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

상기내용을 모두 옳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교과서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우리역사를 찾아내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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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여수시 삼산면 거문리 안노주섬 풍어제
    전남 여수시 삼산면 거문리 안노주섬 풍어제제명 : 풍어제신격 : 고두리영감제당 :일시 :신화거문리 남쪽 70여 미터 떨어진 안노루섬(내잔섬) 정상에 큰 바위를 올려놓은 제단이 있는바, 옛날 거문도에 凶漁가 들어 용왕님께 제사를 올렸더니, 갑자기 폭풍이 몰아쳐 오기 시작하였으며, 뒷날 바닷가에 나가보니 큰 바위(제단에 올려진 바위)가 물에 둥둥 떠내려 오고 있었다. 주민들은 틀림없이 용왕이 보낸 것이라 여기고, 이를 안노루섬에 모시게 되었는데, 그 해에 많은 고등어가 잡혔다고 한다. 이때부터 이 돌을 고두리(고등어)영감이라 부르고, 매년 풍어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참고문헌 :『마을 유래지』 여천군, 1991, 334쪽.…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1-27 조회 500
  • 전남 영광군 낙월면 안마도 당제
    전남 영광군 낙월면 안마도 당제제명 : 당제신격 : 신씨할머니제당 :일시 :신화지금부터 5백년 전에 안마도 동촌마을에 살았던 신씨할머니가 살았는데, 어느 날 신씨할머니은 꿈에 “나는 당나라 장군인데 한 번도 출전을 못해 이곳 북쪽 산 너머 선창가에 왔다, 나온 이곳 산봉우리에 묻고 매년 구정 때면 농악을 쳐 제를 지낸 달라”는 말과 당나라에서 떠내려 온 궤짝이 당 너머에 표류하는 꿈을 꾸었다. 이상한 꿈에서 깨어난 신씨할머니가 이 사실을 동네 사람들에게 알렸다. 그곳으로 가보았더니 선창가에 이상한 상자 하나 있었다. 그 속에는 1미터 이상 되는 긴 여자 머리털과 큰 주머니(중국주화가 들어있었음)와 책(당제에 대한 의식절차에 관한 이야기가 적혀있음)과 철마 3필 등이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신씨할머니의 꿈을 쫓아 철마 3필은 큰당에 모시고, 여기에 상자를 넣어 둘 큰 항아리를 땅에 묻어 이 상자를 넣어 두었다. 그리고 매년 제사를 지냈다.(박진안, 男, 64세, 1987.8.4)…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1-27 조회 523
  • 제주 조천면 함덕리 대제일
    제주 조천면 함덕리 대제일제명 : 서물날신격 : 미륵먹돌제당 :일시 :신격미륵먹돌 : 용왕국의 무남독녀로 김첨지 할아버지 긴 낚싯줄에 걸려 올라 온 미륵먹돌이다. 잠수 해녀를 지켜주고, 가는 배, 오는 배를 돌보아 주면서 낚시질을 잘 하게 해 주는 신이다. 모든 해녀와 어부들을 수호해 주는 신이다.신화함덕의 당신은 서울 먹자 고을 난노물에서 솟아난 급서황하늘이고 알가름의 신은 서물한집이다. 서물한집은 김첨지 할아버지가 처음 모시기 시작한 신이다. 김첨지 할아버지는 긴 낚시줄에 좋은 낚싯대를 들고, 떼배를 타고 항상 고기낚시를 다녔다. 서물날(음력 1월 26일) 이었다. 김첨지 할아버지는 여느 때처럼 고기를 낚으러 나가 낚실줄을 던졌다. 고기가 하도 물지 않아 심심하던 차에 무엇인가 든직한 것이 낚시에 걸려 들었다. 큰고기가 물렸나보다 하고 거두어 올려보니 미륵먹돌이 걸려 올라왔다. 김첨지는 실망하여 미륵먹돌을 던지고 낚싯줄을 또 다시 드리웠다. 다시 미륵먹돌이 걸려 올라왔다. 하루종일 그 일은 반복되었다.김첨지는 결국 빈손으로 집에 돌아왔다. 다음 서물날에 다시 고기를 낚으러 나갔다. 이 날도 역시 고기는 잡히지 않고 미륵먹돌이 낚시에 걸려 올라오는 것이었다.김첨지는 심심해져서 낚시도 그만두고 낮잠을 잤다."나는 용왕국의 무남독녀 딸아기노라. 인간 자손들을 도와 키워 주려고 이 세상에 나왔노라. 알가름 팽나무 아래로 모셔서 나를 위해라. 내 일만 잠수를 지켜 주와 주고, 가는 배 오는 배를 돌보아 낚시질을 잘 시켜주마."김첨지는 잠에서 벌떡 깨어 그제야 이 미륵먹돌이 신임을 알았다. 곧 낚싯줄을 넣어 이 돌을 떠올리고 현몽의 지시대로 알가름의 팽나무 아래 모셨다.그래서 김첨지 영감이 처음 서물날에 위하기 시작하고, 차차 동네 사람들이 그 뒤를 따라 위하게 되어 간 것이다.…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1-27 조회 904
  • 경남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 당포마을 동제
    경남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 당포마을 동제제명 : 산신제, 장군제, 벅수제, 용왕제신격 : 산신, 장군(최영), 벅수, 용왕제당 : 산신과 장군(마을 앞산 장군봉), 벅시(마을입구), 용왕(바닷가)일시 : 음력 12월 그믐~1월 1일 이 음원은 인터넷 익스플로러(IE)에서만 지원 가능 합니다.당포 마을의 당제는 여러 제차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마지막 제차인 용왕제를 마치면서 소지를 한다. 이때 제를 주관하는 스님은 옆에서 염불을 한다.개괄당포마을의 제사는 먼저 산신과 장군신에게 제사를 지낸 후 마을로 내려와서 벅시와 용왕제를 지낸다. 모든 제사를 마치자면 족히 3시간은 걸리기에 스님들은 새벽 4시부터 산신제를 지내기 시작한다. 산에서 제사를 마치고 스님들이 마을에 도착한 시기는 해가 뜨기 전인 오전 5시경이었다. 벅수는 ‘할배벅수’와 ‘할매벅수’ 2기이며 벅수는 있는 자리는 예전에 당포성의 정문으로 벅수 앞을 지낼 때는 아무리 높은 벼슬아치도 말에서 내려서 걸어야 했다고 한다. 이것은 장군봉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기도 하다.제의내용제사 당일인 섣달 그믐날 오전에는 마을 입구와 장승 주위에 금줄을 친다. 이것을 현지에서는 ‘금구지 친다’고 하며 가정에서 치는 것은 ‘금줄’이라고 불러 차이를 둔다. 임산부는 제사를 지내는 동안 가정에 머물 수 없기에 일가친척집에 갔다가, 산제사가 끝나면 돌아온다. 그리고 마을의 우물을 덮어두고 마을에 개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조치를 취한다. 동제를 깨끗하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거행하기 위함이며, 실제로 동제에 참여하는 마을주민들도 말을 삼간다.당포마을의 제사는 먼저 산신과 장군신에게 제사를 지낸 후 마을로 내려와서 벅시와 용왕제를 지낸다. 모든 제사를 마치자면 족히 3시간은 걸리기에 스님들은 새벽 4시부터 산신제를 지내기 시작한다. 산에서 제사를 마치고 스님들이 마을에 도착한 시기는 해가 뜨기 전인 오전 5시경이었다. 벅수는 ‘할배벅수’와 ‘할매벅수’ 2기이며 벅수는 있는 자리는 예전에 당포성의 정문으로 벅수 앞을 지낼 때는 아무리 높은 벼슬아치도 말에서 내려서 걸어야 했다고 한다. 이것은 장군봉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기도 하다.