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

상기내용을 모두 옳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교과서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우리역사를 찾아내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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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무안군 운남면 동암리 원동마을 사도세자당제
    전남 무안군 운남면 동암리 원동마을 사도세자당제제명 : 사도세자당제신격 : 사도세자, 당산할머니, 당산할아버지제당 :일시 :신격사도세자 : 마을 대표격인 이, 박, 성 세 사람의 꿈에 서해바다로부터 괘가 표류해왔는데 자신이 사도세자라고 해 모시게 되었다. 구체적인 형태나 기능은 알 수 없다.신화마을 대표격인 성, 이, 박 세 사람 꿈에 서해로부터 한 척의 배가 표류해 와 마을 앞에 도착 세 사람을 불렀다. 배에 있던 사람이 자신을 사도세자라고 하며 서해를 돌다가 이곳의 산수가 좋아 의탁하고자 한다고 하였다. 성, 이, 박 세 사람은 꿈에서처럼 괘가 바다에 떠 있자, 이를 마을 사람들과 합심하여 제단을 쌓고 제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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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신안군 압해면 고이리 당제
    전남 신안군 압해면 고이리 당제제명 : 당제신격 : 왕망제당 :일시 :신격왕망 : 고려 태조 왕건의 작은 아버지인 왕망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왕망은 후삼국 호란시기의 안정과 왕건의 득세에 많은 노력과 희생을 아끼지 않았다.왕망은 큰 바위를 업었다 뒤집었다하는 힘이 강한 장수로 이곳에는 왕 못지않은 위세를 부리며 살았다 하며, 왕망은 돌을 쪼개서 만든 큰 지팡이를 짚고 군사를 호령하는 천하장사였다고 도 한다. 왕건에게 쫓기자 스스로 연못에 몸을 던져 죽었으나 시신은 찾을 수 없었다.신화지금부터 약 900여년 전 고려 태조 왕건의 작은 아버지인 왕망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왕망은 후삼국 호란시기의 안정과 왕건의 득세에 많은 노력과 희생을 아끼지 않았다. 왕건이 왕금이 된 후 농공행상 왕망의 공을 무시하자 왕망은 임금을 전복할 것을 기도했다. 그러던 중 거사의 기밀이 사전에 탄로되어 도망해 온 것이 압해도 고이섬이었다. 왕망은 이곳에 성을 쌓고 왕의 정치를 펴면서 군사를 훈련하고 고려 왕실에 도전하기위하여 날마다 세력을 확장하며 군량미도 비축하는 등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또한 왕망은 섬 근해를 지나가는 성선을 붙잡아 돈과 식량을 빼앗아 식량을 비축하는데 여념이 없었고, 또 성산에서 군사를 훈련하는 소리가 요란한가 하면 천지를 진동하는 말굽 소리와 말을 모는 먼지가 연기와 같이 솟아올랐다고 한다. 이렇게 붙잡은 배는 배시계라는 곳에 매어두고, 돈은 돈바위라는 곳에 감추어 두었다. 왕망은 큰 바위를 업었다 뒤집었다하는 힘이 강한 장수로 이곳에는 왕 못지않은 위세를 부리며 살았다 하며, 왕망은 돌을 쪼개서 만든 큰 지팡이를 짚고 군사를 호령하는 천하장사였다고 한다. 이 사실을 탐지한 조정에서는 왕망을 잡아오라는 분부가 내려, 많은 장수들이 왕망을 공격하였다. 왕망은 이때를 놓칠세라 지금까지 길러 온 군사들을 동원하여 끝까지 대항하였으나, 너무나 강한 관군을 대할 실이 없어 중과부족으로 왕망의 병졸들은 도방치고, 왕망도 도주하여 강 건너 무안군 마은면 두무치의 큰 바위를 들어 자기가 쓰던 도장을 감쳐두고, 더 이상 도주 할 곳이 없어 고시라는 곳에 뛰어들어 죽었다. 그 뒤를 쫒던 관군이 연못을 품어 왕망의 시체를 찾으려 하였으나 그를 찾을 길이 없고, 이상하게도 한 마리의 자라가 나타났다. 그래서 관군은 왕망의 목 대신 자라의 목을 베어 가지고 갈 것을 결심하여 자라의 목을 자르게 되자, 이 자라 목에서 피가 흘러 이 연못이 피망죽이 되었다고 한다. 왕망이 살았던 고이도의 큰 산을 왕산이라 하여 지금까지 음력 정월 보름날 제사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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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신안군 하의면 대리 당산제
    전남 신안군 하의면 대리 당산제제명 : 당산제신격 : 당할머니제당 :일시 :신화한 석학이 대리에서 후학을 가르치다 죽어 저승에서 상제를 만나 뵙고 이승으로 돌아오는 길에 당산할머니를 만났다. 당산할머니가 다시 세상에 나가거든 마을에 당을 다시 짓고 잘 모셔달라고 부탁하였다.* 참고문헌 :『다도해의 당제』31쪽…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1-27 조회 463
  • 전남 여수시 남면 연도리 연도마을 당제
    전남 여수시 남면 연도리 연도마을 당제제명 : 당제신격 : 산신, 대성산왕신제당 :일시 :신화장서린이라는 괴수가 봉산에서 청기와 망루를 지어놓고 해적행위를 하다 조정의 군사에게 체포되어 갔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고, 마을 동쪽 끝 연도등대 밑에 속평굴이란 동굴이 있어 옛날 네델란드 상선이 근해를 항애하던 중 폭풍을 만나 동굴쪽으로 밀려 난파되어 사람들이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보물상자를 동굴 속 어딘가에 숨겨두고 본국으로 갔다고 한다.*참고문헌 :『여천군의 문화유적』261쪽…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1-27 조회 500
  • 전남 여수시 삼산면 서도리 천제
