하고자 하는 의욕이 강하
    여 위험이 있는지 없는지 미처 살피지 못하고 저돌적으로 나가기 쉬운 소질을 갖고 있습니
    다. 그래서 항상 자신을  자제하며 수양에 힘쓰고 언젠가 도래할 기회를 위하여 준비를 갖추
    어 나아가야 합니다. 위험한 것이 있을 때 훌륭한 사람은 이것을 극복할만한 여건이 완성되
    기까지 때를 기다리며 결코 무모하게 저돌적인 행위를 하지 않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위험
    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수천수]는 바로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2005. 9. 29. 유성 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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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周易 講義)산수몽(山水夢)
    『  무지몽매  』
     
     ○    풍요는 자신이 살고 있는 그 세계를 온전히 유지 시킬 수 있
     ●    을 정도의  범위내에서 결실을 맺도록 해야 이루어 지는 것
     ●    입니다. 내가 잘 되기 위해서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크게 먹
            으려 하면, 결국은 먹지 못하고 끝내 가서는  자신이 망가져
     ●    버립니다. 그래서 그런 식으로 살고 있는 사람은 전부다 몽
     ○    매한 사람들입니다.
     ●
                    산수몽(山水夢)
     
        산아래 험난한 물이 있다. 험난하며 갈 바를 모르고 멈춰있는 상태
        가 [몽]괘의 상징이다. 몽은 몽매하다는 뜻이다.  몽매한 상태에서
        는 오직 형통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형통할 수 있는 도리를 수행한
        다면 때에 적중한 시책이  될 것이다. 선생이 어린이에게 배우기를
        강요하는 방법을 써서는 안된다. 그리하여야만 선생과 제자는 배우
        고 가르치는데 서로 마음이 호응할 것이며, 마음속에 신념을 가지게
        된다. 점을 치는 경우, 전일한 마음으로 한 번 점을  치면 최초에 점
        에서 진실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두번 세번 같은 점을 되풀이 한다
        면, 이것은 점의  신성을 모독하는 것이므로 바른 계시를 얻을 수 없
        다. [몽]의 도로서 바른 덕을 기르는  것은 장차 성인의 길에 들어가
        게 하는 공이 되는 것이다.
       
            蒙, 亨.  匪我求童蒙,  童蒙求我. 初筮告. 再三瀆. 瀆則不告.
            利貞. 象曰,  蒙山下有險. 險而止蒙. 蒙亨.  以亨行, 時中也.
            匪我求童蒙, 童蒙求我, 志應也. 初筮告,  以剛中也. 再三瀆.
            瀆則不告, 童蒙也.  蒙以養正. 聖功也.
     
      [산수몽]은 나를 나타내는  내괘가 물로서, 위아래로  흡수하는 모습입니다.
      내괘는 굳게 자리를 잡아 안정되어야  하는데 밑에서부터 들어오는 것을 막
      지 못해 자리가  잡혀져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러면서도 가운데는 자기라
      고 하는 자아 의식이 분명히 고착되어 있어 고집스러움을 보여줍니다. 또 외
      괘는 맨위의 효가 하늘을 막아 놓아서 하늘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하늘을 향
      해 강하게 고집을 떨고 있는 상태이기도 합니다. [산수몽]은 자기 주관과 사
      리판단 능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자신만 좋으면, 이치를 따져 선후를 분별하
      지 못하고 모두 가지려고 욕심을 부리는 형상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
      서 이 괘는 이제 막 싹이 흙을 뚫고 나와  어떻게 움직여야 될 지를  모르는
      상태, 자기만 좋으면 뭐가 어떻게  되든지 사리판단이 없이  움직일 수 있는
      철없는 어린아이의 상태와 같은 괘입니다. 따라서 '어리석다'고 하여 괘의 이
      름이 몽(夢)입니다.  "산아래 험난한 물이 있다. 험난하여 갈 바를  모르고 멈
      춰있는 상태가 몽괘의 괘상이다." 산아래 물이 있는데  험난하여 갈 바를 모르
      고 멈춰있는 상태가 몽괘의 상징입니다. 내괘는  물로서 이것 저것 가리지 않
      고 무엇이든 자신만 좋으면 사리판단 없이 움직일 수 있고, 외괘는 산으로 하
      늘과 차단된 채 여기 저기 유혹으로 꾀는 형국이어서, 자칫 잘못하면 샘물이
      바다에 이르지 못하고 산에 흡수되어 고갈될 수 있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나
      자신이 어리석어 사리판단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부단히 자신을 반성하면서
      성현의 가르침을 쫓아 행하면 어느 순간에는 자신의 몽매함이 떨어져 나가고
      드디어  바다에 이를 수 있음을 역설적으로 내포하고 있습니다. 괘는 역순한
      다는  법칙에 의해 내괘였던 물이 위로 올라가고, 외괘였던 산이 밑으로 내려
      오면 물속에 산이 있는 형상, 즉 커다란 바다를 이루게 됩니다.
     
      [산수몽]은 성현에 이를 수 있는 아주  좋은 계기가 되는 괘입니다. 다시 말하
    면 씨앗이 이제 땅위에 나와서 훌륭한 나무가 되고 훌륭한 꽃이 되고 훌륭한 열
    매를 맺어 훌륭한 종자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단계에 와있는 괘입니다. 그런데 햇
    빛이 싫다고 자기가 막아버리고, 또 물이 좋다고 하루 종일 비만 맞는 식으로 나
    아가면 자기 자신이 꽃도 피기전에 팍삭 시들어 버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
    서 이 괘는  자기 결점을 찾아내어 보완하여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괘
    의 결점은 자기는 강하지만 위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산수몽]은 자
    연이 지금 몽매를 떨어뜨려 주려고 하니까 떨어뜨려 주는 그날까지 외부에서 오
    는 자기의 단점을 스스로 잘 막으면서 자기가 세운 최대의 목표를 향하여 꾸준
    히 나아가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조금 잘 안된다고 실의에 빠져 술을 마시거
    나, 스트레스를 푼다고 밖에 나가 친구와 돌아다니는 등의 방정을 떨지말고 자
    기의 이상을 향하여 과감이 실천하면서  묵묵히 지나다 보면 "왜 안되는가?"하
    는 세계가 떨어져 갈 날이 틀림없이 있다는 것을 보증해 주는 괘가 바로 [산수
    몽]입니다. 우리는 [산수몽]의 괘를  보고 스스로를 다시  점검하여 "자칫 분별
    없이 여기 저기에 한  눈을 팔고 있지 않는가?"를 반성하고, 훌륭한 스승의 가르
    침을 구하여 스승이 제시하는 길을 유혹에 빠짐이 없이 꾸준히 나아가야 합니
    다. 자신이 몽매하기 때문에 외부로부터 나에게 혼란을 일으키는 많은 것들이
    들어오기 쉽습니다. 그때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성현의 가르침을 찾아 잘 인
    내해 가면 언젠가 몽매는 마치 딱지처럼 저절로  떨어져 나갈 날이 반드시 오게
    되어 있습니다.
     
      "몽은 몽매하다는 뜻이다. 몽매한 상태에서는  오직 형통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즉 일이 잘 풀리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이 잘 풀리는 길만을 배워야지
    벌써부터  풀려고 해서는 잘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을 받
    아야 됩니다. "형통할 수 있는 도리를 수행한다면 때에 적중한 시책이 될 것이다."
    형통할 수 있게끔 하기 위해 자기가 먼저 움직이지를 말고 그 도리를 알아서 지킨
    다면 이 괘가 잘  되어질 수 있는 길을 스스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이야기
    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선생이 어린이에게 배우기를 강요하는 방법을 써서는 안
    된다." 즉 몽매한 어린이가 스스로 선생에게 배우기를 원하는 의욕이 생기도록 유
    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몽매한 제자에게 선생이 일방적으로 배우기를 강요하는
    교육법을 쓰면, 제자는 아직 몽매하기 때문에, 제멋대로 받아들이고 제멋대로 판
    단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자가 스스로 알아서  찾아오도록 유도를 해야 합니다.
    길을 가다가 다리가 끊어졌으면 우회해서 다른 길로도 갈  수 있어야 하는데, "이
    쪽으로 가야한다."하고 강하게 가르치면 제자는 틀림없이 끊어진 다리로 물을 건
    너다가 물에 빠져 죽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하여야만 선생과 제자는 배우
    고  가르치는데 서로 마음이 호응할 것이며, 마음속에 신념을 가지게 된다." 몽매
    를 깨우쳐 주는데는 처음과 끝이 한결같이 다르지 않은 교육이 중요합니다. 그래
    야만 마음속에 신념이 생기게 됩니다. 몽매한 사람은 자기 위치가 없기 때문에
    "물이 흘러 흘러서 바다에 도달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강하게 주어 마음의 의심과
    혼란을 없애야 합니다. "전일한 마음으로 한 번 점치면 최초의 점에서 진실을 얻
    을 것이다. 그러나 두번 세번 같은 점을 되풀이 한다면 이것은 점의 신성을 모독
    하는 것이므로 바른 계시를 얻을 수없다." 이 괘가 나온 사람은 한 번 자기가 뜻을
    정했으면  중도에 자신의 뜻을 절대로 변경시켜서는 안된다라는 것을 말하고 있
    습니다. 길을  가는 동안에 인간적인 과오가 벌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자기를 단속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지 않고 한 번 펴보고, 두 번 펴보면 하늘은 완전히 막
    막해져 버리게 될 것입니다.
     
      "[몽]의 도로서 바른 덕을 기르는 것은 장차 성인의 길에 들어가게 하는 공이 되
    는 것이다." 이 괘의 사람은 성인이 될 수 있는 길을 이미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몽이 가지고 있는 결점을 스스로 현통하게 풀어나가는 길을 터득하면
    곧 성인에 들어가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 괘는 잘 풀리면 우주와 하나가
    되고 바다를 이루듯 성인이 될 수 있는 것이지만, 잘못 풀리면 자기의 결함이 무엇
    인지를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고 그로 인해 크게 비참해진다는 괘입니다. 양성에너
    지가 음성의 세계를 갖추지 못하고 그저 하고 싶은데로 막 움직이게 되면 사실 덧
    없이 그냥 망가져 버리게 됩니다. 이 괘는 위로는 막힌 상태에서 음성 에너지가 자
    기 고집만 떨게 되면 결국은 안에서 깨져 부셔져 버린다라는 점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역은 역순하므로 안과 밖이 바뀌어  버리면 이 괘는 위로 뚫리어 하늘을
    받아들일 수 있고, 밑으로는 자기가 자리잡은 것을 형통시킬 수 있게 되기 때문에,
    바로 이제부터 하나하나 올라가면서 자신의 결점을 분명히 알아서 스스로 보완해
    나가면 성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그냥 다 하나인 것 같지만
    안으로 나누어 보면 각자는 여러 개의 다른 차원에 있습니다. 짐승들은 그것을  철
    저히 지키는데 유독 우리 사람들만 그 점을 지키지 않습니다. 개미들은 태어날 때
    부터 여왕개미, 병정개미, 일개미로 엄격히 차원이 구분되어져 있습니다. 병정개미
    가 쿠테타를 일으키는 경우는 절대 없습니다. 일개미들은 그저 죽으나 사나 일만하
    고 살지만 그것이 일개미의 행복입니다. 우리 사람을 일개미, 병정개미, 여왕개미
    처럼 나눌 수는 없지만 자기가 지금 현재 처해져 있는 차원이라는 것은 있습니다.
    그런데 또 우리 인간은 차원을 박차고 전차원이 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
    다. 개미들은 아예 너는 여왕개미, 너는 일개미, 너는 병정개미 하고 딱 정해져버리
    면 병정개미가 여왕개미가 될 수 있는 확률은 0%, 일개미가 여왕개미가 될 수 있는
    확률은  0%입니다. 그점은 절대로 변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사람은  지
    금 일만 죽도록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영원한 일꾼이 되라는 법도 없고, 그 사람이 
    지금  대통령이라고 해도 어느날 갑자기  밑으로 끌어 내려져서 감옥에 갈 수도 있
    습니다. 주역이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은 전 우주의 차원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
    입니다. 그래서 비록 지금은 산 밑에 물이 있어 산에 흡수되어 버릴 그러한 처지지만
    산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 물만 잘 흘러 내려가 버리면 바다에 이룰 수가 있다는 것이
    산수몽괘의 상의입니다.
        
        대상. 산기슭에 솟아나는 샘물, 이것이 몽의 괘상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바른일을 과감히 실천하면서 묵묵히 덕을 기른다.
     
            大曰, 山下出泉蒙. 君子以果行有德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바른 일을 과감히 실천하면서 묵묵히 덕을 기른다." 군자는
    자기를 희생해 가면서 바른 일이 이루어지도록 묵묵히 덕을 기르는 것이지, 바르게 하
    려고 함부로 날뛰지 않습니다. 햇볕이 따갑더라도 비가 오더라도 싹은  묵묵히 견뎌내
    면서 자기의 할일만 분명히 해야지, 따갑다고 피하거나 비가 온다고 다시 땅속으로 들
    어가버리면 싹 자체가  망가져 꽃이 피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첫번째 음효. 무지를 계발하는데는 형벌을 엄하게 하는 것이 좋다.
        규율을 바르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자기 단속의 형벌을  너무 적
        극적으로 지속하여 가는 것은 좋지 못하다.
     
            初六. 發蒙. 利用刑人. 用說桎梏, 以往吝.
            象曰, 利用刑人, 以正法也.
           
      첫번째 효는 땅위에 굳건하게 서야  되는데 음효로서 굳건하게 서지를 못합니다. 이
    괘는 위치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밑에 있는 자신이 분명하지 못합니다. 어디
    서있는 지 모르고, 어디가 어디인지 모릅니다. 그저 자기에게 잘 대해주면 다  좋은 것
    인줄 알고 남들이 나보고  멋있다 그러면 정말로  자신이 멋있는줄 압니다. 그러므로
    큰 시행착오가 벌어지지 않도록 자기 단속을 잘해야 됩니다. 그래서 먼저 밑에 단단하
    게 자기 자신의  세계를 구축시켜야 합니다.  "무지를 계발하는 데는 형벌을 엄하게 하
    는 것이 좋다. 규율을 바르게 하기 위함이다." 자기 자신이 형벌을  엄하게 하여야 합니
    다. 밑을 단단하게 구축시킨다는 것은 자기가 갈 길을  분명히 정하는 것입니다. "나는
    첫째 나보다 훌륭하거나  비슷한 이가 아니면 함께 길을 가지 않겠다."라고 하면 자신
    의 길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을 그렇게 먹고 나아가는 동안에 다른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규율을 세우고 형벌을 엄하게 해야 합니다. 이 괘가 나온 사람은 자기
    좋은 쪽으로 규율을 세우는 경향이 있으므로 규율을 바르게 세우려면 자기 스스로 형
    벌을 엄하게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자기 단속의  형벌을 너무 적극적으로  지속하여
    가는 것은 좋지 못하다." 왜냐하면 너무나 자신을  속박하면 스스로 잘 할 수 있는 능력
    이 망가져 버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에게는 엄하되 해야  할 일에
    있어서는 활발하게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몽매한 사람은 자신이 신나야
    만 열심히 일합니다. 또 잘못된 일도 자신만 신나면 막합니다. 그러면서 어디로 가는지
    를 모르며 자기 즐겁지 않으면 을씨년스럽게 하는 사람이 이런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런 사람은 첫째, 외관적인 규율을 바르게 세우고 이를 지켜나아가야 합니다. 그 길이 힘
    들고 어려울 지라도 참고 해나가야 한다는 것, 그  점을 갖추지 않으면 안된다고 첫번째
    효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두번째 양효. 무지한  어린애를 포용하여  처와 화합하면 길하다.
        어머니를 도와 집안을  잘 다스릴 것이다.
               
            九二, 包蒙, 吉. 納婦,  吉. 子克蒙. 象曰, 子克蒙, 剛柔接也.
             
      두번째 양효 위아래로 음효가 있습니다. 양효가 양쪽으로  음을 인솔하는 형태로서 이
    것은 리더가 양쪽으로  부하를 인솔하는 격입니다. "어린애를 포용하여 처와 화합하면 길
    하다." 몽괘는  약한 자, 어린 자, 지혜가 부족한 자를  맡긴 것이므로 그 몽매한 자를 포용
    하고 혼자서 단독적으로 하지 말고 여러 사람들과 협력을 통해서 해나아가면 길하다는 것
    입니다.  화합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효는 양효이므로 화합을 위
    해서 자신을 잘  다스려가면서 나아가야지 신나서 한다고 잘된다는 보장이 있는 것은 아
    닙니다. 또  자신이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한다고 일이 안되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의 마
    음에 들고 안들고를 떠나서  자신을 잘 다스려  자제하며 화합을 이루어 내는 것, 여기서
    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보다 이것이 더 중요합니다.
     
        세번째 음효. 이런 여자를 아내로  삼으면 안된다. 그의 행동이
        남녀간의 순서에 어긋난다. 강정한 사나이를 보고 여자로서 예
        우 바른 행동을 하지 못하고 먼저 구혼한다. 아내의  지위에 있
        는 자가 먼저  자기 자신의  재지를 자랑하면서 중용해 주기를
        요구해서는 안된다.
       
            六三, 勿用取女. 見金夫, 不有躬. 无攸利.
            象曰, 勿用取女, 行不順也.
           
      세번째 효는 음효로서 위에서 하는 이야기는 모두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기
    눈에 볼 때 자기보다 조금  낫다고 싶으면 다 좋은 사람인 줄 알고 있습니다. "강정한 사나
    이를 보고 여자로서 예우 바른 행동을 하지 못하고 먼저 구혼한다." 바로 밑에 남자가 있고
    대응하는 여섯번째 효가 남자이기 때문에 아래쪽으로도 친하고 위로도 친하게 되는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몽괘는 확고한 자기, 지켜야 할 세계가  없이 움직이는 괘이기
    때문에 대응하는 여섯번째를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  여인은 강정한 사나이를 보면 여자로
    서 예의 바른  행동을 하지 못하고 먼저 프로포즈하기 때문에 남녀간의 순서에 어긋난다는
    것입니다. 지금 냇물은 바다로 가야 합니다. 바다로 가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데
    가다 보니까 주위에 유혹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주위에 한눈 팔다가 보면 바다를 향
    해 갈 길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작은 것을 찾다가는 큰 것, 즉 바다에 이를려고 하는 자신의
    뜻과 의지를 놓치게 된다는 점을  이 효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내의 지위에 있는 자가 먼
    저  자기 자신의 재지를 자랑하면서 중용해 주기를 요구해서는 안된다." 아래 지위에 있는
    자가 먼저 자신의 재능을 자랑하면서 중용해  주기를 요구해서는 안된다라는 이야기 입니
    다. 보통  [산수몽] 괘에 해당되는 사람은 작은 일에 잘난 척하기 쉽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조금만 부추켜 주면 마구 좋아하며 자기 자신을 망각해 버립니다. 그러면 작은  일에 빠져
    도대체 큰 일이 무엇인지를 잊어버리고 사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습니다.
       