벅수제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벅수에는 소 갈비뼈를 걸어 두어 소를 제물로 바쳤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벅수 앞에는 황토를 뿌려둔다. 제사가 시작될 즈음이면 사람들은 제물을 차린 밥상을 가지고 벅수 앞에 놓는다. 간혹 어떤 이는 먼저 벅수 앞에 향불을 피우고 비손을 한 다음 제물을 가져오기도 한다. 제일 먼저 벅시에게 정신을 쏟는 것이다. 사람들은 벅시 앞 좋은 곳에 밥상을 놓기 위해 다투어 가져온다.벅수 앞에서 스님이 독경을 마치면, 동제를 주관하는 소임은 동네 안녕을 기원하는 축문을 외우고 각 집의 대주이름을 부른다. 이때 마을주민들이 돈을 바치기도 한다. 축이 끝나면 마을의 연장자와 유지들이 절을 하고 소지를 올린다. 소지를 올릴 때는 마을사람들도 같이 소지를 올린다. 소지가 하늘로 잘 날아가야만 벅시의 신이 그 뜻을 잘 받았다고 여긴다. 소지가 끝나면 용왕에게 바칠 제사음식을 떼어내는데, 이것을 ‘물밥’이라고 부르고, 물밥이 모아지면 바로 바다로 던진다. 남은 제사음식은 각자 집으로 가지고 가서 음복을 한다.제물은 물고기가 많은 반면 소, 돼지와 같은 육고기는 보이지 않았다. 단 벅수 몸체에 소뼈만 걸어놓았을 뿐이다. 물고기 중 제물로는 도미를 으뜸으로 여기며 말린 것은 쓰지 않는다. 그런 물고기를 ‘도죽’이라고 부른다. 동제 기간 동안 임신부나 달거리를 하는 여인은 ‘죄인’이라고 하여 마을에서 다른 곳으로 자리를 피했다. 장승 앞에는 포구나무에, 용왕제를 지내는 터에는 대나무를 세워 금줄을 친다. 금줄은 당산제를 지내기 전날 마을사람들이 친다.벅시 앞에서 제사가 끝나면 용왕제를 지낸다. 용왕제가 벅시제와 다른 것은 배를 부리거나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만 참석을 하고, 바다가 잘 보이는 공터에서 진행한다는 점이다. 이것을 보면 벅시는 마을의 안녕-농업과 관련된 신이고, 용왕은 어업과 관련된 신임을 알 수 있다. 제사를 지내는 과정은 벅시제와 마찬가지로 스님이 경을 읽고 나서, 선주들이 절을 하고 소지를 올린다. 제사가 끝나면 역시 ‘물밥’을 바다에 버린다. 오늘 동제에서 벅시 앞에는 20상이, 용왕제에서는 30상이 나왔다.벅시제와 용왕제가 끝나면 악기를 치는 메구꾼들은 먼저 벅시 앞에서 풍악을 치고 절을 한 후, 용왕제를 지낸 바닷가 쪽에 가서 메구를 치고 역시 절을 한다. 그런 후 마을의 우물과 마을회관을 다니면서 지신밟기를 하여 태평을 기원한다. 마을을 돌 때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돈다. 모든 의식이 끝나면 마을 사람들은 마을 회관에 모여 제사에 대한 결산과 앞으로 일에 대해 상의를 하는 등 대동회를 개최한 후 한데 어우러져 음복을 한다. 과거 당포회관이 없었을 때에는 마당이 넓은 집을 빌려서 대동회를 개최하는데, 보통 대동회의 책임을 맡는 ‘소임’집에서 한다. 이번 대동회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더욱 관심을 가지고 동제에 참여해 줄 것과 벅시 앞쪽으로 낸 하수도를 옮기는 문제, 교인들의 신고로 경찰서에 사전보고를 하는 문제 등을 다루었다. 또한 내년도 소임을 맡을 사람을 선출하기도 하였다. 한편 유월 스무날에도 마을 결산을 하는데, 주로 마을 대동회에서 6개월간의 수입과 지출을 재무가 보고를 한다.신격할매벅수 : 마을 입구에 나란히 서 있는 한 쌍의 벅수. 벅시 또는 장승이라고도 한다. 나란히 서 있는데 오른 쪽이 할매벅수이다. 할매 벅시는 전체높이 97cm, 앞면 22cm, 옆면 18cm, 몸통높이 59cm이며 마찬가지로 화강석으로 정교하게 깎아 만들었는데 얼굴의 형태는 方形이고 민둥머리를 하고 있다. 할배벅시에 비해 몸통은 긴 편이지만 그 둘레가 가늘어 할배벅시보다 더 연약해 보이며 몸통 중간이 부러져 시멘트로 이어 붙인 흔적이 있고 풍화정도가 매우 심해 가벼운 바람에도 곧 쓰러질듯한 느낌을 준다. 목부분을 잘록하게 해 줌으로써 얼굴과 몸통구분을 구분하였으며, 민둥머리의 얼굴은 마멸 정도가 매우 심하여 그 윤곽이 희미하다. 한편 얼굴 전체길이는 40cm로, 머리 끝에서부터 17cm 떨어진 아래쪽에 눈, 코, 입 등을 새겨 놓음으로써 얼굴이 아래로 쳐진 느낌을 준다. 도톰한 볼과 뭉툭한 눈, 약간 벌린 듯 방긋한 입, 크게 양각된 귀 등은 여성스러움을 더해주나 석질이 연한 화강석을 사용한 까닭에 전체적으로 그 마모 정도가 매우 심하다.할배벅시 : 전체높이 90cm, 앞면 26cm, 옆면 20cm, 몸통높이 50cm로 정교하게 깎아 만든 할배벅시는 탕건 모양의 관을 쓴 모습을 하고 있다. 몸통에 비해 유난히 큰 머리부분과 연약하게 보이는 하체, 그리고 잘록하게 패인 목 부분 등의 전체적인 모습은 어눌해 보이나 균형을 잃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도톰한 볼과 뭉툭한 눈, 길쭉하게 우뚝 솟은 큰 코, 일자형의 굳게 다문 듯한 입, 부처님 귀와 같이 크게 양각된 귀, 턱 밑 목 부분에 ‘川’ 자형으로 선각한 3갈래의 수염 등은 할배 벅시라는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특징들이다. 또한 할매 벅시는 전체높이 97cm, 앞면 22cm, 옆면 18cm, 몸통높이 59cm이며 마찬가지로 화강석으로 정교하게 깎아 만들었는데 얼굴의 형태는 方形이고 민둥머리를 하고 있다. 할배벅시에 비해 몸통은 긴 편이지만 그 둘레가 가늘어 할배벅시보다 더 연약해 보이며 몸통 중간이 부러져 시멘트로 이어 붙인 흔적이 있고 풍화정도가 매우 심해 가벼운 바람에도 곧 쓰러질듯한 느낌을 준다. 목부분을 잘록하게 해 줌으로써 얼굴과 몸통구분을 구분하였으며, 민둥머리의 얼굴은 마멸 정도가 매우 심하여 그 윤곽이 희미하다. 한편 얼굴 전체길이는 40cm로, 머리 끝에서부터 17cm 떨어진 아래쪽에 눈, 코, 입 등을 새겨 놓음으로써 얼굴이 아래로 쳐진 느낌을 준다. 도톰한 볼과 뭉툭한 눈, 약간 벌린 듯 방긋한 입, 크게 양각된 귀 등은 여성스러움을 더해주나 석질이 연한 화강석을 사용한 까닭에 전체적으로 그 마모 정도가 매우 심하다.당포마을의 벅시는 돌로 된 것이나 마을 사람들에 따르며 본래는 나무였으나 사람들이 벅수의 눈을 갈아 먹으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속설 때문에 벅시가 성할 날이 없어 약 30년 전에 돌로 바꾸었다고 한다. 한편 전설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벅시를 장군봉에서 만들어 마을에 놓으니 왜병들이 접근하지 못했다는 영험담이 전승되고 있다.신화당포마을 동제는 음력 정월 2일 12시를 기점으로 지낸다. 예전에는 원항 마을과 같은 날에 지냈으나. 장군당과 산신당을 함께 사용하기 때문에 제를 지내면서 서로 만나기 때문에 날짜를 바꿨다. 제를 지내기 3일 전 마을 입구와 벅수 주위에 금줄을 친다.당포마을 벅수는 현재 돌로 되어 있으나 본래는 나무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사삶들이 벅수 눈을 빼 먹으면 낙태한다고 해 눈이 성할 날이 없어 돌로 바꾸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는 벅수를 장군봉에서 만들어 놓으니 왜병들이 접근하지 못했다고도 한다.제당의 형태벅수(벅시,장승)위치 : 산양읍 삼덕리 원항 마을을 지나 산양 순환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원항 마을과 인접하여 신착장이 나오는데 바로 이 마을이 당포 마을로 입구에는 돌로 만든 벅시(장승)가 있는데 남녀 한 쌍이 바닷가 쪽을 향해 나란히 서 있다.