    전남 여수시 삼산면 서도리 천제제명 : 천제신격 : 차돌이, 흰쥐제당 :일시 :풍수지리의 명인 차돌이지 역 : 전남 여수시 삼산면 서도리줄거리 : 어느 날 차돌이가 밥을 먹을 때 허기진 흰쥐가 한 마리 밥상머리에 나타난다. 차돌이가 밥을 한 숟가락 떠주자 그 후부터 끼니때마다 나타난다. 어느 날 밤 흰쥐가 차돌이에게 따라오라고 하더니 용몰랑 용연으로 데려간다. 용연물이 끓어오르더니 백발노인이 나타나 한라산 백록담 천이백년 묵은 용이라고 한다. 천년이 지나면 등천을 하는데 이백년이 지나도 등천을 하지 못하는 이유를 송광사 보조국사께 그 이유를 알아주라고 한다. 차돌이는 보조국사를 만나 그 이유를 알게 된다. 보조국사는 그 용이 욕심이 많아 두 개의 여의주 때문이라고 한다. 용에게 등천하지 못하는 이유를 말해주자, 용은 차돌이에게 여의주를 주면서 그 것을 삼키고 하늘을 보면 천문이 밝을 것이고, 땅을 내려다보면 지리에 밝을 것이라고 한다. 차돌이는 용이 준 구슬을 삼키고 풍수지리의 명인이 되어 높은 벼슬까지 하게 되고 마을 사람들은 차돌이가 죽자 마을신으로 모시고 천제를 지내게 되었다.등장인물 소개* 차돌이는 농사를 지으며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는 30대 어부이다. 가난하지만 착하게 살아간다. 마을사람들은 차돌이에게 법 없이도 살아갈 사람이라고 한다. 어느 날 차돌이가 밥을 먹고 있는데 허기진 흰쥐 한 마리가 나타난다. 차돌이는 허기진 흰쥐에게 밥을 한 숟가락씩 떠서 주었다. 휜쥐는 밥을 사라졌다. 그 뒤부터 흰쥐는 끼니때마다 나타났다. 흰쥐는 어느 날 밤 차돌이를 용신과 만나게 해준다. 차돌이는 용신으로부터 여의주를 받아먹게 되는데 그때부터 혜안이 밝아져 높은 벼슬에 오르게 된다.* 흰쥐 주먹만 한 흰쥐이다. 차돌이가 끼니 때 밥을 먹으려고 하면 밥상머리에 나타난다. 인간과 신의 매개자로 차돌이를 용신과 만나게 해준다.* 백발노인 한라산 백록담의 1200년 된 용으로 등천하지 못했다. 등천하지 못한 까닭은 욕심이 많아 여의주를 두 개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보조국사 송광사 스님으로 법력이 뛰어난 인물이다.배 경(1) 시대 : 옛날(2) 공간 : 섬마을, 한라산 백록담, 송광사(3) 지역 : 전남 여천군 삼산면 서도리5 신의 성격 해안이 밝고 풍수지리의 명인으로 마을의 수호신이다.애니메이션 줄거리전남 여천군 삼산면 서도리 작은 마을에 차돌이라는 사람 살았다. 차돌이는 얼마 되지 않은 농사일을 하면서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 근근이 생활을 했다. 어느 날 차돌이가 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흰쥐 한 마리가 밥상머리에 나타났다. 흰쥐는 허기진 모습으로 차돌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차돌이 눈을 말똥말똥 쳐다봤다. 차돌이는 밥을 먹으려다가 밥그릇에서 밥을 한 숟가락을 뚝 떠서 흰쥐 앞에 줬다. 흰쥐는 밥을 맛있게 먹고 사라졌다. 그 뒤부터 흰쥐는 차돌이가 밥을 먹을 때마다 나타났다. 어느 날 밤 흰쥐는 차돌이에게 따라오라는 시늉을 했다. 차돌이는 잠을 자려다 말고 흰쥐를 따라 나섰다. 흰쥐는 차돌이를 용몰랑 용연으로 데리고 갔다. 용몰랑 용연에는 용신이 살고 있다.신화어느 날 차돌이가 뒷뜰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쥐구멍에서 흰 쥐 한마리가 나와서 허기진 모습으로 음식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 후부터 차돌이는 밥을 먹을 때마다 쥐구멍 앞에 밥 한 술씩 떠놓으니, 흰 쥐는 차돌이 앞에 오더니 앞발을 들고 따라오라는 몸짓을 하였다. 차돌이가 흰쥐의 뒤를 따라간 곳은 용몰랑 용연이었다.그런데 갑자기 흰쥐는 사라지고 용연물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더니 백발노인이 물 위로 불쑥 솟아오르는 것이었다. 그 노인이 말하기를“차돌아! 나는 한라산 백록담에 있는 천이백년 묵은 용이다. 천년이 되면 등천을 하는 법인데, 나는 천년이 지나도 등천을 허락받지 못하고 있어 원통하기 이를 데가 없다. 차돌이 너에게 부탁하노니, 너는 송광사 보조국사께 그 이유를 알아주면, 반드시 그 은혜를 갚겠다”라고 차돌이에게 신신당부하고는 물속으로 사라졌다.착하고 인정 많은 차돌이는 여러 날이 걸려 송광사에 도착하여 보조국사를 알현했다.“국사님, 저는 서도리에 사는 이차돌이라는 사람입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우리 마을 용몰랑 용연에는 천이백년이나 된 용이 있는데, 천년이 지나도 등천하지 못함을 원통하게 생각하여 제게 그 이유를 알아 달라고 부탁 하였습니다”라고 자세하게 용의 부탁을 말했다.“관세음보살. 그 용은 욕심이 너무 많으니라. 여의주를 하나만 가져야 하는데 두 개를 가져서 옥황상제님의 노여움을 샀느니라”라고 일러주었다.차돌이는 용연으로 돌아와 용에게 보조국사의 말씀을 전해 주었더니, 용은 입에서 구슬 하나를 토해내어 차돌이에게 주면서“내가 너에게 은혜를 반드시 갚겠다고 약속하였다. 이 구슬은 매우 진귀한 보물이다. 이 구술을 삼키고 하늘을 보면 천문에 밝을 것이고, 땅을 내려다보면 지리에 박ㄹ을 것이다”라고 말을 끝내자마자 갑자기 하늘에서 뇌성병력과 함께 번개가 치더니 구름이 용연을 덮어 용을 감싸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었다.차돌이는 용으로부터 얻은 구슬을 삼키고 땅을 내려다보니 땅속이 물속을 들여다보듯 환해지는 것이었다. 그 후부터 차돌이는 풍수지리의 명인으로 그 소문이 멀리까지 퍼지게 되어서 후에는 나랏님의 부르심까지 받아 높은 벼슬을 얻어 평생 동안 잘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오늘 날에도 용몰랑 용연에 천제단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낸다.* 참고문헌 :『명소지명유래지』, 전라남도, 1987, 154~155쪽…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1-27 조회 1005
  • 전남 영광군 대마면 성산리 평금마을 당산제
    전남 영광군 대마면 성산리 평금마을 당산제제명 : 당산제신격 : 열두 당산제당 : 입석과 당산나무일시 : 음력 1월 15일(1992년 중단)전남 영광군 평금마을당산제와 줄다리기제명 : 당산제내용 : 평금마을은 1992년까지 매우 엄숙한 마을 행사로 당산제를 모셨다고 한다. 그러나 마을에 사람이 없어 1992년부터는 당산제를 폐지했다고 한다. 현재는 당산제를 진행하지 않고 있으나 2005년 11월 1일 영광농악보존회와 연계해 재현한 바 있다.특징 : 당산은 12당산을 모시고 있고, 그 신체는 당산나무와 입석이다. 당산제를 지냈을 때는 줄다리기도 억세게 했고, 농악도 유명했다고 한다.제작의도 : 본 영상은 2005년 재현한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이 음원은 인터넷 익스플로러(IE)에서만 지원 가능 합니다.평금마을의 당산제는 12당산 곳곳에서 지낸다. 그러나 현재는 당산제가 중단된 상태이고, 본 음성자료는 <영광 마을굿 축제>의 일환으로 재현된 자료이다.개괄평금마을은 1992년까지 매우 엄숙한 마을 행사로 당산제를 모셨다고 한다. 그러나 마을에 사람이 없어 1992년부터는 당산제를 폐지했다고 한다. 현재는 당산제를 진행하지 않고 있으나 2005년 11월 1일 영광농악보존회와 연계해 재현한 바 있다. 당산은 12당산을 모시고 있고, 그 신체는 당산나무와 입석이다. 