        네번째 음효. 무지(無知)로 괴로와  한다.
        현명한 지도자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六四, 困蒙. 吝.  象曰, 困蒙之吝, 獨遠實也.
           
      몽괘는 천지창조가 이루어지고 난 후  네번째에 해당하는 괘이면서 현상이 벌어지는 
    것으로는 두번째이기 때문에,  세상물정을 모르고 자기 멋대로 하다가는 큰 코  다친다
    는 것을 경고하는 괘입니다. 그러나 이 몽괘는 큰 바다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산에서 졸
    졸졸 흘러내리는 냇물이 큰 바다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냇물이
    바다에 도달하기 전에 산이 덮쳐 흡수되어 버리면 그냥 끝나버리게 됩니다. 따라서 어
    리석음을 저지르지 말고 항상 산에 덮여질 수 있는 위험속에서 자기 스스로를 잘 지켜
    바다에 이르도록 하라는 가르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네번째는 위로 음효, 아래로도
    음효로 둘러싸여 무지 몽매한 자의 집단속에 쌓여서 홀로 고독한 형태입니다. 그래서
    궁지에서 어찌할 방법이 없어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길이 잘 보이지 않고, 일이 잘 풀
    리지 않으면 답답함 속에서 몹시 괴로울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자신의 무지 몽매를 탓
    하며 자포자기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몽매를 탓해서는 안됩니다. 여기서 현명한
    지도자를 얻지 못하였다는 것은 몽매를 스스로 자책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몽매는 놔두
    면 저절로 깨지게 되어 있습니다. 나중에 "아하!" 하고 아는 순간이 곧 오게 됩니다. 지금
    내가 몽매하다고 해서 몽매를 바꾸려 하지 말고, 먼저 몽매하기 때문에 벌어질 수 있는
    외부의 적들을 차단시켜야 합니다. 통상 몽매하면 자기 중심이 없으므로 마음이 약해집
    니다. 그러면 외부의 유혹에 말려들기가 쉽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적들을 차단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잘 인내해 가다보면 곧 몽매는 떨어
    지고 서서히 길이 보이기 시작할 때가 옵니다. "뭘 어떻게 해야 정말 잘 되는 것일까?" "이
    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망설여 질 때, 이 때에 정말로 필요한  것은 그곳에서부터 시작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멈추지 말아야  됩니다. "이제는 이런 이상(理想)을 갖고 해보자."
    하고 방향을  바꾸어서는 안되며, 이미 있는 그 자리에서부터 자기 자신을  꽃피워 나가
    기 시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다섯번째 음효. 무지한 자가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 공손한
        태도로 가르침을 청한다. 그러므로 길하다.
               
            六五, 童蒙, 吉.  象曰, 童蒙之吉, 順以巽也.
           
      다섯번째는 음효가 여섯번째 양성기운을 향해  따르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가르
    침을 유순하게 따르면서 유능하고 신뢰있는 자에게 일을 맡기면 길해진다는 뜻입니다.
    몽매라는 것은 머리의 좋고 나쁨에 관계없이 사리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해, 자신의 존
    재가  존속될 수 있는 그  세계의 반경을 흐트려뜨리는 것입니다. 잘 안된다고 자기를
    학대하지  말고 물끄러미 지켜보면 몽매는 떨어져 나가는 법입니다. 따라서 몽매가 떨
    어져 나갈 때까지 항상  가르침을 청하는 공손한  태도로 매사에 임하여야 길한 것입니
    다.
     
        여섯번째 양효. 모든 몽매를 퇴치한다. 몽을 퇴치함에 있어서
        피계몽자의 몽매를  원수처럼 여겨서는 안된다. 차라리 몽매를
        틈타 외부에서 오는 해를 막도록 마음을 쓰라. 그리하면 상하의
        마음이 서로 차분할 것이다.
     
            上九, 擊蒙. 不利爲寇,  利禦寇, 象曰, 利禦寇, 上下順也.
     
      양효가 최고의 위치에 있으면서 아래의 모든 음의 몽매를 퇴치합니다. 몽매는 이제
    떨어져 나갑니다.  몽매가 떨어지면 남의 몽매를 깨우쳐 줄 수 있게 됩니다. 이 때는 이
    미  큰 물줄기를 형성하였기 때문에 산이 덮쳐봐야  물을 막을 수 없습니다. 바야흐로
    성인의 덕에 산은 물에 잠기어 큰 바다를 이루게 되어 세상은 성인의 덕을 공경하고 따
    르게 됩니다.  "몽을 퇴치함에 있어서 피계몽자의  몽매를 원수처럼 여겨서는 안된다."
    몽매를 퇴치함에 있어서 피계몽자의 몽매를 원수처럼 생각하면 그 사람에게 해를  줄
    수 있습니다. 계몽자는  피계몽자의 몽매를 틈타서 외부로부터 침입하려는 해를  방어
    하여 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하면 계몽자와 피계몽자가 서로 화합하게 됩니다. 자신
    의 몽매가 떨어져 나갈 때까지는 샘물이 바다에 이르는 것과 같은 긴 여행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은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곧 이루어 질 수도 있습니
    다.  어떤 사람은 30년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10년이 될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
    은 1년만에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괘는 자기 스스로를 잘 관찰하라고 말합니다.
    몽매가 떨어지는 현상은  자신만이 압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고
    저절로  느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몽매는 사람이 원래가 몽매해서 몽매한게 아닙니
    다. 인간이 지금 이 세상에 살고 있다면 나보다 내가  살 수 있게 받쳐주고 있는 바탕의
    세계가 더 중요합니다.  '내가 잘 되야지.' 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잘 되어지지
    않고 출세할 수  없습니다. 혹시 우연히 산 주택복권이 맞아서 크게 한 번 돈을 벌 수는
    있습니다. 그런다고 해서 잘 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혹시 누군가 수많은 땅을 나에게
    줄 수도  있겠지만, 진정한 풍요는 간직해서  유지시킬 수 있을 정도의 땅만을 자기가 취
    해서  그 안에서 풍요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데에 있습니다. 내가 잘되기 위해서 욕심을
    부리고 크게 먹을려고 하면 결국은 먹지 못하고  끝내 가서는 자신이 망가져 버리게 됩
    니다. 바로 이런 사람이 몽매한 사람입니다.
     
     [산수몽]은 "물이 산에 흡수되어 없어진다."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역은 우주가 영
    원히 깨어지지 않듯이, 영원히 존재하는 세계로 데려가려고 지금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
    니다. 내가 지금 몽매하지만 목표를 올바르게 세우고, 내 욕심대로 하지 않고 정도(正道)
    를 지키며 그 길을 향하여 최대의 희생과 노력으로 꾸준히 해나가면, 결국 성현의 지위
    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산수몽]이 주는 교훈입니다. 주역의 괘를 볼 때 우리가
    좋게 되려면  땅에는 양성기운으로 우뚝 서 있어야됩니다. 그래야만 땅위에서 자라고 땅
    에 기운을 펼칠 수 있습니다. 서있지 못하고 땅을 음성적으로 받아들이면 땅과 붙어있는
    꼴이 되어버립니다. 반면에 하늘은 받아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하늘을 양성에너지로 막
    아버리면 하늘을 거부하고  자기 멋대로 한다는 뜻이기 때문에 잘 될 수 없습니다. 그래
    서 좋게 되려면 대부분이 밑은 양성이라야 하고, 위는 음성이어야 합니다.  [산수몽]은
    위가 양성이어서 하늘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몽매합니다. 그러나 겸손으로 성현
    의 말씀을 잘 지키면 주역은 역순하므로 위와 아래가 바뀌어 위가 뚫리게 됩니다. 뚫린
    다는 이야기는 하늘의 뜻을 받아들일 수가 있다라는  이야기입니다. 하늘의 뜻을 받아들
    이는 내가 존재한다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내가 밑으로 내려가서 하늘의 기운을 땅에 품
    어낼 수 있게 됩니다. 결국은 산이 물에 잠기게 됩니다. 바다에 가면 바다밑에 산이 있습
    니다. 산위에 물이 될 수가 있으므로 이 괘는 좋은 괘입니다. 좋은 괘이지만 아차 하면 잠
    길 수 있는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으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언제나 악은 나를 침범하려
    하고 있다라는 사실을 잘 생각하고 인내를 통해  눈이 저절로 틔어지게끔  묵묵히 자기주
    변에 있는 일을 성심성의껏 처리하다보면  언젠가 딱지가 떨어지는 날이 오게 될 것입니
    다. 
     
     2005. 9. 28. 유성 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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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수뢰둔(水雷屯)
    『   탄생의 시련  』
              
    ●      깊이 있는 사람은 안에 간직할 것을 먼저 생각합니
    ○      다. 손자병법에도 승산이 있는 자가 이긴다고 했습
    ●      니다. 안에 간직할 세계가 분명히 갖추어진 다음에
            움직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갖추지 않고 내가
    ●      움직이면 채워지겠지 하는 막연함으로 움직이는 사
    ●      람은 망할 사람입니다. 돈이 많다고 성공하는 것은
    ○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단지 얼마동안의 시간에 그
            돈을 탕진하느냐 하는 것만 남았을 뿐 결과는 뻔한
            것입니다. 겉만 화려하지 속안에 깊이가 없는 사람
            은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수뢰둔(水雷屯)
        둔(屯)은 양과 음이 처음으로 서로 교감하여 새
        로운 것을 태어나게 하는 그 고난의 때이다. 그
        러나 그 고난속에서도 꾸준히  활발하게 움직이
        고 있다. 이제 그 힘은 점차로 발전하고 확대하
        여 간다. 마치 뇌우의 에너지가  천지간에 가득
        하면 머지않아 큰 비가 되어  지상의 만물을 적
        셔줌과 같다. 지금은  고난과 암흑이  지배하고
        있다. 초조하다고  서둘러서는 안된다.  인재를
        적재 적소에 배치하고 꾸준히  노력하면서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좋다. 그러나  마음은 항
        상 불안하다.
       
            屯, 元亨. 利貞.  勿用有攸往. 利建侯. 象
            曰, 屯剛柔始交以難生, 勤乎險中. 大亨貞,
            雷雨之動滿盈. 天造草昧, 宜建侯而不寧.
     
      [수뢰둔]은 64괘중 3번째 괘이며 가장 어렵다는 4란괘(亂卦)중의
    하나입니다. [둔]괘는 천지창조가 시작되는 고난을 상징하고 있습니
    다. 모두 양효로  이루어진 [건]과 모두 음효로 이루어진 [곤] 다음
    에 음양이 상호교감하면서 처음으로 나타나는 상태가 [둔]괘입니다.
     
      주역은 여섯 개의 효중 1, 3, 5번째 효는 양성의 자리이고  2, 4,
    6번째 효는 음성의 자리인데 수뢰둔괘는 3번째 효 외에는 나머지 효
    들은 모두 제자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특히 맨 밑에 양의 효가 자
    리잡고 있는 것은 이 세상에 굳건히 자리잡고 있다는 뜻이며, 이 괘
    는 잘 나갈 수 있다는 것을 표시해 주는 것입니다. 이 괘의 전체적인
    뜻은 씨앗을 땅속에다 파묻었을 때 땅속에 묻힌 씨앗이 흙을 뚫고 나
    오려니 암담하고 캄캄하기 이를데 없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그 싹은 결국에는 피어나온다라는 것을 동시에 말하고 있습니다. 그
    래서 만약 점을 쳐서 이 괘가 나왔다면 지금하고 있는 일이 아직 성
    숙이라는 것을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단순히 주역을 찾아보면 이
    괘는 주역 64괘중 나쁜 4개의 괘중 하나라고 나오지만 원래 주역에는
    나쁜 괘, 좋은 괘는 없습니다. 주역은 현재가 좋은 상황이면 앞으로
    닥칠 나쁜 상황에 어떻게 슬기롭게 대처하여 현재의 좋은 것을 지속
    할 것인가를 말하고, 현재가 어렵고 힘든 상황이면 이를 어떻게 슬기
    롭게 극복하여 미래의 좋은 상황으로 만들 것인가를 말하고 있을 뿐
    입니다.
     
      [둔]은 상괘가 물을 나타내는 괘이고 하괘는 우뢰를 나타내는 괘입
    니다. 현재는 비록 주변 환경이 좋지 않지만 언제든지 우뢰를 일으킬
    수 있는 강한 에너지가 충전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머지않아 천둥
    이 치듯이 잘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맨 밑의 양효는 이 세상에
    굳건히 자신의 뜻을 세우고 이제 막 나아가려고 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위로 세개의 음효가 있어 양의 기운이 나아가려는데 그 기운을
    계속 흡수해 버리니 암담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마치 씨앗이
    싹을 틔우기 위해 땅을 뚫고 나오려는데 흙의 인력이 계속 잡아당기기
    때문에 나아가기가 매우 곤란한 처지에 빠져 있는 것과 같은 상황입니
    다. 그러나 첫번째 양의 기운은 꾸준히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으며 가
    장 중요한 다섯번째의 효가 양효의 자리에 양효가 위치하여 중정(中正)
    을 이루고 있으므로 첫번째 양효의 활동이 올바로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장해 주고 있습니다. 아무리 흙이 잡아당길 지라도 씨앗은 결국에
    그것을 뚫고 세상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뇌우의 에너지가 천지간에  가득하면 머지않아 큰  비가 되어 지상
    의 만물을 적셔줌과 같다." 물론 지금은 우뢰가 구름밑에 있어서 번개
    와 천둥을 일으킬 수 없는 미성숙된 상태에 있고, 환경이 방해하는 것
    들로 둘러싸여져 있는 매우 암담한 상황이지만, 그 고난속에서도 씨앗
    이 모래에 자리잡은 것이 아니고 제대로 땅에 확고히 자리를 잡고 있
    기 때문에 그 힘은 점차로 발전하고 확대되어 결국에는 뇌우의 에너지
    가 천지간에 가득하여 큰 비를 내려 지상의 만물을 적셔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제 어떻게 뚫고 나가느냐 하는 문제만이 남아 있습니다.
     
        대상. 우뢰가 구름 밑에 있어서  아직 진로할만한
        기세에 도달하지 못하였다. 이것이 [둔]의 괘상이
        다.  군자는 이러한 질식 상태를 타개하기 위하여
        국가 경륜의 큰 뜻을 세운다.
     
            大象, 雲雷屯. 君子以經綸
     
      씨앗이 난관을 뚫고 세상에 얼굴을 내밀 수 있는 것은 꽃을 피울려고
    하는 그 뜻이 옳바르고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세상에 우뚝 서서 세
    상을 위한 일을 하려고 함에 있어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뜻을 정립하는 일입니다. 뜻이 올바르고 분명하면 한 때 어려운 역
    경이 닥치더라도 미래의 영광을 위해 지혜와 인내로써 극복하고 나아갈
    것이며 뜻이 부정하고 약하면 주변의 유혹에 빠져서 이룰 수 없기 때문
    입니다.  "군자는 이러한 질식 상태를 타개하기 위하여 국가 경륜의 큰
    뜻을 세운다." 이것이 곧 인재를 적재 적소에 배치하고 꾸준히 노력하면
    서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자세입니다. 부딪치고 나아가는 일은 잠시 내일
    을 기약하면서 보류하고  앞으로 일어나는 움직임을 주의 깊게 살피며 서
    서히 일으켜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큰 뜻은 절대 잃어버림이 없이 오히
    려 안으로 더 굳게해야 하는 것입니다.
      
        첫번째 양효. 더 나아갈 수  없다. 그러나 정체만하
        고 있을 수는 없다.  갈수도 머무를 수도 없는 상태
        에서 무릇 주자(走者)는 고민하고 있으나 뜻한 바는
        정당하다. 겸손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면 크게 민
        심을 얻을 것이다.
     
            初九, 磐桓. 利居貞.  利建侯. 象曰, 雖磐桓,
            志行正也. 以貴下賤, 大得民也.
           
      나갈 수도, 멈출 수도 없는 상황에서 양효가 흘러 넘치는 양성기운의
    심경에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비록 주저하고 고민하고 있으나 다섯번째
    양효가 중정(中正)의 위치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뜻한 바는 정당합니다.
    또 정체만 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분명한 뜻을 얻어 그 힘으
    로 나아갈 길을 멈추지 말고 고난을 극복해 나아가야 합니다. 위로 세개
    의 음성기운이 누르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을 타고 넘어가야 합니다.
    음성기운은 힘으로 누르고 넘어갈 것이 아니고, 잘 달래어 극복해야 할
    기운입니다. 남자가 여자를 이기는 것은 여자를 잘 다독거려서 스스로
    따르게 하는 것이지 결코 완력으로 휘어잡는다고 여자를 이기는 것이 아
    닙니다. 그래서 몸을 낮추는 겸손한 마음으로 대하면 음성기운의 마음을
    얻어 넘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두번째 음효. 나가기를 주저하여 되돌아 온다. 말을
        타고 가다가 되돌아 온다. 방황하는 모습이다. 이웃
        집 남자가 사모하여 구혼(求婚)한다. 처녀는 정조가
        견고하여 함부로 유혹되지 않고 마침내 상도(常道)로
        돌아와서 올바른 상대와 결혼한다.
     
            六二, 屯如, 瀆如, 乘馬班如. 匪寇,  婚구.
            女子貞不字, 十年乃字.   象曰, 六二之難,
            乘剛也. 十年乃字, 反常也.
     
      첫번째 양효가 나아가려고 하였으나 음효가 잡아당겨서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힘을 좀 보태서 말을 타고 나갔으
    나 그 위의 음효가 워낙 강하여 결국은 다시 되돌아 왔습니다. "이웃집
    남자가 사모하여 구혼(求婚)한다." 두번째 음효는 陰의 자리에 陰이 있
    어 좋은 위치지만 첫번째 양효와 가까이 있어 유혹을 받기가 쉽습니다.
    본래 대응관계에 있는 다섯번째 효가 양효로서 이 음효는 다섯번째 양효
    를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밑의 양효가 가까이 있어 그 유혹에 망설이고
    있습니다.
     
