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나씨(羅州羅氏)
나주 나씨(羅州羅氏)
시조 휘(諱):나 부(羅 富)
묘 소: 전남 나주시 송월동
일세조 휘(諱): 나득규(羅得규), 영동정(令同正)
나주 나씨(羅州羅氏)
나주(羅州)는 전라남도(全羅南道) 중서부(中西部)에 위치한 지명(地名)으로 백제(百濟)의 발라군(發羅郡)이었으며 신라(新羅) 경덕왕(景德王 : 제 35대 왕, 재위기간 : 742 ~ 765) 때 금산군(錦山郡)으로 고쳤다. 후백제의 견 훤(甄 萱)이 이 곳을 본거지로 삼았고 후에 고려(高麗) 태조 왕 건(王 建) 점령하여 나주(羅州)로 개칭하였다.
고대 중국(中國) 백익(伯益)의 후예로 전하는 나주 나씨(羅州羅氏)는 시조(始祖)인 나 부(羅 富)가 강서성(江西省) 예장(豫章)으로부터 동래(東來)하여 고려조에서 정의대부(正議大夫) 감문위 상장군(監門衛上將軍)을 역임하고 나주(羅州)에 정착(定着)한 것이 시원(始源)을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상계(上系)가 실전(失傳)되어 부(富)의 후손으로 영동정(令同正)에 오른 득규로부터 기일세(起一世)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으며, 특히 일세조인 득규의 증손(曾孫) 수영(守永)의 아들 5 형제가 모두 현달(顯達)하여 가문(家門)의 중흥을 크게 이루었다.
수영(守永)의 맏아들 위(位)는 고려 때 일찍 출사(出仕)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한 후 호조 전서(戶曹典書)에 제수(除授)되었으나 당시 혼란한 정국을 개탄하며 벼슬을 버리고 나주에 은거자정(隱居自靖)하여 금양처사(錦陽處士)로 불리워졌으며, 그의 아들 동길(東吉)이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를 지내고 증주 목사(甑州牧使)로 나가 자손들이 그곳에서 잉거(仍居)하면서 용강(龍岡)과 성주(成州) 등지로 이거(移居)하여 주로 관서북 (關西北) 지방에 집중세거하게 되면서 부터 전서공파(典書公派)의 일족(一族)을 이루었다.
수영의 둘째 아들인 계(桂)는 고려에서 벼슬이 중서시랑(中書侍郞)에 이르렀고, 자손들이 주로 경기도(京畿道)에 집중세거하며 시랑공파(侍郞公派)를 이루었다.
그의 묘소(墓所)가 한양성내(漢陽城內)에 있는 것으로 기록에 전하나 실전(失傳)하여 1978년 후손들이 강화군(江華郡) 하점면(河岾面) 장정리(長井里) 봉천산(奉天山) 남쪽에 6대를 설단(設壇)하고 매년 음력 10월 13일에 향사 (享祀)하고 있다.
금양군(錦陽君) 파조(派祖)인 석(碩)은 고려 때 사온서 직장(司 署直長)으로 나라에 공(功)을 세워 금양군(錦陽君)에 봉해졌으며 학문(學問)이 뛰어났고, 나주로부터 김제(金堤)로 이거(移居)하여 자손들이 김제파(金堤派)라고도 하였다.
그의 묘소(墓所)는 김제의 북조산(北造山)에 있었으나 실전하여 후손들이 1954년 김제군(金堤郡) 금산면(金山面) 청도리(淸道里) 종산(宗山)에 설단하고 매년 음력 3월 15일 향사(享祀)하고 있다.
수영(守永)의 네째 아들로 연안군파 (延安君派)를 이룬 세(世)는 고려 말에 문과에 급제하고 전라도 상원수(全羅道上元帥) 겸 도안무사(都按撫使)를 거쳐 나라에 공을 세워 연안군(延安君)에 봉해졌으며 벼슬이 판도판서(版圖判書)에 이르렀고, 묘소가 실전되어 후손들이 1957년에 충남(忠南) 서천군(舒川郡) 마서면(馬西面) 옥산리(玉山里) 순제동(荀堤洞)에 설단하고 매년 음력 3월 17일에 향사하고 있다. 수영의 막내아들로 사온서 직장(司 署直長)을 지내고 나주(羅州)에 세거(世居)했던 원(源)은 직장공파(直長公派)의 파조(派祖)가 되었고, 묘소는 공조 전서(工曹典書)를 지냈던 아들 진(璡)과 함께 나주 송현(松峴)에 있으며 3월 3일에 향사(享祀)하고 있다.
가통(家統)을 빛낸 인물(人物)을 살펴보면 조선 세종(世宗) 때 이조 판서(吏曹判書) 겸 세자시강원 찬선 (世子侍講院贊善)을 지낸 득강(得康)과 전농시정(典農寺正)으로 공(功)을 세워 나성군(羅城君)에 봉해진 공언(公彦), 명종(明宗) 때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거쳐 청주 판관(淸州判官)으로 나간 응허(應虛), 양천 현감(陽川縣監)으로 선정(善政)을 베풀어 군민들이 선정비(善政碑)를 세웠던 흡(恰)이 유명했다.
또한 풍덕 군수(豊德郡守) 순(恂), 광주 유수(廣州留守)를 지내고 판서(判書)에 추증된 치온(致溫), 영광 군수(靈光郡守)를 거쳐 무장 현감(茂長縣監)으로 선무원종 일등공신(宣武原從一等功臣)에 책록된 덕신(德愼), 인조(仁祖) 때 이 괄(李 适)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진무원종 일등공신(振武原從一等功臣)에 오른 덕헌(德憲), 정묘호란 때 옥과 현감(玉果縣監)으로 군량조달에 힘썼던 위소(緯素) 등이 가문(家門)을 대표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나주 나씨(羅州羅氏)는 남한(南韓)에 총 23,284 가구, 99,089 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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