당산제를 지냈을 때는 줄다리기도 억세게 했고, 농악도 유명했다고 한다.제의내용마을의 네 곳에 입석이 있다. 그리고 마을 뒤쪽 논 가운데 당산나무(당산할아버지)가 있고 마을 중앙에 당산나무(당산할머니)가 있다. 본디의 당산제는 12당산을 돌아다니면서 곳곳에서 당산제를 지내고, 다음날 아침 줄다리기 할 줄을 만들었다. 줄을 만들 짚은 집집마다 몇 뭇씩 걷어서 내고, 마을 청년들이 모여 줄을 만든다. 이렇게 만든 줄을 바닥에 놓고 매구꾼들이 줄굿을 친 다음 마을을 한 바퀴 도는 오방돌기를 했다. 오방돌기를 마친 후 줄다리기를 하고, 할머니당산에 줄을 감았다.2005년 11월 1일 재현된 당산제에서는 문굿, 당산제, 당산굿, 탈춤시연, 줄굿, 오방돌기, 줄다리기, 줄감기, 샘굿의 순으로 진행됐다.신화조선조 중엽에 이감관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에게는 재산이 넉넉하여 남부럽지 않게 잘 살았으나 슬하에 일점혈육이 없었다. 그는 자식이 없으므로 외로운 생활을 지냈으나 마음시가 착하고 도량이 넓어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처지였다. 마을에 어려운 일이 있거나, 이웃의 어려운 사정을 보면 자시 일처럼 돌보아 주었고, 흉년이 들면 가난한 이웃을 돌보는 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하루는 마을 사람을 모아 놓고 “우리가 이렇게 모여 사는 것도 서로의 인연이 맺어진 것이니, 이웃 간에 서로 돕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마을이 잘 살고 서로 화합하여 우리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재단을 만들어 마을의 안녕과 주민의 태평선대를 기원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하였다. 이 말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처음에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으니 생각해보니 그럴싸한 일이라 생각되어 “좋은대로 하십시다” 하고 호응하였다. 그러면 어떤 방법으로 제단을 만들어야 하겠습니까? 하고 마을 사람들이 물었다. 이감관은 “우리 마을을 수호하는 신의 재단을 소홀히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내 자식은 없으나 이 마을을 위해서 평소 생각한 바 있습니다. 우리 마을이 평지에 있고 들이 좋으니 후손들이 오래오래 평안히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거북이형의 제단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이 일은 나에게 맡겨 주시기 바랍니다.” 마을 사람들이 생각해 보니 이 감관이 본래 남다른 데가 잇고 솔선해서 만든다 하니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이감관은 이내 고산 아래에서 자라모양의 바위를 옮겨 제단을 만들고 매년 3월 그믐에 마을 공동제를 지내게 되었다. 이로부터 수년이 지나 마을은 재앙이 없어지고 차츰 부자 마을이 되었다. 그리고 서로 돕고 협조하는 기풍이 일어나 인심 좋은 마을로 변하였다. 어느덧 이감관은 늙어 자시에 들게 되었는데, 하루는 마을사람들을 불러놓고 유언하기를 “내 나이 늘고 자식이 없어 나의 재산을 전할 곳이 없으니, 모든 재산을 평금마을의 재산으로 하여 주시오”하고 운명하였다. 마을사람들은 그 고마움을 보답하기 위하여 장례를 마을 공동으로 후히 치르고 의논한 끝에 제사는 마을제인 3월 말일로 정하고 마을에서 제사를 지내주기로 하였다. 지금도 평금마을에는 매년 3월 말일에 동제와 같이 이감관의 제사를 지내고 있다.* 참고문헌 :『영광의 노래와 글모음』 전설 편, 영광향토사연구회, 1986, 65~266쪽.제당의 형태입석(당산독)위치 : 마을의 4곳에 입석이 각각 한 基씩 위치하고 있다.재질과 형태 : 마을 입구 길 옆에 있는 입석은 높이가 340cm, 폭 50cm, 두께 28cm, 둘레 170cm의 四角石柱로 보기 드문 대형의 입석이다. 돌은 화강암인데 자연석 그대로가 아니라 손질을 하여 사각석주로 만든 형태이다. 이 입석이 있는 곳을 마을에서는 “장타리”라고 부르고 있는데 옛날에 이곳에 장이 섰기 때문에 그런 지명을 얻은 것이라 한다. 마을에서 북쪽으로 100m 떨어진 마을 뒤편 논두렁에 있는 입석은 주변에 돌을 쌓아 석대를 하였다. 높이는 197cm, 폭 48cm, 두께 40cm, 둘레 150cm의 사각석주형이다. 이 입석 역시 손질을 하여 만든 흔적이 보이며 마을에서는 당산이라고 부른다.기능 : 입석을 이 마을에서는 대개 “당산독”이라고 부르고 있다. 모두가 堂山神으로 모셔졌기 때문이다. 마을의 4곳에 세워져 四方을 수호하는 역할을 하며 마을의 무사안녕과 풍농을 기원한다.특징 : 1992년부터는 마을에서 의견을 모아 당산제를 폐지했으나, 그 전까지만해도 영광군의 대표적인 당산제의 하나로 꼽혔고, 농악 역시 이름이 있었다. 이 마을은 본디 열두당산이 있어서 하룻밤을 꼬박 새우며 당산제를 모셔 왔고, 그 중의 4곳이 바로 이들 입석이 있는 곳이었다.…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1-27 조회 535
  • 전남 완도군 청도면 당제
    전남 완도군 청도면 당제제명 : 당제신격 : 한 장군제당 :일시 :신화신라시대 정해진 전성기에 한 장군은 청산을 지키고 있었다. 이 한 장군은 힘이 천하장사인데다 칼과 활 창 등 무술이 뛰어나 당 등의 적도들이 감히 청산 근해에 얼씬도 못하였다. 한 장군은 학덕과 지혜가 뛰어나 섬들의 방비뿐만 아니라 주민들에 교학을 위시하여 농어업을 권장하며 효자 열녀를 포상하고 미풍양속을 조장하여, 평소 주민들을 가족처럼 애호라며 선도하였다. 그가 천수를 다하여 세상을 뜨자, 도민들은 친상을 당한 듯 슬퍼하며, 그의 유해를 지석묘로서 안장하고, 묘 앞에 당을 지어 한 장군의 영혼을 수호신으로 받들어 모시고, 매년 제사를 모셨다.* 참고문헌 :『완도군지』 완도군, 1992, 926~927쪽.…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1-27 조회 467
  • 전남 해남군 송지면 갈산리 당제
