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

상기내용을 모두 옳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교과서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우리역사를 찾아내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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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신안군 흑산도 진리 당제
    전남 신안군 흑산도 진리 당제   제명 : 당제, 용왕제, 갯제신격 : 상당(소저아기씨(당각시), 상궁부인, 제석님, 산중처사님, 도령(총각화상), 당할머니), 용신당(용왕)제당 : 상당, 용신당일시 : 음력 1월 1~3일당각시와 총각화장의 사랑이야기줄거리 : 처녀가 해초를 뜯으러 바다에 나갔다가 풍랑에 휩쓸러 죽게 된다. 처녀가 죽었던 자리에서 배사고가 자주 일어나고 고기도 잡히지 않게 된다. 사람들은 처녀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당집을 짓고 제를 지내주게 된다.섬 마을에 옹기배가 들어오는데 그 배에 잘 생긴 총각화장이 따라 온다. 총각화장은 풀피리를 잘 분다. 풀피리 소리는 태풍과 파도를 잠재우는 힘이 있다.당각시는 총각화장의 풀피리에 반해 옹기배가 떠날 때 총각화장을 가지 못하게 한다. 총각화장은 섬에 남아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날마다 당집 낭떠러지 소나무에 앉아 풀피리만 불다가 바다에 떨어지게 된다.총각화장이 사라지고 난 후 고기도 잡히지 않고 배사고도 잦아 사람들은 당각시당 옆에 총각화장의 당을 지어 준다. 사람들은 태풍이 불거나 파도가 심하게 칠 때 총각화장의 피리소리를 생각하게 되는데 그러 때마다 바다가 잠잠해지게 된다.내용 : 당각시와 화장총각의 이루지 못한 사랑이야기이다.이 동영상은 인터넷 익스플로러(IE)에서만 지원 가능 합니다.이 동영상은 인터넷 익스플로러(IE)에서만 지원 가능 합니다.전남 신안군 흑산면 진리당지역 : 전남 신안군 흑산면 진리제명 : 당제제당 : 진리당(상당)과 용신당이 있으며, 진리 당제는 예로부터 성대한 규모로 이름 높았으며, 당은 흑산의 본당이라고 전해질만큼 권위를 갖춘 것이었다.위치 : 진리 당산의 산정에 북방향을 향하여 당이 이루어져 있다.형태 : 100평 가량 되는 당성 내에 진리당은 두 겹의 돌담으로 둘러쳐져 있다. 안쪽 돌담은 신을 모신 당집과 제기와 취사도구들을 넣어 놓은 문간방들을 잇고 있다. 현 당집은 상당 기둥에 쓰여 있는 건조 연월일을 보아 1938년 7월 1일에 지어진 것이다. 그 전의 집을 헐고 지금의 기와집으로 새로 지었다.좌정된 신격 : 얼마 전까지는 ‘소저아가씨(당각시)’, ‘상궁부인’, ‘제석님’, ‘산중처사님’, ‘도령(총각화상)’의 종이 위패가 있었고, ‘상궁부인’과 ‘제석님’의 중간에는 위패는 없으나 ‘당할머니’가 좌정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또 위패의 중간에 ‘신베[당베]’가 걸려 있었고, 이 당의 또 다른 신체인 성주단지 및 쌀 뒤주, 들돌 등이 놓여져 있었다. 그러나 몇 해 전 화재 이후 이러한 유물들은 자취가 없어지고 다만 한지로 만든 ‘당베’만 걸려 있다. 상당의 오른쪽 돌담 밖에는 바다의 신인 용왕이 좌정한 용신당이 있으며, 당집 앞으로는 돌담 밖에 넓은 마당이 있고, 당집을 등지고 서서 마당 우측에 총각화상이 떨어져 죽었다는 노송과 그의 무덤이 있다.특징 : 진리당신화와 관련하여 당산할아버지 · 할머니신앙이 약화되면서 진리당의 당각시가 당할머니의 대체신격으로 등장하며 총각은 당할아버지의 대체신격으로 섬겨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는 곧 부부신의 성립을 보여 준다. 이것은 남녀신의 결합에 의한 풍요 희구 원리를 잘 드러내는 것이며 진리의 당제와 당신화에서 나타나는 남녀 결합양상은 육지부의 ‘용신 + 당할머니’ 또는 ‘당할아버지 + 당할머니’의 결합양상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또한 용신의 우위성과 항존성이 강조되고 있는데 이러한 양상은 ‘풍농기원에서 풍어기원으로’라는 당제문화의 변이단계를 보여 주는 것이라고 판단된다.제의 소멸과 변천 : 지금은 당제가 연행되고 있지 않으나 당 마당에서는 4월 초파일 경로잔치를 비롯한 각종 마을잔치와 집회가 열리기도 한다.제작의도 : 진리당과 용신당은 대체로 단순한 형태를 하고 있다. 그런데 진리당은 규모가 큰 편이라서 입구에서 당신을 모시는 곳까지의 거리감을 나타내고자 했고 용신당은 자연스러운 형태를 그대로 표현하고자 했다.개괄흑산도 진리 마을의 당제는 예로부터 성대한 규모로 이름높았으며, 당(堂)은 흑산의 본당(本堂)이라고 전해질만큼 권위를 갖춘 것이었다. 상당(上堂)과 용신당(龍神堂)이 있으며, 이 외에 갯가에서 갯제를 지낼 때 임시로 설치하는 제청이 있다. 본래 진리의 당제는 제의 기간이나 절차로 보아 상당히 성대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과거에 비해 약화되어 있다. 특히 제의 기간이 음력 정초부터 3일간이었던 것, 제관들이 들돌을 들어 보아 가벼우면 신들이 제물을 잘 흠양했다고 여겼던 의례, 그리고 갯제에서 무당을 불러 용왕굿을 성대하게 진행했던 내용 등은 현재의 당제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제의내용① 제당 구성 및 신격흑산도 진리 마을의 당제는 예로부터 성대한 규모로 이름높았으며, 당(堂)은 흑산의 본당(本堂)이라고 전해질만큼 권위를 갖춘 것이었다. 상당(上堂)과 용신당(龍神堂)이 있으며, 이 외에 갯가에서 갯제를 지낼 때 임시로 설치하는 제청이 있다.② 당제 준비당제를 지내기 2일 전에 마을 이장이 예리에 가서 쌀과 소지 종이 등의 물품을 구입해 온다. 제물 구입 경비는 마을공동기금에서 충당된다. 신격들이 육류와 어류의 냄새를 싫어하므로 준비되는 제물은 메와 술, 과일, 식물성 음식물이다. 음력 정월 초하룻날 새벽, 선정된 3명의 제관(1명은 제를 주관하고 2명은 보좌한다.)들이 몇 벌의 깨끗한 옷가지와 그 동안 먹을 식량, 제수용 물품 등을 챙겨서 당으로 간다. 우선 상당의 당집과 용신당, 당샘을 청소하고 문간방의 한쪽방에 보관해 놓은 시루, 절구, 그 밖의 제기들을 씻은 후, 제장 주위에 황토를 뿌리고 왼새끼로 꼰 금줄을 친다.진설할 제물의 준비를 위해 제관들은 쌀에서 겨, 반점이 있는 쌀알들을 하나하나 골라 낸다. 메를 정히 지으려는 의도이며, 제를 지낼 때까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다음 돌갓, 더덕, 고사리를 솥에 넣고 간을 맞추어 익힌다. 이 나물류는 반드시 주민들로부터 희사받는데, 이는 진리의 땅에서 사는 사람들이 마을의 산에서 손수 채취한 것을 제물로 써야 정성이 담긴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③ 당제 진행준비를 마친 제관들은 제물을 진설하고 자시(子時) 무렵 재배, 헌작, 구축, 소지 등의 절차에 맞춰 상당제를 거행한다. 구축의 내용은 당제의 일반적인 기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마을의 안녕, 무병, 탈없는 농사와 어업, 객지에 나간 이들의 안녕 등이다. 소지는 제관, 마을 전체, 각 가정을 대상으로 하여 진행된다.상당제를 마친 제관들은 용신당(龍神堂)으로 가서 용신에게 제를 지낸다. 용신에게 드리는 제물은 창호지에 진설되며, 제를 마친 후 제물들을 바로 아래에 있는 바다에 헌식하면서 뱃길의 무사와 풍어를 기원한다. 과거 큰 배들이 많았을 때에는 평상시에도 오랫동안 먼 바다에 나갔던 배들이 들어와 개안에 배를 대고서 절을 하고 구축을 하는 등의 간단한 의례적 행위를 했다고 한다.신격총각화장 (용왕신) : 구체적인 명칭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옹구배를 타고 온 총각화장이라고 한다. 소실된 위패에서 도령이란 명칭으로 되어 있었다. 총각화장은 용신당에 좌정되어 있다.당각시 : 상당의 주신이며 소저아기씨라고도 부른다. 당집에는 한지로 만든 ‘방베’가 걸려 있다.신화흑산도 진리 마을의 당제는 예로부터 성대한 규모로 이름이 높았으며, 당(堂)은 흑산의 본당(本堂)이라고 전해질만큼 권위를 갖춘 것이었다. 상당(上堂)과 용신당(龍神堂)이 있으며, 이 외에 갯가에서 갯제를 지낼 때 임시로 설치하는 제청이 있다.상당의 형성과 관련해서는 ‘당각시 설화’와 ‘총각화상 설화’ 두 편이 전한다. 이들 설화들은 당각시와 총각화상이 어떻게 해서 당신(堂神)으로 좌정하게 되었는가를 전하고 있다. 그 설화의 줄거리를 보면 다음과 같다.<당각시이야기>처녀, 총각이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다. 남편이 고기 잡으러 갔다가 죽었다. 각시가 목을 매어 죽었다. 주민들이 각시가 죽은 자리에 당을 지어 원혼을 모셨다. 그리고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했다.<총각화상이야기>진리에 총각화상이 옹기를 파는 배를 타고 왔다. 총각이 피리를 불면 바다가 잠잠하고 고기가 많이 잡혔다. 옹기 장수 일행이 출발하려고 하자 당각시가 풍랑을 일으켜 못 떠나도록 방해를 했다. 당각시를 달래기 위해 총각을 섬에 떼어놓고 옹기배가 출항했다. 총각화상이 혼자 남아 피리를 불다가 죽었다. 주민들이 총각을 당각시 옆에 모시고, 용신으로 믿고 기원한다.이러한 설화가 얽힌 상당은 두 겹의 돌담으로 둘러쳐져 있다. 안쪽 돌담은, 신을 모신 당집과 제기와 취사도구들을 넣어 놓은 문간방들을 잇고 있다. 현 당집은 상당 기둥에 쓰여 있는 건조 연월일로 보아 1938년 7월 1일에 지어진 것이다. 그 전의 집을 헐고 지금의 기와집으로 새로 지었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는 ‘소저아기씨(당각시)’, ‘상궁부인’, ‘제석님’, ‘산중처사님’, ‘도령(총각화상)’의 종이 위패가 있었고, ‘상궁부인’과 ‘제석님’의 중간에는 위패는 없으나 ‘당할머니’가 좌정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또 위패의 중간에 ‘신베[당베]’가 걸려 있었고, 이 당의 또 다른 신체인 성주단지 및 쌀뒤주, 들돌 등이 놓여 있었다. 그러나 몇 해 전 화재 이후 이러한 유물들은 자취가 없어지고 다만 한지로 만든 ‘당베’만 걸려 있다.* 참고문헌 : 『한국의 해양문화』 서남해역 440~443쪽…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1-27 조회 424