      "처녀는 정조가 견고하여 함부로 유혹되지 않고 마침내 상도(常道)로
    돌아와서 올바른 상대와 결혼한다." 그러나 음효는 2, 4, 6번 모두 陰의
    자리에 정당하게 위치하고 있습니다. 특히 두번째 음효는 내괘의 가운데
    효로서 중정(中正)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끝끝내
    정조를 지켜 다섯번째 양효와 결합을 이룰 수 있습니다. "절개가 굳은 처
    녀는 긴 고민의 세월을 참아 넘기고 마침내는 정상적인 길로 돌아와 정당
    한 상대자와 결합을 한다." 즉 긴 고민의 세월을 참아 넘기고 마침내는
    정상적인 길로 돌아와 이루어낸다는 뜻입니다. 첫번째 효에서 시작을 해
    서 두번째에 잘 안되고 있지만 잘 안되는 것은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잘
    안되는 것이지 바탕이 될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안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바탕은 될 수 있는 자질은 충분히 갖추었는데 되기 위한 장애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처음에 세운 뜻을 향해 한 때 유혹이 오더라도
    뜻을 저버리지 말고 일관하여 끊임없이 꾸준히 해 나가면 반드시 뜻을 이
    룰 수 있습니다.
      
        세번째 음효. 사냥꾼이 사슴에 정신이 팔려 안내자도
        없이 숲속으로 깊숙히 들어가는 상태다. 위험한 징조
        를 보면 곧 중지해야 한다.  함부로 들어갔다가는 반
        드시 막다른 골목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六三, 卽鹿无虞, 惟入于林中. 君子幾不如含.
            往客. 象曰,卽鹿无虞, 以從禽也, 君子含之,
            往客, 窮也.
           
      "사냥꾼이 사슴에 정신이 팔려 안내자도 없이 숲속으로 깊숙히 들어간
    상태" 첫번째  두번째에서 꾸준히 열심히 하였으나 위로 두개의 음에너지
    가 강하게 누루고 있어 양에너지가 나아가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열심
    히 하려는 마음만 앞서 사냥꾼이 사슴에 정신이 팔려 너무 쫓다 보니까
    안내자도 없이 밀림속으로 깊숙히 들어간 상태가 되었습니다. 되어가는
    것인지 안되는 것인지도 모르고 무조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
    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외부를 관찰할 줄 모르고 단순히 열심히 하는 모
    습의 자기 자신에 도취되어 있는 것입니다.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은 아
    닙니다. 열심히 하면서 변화를 일으켜야 합니다. 어려우면 어려운 상황을
    변화시켜서 뚫고 나아가야지 막연히 열심히만 해서는 안됩니다. 세상에
    부지런한 사람들은 많이 있습니다. 아침에 별을 보고 나와서 어둠이 깊어
    진 다음에 들어오는 사람들, 새벽 네시 반에 나가서 돌 나르다가 밤 열한
    시에 들어와서 곯아 떨어지고, 다음날, 그 다음날도 똑같이 사는 사람들,
    그러다가 나이 오십이 넘어가면 류마티스, 관절염 등 골병이 들어 자기몸
    하나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사람들은 비록 열심히
    는 살았지만 비젼이 없이 살았기 때문에 변화가 없었습니다. 비젼 없는 노
    력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자기 한다는 것에만 몰두해서 하지 말고, 가다가 위험하면 중지할 수 있
    는 융통성이 있어야 합니다. 아프면 쉬면서 상처를 치료하고, 상처가 아물
    면 다시 서서히 시작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이판사판으로 그냥 무작
    정 내닫으면 결국 길이 막혀 헤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이제 양에너지가 나
    아가는데 있어 가장 어려운 결정적인 상태가 바로 지금입니다. [수뢰둔]이
    '고(苦)'를 나타내는 이유는 세번째 효가 음성인데, 두번째 음성기운 뿐만
    아니라 위의 네번째 음성기운까지 받아들여 음에너지 세개로 양에너지에 밀
    어 닥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남자가 세 여인을 감당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남자가 한 여인을 잘 구슬려서 따르게 하는 것도 힘이 드는
    데 세 여인이나 모두 불화없이 이끌고 넘어가려면 그만큼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반대로 사나이로 태어났으면 세 여자를 다스릴 정도는 되어야
    장부라고 할 수  있다는 뜻도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두번째 여자
    까지 다스리려면 단순히 노력하는 것만으로는 안되고 비젼을 일으킬 수 있
    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젼이 보이게 되면 위험이 닥쳐도 좌절하지 않고
    슬기롭게 극복하는 방도를 찾게 됩니다. 길을 잃으면 되돌아 오더라도 절망
    하지 않습니다. 세상과 부딪치려 하지 말고, 세상에 머리를 숙이면서 타고
    넘는 것. 가다가 조금이라도 이상한 상황이 오게 되면 얼른 중지하고 재정
    비한 다음, 거듭 살피며 나아가는 것. 세번째 효는 이를 말하고 있습니다.
      
        네번째 음효. 말을 타고 내달았다가 주저하며 되돌아
        온다. 돌아와 혼인을 구한다. 적극적으로 추진하면 성
        취될 것이다. 혼자의 힘으로 독주하려 들지 말고 동지
        를 구하여 함께 나아감이 현명하다. 그리하면 모든 것
        이 순조롭고 길하리라.
     
            六四, 乘馬班如. 求婚구往, 吉无不利.
            象曰, 求而往, 明也.
     
      생물학자들은 남자와 여자의 구조가 어떻게 생겼으며 그 차이는 무엇인가
    를 인체에 대한 연구, 특히 성호르몬의 성질과 그 기능 등을 밝혀냄으로써
    파악할 것입니다. 또 심리학자들은 남녀의 마음과 심리적 변화 등을 연구할
    것입니다. 그러나 남녀가 기하학적으로 어떻게 생겼는가하는 것을 가장 정확
    하게 말해주는 것이 바로 주역입니다. 주역은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
    대로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말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인간으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유익함과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역이 이 세상에 탄생하게 된 동기입니다. 인간이 궁극적으로 어떻게
    해야지 행복한 발전을 이룰 수 있는가? 그것은 먼저 남자는 남자가 무엇인지
    를 분명히 알고 여자는 여자가 무언지를 알고,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
    답게 사는 것이 바로 행복에 이르는 길입니다. 남자는 남자가 무엇인지 모르
    고 남자답게 살지 못할 때 불행해지며, 여자는 여자가 무언지를 모르고 여자
    로서 살지 못하기 때문에 불행해 집니다. 단순히 나는 여자이니까 남자가 필
    요하다, 혹은 나는 남자이니까 여자가 필요하다고 해서 남녀가 같이 살면 처
    음에는 잠깐 행복한 것같지만 좀 지나면 공허해지기 쉽상입니다. 그 남자가
    다 그 남자같고, 그 여자가 다 그 여자 같아서 행복이 오지를 않습니다. 그
    이유는 여자가 여자를 분명히 모르고 남자가 남자를 분명히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음성에너지가 두 개, 양성에너지가 한 개 있는 것이 남자입니다. 또 양성
    에너지가 두 개, 음성에너지가 한 개 있는 것이 여자입니다. 남자는 겉으로
    는 양성이지만 안으로 음성기운이 둘 있고, 여자는 겉으로는 음성이지만 안
    으로 양성기운이 둘 있습니다. 옛날 우리나라의 성리학은 주역을 토대로 해
    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여자는 여자, 남자는 남자라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
    해서 "남녀칠세부동석"이라고 까지 하였습니다. 남녀지간에 우정이 존재한다
    고 믿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 남녀지간에 우정은 없습니다. 우정이라는 심
    리적인 작용도 자연은 여자는 여자대로 남자는 남자대로 존재하게 만들어 놓
    았기 때문에 끝내 가서는 남녀지간의 애정으로 변해버리게 됩니다. 양성에너
    지는 "쉽고 친절하다."고 했으므로 처음에는 친구같이 존재할런지는 모르지
    만 조금 지나면 안에 있는 음성에너지가 움직여서 그 여자를 취하려 하게 됩
    니다. 그래서 여자들은 남자는 늑대라고 말합니다. 그 속셈이 나중에 드러나
    기 때문입니다. 남녀가 만나다 보니까 친해져서 한 번 이불 속안에 들어가면
    변하는 남자가 있습니다. 조금 전 까지는 "미스 김 커피 드시겠어요?" 이렇
    게 친절하다가 이불 속안에 들어갔다 나오면 "어이 뭐 마실 거 없어? 좀 가
    져와." 이렇게 명령형으로 변하는 남자.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금 전 까
    지는 얌전떨고 있다가 이불 속에 한 번 들어갔다 나오면 "나 뭐 살게 있는데
    ..."  하는 여자. 이런 남자나 여자와는 빨리 헤어지는 것이 좋습니다. 또 어
    떤 남자는 이불 속안에 들어가면 만족해 가지고 "미스김 다음에 꼭 다시 한번
    만나 주시는 거죠?" 하며 이상야릇한 친절을 계속 베푸는 남자, 이런 남자는
    애욕적인 심정으로 인해 언젠가 나를 버릴 남자라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자기 기분에 도취되어 좋아하는 여자, 이런 여자는 소속이 없는
    여자입니다. 즉, 절개 없는 여자입니다.
     
      그러면 어떤 남녀가 만나야 되는가? 세칭 천생연분이라고 불리우는 남녀의
    만남은 참으로 어려운 것입니다. 서로간에 마음으로 일어나는 것도 아니면서
    아무런 욕심도 없이 무언가 눈에 보여지지 않는 밀착감이 느껴지는 사람들이
    틀림없이 있습니다. 음양의 기가 완전히 순응되는 상태의 밀착감을 느끼는 사
    람들 사이가 천생연분입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런 사람 만나는 것은 극히
    힘듭니다. 한 평생을 산다고 하더라도 거의 만나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백년
    을 사는 동안에 한 번 만나기가 그렇게 힘든 사람을 못 만날 바에는 자기 자
    신이 남자가 무엇이라는 것을 알고 남자답게 사는 것, 여자가 무엇이다하는
    것을 알고 여자답게 사는 것, 그것이 보다 행복한 길입니다. 그것은 차라리
    자신의 연분을 만나는 것보다 더 쉬운 길입니다. 여성에너지는 뒤에 남성에너
    지를 두 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자는 일단 받아들이는 쪽으로 나아가야 합
    니다. 안에 있는 두 개의 양성에너지가 밖으로 먼저 튀어나와 버리면 자기가
    받아들여야 할 그 부분이 쪼개져 나가 버리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그 여자
    는 안주할 곳이 전혀 없게 됩니다. 남자도 역시 마찬가집니다. 바깥으로 나가
    는 에너지가 있는 한은 그  뒤에 안으로 포근히 돌아오는 세계를 간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간직이 없는 남자, 다시 말하면 벌어야만 되겠다고 사업하는
    사람은 망하기 쉽상입니다. 남자가 성공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것은 뒤의 음성
    에너지를 통해 얼마만큼 잘 받아들여 안으로 차곡차곡 쌓아 놓는가? 또 그것
    을 어떻게 오랫동안 유지하는가에 달린 것입니다.
     
      이 [수뢰둔] 괘는 위아래 어느 한 쪽이 여자여야 되는데 둘다 남자입니다.
    위에 세효에서 양효가 하나이며 하래의 괘에서도 세효중에 양효가 하나이기
    때문에 위 아래가 모두 양효가 대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안으로 여성에너
    지를 많이 가지고는 있지만 이 여성에너지를 통해 충분히 안에서 저장을 시
    킬 만한 능력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이 괘는 굉장히 어렵게 된다라는 점을 말
    하고 있습니다. 깊이 있는 남자는 안에 간직한 것을 먼저 생각합니다. 손자
    병법에도 "승산이 있는자가 이긴다."라고 했습니다. 안에 간직할 세계가 분
    명히 갖추어진 다음에 움직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갖추지 않고 '안이
    비었으므로 내가  움직이면 채워지겠지.' 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망합니다.
    돈이 있다고 성공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단지 얼마만한 시간
    에 그 돈을 탕진하느냐만 남았을 뿐이지 결과는 뻔한 것입니다.
     
      "말을 타고 내달았다가는 주저하며 되돌아온다. 돌아와 혼인을 구한다."
    세번째까지 극복하고 이제 네번째로 오게 되면 내괘에서 외괘로 비약을 한
    것입니다. 그동안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숲속에서 방황하다가 이제 대평원으
    로 나왔습니다. 그래서 행복이 있는 줄 알았는데 행복이 있는게 아니고 "아
    무 것도 없더라," 즉 내가 얻을려고 하는게 없었습니다. 씨앗이 흙 속안에
    서 "야 이 흙만 뚫고 나가면 뭐 있겠지" 하고선 나가 보니까 아무것도 없더
    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들어와서 혼인을 구해야 합니다. 혼인을 구
    한다는 것은 음성에너지가 이제는 양성에너지의 사리판단을 필요로 해서 같
    이 나가야 된다는 뜻입니다. 남자는 사리판단이라는 걸 가지고 있습니다.
    여자는 일단 음성에너지로 받아들일려고 하기때문에 사리판단을 하지 않습
    니다. 갈려고 하는 자가 뭐가 있는가 더듬더듬 생각하는 것이지, 가질려고
    하는 자는  더듬거릴 필요가 없습니다. 남자는 갈려고 하는 사람이기 때문
    에 더듬더듬 "이것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를 보는 겁니다. 여자는 뭔가 잡
    히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혼인을 구한다라는 이야기는 첫
    번째 양효의 살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나아가라는 이야기입니다.
            
        다섯번째 양효. 은덕(恩德)이 널리 미치는 경지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 마음이  편협하고 도량이 크
        지 못하다. 작은 일을 맡은 자는 꾸준하여 길할 것이
        나, 큰 일을 맡은  높은 지위에 있는 이가 이러한 태
        도로 있으면,  융통성이 없어 흉하리라.
     
            六五, 屯其膏, 小貞吉,  大貞凶. 象曰, 屯其膏,
            施未光也.
           
      [수뢰둔]은 음, 양이 교감되어 나타나는 첫번째 괘입니다. 그래서 다섯번째
    양효가 중정(中正)을 지키고 있고 두번째 음효와 정응(正應)을 이루어 올바른
    위치에 있지만, 아직 은덕(恩德)이 널리 미치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하였습니
    다. 남자가 크면 클수록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포용력이 확대되어야 성숙할
    수 있습니다. 포용력이 있다는 것은 곧 융통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융통성 없
    는 사람들이 세상을 욕합니다. 회사에서 자기 상관이 온전하지 못하면 자신은
    그러지 않으면 됩니다. 그런데 융통성 없는 사람이 동료들과 허구헌날 술마시
    며 상관을 흉봅니다. 세상은 온전한 것입니다. 인간이 행위함으로써 자연적으
    로 벌어진 세상의 일들은 모두 다 의미있는 것들입니다. 나쁜 것은 나쁜 것대
    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나쁜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나쁜 짓을 같이
    하라는 얘기가 아니고, 그 나쁜 것이 저질러질 수밖에 없는 배경의 세계를 찾
    아내어 그것을 시정할 수 있는 도량을 갖추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융통성입니다. 설렁탕 집은 설렁탕 고유의 분위기와 맛이 있습니다. 풋풋한 실
    내장식과 뚝배기는 설렁탕의 맛을 대표합니다. 그런데 융통성 없는 사람이 돈
    을 많이 벌었다고 설렁탕 집을 개조하여 대리석으로 번쩍 번쩍하게 해놓고 그
    릇을 은그릇 금그릇으로 바꿔버리면 오히려 더 고급스러운 분위기와 집기를 사
    용했는데도 더이상 손님이 오지 않습니다.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음성에너지
    로 유지해 나갈 수 있는 힘을 갖추어야 합니다.
     
        여섯번째 음효. 말을 타고 떠났으나 갈 곳이 없어 되돌아 온다.
        처량하고 외로움에  피눈물을 흘린다. 앞날이 멀지 않구나.
     
            上六, 乘馬班如. 泣血漣如, 何可長也.
           
      무슨일이나 너무 지나치게 궁극까지 내달으면  결국은 궁지에 빠져 오도가
    도 못하게 됩니다. [수뢰둔]의 괘상은 맨밑의 양효가 세상에 강하게 서는 자
    신을 확립하였지만  위로 음효가 겹쳐있어 길이 막혀있는 형국이라고 했습니
    다. 주역은 역순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괘가 위로 올라오고 외괘
    가 아래로 내려갑니다. 그러면 맨 아래에 음효가 서서 아래로 받아들이고 맨
    위에도 음효가 서서 위를 받아들입니다. 결과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충분히
    해서 부족한 부분은 채우고 나가야 하는 부분은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세계를
    깊이 뿌리 내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루어졌을 때 비로서 뇌성이 물
    을 뚫고 바깥에 나와서 온 세상에 번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받아
    들이는 것 없이 조금 잘  된다고 자기 고집대로 밀고 나아가다 보면 결국 밑
    으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되어 갈 곳이 없게 됩니다. 그리고 안으로 쌓여
    진 것이 없으니 더 오래  갈 수도 없습니다. 이러한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음덕을 갖추는 것입니다.
     
      [수뢰둔]은 내괘 외괘 모두 음효가 둘, 양효가 하나로서 양성입니다. 어느
    한 쪽이 음성이어야 서로 잘 융합이 되는데 둘 다 남성이어서 서로 조화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면에는 여성에너지를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안에서  차곡 차곡 잘 쌓을 만한 능력이 갖추어지면 잘 이루어 낼 수
    있습니다. 남자가 성숙하려면 포용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음성기운의 포용력
    이 없이 양성에너지로 꼿꼿이 서려고만 하면 집안이 분산되고 가족이 헤어집
    니다. 그래서 음성기운으로 포용할 수 있는 포용력이 있어야 합니다. 포용력
    은, 세상의 모든 일은 자연이 자연적으로 저지른 일들이기 때문에 모두 수용
    할 수 있다는 마음입니다. 세상에는 온전한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악날
    한 사람도 있고 자기에게 혹은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에게 파렴치한 행위를 하
    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세상을 욕하고 하늘을 욕해서는 안됩니다. 홍
    수가 나서 봄에 피땀 흘려서 농사지어 놓은 것들을 하루 아침에 싹 거두어 갔
    다고 하늘을  욕해봐야 하늘은 꿈적도 안합니다. 그것은 자연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 욕하는 인간이 잘못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이 살기 힘들다고 해
    서  세상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세상은 온전합니다. 다만, 온전한 사람이
    드물 뿐입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 일을 하다 보면 부딪치는 세계가 많습니다.
    그것을 모두 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는, 제자들이 사람들이 자
    신들을 핍박한다고 말할 때,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했습니다. 즉
    자신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애증(愛憎)을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없애라는
    뜻입니다. 그래야만 씨앗은 햇빛도 필요하고 빗줄기도  필요한 것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씨앗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자연의 힘이 있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핍박해도 우리는 자연의 힘이 있기 때문에 모두 받아들이고 용서할 수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싹은 야들 야들하게 나왔지만 이제 뻣뻣한 줄기로 굳
    어질 것입니다.
     