    전남 해남군 송지면 갈산리 당제제명 : 당제신격 : 당할머니제당 :일시 :신화옛날 경상북도 어디에선가 윤선도하고 지리박사가 세불장개를 말을 타고 가는데, 하인이 말하기를 “샌님 여기서는 말을 내리셔야지 어떤 사람도 여기를 말을 타고 못갑니다.”하였다. 그런께 그분(윤선도)이 “무슨 요란한 것이 대장부 가는 길을 막는다냐 말을 끌어라”하고 호령했다. 그래서 마부가 말을 끌고 가는데, 말 앞발이 부러져 버렸다. 당할머니가 부러뜨려 버린 것이다. 그란께 윤선도 천지팔결을 막 읽어 뒤낀께, 파란새 한 마리가 당할머니한테 나와서 하는 말이 “아이고 나는 어디 가서 물을 얻어 먹을꼬”하고 원망을 하였다. 윤선도가 이때 “이런 요란한 것을 한길에다 놔두고 낭패를 시켜서는 안 된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리고는 “저기 칡머리 끝으로 한쪽으로 가서 있지, 이 번화한 곳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당할머니가 여기를 오셔서 여기에 살던 오씨들의 집안으로 선몽을 하시기를 ‘여기서 나 물이라도 얻어먹을 곳이 없어서 의지라도 하면 어떠하 것냐’했다. 그 이후로 오씨들의 집인지 마을에서 했는지 몰라도 당집을 지어 모시게 되었다.(이준곤 교수 자료제공)…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1-27 조회 453
  • 제주 북제주군 성산면 삼달리 본향단
    제주 북제주군 성산면 삼달리 본향단제명 :신격 : 황서국서 어모장군 부부, 김씨 영감제당 :일시 :신화황서국서 어모장군은 서울 황정승의 아들 삼형제 중의 막내이다. 황정승이 역적으로 몰려 병이 낫는데 점을 쳐보자 황우피를 먹어야 살 수 있다고 하다. 나라에서는 백정을 모두 가둬버려 황우를 잡을 사람이 없게 되자 막내가 그 일을 하고 역적으로 몰려 집을 떠나게 되었다. 좌정할 곳을 찾아다니다 와갱이(성산면 삼달리)가 좌정할만 해 심방을 찾았는데 김씨 영감이 병에 사경을 헤매고 있어 황서국서 어모장군이 현몽하여 나를 모셔주면 살려주겠다고 하여, 김씨 영감이 꿈에서 하라는대로 하고나자 병은 씻은 듯 낫고 상통천문 하달지리하여 심방이 되어 죽을 사람 살 사람을 잘 알아 맞춰 부자가 되었다. 제주에 9년이나 흉년이 들어 사람들이 죽어가자 김씨 영감이 곡식을 나눠줘 죽어 가던 백성이 어려운 고비를 넘겼다. 나라에서 김씨 영감을 불러 통정대부 벼슬을 주었다. 그 후로도 계속 점을 치고 심방의 일을 보다 죽게 되었다. 나라에서 밤나무로 신상을 만들어 황서국서 어모장군부부와 김씨 영감 신상을 만들어 내주자 마을에서 당에다 신상을 모시게 되었다.…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1-27 조회 446
  • 제주 제주시 건립동 칠머릿제
    제주 제주시 건립동 칠머릿제제명 : 영등환영제, 영등송별제신격 : 도원수감찰지방관, 용왕해신부인제당 :일시 :신격용왕해신부인 : 용왕국의 용왕부인으로 만민해녀와 상선, 중선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장수 장명과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주는 신이다.도원수감찰지방관 : 하늘이 아버지이고 땅이 어머니로 천하의 명장이다. 나라가 어지러울 때 남북적을 평정하였는데 천자님이 소원을 들어 주겠다고 했으나 사양하고 용왕부인을 배필로 맞았다. 앉아서 천리를 보고, 서서 천리를 보는 신이 되어 칠머리에서 좌정하여 생산을 관장하고 장적과 호적을 주관한 신이다.신화칠미릿당에 좌정된 신은 도원수감찰지방관 용왕해신부인이다. 도원수감찰지방관은 강남천자국 가달국에서 솟아났다. 하늘은 아버지요 땅은 어머니요ㅡ 장성하니 천하 맹장이 되었다.때마침 남북적이 강성하여 국가가 어지러우니, 도원수감찰지방관이 천자님에게 들어가서 남북적을 평정하겠다고 했다. 천자님은 크게 기뻐하여 무쇠투구 · 갑옷 · 언월도 · 비수검 · 나무할 · 보래활을 내주니, 기치창검이 일월을 희롱하여 백만대병을 거느려 남북적을 쳐 넘겼다. 천자님이 또한 대희하여 크게 칭찬하시고, 소원을 말하면 무엇이든지 들어 주겠다고 했다.도원수감찰지방관은 모든 것을 사양하고 그 길로 백만대병을 거느려 용왕국에 가 용왕부인을 배필로 맞았다. 용왕부인을 거느리고 제주도로 돌아와 한라산 백록담으로 가서 진을 치고 혈을 보았다. 혈이 떨어진 곳을 찾아 내려오는데, 먼저 황세왓에 내려와 진을 치고 보니 사기왓에 혈이 떨어졌으므로, 사기왓에 내려와서 진을 치고 보니 혈은 칠머리로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산지 칠머리로 내려와, 건립동 백성의 나는 날 생산을 차지하고, 죽는 날 물고를 차지하며 장적 · 호적을 차지했다. 앉아서 처니를 보고 서서 천리를 보는 신이 된 것이다.한편 용해해신부인은 만민해녀와 상선 · 중선을 차지해서, 장수 장명과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 주는 신이 되었다.제일은 해해마다 2월 초하루 영등환영제, 2월 열나흘 영등송별제이다.* 참고문헌 :『제주도신화』220~221쪽…
    작성자최고관리자 시간 11-27 조회 450
  • 강원 고성군 죽왕면 문암리 백도마을 성황제
    강원 고성군 죽왕면 문암리 백도마을 성황제제명 : 성황제와 별신굿신격 : 숫성황신, 암성황신제당 : 마을뒷산 숫성황당, 바닷가 암성황당(자연석)일시 : 음력 1월 3일, 3년에 1회 별신굿개괄문암1리 백도는 ‘망개’라 불리는데 예전에 일 만 호가 살아서 ‘만포만개리’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초3일날 마을 앞산에 있는 숫성황신과 바닷가 암성황신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특별히 목조남근을 암성황신에게 제물로 바친다.제의내용문암1리 백도는 ‘망개’라 불리는데 예전에 일 만 호가 살아서 ‘만포만개리’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초3일날 마을 앞산에 있는 숫성황신과 바닷가 암성황신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특별히 목조남근을 암성황신에게 제물로 바친다. 목조 남근은 제관 가운데 한 사람이 깎는데 자신이 남근을 깎는다고 말해서는 안되고 남근을 타인에게 보여주지도 않는다. 남근은 길이 한 자, 지름 5㎝정도의 크기인데 반드시 오리나무로 3개를 깎는다. 남근을 암성황신이 있는 바위구멍에 꽂는데, 구멍이 한 번에 맞으면 풍어가 된다고 믿는다. 망개마을의 남근신앙과 인근에 있는 미륵석상은 민속적 이미지에 맞는 관광상품이 될 수 있다.문암1리와 문암2리로 구성되어 있다. 문암1리는 백도마을로 불리는데 157가구이고 이중 김씨가 50여 가구다. 논과 밭도 있고 가축도 사육하고 있어 바닷가에 접해 있지만 반농반어라 할 수 있다. 그 외 민박도 주요한 수입원이다. 백도마을이라 이름한 것은 일명 흰섬이라 불리는 백도가 해안에서 약 500m 떨어져 있는데 갈매기 배설물로 섬 전체가 덮혀 백색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일출과 일몰 때 섬의 장관은 옛날 임금님이 살던 커다란 성처럼 우람하게 보인다고 한다. 마을 산밑 지표에는 융기문, 손톱무늬 회갈색 토기편이 다량 수집되어 1997년 국립문화재연구소 검사 결과 이것이 신석기 시대와 철기 시대유물로 추정되고 있어 남한의 신석기 문화의 이동경로를 밝혀주는 귀중한 자료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만호리, 괘진리, 망포리, 망개리 등으로도 불린다. 