  • 전남 신안군 흑산면 영산도 당제
    전남 신안군 흑산면 영산도 당제제명 : 당제신격 : 상당(당할아버지-당할머니-별방도련님-소저아기씨님-산신님), 하당(김첨지 영감)제당 : 상당(기와집 형태), 하당(소형 콘크리트 집)일시 : 음력 1월 1일개괄영산 8경의 하나인 고송이 우거진 당산의 중턱에 단청을 한 아름다운 당이 있다. 상당에는 당할아버지-당할머니-별방도련님-소저아기씨님-산신님을 모시고 하당에는 김첨지 영감을 모시고 있다. 김첨지 영감은 배 어장 해초를 보호 관장하신 신으로 둑제의 주신이다. 김첨지 영감의 신체를 허수아비로 만들어 용왕 또는 어장신으로 모신다. 둑제는 마을의 부녀자들이 행제하는데 제상만을 가지고 나오며, 제물은 모두 생기가 좋은 깨끗한 제상 집에서 만든 것으로 차려 놓는다.제의내용① 제당 구성 및 신격고송이 우거진 당산 중턱의 동쪽에 가로 2.5m, 세로 1.8m, 높이 2m의 기와 당집에 단청을 한 상당이 있으며, 3m 아래 가로 2.5m, 세로 2.2m, 높이 1.9m의 단청된 중당인 제기실이 있다. 하당은 당산 아래 큰 길가에 있으며 신위를 모신 80cm의 정사각형의 콘크리트집이 있다. 상당은 초가로 된 당이었는데 동네회의를 거쳐 길일을 택해 1955년에 현 당을 준공한 것이다. 상당 안에는 제상과 촛대가 있으며 벽에는 창호지를 걸어 놓고 있다. 중당의 제기실에는 제기와 절구 취사용 땔나무 등이 있다.영산 8경의 하나인 고송이 우거진 당산의 중턱에 단청을 한 아름다운 당이 있다. 상당에는 당할아버지-당할머니-별방도련님-소저아기씨님-산신님을 모시고 하당에는 김첨지 영감을 모시고 있다. 김첨지 영감은 배 어장 해초를 보호 관장하신 신으로 둑제의 주신이다. 김첨지 영감의 신체를 허수아비로 만들어 용왕 또는 어장신으로 모신다. 둑제는 마을의 부녀자들이 행제하는데 제상만을 가지고 나오며, 제물은 모두 생기가 좋은 깨끗한 제상 집에서 만든 것으로 차려 놓는다.② 당제 준비와 진행보통 섣달 그믐날에 상당에 들어간다. 마을에 다소의 우환이 있더라도 생기복덕이 좋은 두 사람의 제관이 올라가 당제를 지낸다. 정월 초하루 자시에 제를 올리며 이튿날 아침에 하당에 제 지내고 바로 둑제를 지낸다.□ 참고문헌최덕원, <<다도해의 당제>>, 학문사, 1983.…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1-27 조회 460
  • 전남 여수시 화정면 개도리 화산마을 천제와 당제
    전남 여수시 화정면 개도리 화산마을 천제와 당제                     제명 : 천제, 당제신격 : 天龍主神제당 : 화개산 정상의 천제단, 아을 뒤 당숲의 당집일시 : 음력 3월 1~3일이 동영상은 인터넷 익스플로러(IE)에서만 지원 가능 합니다.전남 여수 화정면 개도리 당제제명 : 천제, 당제, 헌석제내용 : 개도리 화산마을의 마을 공동제의는 3가지 형태로 존재해 있는데 3일 동안 지내게 된다. 천제와 당제, 그리고 헌석제이다.특징 : 천제는 음력 3월 1일 날 밤 12시 이전에 지내고, 당제는 음력 3월 2일 오후 해질 무렵에, 헌석제는 음력 3월 3일 오전 8시경에 지내게 된다. 따라서 각각의 제의는 모두 당제라는 이름으로 연결되어 있으면서, 개별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제작의도 : 본 영상은 개도리 당제의 개별 제의들을 연관선상에서 볼 수 있도록 시간순서대로 제작하였다.개괄개도리 화산마을의 마을 공동제의는 3가지 형태로 존재해 있는데 3일 동안 지내게 된다. 천제와 당제, 그리고 헌석제이다. 천제는 음력 3월 1일 날 밤 12시 이전에 지내고, 당제는 음력 3월 2일 오후 해질 무렵에, 헌석제는 음력 3월 3일 오전 8시경에 지내게 된다. 따라서 각각의 제의는 모두 당제라는 이름으로 연결되어 있으면서, 개별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제의내용화산마을의 공동제의는 크게 당제라는 이름으로 통합되지만, 세부적으로는 천제, 당제, 헌석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제당과 신격 역시 3곳으로 제를 지내는 형식 또한 다 다르다.음력 3월 1일에 지내는 천제는 천제단에서 지내는데, 상당이라도 한다. 천제단은 개도리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마을 뒤에 있는 화개산이다. 화개산은 두 개의 높은 봉우리가 나란히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봉화대가 있는 봉화봉이고, 다른 하나는 천제단이 있는 천제봉이다. 두 개의 봉우리가 나란히 서 있는데, 원래 높이는 봉화봉이 조금 높았다고 한다. 그러나 천제를 지내는 봉우리가 봉화봉보다 낮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높이를 맞추기 위해 돌로 단을 쌓아다는 유래가 있다. 실제 천제봉 정상은 3m 정도 돌로 쌓아져 있고 제일 윗 부분은 직경 3m 정도의 원형으로 이루어진 제단이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천제단 밑에는 불을 땔 수 있는 아궁이가 설치되어 있다. 천제봉에서 지내는 신격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당주와 부당주에 의하면 개도 6개 마을과, 백두산부터 남해바다 일대까지를 편안하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한다. 제를 지낼 때 메를 다섯 방향에 진설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이다.음력 3월 2일에 지내는 당제는 마을 뒤에 있는 당숲(서나무숲) 앞 당집에서 지내는데, 하당이라고도 한다. 현재의 당집은 97년에 중건한 것으로 정면 2칸, 측면 1칸이고, 철근 콘크리트에 기와를 얹은 형태이다. 당집 입구 위쪽에 가로로 천제당(天祭堂)이라는 현판이 달려있다. 당집 둘레에는 1m 20cm 정도의 높이로 담이 둘러져 있고, 당집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문이 하나 있다. 기존에 있던 당집도 기와로 된 건물이었는데, 낡아서 중축한 것이다. 당집 입구 쪽에는 당산나무 1그루와, 입석 1기가 서 있다. 당집 내부는 두 칸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왼쪽 방에 ‘天龍主神之位’라고 쓰여져 있는 위패가 모셔져 있다. 80년대 중반까지는 당집 안에 철로 된 마상 2기가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그 후로는 ‘天龍主神之位’라는 위패를 놓고 당제를 지낸다. 화산마을을 포함한 개도리 전체의 당집은 당숲 안에 당집이 있는데, 그 중 화산마을의 당숲은 멀리서도 확연히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우거져 있다.헌석제는 당집 앞에 있는 당산나무로 지정되어 있는 서나무에서 제를 지내고, 바닷가 방파제에서 오장치를 던지는 것으로 진행된다. 그래서 신격이 당산나무와 용왕신 둘로 나눠진다. 당산나무에 바짝 붙어서 입석이 1기 있고, 그 입석에는 오장치를 걸어둔다. 그 앞에 상석이 1m 넓이로 만들어져 있어서 음식을 진설한다. 그리고 집집마다 차려오는 개인집의 상은 조금 떨어진 곳에 일렬로 차려놓는다. 오장치는 주로 애기가 없는 유부남이 애기를 낳기 위해 매고,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방파제까지 매구를 치고 가서 바다에 던진다. 굿을 하러 온 법사의 해석에 의하면 당집은 당산나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헌석제 때 당산나무에 제를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마을사람들은 당집과 당산나무에 대해 특별한 구분을 하지 않고, 당에서 굿을 하는 것는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는 것이고, 바다에서 헌석을 하는 것은 용왕신에게 풍어를 기원하는 것이라고 한다.신화유래에 대한 제보자들의 설명에서는 천제나 당제 혹은 헌식 중 어떤 것의 유래를 따로 떼서 말한 것은 없었다. 유래는 모두 말(馬)과 관계된 것이거나 옛날 당집에 모셨다는 철마상(鐵馬像)을 설명하는 것을 보면옛날에 말을 많이 키웠는데, 말이 병이 들어 죽으면 말임자들이 육지에서 들어와 마을 사람들을 구타하고 하니까 말이 안 죽게 하기 위해 산에다 제사를 지냈던 것이다.정부에서 발령받아온 마관들이 말이 죽곤하여 자신들이 혼나니까 마을 사람들을 시켜 제사를 모시도록 지시한 것이다. 