     2005. 9. 27. 유성 記..…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4669
  • 2. 곤위지(坤爲地)
    『 위대한 생명력 』

    인간이 자연의 법칙을 터득하기 위해서는 자연과 같
    이 음덕(陰德)을 길러야 합니다. 자만심에 빠져 모
    든 이루어진 것들이 자기 재주에 의해서 된 것인냥
    뻐기는 자는 자연이 주는 혜택을 받을 자격이 없는
    자입니다. 항상 인내심을 가지고 희생하며 일이 이
    루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지만 공을 하늘로 돌
    릴 수 있는 자. 겉으로 나서서 하는 것보다는 뒤에
    서 마땅히 해야할 바를 충실히 하는 자. 주인이 나
    를 알아 주든지 말든지 아랑곳 하지 않고 주인에 대
    한 신의를 끝까지 지키는 절개가 굳은 자. 이런 사
    람만이 천지 자연의 법칙을 터득하여 완성을 이룰
    수 있는 사람입니다.

    곤위지(坤爲地)
    곤(坤)의 괘는 크게 형통한다. 곤은 대지, 대지
    는 가장 위대한 생명력의 근원이다. 대지의 이
    무한한 근원적인 힘을 받아 만물은 나고 또 자
    란다. 그리하여 창조를 받아 성취한다. 대지는
    풍요하여 만물을 싣고 있다. 그 음덕의 넓고 큼
    은 한계가 없다. [곤]의 한없는 포용력에 안겨
    만물은 저마다 성장하고 번영한다. 준마(駿馬)
    는 땅과 같은 것, 암말은 유순하게 자신의 도리
    를 지키면서 무한한 힘을 간직하고 있다. 유순
    하면서도 모든 것이 마땅한 바를 얻고 굳게 절
    조를 지킨다. 그러므로 선두에 서서 나아가려
    한다면 반드시 길을 잃고 헤매지만 뒤를 따르면
    순조로이 목적지에 도달할 수가 있는 것이다.
    결혼전에는 좋은 친구를 얻어 도움을 받으나 결
    혼한 후에는 친구를 떠나 오직 남편을 섬겨야
    한다. 최후에는 커다란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여성다운 정숙함을 항상 잃지 않는다면, 대지가
    무한한 것처럼 길이 행복할 것이다.

    坤, 元亨. 利牝馬之貞. 君子有攸往, 先迷,
    後得主. 利西南得朋. 東北喪明. 安貞吉.
    象曰, 至哉坤元, 萬物資生. 乃順乘天. 坤
    厚載物, 德合無彊, 含弘光大, 品物咸亨.
    牝馬地類, 行地無彊. 柔順利貞, 君子攸行.
    先迷先道, 後順得常. 西南得朋, 乃與類行.
    東北喪朋, 乃終有□, 安貞之吉, 應地無彊.

    [곤위지]괘는 여섯개의 효가 모두 음효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음성에너지는 마치 바닷가의 파도와 같습니다. 튜부를 타고 파도
    에 가까이 가면 튜부가 밀려 나오는 것이 아니고 점점 안으로 딸
    려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파도가 튜부에 부딪치면 밀려나
    와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안으로 딸려들어갈 수 있는 것, 그것은
    바로 음성에너지의 위대한 힘 때문입니다.
    중국사람들은 이 [곤]괘를 땅에 비유하였습니다. 인간관계에 있
    어서도 [건]괘가 남편이라면 [곤]괘는 아내와 같은 괘이고, [건]
    괘가 하늘이며 임금이면 [곤]괘는 신하와 같은 괘입니다. [곤]은
    [건]과는 떨어질 수 없으면서도 [건]과 하나가 되어서는 안되며,
    그렇다고 필요조건을 서로 어긋나서 절대로 존재할 수 없는 존재,
    이것이 [곤]입니다. [곤위지]는 신하이기 때문에 끝까지 임금을
    모셔야 되는데, 그렇다면 셀러리맨은 항상 샐러리맨으로만 남아
    있고, 사장 노릇 한 번 못해보는가? 처음부터 곤으로 시작된 사람
    은 출세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이런 의문이 제기될 수 있습니
    다.
    [건]과 [곤]은 같이 공존하고 있지만 [건]은 [건], [곤]은 [곤]
    으로 뚜렷하게 구별되어 있습니다. 하늘과 땅은 분명히 경계가 있
    으며 땅은 땅으로서, 하늘은 하늘로서 완전히 분리되어져 있습니
    다. 그러나 하늘 없이는 땅이 존재할 수 없고, 땅이 없이는 하늘
    로부터 부여되는 모든 것들을 생성하고 창조할 수 없습니다. 그래
    서 [곤]이 없는 [건]은 힘을 쓸 수도 없을 뿐더러, 힘을 쓴다 할
    지라도 그것은 전혀 아무런 가치를 보여줄 수 없는 무용지물이
    되어져 버립니다.
    이 [곤위지]에 대해서 잘못 이해하면 밑의 사람은 밤낮 밑의
    사람으로 끝나버리는 것으로 됩니다. 과거에 지배층은 이것을 강
    조하기도 하였습니다. 황제는 태어날 때부터 하늘이 이미 정하였
    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하늘이 처음부터 하늘이었고 땅이 될 수
    없듯이, 황제는 처음부터 황제고, 신하는 처음부터 신하였다는 것
    입니다. 그러면 밑에 있는 신하는 밤낮 신하로만 있어야 되는가?
    신하는 밤낮 신하로서 일만하다가 신하는 죽는 것인가? 신하도
    뭔가 출세할 방법은 없는가? 여기서부터 출세하는 것이 사실 나
    오게 됩니다. 신하가 없는 왕은 왕이 될 수 없습니다. 신하도 중
    요한 것입니다. [곤위지]의 여섯가지 효는 거슬러 올라가면서 출
    세하는 방법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이가 40쯤 되어가지고 이제 겨우 중견사원, 다시
    말하면 부장이나 차장정도 올라갔는데 삼 년 후배를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만났읍니다. 그 후배가
    "형님 어디 가십니까?"
    "아! 나 여기 31평짜리 아파트에서 산다."
    "그러십니까? 그러면 우리 집에 한 번 놀러오십시오."
    "몇 동에 사는데?"
    "65평짜리 아파트입니다."
    "억! 너 나이도 얼마 안먹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부자가 됐냐?"
    "아이 글쎄, 나중에 얘기할테니 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
    그래서 그 집에 놀러갔습니다.
    "너 요즘 뭐하냐?"
    "나 요즘 사업합니다."
    "무슨 사업인데? 뭐 큰 사업하냐?"
    "나 요즘 쫄닥 망하는 사업합니다."
    "아니 그건 무슨 소리냐?"
    "내가 남의 회사 말단사원으로 처음 들어가자 마자 우리 삼촌
    이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자식이 하나도 없어서 유산을 나에게 물
    려주셨습니다. 그 유산이 하도 많아서 내가 다니는 회사의 월급이
    라는 것은 유산에 비하면 돈이 아닙니다. 그래서 회사 그만두고
    여태까지 사업을 여섯 번 벌렸습니다. 나는 돈만 있으면 사업이
    다 잘 되는 줄 알았는데 처음 실패하고, 두번째 쫄닥 망하고, 세
    번째 네번째 다섯번째 망하고, 지금 여섯번째 하고 있습니다. 이
    여섯번째도 내가 정신차려서 잘 할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아직
    돈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에 이것을 빨리 없애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빨리 없어져야지 내가 제 정신차려서 일어날 수 있기 때
    문에 나는 지금 사업에도 별로 신경도 안쓰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빨리 망해서 자빠지기 위해서 지금 사업을 하고 있는 것입
    니다."
    "아! 너 참부럽다."
    "아닙니다. 난 차라리 형님이 부럽습니다. 그렇게 형님 힘으로
    나마 31평짜리 아파트 장만한 것, 그것이 부럽습니다. 나는 맨처
    음에 아파트도 없었습니다. 갑자기 벼락부자가 되어가지고 지금
    이렇게 큰 집 쓰고 있지만, 저게 다 망해야지 비로서 내 사업이
    시작될 것이며 나는 보람을 느낄 것입니다."
    이 괘는 이런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만한 자격을 갖추지
    않은 자가 높은 위치에 있으면 마음은 사장이 될 것같지만 사실
    은 되지가 않는 것입니다. 흔히 가장 높은 위정자만 암살하면 천
    하가 자신의 손에 들어올 것같지만, 암살한 그 사람도 누군가에
    의해 죽음을 당합니다. 왜냐하면 음성에너지의 충분한 기운을 갖
    추지 못하고 있기때문에 그렇습니다. 오히려 별볼일 없는 남의 회
    사에 가서 나 자신의 힘과 아이디어와 땀으로 그 회사를 훌륭한
    위치로 올려놓았다면 벌써 그 사람은 신임을 받아서 최소한도 부
    사장자리 정도는 되었을 것이며, 거기서 사장자리를 넘보지 말고
    그때 그 회사를 나와서 자기 사업을 하면 그 사람은 자기가 다녔
    던 회사보다 더 큰 회사를 차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음성에너지의 위대한 저력입니다. 이러한 음성에너지의 위대한 저
    력이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그냥 보기에 "저 사람이 사장이고 나
    는 사원인데 사장만 죽이면 내가 사장이 될 수 있겠지."하는 생각
    이 들 수도 있으나, 그것은 매우 위험천만한 이야기 입니다.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내의 부덕이라고 하는 것은 유순하고
    참는 가운데 음성에너지의 덕이 통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이
    여자가 "이 놈의 자식!" 하면서 뒤에 숨어있는 양성에너지가 튀어
    나와버리면 양성에너지와 양성에너지가 맞부닥쳐 상호 박살이 나
    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여자를 보고 좋아할 남자는 천명 가운데
    단 한명도 없습니다. 그래서 여자는 그렇게 살면 안된다라는 점을
    주역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음성에너지 없는 양성에너지는 있으나마나 입니다. 물론 음과
    양이 적절히 조화가 되어야 하는데, 이 우주의 근거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음성에너지가 더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은 수 없이 많은 물체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도 있고 저런
    것도 있고, 잘생긴 사람도 있고 뒤죽박죽 생긴 사람도 있고, 이렇
    게 여러가지가 있지만 음성에너지 세계에서는 하나입니다. 이 음
    성에너지의 속안에서 수 많은 양성에너지가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
    다. 물론 음양가운데 어느 것이 먼저냐 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신의 역량을 크게 키워나가는 데는 음성에너지가
    먼저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괜히 잘난척하면서 그냥 튀
    어나가서 "거봐라, 네가 촐랑거릴 때 알아 봤다." 하며 비난을 받는
    것보다는 충분히 음성에너지를 잘 구축해 나가면서 그것을 통해 자
    기 자신의 양성에너지로 창조가 이루어지게끔 해야 할 것입니다.

    "[곤]은 대지, 대지는 가장 위대한 생명력의 근원이다. 대지의
    이 무한한 근원적인 힘을 받아 만물은 나고 또 자란다. 그리하여
    창조를 받아 성취한다." 주역은 역순하므로 밑에 있는 괘는 위로
    상승을 하고 위에 있는 괘는 밑으로 내려옵니다. 그러나 이 괘는
    끝내가서는 도로 제자리로 가게 됩니다. 때문에 아무리 변해봐야
    잃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음성에너지는 결국은 우주 그 자체와
    하나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또 올라가고 내려오는 과정에
    있어서 결국은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위대한 힘이 바로 음
    성에너지라는 사실도 알아야만 합니다.
    "준마는 땅과 같은 것. 유순하게 자신의 도리를 지키면서 무한
    한 힘을 간직하고 있다. 유순하면서도 그리고도 모든 것이 마땅한
    바를 얻고 굳게 절조를 지킨다." 음덕에 있어 이 절조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한 남자를 섬기며 가정을 지키지 못하고 이 남
    자 저 남자로 자리를 옮겨 다닌 여자는 젊었을 때는 여러 남자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기 때문에 행복한 것같지만, 나이를 먹게되
    면 아무도 돌보아 주는 남자가 없게 되고 자식들도 돌아보지 않
    아 의지할 데가 없어지게 되고 굉장한 공허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비록 젊었을 때 고생스럽고 남편이 속을 썩인다 하더라도
    굳게 가정을 지키며 한 남자를 섬기면 그래도 조강지처의 품으로
    남편은 돌아오게 되며, 자식들에게도 어머니로서의 지위가 확고해
    져서 효도를 받으며 그 집안의 중심으로서 확실히 자신의 영역을
    굳게 구축할 수 있게 됩니다.
    신하도 역시 마찬가지로 한 임금을 섬기면 섬김 그 자체에 자
    신이 충실해야 합니다. 그렇치 않고 정권이 곧 바뀔 것같으니까
    이쪽 정치세력에 달라붙고, 다시 저쪽 정치세력에 달라붙는 등 기
    회주의로 행동하면 양쪽의 눈에 다 어긋나기 때문에 결국은 여기
    도 저기도 끼지 못하게 됩니다. 때문에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자기 자신의 생에 대한 절조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왜
    냐하면 삶은 나 자신의 음성에너지일른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음성에너지의 절조를 지키고 그 안에서 나의 뜻한 바를
    음성에너지를 통해서 완성시킬 수 있어야 됩니다. 그때 비로소 음
    성에너지가 하늘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
    다. 인간이 먼저 인간으로 갖추어져 있는 한계내에서 음성에너지
    로 일단 자기자신의 충분한 덕을 키워나가야지, 그렇치 않고 인간
    으로 태어난 한계점에서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사고방식과 욕심
    대로 요렇게 조렇게 간사를 떨다가는 결국 하늘의 뜻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지구상에는 파랑 꽃, 빨간 꽃, 초록색 꽃, 밤색 꽃 등 여러가
    지 꽃들이 있으며, 이들은 전부다 태양과 물이 필요합니다. 그렇
    다고 해서 하늘에 있는 태양이 "나는 빨간 꽃을 위해서 이땅에
    열을 내품어야 되겠다." 또는 "나는 밤송이를 위해서 내려와야 하
    겠다."고 지상에 내려온 것이 아닙니다. 그냥 내려왔을 뿐입니다.
    그 상태에서 지구상에 있는 밤색 꽃도, 노란 꽃도, 빨간 꽃도, 파
    란 꽃도 이렇게 전부다 열매와 꽃을 피워갔던 것입니다. 만약에
    이것들이 없었다면 하늘로부터 내려온 태양의 열기가 무슨 소용
    이 있는지, 어디에 소용이 되는지, 우리는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때문에 하늘의 뜻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기 자신을 분명히 자각
    해야만, 우리는 하늘을 알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준마는 유순하면서 사람과 잘 상부상조하므로 결국 준마가 된
    것입니다. 말이 가다가 주인의 말을 안듣고 이리저리 막 뛰어다니
    면, 사람이 말에서 떨어질 것이며, 사람들은 그 말을 좋은 말이라
    고 가만두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순박하게 질서가 움직이는
    데로 받아들이면서 가는 말이 준마가 되는 것입니다. 또 준마는
    주인을 알아보고 한 사람의 주인만을 따릅니다. 이 사람에게 갔다
    가 저 사람에게 갔다가 하지 않고 한 주인만을 섬김으로써 굳게
    절조를 지킵니다. 이것이 곧 곤의 이치를 따르는 사람의 도리이
    며, 절조가 없으면 곤의 이치는 얻어지지 않는 법입니다.
    "선두로 달리면 길을 잃기 일쑤이지만 뒤를 따르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땅은 땅으로서 자기 자신의 정체를 파악
    하게 되면 그때 비로서 하늘과 똑같은 대등한 위치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꽃이 하늘의 뜻을 받아들이는 음덕을 키우고 그로 인하
    여 훌륭하게 하나의 열매가 되었을 때, 그때 비로소 하늘에서 내
    려오는 햇빛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지키지 않고 햇빛이 좋아 햇빛한테 가겠다고 땅에서 뚝 떨
    어져 나가면 그건 결국 바싹 말라죽게 됩니다. 때문에 자기의 절
    조를 지키면서 자기 음덕을 키워 땅으로서의 역할을 분명히 알면
    그때 땅은 하늘과 똑같은 지위에 있다는 사실을 자각할 수 있습
    니다. 그것이 바로 완전한 목적지입니다.

    "여성다운 정숙함을 잃치 않으면 대지가 한계가 없는 것처럼
    길이 행복할 것이다." 남편이 하늘이라면 아내는 천지와 버금가는
    위대한 그릇입니다. 여자는 여자의 도리를 지킴으로써 출세하는
    것입니다. 여자가 남자처럼 강경하고 과격하게 나가면 그 여자는
    겉잡을 수 없는 여자가 되어 버립니다. 음덕은 스스로 지키는 것
    이지 누구와 경쟁해서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사업을 할 때는 먼
    저 자신안에서 이겨야 됩니다. 성공은 음덕이 시키는 것이지 양덕
    이 성공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음덕 없는 양덕은 아무 소용이 없
    습니다.