형태와 재질 : 남녀 한 쌍의 벅시를 할배 벅시, 할매 벅시라 칭하며 할배 벅시는 전체높이 90cm, 앞면 26cm, 옆면 20cm, 몸통높이 50cm로 정교하게 깎아 만든 할배벅시는 탕건 모양의 관을 쓴 모습을 하고 있다. 몸통에 비해 유난히 큰 머리부분과 연약하게 보이는 하체, 그리고 잘록하게 패인 목 부분 등의 전체적인 모습은 어눌해 보이나 균형을 잃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도톰한 볼과 뭉툭한 눈, 길쭉하게 우뚝 솟은 큰 코, 일자형의 굳게 다문 듯한 입, 부처님 귀와 같이 크게 양각된 귀, 턱 밑 목 부분에 ‘川’ 자형으로 선각한 3갈래의 수염 등은 할배 벅시라는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특징들이다. 또한 할매 벅시는 전체높이 97cm, 앞면 22cm, 옆면 18cm, 몸통높이 59cm이며 마찬가지로 화강석으로 정교하게 깎아 만들었는데 얼굴의 형태는 方形이고 민둥머리를 하고 있다. 할배벅시에 비해 몸통은 긴 편이지만 그 둘레가 가늘어 할배벅시보다 더 연약해 보이며 몸통 중간이 부러져 시멘트로 이어 붙인 흔적이 있고 풍화정도가 매우 심해 가벼운 바람에도 곧 쓰러질듯한 느낌을 준다. 목부분을 잘록하게 해 줌으로써 얼굴과 몸통구분을 구분하였으며, 민둥머리의 얼굴은 마멸 정도가 매우 심하여 그 윤곽이 희미하다. 한편 얼굴 전체길이는 40cm로, 머리 끝에서부터 17cm 떨어진 아래쪽에 눈, 코, 입 등을 새겨 놓음으로써 얼굴이 아래로 쳐진 느낌을 준다. 도톰한 볼과 뭉툭한 눈, 약간 벌린 듯 방긋한 입, 크게 양각된 귀 등은 여성스러움을 더해주나 석질이 연한 화강석을 사용한 까닭에 전체적으로 그 마모 정도가 매우 심하다.기능 : 당포마을의 벅시가 언제부터 세워졌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연대를 측정할 수 없으나 마을의 수호신으로 마을의 재앙과 역병을 막아주는 신격의 기능을 하고 있다. 그래서 벅시에게 정성을 잘 드리지 않으면 화를 당하게 된다고 마을 주민들은 믿고 있으며 지금까지 마을 동제 때 벅수제를 지내고 있다.특징 : 현재 당포마을의 벅시는 돌로 된 것이나 마을 사람들에 따르며 본래는 나무였으나 사람들이 벅수의 눈을 갈아 먹으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속설 때문에 벅시가 성할 날이 없어 약 30년 전에 돌로 바꾸었다고 한다. 한편 전설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벅시를 장군봉에서 만들어 마을에 놓으니 왜병들이 접근하지 못했다는 영험담이 전승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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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신안군 도초면 고란리 당제와 죽마제
    전남 신안군 도초면 고란리 당제와 죽마제제명 : 당제, 죽마제신격 : 상당(당할머니, 할아버지, 며느리, 아들, 딸, 馬神, 天神, 地神), 하당(장승)제당 : 상당(舊 기와집 형태의 당집이 있었음), 하당(장승)일시 : 음력 1월 15일전남 신안군 도초면 고란리 장승고란리 장승은 건립동기와 장승을 세우게 된 유래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있는데 최덕원 교수는 “堂神이 영검이 많아 이 기를 죽이기 위해서”, “부녀자들이 이바지를 가지고 오면서 堂神에게 바치지 않고 그대로 지나가면 집에 오자마자 큰 병이 들었으며, 堂을 향해 소변만 보아도 性器가 부어 고생을 하므로 장승을 세워 화를 면하게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또한 고란리 장승의 관련 의례로 마을 공동 제사인 당제가 있다. 현재는 당제가 단절되었지만 과거에는 상당제와 하당제로 나뉘어 성대하게 지내던 제사였다. 하당제의 신체가 석장승으로 제의 후에 일종의 굿놀이인 죽마제를 지냈는데, 이 제의는 도초면 일대에 널리 알려져 인근 주민들이 구경하러 올 정도였던 것으로 전한다개괄고란리 상당에는 당할머니와 할아버지 며느리 아들 딸과 馬神을 모시며 그 위에 天神 地神을 모셨다. 옛날에는 초상화를 그려 신위를 모셨다. 또한 당굿놀이의 마신인 죽마와 하당신인 돌장승이 있다.제의내용고란리는 148가구에 773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면소재지인 수항리에서 5km거리에 있는 부락이다. 50년 전에는 邑洞으로 이곳에 면사무소가 있어 도초도의 행정중심지였다. 옛날에 마을에 난초가 많이 있어 고란리라 이름 지었다 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500여년 전에 지나가는 道僧이 촌전에 신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면 부락이 번성하리라 하여 신당을 세웠다고 한다.20년 전까지만 해도 당집이 있었고 神位와 堂神의 초상화가 있었으나, 지금은 당 마당과 당 나무가 남아 있을 뿐이다. 마을에서 개천을 건너 다리목에 하당신인 돌장승이 있고 100m촌전에 1,600여평의 당마당이 있으며 그 중앙에 300여년이 넘은 팽나무가 있다. 이 당목의 높이는 25m, 둘레 3m로 노송촌과 더불어 옛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10년 전만 하여도 고란리의 당굿놀이는 도초도의 祝祭로 24개 리는 물론 인근 섬에서도 구경 오는 사람들이 많았었다.고란리 상당에는 당할머니와 할아버지 며느리 아들 딸과 馬神을 모시며 그 위에 天神 地神을 모셨다. 옛날에는 초상화를 그려 신위를 모셨다. 또한 당굿놀이의 마신인 죽마와 하당신인 돌장승이 있다.馬神은 대나무로 말 골격을 만들고 머리는 짚으로 엮어 단단하게 뭉쳐서 참종이로 씌우고 먹으로 눈과 코를 그린다. 귀도 대나무로 만들고 목에서부터 큰 대를 세 갈래로 나누어서 꼬리 부분에 붙이고 그 위에 깔아 탈 수 있도록 한다. 양쪽 두 갈래의 대기둥 안에 발을 넣게 만들고 꼬리도 대잎으로 만들어 붙인다. 마부가 끌 수 있도록 목에 줄을 걸고 양쪽에다 매어 둔다.상당의 당신은 영검이 많아 이 氣를 죽이기 위해서 1938년에 돌장승을 만들어 당을 마주 보게 세웠다고 한다. 장승의 높이는 3m, 가슴둘레 1.9m, 귀의 길이 36cm, 입 23cm나 되는 대형 하당신인 당할아버지이다. 부녀자들이 이바지를 가지고 오면서 당신에게 바치지 않고 그대로 지나가면 집에 오자마자 큰 병이 들었으며, 당을 향해 소피만 보아도 性器가 부어 고생을 하므로 장승을 세워 화를 면하게 하였다. 하당신은 안좌면 자라도에서 모셔왔다 한다.신격마신 : 대나무로 말 골격을 만들고 머리는 짚으로 엮어 단단하게 뭉쳐서 참종이로 씌우고 먹으로 눈과 코를 그린다. 귀도 대나무로 만들고 목에서부터 큰 대를 세 갈래로 나누어서 꼬리 부분에 붙이고 그 위에 깔아 탈 수 있도록 한다. 양쪽 두 갈래의 대기둥 안에 발을 넣게 만들고 꼬리도 대잎으로 만들어 붙인다. 마부가 끌 수 있도록 목에 줄을 걸고 양쪽에다 매어 둔다.마을의 재액을 막아주고 풍요를 관장하는 신이다.신화죽마제에서는 마장수와 제주가 연극을 하듯이 대화를 나눈 뒤 마장수가 죽마를 타고 달리면 농악대가 그 뒤를 따르고 동네 사람들은 양쪽으로 늘어서서 죽마의 머리와 주둥이를 힘차게 때린다. 