마관들이 왜 말을 죽게 했느냐고 마을 사람들을 책임 추궁하고 구타하니까 말들이 안 죽고 잘 자라라고 제사를 지낸 것이다.당에다가 말을 동을 만들어 놓고 제사를 모셨다. 중간에 어쨌는가 없어져 버렸다. … 지금 월항리 근처에 말을 키우는 성이 있었다. 성을 쌓아 놓고 말을 키우면서 말을 잘 키워주라고 제를 모신 것이다.…그래서 말놔두고 산제를 모시게 된 것이다.위의 유래담에서 보면, 당시 마을 사람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제사가 강요되어 모셔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의 실제 생활은 농업이거나 어업인데, 말이 잘 크고 잘 번식하게 해달라는 제사를 마을 공동으로 지냈다는 것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원래는 풍농과 풍어를 비는 보편적인 당이었는데 마관들에 의해 당제의 성격이 변질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위의 유래담은 보편적인 당제가 특수화 되어가는 상황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이런 점에서 본다면 철마상이 도난당한 뒤 용왕신의 위패로 대체된 것은 원래 모습으로의 복귀일지도 모르겠다. 실제 목장이 있었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목장이 없어지고 최근 우연히 철마상이 없어지고 난 후, 원래 당신(堂神)의 하나였을 용왕신이 모셔지게 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와 관련하여 앞에서 본 정월 보름날 당제가 삼짇날 당제와 병행했다는 제보도 화산리 당제의 변화과정을 말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1-27 조회 958
  • 전남 장흥군 관산읍 방촌 별신제
    전남 장흥군 관산읍 방촌 별신제제명 : 별신제신격 : 토지신제당 : 마을회관 앞에 위치한 임시제단일시 : 음력 1월 15일이 동영상은 인터넷 익스플로러(IE)에서만 지원 가능 합니다.장흥 관산읍 방촌 별신제와허수아비 버리기제명 : 별신제일시 : 매년 정월 대보름위치 : 제장은 마을회관 앞의 논으로 평지 제단내용 : 방촌리는 매년 정월 대보름 토지신에게 마을의 질병방지와 농사풍년을 기원하는 별신제를 거행하고 있다.특징 : 제를 지낸 후 허수아비를 허세비골에 버린다.제작의도 : 본 영상은 신격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재액의 운반자이기도 한 허수아비에 주목하여 제작하였다.개괄방촌리는 매년 정월 대보름 토지신에게 마을의 질병방지와 농사풍년을 기원하는 별신제를 거행하고 있다. 제가 거행되는 제장은 마을회관 앞의 논으로 평지제단이며 신체는 허수아비이다. 제를 지낸 후 허수아비를 허세비골에 버린다.제의내용제를 주관하는 제관은 집례, 음식을 장만하는 화주 2명, 축관, 삼헌관 등 모두 7명이다. 이들은 정월 초사흗날 마을 어른들에 의해 선정된다. 선정 조건은 생기복덕을 보아 부정이 없고 깨끗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사항 등이다. 제관이 되면 제일 일주일 전부터 목욕재계하고 정성을 들여야 한다.제관은 제 3일전에 화주의 집으로 옮겨 제에 대한 준비를 시작한다. 그리고 제 하루전에 제장 주변을 깨끗이 청소하고 제장과 화주집에 황토을 깔고 금줄을 쳐 부정한 잡인의 출입을 금한다.제는 보름날 오후 6시 경에 진행된다. 아침 일찍 벅수에서부터 시작하여 집집마다 돌던 매구패가 제장으로 돌아온다. 이어 제관들은 모두 흰 한복으로 갈아입고 별신제를 시작한다. 제는 진설, 분향, 재배, 강신, 재배, 헌작, 재배, 독축, 합동재배, 아헌, 종헌, 헌작, 분축, 소지의 순으로 진행된다.제가 끝나면 제물을 조금씩 떼어서 허수아비 속에 넣어 ‘허세비골’에 버린 후 음복을 한다. 제관이 먼저 음복하고 부정한 사람을 제외한 모든 마을 주민들이 나누어 먹는다.…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1-27 조회 448
  • 전남 해남군 송지면 금강리(월강마을) 도제
    전남 해남군 송지면 금강리(월강마을) 도제  제명 : 도제신격 : 당할머니제당 : 마을 뒷산 제각일시 : 음력 1월 15일 이 음원은 인터넷 익스플로러(IE)에서만 지원 가능 합니다.월강마을에서는 해마다 도제를 지내고나서 허새비굿을 한다. 허새비를 놀리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다가 결국에는 허새비를 길바닥에 버린다.개괄금강리의 도제는 「당할머니」에게 드리는 제사로 마을의 무고와 풍년, 어른들 무고, 객지로 나간 사람들 무고를 위해서 지낸다. 제를 주관하는 사람은 5일 전에 그 햇머리(사주)를 봐서 그해 맞는 나이를 선택하여 생기복덕에 맞는 사람으로 뽑는다. 이들을 제관이라하며 집사1명, 화주1명으로 구성된다. 화주와 집사댁에는 금줄을 치고 제 지낸 사람은 1년동안 추한 곳을 다니지도 않고 개고기도 먹지 않는다.제의내용제는 정월 열나흗날 저녁 12시경에 지낸다. 진설된 祭物로는 고사리, 콩나물, 녹두, 듬북이, 밤, 대추, 시금치, 무우나물, 떡, 사과, 배, 곶감, 오징어, 산자, 숭어, 조기, 동태, 준어 등이며 제사 3일 전에 구입한다. 구입시 물건값은 깎지 않는다고 한다. 祭物구입에 필요한 돈은 호당 1되씩의 쌀을 거출하여 쓴다. 올해(1986)는 약 13만원 가량 소요됐다 한다.모든 제사 준비가 끝나면 제관들은 목욕재계를 한 후 한복으로 갈아입고 제각으로 올라가 제를 마치고 내려온다.祭儀節次를 보면 먼저 마을뒷산 제각에서 진설한 다음->전 개올리고->절을 한다. 다음으로 마을입구 솟대에 祭를 올리며 절차는 진설->배->소지(마을대표 제주2명의 소지)順이다. 마지막으로 마을회관 앞 삼거리에서 제를 올린다. 순서는 同一하나 소지 올릴 때 家家戶戶를 올려주는 것이 다르다. 회관 앞에서의 제사를 끝으로 마을민들은 농악을 치면서 진설했던 음식을 허수아비에 넣어 버리는데 이를 神이 잘 잡숫고 가라는 의미라고 한다.마을 祭祀를 모두 마친 마을민들은 영대(令旗를 매단 長竿)를 앞세우고 인근 마을을 방문하기도 하는데 이때 그 마을에서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令旗로 땅을 긋고 나온다. 그러면 그 마을은 한해동안 운이 좋지 못하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1-27 조회 457
  • 전북 부안군 위도 대리 원당제와 띠뱃놀이
    전북 부안군 위도 대리 원당제와 띠뱃놀이                   제명 : 원당제신격 : 애기씨, 옥지부인, 본당마누라, 원당마누라, 장군, 물애기씨, 신령, 산신, 문수영대신)제당 : 마을 산 정상의 맛배지붕 2칸 기와집일시 : 음력 1월 3일개괄위도 대리의 원당제는 <위도 띠뱃놀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그 원 명칭은 원당제이고 띠뱃놀이는 마지막 절차인 용왕굿의 띠배 보내기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당제는 원당굿과 용왕밥주기, 주산돌기, 용왕굿과 띠배보내기로 구성되어 있다.제의내용대리의 원당제는 음력 정월 초사흗날 이른 아침부터 시작하여 저녁 어둑해질 무렵에 끝이 난다. 제의 준비는 이미 섣달 10일 경 마을 지도급 인사들의 총회에서 제의 규모와 제관 선정에서부터 시작된다.제관으로는 제만(화주에 해당) 1명, 원화장 1명, 부화장 2명을 선정하는데 제관 선정이 끝나면 독축관도 정한다.제비는 마을 추렴으로 공동 부담하며 차등을 두어 거출한다.제물은 제만의 주관 아래 초이튿날 밤까지 준비해놓고, 초사흗날 아침 제만 집 앞에 농악대와 뱃기를 든 선주들이 함께 모여 당산으로 올라간다.이 원당제 때에는 돼지 한 마리를 반드시 제숙용으로 잡는다. 당에서는 먼저 축문을 읽고 무당에 의해 당굿에 들어 간다. 연행공간이 산과 마을 안, 그리고 바닷가로 이어지면서, 산의 <당굿>, 마을 안 <주산돌기>, 바닷가의 <용왕굿> 등으로 연행장소에 맞게 각기 독립적 성격을 지니고 이루어진다. 전체 연행 내용은 다음과 같다.- 원당굿(산제당)성주굿, 산신굿, 손님굿, 지신굿, 서낭굿1(원당, 본당서낭), 서낭굿2(애기씨서낭), 서낭굿3(장군서낭), 갓굿, 문지기굿- 용왕밥주기와 주산돌기- 용왕굿과 띠배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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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 부안군 위도 벌금 당제