    점을 쳐서 [곤위지(坤爲地)]가 나왔을 때, 그 사람이 충분히
    자기실력이 갖추어진 사람이라면 [곤위지]가 가르치는 가르침대
    로 하면 복이 이제 서서히 굴러들어오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실력이 갖추어지지 않은 사람으로서 [곤위지]가 나오면 [곤
    위지]를 통해서 많은 인내를 함으로써 내면에 숨겨진 자기 실력
    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됩니다.
    [곤위지]는 주역 가운데 가장 좋은 괘 두가지중 하나라고 볼
    수 있지만, 그러나 이 [곤위지]나 앞에 이야기했던 [건위천]은 실
    력이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값어치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
    다. 곤위지는 전부다 음효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음효
    의 뒤에는 반드시 양효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만약 음괘가
    나왔을 때, 음괘가 가르치는 가르침대로 하지 않고 여기서 양괘로
    나오게 되면 그 양괘는 스스로를 깨뜨려 망가뜨릴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망가뜨릴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이 음괘의 뒤에 숨어있는 양성에너지가 튀어나오는 양괘와
    본래 겉으로 드러난 남성에너지인 양괘와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권투선수가 권투 할때 보면 잽이라는 것을 던집니다. 왼손잡이
    같으면 오른손으로 잽을 합니다. 쉽고 간단하게 툭툭 치는 것입니
    다. 남자가 쓰는 양괘는 마치 권투의 잽과 같은 것입니다. 잽은
    큰 힘을 쓰는게 아닙니다. 큰 힘은 안에 내장되어져 있습니다. 이
    것이 음괘의 뒤에 숨겨져 있는 양괘입니다. 음괘가 안에 내재되어
    있는 양괘를 쓰는 것은 자신의 비장의 무기가 튀어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뒤가 약해집니다. 다시 말하면 여자가 스스로
    인내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자기 불화를 이겨나가지 아니하고 튀
    어나와 버린다면 여자한테서 튀어나오는 양괘는 남자가 가지고
    있는 잽의 양괘를 능가해버리기 때문에 남자가 도망가 버리게 됩
    니다. 그래서 여자가 함부로 양괘를 내보이게 되면 남자가 자신의
    품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좇아내는 결과가 됩니다. 남
    자가 좀 잘못했다고 해서 여자가 너죽고 나죽자 이런 식으로 나
    오면 남자는 다 도망갑니다. 그때 여자는 인내를 해야합니다.

    음괘의 덕을 음덕이라고 합니다. 음덕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객
    관적인 것입니다. 이 음덕은 대단히 위대한 것이기 때문에 이 음
    덕을 통해서 모든 양성에너지는 비로서 생명을 갖추어서 창조의
    위력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우리 사람은 되먹지 못한 자존심이라
    는걸 가지고 있습니다. 남이 뭐라 한다고 자기 자존심에 자기가
    툭툭 튀어나가 버리면 거두어 들일 수 있는 것도 못 거두어 들이
    게 됩니다. 밤 따러 가서 밤송이에 손을 찔렸다고 "에이 썅" 하면
    서 밤송이를 주먹으로 한 대 쳐버리면 밤도 못 딸 뿐더러 손마저
    망가뜨리게 됩니다. 그래서 그렇게 한 방 쳐버리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 때 자기를 달래면서 그것을 잘 가라앉히면 밤송이를 내
    것으로 만들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밤송이는
    나한테 들어오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위대한 음덕입니다. 보기
    싫은 점이 있다 하더라도 보기 싫어 하는 나를 스스로 자제하고,
    그 다음에 자꾸 객관적인 눈으로 볼려고 하는 마음, 그것을 세칭
    '덕'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음성에너지는 곧 덕을 상징하는 괘다
    라고 생각하면 틀림없습니다.

    음성에너지가 덕을 잃어버리면 굉장히 강해지게 됩니다. 그 강
    해지는 것은 잽이 아니고 숨겨 놨던 펀치가 나오는 힘이기 때문
    에 그렇습니다. 여자가 앙탈을 부릴때는 비장의 무기가 나오는 것
    이라고 생각하면 틀림없읍니다. 그때 남자가 자기의 비장의 무기
    를 내보이면 서로 충돌하여 모두 파괴되기 때문에 "내가 참고 말
    지 뭐." 하면서 대부분 피해버립니다. 그러면 오히려 그 여자는 손
    해보게 됩니다. 이제 그 남자는 좋은데 갈 때 절대로 그 여자를
    데리고 가지 않을 것이며, 다른 여자를 데리고 갈 것이기 때문입
    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음덕은 "여자는 일부종사" 라고 가르쳤습
    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아니꼬운 점을 모두 숙이면서 한 남자를
    섬기면 결국 남자는 그 여자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게 되기 때
    문입니다. 이것이 위대한 여성의 힘입니다.

    음덕은 자기 자신한테는 굉장히 냉정하지만 상대방에게는 상당
    히 관대합니다. 사랑이 넓게 퍼져나갈 수 있는 그런 음덕을 갖추
    었을때 퍼져나간 그 음덕만큼 이 세상이 곧 그 사람의 것입니다.
    음덕은 곧 전체를 포용하는 길이며 이 우주와 하나가 되는 길입
    니다. "에이 씨!" 하고 일어나는 자기 마음에는 스스로 냉정하되
    상대방에게는 관용을 베풀 수 있는 마음, 관대한 마음, 그것이 곧
    우주를 나에게 끌어당기는 마음입니다. "에이 씨!" 하고 음덕이
    바깥으로 튀어나가 버리면 만물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그 사람
    은 곧 증발해서 없어지지 않으면 안되는 운명에 처하게 됩니다.

    [곤위지]는 모두가 음효로 이루어져 있어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는 충만된 힘이 내재되어 있음을 나타냅니다. 양성기운으로 하
    여금 창조의 위력을 나타내게 하는 것이 음성기운입니다. 그래서
    음성기운은 생명력에 비유됩니다. 생명력은 무엇으로든 변화될 수
    있는 바탕이 되는 힘입니다. 씨앗이 잎이 되고, 잎이 꽃이 되고,
    꽃이 다시 열매가 될 수 있는 근원의 힘, 그것이 생명력입니다.
    흔히 성공하는 것은 모두 음성에너지로 하는 것입니다. 사전 치
    밀한 계획과 준비를 갖추는 것. 그것은 음성기운의 힘입니다. 이
    것이 없이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산에 밤을 따러 갔다가 밤송이에 손을 좀 찔렸다고 홧김에 주
    먹으로 밤송이를 한 대 쳐봐야 손만 다칠 뿐, 밤은 딸 수가 없습
    니다. 자존심에 불끈해서 어금니를 악물고 주먹을 불끈 쥐고 하는
    것, 그것은 양성에너지로만 하는 것입니다. 그 힘은 오래갈 수 없
    습니다. 밤송이를 한 방 쳐버리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 때, 그것을
    잘 가라앉히는 마음. 그렇게 자신을 잘 달래면서 밤송이를 응시하
    면 밤을 딸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음성에
    너지의 위대한 덕, 음덕(陰德)입니다.
    이를 악물고 하는 것. 이것은 음덕이 아닙니다. 음덕은 순하고
    후하게, 그리고 자기 스스로에게 냉정하게, 꾸준히 하는 것입니다.
    운동 경기를 하더라도 손에 힘을 불끈 쥔다거나, 목에 힘을 주고
    핏대를 머리에 올리며 경기하는 선수는 절대 정상에 오르지 못합
    니다. 정상에 오르는 선수는 항상 냉철하게 경기에 최선을 다하
    며, 한 번 이겼다고 크게 기뻐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준결승전에
    올라가서 막 신나하며 기뻐하는 선수들은 대개 거기서 끝나게 됩
    니다. 성숙될 때까지 항상 인내하면서, 중간에 조금 잘 되는 일이
    있더라도 기쁨에 빠지지 않는 것. 그것이 음덕입니다.

    음덕은 자기 자신에게는 굉장히 냉정하지만 상대방에게는 상당
    히 관대합니다. 음덕은 곧 전체를 포용하는 길이며, 우주와 하나
    가 되는 길입니다. "에이 씨!" 하고 일어나는 자기 마음에는 스스
    로 냉정하되, 상대방에게 관용을 베풀 수 있는 관대한 마음, 그것
    이 곧 우주를 나한테 끌어당기는 마음입니다. 만인을 포용했을 때
    그 사람들은 전부다 자기 가슴안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음성기운만으로는 결과를 만들 수 없습니다. 음성기운은
    변화를 주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결과는 활발히 활동하는 양
    성기운을 통해서 만들어 집니다. [건위천]에서 음성기운이 구축되
    지 못한 양성기운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는 것처럼, 양성기
    운 없는 음성기운도 결과를 나타내지 못합니다. 따라서 [건]과
    [곤]은 공존하며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이 땅이
    될 수 없고, 남자가 여자가 될 수 없듯이 서로는 경계가 분명하게
    각자의 도리로 엄연히 구분되어 있습니다.

    음성기운이 좋은 결과를 이루어 낼려면 좋은 양성기운을 만나
    그 양성기운의 활동이 바르고 왕성하도록 자신의 충만된 힘을 적
    극적으로 공급해 주어야 합니다. [곤위지]는 자신이 주(主)가 되
    어서 이끄는 것보다는 훌륭한 사람을 잘 보필하여 그 사람으로
    하여금 큰 일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뒤에서 잘 받쳐주는 역할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건위천]이 하늘이면 [곤위지]는 땅을, 남편
    이면 아내를, 임금이면 신하를 나타내는 것으로 인식되어 섬김의
    도를 잘 지켜야 함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곤위지]는 황제와 같은 지위는 누릴 수 없는가? 그렇
    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은 섬김의 도를 통해서 자연의 이치에
    가까와질 수 있습니다. 음성기운은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힘입니다. 하늘의 뜻을 모두 받아들이기 때문에 만물을 생성하고
    기르며, 그 음덕의 크기는 한계가 없습니다. 그래서 음덕을 갖추
    면 우주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 세계는 피조 세계입니다. 피조 세계는 하늘을 섬김으
    로서 하늘에 가까와질 수 있습니다. 피조 세계가 스스로 하늘인
    양, 하늘처럼 행동해서는 하늘의 뜻에 위배될 뿐더러, 하늘에서
    일으키는 창조를 결실로 맺을 수 없습니다. 다만 그 인간 또한 피
    조 세계 안에서 창조하는 창조의 주체임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상. 대지의 생명력 이것이 곧 곤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덕을 후하게 하여 만민을 포용
    한다.

    大曰, 地勢坤. 君子以厚德載物.

    주역은 음덕에 대한 대상(大象)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
    다. "대지의 생명력," "음덕의 생명력." 음덕이 없으면 생성이 되
    지 않는 것입니다. 그냥 양성에너지로만 나가면 상대방을 이길 수
    가 없는겁니다. 소인배는 곤괘가 크게 발전한다고 하니까 좋은 것
    인가 보다 하고 생각하지만 이것이 왜 좋은 지를 모릅니다. 군자
    가 아니면 음덕을 갖출 수가 없습니다. 원래 주역은 군자 이하는
    취급을 안 합니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스스로 그 덕을 후하게 하여 만민을
    포용한다." 만민은 덕이 포용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되었든지 선
    별하려고 하는 자기 자신을 숙이고 숙이면 그 다음에는 만물이
    다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그런 음덕, 스스로 그 덕을 후하게 하여
    만민을 포용했을 때 그 사람들은 전부다 자기 가슴안에 들어오는
    겁니다.
    양덕보다 더 중요한 건 사실 음덕입니다. "이를 악물고 하는
    것." 이것은 음덕이 아닙니다. 음덕은 순하게, 후하게 그리고 자기
    스스로에게 냉정하면서 상대방에게 관대하게 베풀어지는 것입니
    다.
    대지는 하늘을 받들고, 하늘에서 일으키는 비, 바람, ㅎ빛 등 갖
    은 조화(造化)를 다 포용함으로써 만물을 기르고 번영시켜 풍요
    한 결실을 맺게 하는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섬기고, 신하가 임
    금을 섬기는 정성과 마음으로 매사를 하는 것, 그것이 곧 인간이
    자연의 지위에 오르는 길이며, 완성에 이르는 길입니다.
    땅의 목적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땅은 땅으로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파악하게 되면 비로서 하늘과 대등한 위치에 서게
    됩니다. 땅이 없는 하늘은 하늘이 아닙니다.
    씨앗이 하늘의 뜻을 받아들이며 음덕을 키워서 그로 인해 훌륭
    하게 하나의 열매가 되었을 때, 그때 비로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알 수 있습니다. 스스로 음덕을 키워나
    가지 않고 햇빛을 알겠다고 씨앗이 땅에서 나서면 스스로 말라
    죽게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뒤를 따르며 절조를 지키면서 음덕을
    갖추어 나가면 목적지에 무사히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서 하늘과 같은 지위를 나란히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첫번째 음효. 서리가 내린다. 머지않아 얼음의
    계절이 오리라. 서리는 음의 기운이 엉키어 굳
    어진 것. 먼저 오는 조짐을 보고 곧 미래를 내
    다보는 마음을 가져라.

    初六, 履霜堅氷至. 象曰. 履霜堅氷, 陰始凝也.
    馴致其道至堅氷也.

    "서리가 내린다. 머지않아 얼음의 계절이 오리라." 서리는 음의
    기운이 엉커어 굳어지는 것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음덕은 처음부
    터 한꺼번에 쌓여지는 것이 아닙니다. 은근히 눈에 보이지 않게,
    그러나 점점 커다랗게 들어오는 것입니다. 서리는 나중에 얼음이
    될 수 있는 것을 징조하고 있습니다. 그 조짐을 보고 얼음이 될
    때까지 끊임없이 인내해야 합니다.
    얼음이 될 때까지 인내하지 못하고 중간에 그만두거나, 조금 되
    는 것같다고 기뻐서 날뛰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기쁨이라는 것
    도 일어나는 순간 다시 차분히 가라앉혀 자제하는 마음. 그렇게
    숙연한 자세로 주위를 기울이며 인내해 나가야만 음덕이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분노의 마음을 단순히 참는다고 해서 음덕이 갖춰지는 것은 아
    닙니다. 그것은 덕이 아닙니다. 덕은 뿜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음
    덕은 멀리 멀리 나가는 것입니다. 음덕이 나가지 않고, 혼자 자제
    만 하면 되는 줄 알고 "참아야지, 참아야지." 하면서 의식적으로
    억누르고 있는 것, 그것은 양성기운으로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 자신한테 양성기운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참을 인
    (忍)이 아닙니다. 자기 스스로가 속에서 칼을 갈고 있는 것입니
    다.
    참을 인(忍)이란 칼로 자기 마음을 내리치는 것입니다. 화낼려
    는 마음이 일어나려는 순간 단호히 자기 자신을 그 마음으로부터
    격리시켜 그 마음에 빠지지 않고 스스로 삭아들도록 조용히 관조
    (觀照)하는 것. 그것이 인내입니다.

    두번째 음효. 대지는 평평하여 끝없이 광대하
    다. 대지처럼 평직하고 방정하고 광대한 덕을
    갖춘자는 배우지 않아도 만사가 순조롭지 않음
    이 없다. 땅의 도리는 위대하다.

    六二, 直方大, 不習无不利. 象曰, 六二之勤,
    直二方也. 不習无不利, 地道光也.

    "대지는 평평하여 끝없이 광대하다." 덕은 품어져 나가는 것입
    니다. 음덕의 힘은 그 덕이 사방으로 넓게 미치며, 그 덕으로 만
    사를 순조로이 해결하게 됩니다. 결과를 일으키는 것은 양성기운
    이지만 결과를 나타내는 것은 음성기운입니다. 흔히 우리나라에서
    재벌이 된 사람들은 못 배우고도 재벌이 됐습니다. 왜 일류 대학
    을 나왔는데도 성공하지 못하는가? 그것은 음성기운이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음덕을 갖춘 자는 배우지 않아도 만사가 순조롭지 않음이 없
    다."배운다 라는 것은 쓰기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음성기운이
    갖추어져 있으면 하나를 배워도 쓸 수 있으나, 그것이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일본어, 영어, 서반아어, 독일어 등 아무리 많은 외국
    어를 알고 있더라도 써먹지를 못합니다. 자격증을 백 개 가지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은 그 자격증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할 지를
    미처 계획하지 않고 무턱대고 딴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자신의 자격증을 써서 결과를 가져오지 못합니다. 지식이란 음성
    기운이 갖추어진 다음에 그것을 펼쳐내는데 필요한 것입니다. 따
    라서 배움이전에 먼저 음성기운을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번째 음효. 뛰어난 재능을 안으로 간직하고
    자신의 도리를 지키면서 때가 오기를 기다린다.
    비록 실력을 인정받아 영예로운 지위에 오를 지
    라도 화려한 성공을 바라지 말라. 오직 최후의
    대성을 위하여 스스로 희생하라.

    六三, 含章可貞. 或從王事, 无成有終. 象曰,
    含章可貞, 以時發也. 或從王事, 知光大也.

    "뛰어난 재능도 안으로 간직하고 자신의 도리를 지키면서 때가
    오기를 기다린다." 사람이 어느 정도 되다보면 "어! 이제 되는구
    나." 하고 만면에 미소가 떠오르면서 기쁨에 빠지기 시작하면 양
    성에너지가 나오게 됩니다. 음성에너지가 이제 막 굳어지려고 하
    는데 양성에너지가 나와서 풀어져 버리면 노력이 헛되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좋았는데 여기서부터는 조심하라고 말하고 있
    습니다. 조금 잘 된다고 잘난척 하며서 방정떨면 안된다는 이야기
    입니다. "지키면서 때가 오기를 기다려라." 조금 잘 된다고 교만해
    지지 말고 겸양의 마음으로 결과가 이루어지기를 기다려야 합니
    다. 결과가 이루어진 다음에 기뻐할망정, 벌써부터 기뻐해서는 안
    됩니다. 비록 능력을 인정받아 명예스러운 지위에 놓여질 지라도
    화려한 성공을 바라서는 안됩니다. 화려한 성공은 이루어지는 것
    이지 바라서 획득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남의 눈에 띄어 발탁되어 영예스러운 지위에 놓여질 지라도
    화려한 성공을 바라지 말라." 바라지 말고 오직 최후의 대성, 음성
    에너지의 결실을 위하여 겸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3년후
    에는 반드시 성공해야지." 하는 그러한 화려한 성공을 꿈꾸지 말
    고, 다소 힘들 때 얕은 한숨을 쉬면서 또 다소 기쁠 때 미소를 지
    으면서 자신을 희생해 나아가는 것, 이것이 세번째 효가 주는 교
    훈입니다.
    음성에너지는 남의 칭찬같은 것에 치우치는 법이 없습니다. 서
    리가 껴서 얼음이 되는 날까지 꾸준히 자기 스스로 하는 것이지
    남이 조금 추켜 준다고 신이 나서 마구 나아가면 얼음이 될 턱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뛰어난 재능도 안으로 간직하고, 잘 된다
    고 기뻐하지 말고 자신의 도리를 지키면서 때가 오기를 기다리라
    고 했습니다. 얼음이 된 다음 비로소 빙긋이 미소지으며 얕은 한
    숨을 쉴 망정, 그전에 음성에너지는 "하하하"하고 크게 웃는 법이
    없습니다. 그런 웃음은 양성에너지입니다.
    "오직 최후의 대성을 위하여 스스로 희생하라." 바로 그렇게 음
    성에너지의 완성이 이루어 지는 날까지, 비록 음성에너지의 완성
    이 이루어지는 순간 자기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는 한이 있
    더라도, 겸양의 마음으로 희생하는 것, 그래서 음성에너지가 하나
    의 결정체로 되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위대한 자연의 권능입
    니다.