죽마의 주둥이가 확 터지면 그 해 농사가 잘된다고 생각한다.제당의 형태위치 : 고란리는 면소재지인 수항리에서 5Km 거리에 있는 부락으로 50년 전에는 읍동으로 이곳에 면사무소가 있어 도초도의 행정중심지였다. 마을에서 개천을 건너 다리목에 하당신인 돌장승이 있고 100m 촌전에 1600여평의 당마당이 있으며 그 중앙에 300여년이 넘은 팽나무가 있다.재질과 형태 : 300여년이 넘은 팽나무는 높이는 25m, 둘레 3m로 노송촌과 더불어 옛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기능 : 고란리 당제와 죽마제는 지역 공동체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축제의 공간이었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고란리의 당굿놀이는 도초도의 祝祭로 24개 里는 물론 인근 섬에서도 구경 오는 사람들이 많았었다.특징 : 고란리 당제의 특징은 죽마놀이에 있다. 이는 연극적 성격이 강한 굿놀이다. 상당에서 모셨던 馬神의 신체인 죽마는 대나무로 말 골격을 만들고 머리는 짚으로 엮어 단단하게 뭉쳐서 참종이로 씌우고 먹으로 눈과 코를 그린다. 귀도 대나무로 만들고 목에서부터 큰 대를 세 갈래로 나누어서 꼬리 부분에 붙이고 그 위에 깔아 탈 수 있도록 한다. 양쪽 두 갈래의 대기둥 안에 발을 넣게 만들고 꼬리 대잎으로 만들어 붙인다. 마부가 끌 수 있도록 목에 줄을 걸고 양쪽에다 매어 둔다. 죽마제의 진행은 馬將帥, 마부 역할을 하는 사람들과 제주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주민들은 죽마를 매질하고 쫓는 역할을 한다.제의 소멸과 변천 : 현재 당제와 죽마제는 해방 후 중단된 상태이고, 당나무와 장승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1-27 조회 502
  • 전남 여수시 삼산면 거문리 백도 당설화
    전남 여수시 삼산면 거문리 백도 당설화제명 : 당제신격 : 매바위제당 :일시 :신격매바위 : 형상은 매처럼 생긴 바위이다. 신찟갯이라는 여자 물귀신에게서 어부들을 보호해 준다.신화지금부터 약 100여년 전 거문도에 살고 있던 이오복이라는 어부가 백도 어느 바위 아래서 낚시질을 하고 있었는데, 돔 낚시가 잘 되므로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바다에서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니 아름다운 한 여인이 바닷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면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사람 살려요 여보세요 살려 주세요”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이씨가 앉아 있던 바위 아래까지 허우적거리면서 다가왔다. “제발 제 손 좀 잡아 주세요”라면서 손을 내밀었다. 이씨가 바위에서 내려와 손을 잡아주려는 찰라 난데없이 회오리바람이 일면서 큰 매 한 마리가 쏜살같이 날아와서 여인의 머리를 덮치더니 부리로 쪼아버리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 여인은 물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너무나 놀라서 겁에 질린 이씨는 정신이 아찔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려서 사방을 둘러봤지만, 여인도 매도 온데간데없었다. 이씨는 그 일을 괴이하게 여기면서 그날 밤을 바위틈에서 지새운 후 날이 밝자마자 어젯밤 괴이한 일이 있었던 그 바위를 바라보니 어제 보았던 그 매와도 너무나 흡사한 것이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로다”라고 생각하면서 마을로 돌아온 이씨는 마을 노인들께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 했더니, 洞首노인이 하는 말이 “오복이 자네 참 운이 좋았구먼, 그 여자는 신찌갯이라 하는 물귀신인데 살려 달라고 외치는 그 여자를 살려주기 위해 손을 잡은 사람은 물속으로 끌려 들어가 모두 죽이고 말지, 그런데 자네는 그 매 바위의 영험으로 화를 면하게 된 거야 좋은 날을 택하여 매바위에 제사를 드려야 하네” 그런 연유를 알자 이씨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노인의 말씀대로 매바위에다 크게 제를 올렸다. 그런 일이 있는 후 백도의 그 바위를 “매바위”라고 불렀고, 매바위는 어민들의 수호신으로 받아들여졌다.* 참고문헌 :『명소지명유래지』 전라남도, 1987, 147~1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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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함평군 대동면 아처동 미륵제
    전남 함평군 대동면 아처동 미륵제제명 : 미륵제신격 : 미륵할머니제당 :일시 :신격미륵할머니 : 미륵 바위처럼 생겼다.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이다.신화먼 옛날 이 마을에 음산한 밤이면, 마을 옆 대밭에서 소름이 끼치는 해괴한 울음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마을 사람들은 불길한 징후라 하여, 그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대밭으로 가 보았다. 대밭엔 아무 기척이 없었고 미륵과 같이 생긴 바위에서 괴이한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해괴한 울음소리에 오한을 느꼈으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는데, 그중에서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 한 분이 경건히 미륵바위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두 손을 모아 빌기 시작했다. “미륵할머니 어리석고 죄 많은 저희들을 가엾게 여기시어 허물을 용서하시고 우시는 연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빌고 나서 수없이 절을 하니 이상하게도 울음소리가 씻은 듯이 뚝 그쳤다. 그 날 밤 할아버지 꿈에 미륵할머니가 나타나 “나는 너희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인 미륵할머니이니라. 그런데 너희들은 나를 푸대접 했느니라. 이제부터 나를 아늑한 자리에 집을 지어 안치해 주면 마을의 모든 재액을 없게 해 주겠노라"고 하였다. 다음날 마을 사람들은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의논한 끝에 미륵할머니 바위를 대밭에 옮겨 바르고 아늑한 곳에 자리를 잡아 제당을 지어 안치시키고,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참고문헌 :『전남의 전설』 전라남도, 1987, 390쪽.…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1-27 조회 490
