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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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교과서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우리역사를 찾아내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원 고성군 죽왕면 문암리 백도마을 성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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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1-27 12:32 조회 46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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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고성군 죽왕면 문암리 백도마을 성황제

제명 : 성황제와 별신굿
신격 : 숫성황신, 암성황신
제당 : 마을뒷산 숫성황당, 바닷가 암성황당(자연석)
일시 : 음력 1월 3일, 3년에 1회 별신굿


개괄

문암1리 백도는 ‘망개’라 불리는데 예전에 일 만 호가 살아서 ‘만포만개리’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초3일날 마을 앞산에 있는 숫성황신과 바닷가 암성황신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특별히 목조남근을 암성황신에게 제물로 바친다.

제의내용

문암1리 백도는 ‘망개’라 불리는데 예전에 일 만 호가 살아서 ‘만포만개리’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초3일날 마을 앞산에 있는 숫성황신과 바닷가 암성황신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특별히 목조남근을 암성황신에게 제물로 바친다. 목조 남근은 제관 가운데 한 사람이 깎는데 자신이 남근을 깎는다고 말해서는 안되고 남근을 타인에게 보여주지도 않는다. 남근은 길이 한 자, 지름 5㎝정도의 크기인데 반드시 오리나무로 3개를 깎는다. 남근을 암성황신이 있는 바위구멍에 꽂는데, 구멍이 한 번에 맞으면 풍어가 된다고 믿는다. 망개마을의 남근신앙과 인근에 있는 미륵석상은 민속적 이미지에 맞는 관광상품이 될 수 있다.

문암1리와 문암2리로 구성되어 있다. 문암1리는 백도마을로 불리는데 157가구이고 이중 김씨가 50여 가구다. 논과 밭도 있고 가축도 사육하고 있어 바닷가에 접해 있지만 반농반어라 할 수 있다. 그 외 민박도 주요한 수입원이다. 백도마을이라 이름한 것은 일명 흰섬이라 불리는 백도가 해안에서 약 500m 떨어져 있는데 갈매기 배설물로 섬 전체가 덮혀 백색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일출과 일몰 때 섬의 장관은 옛날 임금님이 살던 커다란 성처럼 우람하게 보인다고 한다. 마을 산밑 지표에는 융기문, 손톱무늬 회갈색 토기편이 다량 수집되어 1997년 국립문화재연구소 검사 결과 이것이 신석기 시대와 철기 시대유물로 추정되고 있어 남한의 신석기 문화의 이동경로를 밝혀주는 귀중한 자료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만호리, 괘진리, 망포리, 망개리 등으로도 불린다. 삼국시대 고구려가 이 곳에 침략하여 신라장군을 죽였다. 신라장군이 죽은 곳에 난데없이 돌로 된 미륵동이 생겨났다. 장군의 부인이 이곳에서 애절히 울다가 부인이 죽어 뱀이 되어 미륵동을 지켰다. 부인이 죽으며 내가 뱀이 되어 미륵동을 지킬 터이니 나를 잘 보살피면 훗날 신라인 만호가 거주하게 할 것이라고 하여 만호리로 한 때 불렸다. 이때 고구려의 박씨가 그 뱀을 죽여 마을주민들은 마을이 곧 망한다하여 망포리라 불렀고, 이후 부락 앞에 개[浦]가 있어 마을을 바라본다고 하여 망개리라 이름하였다. 1919년에 와서 문암리로 되었고, 1954년에 1리와 2리(괘진리)로 나뉘어졌다. 이 마을의 가장 큰 명절은 설날과 추석이다. 마을의 제의는 다음과 같다.

?성황제(3일)
초사흘에 성황제가 고정되어 있지만 마을에 큰 부정이 있으면 조정할 수 있다. 자금은 가가호호 정성껏 갹출한다. 섣달에 생기복덕을 보아 제관을 선임한다. 제물은 풍부할 때는 소도 잡아 썼으나 지금은 돼지를 잡아 쓴다. 어물은 앞 바다에서 나오는 문어, 열기, 오징어를 쓰며, 탕도 물론 올리며 제주를 봉하고, 제관이 올라가 제를 올린다. 자작도 해수욕장 바위에 암 성황이 있고, 이곳 성황은 수 성황이다.
제관들이 할머니 성황을 모셔와 할아버지 성황도 모셔와 한 군데에서 제를 올린다. 따로 제단을 만들어 거기에서 제를 올린다. 가가호호 호주의 성명과 생기를 써서 소지를 전부 올려준다. 그래서 낙성이 되는 소지는 그분들에게 알려, 또 낙성된 각자가 와 소지를 올려야 한다. 제사 후 음식은 동네 모두가 제관 집에서 모여 나눠 먹는다.
문암1리 바닷가에 있는 암성황제는 해마다 정월 3일 새벽 4시경 올리는데 이때 문암2리 수 성황제도 함께 지낸다. 암 성황당은 수십 개의 자연석 구멍이 있으며 시멘트로 제단을 만들어 놓았다. 제관으로 선정된 7명은 오리나무로 길이 30㎝, 지름 5㎝정도의 남근을 3개 깎아 가지고 가서 처음에 한 개를 넣어서 구멍이 맞으면 풍어가 된다고 믿는다.
마을 이장은 한복을 한 벌 지어 암 성황신에게 바치는데 암 성황신은 시집을 못가고 바다에 빠져 죽은 여성이므로 그 영혼을 위로하는 뜻이라고 한다. 5년마다 풍어굿을 할 때 무당이 주관하여 암수성황신을 굿 당에 봉안하고 합사한다. 이 마을의 남근봉헌은 한 어부가 고기가 잘 잡히지 않자 홧김에 암 성황당에 가서 육담으로 욕설을 퍼붓고 바다로 나갔더니 만선이 되었다고 전한다. 이후에 남몰래 암 성황신을 위하는 목각남근을 바치고 늘 풍어가 되자 주민들이 동참하여 제사를 올린다고 한다. 문암 2리 제당은 군부대 초소입구 야산에 바다쪽을 보고 있는데 기와집으로 지었다. 내부에는 목판에 성황신위를 모시고 있으며 1970년 음력 4월 25일날 중건하였다.

?성황굿
3년에 한 번씩 큰굿을 한다. 배타는 사람은 정성으로 상을 하나씩 차려 놓는다. 무당들이 신이 올라서 신 굿을 하고, 어민들 풍어를 축원을 한다. 자금은 선주들하고 부락유지들이 갹출한다.

신격

당제명

신화

삼국시대 고구려가 침략하여 신라장군을 죽였는데, 죽은 곳에 돌로 된 미륵동이 생겨났다. 장군 부인이 그 곳에서 애절하게 울다가 죽어 뱀이 되어 미륵동을 지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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