    네번째 음효. 주머니의 주둥이를 꽉 졸라매라.
    함부로 재능과 지혜를 자랑하지 말고 몸을 삼가
    한다면 재해는 없다. 허물도 없고 명예도 없을
    것이다.

    六四, 括□. 无咎无譽. 象曰, 括□, 无咎, 愼不害也

    음덕은 잘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풍요로와지는 것입니다. 효는
    역류하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내괘가 위로 올라가고, 외괘가 아래
    로 내려와서 부드럽게 나아가는 음성에너지의 힘이 끌어당기기
    시작합니다. 음성에너지는 나아갈 때는 유순하고 부드럽게 나아가
    지만 끌어 올 때는 엄청나게 끌어 당길 수 있습니다. 부드럽게 나
    가는 에너지가 소복히 쌓이는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이 음성에너지
    의 위대한 힘입니다.
    기쁘고 좋을 때 특히 몸을 지키고 근신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함부로 재질을 자랑하지 말고, 자기 뽐내고 싶은 마음이 밖으로
    나가려 할 때 주머니를 졸라매서 다시 안으로 겸양해야 합니다.
    자기가 지켜야할 위치를 저버리고 휘날리고 다니면 분별을 잃게
    되어 화를 당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몸을 근심하면 허물도 없고
    영예도 없을 것입니다. 허물도 없고 영예도 없다는 것은 무사태평
    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머니의 주둥이를 졸라 매라." 주머니안에서 튀어 나가려고
    하지 말고 주머니를 졸라매라, 즉 함부로 재질을 자랑 말고 겸손
    의 미덕을 지키라는 뜻입니다. 여자가 잘난척하면서 자기 밑천을
    다 드러내면 매력이 없어집니다. 여성의 덕은 안으로 깊이 간직되
    어 있어야지 밖으로 튀어나와 버리면 더이상 덕이 나오지 않게
    됩니다. 남자도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음성에너지를 통해서 좀
    잘됐다 해서 뽐내고 자기 지켜야할 위치를 저버리면 큰 화가 미
    치게 됩니다. 그래서 "함부로 재질을 자랑말고 몸을 근신하면 재
    해는 없다. 허물도 없고 영예도 없을 것이다." 즉 무사 태평하다는
    것입니다.
    무사태평만큼 좋은게 없습니다. 허물도 없고 영예도 없는 이 무
    사 태평까지만 견딜수 있으면 그 가운데 여자는 위대한 어머니의
    덕을 갖추게 됩니다. 자식이 잘못을 저지르면 아버지는 때리거나
    용서 못하는 경우가 있읍니다. 그러나 자식이 아무리 못된 짓을
    했더라도 받아 줄 수 있는게 어머니입니다. 그것은 위대한 모성애
    입니다. 아버지는 자식이 잘못해서 감옥에 가면 감옥까지 좇아가
    서 "야 이놈아 그래서 내가 뭐라 그랬냐?" 하면 자식은 자신이 잘
    못한 것을 알지만 아버지에게 복종할 마음은 안생깁니다. 오히려
    반항심이 생깁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먹을 것과 옷가지를 챙겨가
    서 "얼마나 배고프겠니? 춥지는 않니?" 하고 자식 걱정에 눈물을
    흘리면 그 자식은 절대로 어머니를 미워할 수 없습니다.

    다섯번째 음효. 황색의 치마로 상징되는 대길한
    효상. 황색은 고귀한 색깔이고 중앙을 표시하는
    색깔이다. 치마는 아래에 두르는 것, 위를 따르
    는 것이다. 황색치마는 아름다운 곤(坤)의 덕성
    을 내포하는 것이다. 아내라면 남편을 돕고, 신
    하라면 임금을 도와서 화순하게 바르게 일하는
    모습니다.

    六五, 黃裳, 元吉. 象曰, 黃裳, 元吉, 文在中也.

    다섯번째는 '천.지.인'에서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
    예로운 지위입니다. "황색의 치마로 상징되는 대길한 효상." 황색
    은 고정시킨 것이 아니고 퍼진듯 하면서 끌어 당기는 색입니다.
    검정색은 작게 보이지만 황색은 크게 보입니다. 사람이 황색옷을
    입으면은 풍요로와 보입니다. 그래서 황색은 음성에너지를 상징합
    니다.
    "황색은 흙의 심볼이며 중앙을 표시하는 빛이다. 치마는 아래에
    입는 것 위를 따르는 것이다." 황색은 중앙을 뜻하며 구심점을 나
    타냅니다. 그러면서 음성에너지는 양성에너지를 따르는 것입니다.
    따른다고 하여 무작정 쫓는 것이 아니라, 양성에너지를 너그럽게
    수용하면서 받아 들이며 따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따른다는 것은
    모성애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황색치마는 아름다운 [곤]의 덕성
    을 내포하는 것이다." 곤의 덕이란 음성에너지의 덕을 말하는 것
    입니다. 아내라면 남편을 돕고, 신하라면 임금을 도와서 황색처럼
    화순하게 바르게 일하는 모습, 즉 음덕을 갖추었다는 것입니다.
    음성에너지는 공을 하늘로 돌려야 하는데, 여성에너지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주가되고 싶어 양성에너지로 변해 버리면 큰
    일이 나게 됩니다. 이때일수록 군자는 더욱 더 음덕을 내포하고,
    겸양하는 태도를 잃어서는 안됩니다.

    여섯번째 음효. 두마리의 용이 들에서 싸우니
    그 피는 검고 누르다. 음이 극성하면 반드시 양
    과 겨루어 투쟁한다.

    上六, 龍戰于野. 其血玄黃. 象曰, 龍戰于野, 其道窮也.

    그래서 여섯번째 다음과 같이 말을 하고 있읍니다. "두마리의
    용이 들에서 싸우니 그 피는 검고 누르다." 여성이 여성에너지를
    간직하지 못하고 교만스러운 마음에 뒤에 있는 양성에너지를 내
    보내게 되면 그 양성에너지는 외부의 모든 양성에너지들과 맞부
    닥치게 됩니다. 두마리 용이라는 것은 숨겨져 있는 양성에너지와
    외부의 양성에너지를 말합니다. "양성에너지와 숨겨 있는 양성에
    너지가 들에서 싸우니 그 피는 검고 누르다. 음이 극성하면 반드
    시 양과 겨루어 투쟁하게된다." 아내가 지나치게 잘난 체하면 남
    편과 싸우게 되고, 신하가 지나치게 세력을 가지면 임금과 투쟁하
    게 되는 법입니다. 이렇게 되면 쌍방은 모두 손상을 가져오게 됩
    니다. 흙의 색은 하늘의 빛이요 황색은 땅의 빛입니다. 검은 빛과
    누른 빛의 피는 곧 천지음양 쌍방에 모두 상해를 가져 옴을 뜻합
    니다. 결국 여자가 자기 잘난 척하면 지금까지 음성에너지로 역어
    놨던 자기 세계가 동시에 깨져 버리며 자신도 조각나버립니다.

    쓰는 뜻. 한결같이 음덕을 지키면 순조롭고 유
    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성에너지는 죽는 날까지 음덕을 지켜야 합니다. 여
    성은 음덕을 지킴으로써 평생을 풍요롭게 살다가 미소를 지으며
    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즉, 한결같이 음덕을 지키면 유종의 미로
    끝나게됩니다. 황색의 힘, 그것은 넌지시 부드럽게 퍼져나가면서
    동시에 부드럽게 끌어 모아 오는 힘입니다.
    우리는 이미 주역이라고 하는 것이 연산역과 규장역에 의해서
    영향을 받고 있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현재 연산역과 규장역은
    없어졌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다 포함되어져 있는 변역이라는 사
    실도 알고 있읍니다. 우리는 지금 대한민국에 태어났기 때문에 얼
    굴빛이 황색입니다. 우리가 내일 당장 아프리카로 날라간다고 해
    서 아프리카 사람처럼 까맣게 되지는 않습니다. 최소한도 우리의
    몸안에 가지고 있는 염색체가 피부색이 황색인 염색체이기 때문
    에 당장에 아프리카에 가서 애를 낳는다고 피부가 검은 애는 나
    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 계속 살면서 2세, 3세, 4세로
    내려갈 수록 점점 피부가 검어지게 됩니다. 그것은 연산역의 장애
    를 받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즉 주어져 있는 환경의 영향을 받는
    다라는 이야기 입니다. 또 아무리 환경이 그렇다 하더라도 당장
    한국사람이 아프리카에 가서 자식을 낳는다 해서 당장 검은 피부
    가 나오지 않습니다. 한 백년 내지 이 백년 동안은 황색피부의 아
    이가 나올 지 모릅니다. 그것은 규장역이 장애를 주고 있기 때문
    에 그렇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변화라는 것은 그렇게 한번에 변화
    하는게 아닙니다 아주 적게 조금씩 변해가는 것입니다. 그 변해가
    고 있는 것에 순응해버리면 오히려 빨리 변할 수 있읍니다. 카멜
    레온이 빨리빨리 변하는 이유는 환경에 자신의 빨리빨리 순응하
    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주는 항상 천천히 변화시키고 있읍니다.
    규산력과 연산력이 서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어울어
    지는 가운데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음덕을 갖추는 것도 오
    늘 당장 갖추어 지는 것이 아니고, 조금씩 조금씩 하나하나 갖추
    어지는 것입니다.

    2005. 9. 21. 유성 記..…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5084
  • 1.(周易 講義)건위천(乾爲天)
    『 조화와 균형의 창조성 』

    하늘의 운행은 머무름 없는 변화를 통해 만물의 기운을
    조율하며 항상 순화 발전하는 것입니다. 어긋남은 바르게
    잡고 정지한 것은 소멸시켜 언제나 회전하여 머무르는
    바 없이 흐르도록 함으로써 천지 자연의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항상 조화와 균형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으므로 비록 쉽게 움직이고 쉽게 흩어지는 양성기운이
    지만 그 작용은 영원할 수가 있습니다. 인간이 이러한 자
    연의 이치를 터득하면 세상을 가장 온전하고 조화롭게
    가꾸어 나갈 수 있습니다.


    『건위천(乾爲天)』

    건(乾)은 크게 발전하는 것을 상징한 괘다. 건은 위대한
    창조력의 근원이다. 근원의 그 힘으로부터 천지만물은
    생성을 비롯한다. 산이 깍여서 들이 되고 산이 상승을
    비롯하는 것이 바로 건의 괘다. 건은 하늘의 법칙을 맡
    아서 다스린다. 구름은 하늘을 날고, 비는 대지를 축이
    게 하니 이 힘을 받고 삼라만상은 제각기 형태를 나타
    낸다. 건의 법칙은 영원히 끝이 없는 후세에 이르기까
    지 항상 밝고 빛난다. 건괘는 잠에서 비약에 이르는 만
    물의 발전 과정을 효에 의하여 상징한다. 육효(六爻)는
    각각 그 순서를 따르면서 초효에서 상효에 도달하는
    상승의 과정은 용을 담고 하늘에 오르는 기상이다. 그
    리고 [건]의 법칙은 변화한다. 변화함으로써 만물은 제
    각기 천성을 바로하여 발휘하게 되어 천지 만물의 위대
    한 조화(調和)를 보전한다. 그러므로 [건]의 법칙의 운
    행은 순조롭고 영원히 한결같은 것이다. 이 도에 의해서
    임금은 만 백성위에 군림하여 천하를 평화롭게 다스려
    갈 수 있다.

    乾, 元亨. 利貞. 象曰, 大哉乾元, 萬物資
    始. 乃統天. 運行雨施. 品物流形. 大明終
    始, 六位時成, 時乘六龍, 以御天. 乾道變
    化, 各正性命, 保合大和, 乃利貞. 首出庶
    物, 萬國咸寧.

    [건] 괘는 6개의 효가 전부다 양 효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건]
    은 64괘 가운데서 단 하나 전부다가 양 효로 이루어진 괘이며, 남
    성의 정기(精氣)를 뜻하는 동시에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의 변화를
    일으킴의 근본이자 작용에 가장 근본적인 고리를 말하는 괘입니
    다. 이 [건] 괘는 상.하 효가 전부 다 양괘로 이루어져서 결국에는
    삼라만상이라는 것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읍니다. 왜냐하면 밑에 있는 괘가 위로 상승을 하고, 위
    에 있는 3효가 밑으로 내려와도 결국은 제자리에 있게 됩니다. 물이
    변해서 수증기가 되듯이 수증기도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며 물도 역
    시 영원히 존재한다는 것을 상징한다는 괘입니다. 동시에 이 [건]괘
    는 항상 멸망할 수 있음도 가지고 있습니다. 물은 항상 물로서 있는
    것이 아니고, 언젠가는 다른 것으로 변하며, 단단한 바위도 언젠가
    는 서로 부서져 자갈과 모래로 변할 수 있다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
    습니다.

    주역에 보면 그 첫머리에 "[건]은 크게 발전하는 괘"라고 되어져
    있습니다. 때문에 만약 점을 쳐서 이 괘가 나왔다면 그 사람은 크게
    발전을 해야 됩니다. 그러나 주역에 맨마지막 문단에 보면 맨 6번
    째 효, 즉 위에서 맨 첫번째 효를 보면 "차면 기우는 법, 어찌 영속하
    는 것을 기다릴 것인가? 후회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라고 또 말해
    져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역의 효가 왜 그렇게 말을 하는가라는
    점을 풀어나가기 앞서서 먼저 양효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할 필
    요가 있습니다.

    "[건]은 크게 발전하는 것을 상징하는 괘다." 그렇다면 이 [건]
    의 상태에 있게 되면 크게 발전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양괘가
    덮어 놓고 양괘로 있게 되면 크게 발전할 수 없습니다. 크게 발전
    한다를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이 양효 뒤에 음(陰)이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효 뒤에도 음이 숨겨져 있고, 세번째 뒤에도
    음이 숨겨져 있고, 네번째 뒤에도 음이 숨겨져 있고, 다섯번째 뒤
    에도 음이 숨겨져 있고, 여섯번째 뒤에도 음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렇게 양(陽) 안에 음(陰)의 구심점을 분명히 갖고 움직이는 양괘
    는 크게 발전하지만 구심력이 갖추어지지 않은 사람이 이 양괘를
    만나면 크게 실패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뒤에 숨겨져 있는 음성에너지의 세계를 분명히
    가지고 있어야만 된다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남자들
    의 양성에너지는 "항상 친절하며 쉽게 움직인다."라고 되어 있습
    니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 움직이는 것이 뒤에 음적인 구심력을
    갖추고 움직여야지, 음적인 구심력이 없이 덮어놓고 자기 마음먹
    은 대로 움직여 버리면 크게 되어지는 것은 고사하고 도리어 일을
    그르치게 됩니다. 어떤 남자들을 보면 매사 모든 일을 즉흥적으로
    쉽게 쉽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쉽게 움직이는 남자는
    쉽게 움직여서 마치 모든 것을 잘 하는 사람같지만, 실제로는 어려
    운 일과 큰 일을 잘 이루어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쉽게 이루어지
    는 것은 또한 어느순간 쉽게 사라져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건]괘가 크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구심력적인 세계를 분명히
    갖고 움직여야만 할 것이며, 맨 위의 여섯번째 "차면 기우나니"라고
    말하는 망하는 세계로 가지 않기 위해서는 뒤에 음성에너지의 세계
    를 분명히 구축해 놓아야 할 것입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글도 잘 쓸 뿐더러 글 쓰는 도구인 붓도 망
    가트리지 않아야 됩니다. 그런데 양성에너지가 구심력적인 세계를
    갖추지 않으면, 열심히 자기 글씨 잘 쓴다는 것만 믿고 쓰다가 자
    칫 잘못하여 종이를 찢어버린다거나 아니면 붓을 망가트리는 경
    우가 종종 있습니다. 하고 싶은 대로 양성에너지가 덮어 놓고 움직
    여서는 잘 되는 일이 없습니다. 이 자연은 움직이면서도 그 가운데
    '유지(維持)'라는 세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활동할 때는 그
    유지라는 세계를 잘 연속시킬 줄 알아야 되는데, 그 세계를 생각하
    지 아니하고 덮어놓고 원심력적으로 움직여버리게 되면 도리어 그
    유지라는 세계를 망가트리는 폐단을 일으키게 됩니다.

    남들이 이게 잘된다니까 이것도 해보고, 또 저게 잘된다니까 저것
    도 해보고, 이렇게 바깥의 흐름으로 그달려 다니는 사람은 남들 말
    처럼 잘되야 되는데 잘되지를 못하고, 오히려 가진 재산을 망가트려
    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하지 않으려
    면 먼저 분명히 음성의 에너지로서 무의식에 "나는 어떠 어떠한 것을
    해야되겠다."라는 범위가 분명히 인지되어 있어야 되며, 그 분명한
    세계의 범위가 자신을 움직임으로써 현실로 나타날 수 있게끔 되어
    야 합니다. 마치 내가 "어떠 어떠한 그림을 그려야 되겠다." 하면 그
    림을 그리기 위한 모든 재료가 있고, 그 재료를 가지고 손을 움직여
    그림을 그림으로써 비로소 자기가 마음 먹은 것이 현실적으로 나타
    나지게끔 해야만 됩니다. 그런데 그림을 그린다고 덮어놓고 그리다
    가 보니까 다 그려놨는데 너무 세게 붓을 놀려 종이를 찢어 먹으면
    그림은 가치가 없어져 버립니다.