  • 전남 함평군 손불면 대전리 불맥이굿
    전남 함평군 손불면 대전리 불맥이굿제명 : 불맥이굿신격 : 육수와 해수를 담은 항아리제당 :일시 :신격항아리 : 육수와 해수를 담은 3개의 항아리로 윗바을, 중간마을, 아랫마을을 상징한다. 육수와 해수 담은 항아리는 각자의 마을 화귀를 막아주는 신이다.신화지금부터 약 400여년 전 스님 한 분이 노승봉에서 내려와 이 터가 “참 큰 터로구나”하고 감탄을 하며 지형을 살피다가 앞산 등남산에 화귀가 서려있고, 뒷산 낭떠러지에 흠이 있는 곳을 발견하고, 탄식하여 노승봉을 향하던 재에서 낭떠러지를 내려다보며 엉엉 울고 있어, 촌로 한분이 그 까닭을 물으니 “이 좋은 터가 흠이 있어 하도 아까워서 울고 있소”하고 대답하였다. 촌로는 도승 앞에서 무릎을 꿇고, 그 방지책을 일러 달라고 간청을 하자, 도승이 이르기를 “화귀를 막으려만 낭떠러지는 어찌할꼬?”하며 탄식을 그치지 않았다. 노인은 “우선 화귀 막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면 낭떠러지는 차차 우리들이 대책을 세우겠습니다.”하고 거듭 통사정을 하니, 노인장의 뜻이 갸륵하여 이르기를 “저기 수문위에 있는 등허리(등남산이 올려다 보이는 곳)에 항아리 셋을 주되 육수와 해수를 반반씩 넣어서 가득 채우고 꼭 봉한 후에 흙을 덮어 무덤처럼 해두었다가 불이 나거든 열어보라”하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 후 중간 마을에서 불이 나 열어보니, 가운데 항아리만이 물이 없어졌으며 아무리 살펴봐도 물이 없어진 곳이 없었다. 기이하게 여기어 다시 물을 채우고 묻어두었다가 아랫마을에서 불이 났기에 열어보니, 아래쪽 항아리만 물이 없어졌다. 항아리 셋이 윗마을 중간마을 아랫마을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전해오고 있으며, 그 후 지금까지 뜻을 모아 정월 2월 초하룻날을 정하여 목욕재계를 하고 제사를 올린다.* 참고문헌 :『전남의 전설』 전라남도, 1987, 3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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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 조천면 함덕리 대제일
    제주 조천면 함덕리 대제일제명 : 서물날신격 : 미륵먹돌제당 :일시 :신격미륵먹돌 : 용왕국의 무남독녀로 김첨지 할아버지 긴 낚싯줄에 걸려 올라 온 미륵먹돌이다. 잠수 해녀를 지켜주고, 가는 배, 오는 배를 돌보아 주면서 낚시질을 잘 하게 해 주는 신이다. 모든 해녀와 어부들을 수호해 주는 신이다.신화함덕의 당신은 서울 먹자 고을 난노물에서 솟아난 급서황하늘이고 알가름의 신은 서물한집이다. 서물한집은 김첨지 할아버지가 처음 모시기 시작한 신이다. 김첨지 할아버지는 긴 낚시줄에 좋은 낚싯대를 들고, 떼배를 타고 항상 고기낚시를 다녔다. 서물날(음력 1월 26일) 이었다. 김첨지 할아버지는 여느 때처럼 고기를 낚으러 나가 낚실줄을 던졌다. 고기가 하도 물지 않아 심심하던 차에 무엇인가 든직한 것이 낚시에 걸려 들었다. 큰고기가 물렸나보다 하고 거두어 올려보니 미륵먹돌이 걸려 올라왔다. 김첨지는 실망하여 미륵먹돌을 던지고 낚싯줄을 또 다시 드리웠다. 다시 미륵먹돌이 걸려 올라왔다. 하루종일 그 일은 반복되었다.김첨지는 결국 빈손으로 집에 돌아왔다. 다음 서물날에 다시 고기를 낚으러 나갔다. 이 날도 역시 고기는 잡히지 않고 미륵먹돌이 낚시에 걸려 올라오는 것이었다.김첨지는 심심해져서 낚시도 그만두고 낮잠을 잤다."나는 용왕국의 무남독녀 딸아기노라. 인간 자손들을 도와 키워 주려고 이 세상에 나왔노라. 알가름 팽나무 아래로 모셔서 나를 위해라. 내 일만 잠수를 지켜 주와 주고, 가는 배 오는 배를 돌보아 낚시질을 잘 시켜주마."김첨지는 잠에서 벌떡 깨어 그제야 이 미륵먹돌이 신임을 알았다. 곧 낚싯줄을 넣어 이 돌을 떠올리고 현몽의 지시대로 알가름의 팽나무 아래 모셨다.그래서 김첨지 영감이 처음 서물날에 위하기 시작하고, 차차 동네 사람들이 그 뒤를 따라 위하게 되어 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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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김포시 대곶면 대명리 풍어제
    경기 김포시 대곶면 대명리 풍어제       제명 : 풍어제신격 : 당산제당 : 특별하게 제당은 있지 않지만 당산에 있는 당산나무에 신을 받아 포구에서 지낸다. 당산나무 앞에는 터주가리가 있으며, 터주가리에 금줄을 치고 하얀 백지를 꽂아 놓았다. 마을사람들은 이를 ‘당목(堂木)’이라고 부르며, ‘堂’이라고도 부른다.일시 : 음력 1월 10~15일 사이 택일개괄원래는 대동굿이라고 하여 마을에서 제의를 지내다가 언젠가부터 지내지 않게 되었다. 그러자 마을 어민 한 사람이 어로작업 중에 익사하는 사고가 있었다. 그 후로 연이어 바다에서 사고가 나고, 고기가 많이 잡아도 신이 나지 않는 등 마을 분위기가 침체되어 있어서 대동풍어굿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어촌계와 마을 부녀회가 중심이 되어 대동풍어굿을 준비하였다.제의내용제의시기는 원래 음력정월 열흘에서 보름사이에 날을 받아서 지냈으며, 지금은 김금화 만신에게 날을 받아서 지낸다. 김금화 만신이 들어오면서 직접 주관하여 제의를 하였다.원래 이 제의는 마을에서 뱃사람들의 굿이라고 해서 선주들과 선원들이 몸을 정갈하게 하고 제관이 되어 집행하였지만, 지금은 배를 부리는 사람만이 소지를 올리고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이 마을에는 횟집이 많이 들어서있는데, 횟집을 운영하는 41개 집 모두가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배를 부리는 3집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한다고 한다.제의는 어판장에서 어촌계가 주관하여 무당을 불러다 굿을 하는데 수년 전에는 김금화 만신을 불러다 큰 굿을 행하였다. 굿의 정확한 체계는 분명하지 않은 편이며 요즘에는 그 형식이 많이 약식화되어 전승되고 있다.제의절차로는 해가 뜨기 전에 만신들과 주민들은 제물을 앞세우고 당산으로 올라간다. 당산에 올라 당신을 당산나무 아래에서 굿청으로 모셔 들인다. 이 마을에는 당집이 따로 없고 당산나무가 당집의 역할까지 해준다. 김금화 만신이 들어 온 이후 임경업 장군을 모시는데 이 ‘당산맞이’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대명리 풍어굿이 시작된다.당산맞이를 갔던 이들이 간이횟집단지 한 켠에 마련해 놓은 굿청으로 돌아오면, 사람의 명과 복을 관장하는 칠성신을 맞아 들이는 ‘칠성맞이’를 하고 부정을 씻어 굿청을 정결하게 하고 모든 신들을 받들어 모셔들이는 ‘초부정굿을 한다. 이어서 마을은 물론 참여 어민 개개인에게 복을 주고 배를 지켜준다는 ‘제석굿’이 벌어진다.제석굿에 이어 ‘오방신장기뽑기’라고 하여 한 해의 운수와 풍어를 점을 치는데, 빨간색, 흰색, 파란색, 노란색, 녹색 등 다섯가지 색깔의 천으로 만든 오방신장기를 만신이 손잡이 잡고 참여한 이에게 들이대면 그 중 하나를 뽑아 1년 운을 보는 것으로 빨간색의 기를 뽑으면 그 해 재수가 있다고 하고, 하얀색 기는 조상님을 잘 대접하면 그 조상님이 도와준다는 의미가 있으며, 나머지 파란, 노란, 녹색의 기는 흉조로 여긴다.