    전북 부안군 위도 벌금 당제  제명 : 산제, 원당제, 도청굿, 용왕굿신격 : 용왕, 칠성, 산신, 오방신장, 대신할머니, 장군제당 : 산제(산제터), 원당제(마을 뒤 야산 정상의 당집)일시 : 음력 1월 2~3일개괄벌금에서는 음력 정초에 마을 제사를 모시는데, 여러 군데에서 여러 가지 내용으로 지낸다. 초이튿날 저녁에는 산지터에서 ‘산지’[산제]를 모시며, 초3일 오전에는 마을 뒤쪽 야산 정상 부근에 있는 당집으로 올라가 원당제를 모신다. 그리고 오후에 마을로 내려와 샘굿과 당산굿을 치고 회관 앞 마당에서 도청굿이라고 하는 무당을 했다. 저녁 무렵에는 선창에서 용왕제를 모시고 띠배를 만들어 띄워 보낸다.제의내용벌금은 위도 면소지인 진리에서 동쪽으로 1㎞ 지점에 위치한 마을이다. 조선조 말엽 창녕조씨와 평산신씨가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었다고 하며 지금은 73세대 20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이 마을은 지대가 낮아 소금을 생산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어 예부터 소금을 생산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전하며, 여기서 유래하여 소금벌, 벌금이라고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벌금에서는 음력 정초에 마을 제사를 모시는데, 여러 군데에서 여러 가지 내용으로 지낸다. 초이튿날 저녁에는 산지터에서 ‘산지’[산제]를 모시며, 초3일 오전에는 마을 뒤쪽 야산 정상 부근에 있는 당집으로 올라가 원당제를 모신다. 그리고 오후에 마을로 내려와 샘굿과 당산굿을 치고 회관 앞 마당에서 도청굿이라고 하는 무당을 했다. 저녁 무렵에는 선창에서 용왕제를 모시고 띠배를 만들어 띄워 보낸다.여러 제의 중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원당제라고 할 수 있는데, 원당제가 모셔지는 당집은 마을 뒤쪽 야산 정상 부근에 있는 후박나무 숲 속에 있다. 당집 주위에는 돌담이 있고 당집 앞과 옆으로는 50여 평 이상의 마당이 있다. 당집은 한 칸짜리 기와지붕이다. 당집 안의 상량문 昭和 十六年 辛巳 九월 二十九日入住 同日申時上樑 子坐午向 日日降福 / 年年登豊, 靈神所顯 / 萬民咸寧, 福錄日來 / 邪矢時却, 應天上之三光 / 備人間之上福을 확인한 결과 1941년(소화 16년)에 지어진 건물임을 알 수 있다. 자좌오향(子坐午向) 이후의 문구는 당제를 통해 축원하는 내용을 적어 놓은 것인데 두 줄 씩 적혀 있다. 또한 당집 안에는 정면 벽과 양 측면에 당신도가 6점 걸려 있다.신화벌금에서는 음력 정초에 마을 제사를 모시는데, 초이튿날 저녁에는 산지터에서 ‘산지’[산제]를 모시며, 초3일 오전에는 마을 뒤쪽 야산 정상 부근에 있는 당집으로 올라가 원당제를 모신다. 그리고 오후에 마을로 내려와 샘굿과 당산굿을 치고 회관 앞마당에서 도청굿했는데 무당이 했다. 저녁 무렵에는 선창에서 용왕제를 모시고 띠배를 만들어 띄워 보낸다.여러 제의 중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원당제라고 할 수 있는데, 원당제가 모셔지는 당집은 마을 뒤쪽 야산 정상 부근에 있는 후박나무 숲 속에 있다. 당집 주위에는 돌담이 있고 당집 앞과 옆으로는 50여 평 이상의 마당이 있다. 당집은 한 칸짜리 기와지붕이다. 당집 안의 상량문 昭和 十六年 辛巳 九월 二十九日入住 同日申時上樑 子坐午向 日日降福 / 年年登豊, 靈神所顯 / 萬民咸寧, 福錄日來 / 邪矢時却, 應天上之三光 / 備人間之上福을 확인한 결과 1941년(소화 16년)에 지어진 건물임을 알 수 있다. 자좌오향(子坐午向) 이후의 문구는 당제를 통해 축원하는 내용을 적어 놓은 것인데 두 줄 씩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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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남 보령군 오천면 외연도 당제
    충남 보령군 오천면 외연도 당제  제명 : 당제신격 : 전횡장군제당 : 전횡장군 사당일시 : 舊(음력 4월, 8월, 11월), 現(음력 1월 14일)개괄외연도는 1960년대 말까지 일년에 세 차례씩 당제를 모셨다. 어장이 열리는 음력 4월과 폐쇄되는 11월에 각각 당제를 모셨고, 8월에 햇곡식이 나면 노구제를 지냈다. 당제는 지태(소를 높여서 부르는 말)를 잡는 등 큰 규모로 치렀고, 노구제는 햇곡식으로 노구메를 지어 치르는 비교적 소규모의 제의였다. 어장의 개시와 폐쇄기에 설정된 4월 당제와 11월 당제는 풍어제의 성격이 짙은 대규모 행사였고, 8월 노구제는 추수감사의 뜻을 지닌 소규모 제사였다. 특히 4월 당제는 한해 어로(漁撈)의 성공을 비는 뜻으로 지냈고, 11월 당제는 무사히 마친 어로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으로 모셨다. 이는 반농반어(半農半漁)의 경제 배경을 잘 드러내주는 제의 구성이라 하겠다.제의내용음력 섣달 그믐에 열리는 마을회의에서 당주 1명과 화장(火匠) 6명을 뽑는다. 이들은 여러 면에서 부정하지 않고 신망이 두터운 사람으로 정한다. 당주가 나면 당주집 대문 옆에 당기를 세우고, 대문 양쪽으로 붉은 황토도 뿌려서 일체의 부정을 가린다. 화장(火匠)은 메나 떡을 준비하는 ‘안화장’과 지태(황소)를 다루는 ‘바깥 화장’으로 각각 세 명씩 뽑는다. 이외에도 땔감과 물 등을 나르고, 소 잡는 일 등을 보조하는 잡부(雜夫)도 몇 명 추가된다.당주와 화장이 결정되면 대천장으로 제수(祭需) 준비를 하러 나갈 ‘장배’를 고른다. 장배 역시 깨끗한 배이어야 한다. 장배는 시신(屍身)을 실은 적이 없고, 파선(破船)한 적도 없으며, 기타 특별히 흉한 일을 겪지 않은 배로, 선주(船主)와 그 식구들도 부정하지 않아야 한다.본래 제비는 4월제인 경우 돌김의 채취양으로, 8월제인 경우 걸립을 통해 마련하였지만, 1987년에 부활된 당제부터는 마을공동기금과 충남 보령시의 지원금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여기에 외연도 출향인사의 성금과 각 호에서 추렴한 비용이 추가된다.음력 정월 열이튿날 아침이 되면, 화장들이 공동우물을 청소하고, 아무도 사용하지 못하도록 뚜껑을 덮어놓는다. 우물을 청소하고 나서 곧바로 여장(旅裝)을 차려서 장배에 오른다. 당주와 화장들이 장배를 타러 대문 밖을 나서기 전에 화장 한 사람이 골목길마다 다니며 “장배 뜬다! 장배뜬다!”고 외치면, 마을에는 부녀자들의 통행이 금지된다. 또한 아직 피신하지 못한 임신부들은 이때에 해막으로 서둘러 간다.당기(堂旗)를 꽂은 장배는 갑판 위에서 당산을 향해 간단히 고사를 지낸 후 출발한다. 마침내 대천에 도착한 당주와 화장은 여관에 짐을 풀고, 시장을 보기 전에 목욕재계를 한다. 제물은 기미?시루떡?고두메?노구메 올릴 제수(祭需)로 백미?찹쌀?통팥?삼색실과?양초?향?약주?참기름?사고지 등을 구입하며, 그릇 파는 집에 들려 산제를 모실 사용할 새 그릇 한 죽을 산다. 마지막으로 포목상에서 당기를 맞추고, 전횡장군 부인과 두 딸에게 각각 바칠 백색 치마 저고리 한 벌과 청?홍치마 저고리 두 벌을 산다. 한편 양조장에 막걸리를 맞추고, 소를 파는 사람에게도 다시 확인 전화를 해 놓는다. 쌀은 방앗간에 맡겨 빻게 한다. 이외에도 소요되는 세세한 물품을 빠짐없이 챙긴다.이렇게 첫날 제물을 구입하고, 이튿날 지태까지 마련하면 당주 일행은 섬으로 되돌아온다. 섬에 다다르면 출발할 때와 마찬가지로 갑판 위에서 간단히 당산을 향하여 정성을 드린다. 배가 닿으면 장배에 꽂았던 당기를 선봉으로 화장이 제물을 지고 당주집으로 향한다. 지태도 당산 아래 ‘안땅 고사’ 지낼 곳으로 정중히 모셔가서, 그 부근의 팽나무에 묶어 둔다.음력 정월 열나흗날 점심 때 쯤 화장들은 당주집에 모여 신발?양말?수건?마스크?칫솔 등의 개인 용품을 지급받는다. 당주집에서 함께 점심식사를 마친 화장들은 지게에 제물을 싣고 두개의 당기를 필두로 하여 당샘인 공동 우물로 행진해 나아간다. 우물에 도착하면 당기를 우뚝 세우고, 화장들 모두 세수를 한다. 그리고 나서 다시 당기를 앞세우고 행렬지어 당산에 오른다. 당산의 동편 입구에 이르러 당기 하나를 세워 놓고, 다른 하나는 전횡장군 사당 옆에 세운다.화장들은 지게에서 제물을 조심스럽게 내려서 부엌 등에 정리해 놓고, 작년 당제 때 사용했던 여러 제기 및 용품들을 물로 깨끗이 닦는다. 또한 산제당과 ‘쇠뼈를 묻는 바위’, ‘김서방 바위’도 물을 약간 뿌려 씻어낸다.여러 제당에 대한 청소가 끝나면, 갈당의 산제당(세 곳)과 전횡장군 신위(다섯 곳) 위에 길지(느림)를 드리운다. 또한 백지를 갈당에 있는 산신당과 전횡장군 사당의 선반 등에 곱게 깔아 놓는다. 마지막으로 세 개의 산제당에 각각 불밝이쌀을 주발에 담아 그 위에 촛불을 밝혀 놓는다.이어 화장들이 수시로 목욕재계를 하면서 매우 정갈하게 제물을 장만한다. 우선 잡티를 골라낸 노구쌀을 깨끗한 물로 씻어 노구메를 짓고, 쌀가루를 반죽해 기미를 만든다. 이 외에도 흰떡?시루떡 등 여러 제물을 준비한다.노구메가 지어지면 당주와 화장은 세 개의 산제당에 각각 노구메?더덕산적?김을 진설한 후 노구제를 지낸다. 노구제를 마친 후에는 메를 거두고, 고두메?흰떡(절편)?시루떡(찰떡)?삼색실과를 진설하고 기미제를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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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원 강릉시 주문진읍 주문1리 성황제와 별신굿