    우리는 이 [건위천]의 세계를 주의깊게 잘 생각해야 됩니다. 뭐든
    할려면 음성에너지의 세계를 갖추어야만 합니다. 음성에너지로서
    "어떻게 해야 되겠다."라는 세계를 갖추어야지만 비로서 그것이 현실
    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주역은 여섯번째 효에서 항상 조심하라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
    다. 주역에 이르기를 "하늘에 뜻을 둔 자는 위와 친하고, 땅에 근본을
    둔 자는 아래와 친하다."고 했습니다. 하늘에 근본을 둔 자는 상괘에
    올라가면 자기를 과시하지 아니하고 그 이루어진 세계에 대한 고마움
    에 자신을 숙여 그 공덕을 길이 빛나게 하지만, 아래에 친해서 오히려
    이 세상에 뻐기는 사람은 위로 올라가면 크게 벌을 받는다는 뜻입니
    다. 그렇게 되면 크게 발전해봐야 아무 쓸 데 없는 것이 될 뿐입니다.
    주역은 굉장히 어려운 학문이지만 세밀하게 파악을 하면, 곧 우주자
    체의 메카니즘을 얻을 수 있는 학문입니다. 주역이 우리 인간한테 주
    는 최대의 가르침은 하늘의 메카니즘을 터득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
    서 주역이 말하고 있는 실랄하면서도 명쾌한 말 즉, "하늘의 근본을 둔
    자는 위와 친하고, 땅에 근본을 둔자는 아래와 친한다."라는 사실을 우
    리는 잘 들어둬야 됩니다. 때문에 자기 마음으로 할려고 하지 말고, 분
    명한 음성세계 안에 뜻을 두고, 그 뜻이 평면적으로 드러나기 위한 노
    력을 해야하며, 또 그 노력이 잘 되고 있는가 하는 깊은 반성을 통해서
    음성에너지의 착오가 없도록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큰 발전은 이루
    어지지 않는다라는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주역 64괘의 두번째는 모두가 음성으로 이루어진 괘입니다. 남자는
    쉽게 움직이지만 여자들은 남자가 쉽게 친절을 베푼다고 해서 친절에
    넘어가 버리면 안됩니다. 여성에너지는 어렵게 자기자신을 인내함으
    로써 결국에 가서 쉬운 것을 깨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바람직한
    여자의 생입니다. 쉽게 움직이는 남자는 어려운 것을 선뜻하지 못할
    뿐더러 큰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구심력이 확실치 못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성에너지는 쉽게 움직이지만 어려운
    것을 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건위천]은 뒤에 의미 심장
    한 음성에너지를 깊이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대성(大性)을 한다라는
    보장이 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남자는 뜻이 움직여야 됩니다. 덮어놓
    고 감상적으로 쉽게 움직이는 사람은 크게 될 수 있는 끌어당기는 힘
    을 잃어버립니다. 나는 사실 조그만한 일을 하면서도 수없이 머리 속
    에서 생각을 합니다. 내가 만약 글을 쓰면서 종이가 찢어먹지 않을까?
    붓을 망가트리지 않을까? 단순히 '쓴다.'라는 하나를 하기 위해 이것
    저것 망가지지 않을까라는 점까지 수 많은 생각을 합니다. 어찌 보면
    복잡한 생각을 자신을 괴롭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중요한 것은 사물
    의 온전함을 살리고 대상이 원하는 바를 최적화하기 위한 방법이 되
    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 그렇다." 하고 자기가
    좋아하고 기뻐하는 일이라면 대상에 현혹되어 신중히 생각함이 없이
    마음먹으면 그냥 해버립니다. 그래서 그 뒤에는 공허감이 오게됩니
    다. 잘해서 뭔가 얻었다해도 뒤에 공허감이 옵니다. 보다 나은 방법과
    보다 좋은 대상이 있음을 뒤 늦게 알고 후회를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대상을 위한다는 세계를 구축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습니
    다. 대상을 위하려면 자기 희생을 감수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공
    부를 잘해서 석사학위도 받고 박사학위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영특한 사람들이 부족한 것은 "비젼이 없다."라는 점입니다. 우리나라
    에서 돈많이 번 사람이라고 하면 얼마전에 고인이 된 아무게씨와 또
    아직은 현존하고 있는 저무게씨가 있습니다. 아무게씨와 저무게씨를
    비교해서 사람들은 이미 고인이 된 아무게씨가 더 냉철하고, 더 분명
    하고, 판단이 확실하고, 실수가 없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
    금 현재 현존하고 있는 저무게씨는 생긴 것부터가 꼭 논바닥에서 굴
    러 온 촌놈같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두사람은 전부 한국 당대 제일의
    재벌이 될 수 있었으며 그렇게 되기 위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습니
    다. 그 공통점은 위대한 비젼을 일으키기 위해 "스스로 자신을 희생
    할 줄 안다."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이 점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원래 하늘에 근본을 둔 자는 땅에 내려가지 않는 법이며, 땅으로 처
    지지 않는 법이며, 땅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법이며, 땅으로부터 인
    한 모든 것을 스스로 인내할 수 있는 자이며, 하늘로 향한 모든 고통
    을 자기 자신이 감내할 수 있는 자입니다. 또 그만한 눈이 갖추어져
    있는 자입니다. 그런데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땅인줄 모르고 사는
    사람, 그런 사람은 분명히 음성에너지에 대한 구축을 확실하게 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틀림없습니다. 특히 남성에너지는 많은 인
    생을 통해서 실패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또 남자는 자신의 실패를
    통해서 내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해야 할 사람인가라는 내면의 무의식
    도 분명히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지금 소명의식이 없이 그저 하
    루 하루를 먹고 살기 위해 바쁘게 뛰어다니고, 단지 남보다 잘되기 위
    해서 뛰어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분명한 구심력이 작용하
    지 않기 때문에 크게 될 인물은 못되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현실은 물질계입니다. 물질계에서의 음성에너지에 대한 구
    축은 바로 기운을 축적하는 것입니다. 이는 자신을 살리는 기운이 되
    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의 주변의 범주가 넓어지면 그 영역권 안에
    든 가족과 가정이라는 또 더 넓게 사회라는 울타리가 보호를 받습니
    다. 이렇게 자기범주를 확장하고 울타리를 지키는 물질계의 기운 축
    적법 중 하나가 '짱'통장이라는 것입니다. 열심히 벌어서 틈나는데로
    모우고 허리 띠를 졸라매는 것입니다. 짱통장을 관리하는 사람은 저
    축을 생활화 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물질계의 현실 속에서
    음성에너지를 온전하게 구축하는 방법입니다.

    "[건]은 위대한 창조론의 근원이다. 근원의 힘으로서부터 천지만물
    은 생성을 비롯한다." 움직임, 움직이는 능력, 그 양성에너지를 통해서
    천지만물은 생성을 비롯한다. "[건]은 하늘의 법칙을 맡아 다스린다."
    [건]은 땅을 움직이는 능력이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곳 하늘을 대신
    해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건]은 [건]의 능력이 주어지는 대로 움직이
    는 것이 아니고, 하늘의 법칙을 맡아 다스린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
    늘의 법칙을 무시하고 움직이는 것은 크게 멸망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음성에너지의 구축, 구심력, 즉 글과 종이가 동시에 안전하게끔
    준비를 갖추지 않고 움직인 [건]의 움직임은 스스로 자멸하는 길이다
    라는 이야기입니다. 남자들은 마음이 있다 하면 일단 내손에 넣는 것으
    로서 족하려고 합니다. 원래 남성에너지는 그것으로서 먼저 시작을 합
    니다. 그러므로 여자들은 남자가 자기에게 잘해준다고 해서 "그가 나를
    끔직히 사랑하나봐"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오히려 남자가 진짜
    마음에 있어하는 여자한테는 친절을 함부로 못 붙입니다. 그냥 "나는 외
    롭다."라는 이야기는 할 망정, "나는 너를 끔직히 사랑한다." 이런 달콤
    한 이야기를 함부로 못합니다. 그래서 친절하게 베푸는 사람은 경계해
    야 합니다. 남자는 쉽게 손에 한 번 넣으면 "에이! 시시해!"하면서 차버
    릴 수 있으므로 여자는 그럴때 진심으로 도도해야 됩니다. 그래서 "여성
    에너지는 어렵게 함으로써 쉬운 것을 얻는다."라고 했습니다. 진심으로
    도도하라는 것은 모든 남자에 대해 무작정 튕기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러면 남자는 오기가 생겨 정말로 그 여자를 만나주지 않습니다. 여자도
    진정으로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좋아한다는 걸 분명하게 해야 됩니
    다. 남자도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남자가 분명하게 안하고 쉽게 쉽게
    손에 넣어버리면, 이제 그런 남자들한테는 이세상의 자기를 안락하게
    해줄 보금자리 같은 여자는 존재하지 않는 법입니다. 그러니까 남자는
    여자를 너무 쉽게 생각해선 안됩니다. 여자를 자기 생명같이 알고 접근
    을 해야지 그 남자는 여자로부터 복을 받을 수 있읍니다. 그렇지 않은
    남자는 여자로부터 복을 얻지 못하고, 여자로 인해서 망했다라고 하는
    그런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망하지 않더라도 여성에너지의 고마움을
    전혀 못느끼면서 사는 그런 쓸쓸하고 황폐한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건]은 하늘의 법칙을 맡아 다스리기 때문에 하늘의 법칙에 맞지 아니
    하고 움직이는 움직임은 자기 자신을 다치게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
    니다. "그리하여 구름은 하늘을 날고, 비는 대지를 축이게 한다. 이 힘을
    입어서 삼라만상은 제각기 형태를 나타낸다." 구름이 하늘을 나는 것은
    괜히 나는 것이 아니라 뭔가 안에 구축하고 있는 뜻을 가지고 나는 것입
    니다. 하늘을 하는 것은 결국은 비를 이 땅에 내려서 대지를 축이게 함입
    니다. 또 대지를 축이게 하는 것은 이땅에 있는 것들을 생성하게끔 하기
    위한 것이며, 그 힘을 입어 삼라만상은 제각기 형태를 나타내는 것입니
    다. 비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은 땅에 있는 씨앗이나 모든 만물을 생성
    하게끔 하기 위한 구심력을 갖고 내려오는 것이지, 그런 구심력이 없이
    그냥 땅이 좋아 내려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건]의 법칙은 영원히 끝이 없는 먼 후세에 이르기까지 항상 밝고 빛
    난다." 때문에 밝고 빛나는 것이 아닌 것, 그냥 덮어놓고 움직이는 양성
    에너지는 이 우주가 흡수해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흡수당하지 말고 항
    상 빛나기 위해서는 하늘의 이치를 갖고 움직여야만 됩니다. 그러면 현
    재는 허물이 있을 망정 뒤에 허물은 사라지고 그 사람의 밝고 빛나는 업
    적은 영원히 남아 있게 될 것입니다.

    "[건]의 법칙은 변화한다. 변화함으로써 만물은 제각기 천성을 바로
    하여 발휘하게 되어, 천지만물의 위대한 조화를 보전한다." 즉 글을 쓰
    되 종이를 망가트리지 않게 해야 하고, 붓을 망가트리지 않게 해야 하
    며, 쓰는 글이 종이에 묻어서 창조와 조화를 이루어 낼 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종이에 그림을 그려 놓으면
    그것은 더 이상 종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변화함으로써 만물은 제각기
    천성을 바르게 발휘하여 이제 그것은 예술로 변해버립니다. 그림을 그
    린다는 예술이 바르게 전달되어져서 천지만물의 위대한 조화를 보존
    한다, 즉 이제는 종이가 된 것이 아니고 그림이라고 하는 위대한 화폭
    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창조는 명확한 뜻을 가지고 변화를 시도하였을 때 이루어 집니다. 훌
    륭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를 깊이
    있게 구상한 다음, 종이와 붓, 먹을 준비하고 신중히 한획 한획 그려나
    가야 합니다. 만일 무엇을 그릴 것인가 하는 올바른 구상이 없이 무턱
    대고 종이데다 붓을 그으면, 그것은 아무 의미 없는 한 장의 낙서에
    불과하게 됩니다. 또 구상을 하였더라도 그릴려는 마음만 앞서서 차근
    차근 신중하게 하지 못하고 붓을 너무 세게 놀려 종이를 찢어버리면 아
    무런 가치가 없게 됩니다. 그림이 가치가 있기 위해서는 그림을 잘 그
    리면서도 종이도 보존하고, 붓도 망가트리지 않아야 됩니다. 그렇게 그
    려 나가면 처음에는 단순히 종이와 먹이었던 것이 이제는 훌륭한 예술
    작품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변화를 통한 제 3의 창조입니다. 건위천
    의 모든 양성기운 뒤에는 음성기운이 숨어 있습니다. 이제 그 음성기운
    이 먼저 드러나도록 한 다음 위대한 [건]의 능력을 발휘해야 하겠습니
    다. 음성기운이 갖추어져 있다는 것은 명확한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뜻이 확실하지 않은 사람은 열심히 일했어도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가 돌아올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만히 집에서 놀고 있
    으려니까 "아! 갑갑해서 안되겠다. 어머니 돈 한 오백만원만 주쇼, 나
    그걸로 사업할테니까." 하고 사업을 한다면 그 사람은 십중팔구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스스로 실패했다고 말할런지는 모르나, 사실
    은 성공한 것입니다. 무엇을 성공했느냐? "집안에 있으니까 갑갑하다.
    그래서 갑갑하지 않게 나가서 놀다 왔다." 이것은 성공한 것입니다. 다
    만 나가 노는데 오백만원이 들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원했던
    '갑갑'으로부터 해방되는 일을 이루어낸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진
    정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내면적으로 그 뜻을 확실히 세워야 합니다. 표
    면적으로만 마음 먹은 것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으며, 자신도 모르는 무
    의식의 세계에서 원했던 것이 결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 뜻이 확실하
    다는 것은 무의식으로도 그 뜻을 진정으로 원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뜻
    을 세우되 그 뜻은 자연의 이치에 합일해야 합니다. 이치에 일치하지 않
    고 단지 자기 욕심으로만 일을 하면 건(乾)의 능력은 올바로 발휘될 수
    없습니다.

    소명의식 없이 인생을 덮어놓고 자기 욕심으로만 살면, 나중에 인생
    이 어디로 오며 어디로 가는지 모르며 인생이 무엇이다라고 말할 수 없
    게 됩니다. 건(乾)의 능력을 통해서 조화(造化)를 이루어 낼 수 없는 사
    람은 결국 인생을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지 않으면
    우리는 살았다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모른다고 하더라도
    어쨋든 자연은 우리를 통해서 무엇인가를 남겨놓고 있습니다. 그것을
    알고 살면 거기에는 행복도 없고 불행도 없습니다. 우리가 단지 눈 앞
    에 보이는 행복을 찾아가는 것. 그것은 어쩌면 그림을 그릴 때 종이를
    찢어버리는 결과를 일으킬른지도 모릅니다. 종이가 찢어지지 않도록 종
    이를 잘 보존하고, 그 위에다가 조화를 부릴 수 있도록 삶을 창조해 나
    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위대한 건위천(乾爲天)이 주는 교훈입니다.

    대상. 하늘의 운행은 건전하여 순간도 쉬는 일
    이 없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스스로 마음을
    가다듬어 쉬지않고 노력한다.

    大象, 天行健. 君子以, 自强不息

    제 3의 창조. 이것은 자연의 위대한 능력입니다. 만물은 변화함으로
    써 천지의 위대한 조화(造化)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 변화가 분명한
    뜻에 의해 창조되지 못하면 그것은 '건(乾)'으로서 할 일을 못한 것이
    며, 그렇게 할 일을 하지 못한 건(乾)은 "크게 발전한다."는 [건위천]
    의 괘상(卦象)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자연의 이치에 의해서 움직이는
    위대한 양성기운의 힘은 만물에 변화를 나타내어 새로운 창조를 이루
    어 내고 있습니다. 그 창조는 조화(調和)와 균형(均衡)을 언제나 유지
    해 나가는 하늘의 법칙을 맡아서 다스리는 것입니다. 하늘의 법칙은
    변화를 통해 만물의 기운을 바르게 흐르도록 함으로써 언제나 천지 자
    연의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항상 조화와 균형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으므로 쉽게 움직이고 쉽게 식어버리는 양성기운이지만
    그 작용이 영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이러한 자연의 이치를
    터득하면 세상을 가장 온전하고 조화롭게 가꾸어 나갈 수 있습니다.

    이치대로 움직이지 않고 자기 욕심으로 움직이면 [건]의 능력은 발
    휘될 수 없고 스스로의 파멸로 가게 됩니다. 그래서 자기의 욕심을 버
    리고, 하늘의 뜻이 나로 하여금 펼쳐질 수 있도록 자연의 이치와 합일
    하는 뜻을 먼저 세워 명확히 한 다음 뜻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군자는 스스로 마음을 가다듬어 자신의 욕심으로 하는 것은 아
    닌지 다시 한 번 반성해 보는 것입니다. 양성기운은 살피는 조심성이
    없이 쉽게 움직이기 때문에 많은 실수를 유발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
    서 먼저 음성기운을 구축해서 내가 어떻게 움직여야할 것인가에 대한
    철저한 상황파악과 준비를 갖춘 다음 신중히 움직여야 합니다. 그러나
    일단 움직이면 최선을 다해서 성실하게 꾸준히 해나가야 합니다. 한 때
    어렵고 힘든 상황이 닥치더라도 이에 굴하지 않고 한결같이 해 나가는
    것. 이를 뒷바침해 주는 힘이 바로 음성기운입니다. 때문에 [건]의 능
    력이 바르고 끊임없이 쓰여질 수 있도록 군자는 먼저 음성 기운을 갖
    추고 쉬지않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첫번째 양효. 물속에 잠복한 용, 함부로 날뛰지
    않고 오직 힘을 기르며 때를 기다린다.

    初九, 潛龍, 勿用. 象曰, 潛龍勿用, 陽在下也.

