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도씨(順天陶氏)
순천 도씨(順天陶氏)
순천(順天)은 전라남도(全羅南道) 남동쪽에 위치한 지명으로 백제시대(百濟時代)에 함평군이었으나 신라(新羅) 때 승평(昇平)으로 고쳤으며, 996년(고려 성종 15)에 승주(昇州)로 하였다가 정종(靖宗) 때 승평군(昇平郡)이 되고 1309년(충선왕 1) 승주목(昇州牧)으로 승격하였다. 그후 순천부(順天府)로 강등되고 조선시대(朝鮮時代)에 도호부(都護府)가 되었으며 여러 차례 변천을 거쳐 1895년 순천군(順天郡)으로 개칭, 1949년 순천읍과 일부 면을 통합하여 순천시가 되고 종래의 순천군은 승주군(昇州郡)으로 개칭되었다.
도씨(陶氏)는 한(漢)나라 초에 중국 제남(濟南 : 지금의 산동성 역성현)에서 계출(系出)된 성씨 (姓氏)이며, 선계(先系)는 당요(唐堯 : 전설상의 인물인 성왕 요재를 일컫음)의 후예로 전해진다. 우리나라 도씨(陶氏)의 본관 (本貫)은 순천(順天)과 풍양(豊壤)을 비롯하여 청주(淸州), 유곡(楡谷 : 남원지방), 죽청(竹靑), 경주(慶州), 병양(兵陽), 밀양(密陽) 등 10여 본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나 순천(順天)을 제외한 나머지 관향(貫鄕)에 대해서는 상계(上系)가 미상(未詳)하다. [순천도씨김포세보(順天陶氏金浦世譜)]에 의하면 순천 도씨의 시조(始祖)는 중국 진(晋)나라 사람인 도 단(陶丹)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그의 아들 도 간(陶侃 : 257-332)이 진(晋)나라 무장(武將)으로 진(晋)왕조가 오(吳)를 평정하여 삼국(三國)을 통일(統一)하는데 훈공을 세웠다. 한편 <귀거래사(歸去來辭)>로 유명한 진(晋)나라 시인 도연명(陶淵明)은 무장 도 간(陶侃)의 증손(曾孫)이다.도연명의 본명은 도 잠(陶潛)이며 진나라 말기에 강서성(江西省) 구강현(九江縣)에서 출생하여 80여일간의 팽택현령(彭澤縣令)으로 관계(官界)를 사직하고 귀향(歸鄕)하여 전원생활(田園生活)로 유유자적이며, 산천초목(山川草木)과 조수(鳥獸)의 기담(奇談)을 기록한 [산해경(山海經)]을 읽고 밭을 갈기도 했으며 중국 문학사상 특이한 위치를 차지했다. 특히 그는 스스로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자처하며 평이하고도 자연스러운 조사(助辭)를 자주 사용하였고, 때로는 속어적(俗語的)인 표현으로 깊은 철학(哲學)을 담아 [도화원기(桃花源記)]를 저술했다.
순천 도씨(順天陶氏)는 시조 단(丹)으로부터 선계(先系)를 적어오다가 중간 계대(系代)를 실전(失傳)하여, 1296년(충렬왕 22) 원(元)나라 공주(公主)를 배행(陪行)하고 동래(東來)한 도구원(陶球元)이 순천(順天) 죽청리(竹靑里)에 세거(世居)하게 되었으므로 순천(順天)을 관향(貫鄕)으로 하고 구원(球元)을 일세조(一世祖)로 하여 세계(世界)를 계대(繼代)하고 있다.
가문의 인맥(人脈)을 살펴보면 구원(球元)의 아들 정흠(正欽)이 고려조(高麗朝)에서 문하시랑(門下侍郞)을 지내고 개성부원군(開城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손자 광세(匡世)는 소부소감(少府少監)을 역임하여 가문을 크게 일으켰다.
그밖의 인물로는 장령(掌令) 동명(東明)의 아들 천석(天錫)이 조선조에서 감찰(監察)을 역임하였고, 그의 아들 제만(濟萬)은 성균관진사(成均館進士)로 공조참판(工曹參判)에 추증된 태영(泰英 제만의 증손)과 함께 순천 도씨의 가맥(家脈)을 이었다.
근대에 와서 도씨(陶氏)는 1930년도 국세조사(國稅調査) 당시 경기도 김포와 개풍군(開豊郡) 일대를 비롯하여 황해도(黃海道)일원에 100여 가구(家口)가 살고 있었으며,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순천(順天)외에도 풍양(豊壤), 경주(慶州), 청주(淸州), 남양(南陽)등 8본관의 도씨가 남한에 222가구, 943명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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