    강원 강릉시 주문진읍 주문1리 성황제와 별신굿                        제명 : 성황제와 별신굿신격 : 정경세, 용왕신, 진이서낭제당 : 남성황당, 여성황당일시 : 매해 음력 3월 10일, 9월 9일이 동영상은 인터넷 익스플로러(IE)에서만 지원 가능 합니다.강릉 주문진 성황제 및 별신굿제명 : 성황제 및 별신굿일시 : 매해 음력 3월 10일과 9월 9일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되고, 3년에 한 번씩 별신굿이 진행된다.내용 : 주문진 성황제는 진이서낭 설화로 유명한 곳이다. 현감의 숙청을 거부하고, 원한맺인 죽음에 이른 진이라는 처녀를 여성황으로 모시고 있다. 성황제는 어촌계에 의해 진행되고, 제관은 수협장, 어촌계장, 어촌계 간부로 이루어진다. 제일에 맞춰 성황제를 지내고 다음날부터 사흘에 걸쳐 별신굿이 진행된다.제작의도 : 본 영상은 유교적 제의와 무속적 굿놀이가 병행되는 의례적 특징에 주목하여 제작하였다.강릉 주문진 진이서낭지역 : 강원도 강릉 주문진읍명칭 : 진이서낭제명 : 성황제관련 설화 : 고려 때 정우복 선생이 영동지역에 와서 개척을 많이 하였다. 진이는 여성황으로 본래 이뻐서 연곡현감이 불렀는데 나가지 않아 뒷방에 가뒀는데 어린애를 하나 낳고 자살하였다. 이후 풍파에 피해를 입는 사람이 생기자 진이의 원혼을 달래주려고 축제를 하였다. 이를 본 다음 원님이 상부에 보고하여 동답을 얻게 되었다. 그래 제사를 지내니 액운도 없어지고 재수도 있어졌다. 아들없는 사람이 3년만 헌관하면 아들을 낳는다고 한다.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주문1리 성황당 내 문양지역 :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제명 : 성황제와 별신굿제당 : 주문진 城隍堂은 남성황당과 여성황당으로 이루어져 있다.위치 : 남성황당은 바닷가를 향해있는 언덕에 위치하며 여성황은 남성황당 앞 40m지점에 城隍之神位라고 쓴 석비가 여성황당이다.형태 : 남성황당은 祠堂형태로 1910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으며, 1954년 개축하면서 앞쪽의 기둥을 4개 더 세웠다. 기와로 되어있고, 내부에는 세 칸의 방이 있다. 바라보는 방향을 중심으로 중앙에는 제단과 당신도가 그려져 있고, 왼편에는 쌀독과 음식장만에 필요한 기구들이 들어있다. 오른편에는 책상과 홀기 등이 들어있고, 잠잘 수 있는 이불이 들어있다. 보통 별신굿을 하게 되면 책임자들이 이 오른편 방에서 기거한다.좌정된 신격 : 정경세, 용왕신, 진이서낭 - 신격은 크게 세 명이다. 성황당 가운데 방문을 열면 물고기, 문어, 성게와 해초가 그려진 벽화가 있으며 제단 안쪽 중앙에 성황신, 토지신, 어역신과 그 옆 왼쪽 벽에는 장군상이 마루 오른편 벽에는 선녀상이 있고, 성황당의 3위신은 왼쪽 (바다쪽) 이 용왕신, 가운데가 愚伏 정경세, 오른쪽이 眞伊 여신이며, 어린아이는 유복자의 화상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세 신격에 대해 마을 사람들은 골맥이성황님의 큰부인과 작은부인으로 말하고 있다. 이 외에도 왼편 벽에 장군과 병졸들 그림이 있고, 오른편 벽면에 말과 함께 있는 장군이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들을 신격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냥 그림으로 그려놓은 것이라고 한다.제의 소멸과 변천 : 주문진 주문1리의 성황제는 매해 음력 3월 10일과 9월 9일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되고, 3년에 한 번씩 별신굿이 진행된다. 주문진 성황제는 진이서낭 설화로 유명한 곳이다. 현감의 숙청을 거부하고, 원한맺인 죽음에 이른 진이라는 처녀를 여성황으로 모시고 있다. 이 음원은 인터넷 익스플로러(IE)에서만 지원 가능 합니다. 이 음원은 인터넷 익스플로러(IE)에서만 지원 가능 합니다. 이 음원은 인터넷 익스플로러(IE)에서만 지원 가능 합니다. 이 음원은 인터넷 익스플로러(IE)에서만 지원 가능 합니다.2005년 10월 강릉 주문진에서 별신굿이 거행되었다. 별신굿에는 여러 굿거리가 연행되는데, 그 중 처음에 해당하는 당맞이굿에서 무녀가 축원을 하는 대목이다.개괄주문진 주문1리의 성황제는 매해 음력 3월 10일과 9월 9일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되고, 3년에 한 번씩 별신굿이 진행된다. 주문진 성황제는 진이서낭 설화로 유명한 곳이다. 현감의 숙청을 거부하고, 원한맺인 죽음에 이른 진이라는 처녀를 여성황으로 모시고 있다. 성황제는 어촌계에 의해 진행되고, 제관은 수협장, 어촌계장, 어촌계 간부로 이루어진다. 제일에 맞춰 성황제를 지내고 다음날부터 사흘에 걸쳐 별신굿이 진행된다.제의내용제관은 어촌계에 관련된 사람들이 일임하고 있다. 마을의 제사와 굿이지만, 대부분 어촌계에서 담당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성황제와 별신굿을 행하는 동안 남자들은 대부분 어촌계 집행부들만 참여하고 있다.신격은 크게 세 명이다. 조사자가 바라보는 방향에서 왼편에는 진이와 그의 유복자가 있고, 중앙에는 정경세(진이를 위로하기 위해 서낭당을 세워준 원님), 오른편에는 용신(해수신)이 좌정해 있다. 세 신격에 대해 마을 사람들은 골맥이성황님의 큰부인과 작은부인으로 말하고 있다. 이 외에도 왼편 벽에 장군과 병졸들 그림이 있고, 오른편 벽면에 말과 함께 있는 장군이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들을 신격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냥 그림으로 그려놓은 것이라고 한다.성황당은 기와로 되어있고, 내부에는 세 칸의 방이 있다. 바라보는 방향을 중심으로 중앙에는 제단과 당신도가 그려져있고, 왼편에는 쌀독과 음식장만에 필요한 기구들이 들어있다. 오른편에는 책상과 홀기 등이 들어있고, 잠잘 수 있는 이불이 들어있다. 보통 별신굿을 하게되면 책임자들이 이 오른편 방에서 기거한다.제의 진행는 밤 11시 40분 경에 시작된다. 성황당 앞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남자 세 명이 화로에 냄비를 올려놓고, 입에는 종이를 물고 있다가 제를 시작할 시간이 되면 철수한다. 입에 종이를 물고 있는 것은 음식에 침이 튀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제관들이 젯상 앞에 서면 집사는 홀기를 들고 제의 진행을 지시한다. 집사는 왼편에 서있고, 제를 도와줄 사람들은 제단까지 일렬로 서서 제사 진행을 돕는다. 제 진행은 홀기에 의해 순서대로 진행된다. 대략 초헌과 아헌과 종헌관의 헌작과 재배, 전체 참가자의 재배, 고축, 소지의 순으로 진행된다. 남성황당에서 제를 지낸 후 진이서낭의 묘비가 있는 여성황당으로 이동해 간단히 제를 지낸다.성황제를 지낸 후 다음날부터 별신굿을 진행한다. 2005년 10월 12일~14일까지 진행된 별신굿의 경우 강릉 단오제 문화재와 이수자들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이때 진행된 별신굿 굿거리는 다음과 같다.부정굿, 청좌굿, 당맞이굿, 하회굿, 조상굿, 세존굿, 지신굿, 성주굿, 산신굿, 심청굿, 놋동이굿, 손님굿, 제면굿, 용왕굿, 대거리의 순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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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원 고성군 죽왕면 문암리 백도마을 성황제
    강원 고성군 죽왕면 문암리 백도마을 성황제제명 : 성황제와 별신굿신격 : 숫성황신, 암성황신제당 : 마을뒷산 숫성황당, 바닷가 암성황당(자연석)일시 : 음력 1월 3일, 3년에 1회 별신굿개괄문암1리 백도는 ‘망개’라 불리는데 예전에 일 만 호가 살아서 ‘만포만개리’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초3일날 마을 앞산에 있는 숫성황신과 바닷가 암성황신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특별히 목조남근을 암성황신에게 제물로 바친다.제의내용문암1리 백도는 ‘망개’라 불리는데 예전에 일 만 호가 살아서 ‘만포만개리’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초3일날 마을 앞산에 있는 숫성황신과 바닷가 암성황신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특별히 목조남근을 암성황신에게 제물로 바친다. 목조 남근은 제관 가운데 한 사람이 깎는데 자신이 남근을 깎는다고 말해서는 안되고 남근을 타인에게 보여주지도 않는다. 남근은 길이 한 자, 지름 5㎝정도의 크기인데 반드시 오리나무로 3개를 깎는다. 남근을 암성황신이 있는 바위구멍에 꽂는데, 구멍이 한 번에 맞으면 풍어가 된다고 믿는다. 망개마을의 남근신앙과 인근에 있는 미륵석상은 민속적 이미지에 맞는 관광상품이 될 수 있다.문암1리와 문암2리로 구성되어 있다. 문암1리는 백도마을로 불리는데 157가구이고 이중 김씨가 50여 가구다. 논과 밭도 있고 가축도 사육하고 있어 바닷가에 접해 있지만 반농반어라 할 수 있다. 그 외 민박도 주요한 수입원이다. 백도마을이라 이름한 것은 일명 흰섬이라 불리는 백도가 해안에서 약 500m 떨어져 있는데 갈매기 배설물로 섬 전체가 덮혀 백색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일출과 일몰 때 섬의 장관은 옛날 임금님이 살던 커다란 성처럼 우람하게 보인다고 한다. 마을 산밑 지표에는 융기문, 손톱무늬 회갈색 토기편이 다량 수집되어 1997년 국립문화재연구소 검사 결과 이것이 신석기 시대와 철기 시대유물로 추정되고 있어 남한의 신석기 문화의 이동경로를 밝혀주는 귀중한 자료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만호리, 괘진리, 망포리, 망개리 등으로도 불린다. 삼국시대 고구려가 이 곳에 침략하여 신라장군을 죽였다. 신라장군이 죽은 곳에 난데없이 돌로 된 미륵동이 생겨났다. 장군의 부인이 이곳에서 애절히 울다가 부인이 죽어 뱀이 되어 미륵동을 지켰다. 부인이 죽으며 내가 뱀이 되어 미륵동을 지킬 터이니 나를 잘 보살피면 훗날 신라인 만호가 거주하게 할 것이라고 하여 만호리로 한 때 불렸다. 이때 고구려의 박씨가 그 뱀을 죽여 마을주민들은 마을이 곧 망한다하여 망포리라 불렀고, 이후 부락 앞에 개[浦]가 있어 마을을 바라본다고 하여 망개리라 이름하였다. 