삼국시대 고구려가 이 곳에 침략하여 신라장군을 죽였다. 신라장군이 죽은 곳에 난데없이 돌로 된 미륵동이 생겨났다. 장군의 부인이 이곳에서 애절히 울다가 부인이 죽어 뱀이 되어 미륵동을 지켰다. 부인이 죽으며 내가 뱀이 되어 미륵동을 지킬 터이니 나를 잘 보살피면 훗날 신라인 만호가 거주하게 할 것이라고 하여 만호리로 한 때 불렸다. 이때 고구려의 박씨가 그 뱀을 죽여 마을주민들은 마을이 곧 망한다하여 망포리라 불렀고, 이후 부락 앞에 개[浦]가 있어 마을을 바라본다고 하여 망개리라 이름하였다. 1919년에 와서 문암리로 되었고, 1954년에 1리와 2리(괘진리)로 나뉘어졌다. 이 마을의 가장 큰 명절은 설날과 추석이다. 마을의 제의는 다음과 같다.?성황제(3일)초사흘에 성황제가 고정되어 있지만 마을에 큰 부정이 있으면 조정할 수 있다. 자금은 가가호호 정성껏 갹출한다. 섣달에 생기복덕을 보아 제관을 선임한다. 제물은 풍부할 때는 소도 잡아 썼으나 지금은 돼지를 잡아 쓴다. 어물은 앞 바다에서 나오는 문어, 열기, 오징어를 쓰며, 탕도 물론 올리며 제주를 봉하고, 제관이 올라가 제를 올린다. 자작도 해수욕장 바위에 암 성황이 있고, 이곳 성황은 수 성황이다.제관들이 할머니 성황을 모셔와 할아버지 성황도 모셔와 한 군데에서 제를 올린다. 따로 제단을 만들어 거기에서 제를 올린다. 가가호호 호주의 성명과 생기를 써서 소지를 전부 올려준다. 그래서 낙성이 되는 소지는 그분들에게 알려, 또 낙성된 각자가 와 소지를 올려야 한다. 제사 후 음식은 동네 모두가 제관 집에서 모여 나눠 먹는다.문암1리 바닷가에 있는 암성황제는 해마다 정월 3일 새벽 4시경 올리는데 이때 문암2리 수 성황제도 함께 지낸다. 암 성황당은 수십 개의 자연석 구멍이 있으며 시멘트로 제단을 만들어 놓았다. 제관으로 선정된 7명은 오리나무로 길이 30㎝, 지름 5㎝정도의 남근을 3개 깎아 가지고 가서 처음에 한 개를 넣어서 구멍이 맞으면 풍어가 된다고 믿는다.마을 이장은 한복을 한 벌 지어 암 성황신에게 바치는데 암 성황신은 시집을 못가고 바다에 빠져 죽은 여성이므로 그 영혼을 위로하는 뜻이라고 한다. 5년마다 풍어굿을 할 때 무당이 주관하여 암수성황신을 굿 당에 봉안하고 합사한다. 이 마을의 남근봉헌은 한 어부가 고기가 잘 잡히지 않자 홧김에 암 성황당에 가서 육담으로 욕설을 퍼붓고 바다로 나갔더니 만선이 되었다고 전한다. 이후에 남몰래 암 성황신을 위하는 목각남근을 바치고 늘 풍어가 되자 주민들이 동참하여 제사를 올린다고 한다. 문암 2리 제당은 군부대 초소입구 야산에 바다쪽을 보고 있는데 기와집으로 지었다. 내부에는 목판에 성황신위를 모시고 있으며 1970년 음력 4월 25일날 중건하였다.?성황굿3년에 한 번씩 큰굿을 한다. 배타는 사람은 정성으로 상을 하나씩 차려 놓는다. 무당들이 신이 올라서 신 굿을 하고, 어민들 풍어를 축원을 한다. 자금은 선주들하고 부락유지들이 갹출한다.신격당제명신화삼국시대 고구려가 침략하여 신라장군을 죽였는데, 죽은 곳에 돌로 된 미륵동이 생겨났다. 장군 부인이 그 곳에서 애절하게 울다가 죽어 뱀이 되어 미륵동을 지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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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원 삼척시 원덕읍 갈남2리 신남마을 성황제
    강원 삼척시 원덕읍 갈남2리 신남마을 성황제                  제명 : 성황제신격 : 남성황(엄씨할아버지), 여성황(처녀)제당 : 남성황당(마을 입구 산자락), 여성황당(마을 뒤 산자락 끝부분)일시 : 음력 1월 14일~15강원 삼척 해신당 여성황(처녀)지역 : 강원도 삼척시 갈남리명칭 : 여성황제명 : 해신제신격 : 해신당의 주신격인 처녀에 대해서는 애바위와 관련된 전설이 전하는데 이 마을에 사는 처녀 총각이 서로 좋아하는 사이였다고 한다. 처녀는 매일 바다에 나가서 해초를 뜯어 왔는데 그 때마다 총각이 뗏목으로 애바위까지 태워주곤 하였다. 총각이 육지에 돌아와 있는 동안 갑자기 폭풍우가 몰아 닥치고 파도가 거세게 일어나 처녀가 휩싸여 죽고 말았다. 그래서 그 바위를 애바위라고 하는데 이후에 고기가 잡히지 않았다고 한다.관련설화 : 어느 날 마을 어부의 꿈에 처녀귀신이 바다 속에서 나타나기에 그 곳에 가니 처녀의 시체가 물에 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육지에서 장사를 지내 주었더니 풍어가 되었다 한다. 처녀의 시체를 건진 해변가 근처에 향나무가 있으므로 이 나무에 처녀의 신을 모셔 놓고 매년 제사를 지내다가 해신당을 짓고 제사를 올린다. 처녀의 신을 모시고 제사를 지낼 때 처녀를 위로하기 위해서 남자가 필요하므로 남자의 상징인 남근을 깎아 바치고 풍어와 안전을 기원한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매년 남자들이 정성껏 향나무로 남근을 깎아 바치는 것이 중요한 의례가 되었다.해신당에는 ‘옛날에 청춘남녀가 해신당 북쪽 애바위란 곳으로 놀러간 후 남자가 여자를 그곳에 내려놓고 잠시 집으로 와 일을 하다가 다시 애바위로 가려고 했다. 데리려 가려고 하자 마침 큰바람이 불어와 배를 띄우지 못하게 되었고, 처녀는 그곳에서 날 실으러 오라고 애를 쓰며 소리치다가 기진맥진하여 숨을 거두었다. 그 후 언젠가 어업이 잘 되지 않던 한 어부가 그곳에서 우연히 오줌을 갈긴 후 꿈에 한 여인이 나타나 현몽을 하여, “네 소원을 들어주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처녀신과 남근봉헌 이야기지역 : 강원도 삼척시 신남마을줄거리 : 애바위 전설은 마을에 사는 처녀 총각이 서로 좋아하는 사이로 처녀는 매일 바다에 나가 해초를 뜯는데 총각이 뗏목으로 애바위까지 데려다 주었다. 하루는 총각이 육지로 돌아오는 동안 폭풍우가 닥쳐 처녀가 그만 죽고 말았다. 그 후부터 고기가 잡히지 않았다. 어느 날 어부의 꿈에 처녀귀신이 바다 속에 나타나 그 곳에 가보니 처녀의 시신이 떠올라 장사지내주니 풍어가 되었다. 매년 남자들이 향나무로 남근을 깎아 바쳤다.등장인물 소개* 처녀신 - 20대 섬 처녀. 생활력이 강하고 예쁜 얼굴. 한복을 입었음. 해초를 뜯으러 갔다가 파도에 휩쓸려 죽었는데 신으로 좌정되었음.* 총각 - 20대 섬 총각. 처녀와 결혼을 약속한 사이.* 어부 - 40대.배 경(1) 시대 : 옛날(2) 공간 : 섬마을, 바다 가운데 있는 바위, 절벽에 있는 해신당(3) 지역 :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갈남2리 신남마을분 류 : 풍어의 여신애니메이션 시나리오 : “아들 하나만 점지해 주십시오.”“오늘 출항을 합니다. 고기를 많이 잡게 해 주십시오.”사람들이 오늘도 해신당에 향나무로 남근을 깎아 바치며 기원을 합니다.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갈남2리 해신당에 남근을 봉헌하게 된 유래가 있답니다. 