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교동 뇌씨(橋桐雷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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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 뇌씨(橋桐雷氏)
교동(喬桐)은 경기도 강화군에 속해있는 지명으로 고구려(高句麗) 때 고목근현(高木根縣) 또는 대운도(戴雲島)·고림(高林)·달을신(達乙新) 등으로 불리우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 교동(喬桐)으로 고쳐 해구군(海口郡: 강화의 옛 지명)에 속하였고, 조선 인조조(仁祖朝)에 부(府)로 승격되었으나 1895년(고종 32) 강화군(江華軍)에 예속된 교동면(喬桐面)이 되었다.
뇌씨(雷氏) 중국(中國) 풍익(馮翊)에서 계출(系出)된 성씨(姓氏)로 전하고 있으나 상계(上系)를 고증(考證)할 문헌(文獻)이 없다.
우리나라 뇌씨(雷氏)는 청(淸)나라 덕종(德宗) 때 사람으로 형부 시랑(刑部侍郞)을 지낸 뇌이성(雷以誠: 자는 학고)의 후예(後裔)이며, 선조(先祖)가 조선조에서 벼슬을 지내다가 화(禍)를 입고 교동(喬桐)으로 유배(流配)되어 그 곳에서 살았으나 후손들이 황해도(黃海道)로 이거(移居)하였다.
1930년도 국세조사(國稅調査) 당시 황해도 수안(遂安)·황주(黃州) 등지에 30여 가구가 있었으며,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남한에 총 29가구, 106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동(喬桐)은 경기도 강화군에 속해있는 지명으로 고구려(高句麗) 때 고목근현(高木根縣) 또는 대운도(戴雲島)·고림(高林)·달을신(達乙新) 등으로 불리우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 교동(喬桐)으로 고쳐 해구군(海口郡: 강화의 옛 지명)에 속하였고, 조선 인조조(仁祖朝)에 부(府)로 승격되었으나 1895년(고종 32) 강화군(江華軍)에 예속된 교동면(喬桐面)이 되었다.
뇌씨(雷氏) 중국(中國) 풍익(馮翊)에서 계출(系出)된 성씨(姓氏)로 전하고 있으나 상계(上系)를 고증(考證)할 문헌(文獻)이 없다.
우리나라 뇌씨(雷氏)는 청(淸)나라 덕종(德宗) 때 사람으로 형부 시랑(刑部侍郞)을 지낸 뇌이성(雷以誠: 자는 학고)의 후예(後裔)이며, 선조(先祖)가 조선조에서 벼슬을 지내다가 화(禍)를 입고 교동(喬桐)으로 유배(流配)되어 그 곳에서 살았으나 후손들이 황해도(黃海道)로 이거(移居)하였다.
1930년도 국세조사(國稅調査) 당시 황해도 수안(遂安)·황주(黃州) 등지에 30여 가구가 있었으며,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남한에 총 29가구, 106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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