1919년에 와서 문암리로 되었고, 1954년에 1리와 2리(괘진리)로 나뉘어졌다. 이 마을의 가장 큰 명절은 설날과 추석이다. 마을의 제의는 다음과 같다.?성황제(3일)초사흘에 성황제가 고정되어 있지만 마을에 큰 부정이 있으면 조정할 수 있다. 자금은 가가호호 정성껏 갹출한다. 섣달에 생기복덕을 보아 제관을 선임한다. 제물은 풍부할 때는 소도 잡아 썼으나 지금은 돼지를 잡아 쓴다. 어물은 앞 바다에서 나오는 문어, 열기, 오징어를 쓰며, 탕도 물론 올리며 제주를 봉하고, 제관이 올라가 제를 올린다. 자작도 해수욕장 바위에 암 성황이 있고, 이곳 성황은 수 성황이다.제관들이 할머니 성황을 모셔와 할아버지 성황도 모셔와 한 군데에서 제를 올린다. 따로 제단을 만들어 거기에서 제를 올린다. 가가호호 호주의 성명과 생기를 써서 소지를 전부 올려준다. 그래서 낙성이 되는 소지는 그분들에게 알려, 또 낙성된 각자가 와 소지를 올려야 한다. 제사 후 음식은 동네 모두가 제관 집에서 모여 나눠 먹는다.문암1리 바닷가에 있는 암성황제는 해마다 정월 3일 새벽 4시경 올리는데 이때 문암2리 수 성황제도 함께 지낸다. 암 성황당은 수십 개의 자연석 구멍이 있으며 시멘트로 제단을 만들어 놓았다. 제관으로 선정된 7명은 오리나무로 길이 30㎝, 지름 5㎝정도의 남근을 3개 깎아 가지고 가서 처음에 한 개를 넣어서 구멍이 맞으면 풍어가 된다고 믿는다.마을 이장은 한복을 한 벌 지어 암 성황신에게 바치는데 암 성황신은 시집을 못가고 바다에 빠져 죽은 여성이므로 그 영혼을 위로하는 뜻이라고 한다. 5년마다 풍어굿을 할 때 무당이 주관하여 암수성황신을 굿 당에 봉안하고 합사한다. 이 마을의 남근봉헌은 한 어부가 고기가 잘 잡히지 않자 홧김에 암 성황당에 가서 육담으로 욕설을 퍼붓고 바다로 나갔더니 만선이 되었다고 전한다. 이후에 남몰래 암 성황신을 위하는 목각남근을 바치고 늘 풍어가 되자 주민들이 동참하여 제사를 올린다고 한다. 문암 2리 제당은 군부대 초소입구 야산에 바다쪽을 보고 있는데 기와집으로 지었다. 내부에는 목판에 성황신위를 모시고 있으며 1970년 음력 4월 25일날 중건하였다.?성황굿3년에 한 번씩 큰굿을 한다. 배타는 사람은 정성으로 상을 하나씩 차려 놓는다. 무당들이 신이 올라서 신 굿을 하고, 어민들 풍어를 축원을 한다. 자금은 선주들하고 부락유지들이 갹출한다.신격당제명신화삼국시대 고구려가 침략하여 신라장군을 죽였는데, 죽은 곳에 돌로 된 미륵동이 생겨났다. 장군 부인이 그 곳에서 애절하게 울다가 죽어 뱀이 되어 미륵동을 지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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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원 동해시 대진동 한진마을 성황제
    강원 동해시 대진동 한진마을 성황제제명 : 성황제(도신), 풍어제(별신굿)신격 : 성황지신신위, 여역지신위, 토지지신위제당 : 마을 바닷가 해신당(당집)일시 : 음력 1월 15일개괄마을에서는 정월 대보름날 지내는 성황제를 ‘도신’이라고 부른다. 도신행사외에 풍어제는 동네에서 주관하고 중심적인 협조는 어촌계가 한다. 도신 행사는 음력 정월 섣달 그믐날을 지나고 나서 주민전체 총회를 하고 도가집, 제관집, 제집사를 선정하는데 제사일은 정월 대보름날을 택일한다. 도신행사의 경우 도가와 제관의 생기를 맞추어 부정이 없는 사람을 선별한다.제의내용동해시 대진동은 ‘한진’ 또는 ‘한날’이라고도 하는데 큰나루라는 뜻으로 ‘대진’으로 고쳐 부르고 있다. ??증수 임영지??에 의하면 강릉군 망상면 지역에 속했으며 주민들은 ‘개태미’라고도 부르는데 1914년 행정구역폐합에 따라 대진리가 되었다.대진동 앞바다에는 호랑바위와 새똥바우, 돈바우가 있으며 마을 뒷산에는 봉수산에는 옛날의 봉수대가 있는데 고려 의종 3년에 만들어졌다가 조선 인조 4년에 없어졌다. 이 봉수대는 지방기념물 13호로 북쪽은 강릉시 강동면 심곡리 오근산, 남쪽으로 삼척시 광진산과 연결되어 있다.대진동은 172가구, 세대주 180가구에 인구는 900여명 정도로 어촌계에서는 1종 공동어장을 운영하고 회센터를 지어 임대하고 있으며 민박과 낚시배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근래들어 경복궁의 정동쪽이라는 지리적 특성을 보러 해안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 그러나 마을 중간으로 철길이 나 있어 생활상 불편을 겪고 있다.대진동 어촌계는 동해시 수협관할 5개 어촌계에 소속된 단독 어촌계로 되어 있으며, 현재 모두 87척이 있다. 이 가운데 연승이 70%인 50척, 자원관리선이 17%인 9척, 기타 자망 소형어선이 속하며 동해시 수협관할의 구좌를 출자를 한 회원조합원은 98명이다. 자원관리선은 잠수기로 어촌계에서 관리하며 이곳 제1종 공동양식장에서 해삼, 다시마, 미역을 채취한다. 연승은 ‘낚시바리’를 하는데 봄부터 겨울까지 문어잡이가 주류를 이룬다. 문어 잡는 도구는 ‘지가리’라고 하며 여기에 돼지비개를 매달고 부위에 줄을 맨 ‘제비’라는 것을 이용한다. 마을의 낚시배는 시간당 사용료를 받으며 인근에서 낚시꾼들이 많이 찾아오고 있다.어촌계 자치 정관에는 87명의 계원 소속되어 있으며 임원회의는 2개월에 한 번씩 연다. 어촌계 운영은 공동채취를 할 경우 특별한 기간을 주어 그 기간동안 임대료를 받아서 사용한다. 어촌계의 운영비는 연간 2~3천 만원 정도를 사용하는데, 이외의 어촌계 연간소득은 어민들에게 현금을 공동 분배한다.대진동 어촌계에서는 전복, 해삼, 성게, 대합, 가리비, 명주조개(재복), 해조류 등을 양식하고 있다. 어민들은 연승을 주로 하며 연안유자망, 연안복합, 연안연승 등의 어선이 있으며 4계절동안 행해지는 연승이 특징으로 문어 잡이를 많이 한다. 대진항에는 소형어선이 정박하고 있으며 문어잡이뿐 아니라 가자미나 넙치 등을 잡을 수 있는 10톤 미만의 FRP배로 바다 낚시어선을 운영하고 있다.대진동의 마을 항구 옆 바다 쪽에는 바위 위에 해신당이 있으며 시멘트담을 쌓고 제단을 만들어 놓았으며 위패는 없다. 성황당은 어달산 산기슭에 바다가 내려 보이는 곳에 있으며 내부에는 위패를 모신 감실이 있고 향로와 촛대를 제단 위에 놓고, 연봉을 좌우 세워 놓았다. 위패는 중앙에 성황지신신위, 우측에 여역지신위, 좌측에 토지지신위라고 한자로 쓴 종이위패를 모시고 있다.마을에서는 정월 대보름날 지내는 성황제를 ‘도신’이라고 부른다. 도신행사외에 풍어제는 동네에서 주관하고 중심적인 협조는 어촌계가 한다. 도신 행사는 음력 정월 섣달 그믐날을 지나고 나서 주민전체 총회를 하고 도가집, 제관집, 제집사를 선정하는데 제사일은 정월 대보름날을 택일한다. 도신행사의 경우 도가와 제관의 생기를 맞추어 부정이 없는 사람을 선별한다.도가집은 나이가 있고 경륜이 많은 사람을 택하고 나머지 생기가 맞고 부정이 없는 사람, 나이가 맞아도 부정이 있으며 제외한다. 도가집은 1명, 제관은 풍어굿을 할 때는 4명, 도신만 하면 3명을 택한다. 풍어제는 한 해를 걸러서 하며 풍어제를 지낼 때는 무녀를 불러 굿을 하고, 도신은 제관이 모여 홀기와 축문을 읽고 정성을 올린다.이 마을의 성황당은 마을 뒤 야산에 비교적 큰 규모로 지어 놓았는데 주변에 향나무 몇 그루가 있으며 내부에는 3신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이곳은 ‘3신4당’이라 하며 주신은 여성황신인데 3신은 성황신, 여역신, 토지신이며 여기에 하나를 보탠 4당으로 해성당이라는 바다용왕신을 모신다. 제사지내는 제물로 메는 4그릇을 만들어서 각각에게 올린다. 해성당은 항포구 바다에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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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원 속초시 대포동 외옹치마을 성황제
    강원 속초시 대포동 외옹치마을 성황제제명 : 성황제와 별신제신격 : 암성황, 골맥이성황신제당 : 마을 뒤 성황당과 마을 입구의 장승일시 : 음력 3월 3일, 음력 9월 9일강원 속초시 대포동 외옹치마을 솟대지역 : 강원 속초치 대포동 외옹치명칭 : 강원 지역에서는 솟대를 ‘짐대’, ‘오릿대’라고 부른다.위치 : 외옹치마을은 한 쌍의 장승과 짐대가 서 있는데 위치는 속초로 가는 해안가의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다. 원래 장승과 짐대는 현재 위치보다 더 가까이 마을 쪽에 서 있었는데 1984년의 수해로 인해 새로 집터가 형성되고 신작로가 나면서 위치가 바뀌게 되었다.재질과 형태 : 지하대장군 바로 옆에 짐대가 세워져 있는데 오릿대라고도 부르며 흔히 볼 수 있는 오리 모양을 하고 있으며 높이는 약 3m로 장승과 마찬가지로 소나무로 만들어져 있다.기능 : 솟대는 크게 새의 모양과 솟대의 세워진 위치에 따라 기능을 달리하는데 외옹치 마을 솟대는 오리 모양으로 새의 부리는 해안과 반대방향인 마을을 향하고 있는데 이는 주민들은 새의 부리가 향하는 곳은 바다와 반대방향으로 새가 부리로 쪼아서 마을을 지켜준다고 한다. 이처럼 마을지킴이로써의 역할, 무사태평과 풍농, 질병, 재액의 방지 등 장승과 솟대에 함유된 주기능을 지니고 있으며 마을 입구에 세워두어 액막이형 솟대로서 밖의 나쁜 액과 마을 안의 좋은 기운이 만나는 경계에서 액을 막아주는 기능을 한다.특징 : 외옹치 사람들은 성황제가 치뤄지는 시기에 맞춰 장승을 새로 깎아 세우며, 장승 앞에서 대에 신내림을 받는 골맥이굿을 지내며 장승제를 치룬다. 성황제가 열린다해도 장승이 그때까지 잘 보존돼 있으면 새로 깎지 않지만, 최근 들어서는 성황제를 치룰 때마다 마을 장정들이 장승을 새로 세운다. 