옛날 옛날에 이 마을에 서로 사랑하는 처녀와 총각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성실하고 누구보다 부지런했습니다. 처녀는 매일 바다 가운데 바위로 해초를 뜯으러 다녔습니다. 총각이 날마다 배로 데려다 주고 데려오고 했습니다. “오늘은 날씨가 참 좋아. 좋은 미역을 많이 뜯을 수 있겠어.”“그럼 오늘은 빨리 데리러 올게.”총각은 처녀를 바위에 내려주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점심때가 지나 총각은 처녀를 데리러 가려고 바닷가에 배를 댔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비바람이 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다가 큰일 나겠네. 빨리 가야겠군.”총각이 배에 오르려고 하자 바닷가에서 집으로 돌아가려던 사람들이 총각을 막았습니다.“지금은 안 되네. 조금 기다려 보세.”총각은 잠시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한차례 몰려오다 그치겠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빗줄기는 굵어지고 파도는 거칠어졌습니다.“이러다가는 정말 안 되겠어요. 절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가봐야겠어요.“안돼. 그러다 자네 큰일 나.”마을 사람들은 총각이 배를 타지 못하도록 붙들었습니다. “제발 가게 해주세요. 제가 가지 않으면 파도에 휩쓸러 죽게 될지도 몰라요. 가야 됩니다.”총각이 애걸을 했지만 마을 어른들은 막아섰습니다.비바람은 저녁이 되어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습니다. 날씨는 언제 그랬느냐싶게 화창하게 개었습니다. 총각은 얼른 배를 탔습니다. 처녀가 제발 무사하기를 빌었습니다.총각이 바위에 도착하자 처녀는 오간 곳이 없었습니다. 총각은 바위에서 목 놓아 처녀를 불렀습니다. 아무런 대답이 없었습니다. 총각은 힘없이 돌아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그때부터 사람들은 처녀가 해초를 뜯다 파도에 휩쓸러간 바위를 애바위라 불렀습니다. 처녀가 죽고 난 다음부터는 마을사람들이 배를 타고 고기를 잡으러 나가면 고기가 잡히지 않았습니다. 배사고도 잦았습니다. 어느 날 한 어부의 꿈에 처녀가 나타나 향나무에서 자기를 위해 제사를 지내달라고 했습니다. 어부는 정성껏 제물을 장만해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리고 고기를 잡으러 갔습니다. 그러나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부는 실망하고 주막에 들러 술을 마셨습니다. 술에 취해 돌아오는 길에 어부는 화가 나서 향나무에 대고 오줌을 쌌습니다.어부는 다음 날 고기가 잡히지 않지만 또 다시 배를 타고 고기를 잡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어부는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다른 날과 별다른 일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향나무에 오줌을 쌌던 것이 생각났습니다.어부는 마을 사람들과 의논하여 해신당을 짓고 처녀의 원혼을 모셨습니다. 그리고 향나무로 남근을 깎아 받쳤습니다. 그 뒤부터 고기를 잡으러 나가는 배마다 만선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마을사람들은 아들 낳기를 바라면 남근을 깎아 처녀 신에게 받쳤습니다. 고기를 잡으러 갈 때도 남근을 깎아서 바쳤습니다.이 동영상은 인터넷 익스플로러(IE)에서만 지원 가능 합니다.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갈남 해신당지역 :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갈남신남마을제명 : 해신제제당 : 해신당 (죽은 처녀를 서낭으로 모시는 당), 본성황당 (마을의 남성황당)위치 : 신남마을(섶내미마을) 산기슭에 큰당이라 불리우는 ‘본서낭당’ 이 위치하며 해신당은 마을 뒤쪽을 북쪽에서 감싸고 있는 산의 끝자락에 그 모양이 마치 남근의 뿌리처럼 생긴 곳에 위치한다.형태 : 해신당은 기와지붕에 정면은 넉넉한 한 칸으로 약 3미터쯤 되며 측면은 두 칸이고 이 역시 3미터 정도로 충효각 형태의 건물이다.좌정된 신격 : 해신당의 주신격인 처녀(애바위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짐)와 마을시조인 엄씨할아버지를 모시는 남성황당특징 : 안인진리의 해랑당 설화, 주문진 진이서낭당 설화, 삼척 해신당 설화는 동해안의 서낭설화의 모체를 이루고 있으며 해신제는 동해안에서 가장 잘 알려진 제의로 지금도 남근봉헌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제사는 두 성황당에서 동시에 지내는데 5명의 제관 중 세 명은 남성황당으로 가고 두 명은 해신당에 가서 제를 올린다. 마을의 남성황당은 본성황당이라고 하는데 마을시조인 엄씨할아버지를 모시고 있으며 해신당은 죽은 처녀를 신으로 모시고 있으며 향나무로 깎은 남근을 바치고 있다.제의 소멸과 변천 : 지금은 관광문화상품으로 발전하여 해신당 공원이 조성되어 해신당 이외에도 어촌민속전시관, 대형남근조각품들이 설치되어 있고 바다에는 애랑낭자가 재현되어 있어 흥미와 이색적인 볼거리가 되고 있으며 어촌민속전시관에는 성(性)을 소재로 한 성민속실이 눈길을 끈다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갈남2리 해신당지역 :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갈남2리 신남마을제명 : 해신제제당 : 해신당 (죽은 처녀를 서낭으로 모시는 당), 본성황당 (마을의 남성황당)위치 : 신남마을(섶내미마을) 산기슭에 큰당이라 불리우는 ‘본서낭당’ 이 위치하며 해신당은 마을 뒤쪽을 북쪽에서 감싸고 있는 산의 끝자락에 그 모양이 마치 남근의 뿌리처럼 생긴 곳에 위치한다.형태 : 해신당은 기와지붕에 정면은 넉넉한 한 칸으로 약 3미터쯤 되며 측면은 두 칸이고 이 역시 3미터 정도로 충효각 형태의 건물이다.좌정된 신격 : 해신당의 주신격인 처녀(애바위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짐)와 마을시조인 엄씨할아버지를 모시는 남성황당특징 : 안인진리의 해랑당 설화, 주문진 진이서낭당 설화, 삼척 해신당 설화는 동해안의 서낭설화의 모체를 이루고 있으며 해신제는 동해안에서 가장 잘 알려진 제의로 지금도 남근봉헌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제사는 두 성황당에서 동시에 지내는데 5명의 제관 중 세 명은 남성황당으로 가고 두 명은 해신당에 가서 제를 올린다. 