다음으로 ‘사슬세우기’라고 하여 제물로 바친 돼지를 잡을 때 쓰던 칼을 들고 만신이 돼지를 통째로 끼워 세우는 것이다. 이는 신께서 굿을 잘 받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하는 것으로 소금주머니 위에 거꾸로 세워진 삼지창과 그 창 끝에 꽂힌 돼지가 바로 선 뒤에 두 손을 땐 만신이 삼지창이나 돼지 몸체를 손으로 쳐도 쓰러지지 않으면 신이 정성을 잘 받은 것으로 여긴다.이렇게 제의를 지내면 제의에 참여한 어민과 아낙네들에게 신령 받은 술을 나누어 주며 복을 빌어주는 ‘복잔내림’을 하는데 이는 신의 복을 받아 먹음으로 그 복이 들어오는 것으로 믿는다.신화원래는 대동굿이라고 하여 마을에서 제의를 지내다가 언젠가부터 지내지 않게 되었다. 그러자 마을 어민 한 사람이 어로작업 중에 익사하는 사고가 있었다. 그 후로 연이어 바다에서 사고가 나고, 고기가 많이 잡아도 신이 나지 않는 등 마을 분위기가 침체되어 있어서 대동풍어굿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어촌계와 마을 부녀회가 중심이 되어 대동풍어굿을 준비하였다.원래 제의의 명칭은 ‘대동굿’이라고 불렀으나, 현재는 ‘풍어제’라고 부르며, ‘당신제’라고도 부른다.특별하게 제당은 있지 않지만 당산에 있는 당산나무에 신을 받아 포구에서 지낸다. 당산나무 앞에는 터주가리가 있으며, 터주가리에 금줄을 치고 하얀 백지를 꽂아 놓았다. 마을사람들은 이를 ‘당목(堂木)’이라고 부르며, ‘堂’이라고도 부른다.제의는 어판장에서 어촌계가 주관하여 무당을 불러다 굿을 하는데 수년 전에는 김금화 만신을 불러다 큰 굿을 행하였다. 굿의 정확한 체계는 분명하지 않은 편이며 요즘에는 그 형식이 많이 약식화되어 전승되고 있다.제의절차로는 해가 뜨기 전에 만신들과 주민들은 제물을 앞세우고 당산으로 올라간다. 당산에 올라 당신을 당산나무 아래에서 굿청으로 모셔 들인다. 이 마을에는 당집이 따로 없고 당산나무가 당집의 역할까지 해준다. 김금화 만신이 들어 온 이후 임경업 장군을 모시는데 이 ‘당산맞이’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대명리 풍어굿이 시작된다.당산맞이를 갔던 이들이 간이횟집단지 한켠에 마련해 놓은 굿청으로 돌아오면, 사람의 명과 복을 관장하는 칠성신을 맞아들이는 ‘칠성맞이’를 하고 부정을 씻어 굿청을 정결하게 하고 모든 신들을 받들어 모셔 들이는 ‘초부정굿을 한다. 이어서 마을은 물론 참여 어민 개개인에게 복을 주고 배를 지켜준다는 ‘제석굿’이 벌어진다.제석굿에 이어 ‘오방신장기뽑기’라고 하여 한 해의 운수와 풍어를 점을 치는데, 빨간색, 흰색, 파란색, 노란색, 녹색 등 다섯 가지 색깔의 천으로 만든 오방신장기를 만신이 손잡이 잡고 참여한 이에게 들이대면 그 중 하나를 뽑아 1년 운을 보는 것으로 빨간색의 기를 뽑으면 그 해 재수가 있다고 하고, 하얀색 기는 조상님을 잘 대접하면 그 조상님이 도와준다는 의미가 있으며, 나머지 파란, 노란, 녹색의 기는 흉조로 여긴다.다음으로 ‘사슬세우기’라고 하여 제물로 바친 돼지를 잡을 때 쓰던 칼을 들고 만신이 돼지를 통째로 끼워 세우는 것이다. 이는 신께서 굿을 잘 받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하는 것으로 소금주머니 위에 거꾸로 세워진 삼지창과 그 창끝에 꽂힌 돼지가 바로 선 뒤에 두 손을 땐 만신이 삼지창이나 돼지 몸체를 손으로 쳐도 쓰러지지 않으면 신이 정성을 잘 받은 것으로 여긴다.이렇게 제의를 지내면 제의에 참여한 어민과 아낙네들에게 신령 받은 술을 나누어 주며 복을 빌어주는 ‘복잔내림’을 하는데 이는 신의 복을 받아먹음으로 그 복이 들어오는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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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인천시 옹진군 연평면 연평도 당제, 서해안 배연신굿
    경기 인천시 옹진군 연평면 연평도 당제, 서해안 배연신굿    제명 : 연평도풍어제 또는 임장군제신격 : 임경업장군제당 : 임장군당일시 :조기잡이의 신 임경업 장군지 역 : 경기도 강화군 갑곶리 진해줄거리 : 임장군이 군사를 데리고 중국으로 가는데 찬거리가 없어 구찌나무를 바닷가에 꽂아 두라고 한다. 그 곳에 조기가 주렁주렁 걸리게 된다.등장인물 소개* 임경업장군 : 조선의 장군. 엄나무 가지로 조기를 잡음.* 대표상인 : 40대 중반. 상인복장. 눈은 찢어져 올라 가 있고, 코 밑에 양 옆으로 수염이 이방처럼 나 있음.* 상인들과 병사들배 경(1) 시대 : 조선시대(2) 공간 : 조선, 청나라, 배 안, 바다 가운데 섬, 어장터, 당집(3) 지역 : 연평도,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문산2리 하동마을분 류: 고기를 몰아주고 풍어를 가져다주는 신애니메이션 시나리오 : 청나라에서 조선의 두 왕자를 볼모로 잡아 갔습니다.“청나라 이놈들, 내가 꼭 이 원수를 갚아주겠다.”이렇게 큰소리를 친 사람은 조선의 임경업 장군이었습니다. 임경업 장군은 어떻게 하면 청나라로 잡혀간 두 왕자를 구할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청나라로 들어 갈 수 있는 방법은 상인으로 변장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임경업 장군은 상인들을 만나 의주로 장사를 떠나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설득했습니다. 상인들은 임경업 장군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쌀과 곡물을 몽땅 배에 싣고 함께 떠나게 되었습니다. 배가 조선을 떠나 한참 가는데 상인들은 뱃머리가 의주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상인들은 임경업 장군이 장사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청나라에 잡혀 있는 두 왕자를 구하러 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상인들은 며칠 동안 배를 타고 가다가 꾀를 냈습니다. 대표격 상인이 말했습니다.“자자, 우리가 청나라에 가서 무슨 일을 당할지 어떻게 알겠나.”“맞습니다. 아무 죄도 없이 개죽음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그래서 말인데 우리가 식량이 떨어졌다고 하면 아마 조선으로 다시 돌아 갈 걸세.”“어르신 그럴 것도 같습니다. 임경업 장군은 누구보다 백성들을 사랑한다지 않습니까.”“그럼 우리가 식량을 몽땅 바다에 던져버립시다.”“그럽시다. 어서 서두릅시다. 병사들이 없는 틈을 타서 어서요.”상인들과 선원들은 식량을 모두 바다에 던져버렸습니다. 그리고 임경업 장군 앞으로 갔습니다.“장군님, 식량이 바닥이 났습니다. 더 이상 항해는 무리입니다.”“그래. 선장은 섬에 배를 대시오.”임경업 장군의 말에 선장은 섬에 배를 댔습니다.“병사들은 들어라. 지금부터 섬에 내려 가시가 달린 엄나무라는 것이 있다. 엄나무 가지를 있는대로 꺾어오기 바란다.”병사들은 도대체 엄나무를 무엇에 쓰려고 하는지 서로 소곤거리며 엄나무를 찾았습니다. 