또한 외옹치마을은 솟대마을로 지정되어 도로 주변의 가로등을 현대적인 갈매기 형의 솟대로 구성했음을 볼 수 있고 장승과 짐대가 서 있는 주변에도 현대적인 솟대가 어우러져 전통과 현대의 조형물이 도로 주변의 미관을 아름답게 하고 있다.개괄대포동은 활어횟집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곳으로 외옹치는 대포동 5통에 속한다. 이곳 성황신은 ‘암성황’이라고 하는데 제사는 매년 음력 3월 3일과 9월 9일 자시 무렵에 지내고 있다. 성황당 안에는 위패와 화상이 있으며 제물은 가을 제사 때 소머리를 올려놓는다. 마을에서 성황제를 지내는 동안 제관 2명이 따로 내려와 마을입구에 있는 장승에게 간다. 장승을 이 마을에서는 ‘골맥이성황신’이라고 하는데 간단하게 제물을 차리고 술잔을 올리고 재배한다. 다음에 “새 옷 입힌다”며 장승에 문종이와 실을 폐백으로 매달고 절한다. 장승에 걸어놓은 이전의 폐백은 불에 태우고 고사는 천하대장군부터 지낸다.제의내용대포동은 활어횟집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곳으로 외옹치는 대포동 5통에 속한다. 이곳 성황신은 ‘암성황’이라고 하는데 제사는 매년 음력 3월 3일과 9월 9일 자시 무렵에 지내고 있다. 성황당 안에는 위패와 화상이 있으며 제물은 가을 제사 때 소머리를 올려놓는다. 마을에서 성황제를 지내는 동안 제관 2명이 따로 내려와 마을입구에 있는 장승에게 간다. 장승을 이 마을에서는 ‘골맥이성황신’이라고 하는데 간단하게 제물을 차리고 술잔을 올리고 재배한다. 다음에 “새 옷 입힌다”며 장승에 문종이와 실을 폐백으로 매달고 절한다. 장승에 걸어놓은 이전의 폐백은 불에 태우고 고사는 천하대장군부터 지낸다.이 마을의 장승과 짐대가 서 있는 곳은 조양동 해안가로 진입하여 바닷가 외옹치 마을 입구다. 본래 장승과 짐대는 현재보다 마을 쪽에 가까이 있었는데 1984년 수해 때 주택이 들어섬에 따라 신작로 길이 꺾여져 마을로 들어오는 곳으로 옮겼다고 한다.길 양쪽에 있는 한 쌍의 장승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데 오른쪽 밭 가운데에 천하대장군이라고 글씨를 써놓은 숫장승과 짐대, 그 왼쪽에 지하대장군과 짐대가 있다. 두 장승은 소나무에 붉은 칠을 했으며 높이는 120㎝정도다.천하대장군은 머리에 상투형태를 했으며, 검은 색으로 눈을 그리고, 코는 양각으로 파냈다. 이에 반해 지하대장군은 상투는 없고 얼굴 형상을 그렸다. 장승의 하단부에는 실과 한지를 묶어 놓았으며, 짐대는 3~4m 높이에 갈매기 모양의 새를 올려놓았다. 주민들은 새의 부리가 향하는 곳은 바다와 반대방향으로 새가 부리로 쪼아서 마을을 지켜준다고 한다. 장승과 짐대는 3년마다 새로 깎아 세운다. 외옹치 밧독재 마을의 장승제는 영동지방 마을제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주민들은 재수가 없거나 고기가 잘 잡히지 않으면 장승에 가서 개인적으로 치성을 올린다. 장승에 비해 짐대는 동해안 강릉시 옥계 낙풍, 금진, 월호평동, 송정동에 남아 있다.제당의 형태위치 : 외옹치 포구로 들어오는 도로 입구 좌측에 야트막한 산 속칭 봉끝 정상에 자리하고 있는데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숲 안에 성황당이 위치해 있다.형태 : 성황당은 단 칸의 기와집으로 지붕은 팔작지붕이고 당집 둘레에 시멘트담을 둘렀다.좌정된 신격 : 성황당 내부에는 城隍神圖와 수부圖가 전면벽에 걸려있다. 이 그림사이를 판자로 칸을 지었고 좌우측벽에 성황님과 수부의 옷이라고 생각되는 흰실과 한지를 걸어 놓았다. 제물을 진설할 수 있는 제단은 폭 50cm 정도로 좌우벽까지 연결되어 있고 그 위에 城隍大神之位라는 위패가 놓여 있었다. 당집은 人共 때 불타 없어졌다가 30~40년 전에 현 당집과 神圖를 복원했다고 한다.특징 : 대포동 외옹치 성황신은 ‘암성황’ 이여서 제물은 특히 말머리(성황제에 쓰이는 수소머리를 특히 말머리라고 함) 와 우량을 꼭 쓰며 수부신은 백마를 거느리고 성황님의 使者역할을 하는데 수부신의 제물도 성황님에게 쓰던 것을 옮겨 쓴다. 또한 당집 근처에는 수령을 알 수 없는 큰 소나무 숲을 이루고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성황당에는 평상시 출입을 삼가고, 뱃고사를 지낼 때나 마을제사를 지낼 때 출입하며 마을을 지키는 신이 있는 성역으로 성황당을 의식하고 있다.제의 소멸과 변천 : 현재도 매년 음력 3월 3일날과 9월 9일 2회에 걸쳐 제를 올리고는 있으나 여느 다른 마을과 마찬가지로 전승이 약화되는 추세이며 3년에 한번 씩 음력 9월 9일날 오후 1시부터 성황굿을 연행하고 있다.솟대명칭 : 강원 지역에서는 솟대를 ‘짐대’, ‘오릿대’라고 부른다.위치 : 외옹치마을은 한 쌍의 장승과 짐대가 서 있는데 위치는 속초로 가는 해안가의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다. 원래 장승과 짐대는 현재 위치보다 더 가까이 마을 쪽에 서 있었는데 1984년의 수해로 인해 새로 집터가 형성되고 신작로가 나면서 위치가 바뀌게 되었다.재질과 형태 : 지하대장군 바로 옆에 짐대가 세워져 있는데 오릿대라고도 부르며 흔히 볼 수 있는 오리 모양을 하고 있으며 높이는 약 3m로 장승과 마찬가지로 소나무로 만들어져 있다.기능 : 솟대는 크게 새의 모양과 솟대의 세워진 위치에 따라 기능을 달리하는데 외옹치 마을 솟대는 오리 모양으로 새의 부리는 해안과 반대방향인 마을을 향하고 있는데 이는 주민들은 새의 부리가 향하는 곳은 바다와 반대방향으로 새가 부리로 쪼아서 마을을 지켜준다고 한다. 이처럼 마을지킴이로써의 역할, 무사태평과 풍농, 질병, 재액의 방지 등 장승과 솟대에 함유된 주기능을 지니고 있으며 마을 입구에 세워두어 액막이형 솟대로서 밖의 나쁜 액과 마을 안의 좋은 기운이 만나는 경계에서 액을 막아주는 기능을 한다.특징 : 외옹치 사람들은 성황제가 치뤄지는 시기에 맞춰 장승을 새로 깎아 세우며, 장승 앞에서 대에 신내림을 받는 골맥이굿을 지내며 장승제를 치룬다. 성황제가 열린다해도 장승이 그때까지 잘 보존돼 있으면 새로 깎지 않지만, 최근 들어서는 성황제를 치룰 때마다 마을 장정들이 장승을 새로 세운다. 또한 외옹치마을은 솟대마을로 지정되어 도로 주변의 가로등을 현대적인 갈매기 형의 솟대로 구성했음을 볼 수 있고 장승과 짐대가 서 있는 주변에도 현대적인 솟대가 어우러져 전통과 현대의 조형물이 도로 주변의 미관을 아름답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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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김포시 대곶면 대명리 풍어제
    경기 김포시 대곶면 대명리 풍어제         제명 : 풍어제신격 : 당산제당 : 특별하게 제당은 있지 않지만 당산에 있는 당산나무에 신을 받아 포구에서 지낸다. 당산나무 앞에는 터주가리가 있으며, 터주가리에 금줄을 치고 하얀 백지를 꽂아 놓았다. 마을사람들은 이를 ‘당목(堂木)’이라고 부르며, ‘堂’이라고도 부른다.일시 : 음력 1월 10~15일 사이 택일개괄원래는 대동굿이라고 하여 마을에서 제의를 지내다가 언젠가부터 지내지 않게 되었다. 그러자 마을 어민 한 사람이 어로작업 중에 익사하는 사고가 있었다. 그 후로 연이어 바다에서 사고가 나고, 고기가 많이 잡아도 신이 나지 않는 등 마을 분위기가 침체되어 있어서 대동풍어굿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어촌계와 마을 부녀회가 중심이 되어 대동풍어굿을 준비하였다.제의내용제의시기는 원래 음력정월 열흘에서 보름사이에 날을 받아서 지냈으며, 지금은 김금화 만신에게 날을 받아서 지낸다. 김금화 만신이 들어오면서 직접 주관하여 제의를 하였다.원래 이 제의는 마을에서 뱃사람들의 굿이라고 해서 선주들과 선원들이 몸을 정갈하게 하고 제관이 되어 집행하였지만, 지금은 배를 부리는 사람만이 소지를 올리고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이 마을에는 횟집이 많이 들어서있는데, 횟집을 운영하는 41개 집 모두가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배를 부리는 3집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한다고 한다.제의는 어판장에서 어촌계가 주관하여 무당을 불러다 굿을 하는데 수년 전에는 김금화 만신을 불러다 큰 굿을 행하였다. 굿의 정확한 체계는 분명하지 않은 편이며 요즘에는 그 형식이 많이 약식화되어 전승되고 있다.제의절차로는 해가 뜨기 전에 만신들과 주민들은 제물을 앞세우고 당산으로 올라간다. 당산에 올라 당신을 당산나무 아래에서 굿청으로 모셔 들인다. 이 마을에는 당집이 따로 없고 당산나무가 당집의 역할까지 해준다. 김금화 만신이 들어 온 이후 임경업 장군을 모시는데 이 ‘당산맞이’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대명리 풍어굿이 시작된다.당산맞이를 갔던 이들이 간이횟집단지 한 켠에 마련해 놓은 굿청으로 돌아오면, 사람의 명과 복을 관장하는 칠성신을 맞아 들이는 ‘칠성맞이’를 하고 부정을 씻어 굿청을 정결하게 하고 모든 신들을 받들어 모셔들이는 ‘초부정굿을 한다. 이어서 마을은 물론 참여 어민 개개인에게 복을 주고 배를 지켜준다는 ‘제석굿’이 벌어진다.제석굿에 이어 ‘오방신장기뽑기’라고 하여 한 해의 운수와 풍어를 점을 치는데, 빨간색, 흰색, 파란색, 노란색, 녹색 등 다섯가지 색깔의 천으로 만든 오방신장기를 만신이 손잡이 잡고 참여한 이에게 들이대면 그 중 하나를 뽑아 1년 운을 보는 것으로 빨간색의 기를 뽑으면 그 해 재수가 있다고 하고, 하얀색 기는 조상님을 잘 대접하면 그 조상님이 도와준다는 의미가 있으며, 나머지 파란, 노란, 녹색의 기는 흉조로 여긴다.