    분명하게 음성에너지의 세계가 구축되어져 있는 사람은 함부로 뛰어
    나가지 않습니다.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라고 했는데, 삐그덕 거리는
    나무다리를 보고도 "이대로 참고 여기 못있겠다." 하고 덮어 놓고 뛰어
    가는 사람은 떨어져서 죽는 법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무의식 "여기
    못있겠다."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다만 그 '여기'가 이승에서 저승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물속에 잠복한 용" 용이 훨훨나르지 않고 물속에
    서 때를 기다리는 것과 같이 이미 시작은 했지만 함부로 날뛰지 않고,
    비록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있다 하더라도 처음에는 살펴야
    합니다. 자신 스스로 해낸다고 하는 마음을 굳건히 갖되, 주변을 살피
    지 아니하고 섣불리 나아가면 음성 기운이 구축되지 않아 쓸데없는 노
    력만 낭비하며 좌절하게 될 것이므로, "오직 힘을 기르며 때를 기다린
    다." 즉 능히 해낼 수 있는 양의 힘이 충만한 용이지만 지금은 아직 아
    래의 위치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더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흔히 실수
    를 범하게 되는 경우는 음성기운이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마음
    의 욕심으로 양성기운을 함부로 쓸 때입니다. 병법에도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 위태로움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적을 충분히 알 때까
    지 섣불리 움직여서는 안됩니다. 저 사람의 약점이 무엇인지, 내가 나갈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인지, 아닌지, 충분히 살펴야 됩니다.

    두번째 양효. 땅에 나타난 용. 덕의 영향이 널리 퍼진다.
    훌륭한 군주의 신임을 받기에 적당하다.
    九二, 見龍在田, 利見大人. 象曰, 見龍在田, 德施普也

    "땅에 나타난 용" 이제 용이 물속에서 땅으로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이제는 해야할 일을 아주 열심히 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큰 득을
    얻기를 바래서는 안됩니다. 무엇을 해야되겠다하고 했는데 단번에 될
    리가 있습니까? 단번에 될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단번에 될리는 없지만
    실수하고 실패하는 한이 있어도 그래도 계속해서 남의 이목에 관여치
    아니하고 자기 할일을 꾸준히 하는 사람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신임을
    받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미친놈 소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 남들
    은 창피해서 못하는데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뛰어 넘어 접시 닦으며 돈
    을 버는 사람들, 이런 사람은 일단 자기로부터 호응을 받게 됩니다. 그
    래서 두번째 양효는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땅에 나타난 용.
    그 덕의 영향이 널리 퍼진다."남들이 용임을 알아 주지 않지만, 어쨋든
    용으로서 나타난 덕으로서의 영향이 널리 퍼지게 됩니다. 비록 아직까
    지 실속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남들이 쉴 때 창피한 것도 참으며
    나태하지 않고 열심히 하는 것은 그 덕이 널리 퍼져서 결국 상사로부터
    "저 사람만은 꼭 있어야 된다. 저 사람이 아니면 할 사람이 없다."라는
    이야기는 저절로 나오게 될 만큼 신임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번째 양효. 행운을 타고 지나치게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위태로운 것이다. 낮에는 온 종일 쉬임없이 노력하고 저녁에
    는 반성하여 삼가하고 조심하면 위태롭지만 허물은 없을 것
    이다.

    九三, 君子終日乾乾, 夕척若, 勵无咎.
    象曰, 終日乾乾, 反復道也.

    세번째 양효입니다. 사람이 타인에게 신임을 받을 만큼 열심히 일을
    하다보면 몸이 망가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몸을 버려가면서까지 하면
    안됩니다. 이때 더 많은 신임을 받아야지 하는 욕심으로 무리를 하게
    되면 자신을 망가뜨리게 됩니다. 그럴때는 욕을 먹는 한이 있어도 쉴
    건 쉬어야 합니다. 이 정도로 열심히 했는데 "더 많은 신임을 받아야지."
    하는 것은 바로 허영입니다. 허영. 간신이 따로 있는게 아닙니다. 그것
    은 뜻이 아니라 허영입니다. 그럴때는 욕을 먹는 한이 있어도 쉴 건 쉬
    어야 합니다. 쉬는 걸 당당하게 쉬어선 안됩니다. 쉬는 것을 아주 정성
    스럽게 내가 쉬어서는 안되지만 조금 쉬겠습니다 하는 것을 분명히 해
    야 합니다. 쉬되 아주 겸손하게, 마치 죄진 것처럼, 그렇게 쉬지 않고
    "야, 내가 이렇게 해서 이만큼 신임을 받았는데 이 정도 쉬는 것쯤이야."
    하는 식으로 나가면 그 다음부터는 멸시와 손가락질 받게 될 것입니
    다. 그래서 세번째는 "자중하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낮에는
    온종일 쉬임없이 노력하고 저녁때는 반성하여 삼가고 조심하면 위태
    한 일이 있을 지라도 허물은 없을 것이다." 낮에는 쉼없이 노력하되 마
    치 자기가 잘난 것처럼 자랑을 아니하고, 저녁에는 "혹시 내가 너무 내
    잘난 맛에 들떠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점을 반성하고 삼가하여 조심
    하면, 잘못 실수라도 벌어져서 어떤 위태한 일이 있더라도 남들이 생
    각할 때 "저 사람이 여태까지 한 업적으로 봐서 그런 정도의 실수는 큰
    죄가 아니다." 라고 느껴지게 되어 허물은 없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
    와같이 꾸준히 열심히 했을 때 허물이 없는 것이지, 자기 이득만 위해
    서 행하였다면 이렇게 될 리가 없습니다. 그렇게 나가는 사람은 결국
    세번째 상태를 넘어가지 못하고 여기서 주저앉게 될 것입니다.

    네번째 양효. 비약하는 용이 뛰어 솟았다가 다시 물 속으로
    힘을 축적한다. 이와같이 때와 시를 쫓아 물러가야 할 때 물
    러가 힘을 기르면 나가야 할 때 나가도 허물이 없을 것이다.

    九四, 或躍在淵. 无咎. 象曰, 或躍在淵, 進无咎.

    이제 밑의 괘에서부터 위의 괘로 올라가는 것은 용이 단순히 물에서
    노는 것이 아니라 비약을 하는 것입니다. 이 정도까지 완성을 하면서
    나 자신을 내세우지 아니하고 안으로 힘이 구축되어져 있는 사람이 이
    제 외괘를 향해 이 구축한 힘을 위로 상승시키면 어마어마하게 큰 발전
    이 있게 됩니다. 마치 연줄을 당기듯이, 연줄을 조금만 움직이면 연이
    붙게도 할 수 있고, 다른 연을 쳐서 연줄을 끊어버릴 수도 있는 그런 힘
    을 구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평면적으로 잘되고 못되는 것이
    아니고 비약하여 차원을 달리하는 그런 상태가 네번째 효에서부터 이
    루어지게 됩니다. 원래 주역은 세번째 효에서 조심하라고 말을 합니다.
    밑의 괘에서 위의 괘로 옮겨갈 때는 차원이 달라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는 하늘의 기운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하늘의 기운은 항상 공평하
    게 내려오고 있습니다. 태양 빛이 하늘에서 내려쪼일 때, "나는 식물을
    위해서 내려온다. 나는 인간들을 위해서 내려온다. 나는 해수욕을 하는
    여인을 위해서 내려온다."는 식으로 내려오지 않습니다. 그냥 전체적으
    로 오는 것일 뿐입니다. 그렇듯 땅에 사는 인간도 전체를 위한 의식을 갖
    고 행해야지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행하면 큰 비약을 할 수 없습니
    다. 비약은 자기 욕심을 떠나서만이 이루어지게끔 되어 있습니다. "저 사
    람이 나한테 꼭 필요한 사람이다." 이런 식으로 하면 언젠가 저 사람은
    나를 배신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저사람을 위해서
    가 아니고, "저 사람과 내가 함께 공존하는 이 세계를 위해서"라는 마음
    을 가지고 한 세계를 구축해 나간다면 설사 나중에 그 사람이 배신한다
    하더라도 그 사람에 대한 미움은 없을 것입니다. 그 구축한 세계가 조
    금 허물어 나가면 다시 하면 됩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의 길이 바로 건
    위천의 위대한 능력인 제 삼의 창조를 이루어 내는 길입니다.

    이 네번째부터는 인간적인 욕심을 버리고 해야합니다. 비약은 인간의
    마음, 인간의 욕심으로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위험수위
    에 올라가게 됩니다. 그래서 주역에서도 "반드시 양의 힘을 행세할 때
    는 위대한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한 걸음 물러서서 겸손과 조심성이 있
    어야 된다."라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나가고 물러서는 것을 아는 것,
    이는 군자만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군자는 뜻으로 사는 사람이며, 음
    성 기운이 구축된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중할 줄 알며 물러서서 힘을 기
    를 때를 아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는 자는 자기가 잘난 줄 알고 계속
    나아가다 '차면 기우나니' 결국 파멸하게 됩니다. 하나의 회사를 세워 기
    반을 구축하는 데는 10년 혹은 20년이 걸리며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망하는 것은 한 달이내에 도산할 수 있을 만큼 쉬운 것입니다. 비약할 때
    다시 한 번 자신을 돌아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제부터는 연산역 주변
    을 살펴야 됩니다. 여태껏 잘됐다 그래서 계속 잘된다라는 보장은 없는
    것입니다. 여태까지 잘 됐으면 이제 한 번 다시 쉬면서 맨처음에 시작했
    던 자세로 다시 살펴야 합니다. 그렇게 살피지 아니하고 다 된 것처럼 했
    다가는 다된 밥에 재뿌리는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그렇치 않으려면 다
    시금 처음의 시작했던 자세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처음의 가난했던 때
    로 되돌아가 다시금 가난을 버리지 말아라. 나는 부자였다라고 생각하
    지 말아라. 나는 잘 이루어냈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예전에 가난을 잊지
    말아라. 다시 가난으로 되돌아가라. 마음은 다시 가난을 사랑하도록 하
    라. 그래야만 지금껏 네가 가지고 있었던 것이 너를 저버리지 않는다."
    라는 암시를 주고 있는 것이 네번째 비약한 세계입니다.

    다섯번째 양효. 나는 용이 하늘을 달린다. 건의 극치.
    덕이 높은 인물이 제왕의 지위에 오른다.

    九五, 飛龍在天, 利見大人. 象曰, 飛龍在天, 大人造也.

    주역에 있어 위대한 효는 천지의 가운데인 둘째와 다섯번째 효이며,
    그 중에서도 제일 위대한 것은 다섯번째입니다. 인간의 차원으로 보았
    을 때 다섯번째가 완성의 결정입니다. "나는 용이 하늘을 달린다." 건
    의 극치로 용이 완전히 하늘로 날아가는 것입니다. "덕이 높은 인물이
    제왕의 지위에 오른다." 덕이 높은 인물이 제왕의 지위에 오르는 것이
    지 욕심으로 여기까지 온 사람이 지위에 오르는 것은 아닙니다. 음성에
    너지를 확실히 구축한 사람만이 비약적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입니
    다. 만약 이 사람이 경제인이라면 이제부터 경제는 이 사람에 의해서
    비약하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는 사람들이 필요한 걸 내가 만들어서
    바쳤지만, 이제는 내가 만들어 놓은 것을 다른 사람들이 따라서 만들
    게 되는 것입니다.

    건의 극치. 양성에너지의 극치. 음성에너지의 발전을 쌓은 덕이 높은
    인물은 제왕의 지위에 오르며, 훌륭한 제왕에게는 훌륭한 일꾼들이 몰
    려와 보필하게 됩니다. 덕이 찬 사람은 이제 만물을 손아귀에 쥐고 흔
    들어내는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대의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이때
    에 제일 조심해야 됩니다. 인간은 높이 될 수록 외로운 법입니다. 그럴
    때 내 뜻에 의해서 살지 마시고 하늘의 뜻에서 이루어진 이 모든 것들
    을 다시 하늘의 영광으로 돌리는 겸손이 필요한 것입니다. "나는 용이
    하늘을 달린다. 건의 극치. 덕이 높은 인물이 제왕의 지위에 오른다."
    이제 용은 움직일 때마다 비를 마음대로 쏟게 할 수 있고, 땅은 그 용이
    나르는데 따라서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이게 됩니다. 그러나 그 움직
    임은 덕으로 해야 합니다. 음성에너지의 발전, 음성에너지의 완성을
    위해서 나아가야지 자신이 잘났다고 스스로를 내세워서는 결코 안될
    것입니다. 훌륭한 제왕의 곁에는 훌륭한 일꾼들이 몰려와 보필하게 됩
    니다. 수많은 사람은 그를 따르게 될 것이며, 세상은 그 사람을 그 방면
    에 있어서는 가장 훌륭한 사람이라고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
    섯번째 가서 음성에너지로 산 사람이냐, 아니면 덮어놓고 양성에너지
    로 움직였던 사람이냐에 따라서 크게 결과가 달라지게 됩니다.

    여섯번째 양효. 절정에 오른 용. 차면 기우는 법, 어찌
    영속하기를 바라겠는가? 후회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上九, 亢龍有悔. 象曰, 亢龍有悔, 盈不何久也.

    정상은 외로운 법입니다. 사람들은 이제 허무를 느낍니다. 이때 허무에
    빠져서 뜻을 망각하는 사람은 급속히 파멸하게 됩니다. 나의 욕심을 버
    리고 하늘의 뜻으로 해야 합니다. "내가 이루어낸 모든 것이 하늘로부터
    받은 은혜가 나를 통해서 이렇게 이루어진 것"을 알고 더 계속해서 끊임
    없이 해야 됩니다. 그렇게 끊임 없이 하다가 죽었을 때, 그 사람은 죽고
    없어졌지만, 그 사람이 쌓아 놓은 업적은 바로 죽은 그 사람의 이름을 빛
    나게 해줄 것입니다. "하늘의 운행은 건전하여 순간도 쉬는 일이 없다."
    이 괘의 처음에 얘기했듯이 세상은 쉬는 일이라곤 없습니다. 때문에 우
    리도 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자기 만족을 위해서 살아서
    도 안됩니다. 끊임없이 만물이 움직이듯이, 나 자신도 끊임없이 움직여
    야 합니다. 그 움직임 속에서 음성에너지의 세계를 확실하게 구축해야
    만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세계를 발전시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유지(維持)'라는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만물은 항상
    변하지만, '절대유지(絶對維持)'를 결코 잃어버리는 법은 없기 때문입니
    다. 만물이 가지고 있는 절대 유지를 개인적으로도 똑같이 누릴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이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을 얻은 사람이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인은 바로 그것을 얻은 사람입니다. 살피면서 나
    갈 수 있는 힘. 덮어놓고 앞의 양성 기운으로만 발전을 꾀하는 것이 아니
    라, 음성 기운의 구축을 먼저 확실하게 하고 나아가는 자세. 욕심으로 무
    조건 앞으로 나가는 사람은 수 없이 많은 노력을 했는데도 "왜 나는 이루
    어진 것이 없습니까?" 하는 얘기를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음성에너지의 분명한 세계가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죽는 한이 있어도
    나는 해내야 되겠다."라는 절박함이 있지 아니하면, 결코 이루어 낼 수
    없습니다.

    쓰는 뜻. 뭇 용이 구름속에 그 머리를 숨겨있음을 본다. 하늘
    의 도리를 본 받은 위대한 덕행도 자신을 내세워 과시함이 없
    이 베풀어야 진실로 훌륭한 것이다.

    주역에는 이 [건위천]과 두번째 나오는 [곤위지] 두 괘에 대해서 육효
    의 설명뒤에 "쓰는 뜻"이라고 하여 양성에너지 및 음성에너지를 사용하
    는 마음가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건위천과 곤위지가 양성에너
    지 및 음성에너지의 근본이 되기 때문입니다. 양이 힘은 위대한 것이기
    때문에 그 힘을 행사할 때는 오히려 한 걸음 물러서는 겸손과 조심성이
    있어야 합니다. 양성에너지는 쉽게 움직입니다. 양성에너지는 움직이지
    않으면 못배깁니다. 그러나 양성에너지는 품은 뜻, 즉 자기 안의 음성에
    너지의 세계에 채워지는 밭이 있이 움직여야합니다. 채우는 밭이 움직여
    버리게 되면 도리어 밭이 멸망하게 됩니다. "나는 꼭 합격해야 한다."라
    고 하는 마음을 음성에너지로 구축하고 해야지 욕심으로 해봐야 떨어지
    기 십상입니다. 욕심과 음성에너지 구축을 구분하기가 사실 어려운 것입
    니다. 성인 군자가 아니면 그것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성인 군자라는 말을
    쓰는 것입니다. 나는 군자인지 아닌지 스스로 평가하기는 매우 힘듭니다.
    열심히 했는데 계속해서 되지 않는 사람은 군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틀
    림 없습니다. 되는 사람은 군자의 길이 어떤 것인지 자각할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막에서 목이 말라 물을 찾는데 웅덩이에 물이 있다
    고 덮어놓고 먹다가 그 물이 썩은 물이어서 갑자기 복통을 일으키고 병
    에 걸려 죽었다면 그 사람은 소인배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갈
    증을 해소하려는 욕심으로만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목이 마르
    다 하더라도 목마른 욕심으로 하지 않고, "목마른 것으로 죽으면 안된
    다. 살기 위해서 물을 먹어야 한다." 라는 인식이 뚜렷하고 살펴서 물을
    마실줄 아는 사람은, 물이라고 해서 덮어 놓고 먹는 것이 아니라 먹을 수
    있는지 없는지를 분간하여 먹을 수 없는 물이라면 먹지 아니하고 더 참
    고 참다가 결국 먹을 수 있는 물을 만나게 됩니다. 자기의 음성에너지가
    강하게 요구하고 있으면 현상이 그런 식으로 벌어지게끔 되는 이상 야
    릇한 매카니즘을 자연은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무의식이 진정으로 원
    하면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자연이 그것이 이루어지게끔
    도와준다는 것입니다. 군자는 바로 이와같은 자연의 힘을 끌어올 수 있
    는 사람입니다. 그런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만물을 살펴가면서 움직
    여야 합니다. 그렇치 아니하고 그냥 좋은데로 움직이면 실수가 벌어지
    게 됩니다. 실수가 벌어지지 않으려면 항상 살필 수 있는 눈이 있어야
    되며, 그 살필 수 있는 눈이 있기 위해서는 음성에너지의 뜻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 뜻이 분명한 사람은 마음의 조바심이 있는 법입니다. 그 조바
    심은 단순한 불안, 초조 등이 아니고 이뤄내기 위한 최소한의 안간힘이
    라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대부분 큰 실수를 저지르는 것은 바
    로 그것이 없이 단순한 자기 욕심으로 움직였을 때 입니다. 더더군다나
    이 괘는 남자의 괘이기 때문에 남자가 단순히 욕심으로만 이것 하고 싶
    은대로 이것 하고, 저것 하고 싶은 대로 저것 하면 결과적으로 맨 마지
    막의 "차면 기우나니"에 걸려들어가게 됩니다.

    2005. 9. 14. 유성 記..…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2-07 조회 4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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