마을의 남성황당은 본성황당이라고 하는데 마을시조인 엄씨할아버지를 모시고 있으며 해신당은 죽은 처녀를 신으로 모시고 있으며 향나무로 깎은 남근을 바치고 있다.제의 소멸과 변천 : 지금은 관광문화상품으로 발전하여 해신당 공원이 조성되어 해신당 이외에도 어촌민속전시관, 대형남근조각품들이 설치되어 있고 바다에는 애랑낭자가 재현되어 있어 흥미와 이색적인 볼거리가 되고 있으며 어촌민속전시관에는 성(性)을 소재로 한 성민속실이 눈길을 끈다개괄신남리 해신제는 동해안에서 가장 잘 알려진 제의로 지금도 남근봉헌(phallicism)이 이루어지고 있다. 마을의 남성황당은 본성황당이라고 하는데 마을시조인 엄씨할아버지를 모시고 있으며 해신당은 미역을 따다가 죽은 처녀를 신으로 모시고 있으며 향나무로 깎은 남근을 바치고 있다. 제사는 정월 대보름과 시월 첫 말날에 지낸다. 제사는 두 성황당에서 동시에 지내는데 5명의 제관 중 세 명은 남성황당으로 가고, 두 명은 해신당에서 가서 제를 올린다. 제물은 쇠고기와 어물을 주로 쓰고 어촌계에서 경비를 마련한다.제의내용해신제는 본당(엄씨 할아버지 서낭당)에 먼저 가 축을 읽으며 제를 올린다. 그 후 제물을 당주 집으로 철수한 후, 다시 제물을 차려 해신당 (작은당)으로 가서 제를 올린다(축이 없음). 걸리는 시간은 보통 4시간여가 소요된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당주 포함 제관은 7명이었고 남근도 7개를 깎았다. 정월대보름과 10월 첫 번째 말일(午日)에 해신제를 올리는데, 부정을 치기 위하여 금줄을 1주일 전부터 친다. 금줄에는 창호지 개수를 홀수로 하여 같이 묶고, 또 황토를 그 앞에 70㎝ 간격으로 놓는데 그것도 홀수로 놓는다. 제관은 생기를 보아 1주일 전쯤 선출하고, 선출된 제관 중에서 남녀 부부가 모두 생기에 맞는 부부 한 쌍을 선정하여 당주로 삼고 당주 집에서 제물을 장만한다.당주가 된 두 내외가 제물을 만지는데 여자는 메(밥)만 만질 수 있고, 나머지 제물은 모두 남자가 장만한다. 어물은 이 마을에서 잡히는 것은 모두 올리는데 어물의 꼬리는 다듬어 올린다. 제물은 풍성하게 하여 송아지도 한 마리 잡았다. 편(떡)은 서되 서 홉을 하는데 반드시 백설기만 사용했다. 제주는 금줄을 칠 때 본당 아래 쌀 3되와 누룩으로 담가 제사 당일 사용했다. 제가 끝나면 당주 집에 모여 음복을 한다. 아침이 되면 마을주민들이 당주 집으로 와서 아침을 같이한다. 제에 올렸던 소고기를 미역과 같이 국을 끓여 대접한다. 또 소고기는 꼬치를 만들어 집집마다 나눠주었다.신격처녀신 : 처녀신은 빨간 치마에 초록색 저고리를 입고 머리는 쪽을 지었다. 손은 앞에 모으듯이 되어 있는데 왼손은 약간 아래로 내려져 있고 오른손은 마치 무엇을 쥐고 있는 듯이 하고 있다. 처녀신은 해신당의 주신이며 재난을 막고 풍어를 관장하는 여신으로 남근을 봉헌 받고 있다.신화마을에 사는 처녀 총각이 서로 좋아하는 사이로 처녀는 매일 바다에 나가 해초를 뜯는데 총각이 뗏목으로 애바위까지 데려다 주었다. 하루는 총각이 육지로 돌아오는 동안 폭풍우가 닥쳐 처녀가 그만 죽고 말았다. 그 후부터 고기가 잡히지 않았다. 어느 날 어부의 꿈에 처녀귀신이 바다 속에 나타나 그 곳에 가보니 처녀의 시신이 떠올라 장사지내주니 풍어가 되었다. 매년 남자들이 향나무로 남근을 깎아 바친다제당의 형태남근장승지금은 관광문화상품으로 발전하여 해신당 공원이 조성되어 해신당 이외에도 어촌민속전시관, 대형남근조각품들이 설치되어 있고 바다에는 애랑낭자가 재현되어 있어 흥미와 이색적인 볼거리가 되고 있으며 어촌민속전시관에는 성(性)을 소재로 한 성민속실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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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화성시 송산면 고정리 우음도 당제
    경기 화성시 송산면 고정리 우음도 당제               제명 : 당제신격 : 도당할아버지, 도당할머니, 용왕님, 김부대왕님, 마부, 대신할머니, 안씨부인, 홍씨부인, 마부제당 : 본당, 각시당, 군웅당일시 : 음력 2월 중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고정2리우음도 당집 내 마부지역 :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고정2리 우음도제명 : 우음도에서는 제의를 지내는 것을 ‘당굿한다’ 또는 ‘도당할아버지 모신다’라고 한다.제당 : 우음도의 제당은 크게 본당, 군웅당, 각시당(나락부리당 ․ 왜갈당)으로 나누어 지는데 이 중에서 현재 그 모습이 유지되고 있는 것은 본당이다.위치1) 본당 - 마을 뒤편 섬 정상의 숲 속에 위치하며 이 곳 사람들은 소당이라 부른다.2) 군웅당 - 선착장 왼쪽의 갯가에 바위가 쌓여진 곳이 군웅당의 터이다.3) 각시당 - 고정2리에서 우음도를 정면으로 바라볼 때 10시 방향 3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름 100m 내외의 작고 큰 흰색바위가 널려진 형태로 밀물 때에는 보이지 않으며 썰물 때만 갯벌 한복판 바닷가 가운데 그 모습을 드러낸다.형태1) 본당 - 와가로 크기는 약 3평정도 된다. 길이는 가로 4.5m, 세로 2m로 시멘트벽 에 슬레이트 지붕을 올린 독채이다. 당집으로 들어가는 문은 나무문으로 당집을 정면에서 바라볼 때 좌측에 있으며, 우측으로는 창문이 있다.2) 군웅당 -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는데 선착장 왼쪽의 갯가에 당목이 서 있고 바 위가 쌓여진 곳이 군웅당의 터이다.3) 각시당 - 지름 100m 내외의 작고 큰 흰색바위가 널려 있는 형태.좌정된 신격 : 할아버지 1명과 부인 2명, 마부 2명, 시녀 1명 등 6명의 탱화가 그려져 있었는데 지금은 ‘도당할아버지, 도당할머니, 용왕님, 김부대왕님, 마부, 대신할머니, 안씨부인, 홍씨부인, 마부’라고 쓰여진 팻말이 걸려 있으며, 탱화는 도당할아버지(임장군), 도당할머니, 마부, 대신할머니, 안씨부인의 탱화는 걸려 있으며 나머지는 팻말만 있다.특징 : 우음도의 당은 분화의 양상을 뚜렷히 보이고 있는데 경기도 안산시 성곡리의 안산당(안씨부인 ․ 홍씨부인을 모시는 당)이 형님이라고 믿고 있다. 이는 우음도의 대안이 안산이고 생활권도 연결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섬의 당 자체도 어머니 ․ 딸 ․ 사위 등으로 분화가 이루어져 있다.제의 소멸과 변천 : 현재 ‘생명 희망 당제’라는 이름으로 ‘우음도 생태문화학교’ 주최로 전승되고 있다. 이를 통해 주민간의 화합 속에서 옛날의 공동체적인 마을의 분위기를 다시 회복하고자 장승을 세우고 솟대를 세워 전승하고 있다. 