다음으로 ‘사슬세우기’라고 하여 제물로 바친 돼지를 잡을 때 쓰던 칼을 들고 만신이 돼지를 통째로 끼워 세우는 것이다. 이는 신께서 굿을 잘 받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하는 것으로 소금주머니 위에 거꾸로 세워진 삼지창과 그 창 끝에 꽂힌 돼지가 바로 선 뒤에 두 손을 땐 만신이 삼지창이나 돼지 몸체를 손으로 쳐도 쓰러지지 않으면 신이 정성을 잘 받은 것으로 여긴다.이렇게 제의를 지내면 제의에 참여한 어민과 아낙네들에게 신령 받은 술을 나누어 주며 복을 빌어주는 ‘복잔내림’을 하는데 이는 신의 복을 받아 먹음으로 그 복이 들어오는 것으로 믿는다.신화원래는 대동굿이라고 하여 마을에서 제의를 지내다가 언젠가부터 지내지 않게 되었다. 그러자 마을 어민 한 사람이 어로작업 중에 익사하는 사고가 있었다. 그 후로 연이어 바다에서 사고가 나고, 고기가 많이 잡아도 신이 나지 않는 등 마을 분위기가 침체되어 있어서 대동풍어굿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어촌계와 마을 부녀회가 중심이 되어 대동풍어굿을 준비하였다.원래 제의의 명칭은 ‘대동굿’이라고 불렀으나, 현재는 ‘풍어제’라고 부르며, ‘당신제’라고도 부른다.특별하게 제당은 있지 않지만 당산에 있는 당산나무에 신을 받아 포구에서 지낸다. 당산나무 앞에는 터주가리가 있으며, 터주가리에 금줄을 치고 하얀 백지를 꽂아 놓았다. 마을사람들은 이를 ‘당목(堂木)’이라고 부르며, ‘堂’이라고도 부른다.제의는 어판장에서 어촌계가 주관하여 무당을 불러다 굿을 하는데 수년 전에는 김금화 만신을 불러다 큰 굿을 행하였다. 굿의 정확한 체계는 분명하지 않은 편이며 요즘에는 그 형식이 많이 약식화되어 전승되고 있다.제의절차로는 해가 뜨기 전에 만신들과 주민들은 제물을 앞세우고 당산으로 올라간다. 당산에 올라 당신을 당산나무 아래에서 굿청으로 모셔 들인다. 이 마을에는 당집이 따로 없고 당산나무가 당집의 역할까지 해준다. 김금화 만신이 들어 온 이후 임경업 장군을 모시는데 이 ‘당산맞이’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대명리 풍어굿이 시작된다.당산맞이를 갔던 이들이 간이횟집단지 한켠에 마련해 놓은 굿청으로 돌아오면, 사람의 명과 복을 관장하는 칠성신을 맞아들이는 ‘칠성맞이’를 하고 부정을 씻어 굿청을 정결하게 하고 모든 신들을 받들어 모셔 들이는 ‘초부정굿을 한다. 이어서 마을은 물론 참여 어민 개개인에게 복을 주고 배를 지켜준다는 ‘제석굿’이 벌어진다.제석굿에 이어 ‘오방신장기뽑기’라고 하여 한 해의 운수와 풍어를 점을 치는데, 빨간색, 흰색, 파란색, 노란색, 녹색 등 다섯 가지 색깔의 천으로 만든 오방신장기를 만신이 손잡이 잡고 참여한 이에게 들이대면 그 중 하나를 뽑아 1년 운을 보는 것으로 빨간색의 기를 뽑으면 그 해 재수가 있다고 하고, 하얀색 기는 조상님을 잘 대접하면 그 조상님이 도와준다는 의미가 있으며, 나머지 파란, 노란, 녹색의 기는 흉조로 여긴다.다음으로 ‘사슬세우기’라고 하여 제물로 바친 돼지를 잡을 때 쓰던 칼을 들고 만신이 돼지를 통째로 끼워 세우는 것이다. 이는 신께서 굿을 잘 받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하는 것으로 소금주머니 위에 거꾸로 세워진 삼지창과 그 창끝에 꽂힌 돼지가 바로 선 뒤에 두 손을 땐 만신이 삼지창이나 돼지 몸체를 손으로 쳐도 쓰러지지 않으면 신이 정성을 잘 받은 것으로 여긴다.이렇게 제의를 지내면 제의에 참여한 어민과 아낙네들에게 신령 받은 술을 나누어 주며 복을 빌어주는 ‘복잔내림’을 하는데 이는 신의 복을 받아먹음으로 그 복이 들어오는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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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인천시 강화도 곶창굿
    경기 인천시 강화도 곶창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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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화성군 비봉면 유포리 당제와 도당굿
    경기 화성군 비봉면 유포리 당제와 도당굿제명 : 당제(도당굿)신격 : 12당, 시험당, 서낭제당 : 마을 앞 당산과 와가 당집일시 : 음력 11월 2~3일개괄이곳의 당제는 뱃고사와 결부된 어업생산의례였는데 대단한 규모로 행해졌다. 그러나 조기잡이가 30여 년 전에 사라지고 중선배와 기계배마저 25년 전에 사라진 후, 당제는 축소되어 나가다가 최근 어장이 없어지면서 끊겨버렸다. 이곳 배들도 한창 때는 ‘임장군이 조기를 몰고 다닌다’고 해서 임장군을 크게 모셨다.제의내용유포리는 1리(대장굴, 유지)와 2리(버들무지)로 나뉜다. 1리는 70호,2리는 50호이며 각성받이 마을로 전형적인 어촌이었으나 폐장된 이후에는 대부분 생업을 놓고 있다. 공공시설로 1976년도에 지은 마을회관이 있고, 교통편은 수원 시내버스가 2시간 간격으로 1일 8회 운행하고 있다. 초등학교로는 비봉초등 유포분교가 있고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비봉중고교나 수원으로 나간다. 생활권은 남양장에서 수원장으로 옮겨졌다. 주산물은 예전에는 갯지렁이, 가리맛 등이었으나 지금은 간척사업으로 어장이 오염되어 잡히지 않는다. 통혼권은 주로 수원권역이다(1988년?1990년 조사)① 제명: 당제(도당굿)② 당명 및 형태마을입구에 당산과 와가 당집이 있다(大韓光武四年庚子閨八月初日 申午時立柱上梁 西紀1966年 7月17日午前十時立柱上樑). 신격은 12당이었으나 현재 몇 가지만 전승되고 있다. 도당님 두 분이 웃어른이며, 12당 이외에 당의 심부름꾼인 ‘시험당’이 있었다. 그 외, 마을에 장승이 있어 ‘서낭’이라 불렀다. 신체는 종이에 붓글씨로 써서 벽에 부착시켜 놓았다.③ 제일 및 제주음력 11월 2일 정일부터 3일까지 지냈다. 제주는 다음과 같다.?제 관: 1인. 제를 총괄한다.?당 주: 당을 관리하면서 집에서 음식도 준비한다.?오가당: 다섯 집에 하나씩 책임자를 정하여 고기를 잡으면 분육하는 일을 담당한다.?시 험: 3인. 물건을 사고 준비한다.?문 서: 1인. 돈쓴 내역을 기재하고 관리한다.?공 원: 1인. 문서를 도와 돈의 지출을 관리한다.제주들은 제일이 임박했을 때 회의를 통하여 선출한다(혹은 당제 끝나고 난 뒤의 회의에서 당주 등을 새로 뽑음).④ 제비 및 제물최근에는 각호마다 갹출하였으나 예전에는 큰 조기잡이배(중선배)가 많았던 관계로 배 임자가 주로 돈을 냈었다. 물건 구입은 수원장, 남양장을 이용하며 ‘시험’이 구입했다(소는 남양 도살장). 제물은 12당마다 각기 차려놓는데 시루떡(팥), 흰떡(가래떡), 소고기(익힌 것), 간(생 것), 호이갓(천엽, 생것)을 놓는다. 소당에는 삼색(배, 사과, 밤, 대추, 산자)을 포개서 놓는다. 소는 반드시 황우로 잡아야한다.⑤ 제차마을회의에서 제주들이 선출되면 전체가 금기생활에 들어간다. 그리고 소를 잡아오면 당주 집에서는 제물준비에 들어간다. 제물용 고기는 집, 도당굿, 배로 용도를 삼분한다(당에서 쓸 고기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뱃고사용으로 배로 보냄).제일이 되면 당에서 당주의 주도하에 문서, 공원, 시험 등이 함께 안반고사를 지낸다. 잔을 부어놓고 절하고 당소지를 올리는데 각 호마다, 각 선주마다 올려준다.안반고사가 끝나면 뱃고사로 들어가는데 배마다 선주가 떡을 해놓고 각기 지낸다. 이때 누군가의 호명 아래 동작 빠른 사람들이 당고기를 잽싸게 들고서 배로 뛰어간다. 이때 1등하는 배가 고기를 많이 잡는다고 한다. 2일차가 되면 그때야 무당이 온다. 주로 수원 무당인 ‘용해’네 패거리나 ‘오필성’ 등이 왔다. 대략 7~8명이 피리, 대금, 깡깽이 등을 잡게 된다. 먼저 당주네 집에서 마당굿을 잠깐 하고나서 당으로 간다. 한바퀴 돌면서 굿거리 12석을 모두 끝내는데 이때 각호마다 꽃반상을 잠깐 하고나서 당으로 간다. 한바퀴 돌면서 굿거리 12석을 모두 끝내는데 이때 각호마다 꽃반상을 들고 올라가 소지도 올리고 비나리도 한다(꽃반을 쌀을 상 위에 펼치거나 말로 놓고 숟가락, 실, 호주 밥그릇을 올림). 이어서 마을우물굿을 올린다. 샘 앞에서 ‘뚫어라 뚫어라’ 하면서 무당이 고사를 지낸 후, 약 1미터 정도 길이의 수숫대를 묶어서 남자무당이 주동이 되어 엉덩이를 찌르면서 논디. 즉, 우물고사와 굿놀이가 이어지는 것이다. 이어서 장승굿을 올린다.마을입구에 ‘부루백이 서낭’이라는 장승과 ‘비둘기’가 세워져있고(남쪽), 바다로 향한 출구에는 ‘뒷깨서낭’과 ‘비둘기’가 세워져있는데(남은 동방청제대장군, 북은 서방백제대장군이라 쓰여 있었음), 장승굿은 ’수살막이‘로 하였고, 술 한잔과 떡?고기를 간단히 차려놓는 고사형식이었다.저녁에 동네로 돌아와서는 넓은 마당에서 ‘거리굿’을 놀게 된다. 짚으로 ‘정애비’를 만들어놓고(허수아비의 일종) 먹고 놀고 무감을 섰다. 정애비는 6척 이상의 큰 짚새기로 만들어졌는데 거리굿이 끝나면 불태워버렸다. 이때 판을 크게 벌일 적에는 줄도 타고(무당 오필성씨가 줄타는 사람이었음) 굿놀이도 크게 했다.뱃고사할 때는 배마다 봉죽기를 당 앞에서 꽂았는데 그 수효가 대단했다. 봉죽기란 말 타고 갑옷 입은 임장군기와 오방색기, 종이꽃, 오색종이발 등으로 장식된 기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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