벙사들은 섬에 있던 엄나무 가지를 몽땅 꺾어 왔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다. 간조 때를 맞춰 어장터에 이 엄나무를 꽂아 놓고 오라.”선원과 상인, 병사들은 임경업 장군을 엄나무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한다고 식량이 생기나.”“그러게 말일세. 귀신이 곡할 노릇을 하라고 하는군.”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했습니다.시간이 얼마나 지나 다시 간조 때가 되었습니다.“병사들은 어장터로 나가봐라.”임경업 장군의 말에 병사들은 어장터로 나갔습니다. 병사들은 엄나무 가지를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가시가 달린 엄나무에 조기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습니다. 선원들과 상인은 더 이상 식량이 없단 말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청나라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임경업 장군은 무사히 두 왕자를 구했습니다. 그런데 임경업 장군은 청나라 군사에게 잡혀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억울하게 돌아가신 임경업 장군을 사당을 지어 신으로 모셨습니다. 조기 잡을 철이 되면 사람들은 임경업 청나라로 갈 때 조기를 잡았던 것을 생각하고 제사를 지냈습니다. 임경업 장군은 용을 타고 나타나 조기 떼를 몰아주는 것이었습니다. 이 음원은 인터넷 익스플로러(IE)에서만 지원 가능 합니다.2005년 8월 인천광역시 연안부두에서 만신 김금화의 주도로 배연신굿이 연행되었다. 배연신굿은 조기잡이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조기잡이를 가르쳐준 임경업 장군이 주신으로 모셔지고, 조기잡이의 풍어를 알리는 배치기 소리가 연행된다.신격임경업장군 : 고기잡이를 알려준 신으로 주신이다. 굿청에 다양한 신격들이 그려져 걸여 있다. 임경업장군이 말을 타고 칼을 오른손에 들고 있다. 깃발에 그려진 장군도에는 삼국 충신 임장군이라 쓰여 있다. 임장군은 말을 타고 오른 손에 칼을 들고 화살 통을 메고 있다.신화임장군제. 현재는 연평도풍어제로 알려져 있다.임경업장군은 절대적으로 뱃굿에 군림한다. 당에서는 산신과 부군님, 또는 서낭님, 그리고 장군님을 같이 모시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황해도에서는 주로 임경업이 장군님으로 으뜸으로 모셔진다. 그래서 당 자체를 장군당으로 부르기도 하며 제의 때에 장식하는 기도 장군기라고 부른다. 굿에서 장군기(참대에 장군 화상이 그려진 기를 매었음)를 들거나 봉죽(주민들이 각자 서리화-수팔련-함박꽃 등 각종 꽃을 가지고 와서 꽂은 꽃대)을 들고 펼치는 대규모의 제축을 펼친다. 먼저, 당산맞이에서 필히 광목에다 임경업 장군을 그린 장군기를 들고 간다. 장군기가 신을 받아야지만 본굿이 시작된다.굿하기 몇 일전부터 배의 선원들이 배에서 잠을 자며 금기를 한다. 선주가 총지휘를 하여 무당일행과 같이 배위에 마련한 굿청에 제물을 차리고 난 후 무당일행은 일단 배에서 내려오고 선원들은 먼저 자신들의 부정을 푼다. 그 후에야 무당이 오르고 신청울림으로 굿이 시작된다. 다음은 ‘당산맞이’를 하러가는데 맨 앞에 사공이 든 장군기와 봉죽 뱃기 등을 앞세우고 간다. 당에 도착하면 제물을 장군님 앞에 차려놓고 사공과 선주가 재배한다. 그리고는 당맞이 굿에 들어가 ‘임장군님’ ‘당산신령님’ ‘부군님’ 그리고 ‘서낭님’을 청하여 굿을 하고는 당문 옆에 세워두었던 장군기를 뉘어서 당 안으로 들이밀면 주무는 기에 신이 내리도록 축원한다. 신이 내리면 사공과 선주가 기위에 길지(백지)를 묶어 당밖에 세워두고 주무가 에밀량(민요조의 뱃노래)을 하면서 북과 징을 치면서 다함께 배치기로 후렴을 받는다. 이렇게 기를 들고 배에 올라오면 그때부터 굿이 시작된다. 즉, 부정굿-정물림-당제석-산장군거리-감놀이굿-영산할아뱜-영산햘먐-쑹거주는굿-다리발 용신굿, 그리고 강변굿으로 마감한다.굿거리마다 조기잡이를 기원하는 대목이 연출된다. 소당제석거리에서 무당은 조기 제일 큰 것을 들어 물동이에 넣는다. 그러면 조기 머리의 방향을 보고 뱃사람들은 그 쪽으로 고기잡이를 나가면 장원(고기를 제일 많이 잡는 것) 하겠다고 자기네끼리 점을 친다. 영산 할아범-할맘굿에서는 그물 올리는 굿을 연출하고 끝에 가서는 그물을 펴서 바닷물에 넣었다가 고기를 퍼서 배에다 싣는 시늉을 하고 배치기를 하는 등 연극적인 굿거리로 끝난다. ‘쑹거주는 굿’에서는 뱃사람들이 긴 무명을 양쪽에서 붙잡고 떡을 담아 쑹거를 섬기면 뱃사람들이 뒷소리를 받으며 선원과 선주가 옷자락을 벌려 복떡(고기로 간주함)을 받아간다. 이와 같이 배연신굿은 철저하게 임경업장군과 조기잡이에 관련된 생산의례임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한국의 해양문화』 서해해역 4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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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 거제시 남부면 도장포 동제와 배신굿
    경남 거제시 남부면 도장포 동제와 배신굿   제명 : 당산제(굿을 하지 않을 경우), 일신(1년주기), 배신굿(3년주기)신격 : 당산(산신), 용왕, 골맥이제당 : 마을 앞 솟대, 마을 입구 벅수, 마을 뒤 당산, 마을 바닷가, 우물일시 : 당산제(음력 섣달 그믐), 일신(음력 1월 1~3일 사이), 배신굿(음력 1월 1~3일 사이)개괄굿은 매년 하는 경우 ‘일신’이라 부르고, 3년마다 하는 굿을 ‘배신굿’이라 한다. 무당은 육지나 거제도에서 많이 오는데, 보통 여자 무당 3명에, 악기를 다루는 남자 5명 정도가 온다. 무당이 동제를 주관하지만 마을에서는 ‘정신 드리는 사람’이라고 하여 제관을 선정한다. 그에게는 그 해동안 바다의 한 자리를 주는데 이것을 ‘바탕을 준다’고 한다. 보통 제관은 많은 제약이 따르고, 정성을 제대로 드리지 않으면 제관이 죽는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꺼리기 때문에 상당한 대우를 해 주는 것이다. 도장포의 동제인 경우에는 무당이 주관하는 경우가 있고, 마을 자체에서 제관을 뽑아 지내는 경우도 있다. 무당들이 주관하는 경우에는 많은 경비가 들기 때문에, 소수의 무당만 불러오는 경우도 있다.제의내용무녀가 굿을 하는 해는 ‘굿장모’의 생년월일시를 넣어 생기복덕을 따져서 날을 받는다. ‘굿장모’란 무당이 거처하는 집주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통 출산이 없고, 초상이 없는 집을 선택한다. ‘굿장모’는 무당의 편의를 봐주는 일을 맡으며, 무녀상에는 대구장자젓-계란찜(수란)-김-자반고기 등 값비싼 음식들이 올라올 정도로 잘 대접해준다. 굿에 쓰일 음식은 굿장모가 장만하는데, 보통 머리에 명주수건을 쓰고, 창호지로 입을 막는다.동제는 초하루와 초사흘 사이에 한다. 굿이 없는 해는 그믐날 저녁에 제관이 제사를 지낸다. 제사지내기 하루 전날에는 당산을 청소하는데, 이때에는 창호지로 입을 봉하고 들어간다. 지금은 창호지 대신 마스크로 대신한다. 