이는 기존 당제의 역할이 마을의 환경변화와 더불어 새로운 전승체계를 통해 그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개괄우음도에서 제의를 지내는 것을 ‘당굿한다’라고 하거나 ‘도당할아버지 모신다’라고 한다. 제의는 음력 2월초에 모두 모여 당주를 뽑아 비용과 제의 지낼 준비를 한다. 당주는 제의에 관련된 모든 일을 한다. 예전에는 제비 마련하는 것을 출금이라고 하였는데 당주가 제물음식을 마을주민들에게 각각 준비하라고 하여 제의를 지냈으나 지금은 ‘우음도 생계대책위원회’에서 주관하여 준비한다. 제의를 지내는 날은 3년에 한번 만신들이 날을 받아서 지낸다. 원래는 음력 2월 안으로 지내야 하며, 2004년에는 양력 4월 29일부터 30일까지 지냈다.제의내용우음도의 제당은 크게 본당, 각시당, 군웅당으로 나누어 진다. 이중에서 현재 그 모습이 유지되고 있는 것은 본당이다. 본당은 마을 당산 꼭대기에 위치해 있으며, 크기는 약 3평정도 된다. 길이는 가로 4.5m, 세로 2m로 시멘트벽에 슬레이트 지붕으로 지어진 독채 이다. 당집으로 들어가는 문은 나무문으로 당집을 정면에서 바라볼 때 좌측에 있으며, 우측으로는 창문이 있다. 당집 주위에는 군부대가 있었던 막사가 있으며 지금은 그곳에서 흑염소를 기르고 있다.본당에는 원래 할아버지 1명과 부인 2명 부인은 홍씨부인이 첫째 부인이고 안씨부인이 둘째부인이다., 마부 2명, 시녀 1명 등 6명의 탱화가 그려져 있었는데 지금은 ‘도당할아버지, 도당할머니, 용왕님, 김부대왕님, 마부, 대신할머니, 안씨부인, 홍씨부인, 마부’라고 쓰여진 팻말이 걸려 있으며, 탱화는 도당할아버지, 도당할머니, 마부, 대신할머니, 안씨부인의 탱화는 걸려 있으며 나머지는 팻말만 있다.각시당은 우음도 사람들이 나락부리당, 왜갈당이라고 부르는데 송산면 고정2리에서 우음도를 정면으로 바라볼 때 10시 방향 3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도상에 명시되지 않은 지름 100m 내외의 작고 큰 흰색바위가 널려진 형태로 간조에는 갯벌 속에 드러나며 만조에는 대부분 지상부가 바닷물에 잠기던 바위이다.군웅당은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는데 위치는 마을 뒤쪽 해안에 배가 들어오는 선착장에 보면 당목이 서있으며 그 옆이 군웅당의 터이다.신격임장군 : 갈색 말을 쥐고 있는 벙거지를 쓴 장군이다. 화살통을 매고 있다. 임장군은 도당할아버지라고도 부르며 주신이다.안씨부인 : 분홍저고리에 족두리 쓰고 원삼에 초록치마를 입은 여자이다. 소당할머니라고도 부른다. 기능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김부대왕님 : 벙거지를 쓰고 말의 고삐를 잡고 짚신을 신었다. 소당할아버지라고 부른다. 기능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말구중 : 패랭이만 쓰고 있는 마부시종이다. 기능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용신 : 긴 천에 용 그림이 그려져 있다.대신할머니 : 왼손에 바구니를 들고 있는데 꽃 한 송이가 담겨있다.신화우음도 당제에는 각시당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옛날에 금술이 좋은 부부가 살았는데, 남편이 바다에 나갔다가 돌아올 시간이면 아내는 바다 한가운데 바위섬(각시당)으로 마중을 가가곤 했는데, 어느 날 남편은 이웃의 배를 얻어 타고 마을로 돌아간 것을 모르고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늦도록 기다리던 아내는 그만 밀려드는 바닷물에 갇혀 죽고 말았다. 이후 주변 사람들은 부인의 죽음을 애도하여 이 섬을 각시당이라 불렀으며, 매년 정월과 바다 일을 시작하는 철이 오면 각시의 원혼을 달래며 어획의 풍요와 뱃일의 안전을 기원하기 위해 각시당을 찾아 모시게 되었다.제당의 형태장승현재 ‘생명 희망 당제’라는 이름으로 ‘우음도 생태문화학교’ 주최로 전승되고 있다. 장승은 ‘생명 희망 당제’라는 이름으로 우음도 마을입구에 ‘시화호생명대장군’ 과 ‘우음도희망여장군’ 이 서 있다. 이를 통해 주민간의 화합 속에서 옛날의 공동체적인 마을의 분위기를 다시 회복하고자 장승, 솟대를 세워 전승하고 있다. 이는 기존 당제의 역할이 마을의 환경변화와 더불어 새로운 전승체계를 통해 그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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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 통영시 보평동 해평마을 제향
    경남 통영시 보평동 해평마을 제향제명 : 제향신격 : 열녀신제당 :일시 :신격열녀신 : 남편이 바다에서 죽자 남편이 죽은 곳을 가서 죽었는데 3일만에 남편의 시신을 안고 떠올랐다. 마을 사람들이 시신을 거둬주었는데 마을 가운데 나뭇잎을 벌레가 파먹어 열녀라는 두 글자가 사방 산에 두루 버졌다. 구체적인 기능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신화해평에 시집온지 겨우 달을 넘기고 남편이 배를 타고 나갔는데 물에 빠져 죽었다. 부인이 남편이 빠졌던 곳으로 가서 물에 빠져 죽었는데 3일만에 남편의 시신을 안고 떠올랐다. 마을에서 시신을 거둬 합장을 했는데 마을 가운데 나무에 벌레가 생겨 나뭇잎에 열녀라는 두 글자가 새겨졌다. 그 글자가 사방 산에 두루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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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무안군 일로읍 청호리 용신제
    전남 무안군 일로읍 청호리 용신제제명 : 용신제신격 : 용, 처녀원혼제당 :일시 :신격용 : 추씨 성의 총각이 태풍으로 배가 뒤집혀 죽었는데 큰 구렁이가 되었다. 구체적인 기능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처녀의 원혼 : 추씨 총각을 상사바위에서 기다리는데 물 속에서 큰 구렁이가 나타나 처녀를 안고 물속으로 사라졌다. 마을에서 처녀의 원혼을 달래주기 위해 신으로 좌정하였다. 구체적인 형태나 기능은 알 수 없다.신화부자집 처녀와 노모를 모시고 사는 가난한 추씨 총각이 서로 사랑을 하였다. 추씨 총각이 서해바다로 어장 일을 나가기 전날 상사바위에서 처녀와 만나 밤새 보금자리를 마련할 계획을 세웠는데 바다에 나갔다가 큰 태풍으로 배가 뒤집혀 어부 전원이 죽었다. 처녀가 상사바위에서 애타게 총각을 기다리는데 어느 날 천둥이 치면서 상사바위 밑 물속에서 큰 구렁이가 나타나 처녀를 감고 물속으로 들어 가갔는데 처녀의 표정이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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