당산에 올라가 청소하는 사람들도 부정이 없는 깨끗한 사람들이 한다. “덕은 몰라도 한은 눈앞에 보인다”라는 말이 있듯이 청소도 잘 못하면 해를 당하기에 조심해서 행한다.청소가 끝나면 왼새끼를 꼬아 당나무와 큰새미(우물)에 금줄을 친다. 또한 배선대인 오리(솟대)를 세우고 벅수(장승)를 새롭게 만든다. 함목의 벅수와 도장포 내의 벅수는 매년 소나무를 깎아 만들고, 금줄과 황토를 뿌린다. 근래에는 오리(솟대)가 상태가 좋으면 그냥 놔두고 상하면 새로이 한다. 오리는 동쪽을 향하고 있다. 오리에 제사를 지낼 때는 기둥에는 솥을 단다.굿은 들맞이굿-> 당산(산신제)-> 용왕제(해금강)-> 골맥이 순으로 한다. 굿의 기간은 자금인 ‘상돈’이 많이 들어오면 이틀, 적으면 하루에 끝낸다. 굿은 바닷가 오리 (솟대)를 세운 곳에서 지낸다. 모든 동제터에는 말뚝에 왼새끼를 거는데, 그 줄을 ‘건구지’라고 부른다.섣달 그믐날 마을 입구인 함목의 벅시가 세워져 있는 곳에서 ‘들맞이굿’을 시작하고 정월초하루 새벽에는 ‘제만’을 모신다고 ‘굿장모’가 산에 올라가 산제를 지낸다. 산제는 사람들 모르게 제관부부만 간다. 제만(산신제)이 끝나면, 무당은 깨끗한 집을 찾아다니며 용왕굿을 해주고, 우물가에서는 골맥이굿을 행한다.제물에는 ‘치’자 달린 고기는 사용하지 않으며, 뱀의 모습과 같다고 숭어도 올리지 않는다. 또한 비늘이 작은 노래미 같은 고기는 사용하지 않고 돔-조기-민어처럼 비늘이 큰 것을 사용한다. 한편, 대구-명태(건어)-우럭(자반)은 비늘이 없어도 사용한다. 그리고 첫 대구를 잡으면 국을 끓여 성주상에 올리는데, 이것을 ‘첫 대구패미’라고 한다. 또한 돔과 대구처럼 비싼 고기를 제사상에 올리는 것을 ‘도죽걸이’라고 한다. 통영시 산양읍에서는 ‘도죽’이란 고기의 비늘을 안 치고 지느러미, 아가미는 그대로 둔 채 내장만 제거하여 그대로 찐 것을 가리키며, 보통 ‘도죽’으로 돔을 사용한다.근래의 동제는 굿은 없지만 무당들이 와서 대신 제사를 지낸다. 그리고 무당의 일을 보조해주는 제관을 선정하는데, 보통 이장이 담당하며 그를 ‘굿장모’라고 부른다. 제관 집에는 작대기를 걸어 외부인의 출입을 막고, 사흘동안은 소금만 가지고 밥을 먹는다. 그리고 공동묘지로 가는 쪽의 능골에서 목욕재계를 한다. 예전에는 당산에 남자만 올라갔으나 근래에는 제관 내외가 함께 음식을 가지고 올라간다. 제사는 음력 섣달 그믐에서 정월 초사흘 사이에 날을 받아서 지낸다.죽은 처녀를 신체로 삼아 풍어제를 올리기도 한다. 바닷가 지역에는 죽은 처녀를 신체로 삼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그 내용은 대체로 죽은 처녀를 묻어준 후 고기가 많이 잡히게 되어 여신으로 삼는 것이다. 도장포에도 ‘처녀를 모신 집’이라고 하여 나무집을 지어 그 안에 옷-빗-거울 등 젊은 처녀와 관련되는 물건들을 보관하고 해마다 제사를 지낸다. 그리고 숭어들이를 하여 처음 잡은 고기를 처녀를 모신 나무에 걸어 두어 감사와 풍어를 기원하기도 한다. 정기적인 제사는 도장포어촌계에서 주관을 하며 무당을 불러서 지낸다. 어부들 꿈에 처녀가 나타나거나 고기가 잡히지 않으면 정성이 부족한 것으로 여기고 별도의 제사를 지내기도 한다.신화매년 하는 굿은 ‘일신’, 3년마다 하는 굿은 ‘배신굿’이라 한다. 죽은 ‘처녀를 모신 집’이라 하여 나무집을 지어 그 안에 옷, 빗, 거울 등 젊은 처녀와 관련되는 물건들을 보관하여 해마다 제사를 지낸다. 그리고 숭어들이를 하여 처음 잡은 고기를 처녀를 모신 나무에 걸어 두고 감사와 풍어를 기원하기도 한다.제당의 형태솟대명칭 : 이 지역에서는 솟대를 ‘배선대’, ‘짐대’, ‘오리’라고 부른다.위치 : 도장포 마을 바닷가 쪽에 위치한다.재질과 형태 : 도장포 마을 솟대 역시 소나무를 깍아 만들었으며 솟대에 올려진 새의 형태 는 오리의 모습을 띠고 있다.기능 : 예로부터 새는 천신의 사자로서 신성시 되었으며, 천상과 지상을 연결시켜주는 매개체로서 나무가 작용하였다. 이처럼 솟대는 매개체인 우주나무와 하늘새가 결합한 형태로 구성되며 솟대의 새 모양은 마을마다 조금씩 다른데 정교하게 만들기보다는 간단히 양식화하여 만드는 경우가 보편적이다. 도장포 마을의 경우에는 솟대의 새로 대표격인 ‘오리’가 세워져 있는데 ‘오리’는 하늘, 땅, 물 안, 물 밖 등 모든 영역을 넘다들 수 있는 솟대 신앙의 상징물로 자리하고 있으며 물새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하여 풍요로움과 풍농을 관장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관련의례 : 도장포 마을의 동제 시기 때에 당산 청소가 끝나면 왼새끼를 꼬아 당나무와 큰샘에 금줄을 치며 또한 배선대인 오리(솟대)를 세우고 벅수(장승)을 새롭게 만든다. 근래에는 오리(솟대)가 상태가 좋으면 그냥 놔두고, 상하게 되면 새로이 한다. 또한 오리는 동쪽을 향하고 있으며 솟대에 제사를 지낼 때는 기둥는 솥을 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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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 통영시 한산면 매죽리 매물도(당금·대항마을) 동제
    경남 통영시 한산면 매죽리 매물도(당금·대항마을) 동제제명 : 동제신격 : 산신과 당신제당 :일시 :신화당제를 ‘동제’라 칭하며, 음력 정월 초삼일 날 새벽에 제를 모신다. 옛날에는 제를 지내기로 한 날에 초상 등 부정한 일이 발생하면 당산제를 거행하지 않고 부정이 가시고 난 다음 새로 날을 받아 지냈으나, 근자에 당금마을에서는 1월 3일을 고정해 당제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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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목포시 서산동 본당
    전남 목포시 서산동 본당제명 : 뱃고사신격 : 배서낭제당 :일시 :신화명절고사는 섣달그믐과 추석 때에 지내며, 섣달그믐의 고사는 선창에서 지내며, 추석고사는 바다에서 지낸다. 추석 때는 대개 바다에서 조업 중일 시기이기 때문에 바다에서 지내게 된다고 한다. 고사를 지내는 시간은 물이 가득 들어온 만조 때이다. 뱃고사의 시간이 만조 때인 것은, 물이 가득 불어난 상태처럼 고기를 많이 잡게 되기를 바라는 유감주술적인 믿음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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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여수시 남면 화태리 월전마을 헌석제
    전남 여수시 남면 화태리 월전마을 헌석제제명 : 헌석제 (용왕제, 풍어제)신격 : 용왕님제당 :일시 :신격용왕님 : 고기잡이를 알려주는 신으로 구체적인 형태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신화마을에서 행하는 공동제의를 사람들은 헌석제라 한다. 헌석제는 일종의 용왕제 또는 풍어제이다. 현석제는 음력 정월 초사흘날 오후 3시경에 시작된다. 제장은 마을회관 앞에 위치한 갯가와 ‘복바우’라 불리우는 바위에서 지낸다. 신격은 용왕님이다. 복바우에 제물 묻기 유래가 전하는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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